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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턴일기

2013 동아대 석당학술원 인문과학연구소 콜로키엄-21세기 급진 정치철학의 사유들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3. 10. 8.

 

안녕하세요! 용달달입니다*_* 오늘은 태풍이 부산을 훅 치고 간다죠... 속된 말이지만 마치 어깨빵을 치고 가는 느낌이네요. 아침부터 비가 주룩주룩 내리니, 기분도 주룩주룩 내려요ㅠㅠ 그래도!! 내일은 한글날~ 한글이 생일을 맞이하여 생일 축하하는 날에요! 한글 생일날 태풍이 안 오는 게 어디에요~ 힘내 봅시다! 그나저나 생일 전날 비가 오다니... 한글이 좀 불쌍하네요.

이번엔 콜로키엄을 다녀왔어요. 10월 매주 금요일에 <21세기 급진 정치철학의 사유들>이라는 이름으로 동아대학교에서 콜로키엄이 열리고 있어요. 저는 10월 첫째 주인 4, 즉 첫 번째 강연에 참여했습니다. 콜로키엄이라 하면 세미나와 비슷한 느낌이지만, 그 주제의 뛰어난 전문가가 참여한 사람들의 의견 중 잘못된 것은 바로잡아주고 보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보충해 준다는 점이 다르답니다~

 

 사진이 오늘 날씨처럼 우중충하네요. 왜 이렇게 찍혔는지는 저도 의문입니다ㅜㅜ 강의실은 어둡지 않았어요. 저는 플레카드에 적혀있는 철학자 중 바디우의 정치철학에 대해 들었습니다. 사실 정치철학이라 하면 뭔가 꺼려지고 낯설잖아요. 그리고 정치 이야기나 이데올로기 이야기는 아무리 친한 친구나 사랑하는 사람이라 해도 자칫 잘못하면 싸울 수도 있죠. 하지만 바디우 선생님의 정치철학은 재미있었습니다! 정말이에요! 저는 공산주의는 아예 실현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내용들이 참 흥미로웠습니다. 제 의견은 맨 마지막에 적도록 할게요!

 

강연 전, 이번 강연을 해 주실 서용순 선생님을 몰래 조심스레 부끄럼 돋으며 살짝 찍었어요.


뭔가 피곤해 보이시지 않나요? 선생님께서는 알랭 바디우 선생님에 관한 행사들을 왔다 갔다 하시다 보니 피로가 많이 쌓였다고 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와 주셔서 어찌나 감사한지... 선생님은 바디우 선생님의 제자이시기도 해요. 이번에 알랭 바디우 선생님께서 한국에 오셨었으니 제자이신 서용순 선생님은 얼마나 바쁘셨을지 눈에 선합니다ㅜㅜ 바디우 선생님의 제자라니, 대단하시죠?

콜로키엄은 90분 정도 서용순 선생님께서 강연을 하시고 나머지 시간은 자유 토론을 하는 걸로 진행되었습니다.

 

사회는 허정 교수님께서 맡으셨어요. 허정 교수님은 제가 참 좋아하는 교수님이세요. 학교에서 맡으시는 게 너무 많으셔서 힘들어 보일 때가 많아요ㅜㅜ 제가 다문화 가정 멘토링을 했을 때도, 지금하고 있는 인턴십을 신청할 때도 교수님께서 맡고 계셨는데 역시나 이 행사에서도 사회를 맡으시고... 마음 한구석이 애잔하네요...  


이분은 인문과학연구소장님이세요. 녹음파일을 첨부하고 싶을 만큼 목소리가 진!!!!!!!!!! 좋으세요!!! 마치 이병준 배우님의 목소리와 비슷하답니다! 목소리를 처음 듣고 우와!! 목소리!! 우왕 우왕 우왕!!’을 속으로만 외쳤어요. 소장님께서는 먼저 먼 길 오신 서용순 선성님께 감사를 드리고, 새로운 발전을 모색하는 좋은 자리가 되길 바란다고 하셨어요.

 

본격적으로 서용순 교수님의 강연에 대해 말씀 드릴게요. 강연은 <바디우의 공산주의가설’ - 진리와 주체의 정치>라는 논문으로 진행 되었어요. 세미나실에 들어 왔을 때 앞에서 이 논문과 함께 콜로키엄 계획서, 연구자 생활정보지인 <바람의 연구자>를 처음에 나눠 주셨어요. 논문이 인터넷상에 올라와 있는지 모르겠네요.

