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이여, 진부함을 벗어라.
『나는 장성택입니다』
저자 인터뷰 :: 정광모 소설 ‧ 산지니 인턴 최민지
최민지 인턴의 『나는 장성택입니다』 서평 보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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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정광모 작가님께서는 이번에 인터뷰를 진행할 단편소설집인 『나는 장성택입니다』 이전에도 『토스쿠』나 『작화증 사내』 같은 장/단편 소설책을 출간하셨는데요. 전작들에 비해 이번 단편소설집을 출간하실 때에 특별히 의도하신 점이나 주의를 기울이신 점이 있으신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A. 『나는 장성택입니다』 책의 맨 뒤쪽을 보면, 제가 단편들을 언제 집필했는지 연도가 적혀 있어요. 그 연도를 보면 이전의 작품들과 집필한 시기는 비슷하죠. 제가 글을 빨리 쓰는 편이라 이렇게 간간이 쓴 단편들이 모여 있었어요. 이런 단편들을 모아서 책을 낸 게 이번 단편집이기 때문에 책을 ‘출간’할 때에 어떤 의도가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 소설을 쓸 때에는 가능하면 매력적인 이야기가 있어서 읽어보면 참 재미있네, 싶고 이 이야기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가 (독자가) 궁금해져서 책장을 쉽게 넘길 수 있도록 쓰려고 해요. 다른 작가님들 중에는 묘사를 중심으로 주의를 기울이시는 분들도 많이 계시지만, 저는 소설이라는 게 기본적으로 재미도 있어야 하고 스토리성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입장이거든요. 그래서 흥미 요소나 스토리에 정성을 많이 들이죠.
Q. 그렇게 스토리에 정성을 많이 들여 주신 만큼 때로는 이입하고 때로는 관전하면서 모든 단편들을 즐길 수 있는 멋진 책이었는데요, 저는 본 소설책 『나는 장성택입니다』에 실린 7편의 단편들은 감정의 흐름을 묘사하는 데에 중점을 두는 소설인 <외출>, <집으로>, <아오이 츠카사를 위한 자세>와 사건의 흐름을 따라가며 함의를 추구하는 소설인 <자서전의 끝>, <너의 자리>, <나는 장성택입니다>, <마론>으로 크게 나눠보았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후자 쪽을 좀 더 즐겁게 읽었지만, 작가님께서 집필하시면서 특히 애착을 가지신 단편은 어느 쪽인지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A. <외출>과 <나는 장성택입니다>, 두 작품이 아무래도 제 안에서 존재감이 크죠. 제가 주위의 친구들에게 표제작으로 어떤 것이 좋겠냐고 물었을 때에 두 작품 이야기가 제일 많이 나왔거든요. 물론 제가 쓴 작품들이기 때문에 7편 모두 애착을 가지고 있지만, 굳이 꼽자면 두 작품이 NO.1, NO.2 네요.
Q. 표제작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이지만, 두 작품을 표제작으로 고려하셨는데도 <외출>이 아니라 <나는 장성택입니다>가 표제작이 된 이유는 역시 흔하지 않기 때문이겠지요? (웃음소리)
A. 그렇죠. (웃으시고) <외출>은 표제작이 될 수 없었죠. 너무나도 많은 책과 영화들이 비슷한 제목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흔한 제목이 되어버리죠. 안 그래도 친구들이 <외출>은 절대 (표제작으로) 해서는 안 된다고 말리더라고요. ― 그런데 그래서 <나는 장성택입니다>를 표제작을 해뒀더니, 막상 읽어보면 전혀 그런 책이 아닌데 모든 단편이 정치적일 것 같은 느낌이 되어버려서…… 많이들 표제작을 보고 오해하시고는 합니다.
Q. 앞서 말씀드렸듯, 여러 단편들 중에서 저는 먼저 <너의 자리>를 감명 깊게 읽었습니다. 반려견과 반려묘가 있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너의 자리>는 일견 진부해보일 수 있는 ‘반려동물의 기억과 죽음’, ‘타투’, ‘헤어진 연인과의 재회’ 등을 소재로 하면서도 믿음과 배신이라는 주제를 아주 세련되게 그려낸 작품이라고 느꼈어요. 본 소설의 모티프는 어디서 얻으셨나요?
