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턴일기'에 해당되는 글 240건

  1. 2020.06.25 우리가 사는 지역에서 삶의 재미와 행복을 추구한다! 「월간 토마토」 (1)
  2. 2020.06.11 2020 원북원부산 북콘서트에 다녀왔어요! (2)
  3. 2020.06.09 [서평]『밤의 눈』과『국가폭력과 유해발굴의 사회문화사』를 읽고 (1)
  4. 2020.05.26 [서평] 청년들에게 들려주는 한국 진보정치사_『전태일에서 노회찬까지』
  5. 2020.05.15 [서평] 올해도 오월이 왔다_소설『1980』과 「전라도 닷컴」
  6. 2020.05.12 [서평] 일하는 사람들이 글을 써야 세상이 바뀐다_월간 「작은책」 (1)
  7. 2020.04.28 [서평] 당신이 곧 나이기 때문에_『어느 돌멩이의 외침』 (1)
  8. 2020.04.17 [서평]『그림 슬리퍼』: 사우스 센트럴의 사라진 여인들 (2)
  9. 2020.04.03 [서평] 잘못된 세상을 바로잡기 위해 또다른 잘못을 저지르는 게 혁명이라면 _김유철, 『레드 아일랜드』 (1)
  10. 2020.03.24 [서평] 아렌트를 좋아하세요... 『탈학습, 한나 아렌트의 사유방식』 (3)
  11. 2020.03.06 [서평]『나는 나』 가네코 후미코 옥중 서신을 읽고 (3)
  12. 2020.01.29 오디오북 체험공간 <소리내음> in 산지니x공간 (1)
  13. 2020.01.23 [저자와의 인터뷰]『팔팔 끓고 나서 4분간』의 저자 정우련 작가
  14. 2020.01.22 [저자와의 인터뷰]『나는 개성공단으로 출근합니다』김민주작가님 (2)
  15. 2020.01.21 [독서토론] 목표를 향한 그의 열정, 『세상에 나를 추천하라』를 읽고 토론을 하였습니다. (2)
  16. 2020.01.20 [저자와의 인터뷰]『오전을 사는 이에게 오후도 미래다』의 저자 이국환 교수님 인터뷰 (3)
  17. 2020.01.20 [저자와의 인터뷰] 이 시대의 진정한 가치를 묻다 『실금 하나』정정화 작가 인터뷰 (2)
  18. 2020.01.17 [저자와의 인터뷰] 『골목상인 분투기』의 이정식 저자님 인터뷰 (2)
  19. 2020.01.09 [서평] 『골목상인 분투기』 오늘도 행복한 자영업자를 꿈꾸다 (2)
  20. 2020.01.09 김민주 작가의 에세이 『나는 개성공단으로 출근합니다』 를 읽고 (2)
  21. 2020.01.09 [서평] 끓는점에 놓인 통증과 마주하다. 『팔팔 끓고 나서 4분간』 (2)
  22. 2020.01.09 [서평] 위선의 세계에서 만난 사람들, 『실금 하나』 (2)
  23. 2020.01.09 [서평] 작지만 따뜻한 삶의 위안, 『오전을 사는 이에게 오후도 미래다』 (3)
  24. 2019.08.27 [저자와의 인터뷰]『마지막 감식』의 정광모 작가님 인터뷰
  25. 2019.08.21 [서평] 세계 속의 해양문화를 만나다,『해양사의 명장면』

우리가 사는 지역에서 삶의 재미와 행복을 추구한다! 

월간 토마토」



부산으로 진학을 했지만, 사실 제 고향은 대전인데요. 

오늘은 반가운 잡지를 하나 소개하려고 합니다.



바로 공감만세에서 13년 째 발행하고 있는 「월간 토마토」입니다.

수원에는 「수원골목잡지 사이다」가, 전라도에는 「전라도닷컴」이 있는 것처럼, 대전에는 「월간 토마토」가 있답니다. 

고등학생이던 시절, 도서관에 가면 상큼한 제호에 끌려 몇 번 뒤적거리곤 했었는데 꽤 놀랐던 기억이 나요.

여타 잡지에선 볼 수 없는 대전 이야기로 꽉 차 있었거든요.

인터뷰는 대전 사람을 다루고, 칼럼은 대전의 이슈를 다루고, 피처는 대전의 동네를 소개하고! 어떤 기사든 대전 이야기로 모아진다는 게 그때의 저에겐 참 신기한 일이었어요. 

그동안은 무슨 매체를 펼치든 서울 사람과 서울 명소와 서울의 삶밖에 볼 수 없었거든요. 마치 세상에 서울만 있는 것처럼요. 사정이 그렇다보니 모두가 인서울을 외치는 것도 그리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았죠.

그런데 「월간 토마토」는 아무렇지 않은듯 대전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어요. 

우리는 서울 밖에 사는데 왜 서울의 이야기밖에 들을 수 없었을까? 월간 토마토는 그런 질문을 처음 만들어준 잡지였습니다. 

 


그 후로 많은 세월이 흘러, 부산에서 다시 만난 월간 토마토! 

예전에 봤던 토마토와는 제책방식이 완전히 바뀌었네요.

편집장 편지를 읽어보니, 삼 개월 동안 여러가지를 정비하고 리뉴얼해서 돌아왔대요. 

「월간 토마토」는 상자에 담아 배송이 되는데요,  꼭 과일박스가 연상되기도 하고.. 

많은 고민은 다양한 시도를 가능하게 하는 것 같아요.



제가 이번에 읽게된 154호와 155호는 <대전인쇄특화거리>와 <코로나19가 던진 질문>이 주제였어요. 

대전에서 나고 자랐지만 인쇄특화거리는 가볼 일이 없었는데, 이번에 집에 올라가면서 한번 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출판사에서 일하게 되면서 새롭게 관심이 가게 된 분야가 있다면 바로 인쇄인데요. 저는 주로 편집부에서 관련 업무를 했지만, 표지와 내지 디자인을 거쳐 책이 제작되어 나오는 장면들을 바로 옆에서 겪다보니 인쇄와 제본 방식에도 관심이 생기네요 ㅎㅎ 

책은 언제부터 책이 되는 걸까요? 

한글이나 워드 파일부터? 조판부터? 인디자인 파일을 출력해서 묶었을 때부터? 인쇄소에서 제본이 완료되었을 때부터? 

요즘에는 실과 본드를 빼고 낱장으로 된 책도 만들어지던데,(쪽프레스)

인쇄특화거리가 스러져가고, 꼭 추억속의 풍경이 되어가는 요즘

'책의 꼴'이란 어떻게 변화하게 될까요? 




Posted by 예빈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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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날개 2020.06.26 11: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박사님의 마지막 포스팅 잘 읽었어요~ 고향인 대전에서 만들어지는 '월간 토마토'라 더욱 뜻깊었을 것 같네요.
    잡지만이 가진 독특한 감성에 빠지면 헤어나오기가 쉽지 않죠 :)


코로나19의 여파로 모든 행사가 취소 되었던 2020년 상반기.. 

덕분에 사무실에서 책 읽고 서평만 쓰다가, 

인턴 기간 끝물이 되어서 드디어 외부 행사를(!) 다녀오게 되었어요. 


바로 어제 오후 3시에 부산 시민도서관에서 진행되었던 

2020 원북원부산 북콘서트 입니다.


벌써 17년째를 맞고 있는 원북원부산 운동!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행사도 최소인원 (40명)만 모집받아 진행되었습니다.


모집 6분 만에 서버가 다운되어 버리는 바람에

제가 엄청 가슴을 졸였었는데요... 

다행히 선착순 마흔 명 안에 들어서, 참가티켓을 쟁취할 수 있었습니다.



(대표님의 뒷모습..)


목적지는 진구에 위치한 부산시민도서관!

지하철과 택시를 갈아타며 행사에 늦지 않게 달려갔습니다.




입장부터 손소독, 발열체크, 문진작성까지.. 

실내에서는 코로나19 예방을 위해 지그재그로 착석했습니다.



참석인원 전원에게 선물을 쥐어주셨는데요, 

원북원 선정 도서 3권 중 1권, 물, 볼펜, 그리고 강다니엘 앨범(ㅋㅋ)이 들어있었습니다.



저는 『선량한 차별주의자』를 받았어요.  나래 편집자님, 같이 읽어요!! 



올해의 원북원 선정도서 3종입니다!

산지니가 만든 『오전을 사는 이에게 오후도 미래다』는 일반 부문에 선정되었어요.

저자 이국환 교수님께서는 전문가가 아닌 일반 시민들이 주신 상이라 더 기뻤다는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원북 운영위원장이신 구모룡 교수님.. 반가워서 한컷.. ㅎ 

(책에서 자주 뵙다보니 실제로 뵙는 건 처음인데도 내적 친밀감이 형성되었습니다..)



2부는 원북원 선정 도서 작가 세 분과의 북토크로 이루어졌어요.


코로나19, 언택트 시대라고들 하지만 책과의 접촉은 여전하다며 코로나가 앗아갈 수 없는 낭만이 있다는 이국환 교수님 말씀에 고개를 몇차례 주억거렸습니다. 

저도 책장을 넘길때 만지게 되는 종이의 촉감에서 곧잘 낭만을 느끼거든요.

교수님은 코로나 덕분에 옛날에 읽었던 책을 다시 읽고 있다며 

앙리 르페브르의 『현대세계의 일상성』을 언급하셨는데요, 

 일상을 그리워하지만 사실 우리는 일상을 잃어버린 게 아니라 

새로운 일상을 만난 것이라는 말씀도 전하셨어요. 




북토크 열기가 뜨거워서 예정된 시간을 한참 넘겨서야 마무리가 되었는데요,


여러모로, 원북원부산 운동이 지역공동체 문화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다는 걸 

현장에서 생생히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또 가고 싶어요! 



선량한 차별주의자 - 10점
김지혜 지음/창비
우리 동네에 혹등고래가 산다 - 10점
이혜령 지음, 전명진 그림/잇츠북


Posted by 예빈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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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날개 2020.06.11 11: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예빈 씨 덕분에 현장에 다녀온 듯하네요^^
    코로나가 앗아갈 수 없는 종이책의 낭만에 대해 저도 공감합니다~

  2. BlogIcon 동글동글봄 2020.06.11 13: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예빈 박사님 덕분에 저도 현장에 다녀온 듯해요. 아주아주 생생하네요. 새로운 일상을 만난다는 말이 저는 공감가네요^^

조국의 산천도 고발하고 푸른 별도 증언한다.

밤의 눈』과 『국가폭력과 유해발굴의 사회문화사』를 읽고


인턴 최예빈

 

당신이 죽은 뒤 장례를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습니다.” 이 문장은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속에 등장하는, 5월의 광주에 바치는 레퀴엠이다. 국민보도연맹(국민보호지도연맹, 약칭 보련) 학살과 유해발굴을 다룬 책을 읽는데, 어쩐지 이 문장이 계속 머릿속에서 맴을 돌았다.

통과의례라는 개념을 처음 제시했던 아널드 반 제넵에 따르면, 인간사회가 죽음을 처리하는 방식인 장례1. 기존 지위에서의 분리 2. 리미날 기간(liminal period) 3. 재통합 이라는 삼분 구조로 되어있다. 제넵은 특히 이 의례구조에서 리미날 기간을 강조했다. 리미날 기간은 산 자와 죽은 자 모두 새로운 지위로 진입하기 위해 꼭 거쳐야 할 과도기 상태로서, 수많은 금기를 지키고 의례를 수행해야 극복이 가능하다. , 리미날 기간을 통해 산 자는 죽은 자를 위한 의례의 의무로부터 벗어나게 되며, 망자는 사령 상태에서 조상의 지위를 획득하여 마침내 죽은 자의 세계로 들어가게 된다

그러나 비정상적 죽음(uncommon death)’은 갑작스레 들이닥치고, 이 리미날 기간을 벗어날 수 있게 하는 적절한 의례의 기회를 빼앗는다. 죽은 자와 산 자 모두 새로운 지위를 부여받지 못해 산 자는 죽은 자에 대한 의무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죽은 자 또한 새로운 세계로 진입하지 못한 채 구천을 떠돌게 된다. 그러니 당신이 죽은 뒤 장례를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다는 한강의 문장은 한낱 비유나 과장이 아닌, 정확하게 폐부를 찌르는 진실이다.

 

반공을 제일의 국시로 삼아왔던 한국사회에 비정상적 죽음은 너무 잦게 찾아왔고, 이런 역사는 달마다 한반도 곳곳에서 떼제사를 지내게 했다. 4월에 제주43, 5월에 광주518이 있다면 6월에는 한국전쟁 기념일이 있다. 올해는 육이오 전쟁 70주년이자, 우리가 휴전’ 70년이라는 기록을 세우게 되는 해다.

 


밤의 눈은 한국전쟁 때 자행됐던 보도연맹 학살을 다룬 소설이다. 보도연맹이란 이승만 정부가 좌익인사 관리를 목적으로 조직한 단체로 한국전쟁 발발 1년 전에 만들어졌다. 표면적으로는 좌익사상에 물든 사람들을 전향시키고 보호하며 인도한다는 취지로 결성되었으나, 지역별 할당을 채우기 위해 고무신이나 쌀 등으로 일반인들의 가입을 무차별적으로 유도하는 일도 많았다. 보도연맹을 운영하는 국가의 논리는 상당히 이중적이었다. 전쟁 발발 이전에는 보도연맹 가입자 수가 많은 지역일수록 애국심이 뛰어난 지역이라는 평가를 내리는 등 전향에 커다란 무게를 두었지만, 전쟁이 터진 후에는 보도연맹 가입자=빨갱이 전적자 라는 도식만 남기고 전향에 부여했던 가치를 휴지조각으로 만든 뒤 즉결처분을 내린다. 아무리 전쟁 중이라고 해도, 정부 주도로 만든 반공단체에 가입한 민간인을 대량 학살하는 것은 국가의 존재 이유(그리고 전쟁의 이유)를 되묻게 만드는 모순적인 행위다.


 


전쟁에 승패가 있다면, 그 승리는 특정하게 지칭할 수 있는 어떤 사람들이나 국가가 아닌 개념적 국가와 민족의 몫이다. 국가는 전장에서 희생된 개인을 열사로 추앙함으로써 안보와 호국을 강조하고 국가성을 강화한다. 반면, 전쟁 중에 수행된 민간인 학살 피해자들은 국가에 전자와 같은 반사이익을 가져다주지 않기 때문에 위령 될 수 없는 원혼이 된다. 남겨진 산 자들에게는 오직 침묵과 망각만이 강요된다. 이렇게 패배는 구체적, 물적으로 존재하는 인간 개인 모두에게 돌아간다. (우리가 만약 승전국국민일지라도, 전쟁 이후 인간으로서의 우리에겐 오직 패배만이 남는다.)

 

"내 말은 육이오 때 죽은 사람도 구분이 있어야 한다, 그 말이다! 보도연맹에 가입했다 억울하게 죽었다고 사일구 뒤에 외고 편 놈들, 그때 군인이나 경찰 나가 죽은 유가족들 심정 생각이나 해 봤나? 얼마 전에 우리 시장 안에 그때 설친 자가 있다는 소리 듣고 사일구 뒤가 생각나는 거라. 오일육 아니었으몬 빨갱이들이 나라 말아먹었을지도 몰라! 대한민국 국민이몬 다 같은 국민인 줄 아나? 부산 시내 다쫓겨다니다 어데 수정시장에 나타나 까불고 있어!"

밤의 눈p.345

 

국가폭력과 유해발굴의 사회문화사에서 저자 노용석은 비정상적 죽음을 정상적 죽음으로 되돌리는 유해발굴과 의례 작업 과정에서 꼭 다루어야 할 문제로 죽음의 위계화를 꼽는다. 국가적 차원에서 죽음의 위계화는 사회적 죽음에 해당 되는 죽음을 취사선택함으로써 이루어진다. (군경의 죽음 vs 민간인의 죽음) 그래서 민간인 피학살자에 대한 사회적 기념 또한 이러한 구조에 몸을 맞춰 이뤄지곤 한다. 유족회의 위령제나 각종 행사에서 과도하게 태극기를 노출하고 애국가를 열창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추모 대상인 희생자들이 순수한 양민이었음을 강조하기 위한 하나의 퍼포먼스다. (‘가짜 빨갱이의 죽음’ vs ‘진짜 빨갱이의 죽음’) 민간인 학살 추모와 공동체적 기억의 복원이 이런 식으로 흘러선 안된다. 죽음의 위계화는 빨갱이 만들기에 대한 본질적인 물음을 흐리고 국가주의에 다시 복무하며, 최종적으로는 학살의 원흉이 되었던 이데올로기를 방치하고 승인한다.

 


밤의 눈후기에 조갑상 작가는 힘든 시대를 살았던 이들이 소설 속 인물로 다시 태어나 세상과 만났다고 썼다. 영혼에게 무당의 입을 빌려주어 자신의 한을 토로하게 한 뒤, 그를 이승과 무사히 작고하게 도와주는 천도재처럼, 문학은 이렇게 하나의 위령제 역할을 한다. 그들이 따뜻한 가슴을 지닌 독자들을 많이 만나 위로받고, 자유로웠으면 좋겠다는 작가의 바람을 읽고 생각한다. 나는 그들을 충분히 위로했을까? 우리 사회는 리미날 기간을 제대로 통과하고 있을까

그토록 많은 희생을 치르고, 엄결한 반공주의를 기치로 지켜낸 세상이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로 점칠된 바로 지금이라면. 밤의 눈은 여전히 모든 것을 보고 있다. 








