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의 귀염둥이, 산지니 인턴 임병아리입니다^0^ 『불가능한 대화들2』에 이어 두 번째 서평을 쓰게 되었는데요, 이번에는 따끈따끈한 신간『RED ISLAND』(이하 『레드 아일랜드』로 표기하겠습니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해요.
『레드 아일랜드』는 김유철 작가의 장편 소설입니다. 제주 ‘4·3사태’에 관한 이야기인데요, 김유철 작가가 이에 대한 이야기를 쓴 것은 처음이 아닙니다. 추리소설「암살」에서 이미 제주 4·3사태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를 쓴 바 있지요. 그가 발표한 작품이 아직은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 만큼 적다는 것을 떠올려보면, 김유철의 작품세계에서 제주 4·3사태는 꽤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 때문에 김유철 작가는 제주 출신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부산에서 나고 자란 부산사람이었습니다. 작가는 소설학당의 동기로부터 4.3사태를 다룬 기행서 『잃어버린 마을을 찾아서』를 추천받고, 그를 통해 4.3사태를 처음 접했다고 합니다.
1948년 제주를 배경으로 한 영화 <지슬>(2012)의 스틸컷.
제주 4·3사태는 1948년 4월 3일 발생하여, 1954년 9월 21일까지 무려 6년 동안 ‘제주 도민들의 무장 폭동을 진압한다’는 명목 하에 수많은 도민들을 희생시킨 사건이에요.
한반도가 남북으로 나뉘어지고, 남과 북이 끝내 합의점을 찾지 못하게 되자, 남한에서는 남한만의 단독선거를 통해 단독 정부를 세우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한반도가 영원히 두 동강 날것을 두려워 한 국민들은 모두 단독 선거를 반대했습니다. 이에 미군정과 경찰 당국은 단독 선거를 반대하는 이들을 모두 ‘빨갱이’로 규정하고 탄압하려 했지요. 그 대표적인 사례가 ‘빨갱이 섬’으로 불렸던 제주도입니다.
억울하게 ‘빨갱이’로 몰리며 심한 억압을 받은 제주 도민들은 분노에 휩싸였고, 급기야 무장봉기를 일으키고 마는데요, 경찰은 그들을 무자비하게 사살하고, 탄압했습니다.
사실, 제주 도민들은 정치적 이념은 커녕 좌익이며 우익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살아온 사람들이 대다수였습니다. 그들은 그저 제주에 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빨갱이로 몰리고, 이를 해명하고자 하였으나 억울하게 죽음을 맞이했을 뿐이죠.
『레드 아일랜드』 뒷표지
김유철의 『레드 아일랜드』는 바로 이런 1948년의 제주도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습니다. 더 정확히는 4·3사태 그 자체보다도, 4·3사태 전후의 제주도 ‘사람들’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지요. 가족을 지키기 위해 경찰이 되어 고향을 등지게 된 김헌일, 아무런 이유도 없이 경찰서에 끌려가 고문을 당한 이후로 폭동에 가담하게 된 방만식,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제주에 남아 있다가 봉변을 당한 외지인 홍성수 등… 작품 속 인물들은 모두 저마다의 사정으로 4·3사태에 휘말리게 됩니다.
그 중 특히 저의 흥미를 끌었던 인물은 주인공 김헌일의 형, 김종일이었습니다. 김종일은 밀수품을 취급하는 사업가로, 경쟁이 치열한 밀수품 업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경찰과 군정 측에 붙어 사업을 이어가는 인물입니다. 사람들은 그를 친일파라 부르며 손가락질하지만, 그는 그저 사업을 위해 경찰의 비위를 맞추고 있을 뿐, 그 스스로 정치적 이념을 가지고 행동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한때는 일본과 제주를 오가며 떼돈을 벌던 이들이 반미 구호를 외친다고 해서 민족주의자가 되고 애국자가 되는 마당이다. …(중략)… 찬탁이니 반탁이니 하면서 남북으로 편 갈라 싸우는게 소련놈이냐 미국놈이냐? 나를 악덕 부르주아나 회색분자로 취급하지만, 난 단지 사업가일 뿐이다.” -『레드 아일랜드』 62-63p 中
김종일 뿐 아니라, 작품의 주요 인물들 가운데 그 누구도 스스로의 확실한 정치적 이념을 가지고 4·3사태의 중심으로 뛰어든 이는 없습니다. 기껏해야 정치지도원 석호같은 주변 인물 정도이지요. 경찰과 군정은 자신들에게 복종하지 않는 이들을 모두 빨갱이로 몰아 세우며 폭력과 죽임을 서슴치 않았고, 이로 인해 아무것도 모른채 살아온 작은 섬마을 사람들이 휘말리게 되었을 뿐입니다.
“봤나? 이곳에선 복종 외엔 아무것도 생각하지 마라. 개인적인 행동도 질문도 용납되지 않는다. 너희들은 오직 우리가 묻는 말에만 대답하면 돼!”
…(중략)… 모든 광경을 묵묵히 지켜보던 김헌일의 얼굴에 절망감이 깃든다.
‘아아, 이것이 제주의 현실이었구나.’ -『레드 아일랜드』 199p 中
『레드 아일랜드』에는 당시 제주 도민들이 겪은 폭력과 억압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김헌일이나 방만식이 고문을 받는 장면은 물론이고, 죽창으로 어린 소년을 찔러 죽이고도 아무렇지 않게 웃음을 터뜨리는 경찰들, 철삿줄에 묶여 끌려가는 사람들의 모습 등, 장면 장면마다 마치 작가가 실제로 4·3사태를 겪은 듯이 디테일한 묘사가 살아있었습니다. 『레드 아일랜드』를 쓰기 위해 많은 양의 자료들을 참고했다는 김유철 작가의 말이 과언이 아님을 알 수 있었지요.
제주시 봉개동에 위치한 4·3평화 기념관
작품의 이야기는 점차 고조되어 결국 오랜 친구였던 김헌일과 방만식이 서로에게 총을 겨누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그러나, 가족을 지키고자 했던 김헌일과, 모두가 평등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자 했던 방만식의 입장을 모두 이해할 수 있었기에 어느 한쪽의 잘못을 가려내고 비난할 수 없었습니다. 두 사람의 대치된 상황은, 각자의 사정이 얽히고 설켜 만들어진 비극이었습니다.
“중요한 건 지금의 세상이 잘못됐단 거우다……. 게메 이렇게 행동하고 있주. 여기서 죽도록 맞으멍 속느니 희망을 가지멍 싸우는 게 더 좋은 거 아니우꽈. …(중략)… 살기 위해서 총을 들었을 뿐이우다. 시작헌 사름도 책임질 사름도 없으멍 어떡하우꽈? 하멘 나 같은 사름도 있어야주.” -『레드 아일랜드』 329p 中
김유철 작가는 ‘작가의 말’을 통해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 된다”는 문구를 언급하였습니다. 4·3사태로부터 60여 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진실을 은폐하고 국민을 억압하려는 행태는 오늘날까지도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지요. 그러나 반복되는 역사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그러한 행태에 아무런 경계 의식도 갖지 못한 채 권력의 희생양이 되어버리곤 합니다. 심지어는 왜곡된 역사를 진실이라 믿는 사람들도 있지요. 『레드 아일랜드』는 그릇된 역사의 반복을 막기 위해 역사적 진실을 기억하고, 끊임없이 반성함으로써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작품이었습니다.
레드 아일랜드 - 김유철 지음/산지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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