먼저 선생님께서는 정치철학은 모호한 것이라고 하시며 강연을 시작하셨습니다. 철학은 2500년에 달하는 세월동안 유지해 온 오래된 학문이랍니다. 그 세월동안 철학 안에 있던 여러 학문들이 따로 떨어져 나가기도 했고요. 정말 나이 들어버린 학문이에요.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길, 그러다보니 19세기부터 철학에 대해 문제 제기는 많이 있어왔다고 합니다. 맑스는 더 이상 세계를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변화 시켜야 한다고 했고, 니체는 자신에 와서 모든 철학은 끝났다고 했다고 해요. 하이데거의 경우에는 형이상학을 전반에 걸쳐서 문제 제기하고 형이상학의 종말을 말하기도 했습니다. 산지니의 <한나 아렌트와 마틴 하이데거>를 거의 다 읽은 상태여서 그런지 하이데거라는 이름이 얼마나 반갑던지요~

 

19세기의 철학이 그러하다면 20세기의 철학은 어떨까요? 하이데거의 말대로 더 이상 형이상학을 가지고는 우리의 존재에 대해 논할 수 없고 시적 언어로 인해 우리의 존재에 대해 다시 이야기 할 수 있다고 합니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는 라깡의 말을 생각하게 하네요. 그렇다면 언어라는 것은 무엇을 이야기 하는가. 그에 대해서는 언어란, 전 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토대라고 하셨습니다. 모든 사회의 근거가 된다는 것이죠. 세계를 지배하는 것은 상징적 질서이고 상징적 질서라는 것은 언어라고 하셨습니다. 언어로 표현되지 않은 건 없다고 볼 수 있는 거죠. 즉 정확하게 이야기 할 수 없는 건 알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선생님께서는 현대철학이 언어의 문제와 함께 간다고 하셨습니다. 언어는 모든 사회의 토대라고 하셨죠. 언어의 담론으로 각 시대를 추적할 수 있어서 고고학적 담론이라는 것은 사실상 담론체계에 결부가 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데리다의 경우에는 말의 질서를 근본적 문제로 삼고 언어는 약이자 독이라고 했습니다. 철학자가 말하려는 것은 이 텍스트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인데 플라톤의 경우 대화로 되어 있기 때문에 데리다가 비판을 했다고 해요. 말하는 언어와 글쓰기의 언어는 다르다고 하시면서 글쓰기의 언어는 확정하면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이는 데리다의 동시성과 연관이 되어 있어요. 여태 의미의 확정을 약자 택일로 해왔지만 사실 동시성이 있다는 것이죠. A or B가 아니라 A and B가 되겠네요. 예를 들어 살아있으면서도 죽어있다.’이런 말을 할 수 있는데 이것도 동시성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선생님께서는 이렇게 현대 철학을 간략히 훑고 바디우 선생님의 정치 철학에 대해 강연 하셨습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 하신 첫 마디가 과연 바디우에게 정치 철학이 있는가.’였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바디우 선생님의 정치 철학은 지극히 계몽적이고 급진적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바디우에게 정치란 해방이다.’라고 하셨고 그것을 해방의 정치라 말하셨습니다. 그런데 선생님 말씀으로는 사실 해방의 정치는 이전부터 보편적이었다고 하네요. 그래서 사람들은 그거 맑스 아니야?’라고도 하는데 바디우 선생님의 정치 철학은 더욱 폭이 넓다고 합니다. 바디우 선생님의 정치 철학을 보려면 우선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을 짚고 넘어가야 해요. 바디우 선생님께서는 모든 가능한 것의 체제는 불가능해졌다. 라고 하시며 가능한 것은 자율적이지 않고 일종의 법칙들이나 담론들처럼 지배 질서에 의해 정해진 것이라 하셨습니다. 법칙성은 혼란을 도래하기 때문에 그 외의 것을 배제하는데 그것이 불가능을 만드는 게 아닐까요? 아무튼 교수님께서는 바디우 선생님은 가능한 것의 체제에서 벗어나서 불가능한 것들에서 가능성을 찾는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정치 제도화된 철학을 동요시키는 것이고 기존의 것과는 다른 새로운 것이라더군요. 바디우 선생님은 폭발적인 것에서 출현하는 진리가 세계를 바꿀 수 있다고 한다고 해요. 우리나라의 경우를 예로 들면 동학농민 운동을 들 수 있겠네요. 기존의 정치성 밖에서 시작한 정치적 사건이니까요.

선생님께서는 진리를 생산하는 네 가지 절차를 ‘예술, 철학과 결부된 과학, 사랑, 정치’라고 하셨어요. 종교의 경우에는 중세시대에는 포함 되었지만 지금의 종교는 이미 제도화 되었기에 철학의 영역에서 빠지게 되었다고 해요. 그런데 이 네 가지는 서로 결부하거나 관계 맺지 않는다고 해요. 그렇게 되면 하나가 다른 것을 지배하려 할 수도 있기 때문이죠. 다른 이유도 있었는데 왜 기억이 나질 않을까요ㅠㅠ 미흡한 저의 기억력... 아시는 분은 댓글 올려 주세요! 보충 할게요!