밤의 눈 - 10점
조갑상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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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예빈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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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날개 2020.06.10 08: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두 개의 책을 이렇게 연결하여 보니 새롭네요. 잠시 멈춰 생각할 수 있는 글이었어요. 좋은 서평 잘 읽었어요:)

청년들에게 들려주는 한국 진보정치사

전태일에서 노회찬까지



"이 결단을 두고 얼마나 오랜 시간을 망설이고 괴로워했던가? 지금 이 시각 완전에 가까운 결단을 내렸다. 나는 돌아가야 한다. 꼭 돌아가야 한다. 불쌍한 내 형제의 곁으로, 내 마음의 고향으로, 내 이상의 전부인 평화시장의 어린 동심 곁으로 ... 나를 버리고, 나를 죽이고 가마. 너희들의 곁을 떠나지 않기 위하여 나약한 나를 다 바치마..."


전태일


지금으로부터 50년전, 그러니까 '시다'들이 하루에 16시간을 일하고 90원 내지 100원의 급료를 받아야 했던 시절, 그러고도 한 달에 딱 이틀을 쉴 수 있었던 시절, "노동자는 기계가 아니다"라 외치며 스스로의 몸을 태웠던 사람이 있다. 이제는 한국 노동운동의 상징이 된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의 이야기다. 



전태일 50주기를 맞아 11개 출판사가 기획한 출판 프로젝트 <너는 나다>. 산지니에서 펴낸 『전태일에서 노회찬까지』는 진보정치인이자 시사만평가인 이창우 작가가 진보주의적 관점으로 한국의 현대정치사를 조망해낸 책이다. 


"청년들에게 들려주는 한국 진보정치사"라는 부제에 걸맞게, 책은 현 시대의 20대 독자를 청자로 두고 가상의 청자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식으로 시작한다. 저자는 전태일의 삶과 죽음을 접한 후, 그 이전과 같은 삶으로 다시는 돌아갈 수 없었다고 말한다. 전태일의 분신은 '앎과 함의 일치'라는 실존적 고민을 깊숙이 심으며, 당대 젊은이들에게 가히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일으키는 계기였다.

'앎과 함의 일치'는 노동운동의 판을 뒤바꿨다. 70년대 활동가들이 외부에서 지원하는 방식으로 운동을 펼쳤다면, 전태일 분신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80년대 활동가들은 아예 현장으로 들어가 '존재를 이전'하며 노동자를 직접 조직하는, 이른바 '학출'의 방식으로 활동했다. 

이제는 대권후보로 거론되는 정의당의 심상정 의원 또한 이 '위장취업' 첫 세대로, 85년 구로동맹파업을 이끌며 87년 노동자 대투쟁의 초석을 닦았다. 




박정희체제는 노동자를 힘써 일하라는 의미의 '근로자'로 고쳐 부르고, 농촌에서 허리가 휘게 일하는 농민은 '농군'이라는 전체주의적 군사용어로 연병장에 도열시키듯 동원했고, 그 자식인 노동자들에 대해서는 또 '산업전사'라고 불렀으며 공장에는 '회사 일을 내 일처럼, 근로자를 가족처럼'이라는 표어를 붙여 가부장주의적 자본주의체제로 노동을 통제했지. 

p.19



산업화 시대, 국가는 가부장주의적 유교논리를 사회 전체로 확장시켜 국가주의를 견고히 하는 수단으로 삼았다. 국민 개인의 권리보다 조국의 근대화를 우선했기에, 기업의 생산력 향상 앞에서 노동자들의 처우개선은 얼마든지 등한시 되었다. 
이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노동자―특히 여공은 이중적으로 다뤄졌다. 필요할 때는 조국 근대화에 이바지하는 '산업전사'로 명명하여 무성화시킴으로써 높은 노동 강도를 방치했지만, 다시 '여성의 노동'이라는 점을 이유로 들어 저임금을 합리화했다.(이는 유동우의 『어느 돌멩이의 외침』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재단사로 일할 수 있었던 남성과 '시다' 여성의 처우는 크게 달랐다) 여성의 임금은 생계보조적인 임금이며, 여성의 노동력은 남성의 그것보다 상대적으로 열등하다는 유교적 관념의 산물이 아니었을까. 

내게 처음 강렬히 각인되었던 '노동운동'은, 다큐멘터리 <밥꽃양>으로 접하게 된 현차노조 여성노동자들의 모습이다. 그동안 노동운동은 빨간 띠를 이마에 질끈 동여맨 아저씨들의 이미지로만 재현되었기에, 여성노동자들이 궐기하는 풍경이 내겐 너무 충격적이고 낯설게만 보였다. 하지만 사실, 내가 몰랐을뿐이지 한국의 노동운동은 동일방직투쟁 등 섬유업에 종사하던 여성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태동했다
『전태일에서 노회찬까지』를 읽으며, (여성에서 남성으로의)노동운동 주체 변화는 구로동맹파업에서 노동자대투쟁으로 이어지는 과정 속에서 일어났겠구나 하는 짐작을 해본다. 나는 한국의 민주화운동과 노동운동이 지나치게 가까이 닿아있었던 것에 비판적이기 때문에 (민주화담론에 기초한 노동사 해석은 노동운동을 무모순의 '신화'로 만든다) 저자의 관점에 완전히 동의하지는 않지만, 물흐르듯 이어진 서술을 따라가다보면 "왜 이렇게 됐을까"에 대한 의문이 풀리게 된다. 




책은 전태일 분신으로 시작된 이야기를 박정희 유신정권, 광주항쟁, 전두환 신군부 출현, 전노협 건설 등으로 이어가며 '노동자 정치세력화'라는 줄기에 정확하게 도착한다. 교과서로 알음알음 접했던 굵직한 사건들을 한 줄기에 올려놓고, <노동의 정치>라는 명료한 관점으로 역사를 재편한다.  

2부부터는 민주노동당 창당 등 진보정당 이야기를 중심으로 조금 더 세밀한 한국 현대정치사를 들려주는데, 이 부분이 흥미롭다. 87년 체제, 비례대표 제도변천사, 정치스타 노무현의 등장, 결선투표제, 정몽준의 노무현 지지철회, 전략투표와 소신투표의 딜레마, 노무현 정권의 이라크 파병문제, 이석기 내란음모와 통진당 해산, 가깝게는 세월호와 박근혜 탄핵, 그리고 노회찬의 죽음까지 ... 뉴스를 보며 궁금했던 용어와 사건의 배경들이 연결되어 펼쳐진다. 


심상정은 진보정당이 '진보적이지만 정치적이지 못하면 정당으로서 성공하기 어렵다'는 분명한 입장을 갖고 있었다. 이때 정치적이란 말은 자신의 신념을 고백하는 것을 넘어 결과물을 성과있게 만들어 내는 능력을 뜻하는 것이었다. 이는 막스베버가 말한 '신념윤리'를 바탕으로 하되, '책임윤리'를 자각한 정치인의 자질이었다. 


정치는 선한 의도가 아니라 결과에 책임을 지는 일이라고 한다. 전태일 50주기, 얼마전 광주에서는 청년 노동자가 파쇄기에 몸이 빨려들어가 사망했다. 정의당은 '혁신위원회'를 발족하고 87년생 장혜영을 위원장으로 선출했다. 진보정당과 진보정치의 역사는 또 어떻게 흘러갈까. "정의당이 문제 제기 정당이 아니라 문제 해결 정당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이혁재 세종시당위원장의 말에는 뼈가 있다.





전태일에서 노회찬까지 - 10점
이창우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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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오월이 왔다

소설 『1980』과 <전라도닷컴>

_인턴 최예빈



 "사람들하고 같이 있을 때문 놈(남)이 우슨께 기양 따라 웃어요. 재미지게 웃어싼 사람 보문 뭣 때문에 웃으까 속으로 그래져요. 나는 웃음이 어디로 가불었어. 웃어도 헛웃음이여요. 오월이 오문 마음이 더 슬프고 질(길)에 가도 아들 또래만 눈에 들어오고..."

<전라도닷컴> 217호, "놈이 가슴 아픈 일 저끄문 꼭 이녁일 같단 말이요" 中



민주화 주간인가보다. 『어느 돌멩이의 외침』을 시작으로, 대표님께 자꾸 이런 책을 받는다. 달력을 보니 수긍이 간다. 오월이니까. 가정의 달이라는 5월에, 가족을 잃은 사람이 많다.


노재열 작가의 『1980』을 읽었다. 

소설은 1980년을 전후한 1년여의 이야기를 부산의 시점으로 다루고 있다. 1980년은 광주에서 5.18민주화 운동이 있었던 해다. 저자는 그보다 한 해 앞선 1979년에 부마항쟁을 이끌었다는 죄목으로 경찰에게 쫓기다 수감되었다. 그는 전두환군사정권 8년 동안 수차례 감옥을 들락거리며 사회운동에 힘썼던 사람으로, 현재는 부산에서 노동상담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저자의 이력을 보니, 『1980』이 그의 자전적 소설이라는 점을 확실히 알겠다. 소설은 15P영창에서 주인공 정우가 얼차려를 받는 장면으로 시작하여 그가 수감된 전말과 그 전후 상황을 상세히 들려주며 근현대사의 질곡을 묘사해간다. 

작가의 분신으로 이해되는 주인공 '정우'는 독재정권 치하에서 대학 내 지하서클에 가담중이던 '뼛속까지 운동권' 학생이다. 서클 내에서 연애를 했다는 이유로 아끼던 후배를 퇴출시킬 만큼 그에게는 오직 "민중"뿐이다. 


'이 엄혹한 시대에 연애 따위를 할 여유가 어디 있느냐 혁명운동에 온몸을 다 바쳐도 모자라지 않느냐, 특히 남녀가 연애를 할 경우 정신이 흩트려지기 쉽다. 서로가 연애감정을 갖는 건 개인적 취향에 따른 것일 뿐, 인류평등의 사상이나 보편적인 인간애와는 동떨어진 부르주아적 관념이다.'

『1980』 中


정우의 이러한 인식은 2010년 후반대에 대학을 다닌 나를 왠지 민망스럽게 하는 구석이 있을정도로 엄중하고 진지하다. 먹고사니즘만이 유일한 이데올로기로 부유하는 대학에서, 이제 혁명이란 어디 먼나라 이야기 같기도, 영영 빼앗긴 단어인 듯 느껴지기도 한다. 

내가 1~2학년일 때는 술자리에서 이런 노래를 부르곤 했다. 

"사랑은 감미롭게, 투쟁은 치열하게, 아~ 미운 사람!" 

내가 별 생각 없이 주워다 불렀던, 먼 윗대 선배들로부터 내려왔다던 이 노래도 차츰 안부르게 된지 몇 년이 지났는데, 『1980』을 읽으면서 불현듯 떠올랐다. 그래, 예전에 대학생들은 투쟁을 했었다. 

 

대부분의 인간은 자신이 직접 경험하거나 자신에게 주어진 사실이 진실이라는 확신이 설 때 그것을 자신의 의식으로 정립하는 겨우가 많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어떠한 논리를 편다고 할지라도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동의를 얻어 내기가 어렵다. 경험이나 확신조차도 믿을 수 없는 경우가 많은데도.

『1980』 中


사회모순과 자신의 문제의식을 대하는 정우의 태도는 매우 진지하다. '진지하다'의 뜻이 "마음 쓰는 태도나 행동 따위가 참되고 착실하다" 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그는 정의감에 따라 행동하지만, 자신이 정의내리는 정의에 대한 질문 또한 계속해서 병행한다. 『1980』의 미덕은 여기에 있다. 이 소설은 불온한 역사의 탄압속 맡은바를 느끼며 민주화 운동을 펼쳐야 했던 대학생 정우의 투쟁기를 담은 '운동권 소설'이나, 다양한 인물을 통해 정우에게 지속적으로 생각할 거리를 던져줌으로써 사건을 좀더 입체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무력투쟁으로 정권을 탈취하는 것만이 지름길이라며 행동주의를 강령으로 삼았던 영호, 고문 후유증으로 정신착란을 겪으며 예수를 자임했던 정군, 맞아죽을 바에야 스스로 모가지를 따야한다며 자살한 반장 번개까지 차례차례 정우에게 방향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꽃은 봄에만 피는 것이 아니라 여름에도 피고 가을에도 피고, 심지어 추운 겨울에도 꽁꽁 언 땅을 비집고 눈 속에서도 피어난다. 그러므로 꽃피는 봄이 봄이라면 사계절이 모두 봄이어야 했다.

그렇다면 봄은 무엇일까? 유난히 봄에 꽃이 많이 피어서 꽃피는 봄이 되는 것인가? 그리고 또다른 봄, 꽃피는 봄이 아닌 때에도 꽃이 피는 것은 왜일까? 그 봄을 기다리기에는 너무나 먼 날들이기 때문일까? 그 기다림이 다하기도 전에 꽃들이 전부 죽어 버릴까봐, 다른 계절에 몇 송이 꽃이라 할지라도 꽃을 피우게 되는 것일까? 

그래서 그 꽃이 민중이라면 민중의 봄을 기다리고자 한다면 그 민중으로 다가가는 억울한 자들이 계절의 꽃이 되는 것인가? 그러므로 꽃피는 봄은 소외된 자의 봄을 딛고 억울하게 갇혀 잊힌 자들의 봄을 딛고 꽃이 만발하는 것인가? 

『1980』 中



소설은 정우가 10.16부마민주항쟁, 박정희의 죽음, 전두환의 취임을 연이어 목격하면서 스스로 '도망자' 생활을 끝내고 '탈주'하기를 선택하면서 끝낸다. 이어질 1980년 5월의 열기를 암시하며.


1979년 10월 소설 속 정우가 이끌었던 부마민주항쟁이 있은지 바로 다음해, 광주에서는 5.18 민주화운동이 일어난다. 5.18은 갑자기 단독으로 튀어나온 것이 아닌 10.16의 연결선상에 존재한다. 부산과 광주의 이 경험들이 각각의 독립된 사건처럼 이해된다면 그 끝은 또다시 지역감정(이라고 쓰이지만 사실은 일방적인 전라도 혐오)으로 수렴되고 말 것이다. 저자는 이렇게 이야기 한다. 


전두환 군사쿠데타세력은 1980년 5월 광주시민을 폭도로 몰아붙이기 7개월 전에, 이미 부산시민을 폭도로 몰아붙였다. 1979년 10월 부산시민의 투쟁과 1980년 5월 광주시민의 투쟁은 연속선상에 있었다. 그 7개월이라는 시간은 단절된 것이 아니라 연속된 것이었고, 그 속에서 진행되었던 민중들의 투쟁은 점점 커져가는 폭압에 맞서 자신들의 투쟁을 확대해 나가는 것이었다. 

『1980』 中


이렇게 연결지점을 찾고, 지속해서 공통의 이야기를, 역사를 일궈내는 일이야말로 날조된 지역감정 복원에 일조한다.


부산의 이야기, 『1980』을 읽고 전라도 지역잡지인 월간 <전라도닷컴>을 들춰봤다. 40돌을 맞은 5.18을 특집으로 한 기획기사들을 읽을 수 있었다.  


"모든 슬픔은, 말로 옮겨 이야기로 만들거나 그것에 관해 이야기를 한다면, 참을 수 있다."


살아남은 자의 가장 중한 역할이란 죽은자들에 대한 기억을 망각으로부터 지켜 내는 일이라고 했다. 오월은 매년 오고, "남이 가슴 아픈 일을 겪으면 꼭 이쪽 일 같다"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도 마음을 다잡는다. 남의 슬픔까지도 껴안는 사랑은 감미롭고, 투쟁은 언제까지나 치열해야 한다. 


 

주소인 양 담담히 "우리 아들은 3묘지 66번이요"라고 묘역 번호를 말하는 어매.

"보고자플 때마다 가요. 부상자 친구들이 조르라니 묘가 있어요. 아들 친구들도 다 보고 와요."

수많은 주검들이 여전히 서늘하고 처연하게 오월을 증언하는 망월동 묘지. 그럼에도 한편에선 오월을 둘러싼 왜곡과 폄훼가 극악하다.

"지만원 같은 사람들은 오일팔을 북한에서 넘어온 군인들이 저지른 일이라고 거짓말을 해쌓고 또 어떤 사람들은 오일팔을 자그마니 우려묵으라고도 하고...."

남의 아픔을 헤집고 진실을 조롱하는 자들 너머 자신이 고통을 딛고 남의 슬픔을 껴안는 사람들이 있다.

"놈이 가심 아픈 일 저끄문 꼭 이녁일 같단 말이요. 세월호 사고로 죽은 아그들도 짠하고 부모도 짠하고. 팽목에도 가보고 그 부모들도 만났어요. 우리가 그 부모들 나이 때였어요. 우리 애기들 갈 때가."


<전라도닷컴> 217호, "놈이 가슴 아픈 일 저끄문 꼭 이녁일 같단 말이요" 中



1980 - 10점
노재열 지음/산지니

다시 시월 1979 - 10점
10·16부마항쟁연구소 엮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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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하는 사람들이 글을 써야 세상이 바뀐다 

월간 「작은책」



인턴 최예빈

월간 <작은책>25주년을 맞았다. <작은책>은 노동자 생활문예집이라는 정체성을 품고, 199551일 노동절을 맞아 발간을 시작한 잡지다. ‘작은책이라는 이름답게, 한뼘 정도 되는 자그마한 크기로 노동자들의 삶과 맞닿아 있는 짧은 글들을 충실히 싣고 있다.

