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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후기

배가 고픈 부산토박이 - 부산을 맛보다 두번째 이야기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6. 12. 17.

 

 

<아직까지도 부산을 제대로 맛보지 못한 부산토박이>

 

 

맛집 기자 박나리·박종호 저자의 『부산을 맛보다-두 번째 이야기』. 내가 알고 있는 집이 몇이나 나올까 생각하며 펼쳤던 책을 다 읽고 덮는 순간 궁금증을 자아냈다. ‘여태 내가 먹은 부산의 맛은 뭐였지?’
어느 순간부터 음식을 먹으러 가자하면 다들 인터넷부터 켠다. 손가락 몇 번 툭툭하면, 눈을 데구루루 굴리기도 전에 쏟아져 나오는 부산의 수많은 맛집. 그런 식으로 내가 찾아 가보았던 맛집은 부산의 맛이 아니었다.

 

 

“가게에는 ‘세상에서 두 번째로 맛있는 집’이라는 현수막이 걸렸다. 오용국 대표에게 그렇게 적어둔 이유를 물었다. 자식에게 먹이려고 음식을 만드는 어머니의 마음으로 만든 음식만큼 맛있는 것은 없다. 그런 마음으로 음식을 만들지만 각자의 집에 있는 어머니보다는 못하니 두 번째라고 적었다며 웃는다.” (150쪽)

 

어느 지역의 문화를 알고 싶으면 그 지역의 음식을 맛보라고 얘기한다. 음식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기도 하다. 알아가고 싶은 사람에게는 좋아하는 음식이 무엇인지 대개 제일 먼저 묻는다. 이래서 음식은 참 재미있다. 제각각 다른 입맛따라 만들어지는 여러 음식들이 존재하니까 말이다. 맛집으로 선정된 기준은 단순 저자의 취향대로일수도 있다.
하지만 책에서 나온 맛집 대표님들의 공통분모가 있었다. 음식에 대한 삶과 철학을 품고, 오랜 시간 맛있는 부산 음식 만들기에 공들여 왔다는 점이다. 부산의 맛을 담아낼 수 있는 맛집이 될 수 있는 비결은 바로, 음식에 대한 진심이었다.
음식은 살아 숨쉬는 것도 아니고, 먹어 사라지는 것일 뿐인데- 누군가의 진심을 담아내고 그 진심이 통하는 매개체가 된다. 그러고 보면 음식은 참 따뜻한 '사람' 같다.

 

“하 대표는 유치원 선생님이었단다. 적성과 잘 맞지 않아 어학연수를 떠난 캐나다에서 브런치를 만났다. 예전에 가르쳤던 유치원생이 단골이 되어 가게에 찾아온다니 세상 참 재미있지 않은가.” (253쪽)

다른 곳에서 보기 드문 닭 내장탕을 찾는 손님이 얼마나 있을까. “나이가 좀 있는 손님은 옛 추억을 떠올리며 온다. 아버지와 손잡고 왔던 아들은 아버지 생각에 오기도 한다고 대답했다. (72쪽)

 

브런치 카페 이안의 하 대표는 훌훌 털어버리고 떠난, 아무도 모르는 이방인의 도시에서 브런치를 만났고, 거기서 위로를 얻은 것이 아닐까?

음식이 주는 위로는 그 어떤 위로보다 따뜻하다고 항상 느낀다. 누군가의 힘이 된다는 것은 만큼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걸 해내는 것이 음식이다.
비 오는 날이면 엄마는 늘 굵은 멸치로 육수를 낸 물에 그대로 김치, 국수, 밥을 넣고 꽤 걸쭉한 김치국밥을 끓이신다. 그 김치국밥은 어딜 가도 같은 맛을 내는 가게가 없다. ‘엄마. 왜 항상 비가 내리면 김치국밥을 해?’, ‘비 오는 날마다 외할머니가 이 국밥을 끓여 줬어.’ 엄마의 외할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불러낸 음식은 곧 위로가 담긴 음식이 된다.
어쩌면 30년 뒤의 나도 추적추적 비 내리는 소리를 들으며 보글보글 김치국밥을 요리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저는 밀가루 음식을 굉장히 사랑합니다.)

 

“신맛쓴맛매운맛단맛짠맛을 이르러 오미(五味)라고 한다.” (95쪽)

 

미각은 재료, 맛, 분위기에 대해 낯가림이 있다. 이 중 맛은 5가지(신맛, 쓴맛, 매운맛, 단맛, 짠맛)로 단출하게 구성되어 있다. 맛은 제한적인 스펙트럼 안에서 끊임없이 미각혁명을 불러일으킨다.
음식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분자요리부터 뜨거운 맛과 차가운 맛이 함께 어울리는 요리까지 미각을 향한 도전을 멈추지 않는다. 음식에 대해 새로운 방식으로 접근하기를 계속해서 시도하는 것이다. 이렇듯 우리를 넉다운시키는 ‘맛’의 원펀치는 음식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시간과 노력들의 결과물일 것이니, 나는 행복하게 응급실에 실려 갈 수 있다. 그러고 정신이 들면 또 다른 맛집을 찾으러 다닐 것이다.

 

“Es ist gut(참 좋다)”

 

임종을 앞둔 칸트는 와인으로 목을 축였다. 그리고 그는 ‘Es ist gut’라는 말을 던지고 영면했다. 칸트가 남긴 마지막 말의 의미가 과연 와인이 맛있다고 한 것인지 혹은 그의 삶이 좋았다는 뜻이었는지를 두고 추측이 분분하다. 여기서 나는 감히 와인이 주는 맛이 참 좋다는 의미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미각은 우리에게 주어진 또 하나의 축복이다. 그리고 그 축복을 누릴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음식이다. 우리는 몸에 좋은 음식을 선택해내는 분별력뿐만 아니라 맛의 즐거움을 놓치지 않는 쾌락, 행복의 권리도 누려야 한다.
맛집을 서성이는 목적은 생존도 아니고 배불리 먹는 것만이 아니다. 맛집 속에 담긴 그 의미를 찾고 즐기는 것이 되어야 한다. 그러다보면 나도 모르게 배부른 소크라테스가 되어 ‘Es ist gut, Es ist gut.’라고 말할 수 있는 삶을 맞이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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