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동면곰입니다.
오늘은 5월 11일. 무슨날이죠? 네, 오늘은 제 19회 한국사 검정능력시험이 치뤄진 날입니다.(글이 포스팅될 때는 시간이 지나서 12일로 표기될 수도 있겠지만 양해를...) 저도 오늘 처음으로 한국사 시험을 보고 왔습니다. 공부하는 내내 즐거운 시간이었고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결과도 아마 좋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
오늘 이렇게 글을 쓰게 된 건 제가 최근에 읽었던 책 조갑상 작가님의『밤의 눈』에 대해 소개하기 위해서입니다. 시험을 치고 고단함에 잠이 들어버려서 하루가 거의 끝날 때가 되어서 글을 쓰게 되었는데요, 그럼에도 한국사 시험이 치뤄진 오늘 꼭 이 책에 대한 서평을 올리고 싶어져서 다 늦은 시간에 이렇게 자리에 앉았습니다.
(이미지 출처-네이버)
사실 저는 이 책을 대표님께 받고 책이 꽤 두꺼워 보여 읽는데 시간이 오래걸리지 않을까 걱정을 좀 했었는데요. 걱정한게 무색할 정도로 단숨에 책을 읽었습니다. 하지만 그런데도 서평을 쓰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서평을 쓰려고 빈 화면을 뚫어져라 보면서도 쉽사리 글자들이 쳐지지가 않았습니다, 단순히 재밌었다와 같은 간단한 감상평을 내릴 수 없는 책이었기 때문입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많은 생각들이 들었고 온갖 감정들이 뭉쳐져 글로 바로 써내려가기엔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좀 필요했습니다.(변명 같지만요. 하하) 읽고 난 후 무거운 짐을 들고 있는 것처럼 이야기가 내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서평을 채 쓰기도 전에 이런 말을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많은 분들이 읽었으면 좋겠고 읽어야 할 책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이미지출처-네이버)
이 책의 주제를 이끌어가는 키워드는 ‘보도연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보도연맹은 ‘좌익인사 교화 및 전향을 목적으로 1949년 조직된 단체’로 정의됩니다. 즉 반공을 국시로 하던 50년대에 ‘좌익’이라고 생각되는 반동분자·사상범을 교화시킨다는 목적으로 생긴 단체라는 건데요, 이 단체는 6.25전쟁이 터지면서 단순 교화가 아니라 반동분자를 탄압·학살하는 기구로 바뀝니다. 전시라는 명목 아래에서 폭력적·살인적인 행위가 행해진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즉결처분이 행해졌던 이 때 학살 당한 사람들이 죄없는 민간인들이었다는 것입니다. 죄없는 민간인들이 집단적으로 학살을 당한 것입니다. 그 사건이 바로 '보도연맹사건'입니다. 이 소설은 그때 학살당한 민간인들, 피해를 입은 민간인들의 가족들 이야기입니다. 정치권력에 의해, 시대에 의해 이유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잔혹하게 학살당해야 했던 사람들, 그런 모습을 지켜보며 고통 받았던, 살아남은 것이 더 괴로웠을 유가족들의 이야기입니다.
소설 속에 묘사된 사건들은 너무나 잔혹하지만 현실보다 잔인한건 없다고 하듯 현실이 더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솔직히 이 작품은 fiction이라기 보단 faction이라고 보는 것이 더 맞지 않나 싶습니다. 실제 일어났던 사건을 다룬 이야기이기도 하고 등장하는 인물 중 어떤 사람은 실제로 존재했던 사람이기도 하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더욱 우리가 알아야 할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에게서 멀지 않은 이야기이기도 하구요.
책 속에서 주로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인물은 한용범과 옥구열이라는 두 사람입니다. 한 사람은 좌익 반동분자로 끊임없이 의심받고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겨우 살아남아 평생을 고통 받으며 사는 사람, 한 사람은 가족의 억울함을 풀어주려다 애꿎은 낙인이 찍혀 또한 평생을 괴롭힘을 당하며 사는 사람. 이 두 사람만 보더라도 사건의 문제점이 보일 것입니다. 둘 다 죄 없는 민간인, 살면서 다들 한 번씩 하는 할 말, 해야할 일 한 번 정도 한 것 말고는 잘못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모두 동조를 하고 있는 분위기 속에서 혼자서 다른 의견을 내려고 손을 드는 일은 정말 어려운 일이죠. 용기가 필요한 일이며 이후에 일어날 일에 대한 책임을 지어야 할 일이고, 다른 이들의 질타와 눈총을 견뎌내야 하는 일입니다. 소설 속의 한용범, 옥구열이 바로 그런 사람들입니다. 말도 안되는 시대 안에서 두려움이 있었지만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자 했던 사람들, 하지만 그 사람들에게 시대는 가혹했습니다. 한 차례 폭풍이 지나갔으니 금방 다시 오진 않겠지 했던 그들에게 더 큰 폭풍이 덮쳤으니까요. 잘못된 시대 안에서 애꿎은 사람들이 다친 시간이었습니다.