이번 호에는 발행 25주년을 맞아 "요즘 뭐 해 먹고삽니까?" 라는 질문을 화두로 엮은 특집이 실려있다. 서점 주인, 독립영화감독, 건설 현장 노동자, 어린이집 교사, 만화가 등 '일'하는 다양한 이야기들을 담았다. 코로나 19사태로 바뀐 일하는 풍경이 일견 새롭긴하지만, 사실 '버티면서 먹고 산다'는 점에는 코로나 전이나 후나 별 다름이 없어보인다. 이러나저러나, 전염병이 창궐하나 마나, 우리가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은 불변의 진실이다. 밥해 먹고 살아야 하니까. 

그래서 "뭐 해 먹고 사냐"는 작은책의 질문은 단출하지만 사실 무겁고 진지한 물음이기도 하다. 그 질문은 당신은 무얼 먹고(밥해 먹고?) 사냐는 게 아니라, 당신은 무엇으로 먹고 사는지에 대한 물음이기 때문이다. 

필자들은 저마다 자기가 어떤 '일'로써 생계를 잇고 있는지, 어떤 연유로 그 '일'을 하게 되었는지 조곤조곤 이야기한어떤 사람은 유학을 위한 자금을 모으려고 일하며, 어떤 사람은 은퇴 후 꼭 일할 필요가 없는데도 자신에 대한 신뢰를 잃지 않기 위해 일한다고 한다. 노동은 살림을 꾸리는 밑천이기도 하나, 누군가에겐 삶의 밑천이기도 하다. 그런가하면 어떤 사람은 누적된 노동에도 도무지 나아지질 않는 형편에 대해 질문하고, 어떤 사람은 지면 위에 '과로'사망을 꺼내며 노동환경을 지탄하기도 한다. 이 작은책에 사는 이야기가 다 담겼다. 

그러니까, "요즘 뭐 해 먹고 사냐"는 질문은, 어쩌면 톨스토이적부터 내려온 계보를 잇는 질문(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을 요즘 식으로 달리 말한 것일지도 모른다. 




지금은 작은책 발행인이 된 안건모는 원래 작은책의 오랜 독자다. 시내버스 운전기사로 재직하던 시절 처음 썼던 노동수기가 시작이 되어, '시내버스를 정년까지'라는 글로 1997년 전태일 문학상을 받으며 지금껏 글쓰는 사람으로 살아오고 있다. 23년전 전태일 문학상을 받았던 그가, 이제는 잡지 발행인이 되어 뒷면에 "전태일50주기 공동 출판 프로젝트 - 너는 나다"를 홍보한다. 

그가 낸 책들을 몇 권 읽으며, 안건모는 '사는 일'이 곧 책이 된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특히 싸움의 품격을 읽으니 그가 왜 작은책을 이다지도 열심히 짓는지 여실히 알수 있었다. 


글과 일과 책과 삶! 

오늘은 이 단어들이 전부 한 글자라는 점이, 서로의 기원을 말해주는 것만 같다고 써본다. 




한겨레 기사 바로가기 "작은책이지만 한국 노동자들의 커다란 역사 담았죠"






싸움의 품격 - 10점
안건모 지음/해피북미디어

삐딱한 책읽기 - 10점
안건모 지음/산지니


전태일에서 노회찬까지 - 10점
이창우 지음/산지니


책 주문하기 >> https://goo.gl/cUJW3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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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Peace21 2020.05.13 08:4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삶과 일을 되돌아 봄, 글과 책을 들여다 봄...
    짧은 봄을 아쉬워 하며 한 글자 보태봄!
    그리고, 작지만 큰 책에 관한 이야기 잘 읽었습니다~ :)

 [전태일 50주기 공동 출판 프로젝트] 

 '너는 나다' 


당신이 곧 나이기 때문에

어느 돌멩이의 외침


인턴 최예빈 


어느 때 한 시절을 풍미하는 책들은 자연히 시대정신과 그 배경을 담기 마련이다. 리영희의 <전환시대의 논리>, 잉게숄의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 제각각 장르도, 결도, 국가도 다르지만 내게는 모두 한국의 7-80년대를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하게 해주는 책들이다. 이제 여기에 한 권이 더해진다. 바로 유동우의 <어느 돌멩이의 외침>이다.

이 책의 이름을 처음 알게된 것은 학부 때(졸업을 못했으니 지금도 학부지만) 한창 교지를 만들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20세기 후반 이념전쟁을 그대로 거쳤던 대학잡지는 재밌는 구석이 많았다. 재고로 쌓여있던 90년대 출간 교지들을 읽어보면 NL이니 PD, 지금의 대학생으로선 뜻모를 단어들이 가득했다. (표지에는 빨간색으로 극우반동분자구독금지딱지가 붙어있었으니, 말다했다.)

그때 그 낡은 교지를 펼쳤다가 눈에 들어온 것이 바로 <어느 돌멩이의 외침>이다.


그렇게 외워둔 제목을 3년이 지나 산지니 인턴을 하면서 다시 마주쳤다.


 

유동우 지음, 철수와영희 펴냄


<어느 돌멩이의 외침>은 노동문학의 고전이라 일컬어지는 작품이다. 한때 운동권 학생들의 필독서였던 이 책은 당시 공안에게 금서 처분을 당하면서 대화출판사, 청년사 등 출판사를 달리하여 출간되었다가 정지되기를 반복하는 수난을 겪었다. 90년대 초 청년사 판본을 마지막으로 유통되지 않았던 <어느 돌멩이의 외침>은 2020년, 전태일 50주기를 맞아 기획된 공동출판프로젝트 '너는 나다'를 통해 다시 세상에 나왔다. 


저자 유동우는 가난한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나 어린 나이에 공장노동을 시작한다. 70년대 노동환경은 열악하기가 이루말할 수 없었다. 임금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그저 끼니를 챙겨주는 것에 감사해야했던 함빠생활은 노예노동에 가까웠다. 기독교인으로서의 자아를 강하게 갖고 있던 유동우기업의 이런 횡포와 착취를 묵과할 수 없었다. 저자는 결국 여러 각성과정을 거쳐 70년대 초, 인천의 삼원섬유에서 본격적으로 노동운동에 뛰어든.

사측의 방해공작과 어지러운 시대상황 탓에 어려움이 많았지만, 저자는 마침내 외국인투자기업은 노조를 설립하지 못한다는 묵계를 깨고 삼원섬유에서 노동조합을 만들어낸. 부평공단 최초의 노조였다. 이제 삼원섬유의 종업원들은 노조를 통해 근로자가 아닌 '노동자'로서의 의식을 각성하고, 자기 권리를 찾기 위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누구든지 남의 권리를 침해할 수 없다는 본보기로 보여주어야지요우리가 노동조합을 하는 것도 다른 것이 아니에요기업주의 횡포에 대해 법에 의해서 우리의 권익을 보장받자는 것이지요기업주에 대해선 노동자의 권리를 찾아야겠다면서 남성에 대한 여성의 권리는 짓밟혀도 좋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모순이잖아요여성으로서의 권리나 노동자로서의 권리또한 사람으로서국민으로서의 권리를 우리는 철저히 찾아야 합니다


각성은 도미노처럼 작용한다
. 한번 고취된 의식은 전방위적 감각을 일깨우고, 여성 노동자들에게 노동자 여성으로서의 위치를 자각하게 했다노동과 여성이라는 두 가지 요소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새로운 형식의 억압과 지배구조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공장 노동자의 절대 다수가 여성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 노동자들은 남성에 비해 못한 대우를 받았다. 그들은 상대적으로 공임이 적은 가공부에 소속되었으며, 그마저도 깎이기 십상이었다. 적은 임금에 쪼들리던 여성들은 다방과 술집으로 '부업'을 나가는 등 사실상 가장 취약한 위치에 놓인 실정이었으나, 초기 노조의 설립을 주도하고 간부직을 도맡은 것 또한 모두 남성 노동자였다.



그랬던 여성 조합원들은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찾아가면서 저항의 원리를 터득하고, 자신들에게 내재되어 있던 가부장적 사고방식을 차츰 깨뜨려간다. 자발적으로 공부모임을 조직하고 사회문제에 대해 토론하면서,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남성의 보조자가 아닌 책임자로 스스로를 위치 짓는다. 


여성 상위시대란 말은 부정적인 의미에서 볼 때 남성 우위의 사회에서 여성들이 조금씩 진출하는 것을 비꼬는 말이기 때문에 좋은 의미의 말이라고 보기 어렵다. 그러나 그 말을 우리의 입장에서 진지하게 검토해볼 가치는 있다그 말을 여성들의 사회참여를 위한 시대적인 요청이라고 바꾸어 생각할 수도 있는 것이다지금까지 남성 위주의 사회에서 남성들이 저질러 놓은 전쟁, 빈곤, 독재 등의 파괴적인 것에서 이제 여성이 참여하여 새로운 것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어떤 예시일 수도 있는 것이다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리들도 앞으로는 사회의 주인이 되어야 하는데 지금까지 남성들이 저지른 과거의 전철을 그대로 밟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무언가 새롭고 창조적인 것으로 이 사회를 개혁해 나가는 것이 사회에 새로이 참여하는 여성의 책임이다그런 면에서 우리는 그 말을 더욱 진지하고 책임있게 받아들여야 한다.”



여자들이 남자한테 좀 맞았기로서니 뭐가 그리 큰일이라고 <;;


노조 내에 만연했던 여성폭력을 지적하는 유동우의 통찰은 후일 드러나는 100인위 사건 등을 떠올리게 하며 뼈아프게 다가온다. 당시 운동권에서는 반집행부적 성향의 여성 노동자를 어용으로 몰아 운동에서 배제하고, 운동권 내부에서 일어난 성폭력을 사측의 사주로 명명함으로써 일축시켜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노동해방이라는 '대의' 앞에서 여성에 대한 폭력은 사소한 일로 치부되기 일쑤였다. 그러나, 저자의 지적처럼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기본적 원리가 남녀관계에 적용될 수 없다면 노동조합 또한 아무 의미가 없다.

 


유동우는 삼원섬유 노조를 설립하고 1년이 채 되지 않아 회사로부터 해고를 당한다. 즉각 반발하며 조합원들과 함께 부당 해고에 항의하지만, 결국 경찰에 구속되며 취업 금지 대상자 명단(블랙리스트)에 올라 재취업을 원천봉쇄 당한다. 이후 재야 노동운동가로 활동하며 노동자들을 교육하고 조직하는 일을 이어나가지만, 전민노련 사건으로 남영동 대공분실에 끌려가 가혹한 고문을 받은 뒤 구속된다. 


여러분은 결코 약해져서는 안 돼요. 우리가 노동조합을 만든 것은 내가 해고당하지 않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언젠가는 내가 쫓겨나리라는 것을 각오하고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에게 항상 힘을 길러야 한다고 했잖아요. 여러분들이 내 뒤를 이어 내가 하던 일을 더욱 멋지게 해준다면 나는 결코 죽지 않는 겁니다. 비록 억울한 중상모략을 당해 쫓겨나긴 하지만 우리가 함께 가꾸어온 이상과 정신은 여러분들 속에서 언제까지나 사는 것이에요. 이렇게 해서 우리들은 영원히 이어지는 것이겠지요. 나는 비록 9개월이라는 짧은 시간을 일했지만 결코 그 시간이 짧다고는 여기지 않아요. 조금의 미련도 없어요. 왜냐하면 나는 나대로 최선을 다했으니까요. 물론 내가 한 일에 대해서는 여러분들이 평가해주겠지만... 나는 복직이 안 되어도 아무 상관없어요. 다만 여러분들이 나보다 더 우리 분회를 잘 발전시켜준다는 그것으로 나는 만족할 수 있어요. 왜냐하면 여러분들이 곧 나 자신이기 때문에.”


회사를 떠나며 동료들에게 남긴 저자의 말은 '너는 나' 프로젝트의 정신을 관통한다. 당신이 곧 나라는 연대의 정신. 우리가 유니온을 만들고 코뮨을 상상하는 것은 내가 해고당하지 않기 위해서가 아닌다. 타인의 고통을 좌시하고 있을 수 없기에 하는 일이다. 당신이 나이며 내가 당신이기 때문에.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으며 여기에 희망이 있다. 돌멩이의 외침은 바위가 되어―어떤 노랫말처럼―마침내 올 해방세상 주춧돌이 된다.








 전태일 50주기 공동 출판 프로젝트 '너는 나다' 시리즈 

어느 돌멩이의 외침 - 10점
유동우 지음/철수와영희







전태일에서 노회찬까지 - 10점
이창우 지음/산지니

스물셋 - 10점이종철 지음/보리

읽는 순서 - 10점
노정임 지음, 김진혁 그림/아자(아이들은자연이다)
태일과 함께 그늘을 걷다 - 10점
강성규 지음/한티재


작은 너의 힘 - 10점
조영권 지음, 방윤희 그림/비글스쿨

우리들은 정당하다 - 10점
뤼투 지음, 고재원.고윤실 옮김/나름북스
무조건 기본소득 - 10점
다비드 카사사스 지음, 구유 옮김/리얼부커스
JTI 팬덤 클럽 - 10점
김인철 외 지음/북치는소년
노동인권수업을 시작합니다 - 10점
양설 외 지음/(주)학교도서관저널
여기, 우리, 함께 - 10점
희정 지음/갈마바람



 함께 읽으면 좋은 책!       

여공 1970, 그녀들의 反역사 - 10점
김원 지음/이매진






사람 속에서 길을 찾다 - 10점
박영미 지음/산지니







Posted by 예빈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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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동글동글봄 2020.04.28 11:2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완전 멋진 서평입니다. 글에 속 빠져서 읽었답니다:)

 『그림 슬리퍼』 

 : 사우스 센트럴의 사라진 여인들 




인턴_최예빈


N번방 사건 '박사'의 공범, '부따'가 신상공개 처분을 받아 뉴스를 타는 걸 보며 출근했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한 남자애 얼굴. 유포자도, 소지자도, 관전자도 전원 신상공개 하라고 청원도 열심히 하고 시위도 나갔지만 정작 그들의 얼굴이 공개되고 내가 그 면상들을 확인하고 나면 하루종일 기분이 나쁘다. 초대한 적 없는 불청객이 내 집 문따고 들어와 하루종일 안나가는 느낌.  

그러고보면 나는 어릴적부터 범죄소설을 좋아하지 않는 애였다.

열 네댓살 무렵, 내 또래들 사이에서는 일본 작가의 범죄추리소설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히가시노 게이고나 미야베 미유키 같은. 나도 유행에 동참하고자 몇 권 읽어봤지만 영 흥미를 느끼지 못했고, 중도하차가 일반이었다. (미스터리를 읽어야 한다면 차라리 『오페라의 유령』을 읽지!) 작가는 이런걸 도대체 어떻게 생각해내나, 싶게 완벽한 범죄 수법과 아귀가 딱딱 맞아 떨어지는 잔인한 살인 사건들은 구태여 읽고 싶지 않았다. 그런건 이미 TV만 켜도 쉬이 볼 수 있었으니까. 내게는 언제나 일상이 공상보다 무섭고 교묘했다. 

현실은 으레 상상을 뛰어넘기 마련이고, 그렇기에 『그림 슬리퍼』는 소설보다 더 소설같은 범죄르포다. 

'그림 슬리퍼(Grim Sleeper)'는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사우스 센트럴 지역에서 오랜 세월에 걸쳐 흑인여성연쇄살인을 저질러왔던 살인마, 로니 프랭클린 주니어의 닉네임이다. 사신을 뜻하는 Grim Reaper를 변용한 것으로 보도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 저자인 크리스틴 펠리섹이 직접 만들었다. 

아젠다 세팅과 이슈몰이에는 언론이 의도하는 이미지가 즉각적으로 연상되는 별명을 사건에 부여하는 것이 커다란 도움이 된다. 하지만 이런 '이름짓기'는 조주빈이 스스로를 악마라 여기며 자신을 캐릭터라이징했던 것('박사' 조주빈 "악마의 삶 멈춰주셔서 감사" ...검찰 송치)과 맞물리며 내게 어떤 의문을 던졌다. 

우리는 가해자의 삶과 피해자의 삶 중 어떤 것을 궁금해 해야 까. 스포트라이트는 어느 쪽을 비춰야 하는가. 



펠리섹은 책의 도입부 프롤로그에서 자신이 캐나다의 조용한 수도 오타와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연쇄살인범에게 매료되었다고 밝힌다. 어려서부터 범죄 실화 관련 책들을 탐독하고 <형사 콜롬보>, <제시카의 추리극장> 같은 드라마를 빼놓지 않고 봤다고 하니, 나와는 정반대인 셈이다.

장성한 펠리섹은 범죄전문기자가 되어 로스앤젤레스의 슬럼가, '사우스 센트럴'에서 벌어지는 흑인여성연쇄살인에 관심을 갖고 취재를 시작한다. 그리고 10년에 가까운 취재기간을 거쳐, 20여년 동안 무려 10명 이상의 여성을 살해한 범죄자 프랭클린을 잡아내기에 이른다. 

저자는 범인 특정과 검거에 몇 십년에 걸친 오랜 세월이 소요된 이유가 피해자들이 전부 '가난한 흑인 여성'이었음에 있다고 생각한다. 만약 이 사건이 LA의 슬럼가가 아닌 베벌리힐즈에서 일어났고, 금발 백인 여성이 살인사건의 피해자였다면 언론의 관심과 수사가 이토록 지지부진했을리가 없다. 피해자들은 가난한 흑인 여성이었기에 범죄의 대상이 되었고, 가난한 흑인 여성이었기에 수사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그렇기에 펠리섹은 이 책이 범죄자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피해자에 대한 이야기라고 선언한다. 그는 피해자 한 한명의 삶을 조명하고, 그들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소개하는 데에 지면을 아낌없이 할애한다. 납작한 '피해자'로만 존재했던 이들이 이름과 목소리를 얻어 각자 삶의 양감을 드러낸다. 



