조갑상 작가님의 소설 『테하차피의 달』을 읽었습니다.
『테하차피의 달』은 소설집인데요, 주로 죽음에 관련된 이야기들이 담겨 있습니다. 계획된 살인으로 인한 죽음, 갑작스런 사고사, 우연히 들려온 잊혀 가던 이의 죽음 등. 물론 죽음에 관련된 이야기가 전부는 아닙니다. 다만 제가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핵심이랄까 그런 것이 죽음과 가까운 것이었습니다.
바람의 언덕
출처-네이버
책의 제목인 ‘테하차피의 달’은 소설집에 일곱 번째로 실려 있는 소설입니다. 읽기 전 제목을 보고 제목이 참 신비롭고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책을 읽어보면 ‘테하차피’란 인디언 말로 ‘바람의 언덕’이라는 뜻이라고 설명이 나옵니다. 인디언 말은 정말 독특하고 아름다운 것 같습니다. 저는 ‘테하차피의 달’도 읽으면서 좋았지만 다 읽고 난 후 뇌리에 박혔던 소설은 ‘누군들 잊히지 못하는 곳이 없으랴’라는 소설, 소설집 첫 번째에 실려 있던 소설이었습니다. 첫 번째로 실려 있었고 분량도 그리 길지 않았지만 다 읽고 나서 그리고 읽을 때에도 뭔가 강렬하게 다가 온 소설이었습니다. 1930년대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이 단편소설엔 힘없이 일본인들에게 당하는 조선인 여성이 주인공으로 나옵니다. 꿈꾸기 어려운 시절 나름대로 희망을 가지고 사랑을 품으며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조선인 여성이 무엇을 해보려고 하지만 제대로 시도도 해보기 전에 그 꿈은 꺾여버립니다. 가혹한 시대 속에서 힘없는 식민지 백성이 얼마나 처참하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강렬하게 보여준 소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 잔혹함에 소설집을 다 읽고 내려놓은 후에도 분노와 안타까움으로 이 소설을 지워낼 수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출처 : wikipedia(frakorea)
또 하나 인상 깊었던 소설은 다섯 번째 소설 ‘어느 불편한 제사에 대한 대화록’입니다. 이 소설을 인상 깊게 보았던 것은 얼마 전 읽었던 『밤의 눈』이 생각나서입니다. 처음 제목을 보고는 제목이 특이하네 하면서 ‘제사’란 글자를 보고 제사를 누가 맡을 지를 정하는 건 언제나 골치지 하면서 소설을 읽어나갔는데, 제사 문제가 처음 내가 생각한 제사 문제가 아님을 곧 깨달았습니다. 소설 속의 제사 문제는 돌아가신 어머니와 아버지의 2주 차이 나는 기제사를 합치는 것이었는데(여기까지도 일반적으로 있을 수 있는 문제라고 할 수 있지요.) 그 이유가 참 씁쓸합니다. 남매들의 아버지는 보도연맹 사건으로 학살된 분이셨고 그 후 가족들은 아버지가 좌익인사라는 낙인 때문에 알게 모르게 고생을 하며 살았습니다. 해서 아버지의 제사를 하기 시작한 것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한참이 지난 후였습니다. 그런 아버지의 제사를 어머니의 기일로 합치자는 큰형의 말을 시작으로 갈등이 시작됩니다. 제사를 합치고자 하는 큰형의 마음은 묻혀버린 과거로 불편한 일들을 겪어야하는 것은 자기대로 끝나야하고 다음 세대들에겐 그런 것들을 물려주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고 이를 반대하는 남동생은 불편한 과거를 제대로 알고 잘못된 지난날을 바로 잡아야 한다는 입장이었던 것입니다. 둘에게 있어 아버지는 무겁고 자신을 억압하는 존재이지만 그 고리를 끊고자 하는 마음과 안 된다는 마음으로 서로 충돌하는 것입니다. 보면서 정말 현실적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것이 정말 유가족들의 심정, 아픔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큰형도 아버지를 완전히 지워버리고 싶어서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자신이 그 때문에 받은 상처가 혹여 자신의 자식들에게로 이어질까 하는 두려움과 걱정에 그런 것임을 알 수 있었기에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특별히 인상 깊었던 소설 두 작품을 얘기하고 보니 두 작품 모두 억압받던 시대에 고통 받았던 사람들과 관련된 얘기라는 공통점이 보이네요. 이 두 작품이 특히나 마음에 깊이 와 닿은 것은 실제로 있었을 법한 이야기이고 그런 이야기 속에서 당시의 암울했던 시대를 느끼며 감정적으로 동화가 되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이야기 속의 시대는 지금과는 다른 시대여서 우리가 제대로 공감을 하기 어려울 지도 모릅니다. 아무리 그때를 깊이 이해하고 느끼려 해봐도 감히 다 알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억압의 고통은 직접 받지 않고는 제대로 느낄 수 없으니까요. 글로만 읽어도 이렇게 섬뜩한데 실제는 어떠했을 지 상상이 잘 되지 않네요.
우리는 참 좋은 시대에 살고 있구나. 하는 것을 또 한 번 느끼게 된 시간이었습니다. 여담이지만 얼마 전 유명아이돌이 ‘민주화’라는 단어를 부정적의미로 사용했다고 한바탕 난리가 났었죠. 전 그것을 보고 너무 충격을 받았습니다. ‘민주화’라는 단어를 그렇게 사용하게 된 배경이 무서웠고 그 단어를 사용한 사람도 그 단어의 사용을 용서한다는 사람들도 이상하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과거 훌륭한 분들이 피흘려가며 투쟁해서 얻어낸 ‘민주화’를 그런 식으로 사용한 건 너무 잘못된 거죠. 용서받기 힘든 일이며 설사 용서를 하더라도 그분들이 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요즘 사회가 많이 병들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럴 때 과거를 되새길 수 있는 책이나 자료들을 읽으며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할 지를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로 조갑상 작가님의 『테하차피의 달』을 읽어보는 건 어떨까요. 과거와 현재, 그리고 사람들 사이의 관계, 삶 대해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는 소설입니다.
테하차피의 달 - 조갑상 지음/산지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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