아무튼 이 넷 중에서 정치가 가진 특이성은 집단적이라는 것이에요.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따지고 보면 무한대를 대상으로 한다 할 수 있다고 하셨어요. 선생님의 논문을 빌리자면, 진리는 기존의 세계, 다시 말해 기존의 법칙이 지배하는 세계의 파괴로 나아기기 때문에 여러 가지 난관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고 해요. 그런데 정치의 경우에는 이러한 과정이 더욱 어려운데 이유는 새로운 혁명적 정치가 문제 삼는 것이 항상 지배-피지배 관계의 전복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관계의 전복은 정치적 진리를 만들어 내는 사건이 대부분 심각하고 폭력적인 대립을 수반하게 한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법의 경계를 파괴하다보니 혁명적 정치는 범죄행위로 묘사되기도 한다고 해요. 사실 이 점은 처음에 가능한 체제에서 벗어난다고 했을 때 제가 생각한 것이에요. 그렇게 되면 범죄가 되지 않나? 하고 말이죠. 그거에 대해 교수님은 ‘기존의 지배질서에 비추어 불법적이다. 그렇기에 국가는 옛 질서를 지키고자 새로운 정치적 실천을 차단하고, 그것을 불법적인 것으로 낙인찍음으로써 사람들이 그 진리에 대해 생각하면서 그 정치를 실질적인 지평에 접근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하는 것이다.’라고 하셨어요. 이건 교수님의 논문을 따 온 것입니다. 보면서 정말 급진적이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길 불가능한 문제가 가능해진 게 사건인데 여기서 요점이 되는 시작점이 나타난대요. 그것은 새로운 주체성인데요, 새로운 주체성이 생기면 이 주체성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사람도 생기는데 이 사람이 새로운 주체라고 해요. 그런데 바디우 선생님은 주체의 인간화를 좋아하지 않으신다고 해요. 바디우 선생님은 우리에게 주체성을 씌우는 것이라고 말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 주체가 중요하다 하신 이유가 여기 있었어요. 앞서 해방의 정치는 이전부터 보편적이어서 맑스가 아니냐는 물음도 나온다고 했는데 그에 대한 해답이 여기 있어요. 헤겔과 맑스의 경우에는 주체가 부정에 투쟁을 하는데 반해 바디우의 경우에는 긍정으로서의 주체가 있어야 부정에 투쟁을 할 수 있다고 하면서 어떤 사건에 대한 긍정과 확신이 기반이 된다고 해요. 따라서 긍정이 먼저라고 합니다. 이런 점이 다른 점이네요.

사랑은 내 원칙대로 밀고 나가면 되는 것에서 바뀌어서 하나가 아닌 둘이 된 것이라고 하시면서 처음엔 다른 점을 배려하지만 나중에는 서로 노력하고 이것이 나에게 변화를 준다고 하셨어요. 완벽히 서로 같아질 수 없지만 서로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거죠. 정치도 이렇듯이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해요. 바디우 선생님께서 ‘노력하는 것과 노력하지 않는 것은 정말 차이가 많다.’라고 하신 말씀을 서용순 선생님께서 감명 깊이 받아들이신 것 같아요.

그러면서 하신 말씀이 불가능 한 것과 가능한 것을 확정하면 안 되고 보편을 확정해서도 안 된다고 하셨어요. 그렇게 되면 보편적인 것이 다른 것을 탄압하게 된다고 해요. 왜냐하면 비진리에 대한 탄압이 되기 때문이죠. 진리는 소진되지 않고 항상 열려 있다고 해요. 일종의 무한집합인 것 같아요. 선생님께서는 따라서 자유와 평등, 정의라는 정치적 진리는 더욱 더 넓어져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바디우 선생님께서 오늘날 세계와 민주주의에서 주목한 점은 노동의 이동인 것 같아요. 서용순 선생님의 논문을 보면 바디우 선생님은 ‘하나의 세계’를 바라는데 지금 세계는 사회주의 국가의 몰락과 함께 마치 하나가 된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물질적인 자유만 확립한 것이라고 합니다. 어떤 물건이나 돈은 자유롭게 이동하는데 비해 자유로운 노동의 이동은 보장하지 못하고 있다는 거죠. 예를 들어 한국 사회에도 외국인 노동자 분들이 일을 하러 오시면 이질적인 세계에서 왔기 때문에 야만인 취급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어요. 이는 세계가 아직 하나가 되지 못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어요. 그러면서 선생님께서는 대상과 기호의 통일에서 육체적 통일으로 나아야가 한다고 하셨어요. 인간 주체의 통일을 바라시는 것 같아요.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길, 하나의 세계를 긍정하기 위해서는 ‘차이’를 인정해야 하는데 차이가 없어지는 게 아니라 그 차이마저 개의치 않을 때 하나의 세계가 되는 것이라 합니다. 모두가 같아지는 것이 아니라 차이가 존재하고 그 차이를 공유해야 한다는 것이죠. 저는 ‘차이에 대한 무관심’이라는 말이 참 와 닿았어요. 논문을 밀리자면, 모든 이에게 같아질 것을 강요하는 닫힌 세계를 부정하면서 세계를 모두의 것으로 만드는 것으로 상징적 질서에 의해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지는 것을 끝까지 견지하는 정치적 선언인 것이라 해요. 해방의 정치가 가능해지는 것은 이러한 불가능한 지점을 견지하는 것부터 출발한다고 합니다. 바디우 선생님에게 불가능이란 금지된 꿈이자 진리라고 합니다. 