펠리섹의 이런 전략은 N번방을 보도하는 한국언론의 태도와 상당히 대비된다. 요즘 한국언론은 '박사'에게 서사를 부여하느라 여념이 없다. 극악무도한 범죄자가 실은 과거에 보육원 자원봉사를 다니는 모범생이었든, 대학 신문사에서 편집국장을 맡는 '인재'였든, 그런 정보들은 시민의 알권리에 전혀 봉사하지 않는다. (이런 보도행태야말로 황색언론의 요체다) 내가 이렇게 말하면 누군가는 이렇게 물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담 범죄자 '신상공개'는 시민의 알권리냐?" 나는 그건 권리보단 의무에 가까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나는 그들이 누군지, 어떻게 생겼는지 알고 싶지도, 보고 싶지도 않다. 실체를 확인하고 나면 자꾸 떠올라서 온종일 괴롭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아야 하고 보아야 하기 때문에 그렇게 한다. 관심을 두지 않으면 '내 문제'가 아니게 되니까. 사회범죄를 다른 사람들만의 문제로 여기는 것은 완곡한 형태의 방조이고, 결국 그들과 공범이 되겠다는 조용한 선언이다. 

그림 슬리퍼, 로니 프랭클린 주니어는 펠리섹의 끈질긴 취재와 시민들의 지속적인 관심 끝에 검거될 수 있었고 긴 재판 끝에 사형을 언도 받는다.  판사 캐슬린 케네디는 판결을 내리며 아래와 같이 말한다.


 

"당신이 저지른 이 모든 범죄가 끔찍하며, 말했다시피, 어떤 정당화도 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제가 내릴 판결은 복수의 판결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싶습니다.

누군가가 이 범죄들처럼 끔찍한 짓을 저지르면 사회에서 결정을 내릴 권리가 있다고, 처벌이자 다른 사람들에 대한 보호책으로 그 사람은 계속 살아갈 자격이 없다고 사회에서 말할 권리가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형법계에서 몇 년을 일하는 동안 만나본 모든 사람들 중 당신이 저지른 것처럼 무시무시한 죄를 그렇게 무시무시하게 많이 저지른 사람은 없었습니다. 이 젊은 여성들은 끔찍하게 살해당했습니다. 워싱턴양의 살인미수건도 끔찍합니다. 그 영향으로 여기 모든 사람들이 고통받아 왔고 여전히 고통받을 것입니다. 하지만 많은 분들이 말씀하신 대로, 이 분들은 약간의 평화를 얻게 될 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 당신도 약간의 평화를 얻어 떠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건 복수가 아닙니다. 그건 정의입니다, 프랭클린씨." p.439



정말 그렇다. 시대와 국가를 막론하고 반복되어온 페미사이드 앞에서 우리가 원하는 것은 일회성의 복수가 아닌, 계속될 정의다. 










그림 슬리퍼 - 10점
크리스틴 펠리섹 지음, 이나경 옮김/산지니


*산지니 출판사에서 직접 구매할 수 있습니다.

(10% 할인, 3권 이상 주문시 택배비 무료)



Posted by 예빈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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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니카 2020.04.19 23: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관심과 분노가 중요함을 다시 느끼게 되네요. 잘 읽었습니다.

  2. BlogIcon 동글동글봄 2020.04.20 09:3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N번방 너무 끔찍해서 뉴스를 읽을 수 없었어요. 우리가 원하는 것은 일회성의 복수가 아닌, 계속될 정의다라는 말이 공감됩니다. 잘 읽었습니다^^

    잘못된 세상을 바로잡기 위해 또다른 잘못을 저지르는 게 혁명이라면 

김유철, 레드 아일랜드 


인턴 최예빈_


어김없이 올해도 4월이 돌아왔습니다. 바깥에선 봄기운이 일렁거리는데, 한국의 4월은 추운 기억이 많은 달입니다. 

오늘은 4월 3일, 제주 4.3 희생자 추념일입니다. 4.3을 맞아 김유철 작가의 소설, 『레드 아일랜드』를 읽어봅니다. 



제주 4.3 사건의 전말은 이렇습니다.

1947년 3월 1일, 삼일절 기념식에서 기마경찰의 말굽에 어린 아이가 다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어린 아이를 치고도 사과 없이 떠나는 경찰의 태도에 군중들은 돌을 던지며 경찰을 쫓아갔고, 이를 경찰서 습격으로 오인한 경찰이 총을 발포하여 6명이 사망하는 일이 벌어집니다. 

사망자 6명 중에는 당시 11살에 불과했던 어린 아이도 있었으며, 이에 격분한 주민들은 3월 10일 총파업에 돌입합니다. 이 총파업은 제주 내 관공서와 통신기관, 자영업자, 기업인, 학교, 경찰 등 166개 단체와 4만 1200여명이 참여한 대규모 민관 총파업으로 당시 제주도민 대부분이 파업에 참가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파업에 남로당 제주도당이 조직적으로 참여했다는 정황이 드러나면서 미군정은 "경찰의 발포로 도민 반감이 고조된 것을 남로당 제주조직이 선동해 증폭시켰다. 제주 인구의 70%가 좌익 동조자다." 라는 너무나 비약적인 결론을 내립니다. 

결국 미군정은 좌익색출이라는 미명 아래 경찰과 서북청년단(이하 서청) 등 극우 조직을 동원하여 끔찍한 제주 탄압의 서막을 열게 됩니다. 특히 서청에 의한 불법 학살과 폭력이 심각했고, 이어지는 폭력과 고문 아래 4월 3일 새벽, 남로당 제주도당의 주도 아래 무장봉기가 일어나게 됩니다. 

이들은 경찰과 서청의 탄압 중지와 남한의 단독선거 반대, 통일정부 수립 촉구 등의 슬로건을 내걸었고, 제주도 내 12개 경찰지서와 우익단체를 공격하여 경찰과 우익인사 12명 사망이라는 결과에 이르게 됩니다. 

서청과 경찰은 이 무장봉기로 인해 더 적극적으로 '좌익색출'에 나섰고, 애꿏은 도민들이 계속해서 희생되는 가운데 4월 28일, 김익렬 연대장과 무장대 총책 김달삼의 평화협상이 이루어집니다. 

합의 내용은 72시간 내 전투완전중지, 점차적 무장대 무장 해제, 주모자 신변보장, 무장대 귀순절차 마련 등으로 협상대로라면 더이상의 희생자 없이 사건이 종결되었어야 하지만, 5월 1일 서북청년단에 의한 '제주읍 오라리 방화사건' 발생으로 협상은 수포로 돌아가게 됩니다.

5월 5일 미군정 제주도사태관련회의가 개최되지만, 미군정은 협상파인 김익렬 연대장을 해임하고 박진경 연대장을 부임시킴으로써 사실상 학살을 방조하고 부추기는 결정을 내립니다. 

5월 10일, 선거구 3개 중 2개에서 과반수 미달로 투표가 무효처리되면서 제주도는 남한 유일 선거 거부지역이 되었고, 10월 19일에는 여수에 주둔한 제 14연대 병사들이 제주징발명령을 거부하고 단독정부 수립을 반대, 미군 철수를 주장하는 여순사건이 발발합니다. 이 일련의 사건들은 겁먹은 남한정부로 하여금 초토화작전과 계엄령을 진행하게 하는 구실이 되었습니다. 

11월 17일, 이승만 대통령은 제주에 계엄령을 선포하였고, 계엄령 이후 본격적인 양민학살이 시작됩니다. 서북청년단 1천명 이상이 경찰 제복을 입고 진압작전 한복판에 나섰고, '해안선에서 5km이외 지점 및 산악지대를 무허가로 통행한 사람은 모두 폭도로 간주, 무차별 총살하겠다'는 초토화 작전이 전개됩니다. 

4개월간 100여개 마을에서 방화와 총살로 1만여 명이 집단 살상되었으며, 7년이 지난 1954년이 되어서야 한라산 금족령이 해제되면서 사건은 마무리 됩니다. 희생자는 약 3만명으로 추정되며 이는 제주인구의 10%로 10살 이하의 희생자가 772명, 11~20살이 2464명에 달한다고 합니다. 


아름다운 제주의 바다 


『레드 아일랜드』는 바로 이 제주 4.3을 다룬 소설입니다. 

인상깊은 구절을 옮겨 봅니다.


 한석희와 사찰주임의 이야기를 듣던 인선에게는 여전히 누가 좋고 나쁜 사람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형제처럼 지내던 사람들이 어느 순간 산으로 올라가거나 사람 목숨을 앗아가기도 하고 도민들을 보호해야 할 경찰과 군인들 역시 마음대로 사람을 잡아가거나 죽이고 있는 것이다. 살인을 저지를 만큼 서로가 서로를 증오하는 이유를 그녀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좌익이든 우익이든―그 구분을 어떻게 하는지는 몰라도다같이 모여 살면 그만인 것을 모두가 행복하게 잘 살자고 만든 것이 법이고 정치고 사상이라는 것일 텐데 오히려 그것이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들고 있는 거라고 그녀는 생각한다. 


작가의 말처럼, 『레드 아일랜드』에 나오는 인물들은 대부분 전형성을 띠고 있습니다. 기회주의자에 자본가의 전형이었던 김종일, 친일지주계급의 지식인으로 모순된 현실에 비판적이었지만 결국 체제에 순응하고 마는 김헌일, 노비로 태어나 혁명을 꿈꿨던 민중 방만식, 순박하고 선량했던 제주의 민초들. 전형적이기에 등장인물들이 당시 사람들을 잘 대변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특히 인상 깊었던 대목은 경찰들에게 좌익세력으로 지목받고 수용소에 끌려간 김헌일과 장준오(기자)의 대화였습니다.



"김 형도 내 말 명심하시오. 절대로 자신을 벌레처럼 생각해선 안된다는 걸. 무슨 짓을 당하더라도 자신이 누구라는 사실을 결코 잊어버려선 안된다는 걸 말이오."

"무슨 짓을 당하더라도....... 말입니까?"

김헌일이 장준오와 시선을 마주치며 묻는다. 기자는 백열전구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대답한다.

"어디든 희망이란 있는 법이니까."

(생략)

김헌일은 애써 자신의 이름을 마음 속으로 외쳐본다. 난 김헌일이다. 난 지은 죄가 없다. 여기서 살아 나가 아내와 성진을 돌봐야 한다. 그러나 그는 곧 절망감에 빠져든다. 다시 취조실에 끌려간다면 도저히 견뎌낼 재간이 없을 거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없는 죄까지 고백하고 총살을 당하는 게 어쩌면 행복한 일일지도 모른다.



김유철 작가는 소설을 쓸 당시의 정치사회적 상황이 1948년의 제주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 글을 쓰는 내내 자신을 절망스럽게 만들었다고 고백합니다. 

현실은 녹록치 않고, 희망은 너무나 쉽게 폐기되곤 합니다. 

해방 이후 일본군이 철수하면 모두 행복해질 거라 믿었던 사람들이 메카시즘의 광풍을 마주했을 때 느꼈을 절망은 감히 예측하기도 힘이 듭니다.  그러나 아픈 역사를 기억하는 활동을 저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이어나가고, 책으로 남기고, 그 책들을 꾸준히 찾아 읽으며 타인의 슬픔에 대한 공부를 멈추지 않는 이 모든 의지들이 우리 사회를 조금 더 양지 바른 곳으로 견인하지 않을까요.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 되고, 옳고 그름에 대한 게으른 사유가 참혹한 결과를 만들어 냅니다. 어쩐지 아렌트가 떠오르기도 하는 책이었습니다.  

4.3 희생자들의 명복을 빕니다.







레드 아일랜드 - 10점
김유철 지음/산지니

책 주문하기 >> https://goo.gl/cUJW3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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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예빈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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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날개 2020.04.06 09: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번 읽어봐야겠군요!

아렌트를 좋아하세요...

 『탈학습, 한나 아렌트의 사유방식



인턴 최예빈


사는 게 왠지 시시해질 때마다 집어 드는 그래픽 노블이 있다. 한나 아렌트, 세 번의 탈출. 켄 크림슈타인이 지었고, 국내에선 더숲 출판사를 통해 출간되었다. (산지니 블로그에서 타 출판사 책 언급하니 좀 민망한 구석이 있지만 눈감아 주세요 대표님)

한나 아렌트, 세 번의 탈출은 아렌트의 생애를 그린 만화다. 이렇게 설명하면 예림당에서 내는 WHY 시리즈 위인전 느낌일 것 같지만, 엄연히 성인 대상의 그래픽 노블이다.


뭔지 아시죠?


어쨌든 그 책을 통해 전체주의 광풍으로 혼돈을 맞았던 20세기 초 유럽 모습과 지금은 전설이 된 천재들(엑스트라처럼 등장하는 인물조차 업적 설명을 위한 각주가 달려있다)이 기어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그래, 이렇게 열렬한 게 바로 삶인데!” 같은 생각이 절로 들어 권태를 씻고 일어나게 된다. 사유하지 않는 것이 그릇된 사유 보다 더욱 위험한 거라는 아렌트의 일침이 귓전을 때리고, 무기력해진 몸과 정신을 다시 한번 일으켜 내는 것이다.

 

쓸데없이 서두가 길었다. 그러니까, 누군가 내게 아렌트를 좋아하냐 물었을 때 내가 아유 그럼요”(그런데 누가 아니라고 할까?)라 대답하는 배경에는 만화책 한 권이 자리하고 있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좀 어이없는 이야기지만, 나는 아렌트 팬을 자처하면서 아렌트의 저작을 읽어본 적이 없다. 위의 그래픽 노블을 포함해 아렌트 다룬 책 서너 권 읽었지만, 정작 그가 직접 쓴 책은 읽지 않았다. 인간의 조건, 전체주의의 기원,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 제목은 술술 나오고 어디가서 어쭙잖게 아는 체도 하지만 기실은 단 한 권도 안 읽었다. 그러니 아렌트를 좋아한다는 내 대답은 알량한 허세의 발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렌트가 직접 쓴 책보다 아렌트를 오랫동안 숙고해온 다른 어떤 이가 그에 대해 쓴 책이 좀더 아렌트를 아렌트답게 하는 걸지도 모른다. 너무 아렌트 안 읽은 티 팍팍 내는 발언인가?


아렌트와 블뤼허


탈학습, 한나 아렌트의 사유방식은 저자 마리 루이제 크노트가 아렌트의 사유방식을 사유해낸(그렇담 이것은 메타사유인가) 걸출한 작품이다.

저자는 웃음/번역/용서/표현 이라는 네 가지 주제로 한나 아렌트의 사유방식탈학습을 설명한다. 탈학습이란, 이미 존재하는 언어체계와 전승되어온 관념들에 대한 이해를 폐기하고 기존 맥락을 분해하여 개념의 새로운 쟁취를 시도하는 것으로, 친숙한 것을 다시 낯선 것으로 바꿈으로써 세상과의 새로운 관계맺기를 가능하게 한다.

 

저자는 아렌트의 이러한 독특한 사유방식이 계획적으로 개발된 것이 아닌 충격에 대한 반작용에 더 가깝다고 설명한다. 독일에서 프랑스로, 프랑스에서 다시 미국으로 망명하며 늘 낯선 세계에 내던져졌던 아렌트는 기존 세계가 무너지는 경험을 자신 안에 계속해서 축적했다. 그리고 그 충격에 의한 반작용으로 체득한 사유방식탈학습을 통해 기존 통념을 뒤집는 사유(악의 평범성!)를 구축했다. 또한 아렌트의 웃음, 번역, 용서, 표현 행위는 앞선 충격에 의해 형성된 균열을 봉합하거나 덮기 보다는 있는 그대로 열어둔다. 그리고 우리로 하여금 그 균열에 계속해서 관여하도록 한다. 관여가 바로 아렌트의 정치 개념에 대한 실마리로 이어지는 것이리라.


 


탈학습이라는 아렌트의 사유방식은 그 자체로 흥미롭고, 사고의 폐쇄성이 짙어지고 있는 오늘날 특히 되새길 지점이 많은 개념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아렌트보다 더 아렌트처럼 생각하는마리 루이제 크노트, 즉 저자의 존재. 아렌트의 사유방식을 탈학습으로 설명하겠다는 아이디어를 완성하기까지 얼마나 오래, 얼마나 깊이 아렌트를 떠올렸까. 아마 아렌트가 자기 스스로에 대해 생각한 것보다 더 깊이, 더 오래 그러했을 것이다. 나 같은 사람은 그 덕분에 아렌트를 읽지 않고도 아렌트를 만나게 된다. 혹은 만났다고 착각한다


하지만, 장 그르니에의 을 가장 잘 표현한 것이  속 텍스트가 아닌 카뮈의 추천사였던 것처럼, 우리가 다른 이에게 받은 편지 속에 묘사된 자신을 보고 진짜 나를 마주친듯한 느낌을 받는 것처럼, 타인의 애정이 개입된 해석이야말로 그를 더욱 그답게 하는 걸지도 모른다. 