A. 이 단편은 기억에 관련된 이야기에요. 사람들이 ‘기억’을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의 몸에다가 새기는 거니까요.
Q. 언젠가 들었던 ‘기억을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기록을 하는 것이다.’라는 말이 생각나네요.
A. 그렇죠. ―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투투(= 타투, 문신)가 부모님이 물려주신 몸에 칼을 대는 행위라든지, 무리에서 이탈한 범죄자들이 주로 하는 행위라든지 하는 부정적인 쪽으로 많이 알려졌잖아요. 그런데 저는 이 투투가 기억을 하는 참 좋은 방식이라고 생각을 했어요. 《메멘토》라는 영화도 있었잖아요. 단기기억상실증에 걸린 주인공이 자신의 아내를 죽인 살인범을 찾기 위해, 기억하기 위해 자신의 몸에다가 새기는 영화요. ― 제 소설에서는 주인공인 ‘나’가 죽은 동물들을 자신의 몸에 새겼지만, 해외의 어느 토픽에서 자신이 키우는 동물들을 몸에다 새기는 사람의 이야기를 봤어요. 거기서 모티프를 따 왔죠. 그런 기사들은 좀 특이하거나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면 오려서 저장을 해 두거든요. 그리고서 생각을 하죠. 이런 이야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하고요. 이 소설은 주인공인 여성이 동물은 자신의 몸에 새기지만, 인간은 새기지 않는다. 라는 기본 뼈대가 잡히고서 쓴 소설이에요. 모티프를 얻으면 이런 과정을 거쳐서 한 편의 소설이 되죠.
Q. 저는 <너의 자리>가 과거에 배신당한 기억이 있는 주인공이 낡은 자리를 허물고 새로운 사랑을 위한 자리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을 그린 이야기라고 생각하기도 했어요. 동시에 떠난 이의 자리를 충분히 슬퍼하고서야 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주인공 ‘나’의 모습이 ‘애도를 통한 승화’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A. 앞서 <너의 자리>는 기억에 대한 이야기라고 했죠. 반대로 제가 생각하는 애도는 기본 망각이에요. 충격이 사람의 마음으로 오면 뇌에 트라우마로 새겨지잖아요. 이 트라우마를 잊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안 좋은 방법인 ‘죽지 못해 살아서 어쩔 수 없이 생기는 망각’이 있고, 나머지 하나는 나름의 의식을 거치면서 승화하는 방식이죠. 옛날에는 무당이 그런 의식을 했었잖아요. 굿으로. 그런 의식을 통해서 치유하며 망각해가는 과정이 최고의 애도라는 생각을 했죠.
Q. <너의 자리>는 기본적으로 기억을 하고 그 기억과 함께 살아가기 위한 방법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망각인 애도와는 대척점에 있다고 생각하시는군요. ― 저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작가님의 소설을 읽은 것 같아요. 주인공인 ‘나’가 죽은 반려동물들을 타투로 몸에 새기는 과정 자체가 애도를 위한 의식의 일종이라고 생각을 했거든요.
A. 오. 그럴 수 있어요. 인간인 옛 애인이 아니라 보다 신뢰할 수 있다고 생각한 동물들을 애도하는 과정이라면 그렇게 보이기도 하네요. ― 이 소설에 나온 ‘나’라는 여자는 인간이라는 종족에 대해서…… 신뢰를 하지 않죠. 인간불신이에요. 단편의 속도와 박자를 생각해서 조금은 진부한 ‘옛 남자’로 대표되었지만, 이 여자의 입장에서 인간은 늘 뒤통수를 치고 배신을 하는 존재고, 개나 고양이는 그렇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동물들이 훨씬 낫다. 이런 기본적인 인간불신이 깔려 있죠. 그래서 설령 옛 애인이 아니었다고 해도 자신의 몸에 인간은 새기지 않았을 거예요.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주인공은 타투를 통해 애도를 하고 있네요.
Q. 뿐만 아니라 저는 <자서전의 끝>도 굉장히 즐겁게 읽었습니다. 한국전쟁 때 가족을 잃은 박경의 자서전 집필, 이라는 사건과 토머스에의 복수라는 사건이 병치되어 진행되는 <자서전의 끝>은 여백을 상상하는 게 참 즐거운 소설이었어요. 그 중에서도 특히 궁금했던 건 의뢰의 결과를 전해들은 박경의 심정이었어요. ― 복수에 관한 이야기잖아요. 그런데 막상 복수를 하고 나면 허무감 같은 게 찾아오기도 하니까 박경도 그런 걸 느꼈을까, 아니면 드디어 몇 십년간 곱씹어오던 복수를 했으니까 편히 눈감을 수 있겠다, 같은 생각을 했을까를 상상하게 되더라고요.