이 책을 읽은 모든 사람들이 그랬겠지만, 책을 읽으면서 가장 크게 들었던 감정은 분노였습니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나서 든 감정은 절망이었습니다. 과연 이 것이 지나간 일일까, 이 속의 이야기로 끝인 걸까 의문을 가지고 생각을 해보았는데 그게 아니라는 생각, 이 안의 이야기들이 지금도 계속 이어져오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절망을 느낀 것입니다. 책 속에서 나타나고 있는 피해자들은 위로받지 못했고 피해자들의 가족들은 보상받지 못했으며 가해자들은 지금도 잘 살고 있는 현실. 너무나 통탄스러웠고 부끄러웠습니다. 시대가 변했고 세월이 지났지만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과 따지고 보면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난 것도 아닌데 이 사실들이 잊힌 것 같아서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뇌리에 박힌 이미지가 있었고 그 이미지를 통해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그 이미지는 바로 '수박(을 먹는 장면)'인데요, 가해자들이 수박을 먹으면서 빨갱이 얘기를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수박을 베어 먹는 행위, 쌓여가는 이빨 자국이 난 껍질 등을 보면서 머리가 띵-했습니다. 좀 충격적이었다고 할까요. 그 사람들의 쉽게 수박을 베어 먹는 행위가 그들이 쉽게 자행하고 있는 민간인 학살과 일치되어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겐 어떤 사람을 빨갱이로 지목하는 일도, 그 지목한 이를 진짜 빨갱이로 몰아 죽여버리는 일도 쉽습니다. 책 속에서는(그리고 실제로도 그랬듯이) 빨갱이라는 말만 갖다 붙이면 다 사살해도 되는 사람으로 바뀝니다. 그 사람이 죄가 있든 없든 그런 건 그냥 만들면 그만 일뿐 그들에게 빨갱이 처단은 그 시대 상황을 이용해서 평소 눈엣가시 같던 사람들을 없애고, 그들을 밟고 올라가려는 하나의 명목이 됩니다.
(이미지출처-네이버)
그 행위가 가능한 할 수 있었던 것은 빨갱이라는 단어, 그 단어에서 오는 놀랍고 무서운 언어의 힘이었습니다. 그 단어 하나로 친일파들은 다시 권력의 중심·빨갱이들의 심판자가 되고 무고한 사람들은 그들의 입장을 다지고 굳히기 위한 희생양이 됩니다. ‘빨갱이’라는 단어는 지금까지도 현재 사회에서 예민한 단어입니다. 그 단어에 몰려 죽은 사람들은 잊혀졌어도 그 단어는, 그 단어의 힘은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빨갱이 하면 죽일 놈, 나라를 팔아먹을 인간이 되는 거죠. 진짜 나라를 팔아먹은 사람들은 정정당당한 심판자가 되어 있고요. 너무나 놀랍습니다.(책 속에 나왔던 '피 흘린 놈 따로, 자리 차고 앉은 놈 따로'라는 말이 너무나 공감되었습니다.) 친일파들에게 날아갈 화살을 돌리려 만든 단어가 제대로, 기가 막히게 먹혀들었고 그로 인해 뒤바뀐 일들이 많습니다. 사상문제가 먼저였을지 친일문제가 먼저였을지는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답은 나오지만 이 또한 시대의 문제였겠지요. 하지만 분한 건 시대가 바뀌었다고 하는 지금도 크게 달라진 게 없다는 것입니다. 친일파의 후손들은 잘먹고 잘살고 있고 독립운동가들의 자손들은 대접도 받지 못하며 살고 있습니다, 과거부터 뒤바뀐 위치가 지금도 그러한 걸 보면 이 이야기는 이야기로서 끝나는 일이 아닌 것입니다. 시대가 바뀌었다고 해도 다 바뀐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인상 깊었던 장면을 말씀드리자면 옥구열이 차단기 앞에서 열차가 지나가는 모습을 보던 장면입니다.(이미지출처-네이버)
끝이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보았던 순간입니다.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라는 명언이 있죠. 그 말과 비슷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모든 일에 결국 끝이 있듯이 그들의 고통에도 끝은 있었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였고, 몸은 몸대로 마음은 마음대로 다친 채 제대로 보상조차 받지 못했지만요.
전 이 장면을 보면서 지금 이 힘든 순간도 결국 지나가겠지 생각해야겠다 라고 다시 한번 다짐을 하게 되었습니다. 2013년으로 넘어오기 전 12월, 견디기 힘든 시간이 있었습니다. 절망도 하고 많이 울었지만 한편으론 이게 또 다른 시작이 될 수 있다고, 스스로 그리고 서로 위로하며 어느새 5월이 되었습니다. 5개월이라는 시간이 바람처럼 지나갔듯이 남은 시간도 그렇게 지나가리라고, 부디 그 사이에 다치는 마음과 포기하는 심정이 없었으면, 새로운 희망이 많이 생겼으면 이젠 그렇게 기도합니다.
더 나빠질 것도 없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지면서 그럭저럭 견뎌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소설 속에서 옥구열이 조심스럽게 가졌던 희망을 우리는 지금 아무런 방해 없이 가질 수 있습니다. 아무런 장애도 제한도 받지 않고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음을 고마워하면서 그 시대에 이유 없이 고통당했던 분들의 상처를 잊지 말고 살았으면 합니다.
한국사를 공부하던 몸이어서 그랬는지 밤이 늦어서 그런건지 아님 요즘 이상한 일이 많이 일어나서 그런지, 혹시나 글을 쓰면서 격한 언사나 실수는 없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글이 서툴러 보기가 싫으시다면 너그럽게 이해해주시고, 글에 문제가 있거나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지적해주시면 바로 고칠테니 말씀해주세요.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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