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영이 소설집
『독일산 삼중바닥 프라이팬』
사람과 사회를 독특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소설가 오영이의 두 번째 소설집 『독일산 삼중바닥 프라이팬』이 출간됐다. 이번에 선보이는 소설집은 첫 소설집 출간 이후 2012년부터 2015년까지 발표된 네 편의 작품이 수록된바, 화려한 도시의 불빛 속 현실의 그늘과 그 속에 삶의 뿌리를 내리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작가는 현 사회의 어두운 이야기들을 특유의 감각적인 문장들로 풀어내며 밝음 속 아이러니한 어둠을 그려낸다.
문학평론가 정훈은 소설집 『독일산 삼중바닥 프라이팬』에 대해 “우리 시대의 민낯을 소설로 형상화한”다고 전하며, 작품 속 인물들에 관해 “외면상 선진국의 문턱에 다다르고 각자 개성을 뽐내며 서로에게 ‘사랑’과 ‘관심’이라는 이름으로 다가가지만, 실상은 의지와는 무관하게 서로에게 상처와 절망을 안긴 채 겨우 숨을 쉬며 살아가는 목숨붙이들”이라고 말한다. 표제작 「독일산 삼중바닥 프라이팬」에서 독일에서 한국으로 온 프라이팬이 만난 세 명의 사람들이 모두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세대와 계층을 아우르는
재기발랄한 관찰력이 돋보이는 소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를 되짚으며 공터에 누워 있자니 끔찍한 장면이 자꾸만 떠올라 나는 괜히 몸이 떨린다. 그런데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난 걸까, 아니면 충격을 덜기 위해 이런저런 기억들을 조합한 내 착각일까? 나는 순간 움찔한다. 프라이팬에게 기억이라니. 하지만 내겐 기억이 있다. 매순간을 고스란히 다 떠올릴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분명 기억이 있고, 내가 기억하는 사건들을 거쳐 여기까지 왔다.
_ 「독일산 삼중바닥 프라이팬」 중에서 (p.10)
작가 오영이는 이번 소설집에서 다양한 세대와 계층의 현실을 보여주는 데 몰두한다. 사회와 인간이 충돌하면서 발생하는 사회적 양상과 개개인의 내면적 심리들을 기어이 소설 속 현재로 끌어와 우리를 집중시킨다. 소설집 네 편의 작품들은 꼬여버린 세계에 놓인 다양한 세대와 계층의 인물들을 통해 한국 사회가 야기하는 날것 그대로의 모습을 비춘다. 독일에서 만들어져 한국으로 오게 된 고급 프라이팬이 그것을 구입한(혹은 주운) 사람들의 기구한 사연을 목격하게 되는 「독일산 삼중바닥 프라이팬」은 세 가지의 이야기로 구성돼 한국 사회의 그늘을 응시한다. 「황혼의 엘레지」는 공원의 노인들에게 박카스를 팔며 생계를 유지하는 안동댁의 이야기로, 한때 우리 사회를 들썩이게 했던 사건을 모티브로 하여 노인의 삶과 복지의 취약성을 고발하는 가운데 노인의 성(性)이라는 또 다른 생각거리를 제공한다. 단편「마왕」과 중편 「핑크로드」는 과거의 기억으로부터 시작하는데, 어린 시절의 외로움과 상처가 한 인간의 삶을 서서히 얼룩지게 만들거나, 오랫동안 이어져온 사랑이 윤리적 금기를 넘어서 헤아릴 수 없는 심연 속에 놓이게 한다.
이번 소설집에서 눈여겨볼 것은 오영이만의 독특한 관찰력과 문체다. 우리 사회의 음지를 바라보는 따뜻한 관찰력과 이를 풀어내는 재기발랄한 문체는 다소 무거운 주제들도 쉬이 읽히도록 한다. 무겁지만 가벼운, 혹은 가볍지만 무거운 오늘날 우리 시대의 이야기들이 오영이의 소설들에 녹아 있다.
"이제 또 어디로 가게 되는 걸까?"
디스토피아를 살아가는 우리를 감싸는 따뜻한 시선
이럴 때 안동댁은 기어이 알콜병동에서 사망소식을 전해 온 아들이 그저 원망스럽다. 어미는 제가 질러 놓고 간 새끼 키워 볼 거라고 육십이 넘은 나이에 박카스를 들고 뭇 사내들의 손을 타고 있건만, 젊은 것들은 새끼 버리고 나가 알콜 중독에 행방불명이라니.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안동댁은 얼른 집을 나설 채비를 한다. 이럴 때마다 주문처럼 입으로 뇌는 말이 있다. 어쨌든 산 사람은 살아야지.
