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얼마 전 산지니에서 인턴생활을 시작한 서류닝입니다. 처음이라 많이 부끄럽네요. 제가 인턴일기에 처음 소개하게 된 책은 바로 7년 만에 나온 이규정 작가님의 아홉 번째 소설집인 『치우』입니다. 『치우』는 「치우」, 「죽음 앞에서」, 「폭설」, 「희망의 땅」, 「작은 촛불 하나」, 「풀꽃 화분」, 「아무렴, 그렇지 그렇고 말고」의 총 일곱 편의 단편 소설로 이루어진 소설집으로 처음 봤을 때 외관에 굉장히 시선이 끌렸던 책입니다. 밝음과 어두움의 묘한 공존을 연상시키는 표지와 큼지막하게 적혀있는 제목이 턱, 하고 이 책의 첫인상으로 제 머리에 박혀버렸습니다. 가벼운 책이 아닐 것 같다는 생각에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치우』는 어느 한 편도 소홀히 읽히지 않는 책이었습니다. 『치우』는 사상과 사람, 생명과 죽음, 종교에 대한 얘기를 모두 아우르고 있는 책입니다.  

책의 제목이 된 「치우」라는 작품은 사상과 사람다운 삶 중에 무엇이 중요하느냐는 물음을 던지고 있는 작품입니다. 자신이 영향을 준 사상을 좇아 아내를 잃으면서까지 힘들게 살아온 친구를 보며 주인공인 동식은 ‘바보 같은 친구’라고 생각하며 자신의 행동을 후회합니다.

상태는 조총련을 멀리하고 민단으로 활동하는데, 이로 인하여 아내가 우울증으로 자살한다.

그가 잠시 말을 그치고 나를 유심히 바라봤다. 상태의 눈길을 받으면서 나는 심한 자책감에 몸 둘 바를 몰랐다. 그야말로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상태가 총련을 멀리하면서 민단에 발을 붙인 이유가 나의 공산주의 혐오에 기인했음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든 그가 이모부의 뜻대로, 장인의 뜻대로 살았다면…. 내가 뭔데? 내가 대관절 뭔데, 나의 생각을 그렇게 존중하면서 고생을 사서 했단 말인가. 바보 같은 친구….

-「치우」 중 p.19

이규정 작가님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 작품 안의 상태는 실존 인물로, 작품 안의 상태는 죽었지만 실존 인물인 상태는 살아있다고 합니다. 작품 속 사상에 휩싸였던 동식처럼 당시 친구의 가난한 삶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작가님은 스스로 ‘어리석은 친구’라고 말하고, 그런 자신의 말을 따른 상태라는 친구 또한 ‘바보 같은 친구’라고 말하십니다. 이 어리석은 친구, 바보 같은 친구라는 뜻의 ‘치우’라는 제목이 의미하는 바는 어쩌면 사람이 사람다운 삶을 사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는 뜻은 아닐까요. 그것이 아무리 나라와 자신의 사상과 관련된 것이라고 할지라도 말입니다. 저는 평소에 사상을 좇아 기꺼이 사람다운 삶을 내버리는 사람들을 멋지다고 생각했는데 이 작품을 읽고 그것이 과연 사람으로서 옳은 행동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가족을 잃으면서까지 지향해야하는 사상이 있을까요. 사상을 좇기 전에, 과연 나는 사람다운 삶을 살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하는 작품입니다.

제가 특히 인상 깊었던 작품은 「작은 촛불 하나」입니다. 한 중년 남성의 고해성사로 시작되는 이 작품은 부모의 사랑과 종교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처음 ‘아들을 죽이고 싶었다’는 충격적인 내용의 고해성사에 경악 했지만, 이어지는 아들에 대한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멀쩡했던 아들이 사고로 지체장애와 청력장애가 되어 자신과 아내에게 막무가내로 대하는 모습에 아버지는 ‘아들을 죽이고 나도 죽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이내 그런 생각을 한 것을 후회하고 고해성사를 하곤 합니다. 아들은 안하무인으로 굴다가도 금방 숙이고 들어와 애교를 부리기도 하고, 욕지거리를 하다가도 오래 사시라고 걱정을 하기도 합니다. 이런 아들의 모습을 보면서 부모님의 마음은 찢어집니다. 성체조배실에서 눈물을 글썽이며 아들을 걱정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 ‘아들을 죽이고 싶다’는 생각이 진심이 아닌 충동적인 생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세상에 어느 부모가 자식을 죽이고 싶을까요. 아무리 밉더라도 자식은 자식이지요.

“아버지 오늘 저녁에 한국과 이란이 축구합니다. 얼른 오시어 진지 드십시오. 그리고 저도 모레 주일부터는 성당에 나가겠습니다.”