       글쓴이 

마리 루이제 크노트Marie Luise Knott

프리랜서 기자, 번역가, 작가로 독일 베를린에서 활동하고 있다. 오랜 기간 동안 여러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을 해왔으며, 독일판 르몽드 디플로마티크Le Monde Diplomatique를 설립하고 편집장을 역임했다. 예술과 문학에 대해서 수많은 글을 출판하였고, 가장 최근에는 한나 아렌트에 관해서 Von den Dichtern erwarten wir Wahrheit(한나 아렌트시인에게 진실을 갈구하다) Hannah Arendt/Gershom Scholem, Der Briefwechsel, 1939-1964(한나 아렌트와 게르숌 숄렘, 서신교환, 1939-1964)을 출판하였다.


 

        옮긴이 

배기정

독일 마부르크 대학교에서 바이마르 공화국시대 문인들의 중국문화 수용과 문학적 변용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독일학술교류처(DAAD)가 선정한 중앙대학교 독일유럽연구센터(ZeDES)의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변화를 통한 접근(공저), 독일 신세대 문학(공저)이 있고, 역서로 망가진 시대-에리히 케스트너의 삶과 문학이 있으며, 패자의 표상에 새겨진 선한 유럽인’- 슈테판 츠바이크의 유럽비전과 현재적 의미, 폭력의 시대에 저항하는 문학적 체념-알프레드 되블린의 망명소설 바빌론왕의 유랑 연구 등 다수의 논문이 있다.


김송인

독일 마르부르크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연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영화관련 해외마케팅 업무에 종사했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통번역대학원에 재학중이다.



 



탈학습, 한나 아렌트의 사유방식 - 10점
마리 루이제 크노트 지음, 배기정.김송인 옮김/산지니


책 주문하기 >> https://goo.gl/cUJW3o

*산지니 출판사에서 직접 구매할 수 있습니다.

(10% 할인, 3권 이상 주문시 택배비 무료)



Posted by 예빈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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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니카 2020.03.24 16: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렌트가 주인공인 그래픽노블, 한번 읽어보고 싶네요.

  2. BlogIcon 동글동글봄 2020.03.25 13:4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예빈박사님, 집에 <전체주의의 기원> 있는데 빌려드릴까요?ㅎㅎ (몇 년째 읽고 있어요) <탈학습, 한나 아렌트의 사유방식>은 아렌트를 좋아하는 팬이라면 꼭 추천하고 싶은 책입니다! 서평도 잘 읽었어요^^

 나는 나 가네코 후미코 옥중 서신 서평

-여성은 그를 부정하는 세계 속에서 끝임없이 자신을 발견한다-



턴 최예빈


이번 주 일요일은 3.8 세계 여성의 날이다. 작년이 111주년이었으니 올해는 112주년일 것이다. 112년이라니. 세상 돌아가는 꼴을 보면 어쩐지 마주하기 민망해지는 숫자다. 문득 중학교 때 배웠던 공식이 떠오른다. 거리를 속력으로 나누면 시간이 된다. 우리가 여기까지 얼마나 느리게 왔기에 112년이라는 커다란 시간이 나온걸까? 그리 멀리 온 것 같지도 않은데, 변화의 속도는 언제나 너무 더디다.

 

반면 요즘 내 하루는 쾌속으로 흘러간다. 산지니 인턴생활을 시작한지도 벌써 일주일이 다 되어가고 있으니. 출근 첫날, 책으로 빼곡히 들어찬 사무실 책장을 구경하다 대표님께 책 한 권을 받았다. 가네코 후미코의 옥중수기 나는 나. 여성의 날이 곧이니 이 책을 읽고 서평을 써보라는 말씀이셨다. 이것이 내가 처음 맡은 업무다. 책을 읽고, 서평을 쓰는 것. (이것은 업무인가 복지인가)

책을 받아들었을 때만 해도 가네코 후미코가 누군지 아는 바가 없었다. 영화 박열도 보지 않았으니까. 나는 한국사를 주제로한 5분짜리 지식채널e만 봐도 열혈의 가슴 되어 뜨거운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기 때문에, 일제강점기를 다루는 한국영화들과는 부러 거리를 둘 필요가 있다. 아무렴 애국심이 쉽게 고취되는 사람은 민족주의에 경도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하는 법이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영화 박열을 보지 않기란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말하고 움직이며 숨 쉬는 후미코가 보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최희서 배우는 짱이었다...


영화 박열」에서 가네코 후미코役을 맡은 최희서 배우. 조연도 있는 개인 포스터가 없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나는 나의 원제는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는가. 원제에서 알 수 있듯, 가네코 후미코는 자신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을 갖고 사는 인간이었다. 스스로를 궁금해하는 사람의 삶은 결코 지루해지지 않고, 그런 이의 글은 삶만큼이나 진실되다.


"운명적으로 불운한 탓에 나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가네코 후미코는 짧은 생애 내내 기초적인 사회 공동체의 보호를 한번도 보장받지 못했다. 무적자(호적에 오르지 못한, 서류상 세상에 없는 사람)였기 때문이다. 후미코는 그토록 바라던 학교도 가지 못하고, 친척들 사이에선 식모살이를 전전하며 갖은 핍박과 학대를 다 당하고 성장한다. 일찍부터 모든 사람의 기쁨은 타인의 슬픔에 의해서만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쳤던 후미코에게 세상은 그야말로 지옥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미코의 입속에는 이런 말이 맴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이라곤 나 자신이 태어났고 살아 숨쉬고 있다는 것뿐이다. 그렇다. 나는 내가 태어나 살아있음을 분명히 느끼고 있었다. 할머니가 아무리 태어났지만 태어나지 않은 것이라고 해도, 나는 태어나 숨 쉬고 있다.” 세상이 아무리 그를 구박해도, 후미코는 언제나 자기의 주인이었다.

그래서 가네코 후미코라는 여성의 캐릭터를 부각하기 위해 흔히 부여하곤 하는 박열의 연인이었던같은 수사는 필연적으로 실패한다. 가네코 후미코가 박열의 연인인 것이 아니라, 박열이 후미코의 연인인 것이다. 두 문장은 의미상 동어반복이지만, 소유격조사 는 앞뒤 체언의 소유관계를 분명한 뉘앙스로 나타낸다.


"그가 가지고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그를 저토록 강하게 만든 것은 무엇일까.

 나는 그것을 찾고 싶었다

그것을 찾아 내 것으로 만들고 싶었다."


후미코는 책의 말미에서 박열과의 만남을 명료하게 회상한다. ‘내내 찾아오던 어떤 것을 박열의 가슴속에서 발견했고, 그래서 박열을 선택한다. 둘은 교제를 시작하기 전에 한 중국요릿집에서 만나 서로의 사상과 가치관에 대한 합의를 맺기도 한다. 후미코는 자신은 조선인이 아니기 때문에, 만약 박열이 민족운동가라면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한다. 자신도 박열과 다를 것 없는 지독히 가난한 무산계급이었지만, 일본인이라는 스스로의 부정할 수 없는 위치를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후미코의 이름 앞에 따라붙곤 하는식민지 조선을 사랑한따위의 수식은 가네코 후미코가 처음부터 독립운동에 투신했을 거라는 착각을 일게 하지만, 이것은 우리(한국인)의 바람일 뿐이다. (그가 박열과 함께 일제의 만행에 저항하는 활동을 했던 것은 맞지만, 투쟁의 기반은 조선에 대한 사랑 보단 민족과 국가를 초월한 인권의식에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내가 나는 나를 읽으면서 후미코에게 가장 감탄했던 것은 바로 이런 계급에 대한 민감한 인식과 정확한 표현력이다. 할머니 손에 이끌려 조선으로 떠난 후미코가 포착했던 충남 부강의 모습은 이렇게 묘사되어 있다.

 

 "돈이 있어 빈둥 놀고 지내며, 도시에서는 약간 유행이 지난 옷을 입고 있는, 

그런 계급들이 으스대고 있었다"


이 얼마나 적확한 표현인가. 도시와 시골―본토와 식민지 사이 생겨난 잉여를 갈취하며 성장한 신생 계급을, 그는 빈둥거리지만 도시에서는 약간 유행이 지난 옷을 입고 있는이라는 한 문장으로 냉정하게 축약한다. 대충 부르주아라고 퉁칠 수도 있었을텐데, 후미코의 관찰력은 용의주도하다.

그는 박열과의 교제 또한 결국 우리 사이에 양해가 성립했다는 표현으로 나타낸다. 나는 둘의 관계를 표현하는 데는 이 문장이 가장 탁월하다고 생각한다. 필시 둘 사이에는 성애적 로맨스, 전투적 동지애, 사상적 의지가 한데 뒤얽힌 어떤 감정이 존재했을 것이다. 그 모든 것을 사랑이라고 뭉갤 수도 있겠으나(그리고 실제로 그런 이미지로 소비되곤 하지만, 후미코에게 박열과의 애정관계가 셀링 포인트여선 안 된다) 나는 양해야말로 그들에게 알맞은 단어라고 생각한다. 서로를 기꺼워하는 마음으로 용납하는 관계. 사랑보다 굳셀 것이다. 


 "하지만... 하지만... 뭐라해도 사람은 사람인 것이다."


후미코는 동지들과 사회주의를 공부하며 해방운동을 펼치다가 마침내 대역사건으로 수감 되고 만다.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기민하게 감각하는 사람이었기에 사회주의 방법론의 한계권력의 본질적 속성에 회의를 갖기도 하지만, 당신이 누구이든지 간에 보장되어야 하는 최소한의 양식적 삶이 있다고 말하는 사회주의자들의 믿음을 나는 좋아한다. 그런 믿음이야 말로 사람을 사람답게 만들어 준다.


 

 

"곧 이 세상에서 나라는 존재는 사라질 것이다. 

현상은 현상적으로 없어질 뿐, 영원의 실재 속에서 존속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가네코 후미코는 감옥에서 자살로 생을 마친다. (자살인지 타살인지 의견이 분분하지만 서류상 자살로 되어있다)옥중 결혼을 통해 박열의 호적에 들어갔기 때문에 후미코의 시체는 해방 이후 문경에 묻혔다. 한평생 무적자로 설움과 괄시를 받았던 후미코가 결혼으로 호적을 얻었다는 사실이 못내 슬프게 다가온다'그저 나'로 태어나 살아있음을 분명히 느끼고, 숨쉬는 것만으로 존재를 증명할 순 없는 걸까?

 

올해는 여성의 날 112주년. 대한민국에서 호주제가 폐지된 지는 12년이 지났다. 후미코는 죽음 앞에서 위와 같은 말로 책을 맺었다. 현상은 현상적으로 없어질 뿐, 자신은 영원의 실재 속에서 존속할 것이라고. 그것이 바로 책의 방식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가네코 후미코의 육체라는 현상은 현상적으로 없어졌지만, 그의 영혼과 정신은 책이라는 실재 속에서 참으로 영원히 존속하고 있다.






   저자

  가네코 후미코 

 1903년 1월 25일 요코하마시 출생. 아버지 사에키 분이치와 어머니 가네코 기쿠노 사이에서 장녀로 태어났지만, 출생신고를 하지 않아 '무적자'인 채로 살 수밖에 없었다. 부모의 사이가 좋지 못한 가운데, 아버지는 어머니의 여동생(이모)와 새 가정을 꾸리고, 어머니도 재혼을 거듭하며 후미코는 친척집 등을 전전하게 되었다. 무적자인 탓에 취학 연령이 되어도 학교를 다닐 수 없어 사설 학교에서 잠시 공부하지만 그것도 생활고 떄문에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1929년, 당시 충청북도 부강에 살던 고모의 양녀가 되어 조선으로 건너가 약 7년간 생활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식모로 전락한 후미코는 가혹한 육체적 정신적 학대에 시달리며 자살까지 결심한다. 1919년 4월 12일 조선을 떠나 일본으로 돌아온 후미코는 1920년 봄에 상경하여 식문팔이를 하며 고학생 생활을 한다. 일터에서 사회주의자들과 만난 것을 계기로 사회주의에 관심을 가지게 되며 니힐리즘에 심취하게 되었다.

잡지 <청년조선>에 실린 박열의 시 「개새끼」를 읽고 큰 감동을 받은 후미코는 1922년 4월경부터 박열과 동지로서 동거를 시작한다. 그리고 1923년 4월에는 박열과 함께 '불령사'를 결성한다.

관동 대지진 직후인 1923년 9월 3일, 후미코와 박열은 보호검속 명분으로 구속되고 이어 10월 10일 치안경찰법위법으로 기소된다. 1924년 2월 15일 폭발물취급벌칙 위반으로 추소, 이어 1925년 7월 17일 박열과 함께 대역죄 및 폭발물취급벌칙 죄로 기소된다. 1926년 2월 26일, 후미코와 박열에 대한 대심원특별형사부의 공판이 시작되고 3월 25일에는 사형선고를 받는다. 이어 4월 5일,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지만 7월 23일 우쓰노미야 형무소에서 목을 매어 자살하였다.

  역자

  조정민

 부경대학교 일어일문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규슈대학 비교사회문화연구과에서 석사과정과 박사과정을 마쳤다. 전후 일본 문학이 패전 후 연합국의 일본 점령을 어떻게 기억하였는가에 대해 관심이 많아, 같은 테마로 동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박사학위논문을 한국어로 번역한 책 <만들어진 점령서사>(산지니, 2009)를 출간하였다. 지금까지 전쟁, 점령, 민족, 젠더, 언어 등의 문제가 서로 교차하면서 어떤 위계가 만들어지고 또 무너지는지에 대해 주목해왔다. 가부장적 가족제도와 군국주의적천황제의 억압과 통제에 추상적으로 대응하지 않고, 자신만의 철학을 분명히 실천했던 가네코 후미코의 삶에 감동하여 그녀의 수기를 번역하게 되었다. 현재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 HK교수로 있다.



나는 나 - 10점
가네코 후미코 지음, 조정민 옮김/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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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예빈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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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에디터날개 2020.03.06 15:5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예빈 씨, 서평을 너무 잘 써주셔서 이런 복지를 조금 더 제공해야... 겠는데요?^^ 잘 읽었어요! 저도 영화 <박열>을 보고 최희서 배우에게 완전 빠졌답니다.

  2. 권디자이너 2020.03.06 18: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책 읽고 싶게 만드는 멋진 서평이네요^^
    편집도 좋습니다.

  3. BlogIcon 동글동글봄 2020.03.10 16: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서평 잘 읽었어요, 네 편집 좋네요^^

안녕하세요. 산지니 인턴 허성일입니다

여려분은 혹시 오디오북(Audio Book)에 대해서 들어본 적 있으신가요?

오디오북은 읽는 책이 아닌 성우 또는 작가가 직접 낭독하여 귀로 들을 수 있게 제작된 디지털 콘텐츠입니다.

이번에 저를 포함한 5명의 산지니 인턴들이 산지니x공간에 있는 오디오북 체험공간 <소리내음>에 다녀왔습니다.

오디오북 체험공간 <소리내음>은 오디오북 이용 경험 확대를 통한 오디오북 독서문화 확산을 위해 마련된 것입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 5월 공모를 통해 유동인구가 많은 장소에 조성되도록 전국 10곳의 <소리내음> 운영기관을 선정했는데요. 부산에서는 유일하게 산지니x공간이 선정되었기 때문에 이런 좋은 기회를 절대 놓칠 수 없었습니다.

<소리내음>에는 방문객들이 편안한 분위기에서 오디오북을 들으며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조성되어 있었습니다. 출판진흥원에서 지원하는  오디오북 재생용 키오스크  1대태블릿 PC 3대가 설치되어 있고, 방문객들은 해당 장비를 통해 문학, 역사/문화, 경제/경영, 과학, 시/에세이 등 다양한 장르의 오디오북 100종을 무료로 들을 수 있다고 합니다.

 

 

<소리내음>과 같은 공간 안에는 산지니의 신간 도서들을 만날 수 있는

베란다 독서 공간이 같이 만들어져있었습니다. 저희 인턴들은 공간을 둘러보고

각자 오디오북을 체험한 뒤 자신의 생각을 간단하게 적어보았습니다.

 

구경민 인턴

항상 종이책으로만 읽다가 ‘오디오북’으로 읽어주는 것을 들으니 새로운 느낌이었습니다. 낭독자가 읽어주는 책의 내용을 따라가다 보니 눈으로만 읽을 때보다 책의 풍경이 눈앞에 그려지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종이책과는 다르게 앞으로 돌아가서 다시 한번 읽을 수 없다는 점이었습니다. 뒤로 가기 버튼이 추가된다면 훨씬 실용성이 높아질 것 같습니다.

 

남경희 인턴

‘오디오북’이라는 명칭만 듣고 저는 그저 딱딱한 기계음만을 떠올렸습니다. 보지도, 듣지도 못했던 존재였기에 그런 저의 반응은 어쩌면 당연하였을지도 모릅니다. 무미건조한 눈빛으로 오디오북 앞에 앉아 헤드폰을 착용했습니다. 그러나 곧 제 귀에 나긋한 목소리가 속삭였고 이내 제 눈빛은 반짝였습니다.
귀로 본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던 순간이었습니다. 저에게도 ‘오디오북’이 신기하고 새로운 경험이었는데, 하물며 진심으로 필요한 이들에게는 어떤 의미가 될까 하는 생각에 빠졌습니다. ‘오디오북’이 점차 상용화되어 문학이 다양하고 넓은 범위로 퍼져나가길 간절히 바라봅니다.

