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사색]지하철을 탄 개미
“내 발 옆 보도블록과 축대 사이 1㎝도 되지 않는 틈으로 흙이 노출되어 있었다.
폭 1㎝의 긴 흙의 줄.
이것도 생명의 흙이라고 하여야 하나?
그 긴 띠 같은 곳에 뿌리를 박고 풀이 드문드문 자라나고 있었다.
그것을 보다가 새삼 나는 놀랐던 것이다.
시멘트가 갈라진 곳에 흙이 노출되어 있는데, 그러니까…
그 밑에는 커다란 땅이 있을 것이다!
풀의 생명력이 아니었다. 나는 문득 땅이 놀라웠다.
바람에 날리는 풀씨를 붙든 것은 땅이고,
품에 안고 씨의 껍질을 벗기고 뿌리를 내게 하여 하나의 생명체로
키워올리는 (풀의 생명력이 아니라) 땅의 악착을 보았다.
들과 산이 살아 있는 줄은 누구나 안다.
그런데 블록과 아스팔트, 집과 아파트로 된
거대한 돌덩어리를 이고 있는 그 아래에,
공기와의 접촉이 전혀 없이 햇빛 한 번 보지 못한 채 숨통이 막혀 있는데도
땅은 풀씨를 키우며 살아 있는 것이다.
땅이 숨 쉰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바람이 불고, 습기 찬 바람과 직접 접촉하는 것만이 땅의 숨 쉼은 아니다. (…)
무엇보다 땅은 풀과 나무를 이용하여 숨 쉰다.
잎들이 기공을 통해 숨 쉬고, 숨 쉰 그것이 줄기의 관을 따라 뿌리로 간다.
뿌리는 내려받은 그것들을 땅속에서 끊임없이 내보낸다. (…)
시멘트로 발려진 땅은 몇십 년째 그 같은 숨 쉼을 차단당한 채였다.
어째서 죽지 않았을까.
20년, 30년 이런 상태였으면 지금쯤 죽어야 하지 않을까.
아무리 땅이라고 해도 지금쯤은 죽어도 되지 않을까.”
△ 요즘 땅을 자주 들여다본다. 들꽃에 관심이 생겨서 사진으로 찍기 위해 접사모드를 취하다 보면 자연스레 땅과 가까워지고, 땅과 가까워지면 땅의 표정을 보게 된다. 땅의 생명활동을 보게 된다.
더 작게 피어난 새싹들, 개미들, 갈라진 틈들. 손으로 땅을 한 움큼 쥐면 그때 강하게 땅냄새가 난다. 땅냄새는 어떤 풀냄새 꽃냄새보다 좋다. 풀꽃냄새는 사실 땅에서 올라온 냄새인 것이다.
우리는 농부도 아니어서 땅을 길러내지도 않는다. 그저 땅을 즐기기만 하면 된다.
이 즐거움을 스스로 포기하고 파괴하는 행위를 이해할 수 없다.
강성민(글항아리 대표)
바다를 향해 달려가는 풀. 기장군 칠암 바닷가 방파제에서 본 풍경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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