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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와의 만남 | 이벤트

경성대 중국대학 이종민 교수

by 아니카 2012. 3. 28.

 

오늘은 흔치 않은 번역서를 가지고 독자들을 만났습니다.

<진화와 윤리>라는 책은 19세기 영국의 과학사상가 토마스 헉슬리의 저작으로, 경성대 중국대학 이종민 교수가 이 책을 번역하셨습니다. 

이종민 교수께서는 이 책을 중국 사상가 엄복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다윈의 불도그라고까지 불리던 진화론자 토마스 헉슬리가 윤리의 문제를 제기해서 커다란 반향을 일으킨 이 책은 19세기에 영국에 유학하고 있던 중국 사상가 엄복에 의해서  <천연론>이라는 제목으로 중국에 소개됩니다. 그리고 그 책이 당대 중국 사회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게 되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루쉰도 그 책의 영향을 받았다고 하니까요. 하지만 엄복은 당시 중국사회에 이 책을 소개하면서 헉슬리가 제기했던 윤리의 문제보다는 진화의 입장에서 의역을 했습니다. 당대 중국사회 발전의 필요에 의해서였지요.

우연한 계기로 엄복의 <천연론> 번역팀에 합류하게 된 이종민 교수는 그런 엄복의 입장에 문제의식을 느꼈다고 하네요. 토마스 헉슬리가 당시 로마니즈 강연에서 이 내용을 가지고 강연을 할 당시 영국사회는 산업혁명 이후 과학기술과 자본의 발전으로 인해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과도한 노동착취가 이루어지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러한 사회적 배경하에서 헉슬리는 윤리의 문제를 제기하였던 것이지요. 이는 신자유주의 시대의 현대 한국사회에서 벌어지는 상황과 맥을 같이하는 측면이 있고, 따라서 원서를 제대로 다시 번역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고전입니다. 세계화와 양극화가 일상이 되어버린 작금의 시대에 약육강식의 논리에서 벗어나 진화와 윤리의 접점을 찾고 있으니 말입니다.

등단한 시인이시기도 한 이종민 교수가 시 두 편을 낭독해주셨습니다.

이문재 시인의 <식탁은 지구다>라는 시와 본인이 직접 쓰신 <진보는 품이다>라는 시입니다.

 

식탁은 지구다

이문재

중국서 자란 고추

미국 농부가 키운 콩

이란 땅에서 영근 석류

포르투갈에서 선적한 토마토

적도를 넘어온 호주산 쇠고기

식탁은 지구다

 

어머니 아버지

아직 젊으셨을 때

고추며 콩

석류와 토마토

모두 어디에서

나는 줄 알고 있었다

닭과 돼지도 앞마당서 잡았다

삼십여 년 전

우리집 둥근 밥상은

우리 마을이었다

 

이 음식 어디서 오셨는가

식탁 위에 문명의 전부가 올라오는 지금

나는 식구들과 기도 올리지 못한다

이 먹을거리들

누가 어디서 어떻게 키웠는지

누가 어디서 어떻게 만들었는지

누가 어디서 어떻게 보냈는지

도무지 알 수 없기 탓이다

 

뭇 생명들 올라와 있는 아침마다

문명 전부가 개입해 있는 식탁이다

 

식탁이 미래다

식탁에서 안심할 수 있다면

식탁에서 감사할 수 있다면

그날이 새날이다

그날부터 새날이다

 

진보는 품이다

이종민

진보는 고난 속에서

바다를 찾아가는 강물이다

강물은 흩어진 듯 이어져

세상 구불구불 돌아다니다

바다로 들어가는 하구에 이르러

흐르지 않는 강물은

생명을 품어 들이지 못하고

바다에 덥석 안기는 강물은

물살을 잉태하지 못한다

진보는

강물의 품이 커져

스스로 바다가 되는 것이다

 

중심도 주변도 자살로 내몰리는

궁핍한 삶의 시대

품이 좁은 진보는

강물 거슬러 부는 바람도

물결 가로막는 여울목도

제 속으로 감싸지 못하고

바다에 이르기도 전에

물살을 빼앗겨

절로 거친 바닥이 드러난다

바다는

큰 품이 없는

이성과 목소리의 강물을

진보라 부르지 않는다

 

진보는 품이다

세상 푹푹 빨아들여

바다의 활력 흐르게 하는 품

목마른 세상 구석구석

넉넉히 적셔주는 품

진보는

그 품들이 모여

바다가 되는 강물의 흐름이다

 

오늘따라 많은 미모의 여인들이 함께 자리해주시니 백년어서원이 환해졌습니다  ㅎㅎ

 

진화와 윤리 - 10점
토마스 헉슬리 지음, 이종민 옮김/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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