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저널이 선정한 이달의 책-편집자 기획노트]
미지의 섬, 그곳에서 마주친 또 다른 나
정광모 장편소설『토스쿠』
정선재 | 산지니 편집자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라디오에서 시인과 촌장의 <가시나무>가 흘러나온다. 이 노래는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디제이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면서 음악은 자연스럽게 사라진다. 그쯤 『토스쿠』의 한 구절에 밑줄을 그었다.
“내가 내 마음의 작은 일부만을 알고 있다면 나머지는 도대체 뭐란 말일까?”(p.253)
우리는 미처 나를 다 알지도 못한 채, 불쑥 밀고 들어오는 선택의 갈림길에 놓인다. 노래를 계속 틀까? 디제이의 마이크 볼륨을 높일까? 하는 것처럼. 그렇게 현재의 내가 서 있다. 그리고 또 다른 삶의 씨앗이었던 삶의 방식과 나는 어딘가에 꼭꼭 숨어버린다.
토스쿠. 처음 원고를 봤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제목이자 이 소설의 중심이 되는 ‘토스쿠’라는 단어였다. 이는 정광모 작가가 직접 만든 말로, 또 다른 차원에 존재하는 또 다른 자신을 뜻하기도 하고, 그런 또 다른 자신을 만날 수 있게 미지의 문이 열린다는 의미로도 풀 수 있다. 처음 이 단어를 들었을 땐 드라마에서 나오는 식상한 대사인 “나다운 게 뭔데?”의 변주 정도로 생각했다. 하지만 소설을 읽어 내려가면서 ‘나다운 것’ 속에 들어 있는 꽤 진중하고 깊은 물음들을 꺼내 볼 수 있었다. 내 속에 광활하게 펼쳐지는 삶의 우주에는 내가 선택하여 현재가 된 ‘나다운 것’과 미지의 세계로 남아 있는 ‘나답지 않은 것’들이 떠다닌다. 소설 『토스쿠』는 이 거대한 우주를 만나는 여정을 통해 인간 내면과 자아, 인간 존재의 본질에 관해 집요하게 들여다본다.
『토스쿠』에는 각자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우연히 모인 곳은 한 로봇공학자의 목공심리치료소. 명쾌한 이성적 사고로 삶을 대하는 ‘장 박사’와 함께 나무를 매만지며 이들은 조금씩 자신의 고통스러운 기억을 다루는 방법을 배운다. 그런데 어느 날, 장 박사는 필리핀으로 여행을 떠나고, 긴 시간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는다. 생명의 은인과도 같은 장 박사를 찾아 떠난 3인은 미지의 섬으로 향한다. 각각 뚜렷한 개성과 고통스러운 과거를 가진 4인방의 이야기는 장 박사를 찾아가는 거시적 서사 내에 현대인의 고립과 누적되는 상처에 대한 선명한 장면들을 녹여낸다. 이야기 속에 보다 작은 이야기들을 배치하며 작가는 노련하게 소설의 긴장감을 지속시키고 있다.
읽고 있으나 머릿속으로 그려지는 소설, 나에겐 『토스쿠』가 그랬다. 선명하고 뚜렷한 개성을 가진 인물들부터 유독폐기물을 싣고 표류하는 유령선, 플라스틱으로 뒤덮인 바다까지 소설을 구성하는 여러 부분들이 이미지화되어 다가왔다. 장 박사와 토스쿠를 만날 수 있을까라는 의문으로 시작한 여정, 미신처럼 느껴질 수 있는 이 신비로운 여정에서 현대문명의 민낯과 현실을 읽을 수 있는 것도 어쩌면 또렷하게 그려지는 소재의 이미지들 덕분이 아닐까? 때론 가상이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법이다. 소설 『토스쿠』를 통해 허구의 이야기가 현실에 던지는 삶의 메시지들을 만나보기 바란다. 그리고 세상에 뿌리내린 무수히 많은 삶들을 응원하는 시발점이 되길.
『출판저널』 2016년 8월호
「<출판저널>이 선정한 이달의 책 기획노트」에 게재되었습니다.
토스쿠 - 정광모 지음/산지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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