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톱 밑 가시와 같은 존재라
불리는 이방인들의 이야기 '쓰엉'>
매콩강에서 뱃사공으로 일하다가 한국으로 시집 온지 10년 된 베트남 여자 우엔 티 ‘쓰엉’. 쓰엉은 베트남을 벗어나면 무언가 다른 것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한국에서의 결혼생활은 시어머니, 폭행을 일삼는 남편 밑에서 숨 막히는 지옥과 다름없다.
소설의 또 다른 주인공 ‘장’과 ‘이령’. 장은 이령의 소설 집필을 위해 시골 가일리에 하얀 집을 하나 지어 생활하는데, 가정부 쓰엉은 그들에게 매우 매력적이고 아름다운 여자로 다가온다.
쓰엉이 무언가를 찾아 떠나 갈까봐 두려운 쓰엉의 남편 종태는 결국 하얀 집을 불태워버리고 만다.
출처: http://unryeong.blogspot.kr/2014/07/blog-post_9850.html
닮은 데라곤 하나도 없는 두 사람이 모두 여자라는 사실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통이 크고 겁이 없는데다가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엄살을 피우지 않는 억척스러운 엄마는 묵묵히 일만 하는 가축 같은 여자였다. (40쪽)
『쓰엉』을 보면서 가족이란 울타리 안에 갇힌 한국사회 여자들의 불편한 사실을 뼈저리게 느껴졌다. 지난 한국사회의 엄마들이 가족이라는 울타리에 갇혀 희생하는 모습을 많이 보고 자랐다. 가상으로나 실제로나 그것은 안타까운 사실이었다.
이령의 어머니는 남편 첩의 산후조리까지 해주는 가축 같은 여자라고 한다. 이령의 언니는 술독에 빠진 남편과 가난한 삶을 살고 있다. 쓰엉은 시어머니에게 고된 시집살이를 당하고 손자 타령까지 시달린다. 그녀들은 인내와 순종을 택한 삶을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이유인지 이령은 ‘가족’에 대해 딱히 관심도 없는 듯하다.
늙고 추해서 불쾌하고 혐오스러웠던 여자의 몸과 달리 이령의 소설은 세월이 흐른다고 해도 변하거나 훼손되지 않을 거였다. 언어의 아름다움에 비한다면 인간의 미란 건강이나 젊음, 사랑의 감정처럼 한시적이고 쉽게 마모되기 마련이며 돌이킬 수도 없었다. 육체는 소멸하는 물질이 그런 것처럼 변하지 않는 아름다움을 간직할 수 없었다. (55쪽)
베트남에 있을 때도, 가일리에 있을 때도 항상 쓰엉의 눈빛은 먼 곳을 향해있다.
쓰엉은 우물을 벗어나기 위해서 즉 도시에 대한 동경과 갈망으로 장과 이령에게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된다.
이령은 아버지의 첩인 ‘여자’의 아름다움에 대해 동경했고, 그 동경심으로 소설을 욕망하는 소설가이다.
이령이 갈망하는 아름다움은 필히 늙기 마련이기에 이령은 ‘언어’로 그 아름다움을 가두려 한다. 이런 이령은 낯선 이방인 쓰엉의 아름다움을 갈망하여 생기를 되찾기도 한다.
영원한 것, 어떤 높은 곳을 향한 동경과 갈망은 가장 인간적이고도 순수한 단어이다. 무언가를 갈구하고 바라는 것은 아무나 하지 못한다.
허망된 것이 아닌 보다 더 나은 것을 갈망하는 일은 어려운 일이다. 나는 지금 무엇을 갈망하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는 순간이었다.
지난 십여 년 동안 그랬던 것처럼 쓰엉은 한국에 살고 있는 외국인일 따름이었다. 박 씨 할머니처럼 머리카락이 하얗게 세고 팽팽했던 얼굴이 주름으로 자글자글해진다고 해도 그녀는 한국 사람이 될 수 없었다.(159쪽)
이방인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은 어떠할까.
쓰엉은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시집 온 이방인이며, 갑작스레 도시에서 가일리로 내려온 이령과 장은 산골마을사람들에게 이방인이다. 장과 남이 된 전부인 정하와 아들 지호는 장에게 이방인이다. 지호와 승태는 장애를 가지고서 사회와 단절된 이방인이다.
이방인에게 경계선을 그어본다면 이미 우리는 각자 하나씩의 경계선을 달고 다니고 있을 것이다.
내가 이방인이 되는 순간도 수없이 많다. 죄를 뒤집어쓰고 법정에서 앉아있는 쓰엉을 보면서 나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왜였을까. 자신의 방식으로 꿋꿋하게 살아가는 쓰엉은 쓸쓸하면서도 당차다.
어릴 때부터 한 민족, 한 가족이라는 단어를 수없이 많이 들었다. 소속감을 중요시하는 사회에서 소속된 곳이 없는 현실은 불안하고 슬플 것이다.
또한 낯섦에 대해 배타적인 태도는 불가피한 사람 심리일지도 모른다. 이방인에 대한 부정적인 고정관념을 변화시키는 일은 시간이 꽤 걸릴 것이다.
그래서 나는 쓰엉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하나 있다. 당신이 자신을 한국 사람이라고 하면, 한국 사람인 것이고 베트남 사람이라 말하면, 베트남 사람인 것이라고 말이다.
결국 이방인이라는 생각과 벽은 스스로가 만드는 것이다. 다른 이들의 생각과 말에 휘둘려 그곳에 존재한 자신을 부정하지 말아달라고, 『쓰엉』을 읽는 내내 말하고 싶었다.
쓰엉 - 서성란 지음/산지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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