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용달달입니다*_* 오랜만에 글을 올리네요. 이번엔 『한나 아렌트와 마틴 하이데거』를 읽고 쓰는 글이랍니다. 사실 책은 일찍 받았었어요... 과제와 시험에 치이다보니 이제야 글을 쓰게 되네요. 미흡한 글이지만 열심히 써봅니다!!
철학을 조금이라도 공부했다면 한나 아렌트와 마틴 하이데거의 이름은 한번쯤 들어보았을 것이다. 나는 철학을 공부하진 않았지만 알랭 바디우 콜로키엄에서도 하이데거의 이름을 들을 수 있었고, 비평론 강의를 들을 때면 한나 아렌트와 마틴 하이데거의 이름은 지나가듯 이라도 간간히 들을 수 있었다. 이렇듯 그들은 나에게 그리 낯선 사람이 아니었지만, 이 책이 말하는 그들의 사랑은 조금 낯설게 다가왔다.
“20세기를 대표하는 정치 철학자” 한나 아렌트와 “20세기를 대표하는 독일 철학자” 마틴 하이데거의 만남이라니, 사실 책 제목부터 마음을 사로잡았었다. 전공이 아니다보니 깊게 알지는 못한 까닭에 두 사람이 살아 생전 만났었다는 것조차 알지 못했는데, 두 사람이 연인이었다니. 아주 놀라웠다. 그런데 이들이 공유했던 것이 ‘내가 아는 사랑이 맞나?’하는 의문이 들만큼 이들의 사랑은 평범하지 않았다. 제목에 ‘사랑의 종류’를 적어 두었지만, 책을 다 읽은 지금도 정확히는 잘 모르겠다. 어쩌면 그건 이 둘만이 알고 있는 것인지도.
이 둘이 연인이 되는 과정은 아주 자연스러웠고 헤어지는 과정마저도 자연스러웠지만 헤어진 이후는 -설령 그들은 자연스러웠을지언정-그렇지 않았다. 독자로서 바라본 그들의 관계는 굉장히 불안해 보였다. 책을 읽는 내내 ‘착하고 헌신적인 아렌트와 그런 아렌트를 이용하려는 나쁜 남자 하이데거’로 자꾸 느껴졌다. 그러다보니 당연히 그들의 관계는 불안해 보였다. 아주 얇은 끈으로 불안하게 이어져 있는 느낌이었다.
책을 읽으면 작가의 아렌트에 대한 깊은 애정과 존경이 느껴진다. 그에 반해 작가는 하이데거를 나쁜 남자로 그려 놓았다. 그렇다고 하이데거를 비난한 것은 아니다. ‘못된 남자’가 아닌 ‘나쁜 남자’로 그렸다. 나쁜 남자는 필히 매력이 넘치는 법. 작가는 하이데거의 매력 또한 잘 적어 놓았다. 작가의 아렌트에 대한 애정이 깊어서 하이데거를 조금 소홀히 한 것 같아 아쉽지만, 하이데거 또한 꾸준히 챙겨주고 있는 느낌이라 너무 아렌트 위주의 책은 아니다.
하이데거는 그 특유의 매력적인 강의로 많은 학생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은 교수이다. 아렌트 또한 하이데거에 대한 존경에서부터 그녀의 사랑이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당시에는 교권을 잡은 사람의 권위는 아주 높았다고 한다. 그러니 그녀는 하이데거에게 신비로움마저 느끼지 않았을까.
그들이 헤어진 후, 하이데거는 필요에 의해 아렌트를 다시 만났고 아렌트는 그저 반가워했다. 이때 그들의 대화를 보고 아렌트가 얼마나 이해심이 높은 여자인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어렴풋이 그녀가 자신의 개인적인 감정으로만 상대를 보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했는데, 이는 유대인 대량 학살로 유명한 아이히만과 만났을 때를 보고 확신으로 굳어졌다-비록 이 사건으로 인해 수많은 유대인들에게 비난을 받아야 했지만-.
아렌트는 후에 결혼을 했고-하이데거는 이미 결혼을 했었다-, 아렌트나 하이데거나 각자 배우자가 있었지만 그들은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을 듯 그 관계를 이어갔다. 하지만 이때 그들의 관계가 우리가 생각하는 연인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는 책을 읽을수록 더욱 강해졌다. 아렌트는 하이데거를 존경하는 선생님으로, 하이데거는 아렌트를 자랑스러운 학생으로 바라보면서 서로 도움을 주는 것처럼 보였다. 그 감정이 다른 사제지간보다 좀 더 애착이 깊었던 것 같지만 연인의 느낌은 들지 않았다. 당연하지만 헤어지기 전 연인 관계로 있었던 때에는 연인이라는 느낌이 들었었다.
