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감사 4차원 답변으로 이름을 떨친 장시호. 모든 것은 이모인 최순실이 시켰고, 거역할 수 없었다며 자신이 지은 죄를 순진한 얼굴로 모면하려 하는 모습입니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익숙한 장면이 겹쳐지는데요.
영화 <한나 아렌트>입니다. 여기서 한나 아렌트(1906~1975년)는 나치에 부역한 평범한 이의 ‘생각 없음’에 "악의 평범성"이란 개념을 세상에 내놓습니다. 자기가 저지른 일에 대한 ‘생각 없음’. 비판적 사고 없이 명에 따르고, 시류에 편승하는 행위가 가져올 죄악에 대한 인식 없음.
이재용, 최태원, 정몽구, 김승연 등 재벌회장들과 증인 김기춘 전 비서실장의 동문서답, 면피, 뻔뻔한 발언에 국민적 공분이 쌓여가고 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악의 축에 가려져 놓쳐선 안 될 지점이 있습니다.
‘기억이 안 난다.’, ‘모르겠다.’, ‘만난 적 없고, 알지도 못한다.’고 모르쇠로 일관하는 그들 뒤에서 조력하는 수많은 부역자들. 그들을 변론하고 그들을 도와 진실을 은폐하는 충직한 신하들이 건재하고 있음입니다. 생각 없이 모든 것을 안이하게 수용하고 행동한 죄. 그것까지 물어야 한국사회는 제대로 바뀌지 않을까요.
한나 아렌트의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으신 분은 『한나 아렌트와 마틴 하이데거』 (엘즈비에타 에팅거 지음, 황은덕 옮김)를 봐주세요. 아렌트와 하이데거가 주고받은 서신으로 두 사람의 삶을 조명한 내용입니다.
1924년 독일 마부르크 대학의 강의실. 18살의 유대인 여대생과 35살의 전도유망한 철학 교수가 얼굴을 마주한다. 여대생은 한나 아렌트(1906∼1975),철학 교수는 마틴 하이데거(1889∼1976)였다.
스승과 제자로서 첫 만남을 가진 둘은 곧 연인 관계로 발전했고 그들의 관계는 아렌트가 죽음을 맞이하는 1975년까지 반세기에 걸쳐 계속됐다. 저자는20세기를 대표하는 철학자인 아렌트와 하이데거가 주고받은 서신 속 대화와 주위 사람들의 증언을 통해 두 철학가의 삶을 구체화하며 한 편의 서사를 구성한다.
그리고 기존에 한나 아렌트의 정치사상과 이론을 풀어쓴 책이 많았다면 곧 출간할 『한나 아렌트의 탈학습-한나 아렌트의 사유방식』(마리 루이제 크노트 지음, 배기정, 김송인 옮김)은 아렌트의 정치이론의 내용도 물론 담고 있지만, ‘아렌트처럼 생각하기’, 즉 사유의 방법과 과정을 ‘웃음, 번역, 용서, 표현’ 네 가지 주제로 흥미롭게 탐구했습니다.
『한나 아렌트의 탈학습-한나아렌트 사유방식』
20세기 초 유럽사회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으로 폐허가 되었고, 히틀러의 유대인민족 말살 정책은 전 세계에 충격을 안겨주었습니다. 아렌트 역시 자기의 민족에게 일어난 끔찍한 학살에 고통스러워했습니다. 유대인 학살을 지휘했던 아돌프 아이히만이 이스라엘에서 전범 재판을 받게 되었을 때, 아렌트는 <뉴요커>지의 취재 의뢰를 받고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과정을 기사로 작성하기로 합니다.
취재를 가기 전 아렌트 역시 다른 사람들과 비슷하게 유대인민족 말살 정책에 앞섰던 아이히만을 악마나 괴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나치 전범 아이히만을 마주한 아렌트는 혼란에 빠집니다. 아이히만은 지극히 평범하고 오히려 “아무 생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아이히만을 악마로 묘사했을 때 아렌트는 이제까지 학습해온 사고의 틀을 벗어나 아이히만에게서 “악의 평범성”을 발견합니다.
아렌트가 기존의 사고와 관념에서 어떻게 자유로워졌을까? 자신에게 일어난 혼란을 어떻게 허용했을까? 익숙했던 사고방식에서 새롭게 탈학습하는 그녀의 사유방식은, 생각하기를 포기했던 아이히만과는 정반대에 있었습니다다.
이 책에서 묘사된 네 가지 사유 방식은 편견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아렌트의 사유 방식을 파헤치며 새로운 아렌트를 만나볼 수 있게 합니다.
[출간일기] 한나 아렌트의 탄생일, 새로운 사유 방식
평소 저는 한나 아렌트가 독일인으로서 미국에 살면서 영어로 책을 집필한 과정이 궁금했었는데요, 이 책 2장 번역에서 자세하게 나와 있습니다.
미국으로 망명한 아렌트는 처음부터 영어에 능통했던 건 아니었어요. 그런 아렌트가 영어로 책을 집필한다는 건 자신의 모어를 한 번 더 번역해서 쓰는 것과 비슷했지요. 이후에 영어로 번역한 책을 독일어로 다시 출간하기도 했어요.
그렇게 독어와 영어, 두 언어로 책을 집필하면서 언어란, 번역이란 아렌트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신선한 의문과 함께 아렌트가 쓴 독어와 영어로 쓴 집필서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당시 아렌트의 상황과 사유 과정을 잘 설명해줍니다.
저는 아렌트가 『전체주의의 기원』에서 "정치는 인간을 자유롭게 하리라"라는 구절을 읽고 마음에 깊게 와 닿았어요.
지금 시대에 정치란, 권력자의 소유물처럼 느껴질 때가 많은데, 정치야말로 인간을 자유롭게 한다는 그 말이, 지금껏 제가 생각했던 통념을 뒤집었어요.
한나 아렌트가 어떻게 사유했는지, 그 과정을 따라가 보면서 익숙했던 생각과 관습에서 벗어나 새롭게 사유해보는 건 어떨까요.
“새로운 세대를 포함하여 모든 인간은, 자신이 끝없는 과거와 끝없는 미래 사이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아는 한, 사유의 길을 새로 발견하고, 또 힘써 새 길을 개척해나가야 한다.”-한나 아렌트
사유하는 시민, 그것이 정치를 바꿀 수 있는 또다른 해법 아닐까요.
한나 아렌트의 말로, 다시 한 번 지금의 정국을 생각해봅니다.
+ 『한나 아렌트의 탈학습-한나 아렌트의 사유방식』 곧 출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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