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망령이 살아날 때, 과거의 행적이 발목을 잡을 때에 우리라면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요. 과거를 되풀이하게 될까요? 아니면 과거에 저지른 과오를 진심으로 뉘우친 후 그 경험에서 얻은 배움으로 보다 나은 현재를 살아가게 될까요.



 


광모 작가님의 소설 나는 장성택입니다.에 실린 단편들은 새로운 장이 펼쳐질 때마다 각기 색다른 인물상을 그려내고, 매력적인 설정 속에서 이야기를 구성해갑니다. 소설집 내 단편 <너의 자리>에서 화자가 일생을 동반하고자 하는 것들을 화자의 등에 새겨주는 타투이스트 얀 킴과의 대화나 <마론>에서 인구의 고령화에 따른 식량난에 대응하기 위해 국가에서 제정한, 빅데이터를 이용해 72세 노인들의 선악을 심판하는 마론의 법등이 그 대표적인 예지요. 흥미로운 이야기들은 빠르게 읽히고, 인물들의 다음 행보가 궁금해진 독자의 손에서 책장은 빠르게 넘어갑니다. 그리고 그런 빠르게 넘어가는 책장들을 붙들며 7월의 오늘 새로이 출판사 산지니의 인턴이 된 저, 제팍은 '과거'를 흘려보내고 나아가는 법, 이라는 하나의 큰 흐름으로 단편들을 읽으려 해보았습니다.

 




1. 과거로부터 쓰인 <자서전의 끝>에 새겨진 정의

  


"이게 정의야원초적인 정의지받은 만큼 돌려준다는."



<서전의 끝>'6.25 한국전쟁'을 소재로 삼고 있지만, 지금까지 우리가 보아온 한국전쟁을 소재로 한 근현대 한국소설보다 한층 더 세련되게 느껴집니다. 한국이 배경이고 한국인인 박경이 주인공인데도 '한국'에 서사를 한정하지 않기 때문일까요. 과거 '한국전쟁'에서 벌어진 만행이 불러일으킨 현재의 비극적인 결과에 대해 담담하게 풀어내다가도 나락에 내팽개쳐지듯 극적인 장면을 연출해내는 본 단편을 읽고나면 그 결말이 남기는 여운까지 통틀어, 마치 영화관에서 한 편의 잘 짜인, 치밀한 영화를 보고 나온 후의 열감을 느끼게 됩니다.



의 끝자락에서 정광모 작가님은 한국 작가의 이중고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그중 하나로 엄청나게 수입되는 외국 문학과 벌이는 독자 확보 경쟁에 관해 이야기하십니다. 저는 이 단편에서 정광모 작가님이 외국 문학과의 독자 확보 경쟁에서 한국 문학의 입지를 지키기 위해 정형화된 틀에서 벗어나려고 애쓰셨음을 크게 느꼈습니다. 우리 모두의 과거에 있던 '한국전쟁'은 큰 비극이었고, 큰 참상이었지요. 그러나 이제까지 숱하게 보아온 한국의 근현대소설들과는 다르게 <자서전의 끝>은 국가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온전히 해소되지 못한 과거의 앙금들에 붙들린 개인에 집중합니다. 그리고 그 개인이 과거 한 인물의 만행을 청산해가는 과정은 전율이 일기까지 합니다. 또한 한편으로는 결말까지 많은 걸 생각하게 만드는 이야기였지요.


 


 

2. <너의 자리>를 내어주던 과거.

 

리는 살아가면서 사랑하는 많은 것들에 마음의 자리를 내어줍니다. 내어준 자리는 우리의 마지막까지 우리를 채워주기도 하지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 후 우리에게서 떠나버리기도 하지요. <너의 자리>는 그런 자리를 타투를 통해 내어주는 과정과 과거에 자리를 내어준 이에게서 받은 상처를 타투이스트 얀 킴과 함께 승화해 과거에서 벗어나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그려내고 있는 단편입니다. 고객과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는 얀 킴에게서는 안정이 느껴지고, 조금씩 과거의 망령에서 벗어나 다음을 향해 가는 ''에게서는 상처가 아문 자리에 다시 올 새로운 사랑이 느껴집니다.



번에 한 자리씩 내어주는 ''의 사랑은 배신을 쉬이 잊지 못하고 오래 슬퍼할만큼 정이 깊지만 타투를 받으며 믿음과 배신에 대해 끝없이 고뇌하는 ''는 배신당한 자리를 허물고 새로운 자리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갑니다. 그렇다고 해서 떠난 이의 자리를 슬퍼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충분히 슬퍼하지 않으면 다음으로 나아갈 수 없고, 그런 그녀의 승화의 과정을 얀 킴이 돕습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누군가를 만나고, 누군가와 사랑하고, 누군가를 떠나보냅니다. 그렇게 생각하며 읽었기에 저는 그 일련의 과정들 속에서 순식간에 과거가 되어버리는 마음들에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지를 생각해볼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리는 우리의 과거 모든 행적이 모여 만들어진 집합체입니다. 현재의 우리는 과거의 우리에서 기인한 결과이고, 그렇기에 어떤 과거든 단 하나라도 빠진다면 그 순간 우리는 우리가 아니게 되겠지요. 우리가 걸어온 과거는 짙은 발자국으로 남아 우리를 구성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이 중요한 우리의 서사임에도 암울한 과거는 때로 망령처럼 우리를 붙들어 매기도 하지요이는 우리가 현재의 모든 순간을 진중하게 대해야 하는 이유가 됩니다. 우리의 현재는 곧 모두 과거가 되니까요.

 

러나 정광모 작가님의 본 소설을 읽고 나면, 우리를 구성하는 과거 하나하나가 중요한 원인이라고 해서 현재의 우리까지 과거에 매여 끌려다닐 수만은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과거에 매인 인물들은 안타까움과 슬픔, 씁쓸한 뒷맛을 자아내지만, 내면적으로 성장한 인물들은 어떤 형태로든 과거에서 벗어나 한층 더 나아가며 우리에게 간접적인 해소를 느끼게 해주는 덕입니다.

 

소설집은 상기한 단편소설 외에도 총 7편의 매력적인 단편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저는 7편의 단편들을 찬찬히 읽으며 하나의 큰 주제로 받아들였기에 이러한 감상을 하게 되었지만, 상상력을 자극하는 가지각색의 단편소설들은 다른 독자의 손에서 읽혔을 때 또 새로운 감상이 되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 본 게시글에 첨부된 이미지는 모두 직접 촬영하였거나 https://pixabay.com/ 의 저작권 프리 이미지들을 사용하였음을 밝힙니다.


나는 장성택입니다


정광모 지음 | 224쪽 | 14,000원 | 2018년 5월 11일 출간

 총 7편의 단편 소설로 구성된 소설집으로, 삶과 인간을 향한 깊이 있는 시선을 엿볼 수 있다. 특히 리얼리즘을 표방한 작품에서부터 스릴러와 역사적 인물의 내면을 결합한 작품, 노인 문제를 현대 이슈인 빅데이터와 결합시킨 작품 등 독특한 소재와 설정으로 다채로운 이야기를 선보인다.


 


 

나는 장성택입니다 - 10점
정광모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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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비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