A. 오. 그러면 말씀하신 대로 이 <자서전의 끝>은 2탄을 계속 써볼 수도 있겠네요.
Q. 저는 이 소설이 구성도 내용도 굉장히 참신하다고 생각하면서 읽었는데 딱 하나, 죄를 저질렀던 ‘앨런 로비 중사’가 직접 죗값을 치른 것이 아니었다는 점이 걸렸어요. 훈장도 받고 자식도 낳고 잘 살았기 때문에 토머스 집에도 아버지가 남겨주신 상패나 유산이 많았잖아요. 그래서 그렇게 죄를 지은 당사자는 호의호식하다 죽었는데 당시 태어나지도 않았던 손자 손녀들이 ― 아무리 피가 이어져 있다고 해도 죄는 세습될 수가 없는 법인데 대신 죗값을 치러도 괜찮은 걸까. 싶기도 했습니다.
A. 이 작품은 정말 이야기할 거리가 많은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그 중에서도 작중에서 나오는 ‘존’의 대사인 ‘준만큼 돌려받는 원초적인 정의’를 생각해 봤을 때…… 사실은 중국 고대의 법가가 하는 방식으로 정치가 이루어졌다면 아주 세상이 공평해질 수 있었을 거예요. 귀족들이나 왕후장상들은 처벌을 받지 않던 때에 법가가 주장했던 것이 “황제를 제외하고는 법 앞에서는 모두가 평등해야 한다.”였단 말이에요. 이게 실제로는 원초적인 정의인 법가인데 이게 과거에도 그렇고 현대에도 그렇고 적용이 안 되죠. 돈이 6천억 있는 사람이 죄를 저지르는 것과 가난한 사람이 죄를 저지르는 것에 시작부터 끝까지 차이가 있어요. 제가 글을 쓰게 되기 전에는 법률 사무소에 있었는데, 변호사를 고용하는 데에 있어서 인맥도 다르고, 다 다르거든요. 그래서 원초적인 정의라는 게 실현이 되면 참 좋겠다. 그런 생각을 했었죠. 그런데 그것이 안 되는 사회가 인간 사회가 아닌가 싶기도 해요. 그런 문제가 있죠. 법가의 재림이 되면 갑갑하긴 하겠지만 한 번 싹 정리를 하고 나서 다시 시작하는 것도 참 좋을 텐데 말예요. ― 그런 현실 속에서 폭력이 가해졌을 때의 상황 차이를 봐야 해요. 현대에서는 폭력의 가해자와 피해자가 직접 연결되지 않아요. 특히 전쟁에서 폭격이 있었을 경우에 누구를 특정 하고 폭격을 하는 게 아니잖아요. 이랬을 경우에 그럼 ‘징벌’이라는 것을 어떻게 할 것인가. 여러 사회적인 제도가 마련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그거로는 안 돼요. 인간이 가지고 있는 원초적인 ‘결함’이죠. 사회 제도의 결함. 정확하게 1:1의 대응관계로서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시스템으로 될 수도 없고, 되지도 않고. ― 그런 현실 속에 있기 때문에 박경은 최소한의 보복을 한 거죠. 그것도 앨런 로비 중사의 후손들 중에 한 가족을 추첨을 통해서 정했잖아요. 자기로서는 최소한의 보복을 안 하기에는 너무 억울하고, 원통하고. 그랬던 거죠. ― 토머스가 말하는 나는 그 한국인인 의뢰인이랑 아무 관련이 없어. 하는 게 죄의 세습이랑 관련된 이야기잖아요. 그 때 집행인이 하는 말을 잘 살펴보면 참 심오한 이야기가 돼요.
Q. 저도 토머스 가족은, 토머스는 자기 아버지의 업적에 대해 의심은커녕 생각도 않고 자랑스럽게 여기며 살았는데 그걸 생각하게 만들었다는 점이 참 의미가 깊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기 때문에 세습죄에 대한 생각을 하면서도 이 소설을 읽은 독자분들 중에 ‘왜 박경이 그렇게 했는가.’를 이해하지 못할 분은 없으실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점에서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가해자를 함부로 옹호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특히요.
