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거인들의 어깨 위에서 圖書館思想의 지평을 보다
책을 말하다_ 『도서관인물 평전』 이용재 지음|산지니|300쪽|20,000원
▲ 이용재 교수는 박봉석을 가리켜 ‘한국 도서관과 문헌정보학의 아버지’라고 부른다. 또한 엄대섭은 ‘우리나라 방방곡곡에 민중의 도서관을 심은 도서관운동가’이며, 김정근은 ‘한국적 문헌정보학과 독서치료의 토대를 구축한 실사구시적 도서관 사상가’라고 보고 있다.
인류 역사에서 도서관은 인류의 지적 역정과 함께 걸어왔다. ‘영혼의 쉼터’였던 고대 이집트의 도서관에서부터 ‘민중의 대학’인 근·현대 도서관에 이르기까지 도서관은 비밀스러운 밀실에서 민초의 광장으로 발전했다. 현대 세계에서 인류가 눈부신 문명사회를 만들게 된 것도 인류역사에서 각종 기록, 자료, 문헌, 매체를 수집·보존·정리·보급하는 데 중심역할을 해온 도서관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의 모래밭에서 도서관은 불태워지기도 하고 검열과 탄압을 받는 등 수난의 역사를 거쳤다.
그 와중에도 서양의 경우 여러 도서관 인물들이 도서관사상의 씨를 뿌렸고 민중의 각성을 거쳐 도서관을 근대 시민사회의 사회적 기관으로 정립하는 데 성공했다. 이러한 도서관 인물들의 삶과 실천에 대해 특히 우리 사회에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예컨대 철학, 법학, 수학, 과학 등 거의 모든 학문분야를 아우르며 이론을 개진한 라이프니츠(Gottfried Leibniz)가 자신의 통섭적인 지식을 담아내는 그릇으로서 도서관학을 정립했다는 사실은 인구에 회자되지 않는다. 또한 미국 건국의 기초를 닦은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이 일생토록 이룬 수많은 사회적 과업 중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투자하고 가장 자랑스러워 한 일이 도서관을 만들고 운영하는 일이었다는 것도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조선십진분류표 만든 박봉석, 토대를 닦다
한편, 우리나라는 근·현대의 굴곡진 역사를 겪으면서 도서관 또한 질곡의 뒤안길을 걸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식민지 상황에서 우리 민족을 위한 도서관 사상의 씨를 뿌리고 해방 이후 간난신고의 척박한 토양에서도 도서관을 일궈온 도서관 인물들이 있었다. 이러한 인물들 중에는 대표적으로 한국 도서관의 아버지 朴奉石이 있다. 미국에는 듀이십진분류표로 유명한 멜빌 듀이(Melvil Dewey)가 있다면, 한국에는 조선십진분류표를 만든 박봉석이 있다. 박봉석은 한국 도서관을 수호하고 도서관학의 토대를 닦았으며 사서들의 진정한 지도자였다.
그런데 이러한 인물들의 삶과 사상에 대해 한국 도서관계와 문헌정보학계에서도 제대로 조명돼 있지 않은 실정이다. 이에 필자는 현대 도서관과 문헌정보학의 역사적·사회적 기반을 다진 외국의 도서관인물 뿐만 아니라 그 동안 제대로 조명되지 않았던 국내 도서관인물들의 삶과 발자취를 추적하고 그 의미를 밝혀 이 책을 생산했다.