이 둘의 관계는 애착이 있는 선생님을, 애착이 있는 학생을 돕는 관계로 느껴졌다. 하이데거가 의도했는지는 몰라도 그는 아렌트에게, 그녀의 철학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그만큼 하이데거는 영향력 있는 사람이었고, 앞서 말했듯이 많은 학생들의 존경을 받은 인물이었기에 아렌트의 남편인 블뤼허는 아렌트가 하이데거를 도울 수 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하지만 하이데거의 아내는 아렌트에게 어느 정도 질투 느꼈던 것 같다. 그렇다고 불륜 이야기로 치부하진 말자. 이들의 이야기는 어떻게 정의내리기 어려운 그런 감정을 주제로 하고 있다. 어떤 이야기에서는 사랑과 존경의 아슬아슬한 줄타기가 보이기도 한다. 어떨 땐 사랑의 감정을 이야기하고, 어떨 땐 존경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내가 이 둘의 관계-헤어짐 이후의 관계-를 사랑으로 보지 않은 이유는 여기에 있었다.
“아렌트는 하이데거를 없이 살아갈 수는 있었겠지만 블뤼허 없이는 살아갈 수 없었을 것이다. 아렌트는 블뤼허를 신뢰한 만큼 하이데거를 불신했고, 그녀에게 있어서 신뢰란, 진정한 결합의 토대였다.”, “블뤼허는 그런 아렌트의 유일한 안식처였다. … 하이데거가 겪는 시련 때문에 그녀의 괴로움이 깊어질수록 그녀는 남편이 제공하는 안정감을 더욱 그리워했다.” 등의 대목들은 그녀가 배우자로서 사랑한 사람은 하이데거가 아닌 블뤼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하이데거와 블뤼허 모두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했지만 그 종류와 느낌은 내게 매우 다르게 다가왔다. 블뤼허에게의 사랑의 말은 사랑의 설렘과 그 감정의 거절을 두려워하는 느낌이 든 반면, 하이데거에게의 사랑의 말은 자신의 독립성마저 포기하고 헌신하는, 자신보다 높은 사람에게의 사랑으로 느껴졌다. 이 글에서 하이데거와 아렌트의 연애가 끝나지 않았었다고 하지만 그 연애는 흔히 말하는 육체적, 정신적 연애와는 다른 것으로 보인다. 과연 그 것을 연애라고 말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이 시기에 아렌트가 한 정말 연애다운 연애는 블뤼허와 하지 않았나 생각이 들었다. 아렌트가 블뤼허에게 1936년 11월 26일에 보낸 편지를 보고 그녀는 블뤼허를 정말 놓치고 싶지 않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블뤼허의 태도를 보고 그가 아렌트를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는지 느낄 수 있었다. 아렌트가 블뤼허에게 배우자로서의 사랑을 느꼈다면 하이데거에게는 연애 감정과는 다른, 존경과 사랑이 뒤섞인 높은 누군가에 대한 경외심 같은 것이 느껴졌다.
이 책을 그저 연애이야기로 읽을 생각이라면 재미가 없을 것이다. 이 책은 그들이 느낀 새로운 어떤 감정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게 해 주고, 아렌트의 사고 성장과 그녀의 감정 노선에 따른 전기를 알 수 있게 해 준다. 나는 후자의 것이 책에 녹아 있다는 점을 아주 긍정적으로 바라본다.
앞서 적은 것은 지극히 내가 보고 느끼고 판단한 것이다. 책의 작가는 아렌트와 하이데거의 관계를 좀 더 연인적 사랑으로 생각한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감정들이 더욱 복잡 미묘하다. 이 이야기를 또 다른 누군가가 읽고는 불륜이라 말할 수도 있을 것이고, 누군가는 플라토닉이라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둘의 관계는 복잡한 만큼 사람들마다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내 느낌과 생각, 해석을 보고 당신도 똑같이 볼 거라 생각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들의 편지를 토대로 쓴 책이니 뒤쪽에 주(註)를 같이 봐 주면 좋을 것이다. 언제 누가 누구에게 보낸 편지였는지 상세히 적혀 있고, 그런 점 때문에 더욱 생생하게 느껴진다.
이들이 느낀 복잡 미묘한 감정을 알고 싶다면 이 책을 집어 들라. 하이데거가 주는 영향에 따른 아렌트의 사고 변화와 그녀의 일대기를 비교할 수 있는 것은 잡지의 기분 좋은 사은품처럼 묶어있다.
한나 아렌트와 마틴 하이데거 - 엘즈비에타 에팅거 지음, 황은덕 옮김/산지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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