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류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정영선, 『생각하는 사람들』 (산지니, 2018)




[필자 소개]

  도서출판 《산지니》 에서 2개월 동안 인턴으로 근무하게 된 윤형석입니다. 저는 국제관계학을 전공하고 있고, 특히 38선 이남에서 적대적으로 인식되는 '북조선'과 '일본'이라는 두 국가와 어떻게 우호적인 관계를 설정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남한에서 살다 보면, 북조선이라는 국가와 그 구성원들에 대한 혐오와 경멸을 끊임없이 만나게 됩니다. 진정한 자유와 행복을 찾아 북에서 남으로 내려온 탈북자들은, 이러한 사회 속에서 온갖 모멸과 수치를 견디며 힘들게 연명해가고 있겠지요. 탈북자의 자살률이 엄청나게 높으며, 다시 북으로 돌아가는 사람들도 상당수라는 소식을 전해듣기는 했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본 적은 없습니다. 언론을 통해서도 탈북자들의 '증언'을 접할 수는 있겠지만, 과연 그것은 진실일까요? 비록 소설의 형태를 띄고 있으나, 『생각하는 사람들』 은 우리가 알지 못 했던 북조선 사람들의 '진짜' 증언들을 들려주고 있습니다.

  * 서로를 동등한 주체로 인정하는 가장 첫 번째 단계는 호칭에 대한 정의일 것입니다. 저는 대한민국의 입장에서, 이북을 이남의 '수복해야 할 영토'로 규정하는 '북한'이라는 호칭은 남북관계의 화해와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적합하지 않다고 보여집니다. 상대방이 스스로를 지칭하는 것에 대한 존중의 뜻을 담아, 저는 '북한'이 아닌 '북조선'이라는 호칭을 사용하였고, 이와 같은 흐름이 전 사회적으로도 확산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등 국민’

  남한에서 살아가는 탈북자들은 어떤 존재일까? 이들은 자유를 찾아서 북조선을 떠나온 이들이다. 곧바로 38선을 넘어서 오는 경우도 있고, 혹은 압록강을 건너 중국과 동남아시아를 거쳐 남한으로 들어오는 경우도 있다. 어느 쪽이든 북에서 남으로 건너오는 것은 매우 고통스러운 과정을 수반하는 일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이 모든 것들을 감내한다. 현재 남한에 입국한 탈북자의 수는 3만 명을 넘어섰지만, 남한의 보통 사람들만큼의 삶의 질을 누리는 탈북자들은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탈북자들은 5년간 정착지원금과 적응생활비로 총 2,000여만 원을 받지만, 금액의 대부분을 북조선에 잔류하고 있는 가족들을 데려오기 위한 비용으로 사용한다. 탈북자들 대부분은 저임금의 3D 업종에 종사하는 경우가 많고, 특히 이들에 대한 남한 사회의 불신어린 시선으로 인해 취업이나 승진의 기회에서 배제되는 경험을 수시로 겪는다. 자살률의 경우는 더 심각하다. 남한은 세계적으로도 자살률이 최상위권에 다다르는 나라인데, 그 중에서도 탈북자들의 자살률은 평균치의 3배에 육박한다. 이들은 남한의 TV, 영화 등을 보며 발전된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안락하고 자유로운 삶을 꿈꾸며 남한으로 입국하지만, 돈이 없으면 그 어떤 자유와 안락도 보장되지 않는 것이 자본주의 사회이기에 남한 땅에 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이들의 환상은 무참히 부서지기 시작한다.

  국가 또한 온전히 이들의 편이 아니다. 어찌되었든 자신들의 체제정당성을 끊임없이 국민들에게 주입시키고자 하는 것이 국가권력의 본질이기에, 탈북자들은 지속적으로 반공의 나팔수로 활용되고 북조선정권의 잔혹성과 독재이데올로기의 허구성을 홍보하는 기제로 동원된다. 남한에 내려와 살 길이 막막한 탈북자들은 자신들을 반공의 투사로 사용하기 원하는 정권과 그에 복무하는 언론을 위해, 그들이 원하는대로 최대한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언사들로 자신들의 조국을 비난한다. 이 과정에서 북조선 사람들에 대한 남한 사회의 정치적/경제적 인종주의는 더욱 강화되고, 탈북자를 바라보는 남한 사람들의 편견어린 시선 또한 한층 더 깊어진다.


