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저널이 선정한 이달의 책-편집자 기획노트]
우리 시대의 민낯을 마주하다
오영이 소설집 『독일산 삼중바닥 프라이팬』
산지니 정선재 편집자
영화나 드라마는 편집이라는 과정이 있다. 극 중 주인공이 고난과 역경을 마주한 시간들은 편집을 통해 ‘몇 년 뒤’라는 자막과 함께 빠르게 흘러가버리고, 이내 성공과 기쁨의 시간과 마주하게 된다. 우리네 삶에도 이러한 편집이 가능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의 삶은 두 시간짜리 영화가 될 수 없다. 기쁨의 시간을 걸어가는 만큼 슬픔의 시간도 오롯이 우리가 걸어가야 할 몫이다.
오영이 소설집 『독일산 삼중바닥 프라이팬』의 소설들은 영화로 치자면 편집되거나 빠르게 지나갈 법한 고단한 삶의 이야기들로 이뤄졌다. 마치 ‘이게 진짜 우리 시대의 민낯이야’라고 이야기하듯 말이다. 이번 소설집은 총 네 편의 작품이 수록된바 청소년, 청년, 중년, 노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세대와 계층의 현실을 보여주며 우리 사회의 문제점들을 찬찬히 들여다본다.
독일에서 만들어져 한국으로 오게 된 고급 프라이팬이 그것을 구입한(혹은 주운) 사람들의 기구한 사연을 목격하게 되는 「독일산 삼중바닥 프라이팬」은 세 가지의 이야기로 구성돼 한국 사회의 그늘을 응시한다. 「황혼의 엘레지」는 공원의 노인들에게 박카스를 팔며 생계를 유지하는 안동댁의 이야기로, 한때 우리 사회를 들썩이게 했던 사건을 모티브로 하여 노인의 삶과 복지의 취약성을 고발하는 가운데 노인의 성(性)이라는 또 다른 생각거리를 제공한다. 단편「마왕」과 중편 「핑크로드」는 과거의 기억으로부터 시작하는데, 어린 시절의 외로움과 상처가 한 인간의 삶을 서서히 얼룩지게 만들거나, 오랫동안 이어져온 사랑이 윤리적 금기를 넘어서 헤아릴 수 없는 심연 속에 놓이게 한다.
빛이 사그라지지 않는 도심의 밤, 그 화려한 불빛 속 현실의 그늘과 그 속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 어둡고 우울한 이 이야기 속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위로와 따뜻함을 얻는 건 왜일까? 나는 그것을 작가 오영이만의 독특한 관찰력과 문체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한다. (처음 원고를 봤을 때도 이 점이 가장 눈에 들어왔다.) 우리 사회의 음지를 바라보는 따뜻한 관찰력과 이를 풀어내는 재기발랄한 문체는 다소 무거운 주제들도 쉬이 읽히도록 하며 무겁지만 가벼운, 혹은 가볍지만 무거운 오늘날 우리 시대의 이야기를 그려낸다.
“결국 인생이란 주방의 사소한 요리 하나로부터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_ 「독일산 삼중바닥 프라이팬」 중에서 (p.12)
오늘도 손에 쥔 핸드폰 속으로 세상의 온갖 이야기들이 쏟아진다. 엄지손가락으로 스크롤을 몇 번 내리다 핸드폰의 전원을 껐다. 그리고 주변을 돌아보니, 폐지를 가득 실은 리어카를 끌고 가는 할머니, 꺄르르 웃으며 쉼 없이 재잘거리는 여학생들, 부채로 휘휘 파리를 쫒는 과일가게 아저씨가 보인다. 크고 화려한 세상의 이야기 속에서 작고 소박한 사람들의 일상을 바라보는 것, 어쩌면 이것이 『독일산 삼중바닥 프라이팬』이 전하는 사소하지만 진짜 삶의 이야기가 아닐까?
『출판저널』 2016년 9월호
「<출판저널>이 선정한 이달의 책 기획노트」에 게재되었습니다.
독일산 삼중바닥 프라이팬 - 오영이 지음/산지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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