A. 이 소설은 어떻게 구상을 했냐면, 6·25전쟁, 한국전쟁을 우리가 몰라서 그런데, 거기서 일어난, 양 쪽이 저지른 학살이나 범죄는 기록되지도 않고 묻혔죠. 전쟁에서 가장 처참한 전쟁이 내전이거든요. 외적이 쳐들어왔다고 하면 오히려 대결구도가 단순해지는데, 내전이 되면 굉장히 복잡해져요. 감정의 응어리도 오래가고. 그래서 한국 사회가 이렇게 염치가 없고 개판 사회가 된 원인 중 하나가 한국전쟁이라는 생각을 해서 이 소설을 쓰게 됐어요. 부산에 박경 같은 사람이 안 많았겠어요.
Q. 저는 <자서전의 끝>이 본 소설책의 단편들 중에서도 특히 영화를 보는 느낌이었어요. 10분에서 30분짜리의 짧은 단편 영화들이 나오기도 하니까, 이 소설은 그런 단편 영화로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지요. 영화로 제작된다면 짧은데도 생각할 거리가 많은 좋은 영화가 될 거라고 생각을 해요.
A. 영화로 만들어지면 참 의미 있을 수 있겠네요. 전에 제가 쓴 작품 중에 <타미카 레드> (『존슨 기억 판매회사』 中) 라는 작품이 있는데 그건 연극으로 만들어졌었거든요. 연극으로 만들어두니까 참 멋있고 재미있더라고요. 아쉽게 6월 초 중순에 끝났는데. 각색도 싹 하고. 저는 그 연극을 보면서 연극이 참 좋은 장르라고 생각했는데 30분짜리 영화도 참 괜찮겠네요.
Q. <집으로>에서 살인을 저지른 남편은 진심으로 뉘우치거나 고통스러워하지 않지요. 어머니의 아픔은 이후 두 딸에게까지 전달되는데 죄를 지은 사람은 잘 살고 마음이 다정한 사람들만 힘들어하는 것 같아서 씁쓸했습니다. 지금까지도 쉬쉬되고 있는 가정폭력 문제에 대해 생각하기도 했고요.
A. 한국 사람의 뼈대가 가부장제 사회 중에서도 강한 가부장제 사회에요. 이게 조선시대 후반에 강력하게 생성되었기 때문에 60년대 후반에 보면 길거리에서 남자가 여자를 두들겨 패도 내 마누라 내가 패는데 무슨 상관이냐, 하면 다 피해가고 경찰도 개입 안 했었죠. 심지어 꽤 최근 까지도 비슷한 일들이 있었어요. 그런 사회를 배경으로 그린 소설 속의 ‘남편’이라는 존재이기 때문에 뉘우치거나 고통스러워하지 않죠.
Q. <집으로>의 속표지 제목 아래에 “그래, 모든 생각을 놓기 전에 마지막으로 붙들고 싶은 것…….”이라는 소설 발췌문이 적혀 있는데, 살아서 본인의 곁을 지키고 있는 소중한 딸들보다 과거에 갓난아기로 죽은 아들만이 마지막으로 붙들고 싶은 것인 걸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어쩌면 아들이어서 그런 걸까? 싶기도 했고요. 오래도록 남아선호와 여성혐오가 깊게 뿌리내렸던 한국이기에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A. 최근에 봤던 신문기사 중에 참 충격이었는데 화제가 되지 않았던 게, 은행권, 금융권에서 공개 채용을 하는데 남자 여자 할당비율을 준 거예요. 시험 성적으로만 뽑으면 여자가 70, 남자가 30이 되는데 남자를 70을 뽑기 위해서 여자의 커트라인을 높이는 거예요. “인터뷰어: 기울어진 운동장이죠.” 대부분의 금융권에서 그런다는 이야기이고, 대기업에서도 수도 없이 그런 일이 있다는 이야기잖아요. 단지 우리가 알 수가 없을 따름이죠. 이거는 엄청난 문제인데, 언론에서 얼마 안 나와요. 언론사에서도 채용을 할 때 그런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여자들은 사회부 취재를 하는 데 보내기 어렵다는 등의 핑계를 대면서 비율 조정을 하는 거예요. 자기들이 그러니까 화제로 삼지도 않는 거고요. 언론에서 흔히 말하는 의제 설정을 안 하는 거예요. 언론의 가장 큰 역할인 데도요.