 

김다연 인턴

활자 매체인 책을 ‘눈’으로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귀’로 들을 수 있다는 건 참 매력적인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눈을 어디 둬야 하나 방황하기도 했는데, 5분쯤 지나고 나니 눈이 자유로워진 것에 대해 즐기고 있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마음으로 듣는 독서는 글씨로 읽는 독서랑은 또 다른 특색이 있었어요. 오디오북의 따뜻함이 널리 퍼지고 보편화하여 많은 사람이 오디오북의 매력을 아셨으면 좋겠습니다. :)

 

 김우철 인턴

오디오북을 들으니 손과 눈이 자유로워져서 갑자기 온 메시지를 확인하고 보내거나, 바깥 풍경을 보기 매우 유용하였습니다. 차량으로 출퇴근하는 동안, 사람이 많은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즉, 손과 눈이 필요하지만 귀가 심심한 사람들이 주로 이용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해하는 데 오래 소요될 수 있는 인문과학이나 역사서 같은 전공적인 책들은 오디오북으로 이용하기에는 제한될 것 같습니다. 간단한 에세이나 가벼운 책들을 주로 이용할 것 같고 이 문제를 어느 정도 해소하기 위해서는 멈춤 기능과 속도 조절이 있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또한 내가 좋아하는 가수나 배우가 성우로 등장한다면 이용객이 많이 늘 것으로 예상됩니다.

 

허성일 인턴

편안하게 오디오북을 들으면서 하늘을 멍하니 보다가 듣던 부분을 놓쳤는데, 다시 소리에 귀를 기울였는데도 여전히 좋은 목소리가 흘러나와 계속 편안한 분위기가 유지될 수 있었습니다. 눈을 감으면서도 책을 들을 수 있다는 점이 너무 매력적이었고, 편안한 자세로 책을 들을 수 있는 점이 좋았습니다. 세 가지오디오북을 들어봤는데 읽어주는 사람에 따라 집중도가 갈리는 느낌이 있어서 좀 더 목소리의 중요성이 크게 느껴졌습니다. 유명인의 목소리가 담긴 오디오북을 만든다면 그 팬들의 수요가 많이 증가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소리내음> 이용자 누구나를 대상으로 하는 깜짝 이벤트진행 중이라고 

하니까 다같이 산지니x공간에 가서 오디오북에 참여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오디오북 체험공간 운영 안내>

체험 공간 위치 : 센텀스카이비즈 A동 710호, 산지니x공간

체험 공간 운영 시간 : (주중) 10:00 ~ 17:00

체험 공간 쉬는 날 : 주말 및 공휴일

연락처 : 051-717-2887

홈페이지 : http://sanzinixspace.modoo.at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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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날개 2020.01.30 08: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오디오북 체험을 해보니, 아무래도 유명인의 목소리가 담긴 책을 먼저 들어보게 되더라고요^^
    많은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책의 형태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안녕하세요. 산지니 인턴 김다연입니다.

영광스럽게도 제게 정우련 작가님의 소설집 『팔팔 끓고 나서 4분간』 서평과, 저자와의 만남 포스팅에 이어 인터뷰까지 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작가님은 자주 가신다는 광안리의 한 카페로 저를 초대해주셨는데요. 작가님이 애정하시는 곳에서의 인터뷰라 더 뜻깊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작가님을 처음 뵙는 자리였지만, 마치 오래전부터 본 선생님처럼 친절히 대해주셔서 편안한 마음으로 인터뷰할 수 있었습니다. 작가님께 감사하다는 말을 올리며, 정성가득한 정우련 작가님의 인터뷰 함께 보실까요? :D

 

Q. 작년 9월에 『팔팔 끓고 나서 4분간』을 출간하셨는데요. 16년 만에 나온 두 번째 소설집이라 감회가 남다르셨을 것 같습니다. 『팔팔 끓고 나서 4분간』은 작가님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A. 사실 너무 오랜만에 나온 소설집이다 보니까 책 내용은 뒷전이고 도대체 뭐 하느라 인제야 두 번째 소설집이냐, 하는 눈총을 많이 받았습니다. 작가 후기에서 책을 출간하는 데에만도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는 말은 그런 반응들이 예상됐기 때문이었습니다. 한때는 문학이 내게 사치가 아닌가 하는 회의에 빠져서 나 하나쯤 안 쓴다고 뭐 그리 달라질 게 있을까 하고 슬그머니 비켜서 버릴까 하는 생각까지 했는데 그러다 보니 책도 눈에 안 들어오고 글은 더더욱 안 되고. 슬럼프에 빠지기도 하고요. 그런 우여곡절 끝에 그동안 발표한 단편 12편 중의 7편을 추려서 묶었습니다. 더는 숨을 데가 없다 싶으니까 차라리 뻔뻔해지더라고요. 그렇게 책을 내고 보니 그제야 앞으로 제 소설이 나아가야 할 방향성이 보이는 것 같아요. 얼마나 다행한지 모르겠어요. 그게 이번 소설집의 의미라면 의미겠지요. 2017년 끝에 낸 산문집 『구텐탁, 동백아가씨』를 묶었을 때도 그런 생각을 했거든요. 산문집도 신문에 연재하거나 청탁받아 쓴 산문 중에서 추려서 묶었는데 그동안의 제 관심사가 오롯이 드러나는 느낌이었어요. 그 속에 실린 짧은 단상들 중에는 소설로 쓰고 싶은 발상이 더러 있었습니다. 그것들 몇 개가 단편소설이 되었고, 또 이 단편소설집 안에 들어 있는 단편 중에서 장편으로 쓰게 될 모티브가 보였어요. 『팔팔 끓고 나서 4분간』을 낸 것도 그런 뜻에서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네요.

 

Q. 표제작 「팔팔 끓고 나서 4분간」의 제목이 예사롭지 않다고 느꼈는데, 영화 <엘비라 마디간>에서 나온 대사라는 걸 알고 흥미로웠습니다. 평소 영화에서 영감을 많이 받으시나요? 영화 외에도 작품을 쓰실 때 소재나 주제를 채집할 때 어디서 영감을 받으시는지 궁금합니다.

A. 등단 초기에는 더러 미술이나 음악 같은 데서 영감을 얻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첫 소설집『빈집』에 실린 「서른 즈음에」는 한때 제 애창곡이었던 김광석의 노래 <서른 즈음에>를 부르다 문득 서른 즈음의 나이에 파업 중인 한 학습지 교사의 어느 막막한 하루를 상상하면서 써봤고요. 「빈집」은 화가 박병재의 전람회에 갔다가 <빈집>이라는 그림을 보고 그 우울하고 쓸쓸한 이미지에 얼굴을 묻고 울고 싶은 마음을 단편으로 만들기도 했지요. 「브라암스의 회상」도 브라암스 피아노협주곡 1번을 떠올리면서 썼고요. 이번 소설집에는 「팔팔 끓고 나서 4분간」이 영화에 나오는 한 줄의 대사에서 영감을 얻어서 쓴 작품이에요. 나머지 6편은 제 일상 속에서 직간접적으로 체험했거나 언론이나 방송 매체 같은 데에서 충격적으로 접한 사건이 마음속에 남아있다가 이야기가 된 경우지요. 「팔팔 끓고 나서 4분간」을 쓴 게 13년 전이니까 최근에는 타 장르에서 영감을 얻거나 하는 초기 소설의 경향에서는 좀 멀어진 게 아닌가 싶네요.     

 

 

Q. 소설집 『팔팔 끓고 나서 4분간』을 읽고 나서, 많은 감정이 교차했는데요. 7편의 이야기 곳곳에 통증을 느끼는 인물들을 배치했다고 느꼈는데, 편집자님께서 「통증」도 표제작 후보에 있었다고 말씀해주셔서 신기했습니다. 소설집의 제목을 정하게 된 비하인드가 궁금합니다.

A. 맞아요. 「통증」이 1번 후보로 올라왔었습니다. (웃음) 처음부터 의도한 건 아니지만 소설 전편에 걸쳐서 통증을 느끼는 인물들이 나옵니다. 「통증」에서 아내는 베트남 참전 용사였던 남편의 상처를 보면서 극심한 통증을 느끼거든요. 「까마귀 길들이기」에서는 펄펄 끓는 호박죽을 젓다가 팔목을 덴 윤주가 까닭모를 통증에 시달리며 마치 까마귀를 길들이는 것처럼 힘들게 사춘기를 지나온 기억을 떠올리고요. '통증'을 제목으로 했어도 무난했겠지요. 근데 너무 평이하고 심심했을 것 같은 거예요. 「까마귀 길들이기」는, 뭐뭐 길들이기 같은 제목도 좀 흔해 보이고. 「처음이라는 매혹」은 느낌은 있지만, 또 전체를 아우르기에는 미흡하고, 제3의 제목을 달기도 좀 그렇고. 그래서 제가「팔팔 끓고 나서 4분간」을 표제작으로 하면 어떨까 하고 제안을 했어요. 이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제목이 아닐까 싶었거든요. 13년 전 이 소설을 쓸 때쯤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 또한 내일과 별반 다를 것 없는 그만그만한 날들이 지나가고 있었어요. 살다 보면 권태로울 때가 있잖아요. 그때 오래전에 본 영화를 다시 봤는데 영상이며 음악이 정말 아름다운 거예요. 뜨겁게 사랑하는 두 연인이 막다른 골목까지 도망치다 결국 동반 자살을 선택하거든요.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서 사랑이 죽는 것보다는 자신들이 죽는 게 사랑을 살리는 길이라고 판단해요. 남자는 닭장에서 막 낳은 달걀을 훔쳐 와서는 최후의 만찬을 준비합니다. 달걀을 어떻게 해드릴까요 하고 여자가 묻죠. 물이 팔팔 끓고 나서 4분간 삶으라고 남자가 대답해요. 남자의 그 대답이 아주 상징적이고 은유적으로 와 닿더라고요. 냄비 속의 물이 팔팔 끓기 시작해서 4분이면 달걀이 푹 익듯이 어쩌면 사랑도 삶도 딱 그 만큼에 해당하는 시간을 말하는 건 아닐까. 나머지는 그저 연명이고 잡지의 부록처럼 군더더기가 아닐까. 그때는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느낌이 하도 선명해서 제목을 그렇게 붙였고요. 책 제목이 인상적이라는 평을 많이 들었습니다. 독자들이 입에 딱 붙는다고 하더라고요. 그 팔팔 끓는 라면 그거 재밌더라 하는 말에 웃음이 터지기도 했습니다.

 

Q. 저는 7가지 이야기 중에서도 「말례 언니」를 가장 인상 깊게 읽었는데요. 분선이의 천진난만함이 묻어나는 재미와 말례 언니가 주는 아릿한 여운까지 다 지닌 작품이라 더 깊게 각인된 것 같습니다. 작가님은 소설집에 실린 7가지 단편 중 가장 애착을 가지고 있는 작품이 있으시다면 어떤 작품인가요?

A. 저는 제일 촌스럽다고 생각한 소설이 「말례 언니」였는데 의외로 제일 인기가 많더라고요. (웃음) 「말례 언니」가 7편 중에서 제일 오래된 소설이에요. 진짜 청탁받고 보름도 안 걸려서 썼거든요. 지금은 깡깡이 마을이라고 불리는 영도 대평동이라는 공간 배경하고 제 유년 시절의 몇몇 에피소드가 실제 이야기라서 쉽게 썼어요. 물론 말례 언니를 비롯해서 다른 인물들은 모두 허구였지만 상상하기에 무리가 없었어요. 이제는 아무도 안 쓰는 낡은 스타일이 아닐까 우려했는데, 뜻밖에 유머가 느껴진다고 해서 좀 의외였어요.
 어느 것 하나 허투루 쓴 건 없지만 제일 애착이 가는 작품은 예술가 부부의 갈등을 다룬 「통증」이랑 「팔팔 끓고 나서 4분간」입니다. 「통증」은 예술가 부부의 갈등이 드러나는 대화의 현장성을 날것으로 살리는 데 주력했고 「팔팔 끓고 나서 4분간」은 오래전 발표한 소설이다 보니 시대가 특정되지 않아서 퇴고 과정에서 거의 갈아엎다시피 하는 바람에 제일 힘들게 썼습니다. 그러다 보니 초고 때의 강렬했던 메시지가 충분히 살아나지 못한 것 같아서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발상이나 모티브의 강렬함에서는 애착이 가는 작품입니다.

 

 

Q. 1996년 국제신문 신춘문예에서 소설 「서른네 살의 다비장」으로 등단하셨는데요. 당시 당선 소식을 들었던 기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실 것 같습니다. 소설가의 꿈을 언제부터 키우시게 된 건가요? 소설을 쓰게 된 계기를 여쭤보고 싶습니다.

A. 대부분의 작가들이 어릴 때의 책 읽기나 백일장에서 상을 받은 경험 같은 게 글쓰기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은데요. 저도 그런 케이스였어요. 그전까지는 주로 문학 중심의 독서였는데 고등학교 졸업 무렵에 함석헌 선생의 글에 빠졌습니다. 시대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 칼끝으로 가슴을 쓱 베는 듯 아팠습니다. 보수동 헌책방을 돌며 사상계며 씨알의 소리 잡지를 사 모으곤 했지요. 그러다가 부산에 오신 함석헌 선생 강연을 듣고 장기려 박사님 사택에서 했던 수련회에 다녀오고 하면서 나도 선생처럼 사람을 온통 뒤흔들어놓는 힘 있는 글을 쓰고 싶다는 열망을 품었습니다. 그리고는 한강 이남에 처음 생긴 부산 여전 문예창작과에 들어갔어요. 제가 1기생이었는데 영남권의 문청들이 대거 몰려왔죠. 120명을 뽑아서 한 반에 30명씩 4개 반으로 분반 수업을 할 정도였어요. 그때가 82년도였는데 막 동아일보로 등단하신 조갑상 선생님이 소설창작 실기 지도를 하셨어요. 이제 막 등단한 팔팔한 작가가 내뿜는 은근한 열정이 우리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졌습니다. 학생들에게 존경과 사랑을 한 몸에 받으셨죠. 하루는 뭣 때문이었는지는 잘 기억이 안 나는데 학보사에서 선생님이 “니는 어떤 소설을 쓰고 싶노”하고 물어요. 그래서 앞뒤 재지 않고 함석헌 선생님 처럼 당대의 문제에 대한 비판적이고 힘 있는 소설을 쓰고 싶다고 대답했어요. 선생님이 그 특유의 혼자 웃는 웃음을 웃으시면서, 선생님 등단작이 ‘혼자 웃기’ 였거든요. “니는 그기 가능하다고 생각하나?”라고 되물으셨어요. 광주항쟁 직후였으니까 군사정권에 대한 반대 목소리는 철저히 검열당하던 암울한 시대였거든요. 그러니까 선생님 생각에 제 대답이 아주 세상모르는 철부지 같아 보이지 않았겠어요.
합평시간도 되게 뜨거웠어요. 책 꽤나 읽었다는 문청들이 모여 있다 보니 어마어마하게 물어뜯어요. 그게 자기 작품일 땐 상처받죠. (웃음) 저도 약속이란 제목으로 첫 작품을 합평에 올렸다가 너덜너덜해졌죠. 어쨌든 선생님이 합평한 작품을 퇴고해서 제출하라고 했는데 고칠 엄두가 안 나서 들고만 있었어요. 과외 알바를 해서 학비를 벌어야 했고 매일 새벽에 일어나 방위 받는 남동생 도시락도 싸줘야 해서 늘 잠이 부족했어요. 그러니 복도 같은 데서 선생님 그림자만 보여도 숨고 (웃음) 피해 다녔거든요. 그러다가 학기 말이 되었는데 기말 고사치는 날 시험감독으로 들어오신 거예요.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었는데 딱 걸렸죠. 죄밑이 되어 고개 푹 숙이고 시험을 보고 있는데 선생님이 제 옆에 딱 와서 서시는 거예요. “고쳐보면 뭐가 돼도 될긴데. 와 빨리 안 가져오고 그라노.” 하면서 화를 버럭 내셨어요. 야단맞는 게 창피했지만 고쳐보면 뭐가 돼도 될긴데, 하는 말씀이 마음에 참 따듯하게 남았어요. 아, 그래도 내 글이 영 쓰레기는 아니었나보다 하는 자각이 들었던 거지요. 그 후로 졸업하고 결혼과 육아, 학원 경영 등으로 바삐 살다가 문창과 동기인 김초옥이란 친구가 문예지에 당선된 제 작품을 보내온 거예요. 그때 문창과 시절을 떠올렸죠. 내가 지금 어디서 뭘하고 있나 싶었지요. 마침 남산동에 35평 신축아파트 한 칸 살 돈이 모였던 터라 운영하고 있던 학원을 정리하고 범어사 밑으로 이사를 했어요. 그리고는 고쳐보면 뭐가 돼도 될긴데 하시던 선생님 말씀에 꽉 매달렸죠. 그리고는 96년에 처음으로 신춘문예에 투고한「서른네 살의 다비장」이 덜컥 당선이 됐어요.

 

Q. 소설을 쓸 때 고려해야 할 부분들이 많잖아요. 인물, 사건, 배경, 소재, 하다못해 저는 인물의 이름을 어떻게 지어야 할지 끙끙댄 적도 많은데요. 소설을 집필하실 때, 특별히 신경 쓰시는 부분이 있으신가요?

A. 등단 초기에는 문장에 엄청 신경을 썼어요. 어떻게 하면 감수성이 살아있고 가독력있는 문장을 쓸 수 있을까 하고요. 그러니까 상징이나 은유 같은 표현의 문제에 많이 집착했어요. 어떤 때에는 생생한 인물, 즉 돋보이는 캐릭터를 만들어내는 것에 집중할 때도 있었고요. 아무리 특출하고 개성 있는 인물이 나온다고 해도 또 주제가 받쳐주지 않으면 공허하잖아요. 그래서 지금은 어느 것 하나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해요. 주제를 잘 살리려면 글의 흐름이며 구성이 똑 떨어져야 하고 문단의 응집력이며 전체적 통일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인물이 나올 수 있는 시공간적 배경도 중요한 요소고요. 그러니까 특별히 어느 것 하나에 신경 쓰기 보다는 이런 전체적 균형을 생각하는 거죠.