이 강연을 듣고 제가 느낀 바는 이러해요. 사랑에 평등이 가능한 이유는 둘이서 하는 것이기에 가능하다고 생각 됩니다. 차이를 무관심히 볼 수 있는 이유도 이것이겠지요. 정치는 집단적이기 때문에 차이를 무관심하고 하나 된 세계를 만들기 힘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집단적이기 때문에 차이가 너무 많아지는 것 같아요. 불가능한 것에서도 가능성을 가진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있을 것이라 생각해요. 그렇기에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은 교집합이라 느껴집니다. 따라서 가능성을 가진 불가능 중 긍정적인 것을 가능한 것으로 바꾸며 좀 더 나은 세상으로 만드려고 노력하는 것이지 완벽한 하나의 세계를 만드는 것은 가능성이 없는 불가능이지 않을까요. 사실 저에게 하나의 세상은 이데아적인 것으로 느껴져서 서용순 선생님께 물어보니 비슷하다고 하셨어요. 저는 공산주의라는 이념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닌데 그것은 너무 유토피아적이라서 이룰 수 없다고 생각해요. 그것을 시도하다보면 북한의 경우처럼 공산주의도 뭣도 아닌 이상한 체제가 되지 않나 싶어요. 물론 공산주의 이념 중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좋은 것들은 해보려 노력하는 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공산주의 이념을 모두 받아들이는 건 정말 가능성이 없는 불가능이지 않나 생각합니다. 사실 마지막에 공산주의 이념에 대해서도 강연 하셨거든요. 그래서 이런 생각들이 들었습니다~ 그냥 정말 제 생각일 뿐이에요!


마지막으로 허정 교수님께서 질문 하신 내용이 꽤 유익해서 올려 봅니다! 강연을 들으러 오신 분들은 바디우 초심자가 대부분 이었어요. 그래서 허정 교수님께서 바디우 초심자에게 추천하는 책은 어떤 것이 있는지 질문 하셨어요. 답변은 이러합니다.

먼저 가장 중요한 책은 <<존재와 사건>>이라는 책인데 수학을 가지고 이야기 하기 때문에 수학 싫어하는 사람은 힘들 거라고 하시네요~

그리고 바디우의 핵심이 되기도 하고 초심자에게 좋은 책이기도 한 것은 <<윤리학>>과 <<사랑 예찬>>을 추천 하셨어요.

그리고 심화를 하시고 싶은 분은 <<철학을 위한 선언>>을 추천 하셨어요. 이 책은 존재와 사건을 쓴 이유를 철학적 배경으로 적은 책이라고 해요. 그런데 내년 초 쯤에 영국의 뛰어난 수재가 바디우 해설서를 낸다고 하네요. 제목은 <<진리를 향한 주체>>가 될 것 같다고 해요.

그리고 서용순 선생님께서 번역하신 <<철학과 사건>>은 인터뷰집이라서 가독성이 높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책은 검색해 봐도 나오지 않네요... 선생님의 번역서 중 아직 출판되지 않은 책이 한 권 있다고 하는데 혹시 이 책일까요?

 

이번에는 참 재미없게 글을 쓴 것 같아서 아쉽지만 열심히 썼어요ㅠㅠ

콜로키엄에 참가하시고 싶으신 분들 있으신가요?! 아직 콜로키엄은 세 번이나 남았답니다! 참여하시고 싶으신 분들을 위해 사진 투척!



저번에 이어 이번에도 글이 길어졌네요... 사실 더 길어진 것 같아요;; 사진도 별로 없고... 강연 전 어색함을 깨는 시간 까지만 사진을 찍고 강연 중에는 사진을 찍지 않았거든요~ 그래도 끝까지 읽어주신 분들께 정말 감사하단 말하고 싶어요~ 끝까지 읽어주셔서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이상, 용달달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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