이 책은 ‘인물 평전’의 형식을 띠고 있다. 그 이유는 외국 인물 10명과 국내 인물 10명을 선정해 각 인물의 삶을 출생, 성장, 역경, 멘토와의 만남, 도서관운동, 사회적 성취, 학문적 정립, 발자취 등을 살펴보고 각 인물의 도서관사상과 실천을 조명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필자는 ‘圖書館思想’에 학문적 관심을 두고 있다. 그런데 이 분야에서 축적된 연구물은 미약한 편이어서 연구수행에 애로가 있다. 그래서 필자는 암중모색의 과정에서 인류 역사를 통해 도서관을 만들고 무엇인가 실천하고 어떠한 메시지와 원리를 남긴 인물들의 삶을 살펴봄으로써 도서관사상의 기둥을 만져보고자 했다. 말하자면 필자는 이러한 탐구과정에서 우리보다 앞서 걸어간 거인들의 어깨 위에서 역사적 지평을 보고 그들의 사회적 실천을 살펴봄으로써 도서관사상의 고갱이를 건져 올리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도서관인물 평전』 출간 이후의 후속작업은 각 도서관사상가(library thinker)의 삶과 실천을 더욱 깊숙이 살펴보고 관련 전문가와 종사자는 물론 일반인들이 알기 쉽게 풀어내는 일이 될 것이다.
이 책에서 다루는 도서관인물들은 다음과 같다. 외국 인물로는 가브리엘 노데(Gabriel Naude), 고트프리트 라이프니츠(Gottfried Wilhelm von Leibniz), 벤자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 멜빌 듀이(Melvil Dewey), 모리스 꾸랑(Maurice Courant), 피어스 버틀러(Lee Pierce Butler), 시야리 랑가나단(Shiyali Ramamrita Ranganathan), 두딩요(杜定友), 제시 세라(Jesse H. Shera), 마이클 고먼(Michael Gorman)이 있다. 국내 인물로는 兪吉濬, 尹益善, 李範昇, 朴奉石, 李鳳順, 嚴大燮, 李寅杓, 金世翊, 朴炳善, 金正根이 있다.
필자는 도서관인물들을 선정할 때 주로 근·현대 인물에 중점을 두었다. 왜냐하면 고대와 중세의 인물들보다는 근·현대 인물들이 한국의 독자들에게 더욱 다가갈 수 있고 직접적인 메시지를 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한 도서관인물들 중에서 남이 인정하건 하지 않건 간에 무엇인가를 강렬하게 주장하고 추진하며 현장과 학문에서 운동을 펼친 인물들을 조명했다. 그런데 이러한 인물들 중에는 필자 나름의 선정이유에 부합하지 않는 인물들도 있다. 노데와 라이프니츠는 근대(18세기 이후)가 아닌 근세(17~18세기)에 속한다. 또한 유길준은 도서관사상가라기보다 계몽사상가다.
아울러 이 책은 역사적 연구의 결과로 생산된 것이기에, 관련 연구자의 각기 다른 관점과 추가 자료의 대조에 따라 비판과 논란이 있을 수 있다. 필자는 또한 이러한 과정을 통해 우리 사회에서 도서관사상가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기를 기대한다.
여전히 인식의 사각지대에 놓인 도서관
우리 사회에서 도서관은 여전히 사람들의 인식지도에서 벗어난 사각지대에 있다. 광복 이후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우리 사회 곳곳에 서구 선진국과 일본이 가진 차원의 도서관들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지역주민 남녀노소가 걸어서 갈 수 있는 곳에 공공도서관이 존재하지 않으며, 전문적인 사서가 충분히 배치돼 있지 않아 양질의 장서가 지속적으로 개발되지 못하고 지역주민에게 진정한 정보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도서관을 통해 세상을 밝힌 인물들에 대한 인식과 토론이 우리 사회에서 확산되고 선진국 수준의 도서관문화가 만개하기를 소망한다. 이를 위해 학계에서도 이러한 차원의 연구작업을 심화하고 공동작업을 할 필요가 있으며, 그 연구결과를 일반인들을 위해 쉽게 풀어내는 작업을 할 필요가 있다.
이용재 부산대·문헌정보학과
필자는 부산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2005년에서 2009년까지 원북원부산(One Book One Busan) 운영위원장을 연임했다. 주요 저서로는 『주제화를 통해 본 한국 대학도서관의 현단계』가 있다.
2013년 3월 25일 월 교수신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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