  '탈북자'는 누구인가?

  

  정영선 작가의 장편소설 《생각하는 사람들》 은, 이렇듯 분단의 트라우마가 온 사회를 지배하는 오늘날 남한에서 살아가고 있는 탈북자들의 삶을 담담하고 일상적인 문장들로 보여준다. 아마도 작가가 그 자신을 대입한 것으로 보이는 주인공 '주영'은, 겨우 구색만 갖추고 있는 낡은 출판사에 면접을 보러 간다. 그 곳에서 안전부(국정원)의 '코'를 만나 인터넷 뉴스 댓글 란에서 야당 대선후보를 '친북', '종북'으로 만들라는 지시를 받는다. 이후 '코'의 소개로 탈북자들의 남한 정착을 위한 교육기관인 유니원(하나원)에 청소년 글쓰기 강사로 들어가게 되고, 각자 다양한 경험들을 안고 남한으로 오게 된 사람들과 만나게 된다.

작중에서는 다양한 형태로 각종 차별과 수모를 겪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여진다. 유니원에서 이들은 CCTV로 24시간 감시당하고, ‘남한 사회에 적응하기 위한 교육’이라고는 하지만 사실상 감금에 가까운 생활을 해야만 한다. 유니원을 졸업하고 사회에 나와서도 가혹하기는 매한가지다. 선거 때마다 야당 후보를 ‘빨갱이’로 몰아가는 댓글 조작에 어쩔 수 없이 협력해야 하는 탈북자들의 모습도 발견할 수 있고, 학교생활에 적응하기 어려워하는 아들 ‘창주’와 어머니 ‘금향’이 겪는 문제들, 그리고 비록 탈북자는 아니지만 ‘코’를 통해 안전부의 활동에 점점 타의적으로 개입되어가는 ‘주영’ 등, 분단 구조 속에서 벌어지는 인간 군상을 여실히 엿볼 수 있다.

  특히 눈에 띄는 지점은, 작중 등장하는 주인공들이 가진 남한 사회에 대해 나름의 평가를 내리는 부분이다. 주유소 사장 아들에게 중국어 과외를 하고 있는 ‘병욱’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한국은 사람을 쓸쓸하게 하는 뭔가가 있었다. (…) 여긴 투명한 유리벽에 둘러싸인 기분이었고 무시와 차별이라는 습기는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몸 안으로 스며들었다.(67쪽)”, “남조선은 이 교통망만큼 미로였다. 무질서하다 싶다가도, 질서가 있고 다들 돈독이 올라 눈이 뒤집혔다고 생각되는데 또 자본에 저항하는 사람도 있었다. (…) 온 나라가 정권 퇴진 운동을 하는 것 같은데 야구장엔 수만 명이 모였다.(119쪽)”

  통상적으로 언론에 노출되는, ‘억압적인 독재정권에서 벗어나 자유 대한민국에서 살게 되어 감사하고 기뻐하는’ 탈북자의 이미지와는 다소 상반된 대목이다. 가공의 인물들이지만 이렇듯 필자와 같은 남한 국민이 보기에도 일정 부분 공감되는 것은, 아마도 남한 역시 북조선만큼은 아니더라도 완전한 자유가 보장되는 것이 아니고 자본이 모든 권력을 독점하고 이 사회 최상층부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던, 우리가 원했던 탈북자와 그들이 칭송하는 '자유 대한민국'이 아닌 날 것 그대로 적나라하게 드러난 있는 그대로의 남한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생각하는 사람들

정영선 지음 | 280쪽 | 14,800원 | 2018년 5월 24일

정영선 작가의 장편소설. 작가 정영선은 2013년~2014년 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사무소 하나원 내 청소년 학교에서 파견교사로 근무했다. 2년의 시간 동안 탈북 청소년들의 삶을 지켜보며 남한사회에서 북한출신자들이 겪는 또 다른 문제들에 주목하게 됐다. 또한 단순 정착을 넘어 사회, 경제적인 경쟁력을 갖추고 주체적으로 자신의 삶을 그려나갈 수 있는 방안들에 대해 고민했다. 이 소설은 작가의 그러한 관찰과 고민의 결실이라 볼 수 있다. 

 

생각하는 사람들 - 10점

정영선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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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1959_Niigat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