 

Q. 작가님이 생각하시는 문학의 힘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저도 한국어문학과 학생인지라 항상 고민해보는 부분인데요. 명확한 답이 있는 질문은 아니지만, 작가님의 생각을 들어보고 싶습니다.

A. 사람들이 잘못된 기사나 정보를 비판할 때 흔히 쓰는 말이 ‘소설 쓰지 마라’ 입니다. 그 말은 소설이 허구, 즉 가짜라는 거죠. 맞아요. 소설은 가짜죠. 픽션이니까 만들어낸 이야기인 거죠. 그게 꼭 소설 자체를 비하하고 부정적으로 보고 말하는 건 아닐 거예요. 소설은 물론 허구죠. 그런데 그 허구 속에 객관적인 진실을 담고 있는 거거든요. 만들어진 이야기를 통해서 허구 안에 있는 진실의 문을 여는 게 소설이죠. 문학의 힘은 단연 호소력이죠. 소설은 허구니까 현실과 멀리 있는 거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현실을 더 속속들이 파헤쳐서 마치 내 이웃이나 나 자신에게서 일어난 일처럼 느끼게 한다는 거죠. 요즈음은 영화가 소설의 자리를 차지해버린 지 오래됐잖아요. 그래서 영화가 훨씬 더 대중적인 호소력을 갖고 있지만 원작의 호소력은 못 따라가거든요. 영상 언어가 문학 언어의 구체적이고 섬세한 상상력을 따라잡는 데는 한계가 있거든요. 대개 원작 읽고 영화 보면 실망하잖아요. 문학은 내면을 뚫고 들어가는 힘이 영화보다 훨씬 커요. 아무리 문학을 외면하는 시대가 온다고 하더라도 문학의 진실한 힘을 믿는 사람들은 남아있을 거라고 봐요. 저도 그런 문학의 힘을 아직도 꽉 믿고 있는 사람 중의 하나거든요.

 

 

Q. 각 단편들이 통증이라는 선상에서 흐르다가, 마지막 작품인 「만선」으로 소설집의 끝을 맺으셨습니다. 「만선」은 전재용 선장의 이야기를 장편으로 쓰던 중에 단편 청탁이 와서 우선 주제 부분만 떼 단편으로 쓴 작품이라고 밝히셨는데요. 전재용 선장의 이야기를 계속 집필 중이신 건지 궁금합니다. 작가님의 다음 작품 활동으로 장편소설 소식도 들어볼 수 있는 걸까요?

A. 만선은 앞에 실린 6편과는 좀 다른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라서 이번 창작집에서 뺄까 말까 망설이다가 실었거든요. 그래서 독자들의 반응이 제일 신경 쓰이는 작품이었어요. 근데 의외로 일반 독자들 중에서는 장편으로 발간하면 꼭 읽어보겠다는 의견이 많았고 책 나오면 리뷰를 쓰겠다고 자청하기도 했어요. 그런 독자들의 관심과 지지가 든든한 힘이 되어서 조금씩 써나가고 있습니다. 올해 안에 초고를 완성하겠다는 계획대로 부지런히 달려봐야죠.

 

Q. 2020년의 해가 밝았습니다. 사람 ‘정우련’으로서 이루고 싶은 올해의 소망과, 작가 ‘정우련’으로서 이루고 싶은 올해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A. 올해는 자연인으로서의 사람 정우련과 작가 정우련의 삶이 일치하는 한 해가 되는 게 목표라면 목표입니다. 구상 중인 소설 속 공간 중 한 곳을 두어 달 취재하러 갈 계획이 있고요. 올해는「만선」초고를 끝내는 게 독자들과의 약속이기도 합니다. 오직 소설과 나 사이에 어떠한 매개항도 두지 않는 한 해를 보내고 싶습니다.

 

Q. 마지막으로 작가님의 글을 사랑해주시는 독자님들께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A. 먼 곳에 가서 그리운 이에게 보내는 엽서 같은 소설을 쓰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딱딱한 인터뷰를 한다기보다는 다정다감한 담소를 나누다 온 기분이었습니다. 인터뷰 외에도 좋은 말씀을 해주셔서 한 사람으로서, 인턴으로서, 한국어문학과 전공자로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작가님의 독자이자 작가님을 응원하는 팬으로서  활발한 작품활동 기대하겠습니다. :) 마지막으로, 정우련 작가님께 귀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남기면서 인터뷰 포스팅을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팔팔 끓고 나서 4분간 - 10점
정우련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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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산지니 인턴 김우철입니다. 


 저번에 포스팅했던 서평에 이어서 『나는 개성공단으로 출근합니다』의 저자 김민주 작가님과 인터뷰한 내용을 포스팅하고자 합니다.


직접 만나서 많은 대화들을 나누고 싶었지만, 김민주 작가님이 서울에 계셔 아쉽게 서면 인터뷰를 하게 되었습니다.



Q. 『나는 개성공단으로 출근합니다』를 출간에 있어서 특별히 기억나는 일이나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A.  출간한 지 20일도 안 되어서 2쇄를 찍게 되고, 또 서점의 북한 통일 관련 순위에서 4위까지  올라갔던 일이 너무 특별하고 신기 했던 거 같아요.



파주 도라산에서 바라본 개성공단 사진(tbs)



Q.   김민주 작가님께서 직접 느낀 북한의 느낌은 어떠하였나요? (북한 건물, 지역의 분위기)


A.   개성공단의 건물은 다 남측식이라 남한의 공단지역과 비슷하다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개성공단 공업지구에 들어와 일하던 ‘북한사람들’ 외에는 지역 분위기를 느끼기 어려웠는데, 가끔 북한 사람들이 싸 오는 음식들에서 안 여기는 북한이구나 하는 것을 느꼈어요. 돼지 간볶음을 도시락 반찬으로 싸 온다든지, 김치에 고수 같은 것들을 넣을 때요.


Q.   북한에 가 보았을 때 생활 수준이나, 화장품과 같은 상품들이 남한의 70~80년대 때와 비슷하다고 하셨는데, 개성에서 근무하셨을 당시 스마트폰과 같은 개인 전자기기를 사용하는 사람이 있었나요?

A.   네, 북한에도 손전화라고 해서 휴대폰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벨 소리를 직접 들은 적도 있고요, 하지만 원래 남북한 사람들 다 개성에는 휴대폰을 가지고 오지 못하게 되어 있어서, 벨 소리는 났는데 얼굴이 빨갛게 되어서는 끝까지 꺼내질 않더군요. 제가 안 볼 테니까 전화 받으라고 하자 “선생님 고개 돌리십시오. 보지 마십시오.” 하면서 전화를 받더군요.



Q.   개성에서 북한인들과 같이 일을 하는 등 북한과 관련된 경험이 많으신데 북한이 일반인들과 다르게 조금 특별하게 느껴지실 것 같습니다. 김민주 작가님에게 북한이란 어떤 존재로 다가오시는지요?

A.   특별히 북한이라는 나라를 생각한다기보다는 북한에서 지내는 보통 평범한 사람들에 대한 마음이 있는 것 같아요. 그 사람들에게 정말 자유가 있었으면, 스스로 선택하고 사고할 수 있는 많은 정보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Q.   저는 작가님이 리순희 성원이 총화를 받을까 봐 조장의 눈을 피해 다친 부위에 후시딘을 발라 주는 장면은 저에게 가장 애정을 느낀 장면이었습니다. 이처럼 본인이 느끼기에 가슴 따뜻해지고 훈훈한 베스트 에피소드를 하나 뽑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A.   말씀하신 그 약과 관련된 에피소드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우리가 아주 쉽게 구할 수 있는 간단한 진통제, 항생제 같은 것들이 없어 고생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아픕니다.


통일대교 사진(SBS 김학선 사진기자)

Q.   이것 말고도 책에 담지 못한 재미난 에피소드가 있나요? 있으시다면 하나만 얘기해 주세요!


A.   직원회식으로 개성의 BBQ치킨을 주문한 적이 있습니다. 다 함께 주방에 서서 마늘 양념치킨, 간장양념 치킨, 닭튀김 등을 먹었는데 처음 맛본 그분들이 눈이 땡 그래 지더군요. 너무 맛있어했는데, 조장이 “음음 느끼하다 에그” 하더군요. 그랬더니 다들 내려놓더군요. 이후에 치킨을 싹 다 싸서 세척실로 들어갔어요. 나눠서 싸가는 소리가 들렸고, 가족에게 맛보이고 싶었나보다 생각했어요.



Q.   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에서 정착업무를 하셨고, 강연과 북한정착지원사무소 봉사 등의 활동을 하고 계시는데 북한 관련해서 진출하고 싶은 분야가 또 계신가요? 또한 강연은 주로 어떤 주제를 가지고 강연을 하시는 건가요?


A.    보통 제가 만났던 북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다양한 시각으로 북한을 바라봐야 하는 부분에 대해 평화&통일 강연을 진행합니다. 그리고 북한의 각 지역에서 온 북한 이탈 주민들을 인터뷰해서 에세이를 내보면 어떨까 싶어요. 북한은 평양과 기타 도시의 생활 수준, 환경이 많이 차이가 나거든요. 각 지역의 특성마다 다른 사람들에 관한 내용을 써보고 싶어요. 기회가 된다면 조선족에 관련된 내용도 흥미가 있습니다.




Q.   통일되었을 때 반세기 이상 다른 이념으로 살아온 이유로 많은 사회적 문제, 갈등이 야기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미리 준비하면, 그 문제를 조금이나마 완화될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렇다면 통일을 준비하거나 북한을 인식할 때 어떤 점을 주의하여야 할까요?


A.   참 많은 분이 내가 전문가라고 말씀하시는 거 같아요. 수많은 논문, 학자들이 한국에 있는데 북한에 한 번도 가본 적 없고, 탈북민 몇 사람 만나본 게 전부인 사람들이 먼저 한 사람들의 글, 논문들은 참고하고 인용해서 또 자료를 만들어 내는 것 같고요.  그 중에 진짜도 있고, 거품도 있을 텐데 구분할 수 있는 힘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러려면 국내 자료도 공부해야 하겠지만, 외국에서(직접 북한에 들어가 연구하거나 생활한) 사람들의 연구자료 같은 것들도 보고, 북한에 살다 오신 분들의 목소리도 들어보고 교차 검증해서 흡수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를 들어 통일이 되면 무조건 우리가 피해 본다는 의식들이 강한 것 같은데, 반드시 그렇지만도 않고 장기적으로 더욱 이득이 될 수 있다는 근거들도 있으니 다양한 시각으로 상황을 바라봐야 할 것 같아요.



Q.  개인적으로 정말 궁금해서 실례를 무릅쓰고 질문 하나만 하겠습니다 :) 남남북녀라는 말이 있는데 실제로 북에서도 남남북녀라는 말을 사용하는지, 또한 그런 말이 생길 만큼 북한 여성들의 외모가 아름다운지 궁금합니다 ^^


A.  잘 모르겠네요. 사실 그것도 우리가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 중에 하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세상을 흘러가고 사람은 움직이고 있어요. 냉면, 김치, 남남북녀 말고 새로운 시각으로 정서로 그들과 함께 공존할 수 있는 길을 찾아보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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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개성공단으로 출근합니다 - 10점
김민주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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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에디터날개 2020.01.22 15:5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랑의 불시착> 열혈 애청자로서 ㅎㅎㅎ
    책을 읽고 드라마를 보니 낯설지 않은 느낌도 들더라고요~
    북한이란 나라는 마치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듯 일부만 알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나는 개성공단으로 출근합니다>와 같은, 그곳을 직접 경험한 사람의 이야기가 북한을 바르고 정확하게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우철 씨 인터뷰 잘 봤어요^^

  2. 겨자나무 2020.02.22 14: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도대체 보통북한 사람들의 의식은(사고방식)은 어떨까 궁금하였는데 이책에서 조금은 알것같네요
    저들에게도 딴세상이 있다는걸 어떻게하면 깨닫게 할까요.
    작가의 안타까운 마음이 느껴지네요.

안녕하세요. 산지니 인턴 남경희 입니다 :)

현재 산지니에는 저를 포함한 5명의 인턴들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저희 인턴들은 함께 모여 산지니의 책 『세상에 나를 추천하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요. 독서 토의 형태로 진행되었습니다.

『세상에 나를 추천하라』에 대한 어떤 의견과 이야기들이 오갔는지 함께 보실까요?

 

 

[경희, 사회자] 먼저 독서 토의에 들어가기 앞서 책에 대해 간단한 소개와 토의 방향성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세상에 나를 추천하라』는 대만의 유명한 강연자 및 사회자인 정쾅위가 쓴 자기계발서로, 그의 성공담이 아주 솔직하게 담겨 있습니다. 이번 독서 토의에서는 저자 정쾅위의 삶과 태도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자신의 삶에 대해서도 고민해볼 것입니다.

 

1. 이렇게 다 같이 모여서 ‘산지니’의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은 이번이 처음이네요. 때문에 독서 토론에 본격적으로 들어가기 전에 다 같이 이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으면 좋겠어요. 인상 깊은 구절이든, 책의 첫인상이든, 다 상관없어요. 자유롭게 『세상에 나를 추천하라』에 대한 감상을 나누어볼까요?

 

[우철] 전공이 국제관계학과라 그런지 해외에 나가 경험하는 부분에 관심이 많이 갔습니다. 그는 해외에 나가서 생존하기 위해 노력하였는데, 교환학생과 해외취업 등을 준비하는 저로서는 유용한 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성일] 제가 인상 깊었던 구절은 55페이지에 나오는 “노력은 기본이고 성공은 파고들어야 한다.”라는 부분입니다. 노력의 중요성은 누구나 알고 있기 때문에 당연한 것이고, 성공을 하려면 노력가지고는 될 수 없고, 성공하기 위해서 노력 이상으로 무슨 수를 써서라도 다른 사람들과 다른 방법과 진행을 필요로 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직설적이지만 현실적일 수도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경민] 이 책의 서문인 5페이지에 그런 말이 나오거든요. “만일 당신이 진짜 평범한 사람이라면, 무미건조한 삶을 수용하고, 아무 고민 없이 살아도 된다. 상처를 받지 않아도 되는 대신, 이룬 것 또한 하나도 없는 그런 삶을 말이다.” 저는 사실 이 구절을 읽으면서 공감하지 못했거든요. 왜냐면 평범한 삶은 나쁜 삶이 나쁜 삶은 아니잖아요. 물론 저자처럼 죽을 각오로, 체면 차리지 않고 도전하는 삶은 멋진 삶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평범한 삶, 그런 평범한 삶조차 힘들게 살아내는 사람들을 “이룬 것 하나 없다.” 고 말해도 되는 걸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다연] 저도 인상 깊었던 구절을 말해보자면, 48페이지의 “그러니 하늘 아래 ‘하찮은 일’ 따위는 없다. 오히려 이 작은 일들이야말로 가장 소중한 자양분이다. 작은 일 하나를 제대로 해나가면서 그 일의 전문가가 되고, 그러면서 더 큰 일들이 시나브로 당신에게 맡겨지는 것이다.”를 이야기하고 싶어요.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시대의 청년들에게 필요한 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사소하고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일도 ‘나’라는 사람을 단단히 받쳐주는 자양분이 된다는 사고의 전환이 인상적이었어요.

 

 

[경희, 사회자] 2. 여러분들 모두 책에 대한 첫인상에 관해서 이야기해주셨는데, 다음으로 책에 대한 깊은 이야기를 나누기 전에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전반적인 이야기를 먼저 해볼까 합니다. 이 책의 저자는 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달려가며, 무엇이든 열정적으로 임하라고 말합니다. 또한,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 다른 길과 방법을 찾아보라고 말합니다. 저자가 말하는 이러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뚜렷한 목표의식이 있어야 하는데요. 여러분들은 어떠한 삶의 목표를 가지고 있나요? 간단하게나마 이야기해봅시다.

 

[우철] 저자는 책에서 어떤 노력이든 헛된 노력은 없다고 말하고 있더라고요. 자신이 했던 노력들은 축적되어 빛을 발한다고 말하기도 했고요. 저는 매사에 게으른 성격 탓에 열정적으로 일에 임하려면 시간이 오래 걸리는데 저자처럼 뚜렷한 목표설정으로 이런 저의 단점을 극복하고 싶습니다.

 

[성일] 저의 목표의식은 저자와는 조금 다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저의 삶의 목표는 그냥 남들처럼 평범하게 사는 것입니다. 하지만 요즘에는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도 요즘은 쉬운 것이 아니라 생각합니다. 남들만큼 똑같이 하기보다, 남들보다 조금 더, 그렇다고 남들을 따라 잡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삶을 사는 것이 아닌 나 스스로 떳떳할 수 있는 그런 삶을 사는 것이 목표입니다.

 

[경민] 저는 저자가 말했던 ‘삶의 목표’가 쌓여서 삶의 방향성이 결정된다고 생각을 해요. 그래서 단순하게 “의사가 되겠어, 변호사가 되겠어.”라는 단순한 목표가 아니라 삶의 방향성에 관해서 이야기해보자면, 저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좋은 사람이라는 기준이 사람마다 다 다를수 있지만, 저는 다른 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서 저 나름대로 공부도 많이 하고, 경제적으로 자립하고 싶다는 목표도 가지고 있습니다.

