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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사람 자존 세우며 출판계에 우뚝 (리더스경제)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5. 4. 17.
[주경업이 만난 부산의 문화지킴이들] - (38) 도서출판 ‘산지니’ 대표 강수걸
2015년 04월 13일 (월) 13:27:35
 



 
 편집에 바쁜 틈을 내어 잠깐 포즈를 취한 강수걸 대표

지난 3월 이규정의 장편소설 「번개와 천둥」 발간 기사를 신문에서 보고 호기심이 일었다. 우선, 이 소설은 문단에서 거의 외면하다시피 해온 순국선열 이야기로서 특히 국권상실기의 비극을 다루고 있었다. 소설은 암울하던 시절 몽골에 건너가 몽골국왕의 어의가 된 데다 그가 경영하는 동의의국이 독립운동이 거점이 되므로 일본군에 의해 젊은 나이에 목숨을 잃은 대암 이태준 이야기다.

다음으로 이 소설이 부산 소설가의 끈질긴 답사와 추적으로 쓰여졌으며, 그 출판을 부산의 도서출판 ‘산지니’에서 했다는 것이다. 도대체 ‘산지니’는 어떤 출판사이며, 대표 강수걸 씨는 어떤 분인지 궁금했다.

거제동 검찰청 건너 도서출판 ‘산지니’에서 강수걸(姜洙杰, 1967년 생) 대표를 만났다. 복도 끝자락 출입문을 여니 켜켜이 쌓인 책더미 속에서 젊은이가 알은 채를 한다. 강수걸 대표다. 몇 차례 인사를 주고 받았으나 머릿속에서 그림이 그려지지 않던 강수걸 대표의 준수한 모습에서 예사롭지 않은 기운부터 받는다. 이 젊은 분이 부산 출판계를 휩쓸고 서울과 파주 출판 관계자들에게 부산 도서출판의 웅지를 대변하고 있었구나. 반가웠다.

사람이 생각한 바를 무엇에든지 기록하여 전달하기 시작한 것은 먼 옛날부터였지만, 같은 내용의 것을 한꺼번에 여러 번 만들어낸다든지, 그것을 영업적으로 만들어 팔게된 것은 서기 전 336년 그리스에서 비로소 시작되었다는 기록이 전하여진다. 우리나라의 출판은 고려 때 활자의 재료를 나무가 아닌 금속으로 만든 「직지심체요절」(1377)로서, 「구텐베르크(Gutenberg. J) 성서」(1455) 보다 78년 앞서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의 근대적인 출판사 도입은 1883년의 「한성순보」 발행으로부터 시작하여 광인사(廣印社)의 「충효경합벽」(1884), 안종수 저 「농정신서」(1885) 등을 들 수 있는데, 해방 후 해마다 200여 개의 출판사가 등록되고 그만큼의 수효가 망해서 문을 닫는 일이 계속해 왔단다. 지난 60년 동안 우리나라에서의 출판사의 부침(浮沈)은 대충 추측컨데 100여 사가 등록하면 그중 1%인 단 한 출판사가 살아남게 되는데, 그나마도 성공하였다고 할 수 있는 출판사를 다시 추린다면 500:1 꼴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1884)은 기록하고 있다. 2010년 현재 부산의 등록출판사도 900여 개에 이른다고 한다(「부산의 신지리지」, 부산일보).

과연 이들 중 지금껏 몇 출판사가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왕성한 활동을 보이는 출판사로는 ‘산지니’를 으뜸으로 꼽아도 좋을 것이다.

회사원이었던 강수걸 대표 부친은 경남 하동군 횡천면 청암에서 태어나 직장을 따라 진주에서 근무하다가 74년 소년의 나이 8살 때 부산 전포동에 와서 정착한다. 소년은 2남 1녀의 막내로 성전국민학교와 금정중·내성고에 배정받아 졸업하고 부산대학교 법학과에 진학한다. 집과 가까운 시립 부전도서관에서 도서열람하는 것이 일상이었고, 대학에서는 특히 사회과학 계통의 책을 학교 앞 서점의 서가에서 뽑아 열람하거나 구입하면서 책과 가까이 지내는 시간이 많았다. 졸업 후 창원의 한국중공업에서 11년 근무하면서도 책과의 인연은 계속되었고, 내가 사는 부산에서 출판사를 창업해 보는 것이 꿈이 되었다. 모두들 서울로 쏠리는 편견을 애써 떨치고 책 만드는 시설이야 서울에 뒤지겠지만 부산에서 시작하리라 다짐했다. 내가 살면서 잘 아는 부산에서 웅지를 펴야했다.

2004년부터 준비작업을 하면서, 그간 적립한 자금으로 이듬해 2월 출판사 문을 열었다. 출판사 이름을 ‘산지니’로 등록했다. 자전적 의미로 ‘산 속에서 자라서 오랜 해를 묵은 매나 새매’를 일컫는 「산지니」의 뜻을 쫓아 야생의 매같이 기운차게 오래 버틸 수 있는 이름으로 명명했다. 이름 값을 하리라. 소박하게 시작하였으되 오래버틸 수 있는 이름이 필요했다. 평소에 마음속에 둔 이름이리라.