지혁이 성당에 안 다닌 지도 10년이 넘었다. 그런데 다시 다니겠다는 것이다. 이런 말도 믿을 수 없다. 마음이 하도 잘 바뀌므로. 준호는 밖으로 나왔다. 바깥은 어느새 어두워져 있었다. 그러나 준호의 마음속에는 작은 촛불 하나가 켜진 것 같았다.

-「작은 촛불 하나」 중 p.159

아버지는 이런 힘든 현실을 종교에게 위로받습니다. 고해성사를 하고 성경을 읽어보며 현실을 버티는 힘을 얻는 것이죠. 저는 종교가 없어 사람들이 왜 종교를 믿을까 궁금했는데, 「작은 촛불 하나」를 보니 사람들이 종교를 믿는 이유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기 위함이 아닌가 싶습니다. 현실이 힘든 사람일수록 종교를 찾는 일이 많은 것도 그 이유겠지요. 작품 속 아버지의 현실은 희망이 없어 보입니다. 그렇지만 아들의 문자를 보고 마음속에 ‘작은 촛불 하나’가 생깁니다. 이때까지 상황으로 보아 아마 그 촛불은 다시 꺼지겠지만, 아버지는 다시 촛불 하나를 얻기 위해 고해성사를 하면서, 또 성경을 읽으면서 현실을 버텨나갈 겁니다.

 

 

『치우』가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사상, 종교뿐만 아니라 역사, 가난, 죽음 등 방대합니다. 하나만 해도 받아들이기 무거운 메시지기에 읽고 나면 벅찬 감이 없지 않지만, 그럼에도 이 책이 부담스럽지 않은 이유는 작가님이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에 있지 않나 싶습니다. 흥분하지 않고 차분하게, 거창하지 않고 담담하게 이야기를 풀어내는 문체 덕분에 작품을 다 읽고 나면 약간의 허무감이 들기도 하지만 그만큼 더 깊숙이 가슴으로 와 닿는 메시지가 있습니다. 처음 『치우』를 읽고 서평을 쓰기로 했을 때 내용이 내용인지라 막막했습니다. 그래서 쓰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기도 했어요. ‘조총련’이라든지 ‘보도연맹’과 같은 역사적 지식이 부족하여 한 작품을 두 번씩 읽어보기도 했습니다. (부끄럽네요ㅠㅠ) 그러나 다행히 뒤에 해설도 잘 되어있고, 블로그의 <저자와의 만남>에 이규정 작가님을 인터뷰한 글도 있어서 적절히 참고하여 무사히 이 글을 쓸 수 있었습니다. 많이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ㅇ^!!

 

치우 - 10점
이규정 지음/산지니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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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권 디자이너 2014.01.06 21: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규정 작가께서 '저자와의 만남' 때
    '해석은 독자의 몫이다'라고 말씀하신 기억이 나네요.
    작가의 의도가 어땠건 작품에 대한 독자의 감상과 관심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될 것 같습니다.
    내일 작가 인터뷰 잘 다녀와요.^^

    • 서류닝 2014.01.08 13: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다행히 인터뷰 잘 다녀왔어요 ㅎㅎ 좀 아쉽기는 했지만 ㅠㅠ
      너무 제 감상 위주로만 쓴건 아닐까 걱정했는데 이렇게 생각해주시다니 다행입니다!

  2. BlogIcon 온수입니까 2014.01.07 09: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빨간 목도리에 놓인 책이 너무 아늑하게 보입니다. 아마도 몇 번이고 책을 읽었던 그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것 같네요. 작가가 특별히 애정을 보인 작품과 편집하면서 편집자가 마음에 든 작품, 또 독자가 재미나게 읽은 작품 모두 조금씩 다를 수 있지만 역시나 미완성으로 해석할 수 있는 힘이 문학이 아닐까 합니다. 따뜻한 리뷰 잘 읽었습니다^^ 저도 방문해보지 못한 작가의 집...ㅎㅎ 화이팅!

    • 서류닝 2014.01.08 14:01  댓글주소  수정/삭제

      사실 사진을 예쁘게 찍고 싶어서 이리 저리 찾다가 발견한 여실지님의 목도리예요ㅎㅎ (여실지오빠 협찬 감사드려요!) 이번 서평을 쓰면서 느낀 건데 정말 문학은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것 같아요. 읽을 때마다 매번 생각이 달라지는 작품도 있고요. 그게 문학의 매력인듯^ㅇ^
      첫 인터뷰를 작가님의 집에서 하게 되서 긴장 백배였지만 더 기억에 남는 인터뷰를 한 것 같아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