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NOTE
[출판저널이 선정한 이달의 책-편집자 기획노트]
흑갈색 눈동자와 검은 피부의 베트남 여인 쓰엉
쓰엉을 둘러싼 어긋난 사랑과 욕망, 희망
서성란 소설집 『쓰엉』
산지니 윤은미 편집자
디자이너의 고심이 깊어졌다. 늘 그렇지만, 소설 표지는 디자이너나 편집자 모두에게 어려운 숙제다. 원고 작업을 하면서 나 역시 어떤 표지가 좋을지 고심해봤지만 답은 쓰엉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흑갈색 눈동자와 검은 피부의 베트남 여인 쓰엉. 이 매력적인 여인이 소설을 읽는 내내 눈앞에 아른거렸기 때문이다. 결국 디자이너에게 베트남 여인이 표지에 등장했으면 좋겠다고 했고, 디자이너는 베트남 여인 스무 명의 사진을 모아 그리는 열정을 보이며 마침내 쓰엉을 그렸다. 그렇게 탄생한 쓰엉이 지금의 표지 그림이다. 익명의 베트남 여인으로 그려진 쓰엉이 묘하게 소설의 인물과 닮았다. 문득 그 여인들 중 나를 스쳐 간 사람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했다.
젊고 건강한 베트남 여인 쓰엉은 국제결혼중개업소에서 만난 김종태와 결혼해서 한국 시골 마을에 살게 된다. 상상했던 결혼 생활과 달리, 시어머니와 갈등은 날이 갈수록 커지고, 남편은 시어머니와 자신의 사이에서 일어나는 불화를 모른 척한다. 시골 마을에 또 다른 이방인 소설가 이령과 문학평론가 장규완, 이들은 도시에서 이사 와 하얀집을 짓고 살지만 좀처럼 바깥출입을 하지 않는다. 장규완은 이령의 아름다움과 관능에 사로잡혀서 산골 마을에 하얀집을 짓고 그녀와 재혼을 한다.
그러나 상상하던 행복한 결혼생활과는 달리, 산골 마을 관목 숲에서 벙어리 사내를 피해 달아나다가 사고를 당해 뇌수술을 받고 언어와 기억을 잃어버린 이령을 간병하며 지내게 된다. 좁고 어두운 다락방에 스스로를 가두고 잃어버린 시간을 더듬던 이령은 쓰엉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밖으로 나오게 된다. 이령의 간병으로 지쳐 있던 장규완 역시 젊고 아름다운 쓰엉을 욕망하게 된다.
적막한 시골 마을에 나타난 이방인들, 그리고 쓰엉을 향한 장규완과 이령, 김종태와 벙어리 사내 등 서로 다른 시선과 사랑, 욕망이 그려진다. 작가가 그린 쓰엉은 순응하거나 도망치지 않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삶을 꾸려나가는 젊고 건강한 여인이다. 작가는 쓰엉이 단지 결혼을 위해 이주해온 이방인이 아니라 더 나은 삶을 꿈꾸는 평범한 여인임을 깨닫게 한다.
서성란 작가와 첫 만남이 있던 날. 작가는 이 원고를 오랫동안 매만졌다고 했다. 이 소설을 작업하면서 몇 년 동안 다듬고 품은 그 시간에 베인 작가의 정성과 노력을 글에서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세상 밖으로 나온 쓰엉을 소설을 읽은 독자가 조금 더 따뜻하게 맞이할 수 있기를 바란다.
『출판저널』 2017년 1월호
「<출판저널>이 선정한 이달의 책 기획노트」에 게재되었습니다.
쓰엉 - 서성란 지음/산지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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