A2. 요새는 재산상속에 문제가 많은데, 민법으로 고르게 분배하지만 보통 사전에 정리를 많이 해주거든요. 그런데 그러면서 아들한테 더 많이 주고 그래요. 그게 엄청난 분쟁을 빚고 있죠. 아직도 남아있어요. 그런 이데올로기, 트라우마가 쉽게 사라지지는 않아요. 완전히 사라지는 데는 세대 단위로 바뀌기 때문에 30년 단위…… 요새는 조금 빨라졌다고 하더라도 20년 단위로 바뀔 것이기 때문에 한 번 정도는, 20년 정도는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야해요. 희석되는 과정이죠.
Q. 본 소설책의 제목이기도 한 단편 <나는 장성택입니다>은 남한에서 북조선의 2인자로 불렸던 장성택이라는 실제 인물의 삶을 작가님의 상상력으로 각색하신 점이 흥미로운 소설이었어요. 특히 ‘내가 운명을 선택한 것이 아닙니다. 운명이 나를 선택했습니다.’라는 문장이 기억에 남았습니다. 작가님이 그리신 장성택의 삶은 더없이 운명에 순종적인 삶이었지요. 저는 장성택이 그런 행동을 취하는 북조선이라는 사회적 배경을 이해하면서도 운명에 끌려가기만 해선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보니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더불어 ‘장성택’에 더해 작가님은 운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듣고 싶었습니다.
A. 이 작품은 저는 나름대로 제일 의미도 있고 깊이도 있다고 생각을 해요. 제목도 참 멋있잖아요. 진짜 장성택이 죽기 전에 이렇게 했을 것도 같다는 생각이 드는 부분이 있죠. 이 소설의 가장 핵심은 ‘절대권력.’ 권력에 대한 이야기에요. 우리 대한민국 대통령 같은 일반적인 권력이 있고 북한 등의 절대 권력이 있어요. 그럼 절대권력 하에서 2인자는 어떻게 되는가. 장성택에게는 2개의 길이 있었죠. 적당히 평화롭게 살아가는 삶과 김경희라고 하는 김일성의 딸이라는 엄청난 출세가도를 걷는 길. 황금동앗줄을 잡는 길이요. 장성택이 고민과 갈등을 한 후에 김경희를 거부하겠다고 결심을 하고 내려가지만 그 결심이 반씩 꺾이고 반씩 꺾이고…… 권력에 결국 순종해요. 그 순간에 장성택의 운명은 결정 난 거예요. 저는 그렇게 보는 거죠. ― 한국인이 갖고 있는 유전자 속에 강력하게 박혀있는 두 가지가 하나는 ‘입신양명’, 하나는 ‘금의환향’이에요. 권력은 아주 양날의 검인데. 상대방도 베지만 자신도 베고. 권력에 오래 물든 사람은 뇌 구조가 바뀐다고 하거든요. 지배자의 뇌가 된대요. 공감할 줄을 모르고. <반지의 제왕>에서 반지가 절대 권력이잖아요. 그 이야기는 절대 권력을 결국 버리는 이야기잖아요. 절대권력은 화산까지 가서 끓는 물에 버려야만 하는 것이고. 그러나 반지를 쥐는 것이 너무나도 큰 유혹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거부하지 못해요. 그런 이야기에요. “내가 운명을 선택한 것이 아닙니다. 운명이 나를 선택했습니다.” 하는 말은 결국 장성택의 변명이죠. 권력이 아닌, 욕심을 내지 않은 행복한 삶을 고를 수 있었는데 그러지 않았고 그게 결국 자기를 망친 거죠.
Q. 작가의 말에서 쓰신 ‘한국 작가는 인기 있는 외국 작가와 치열하게 경쟁해야 한다.’는 말이 인상 깊었습니다. 최근 개봉하는 한국의 영화들은 오직 흥행에만 관심을 쏟는 나머지 진부하다고 느껴질 만큼 정해진 서사가 반복되기만 해서 게으른 창작이라는 비판을 받고는 하는데요, 더구나 최근에는 페미니즘운동과 관련하여 기득권 세력이 부패했다는 걸 표현하기 위해서는 룸살롱 장면을 넣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느냐 같은 인권을 다루고 표현하는 방식에 관한 비판도 일고 있습니다. ― 저는 한국의 창작물이 외국의 창작물보다 인기를 얻지 못하는 데에는 이러한 진부함과 인권의식 부족의 문제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A. 진부함이 가장 큰 문제예요. 너무 진부한 장면들이 계속되고 있는 거예요.