_ 「황혼의 엘레지」 중에서 (P.58)
「황혼의 엘레지」의 안동댁은 결코 긍정할 수 없는 방법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노인이다. 공원 노인들의 추태를 받아주며 박카스를 파는 안동댁을 향해 동네 주민들은 “나이가 들면 나잇값을 해야지” 혹은 “동네 창피하다”는 식의 반응을 보인다. 표면적으로는 부정한 행동임이 틀림없지만 작가는 안동댁의 그럴 수밖에 없는 속사정에 집중하며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젊어서 청상과부가 됐고, 아들은 알콜 중독으로 죽었으며, 며느리가 집을 나간 뒤 손자만 데리고 살아가는 노인. 안동댁의 구구절절한 사연은 그녀가 왜 공원에서 박카스를 팔아야 하는지를 설명해준다. 나잇값을 못하며 창피한 안동댁의 행동에 대해 따뜻한 시선을 보내며 그녀 개인의 고달픈 삶과 오늘날 우리 시대 노인 문제에 대한 생각의 스펙트럼을 넓히게 한다.
「황혼의 엘레지」에서 보이는 사람과 이야기에 대한 작가의 관심은 표제작 「독일산 삼중바닥 프라이팬」에서도 드러난다. 이 소설은 프라이팬을 주인공으로 하여 세 가지의 이야기가 옴니버스 형식으로 이어지는데 입시전쟁 속의 아들과 엄마, 팍팍한 현실에 사랑을 잃은 청년, 생활고에 시달리는 노년 등 각 세대가 겪어내고 있는 현실의 그늘을 짚어낸다. 특히 프라이팬의 마지막 기억인 폐지 줍는 할머니의 이야기는 화려한 도시 한편의 어둠을 지고 살아가는 이 시대 노년들의 삶을 담담하게 그리며 작가 특유의 따뜻한 시선을 느끼게 한다.
"하지만 마법의 시간은 영원하지 않았다"
결핍과 욕망으로 얼룩진 개인의 일상
「마왕」은 외로움과 상처가 그릇된 욕망이 되어 개인의 삶에 번지는 서글픈 작품이다. 어릴 적 “저녁마다 루주를 바르고 집을 나서는 엄마”에게서 버림받은 주인공은 자신의 결핍을 쇼핑으로 채우기 시작한다. 백화점의 고급스런 조명을 받으며 디스플레이 되어 있는 신상들을 입으면 마치 자신이 ‘여왕’이 된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힌다. 그녀의 불우했던 어린 시절이 그로 하여금 백화점에 진열된 옷들에 대한 집착으로 외면화된 것이다. 쇼핑 중독에 빠진 여자, 사회적 문제로 치부되는 이와 같은 소재를 작가는 인간의 내면으로 들어가 파헤친다. 소설은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 우울한 성장사, 쇼핑중독, 사채 등 소설을 이루는 요소들이 촘촘히 연결되어 거대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단자화된 현대인들의 자화상을 그려낸다.
“한순간 사랑에 눈이 멀 수도 있지. 달콤하니까. 하지만 달콤함이 필요하면 보리차에다 설탕을 타서 마시면 돼. 뇌수가 눅진해지도록 듬뿍 말이야. 사랑이 달콤한 건 달콤함을 즐길 준비가 된 인간들에게나 그런 거야. 도대체 우리가 사랑한다 해서 달라지는 게 뭔데”
_ 「핑크로드」 중에서 (P.194)
「핑크로드」에서는 나와 외사촌 지간인 여자 사이에서 벌어져서는 안 되는 격정적 사랑을 보여준다. 사촌 누나를 향한 성스러운 사랑을 간직한 나와 사랑을 오래 전에 유행이 지난 “웃기지도 않은 농담”이라 말하는 여자의 위험한 관계는 어쩌면 처음부터 파국으로 향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작가는 오랫동안 사랑을 간직한 주인공의 시선으로 사랑조차 사치가 되어버린 이 시대에 진정한 사랑이란 무엇인지 반문한다. 사랑이 사회적, 윤리적 금기와 부딪쳐 욕망으로 변질된 것인지, 애초부터 사랑의 감정 속에 꿈틀대던 욕망이 폭발한 것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사회를 이루는 거대한 울타리 속에 들어가지 못하는 애처로운 감정이 소설 속에 퍼져 읽는 이에게 전달된다.
▶ 지은이 : 오영이
부경대학교 대학원 석·박사 과정(국어국문학과)을 마치고 현재 동서대학교와 경성대학교에 출강 중이다. 『문예운동』 소설 신인상과, 『한국소설』 신인상, 그리고 『동리목월』 신인상을 수상했으며, 소설집으로 『별들은 이제 섬으로 간다』(2011)가 있다.
▶ 차례
독일산 삼중바닥 프라이팬
황혼의 엘레지
마왕
핑크로드
해설 | 비창(悲愴), 스러지는 사랑과 윤리의 사회학 - 정훈(문학평론가)
작가의 말
오영이 소설집
독일산 삼중바닥 프라이팬
오영이 지음 | 국판 | 153,000원
978-89-6545-363-5 03810 | 2016년 7월 15일
사람과 사회를 독특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소설가 오영이의 두 번째 소설집 『독일산 삼중바닥 프라이팬』이 출간됐다. 이번에 선보이는 소설집은 첫 소설집 출간 이후 2012년부터 2015년까지 발표된 네 편의 작품이 수록된바, 화려한 도시의 불빛 속 현실의 그늘과 그 속에 삶의 뿌리를 내리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작가는 현 사회의 어두운 이야기들을 특유의 감각적인 문장들로 풀어내며 밝음 속 아이러니한 어둠을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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