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같은 시집이 나왔습니다. 차갑다가도 따뜻하고 따뜻하다가도 쓸쓸한.
그러나 결국 사랑으로 사랑으로.
시인의 붉은 마음을 시집에 담았습니다.
▶ 사슴목발을 짚고 걷듯이 조금씩 미완성인 사람들
그들에게 애인의 칭호를 붙이며 절망을 사랑으로 포용하다
생동감 있는 시적 언어로 삶의 비애와 희망을 탐구해온 최정란 시인의 세 번째 시집 『사슴목발 애인』이 출간됐다. 시인은 절망스러운 현실일수록 약한 사람들끼리 서로 사랑해야 한다고 말한다. 사랑만이 절망에서 우리를 구원할 수 있듯이, 우리는 조금씩 부족하고 삶에 나아가기 위해서는 목발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시집 제목이 『사슴목발 애인』인 것도 사슴목발을 짚고 걷듯이 미완성인 우리가 서로에게 애인처럼 사랑으로 포용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노래를 틀어놓고 열심히 춤을 추지만 “한없이 얇아진 풍선인형의 고독”(「댄싱 퀸」)을 느끼는 소녀들, 패스트푸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이 지루한 별에 다녀간 것을 증명하는”(「불란서 인형」 노년의 할머니, 노량진에서 “공부만 하다 죽을지도”(「노량진」) 모른다고 외치는 취업 준비생들. 시인은 현실의 절망 앞에 놓인 사람들을 쉽게 지나치지 않고 정성스럽게 이번 시집에 담았다. 절망 대신 희망을 이야기하는 시인에게 황정산 평론가는 “절름거리는 절망 속에서 엇박자의 희망을 향해 가는 시인의 발이 간절하고 아름답다”라고 말한다.
절며 끌며 너에게 가네
발꿈치가 땅에 닿지 않는 봄
또각또각 추를 흔들며 울고 가는
엇박자의 시간 속으로
뼈가 부러진 꽃들이 떨어지네
깁스 속에 가둔 순결한 발이
진흙도 모래도 아스팔트도
때 묻은 땅이라고는 모르는 것처럼
최초의 구름 위를 걸어가네
-「사슴목발」부분
▶ 방황하는 청춘들의 슬픔을 시로 다독이다
시인은 청춘들의 어두운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시에 담아 위로를 전한다. 개인이 성장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기 위해 방황하는 건 당연한 순리일 수 있다. 점점 혼란스러워지는 사회에서 청춘들의 방황은 쉽게 허용되지 않는다. 오히려 사회는 청춘들에게 정체성을 확립하기도 전에 자기 자신을 증명하는 무엇이 서둘러 되라고 재촉한다. 청춘들은 고민한다. “나는 어떻게 나를 증명할 수 있을까”(「신분증」), 현실은 가혹하게도 취업도 결혼도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시인은 청춘들의 방황과 정체성 상실을 부정하기보다 또 하나의 길을 찾는 강력한 동력이 될 수 있음을 믿으며 청춘들의 슬픔을 시로 다독인다.
서 있는 자리가
틀린 골목 틀린 문 앞일 수도 있다는 것을
의심해볼 생각을 왜 안 했을까
젖 먹던 힘까지 용을 쓰며
다른 골목에서 다른 대문의 비밀번호를
누르고 있는 삶이 있다.
-「영희네 집」 부분
▶ 환상과 절망 사이, 그래도 희망을 만들어내다
시인은 절망의 현실을 감추는 환상을 경계한다. “허락하면 나는 왕자의 세 번째 아내가 될 거예요 그렇지만 나는 누구의 아내도 되고 싶지 않아요”(「아부다비에서 온 편지 2」)라고 말하듯, 왕자가 와서 결혼해달라는 꿈같은 환상을 믿지 않는다.
환상은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게 하고 사람들을 더 큰 절망으로 빠지게 하기 때문이다. 시인은 나지막하게 말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의 비애 속에도 서로가 연대하고 사랑한다면 희망은 만들어낼 수 있다.
남극기지를 세운 기념으로
교환학생 펭귄이
온대마을 기숙사에 도착했을 때
룸메이트였던 나는
극세사 이불 세트를 펭귄의 침대에 깔아주었다
-「펭귄표 지우개」부분
지은이 최정란
경북 상주 출생. 계명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졸업, 동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수료.
2003년 <국제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하였으며, 시집으로 『여우장갑』, 『입술거울』이 있다. cjr105@hanmail.net
산지니시인선 007
사슴목발 애인
최정란 지음 | 46판 양장 | 11,000원 | 978-89-6545-375-8 03810
생동감 있는 시적 언어로 삶의 비애와 희망을 탐구해온 최정란 시인의 세 번째 시집 『사슴목발 애인』이 출간됐다. 시인은 절망스러운 현실일수록 약한 사람들끼리 서로 사랑해야 한다고 말한다. 사랑만이 절망에서 우리를 구원할 수 있듯이, 우리는 조금씩 부족하고 삶에 나아가기 위해서는 목발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사슴목발 애인 - 최정란 지음/산지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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