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가을 부산에서 열린 '2010 독서문화축제' 를 찾아온 학생들. 독서 이력이 입시의 일부가 되면서 아이들에게 '책읽기'는 즐거움이 아니라 또다른 스트레스다.
초등학교 6학년 아들이 독후감 50개를 겨울방학 전에 독서교육종합지원시스템에 입력한다고 아침부터 부산을 떨고 있다. 중학교 3학년 딸은 이미 목표치를 달성하였다고 옆에서 자랑을 한다. 즐거워야 할 독서가 괴로운 숙제로 추락된 현실을 목격한 것이다. 출판사 대표로서 책읽기가 강제로 이루어지는 현실에 대해 원인을 따져보았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지난 6월 15일 ‘독서교육종합지원시스템’을 통해 학생들의 독서활동을 종합적으로 관리하고, 이를 입학사정관에게 제공함으로써 대학입시의 자료로 삼겠다고 발표하였다. 2010학년 2학기부터 시행되고 있는 ‘독서교육종합지원시스템’은 기왕에 존재하던 부산광역시교육청의 ‘독서교육지원시스템’과 학교도서관의 독서활동 운영시스템인 ‘학교도서관지원시스템’을 연계하고 기능을 통합한 것으로, 초등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무려 12년 동안 모든 학생들의 독서이력을 관리하겠다는 것이다.
어떻게 해서든 공교육 현장에서 독서교육을 강화하겠다는 선의야 나무랄 데가 없다. 그런데 도대체 가정과 학교에서 독서교육은 왜 황폐화되었는가. 교육의 목표가 전적으로 ‘입시’로 환원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독서 이력을 입시에 반영하겠다는 발상에서 전개되는 ‘책 읽기의 강요’와 본질적으로 ‘감시’일 수밖에 없는 ‘책 읽기의 관리’가 독서교육과 무슨 상관이 있는가. 아예 ‘독서교육종합방해시스템’이라고 이름 붙이는 게 더 낫다는 주장도 있다.
독서는 결코 계량화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닌, 어린이․청소년들의 또 다른 삶의 경험이다. 또한, 독서는 고도의 문화적인 활동이다. 그러기에 독서는 자발성과 자율성에 바탕을 두고 이루어져야 한다. 대학입시를 빌미로 반강제로 책을 읽게 만드는 것은 독서에 대한 흥미를 진작시키기는커녕 학생들을 책에서 멀어지게 만들 것이다. 더욱이 독서퀴즈나 독서감상문을 비롯한 강제된 독서인증의 방안들은 책을 읽으며 얻게 되는 경험과 느낌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파편화된 지식을 암기하게 만듦으로써 독서는 아이들에게 또 다른 부담이 되고 있다. 독서활동의 과정과 결과를 대학입시와 연결시키겠다는 발상, 그렇게라도 해서 책만 많이 읽히면 되는 것 아니냐는 발상은 참으로 독서의 본질과는 멀어도 한참 멀게만 느껴진다.
교과부가 이 시스템에 대한 발표를 하자마자 이에 발맞추어 개인의 독서 이력을 관리해주겠다는 사교육시장은 벌써부터 들썩거리고 있다. 이는 이 시스템이 또 다른 불평등을 조장하게 될 것임을 반증하는 현상이다. 독서활동은 문화자본의 소유와 그 정도에 따라 확연히 차별적인 양상을 띨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이미 출발선에서부터 다를 수밖에 없는 독서 환경과 그에 따른 능력 및 활동을 대학입시와 연결시키는 것은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불평등을 학력의 불평등으로 확대 재생산하는 것이다.
청소년들에게 독서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그러나 교과부의 독서지원시스템은 발상도 방법도 잘못됐다. 교과부는 독서지원시스템이 안고 있는 문제점을 심각하게 인식하고 지금이라도 정책을 전면 재검토해야 할 것이다. 강제적으로 책을 읽히기 위한 방법을 연구하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책을 읽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 것인가를 연구하는 것이 중요하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해주는 일이다. 또한 도서관을 늘리고, 충분한 도서를 구입하고, 전문적인 사서교사나 독서교사를 배치하여 아이들의 독서교육을 도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독서문화, 도서관문화, 출판문화는 한 사회의 문화적 성취를 가늠하는 중요한 지표다. 이는 생물의 종 다양성과 다를 바 없는 다양성을 근간으로 삼아야 한다. 다양한 책을 다양하게 읽고 다양하게 사고하는 것이 중요하다. 독서교육 또한 그러한 전제 아래서 계획하고 실행되어야 한다.
2010년 11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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