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개봉한 영화 <군함도>가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군함도>는 일제강점기 당시, 군함도로 끌려 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인데요.

 

감동적이었다, 영화적 재미를 잘 챙긴 영화였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사실과 다른 픽션을 너무 많이 가미해서 보기 불편하다는 사람들도 많아 보입니다.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강제로 끌려 간 사람들은 물론, 누군가의 꼬임에 넘어가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그 지옥섬으로 향한 사람들도 분명히 있을 겁니다. 아마도 그 섬에는, 영화나 소설 따위로 일반화할 수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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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7월 25일, 서울 왕십리 CGV 영화관에서 <군함도> 시사회가 열렸습니다. 이 자리에는 부산에서 올라온 특별한 손님이 있었답니다. 바로 군함도 탄광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빨치산 장기수 출신의 구연철(86) 선생님이었습니다.

 

일제강점기, 수많은 조선 사람들이 죽어 간 그 섬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구연철 선생님의 생생한 이야기가 시사회가 끝난 뒤에 이어졌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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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함도서 매일같이 노동자가 매맞는 걸 봤지"  (경향신문 기사 전문)

 

(상략)

 

영화에선 경성(서울)에서 악단을 이끌던 ‘강옥’(황정민)이 어린 딸까지 데리고 탄광에 끌려간다. 구 선생의 설명은 달랐다. 전쟁 말기에 징용돼 온 노동자들은 “열여섯, 열일곱, 많아야 스물다섯 살의 젊은이들이었다”고 했다. “높이가 수십m 되는 승강탑으로 노동자들이 아침저녁 오르내렸어요. 곡괭이 하나씩 들고서.” 그는 6년 동안 아래위층에 방 한 칸씩 있는 목조건물에 살았고, 탄광마을의 학교에 다녔다. 섬을 에워싼 방파제 위에서 학생들은 매일 구보를 했다. 해방과 함께 14살에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하시마의 기억은 너무나 깊이 박혀 있었다. “그 섬은 동서로 320m, 남북으로 640m여서 넓이가 6.3ha밖에 안돼.” 

 

하시마는 나가사키(長崎) 남서쪽에 있다. 1890년 미쓰비시가 섬을 사들인 뒤 해저탄광 채굴기지로 삼고 주변을 매립해, 암벽을 둘러쳤다. 외관이 군함처럼 보인다 해서 생긴 별명이 군함도, 일본식으로는 군칸지마다. 1986년 공개된 사료에 따르면 1925~1945년 이 섬에서 숨진 노동자 1295명 중 조선인이 122명이었다. “배탈이 나거나 몸이 아파 일하러 못 간 노동자들은 구타를 당했어요.” 구 선생은 매일같이 노동자들이 얻어맞는 걸 봤다고 증언했다. 

 

(하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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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담긴 이 가슴 아픈 이야기는 2011년 4월(초판) 산지니 출판사에서 나온 『신불산: 빨치산 구연철 생애사』 속에 더 자세하게 담겨 있습니다.

 

 

어린 나이에 해방을 맞고, 해방 이후 사회의 부조리에 정면으로 맞섰던 구연철 선생님의 생애사가 담긴 『신불산』, 지금까지도 정의로운 사회와 한반도의 통일을 염원하는 선생님의 간절한 이야기가 담긴 책이랍니다.

 

 

 

신불산 - 10점
안재성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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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병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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