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지니 강수걸 대표님이 <오늘의 도서관>에 소개되었습니다. <오늘의 도서관>은 국립중앙도서관의 주요 사업과 주요 역할을 홍보하고 책과 국내외 도서관에 대한 최신 흐름을 소개하는 월간지입니다. 지역 소규모 출판사로써 겪는 고충과 대표님의 책에 대한 애정이 듬뿍 담긴 인터뷰니, 한번 읽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산지니’는 산 속에서 자라고 오랫동안 지낸 매로서 새 중에서
가장 높이 날며 오래 버티는 우리나라 전통 매를 뜻한다.
강수걸 대표는 당장 많이 팔리는 책을 만들기보다 10년 후에도 20년 후에도
가치 있는 책을 만들고자 한다.
이는 보다 멀리 보고 오래 버티며
좋은 책을 만들기 위한 산지니출판사만의 전략이다.
출판사는 출간도서목록으로 말한다
부산에서 산지니출판사를 설립한 배경과 과정은
부산대 법대를 졸업한 뒤 중공업 회사에서 10년 가까이 근무했다. 출판사를 설립한 이유는 단순하다. 워낙 책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부산 부전시립도서관에서, 대학 시절에는 학교 도서관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책에 대한 애정은 좋은 책을 만들고 싶은 욕심으로 이어졌다. 그래서 2003년 12월,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출판사를 차리기로 결심했다. 그 후로 1년간 부산과 서울을 오가며 출판 강의를 듣고 도서관에서 책을 보며 정리한 결과물이 지금의 산지니출판사다.
사람이 모여 사는 곳은 미디어가 발달하기 마련이다. 대부분의 지역에 지역 신문사와 방송사는 있는데, 지역을 대표하는 출판사는 찾기 어려웠다. 그래서 내가 나고 자란 부산에서 출판을 시작했다. 당시 정부가 지방분권을 강조하면서 앞으로는 지역의 출판사도 점차 나아질 거란 희망도 당시의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 산지니의 시작과 생존에 관한 좀 더 자세한 얘기는 2015년 출간한 도서 《지역에서 행복하게 출판하기》에서 확인 가능하다.
《반송 사람들》, 《영화처럼 재미있는 부산》 등 부산 필자의 부산 책을 많이 출간했다.
출판은 세상에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책에 담아 소개하는 일이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 함께 살아가는 지역의 인물에 대한 관심이 책으로 드러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유럽에서 출간되는 책에는 국가가 아닌 도시명이 반드시 표시된다. 영국 책이 아니라 런던 책으로 기억되는 거다. 1,000년이 넘는 유럽 출판 역사는 그렇게 지역과 결합해서 성장해왔다. 2005년 《반송 사람들》, 《영화처럼 재미있는 부산》을 첫 출간물로 내놓은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반송 사람들》은 재개발 지역 이주민을 돕는 NGO 단체의 이야기를 담았다. 《영화처럼 재미있는 부산》은 부산 필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부산의 이모저모를 소개한 책이다. 두 책 모두 서울 대형 출판사에서 다루지 않는 지역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필자를 선정하는 기준은 단순하다. 책에 담을 이야기를 가장 잘 할 수 있는 필자를 택한다. 자연스레 부산 필자와 작업을 많이 하게 됐지만 부산 필자를 고집하지는 않는다.
산지니 출간도서 중 지역 도서 비중은 어느 정도인가
지금까지 매년 50종씩 책을 만들었고 현재까지 출간한 도서 수는 약 450여 종이다. 출판사는 출간한 도서목록으로 말한다. 도서목록은 산지니출판사의 정체성을 보여준다. 부산 출판사로서 꾸준히 부산 콘텐츠를 꾸준히 책에 담았다. 한 때는 한 해 출간 도서 중 부산 관련 책 비중이 50% 정도를 차지했지만, 지금은 30%가량 된다. 지역 콘텐츠만으로는 출판사를 유지하기가 어렵다. 좋은 책, 필요한 책을 만드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팔리는 책을 만드는 것인데, 지역 콘텐츠만으로는 판매량을 담보할 수 없다. 우리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동시에 지역 출판사로 오래 살아남기 위해서 균형이 필요하다. 그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우리의 숙제다.
비수도권 출판사로서 겪는 어려움은 없나
우리나라 출판산업은 90%이상이 서울에 집중되어 있다. 지방에서 출판사를 하기가 쉽지 않은 환경이다. 유통 문제는 지역 출판사가 겪게 되는 가장 큰 어려움이다. 우리도 첫 해는 서점에서 주문이 들어올 때마다 직접 포장해서 택배로 보냈다. 타 지역에서 도서를 한 권만 주문하면 물류비 부담으로 책을 보내지 않게 되고, 결국 지역에서만 유통되는 책이 된다.