Q. 진부함의 원인이 어디 있냐. 하면 저는 창작자들의 의식이 발전하지 않는다는 점을 꼽고 싶었어요. 사람은 계속 변화하고 하니까 꾸준한 관찰이 필요한데 그걸 하지 않으니 의식이 제자리걸음을 해서 결국 그 의식을 바탕으로 나오는 이야기까지도 진부해졌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 맥락에서 나온 질문이었습니다.
A. 오. 그럴 수도 있네요. 사람과 사회가 계속 변화하고 있는데 옛날에 가지고 있던 의식을 계속 끌어가면서 글을 쓰니 그렇게 되죠. 『글쓰기의 기술』이라고 하는 유명한 글쓰기에 관련된 책이 있어요. 거기서 가장 경계하는 첫 번째가 ‘진부함’ 이에요. 진부한 문장을 쓰면 안 되고 진부한 스토리를 쓰면 안 되는데, 이 진부함이 얼마나 강력한가 하면 공기 중에 내가 손을 뻗으면 바로 탁 잡힐 정도로 내 주위에 떠다니고 있어요. 산재해 있어요. 유혹이 강하죠. 그래서 그걸 다른 시각으로 보기 위해선 공부도 많이 해야 하고 많은 걸 보고 느껴야하는 거죠. 진부함이 최대의 적이다. 물론 제 소설에도 진부한 장면들 많이 있어요. 그걸 이제 삭제하고 개선해야 하는데 쉽지 않죠. (웃음)
Q. 지금까지 작가님과 인터뷰를 빙자한 뜨거운 논의를 했는데요. 본 소설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저는 더욱 작가님의 소설을 계속해서 읽어보고 싶다고 느꼈습니다. 앞으로의 집필 계획은 있으신가요?
A. 지금 장편도 쓰고 있고, 단편도 쓰고 있어요. 10월에 ‘감식’이라는 장편 소설이 나올 예정이고요. 위조지폐 감식에 관한 내용이에요. 원고도 이미 넘어가 있으니 금방 만나보실 수 있을 거예요.
Q. 그럼 마지막으로, 본 단편소설집 『나는 장성택입니다.』를 만난 독자 분들께 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A. 저는 어떤 책을 잡아서 몇 편이라도 읽는 것만으로 이미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제 대학교 동기 중에 한 명이 제 작품이 나오면 정말 꼼꼼하게 다 읽어서 그 평을 대학 동창 밴드에 올려주더라고요. 읽어보면 저도 놀라요. 품이 많이 들어가 있다는 게 느껴질 정도여서요. ― 책이나 영화나 읽지 않거나 보지 않으면 제 안에는 존재하지 않는 거거든요. 아무리 좋다, 흥행했다 평을 들어도 내가 보지 않으면 끝이에요. 그래서 제 책을 그렇게 챙겨서 읽어 주어서 감사하다는 이야기와 함께, 책을 가지고 이것저것 많이 해서, 같이 발전을 위해 노력하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 말을 해드리고 싶어요.
* 본 게시글에 첨부된 이미지는 모두 직접 촬영하였거나 https://pixabay.com/ 의 저작권 프리 이미지들을 사용하였음을 밝힙니다.
나는 장성택입니다
정광모 지음 | 224쪽 | 14,000원 | 2018년 5월 11일 출간
총 7편의 단편 소설로 구성된 소설집으로, 삶과 인간을 향한 깊이 있는 시선을 엿볼 수 있다. 특히 리얼리즘을 표방한 작품에서부터 스릴러와 역사적 인물의 내면을 결합한 작품, 노인 문제를 현대 이슈인 빅데이터와 결합시킨 작품 등 독특한 소재와 설정으로 다채로운 이야기를 선보인다.
나는 장성택입니다 - 정광모 지음/산지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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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sanzinibook.tistory.com/2451 [부산에서 책 만드는 이야기 : 산지니출판사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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