일단 부산 지역과 관련된 책부터 만들었다. 저자가 부산 사람이어야 하고 부산 관련 서적이라야 했다. 시·소설·비소설 등 문학을 아우르고 차츰 분야를 망라하여 갔다. 인문·정치·철학·불교 관련 지역 작가를 만나면서 그 분야가 넓어졌다. 그리고 부산의 독자들이 관심가지는 중국·인도 등의 번역서도 출판하였다. 이 분야만큼은 전국에서 전문성을 띤 저자를 수소문하였다.

독자 층도 전국으로 넓혀갔다. 그럴려면 부산에서 책 만들어 전국서점으로 택배 운송하는 번거러운 체계를 개선해야겠다. 경기도 파주출판사단지의 물류시스템을 활용하는 것이 경제적이면서 합리적인 것임을 알게 되었다. 파주와 부산을 이원화시키기로 했다. 부산에서 기획편집을 마치면 데이터를 파주출판단지로 보내어 출판과 배송을 위탁하였다. 파주는 부산이 안고 있는 시설적인 약점을 보완할 수 있었다. 특히 학술서 등 특수도서의 양장제본은 파주출판단지의 능력이 탁월하였기에 책의 성격에 따라 알맞는 양장을 선택할 수 있었다.

시작이야 인문학 출판으로 부터였지만 사회학·청소년 등으로 확대하였다. 보통의 출판사들이 어린이책·문학책 등 특정분야로 출판분야를 한정하기 마련이었지만 ‘산지니’는 이를 혁파했다. 학술회 논문 등도 발간하였다. 그러다보니 출판 종이 늘어나고 연간 발행하는 책도 쌓여갔다. 2014년 한해 50종 280여 권의 책을 발행하였다. 서울의 출판사에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 않는 실적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획출판 인원을 풀가동해야 했다. 강수걸 대표를 비롯하여 디자이너 2명, 편집사원 4명이 먼눈 팔 사이없이 편집에 매달리고 있다. 심지어 여러 책을 동시에 편집해야 할 때도 있다. ‘산지니’는 그런 노하우쯤은 벌써 갖추어져 있다.

그러나 책을 내다보면 실패한 때도 있기 마련. 1,000명의 독자를 예상했는데 200부 판매에 그치는 경우이다. 실패한 원인이야 저자일 수도 있고 편집디자인일 수도 있으나 독자에게 다가가지 못한 책이라는 것이 패인이었다. ‘산지니’는 이런 실패를 통해서 새로운 경험을 쌓아갔다. 원고를 정독하여 원고와 선행도서들에서 유사점을 비교하여 출판을 가늠하고 출판부수를 많게 또는 적게 조정하였다. ‘산지니’의 특징은 이런 분석들의 선행에서 발행예측 부수를 가늠하는 데 있다.

만해문학상을 수상한 작가의 「밤의 눈」처럼 문학상을 수상한 글도 있을 수 있고 학술도서나 우수도서로 선정된 도서를 발행하기도 하였지만, 「부산을 맛보다」처럼 일본으로 수출에 성공한 사례도 있다.

젊은 대표 강수걸 씨의 예리한 통찰력이 이런 일들을 해내고 있는 것이다. 책을 사랑하는 부산 사람으로서는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2014년 출판도서 중 부산 독자들에게 권장하고픈 책을 추천받는다.

최영철 시인의 「금정산을 보냈다」, 정천구의 「맹자, 시대를 찌르다」와 이규정 소설 「번개와 천둥」 등이 성공한 책들이다. 강수걸 대표의 책은 현재와 과거의 대화이다. 당대 독자들을 위한 책이지만 고전은 과거사람들의 이야기듯이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대화인 것이다. 오늘을 봄으로써 과거를 말할 수 있고 어쩌면 미래까지 생각하면서 대화를 상상해 볼 수 있는 매체로 책의 사명을 얘기한다. 그래서 책을 어떻게 만들까를 고민한다.

저자들은 자기 책 많이 팔리기를 원하고 출판사도 책이 많이 팔리게끔 노력해야 한다. 서점 수도 줄어들고 대학 앞 서점들이 문을 닫으며 전자책이 활보하고 있으나, 활자로 찍혀진 책의 수명이 오래인 것을 강수걸 대표는 잘 알고 있다. 아침 8시 반이면 칼출근하여 스텝들을 독려하고 찾아온 저자들을 만나 독자들에게 다가갈 책만들기 위해 시간가는 줄 모르게 하루를 보낸다. 부산을 사랑하고 부산 사람을 사랑하기에 혼신을 쏟고 있는 강수걸 대표에게 큰 박수를 보낸다.


주경업ㅣ리더스경제신문ㅣ2015-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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