그래서 2006년부터 파주에 있는 도서총판과 물류계약을 맺었고, 지금까지 체계적으로 유통을 관리해왔다. 그 외에도 교보문고, 영풍문고 등 전국적인 체인망을 가진 서점과 직거래도 시작했다. 비용 부담이 적지 않지만 전국적으로 책을 판매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었다. ‘단 한권이라도 책을 원하는 곳이 있다면 전국 어디든 보낸다’라는 신념으로 투자를 결정했고, 지금은 전국 주요 서점에서 우리 책을 만나볼 수 있게 됐다.
▲ 2014년부터 내기 시작한 산지니 시인선
몸집은 작지만 보폭은 크고 넓게
외국에도 책을 수출하는가
앞서 언급했듯 지역의 이야기가 전국적으로 관심을 끌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오히려 강점이 되기도 한다. 2011년 6월에 발간한 《부산을 맛보다》는 부산 지역 음식과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담은 책으로, 산지니의 1호 저작권 수출도서다. 일본인 관광객이 많은 부산의 음식점을 소개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던 모양이다. 2012년 5월 21일 최종적으로 번역출간 계약을 완료했고, 2013년 2월 10일 일본에 정식으로 출간됐다.
이를 시작으로 《침팬지는 낚시꾼》이 태국으로, 《중국 민족주의와 홍콩 본토주의》가 홍콩으로 수출되는 쾌거를 이뤘다. 올해는 베트남에 장편소설 《쓰엉》을 수출할 계약도 체결했다. 외국 도서전에도 적극적으로 참가하고 영어로 된 도서목록을 만드는 등 지역과 국가를 넘어 우리 책을 알리려 노력하고 있다.
소규모로 출판사를 운영하며 느끼는 바가 있다면
대형 출판사 책은 서점에서 가장 좋은 자리를 차지하지만 소규모 출판사 책은 구석 자리도 차지하기 어렵다. 대형 출판사처럼 영업과 마케팅에 큰 비용을 지출할 여력이 안 된다. 원하는 작가를 섭외하기도 쉽지 않다. 유명 작가들에게는 선인세를 지급해야 하기 때문이다. 반면 소규모 출판사이기에 신속하게 책을 기획해 출간할 수 있다. 대형 출판사는 3,000부 이상 나가는 책이 아니면 출간이 어렵지만 우리는 판매 부수를 낮춰서 원하는 책을 만들 수 있다. 최근에는 각 지역의 소규모 출판사들이 ‘한국지역출판문화잡지연대’를 만들고 상생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작년부터는 각 지역을 돌며 한국지역도서전도 개최하고 있다. 올해는 지난 9월 수원에서 열렸고, 내년에는 고창에서 열릴 예정이다.
독자들과는 어떻게 소통하는가
책을 잘 만드는 것만큼 독자와 어떻게 소통하느냐가 출판인들에게 중요해졌다. 대대적으로 홍보하기 어려운 지역 출판사의 경우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통해 독자를 만나는 활동이 중요해졌다. 산지니는 전 직원이 온라인에서 적극적으로 블로그 활동을 하며 독자들과 소통하고 있다. 2009년 7월 구모룡 교수의 《감성과 윤리》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100회 가까이 독자와 저자가 만나는 오프라인 행사도 진행하고 있다. 올해 7월에는 지역 출판인, 독자, 책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과 함께 소통하는 작은 공간 ‘산지니×공간’을 개관했다. 지역 출판사들과 함께 전시, 강연 등을 진행하고, 독자들을 위한 독서 공간으로도 활용할 계획이다.
▲베트남으로 수출한 《쓰엉》을 비롯해 세계로 나아가는 책들
부산 지역 출판을 이끌어갈 산지니의 책들
준비 중이거나 진행 중인 출판물이 있나
2014년에 《금정산을 보냈다》를 시작으로 산지니 시인선을 내고 있다. 현재 10권이 출간됐고 앞으로도 좋은 시인들과 작업을 계속 이어갈 계획이다. 《부산을 맛보다》 시리즈에 이어 부산의 음식과 맛에 대해 조명하는 《부산탐식 프로젝트》, 부산대 사회학과 윤일성 교수님의 유고문집이 《도시는 정치다》도 올해 출간 예정이다. 그 밖에 기후 변화에 대한 담론을 담은 《2℃》라는 책을 시작으로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와 환경에 대해 함께 고민해 볼 수 있는 책들도 차근차근 만들어나가려 한다.
국립중앙도서관 혹은 전국 공공도서관에 하고 싶은 말은
도서관이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동시에 도서관 도서구입비도 늘어나서, 다양한 도서를 만나볼 수 있어야 한다. 도서관 진입 장벽을 낮추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 많은 책을 소장하는 것만큼, 책 읽는 문화를 만들어 가는 것도 도서관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해외 유명 관광지에 가면 그 중심에 도서관이 있다. 누구든 가볍게 찾아가 책도 보고 휴식도 취하고 문화도 경험할 수 있는 멋진 도서관이 각 지역의 랜드 마크가 되면 좋겠다. 한 사람을 만족시키는 책도, 저자가 만족하는 책도 나름의 의미를 가지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볼 수 있으면 더 좋지 않겠나. 도서관이 지역 출판사들의 책과 독자가 만날 수 있는 접점이 되어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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