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왔다고 하는데, 아직은 쌀쌀한 날씨 탓에 어영부영 넘어갔던 3월.
그렇게 봄이 온 줄도 모르고 있다가, 제 덩치를 조금씩 키우던 나무의 눈들이 이제 꽃으로 만개하는 것을 보고 '아, 봄이 왔구나' 싶었습니다. 그렇게 꽃이 피는 4월이 왔네요.
지난 주는 4월의 첫 주말이었는데요, 여러분들은 지난 주말 어떻게 보내셨나요?
저는 별 특별한 일 없이 오는 봄을 조용히 맞이했는데요, 뉴스를 보니 봄 나들이 가는 행락객들로 도로가 가득 찼다고 하더라고요.
이렇게 생기가 넘치고 곳곳에 아름다움이 넘치는 4월.
하지만, 68년 전 한국근현대사에 새겨진 4월은 그리 아름답지만은 않습니다.
해방 전후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던 시대의 폭력과 상처가 폭발했던 사건이 제주에서 발생합니다.
제주 4.3사건은, 1948년 4월 3일부터 6.25 전쟁이 끝날 때까지인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사건입니다. 당시 남한의 단독정부 수립을 위한 5.10총선에 반대하는 무장봉기한 세력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던 것으로 토벌대가 무고한 양민들까지 대량 학살한 비극을 초래하죠.
생각해보니, 제주 4.3사건을 알게 된 것은 교과서가 아닌 현기영 선생의 소설『순이삼촌』이었습니다. 2013년에는 연극으로 한 번 더 만날 기회가 있었고요. 순이삼촌은 4.3사건의 희생자로, 당시 발포학살현장에서 극적으로 살아남지만 신경쇠약과 환청증세로 평생 고통을 끌어안고 살다 결국 아픔이 서린 그 시체밭에서 자살을 하고 말죠.
살아 남았지만, 죽은 것과 진배없는 삶.
시대가 한 개인의 삶에 할퀴고 간 상처를 찬찬히 짚어보며 제주4.3사건의 아픈 역사는 물론 평화와 인권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제주 4.3사건 하면 떠오르는 영화도 한 편 있죠?
무덤같이 어둡고 비좁은 동굴에서
삶을 갈구했던 제주 사람들을 그린 오멸 감독의 <지슬>(2012)
(* 영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바다에서 5km 밖에 있으면 다 죽인다”
소탕 작전에 밀려 동굴로 들어온 마을사람들은 왜 같은 나라의 군인을 피해 도망쳐 왔는지도 모른채 붙잡히면 죽는다는 일념 하나로 동굴 안으로 몰려들어 옵니다. 100여 명의 마을 사람들은 동네 마실이라도 온 것처럼, 그 좁은 동굴 안에서 두런두런 이야기꽃을 피우는데요, 집에 두고 온 돼지 걱정을 하는가 하면 이웃집 총각의 장가 걱정을 하기도 하죠. 순박하고 정감이 가는 그 장면을 보면서 왜 저들이 죽어야 했는가라는 의문을 던질 수밖에 없습니다. 동굴 속 평화로운 시간도 잠시, 그들의 안식처였던 동굴이 군인들에게 발견되고 최후의 방어막으로 굴 안에 불을 피우며 도망치려 하지만 죽음의 그림자는 결국 마을과 동굴을 모두 휩쓸고 가면서 영화는 끝이 납니다.
마지막으로, 2015년 7월에 출간된 김유철 작가의 장편소설 『레드 아일랜드』가 생각나네요.
해방 전후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던 시대의 폭력과 상처,
그리고 그 속에서 변해가는 사람들의 운명을 다루고 있는데요.
어린 시절 동무였던 김헌일과 방만식은 이데올로기가 무성한 시대의 파도 속에 휩쓸려 서로에게 총을 겨누는 처지가 됩니다. 또한 외지인 홍성수가 제주도민들과 함께 죽음을 맞고, 내지인 김헌일은 자신의 고향 사람들의 반대편에 서게 되죠. 『레드 아일랜드』에서는 이처럼 다양한 인물들의 엇갈리는 운명을 통해 잔인한 시대와 아픈 역사의 상처를 읽을 수 있습니다.
서로를 죽여야 하는 두 친구의 떨리는 대화와
암울한 시대 속에서도 사랑하는 사람을 지켜야 하는 이의 마음에서
잔인한 역사가 남기는 상처를 발견할 수 있는 작품이 아닐까 싶네요.
(**이 작품은 2015년 부산국제영화제 북투필름 후보작으로 선정되어 많은 영화인들에게 소개된 작품이기도 합니다.)
>>책소개
4월의 붉은 제주, 그 속에 휩쓸린 이들의 이야기 -『레드 아일랜드』(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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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 아일랜드 - 김유철 지음/산지니 |
샛노란 유채꽃과 분홍빛 벚꽃잎이 물결치는 제주 섬의 검은 사월.
오늘날 눈부시게 아름다운 제주의 봄을 보면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제주의 검은 봄을 떠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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