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판권 면을 보면 주소가 대개 서울이거나 경기도 파주출판단지다. 출판 유통이 서울에 있는 인터넷 서점과 교보문고나 영풍문고를 통해 이루어지다 보니 출판사가 두 곳에 더욱 밀집하게 되었다. 그런 가운데 지역에서 고군분투하는 세 출판사가 있다. 어떤 출판사일지 궁금증이 인다. 지역 문화와 밀착해 책을 펴내는 세 출판사를 찾았다.
부산 산지니
강수걸 산지니 대표(46)에게 출판은 오랜 꿈이었다. 부산에서 자랐고, 책을 읽기 위해 열심히 도서관을 드나들었다. 그를 개인적으로 아는 이는 그를 ‘엄청난 다독가’라고 부른다. 2003년 겨울, 그는 다니던 두산중공업을 그만두었다. 출판의 꿈을 더는 미룰 수 없었다. 부산에 출판사를 차렸다. 출판사 이름은 산지니로 정했다. ‘야생의 오래된 매’를 뜻한다. 부산대 앞에 있던 사회과학 서점 이름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망하지 않고 지역에서 오래 버텼으면 해서 이름을 그렇게 지었다. “경기도 파주와 서울 서교동에 출판사가 몰려 있는 것은 한국의 예외적인 현상이다. 지역에서도 출판사를 차리는 게 가능하겠다 싶었다.” 만약 대구에서 자랐으면 대구에서, 광주에서 자랐다면 광주에서 출판사를 차렸을 거란다.
하지만 막상 지역에서 출판을 하려니 난점이 있었다. 처음에는 부산에서 필름을 출력하고 인쇄를 했다. 파주에서 제작해 전국으로 보낼 때보다 부산에서 제작해 전국으로 배본하는 게 더 비용이 많이 들었다. 단도 인쇄는 어느 정도 가능했는데 컬러 인쇄는 품질에 문제가 있었다. 결국 필름만 부산에서 뽑고, 택배로 파주에 보내 인쇄하는 방식으로 바꾸었다.
산지니는 ‘부산 출판사’로서의 자부심이 강하다. 필자 가운데 부산 사람이 많고 부산을 소재로 한 책을 많이 낸다. 2005년 10월 산지니가 낸 첫 책도 영화 속 부산의 문화와 풍경을 담은 <영화처럼 재밌는 부산>과 해운대 지역 주민공동체의 이야기를 담은 <반송 사람들>이었다. 부산 쪽 비평가들이 내오던 문학 계간지 <오늘의 문예비평>도 비용 문제로 발행이 중단될 뻔했는데 산지니가 넘겨받아 계속 펴내게 되었다. 인터넷 서점에서 하는 이벤트는 일절 안 한다. “돈이 들어가니까.” 하지만 지역에서 하는 ‘저자와의 만남’ 행사는 2009년부터 매달 열고 있다. 지역 출판사가 지역에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서다.
지역 출판사의 길이 애초부터 쉽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래서 떠올린 게 3등 전략이다. “2등이 1등을 따라가려고 무리하다간 망한다. 자기 페이스를 유지하는 3등 전략으로 기업의 고유한 색깔을 가져가면서 성장할 수 있다고 보았다. 자기 색깔을 유지하면서 가고자 하는 방향을 정하고 진지전을 펼치는 것, 부산에서 출판하면서 부산 사람들의 협력을 끄집어내려 했다.” 9년 동안 200여 종 가까이 책을 펴냈다. 1년에 24~25종을 낸다. 4년째부터 흑자로 전환했다.
강수걸 대표는 지역 문화의 거점이 되는 출판사를 꿈꾼다. 그런 점에서 책 문화를 소홀히 하는 행정에 아쉬움을 느낀다. “유럽에는 도시 중심부에 서점이 많다. 서점이 있어야 지역 문화를 살릴 수 있다고 보고 임대료를 지원하기도 한다. 또 파리 도서관이 파리에 있는 출판사의 책을 파리의 서점에서 구입하는 방식으로, 지역 출판사를 키운다. 그게 출판문화의 종 다양성을 유지하는 노력인데, 한국에는 그런 노력이 거의 없다.”
출판계 불황으로 지역 출판사도 경영 여건이 좋지 않다. 연초에 올해 목표를 ‘원칙을 지키면서 망하지 않고 버티는 게 중요하다’로 정했다. 강 대표는 “산지니가 지역에서 독자와 만나는 문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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