 

[다연] 아직은 구체적인 삶의 목표가 없는 것 같아요. 추상적인 목표는 많지만 거창하게 삶의 목표라고 말할 뚜렷한 목적지는 찾지 못했어요. 하나만을 보고 달려갈 삶의 목표를 찾아가는 중이라는 표현이 더 맞겠네요. 억지로 정하려고 하지는 않으려고요. 살면서 생기면 생기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현재의 삶을 살아가다 보면 목표를 뛰어넘는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경희, 사회자] 저자는 어떤 목표를 향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뛰어들라고 말하고 있는데 그게 쉽지는 않죠. 그래서 조금 구체적이라기보다는 추상적인 이야기들이 많이 나온 것 같아요. 근데 반드시 구체적인 목표가 있어야 하는 건 아니니까요. 그럼 이제 3번 주제로 들어가 볼게요.


3. 이제 본격적으로 책에 대해 깊은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저자의 삶을 이야기하면서 우리의 삶과 연관 지어 봅시다.
저자는 타이완대학 법학과에 지원하고자 했지만, 연합고사를 망쳐버려 정즈대학 철학과에 들어갔습니다. 그곳에서 1년 동안 타이완대학교 편입시험을 준비했지만, 전과시험도 통과하지 못했고, 정치학과로의 편입시험과 타이완대학 정치학과 편입시험 모두 떨어졌죠. 심지어 그해 연합고사마저 망쳐버렸습니다. (p44~45)
저자는 이때의 회상하며 연속으로 4번의 실패를 경험했다고 말합니다. 여러분들도 저자처럼 거듭해서 실패를 경험한 적이 있나요? 또한, 그때 어떤 모습을 취했나요?

 

[우철] 저는 군 복무를 수행하려 할 때, 의무 경찰로 근무하고 싶어서 지원을 했지만 5번 넘게 최종에서 떨어졌어요. 그래서 장갑차 조종수라는 경쟁률이 낮은 곳에 지원을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너무나도 생소한 일이었고, 힘들었던 것 같아요. 상황을 아무리 부정해도 바꿀 수 없는 상황이었고요. 그렇게 계속 낙심을 하다 보니까 군 생활에 부정적 영향을 끼쳤던 것 같아요. 그래서 기 이후로 저는 생각하지 않고 일에만 몰두하는 것으로 그 시기를 이겨냈던 것 같습니다.

 

[성일] 인생에서 도전을 해본 것이 많지 않아 크게 실패한 경험이라고 할 만한 경험은 없지만, 대학교 3학년이 됐을 때, 저의 진로를 정하고 거기에 맞는 대외활동을 찾아보고 대외활동을 지원 했지만 여러 군데 대외활동 선발에서 떨어졌습니다. 결국 여러번 탈락 끝에 원했던 것 보다 좀 작은 규모의 대외활동을 했긴 했지만, 그 안에서 열심히 활동하면서 결국 좋은 성과를 얻었던 것 같습니다. 원하는 목표만큼 못했다고 거기에 실망하지 않고 주어진 환경에서 열심히 했던 것이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경민] 저는 중학교 때 ‘작가’라는 꿈을 가지기 시작했고, 대학도 그에 맞춰서 문예창작학과에 진학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교내외의 작은 대회에서 상도 많이 받았어요. 그래서 저는 그때까지만 해도 제가 글을 진짜 잘 쓰는 줄 알았고, 재능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고등학교에 올라와서 여러 백일장에 참여했었는데, 본심에도 못 올라가고 다 떨어졌어요. 그래서 그때의 실패에 좀 좌절을 했던 것 같아요. 근데 그 실패를 통해서 제가 우물 안의 개구리였다는 걸 깨닫고 조금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생각해요.

 

[다연] 저는 대학교 1학년 때 방학동안 일할 단기알바를 구하는데 지원하는 곳마다 떨어진 적이 있어요. 단기는 잘 뽑지 않는 데다가 갓 성인이 된 20살이어서 더 그랬던 것 같아요. 알바를 포기해야 하나 싶을 때쯤 조건이 딱 들어맞는 곳을 찾았어요. 이게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지원서를 더 정성스럽게 써서 제출했고 면접도 보러 갔어요. 담당자가 면접을 보면서 다른 지원자 3명도 면접을 보고 갔는데 다연씨가 마지막 지원자라고 하더라고요. 그때 지원한 알바가 고객센터 업무였는데 제 전공까지 이야기하면서 적극적으로 어필했어요. 적극적인 자세를 좋게 봐주신 건지 제가 뽑히게 됐고, 실패해도 포기하지 말고 더 발전된 모습으로 다시 도전하면 좋은 결과가 따라올 수도 있다는 걸 배우게 됐어요.

 

 

[경희, 사회자] 3-1. 그럼 3번 주제와 이어서 다음 질문을 진행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는 비록 편입·전과시험에 실패했지만, 그때 공부한 것들이 이후 치른 장교시험과 국비유학생시험의 필수 과목들이어서 다른 사람들보다 수월하게 그 시험들을 준비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모두 합격했죠. 이처럼 저자는 실패에 낙심만 하며 자신을 갉아먹은 것이 아니라, 꾸준히 자신의 삶을 살아갔고 ‘인생에 헛된 노력은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p46~47)
이러한 저자의 삶을 우리에 삶에 대입해볼까요? 과거 실패의 경험을 떠올리면서, 앞으로 실패를 마주했을 때 어떤 모습을 취할 것인지 말해봅시다. 

 

[우철] 앞의 주제에서도 말했지만 인생에 헛된 노력은 없다고 하는 말이 인상에 많이 남았어요. 실패했다고 삶이 끝나는 것이 아니고, 실패하고 모든 걸 잃었다고 해도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뜨니까요. 저 역시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노력은 나에게 선물을 들고 돌아온다는 것을 잊지 않고 살아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성일] 113쪽에서의 본 문장이 기억이 나는데요. “목표를 설정한 후 목표 달성 이후 얻을 수 있는 쾌락을 최대한으로 설정해서 지금 자신의 행동을 독려하고 격려하라.” 라는 부분인데 앞으로 목표를 정했다고 해도 사람이 쉽게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중간중간 게으름도 피우고 딴 짓도 많이 할 거라 생각합니다. 그럴 때마다 목표 달성 이후의 보상을 최대한으로 생각하며 좀 더 동기부여를 할 수 있는 삶을 살아가고 싶습니다.

 

[경민] 저는 앞의 3번 주제에서 말했듯이 글쓰기에 대해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지만, 고등학교 이후의 많은 실패로 좌절을 겪었어요. 그래도 결국 제가 원하던 과에 진학하긴 했지만 진학하고 나서도 비슷한 좌절을 또 한 번 겪은 것 같아요. 이 과에 저보다 잘 쓰는 사람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래도 저는 여전히 글을 쓰는 걸 좋아하기 때문에 이런 좌절을 경험으로 삼아서 조금 더 글을 써보고 싶고, 더 잘 쓰도록 노력해 나가고 싶습니다.

 

[다연] 책 50페이지를 보면, “실력의 축적은 언제나 나를 돕고 보호하며, 용기와 능력을 갖추도록 해줬다. 덕분에 나는 닥쳐오는 도전과 난관을 헤쳐나갈 수 있었다.”라는 구절이 있어요. 우리가 실패하면 당시에는 세상이 다 무너진 것처럼 느끼는데, 막상 시간이 지나고 보면 그렇게 큰일이 아니었던 적이 많잖아요. 그런 것처럼 실패도 쌓이면 성공의 발판이 된다고 생각해요. 저자처럼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태도를 지니며 살아가고 싶습니다.

 

 

[경희, 사회자] 4. 저자의 삶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 나누고 싶어요.
그는 대학원 시절 일본으로 떠나는 학부생 봉사활동에 참여했습니다. 해당 봉사활동은 학부생 중심의 활동으로 대학원생이 참여할 수 없다고 명문화된 것은 아니었지만, 그가 참여한다면 이상한 일로 비칠 상황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개의치 않았습니다. 오히려 면접 때 다른 학생들과 차별성을 두며 열정적으로 면접에 임했습니다.(p97)
저자는 자신이 정한 목표에 도달할 때 체면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목표를 위해 달려갔죠. 이러한 저자의 삶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하면서, 자신은 목표를 위해 어떤 모습을 취하며 살아갔는지 혹은 살아갈 것인지 말해봅시다.

 

[우철] 저자는 자신의 목표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 왔는데 저는 목표를 위해 자랑할만한 노력을 한 적이 없는 것 같아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자처럼 목표를 향하여 노력하는 열정을 본받고 싶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일] 저는 솔직히 어렸을 때부터 어떠한 목표를 가지고 인생을 살아오진 않았어요. 그래서 그냥 흘러가는 대로 살아왔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고등학교 때부터 꾸준하게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해봤습니다. 물론 용돈을 스스로 버는 목적이 가장 컸지만, 아르바이트를 통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많은 경험을 하게 된 것 같아요. 그러면서 하고 싶은 일이 생기고 이제는 하고 싶은 일과 관련된 활동들을 해오고 있습니다.

 

[경민] 근데 저는 조금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싶은 게, 저자가 목표를 향해서 달려가는 모습을 멋지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너무 목표지향적이라고 생각이 들었어요. 예를 들면, 국비지원을 받기 위해서 무용학과 쪽으로 원서를 넣어 합격한다든가, 일본어 실력을 늘릴 목적으로 고아원에 봉사활동을 나간다든가, 동일본 대지진을 자신의 커리어를 위한 좋은 기회로 바라본다든가 하는 시선이 저는 불편했어요. 저는 이 사회에서 ‘성공’이라고 하는 건 필연적으로 누군가를 밟고 올라설 수밖에 없는 것인데 저자는 그런 거에 대한 일말의 죄책감도 없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저는 그래서 저자와는 반대로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누군가를 밟고 올라서는 게 아니라 함께 같이 갈 수 있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다연] 저는 저자처럼 목표지향적인 삶을 살아온 것 같지는 않아요. 저와 같은 면보다는 다른 면이 더 많고요. 그래서 ‘아, 이런 사람도 있구나.’ 하는 마음으로 가볍게 읽었어요. 세상은 크고, 다양한 사람이 있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보다는 저자의 말 중 제게 필요하고 와 닿는 부분만 받아들였습니다. 저자의 목표지향적인 삶과 저의 삶은 다르다는 걸 인지하고 취사선택했듯이, 제게 독이 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분별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삶의 목표를 찾아가고 싶습니다.  

 

[경희, 사회자] 5. 어느 정도 책에 대한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눈 것 같습니다. 때문에 이 책이 가지는 가치와 의미에 대해서도 충분히 말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러나 딱딱한 형식보다는 짧게나마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 혹은 책에 대한 추천의 한마디를 해봅시다.

 

[우철] 저는 책 뒤편에 있는 표제가 정확한 표현인 것 같아요. ‘중화권에서 가장 뻔뻔한 사람 정쾅위, 그의 아주 현실적이고 뜨거운 성공담!’ 이 표현이 너무 공감돼서 추천의 한마디로 선정했습니다.

 

[성일] 이 저자분이 대만에서 굉장히 유명한 분이시잖아요. 그래서 저는 이런 분의 성공담도 한번 읽어보는 게 의미가 있을 것 같아서 추천합니다.

 

[경민]저도 사람마다 의견의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저자의 일에 대한 열정적이 인상적이라고 느껴서 이 책을 추전하고 싶습니다.

 

[다연]저는 이 책을 용기가 필요한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습니다. 저자의 넘치는 에너지가 독자에게 닿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세상에 나를 추천하라 -10점
정쾅위 지음, 곽규환.한철민 옮김/산지니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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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에디터날개 2020.01.22 15:4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책은 독자에 의해서 다시 쓰여진다는 걸 이번 토론을 통해 다시 느끼게 되네요.
    정쾅위 저자가 살아온 인생에 대한 학생들의 다양한 의견 들을 수 있어서 참 좋았어요. 앞으로 나아갈 길에 대한 각자의 고민도 들으니 옛생각이 아련... 하군요. ㅎㅎ

  2. 권디자이너 2020.01.22 18: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대 청년들의 생각을 들어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
    읽고 생각하고 토론하고 정리하느라 다들 수고하셨어요.

 

 

안녕하세요.
저는 산지니 인턴 남경희 입니다 ^_^
얼마 전 올린 『오전을 사는 이에게 오후도 미래다』의 서평에 이어 저자 이국환 교수님을 만나 인터뷰를 진행하였습니다. 교수님께서 바쁜 일정을 쪼개어 흔쾌히 저와의 인터뷰에 응해주셨는데요. 책과 삶의 가치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어 볼 수 있는 뜻 깊은 시간을 가졌습니다.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자세히 들여다볼까요?

 

Q. 작년 7월 『그냥, 꼭 읽어 보라고 』를 출간하시고, 연이어 『오전을 사는 이에게 오후도 미래다』를 출간하셨는데요. 매우 바쁜 한 해를 보내셨을 것 같아요. 그런 와중에 어떤 마음으로 『오전을 사는 이에게 오후도 미래다』를 출간하셨나요?


A. 저는 살아가며 ‘어떻게 살 것인가’에 관한 고민이 많았습니다. 예컨대, 고독이란 무엇인가, 늙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폭력은 인간의 숙명인가, 불안이 꼭 나쁜 것일까, 또 예술은 내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며, 내 삶의 어떤 순간이 예술이 될 수 있는가 등 많은 고민을 합니다. 이런 다양한 고민이 있을 때마다 저는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생각을 정리합니다. 그렇게 모인 글들을 독자들과 나누고 싶어, 부끄럽지만 용기를 내어 책을 출간하였습니다.

 

Q. 저는『오전을 사는 이에게 오후도 미래다』의 글 하나, 하나가 교수님의 삶의 발자취가 담고 있다고 느꼈는데요. 이렇게 자신의 삶을 녹여내는 글을 쓰시는 교수님에게 그만의 글쓰기 방법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A. 좋은 글은 깊은 사유를 통해서 나옵니다. 사유는 까닭을 묻는 생각이며, 그 까닭을 내 안에서 찾는 과정입니다. 저는 삶과 앎이 교유해야 사유가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즉 삶과 앎이 만나는 지점에서 사유가 이루어진다는 것이지요.

제가 생각하는 좋은 삶이란 자신이 있는 자리에서 성실하게 사는 것을 뜻합니다. 성실하면 남들보다 늦어질 수도 있으나 결국, 시간이 내 편이 됩니다. 이 책의 제목 ‘오전을 사는 이에게 오후도 미래다’의 의미 역시, 우리가 거창한 목표를 지니고 사는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를 소중하게 여기며 살아가자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책의 서문에서 밝혔듯, 글쓰기는 나를 만나는 시간이었습니다. 사람들과 어울려 글을 쓰는 사람은 없습니다. 일고일문(一孤一文), 한 번 고독할 때마다 하나의 문장이 나오기에, 그 문장을 빚어내고자 제 마음에 방을 만들고, 그 방에서 글을 썼습니다. 아무리 힘든 날도, 그 방에 들어서면 그곳에 나와 내 안의 나, 두 사람만이 존재하여 마음이 평온했습니다.

이번 책을 출간하고 독자들과 여러 번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저자인 제 의도와 생각을 넘어 또 다른 지평에서 다양한 독자들의 반응과 생각을 들을 수 있었고요. 그 만남으로 제 글과 생각들이 더 깊어지는 소중한 기회를 얻었습니다. 처음 책을 출간하고, 과연 독자들이 제 책을 읽어줄지, 이런 글을 묶어 굳이 책으로 낼 필요가 있냐고 야단칠지 두려웠는데요. 현장에서 독자들을 만나며 책을 출간할 때의 걱정과 고민이 많이 사라지고, 그래도 제 글을 세상에 선보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 이국환 교수님 연구실의 벽면에는 책에 대한 교수님의 사랑이 가득하다.

 

Q. 그렇다면 계속해서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나가고 싶어요. 이번 작품에는 글쓰기에 대한 교수님의 생각이 많이 보였는데요, 특히 저는「에토스, 운명을 바꾸는 글쓰기」가 가장 인상 깊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책의 여러 글 중 교수님의 에토스가 가장 진하게 담긴 작품 하나만 뽑아주실 수 있으신가요?

 

 A. 언젠가 한 독자가 쓴 이 책에 대한 짧은 평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 독자는 제 책에 실린 글을 한 편씩 필사하며, 이른바 ‘필사의 독서’를 하는 분이었습니다. 그는 제 문장과 글이 낭만적이면서도 절제되어 있다고 평하더군요. 책을 읽는 방법은 속독, 정독, 발췌독 등 다양한 방법이 있지만, 제 생각에 어떤 책을 가장 정성스럽게 읽는 방법이 바로 필사가 아닌가 합니다. 필사는 그 글을 쓴 저자의 호흡을 따라 책을 읽는 방법이며, 저자의 에토스를 가장 가까이 느낄 수 있는 독서법입니다.

이 책에서 제 에토스가 가장 잘 담긴 글은 첫 번째 글 「삶이 예술이 되는 순간」입니다. 이 글에 드러나는 제가 가장 저다운 모습이라 생각합니다. 질문에는 없지만, 파토스가 가장 강한 글「애도, 슬픔을 기록하는 슬픔」입니다.

「애도, 슬픔을 기록하는 슬픔」은 마지막까지 이번 책에 담을까 말까를 고민했던 글이었습니다. 앞서 말한 그 독자의 평대로, 대부분의 제 글은 감정의 과잉을 절제하면서 에토스를 중시하며 썼습니다. 그러나 딱 한편의 글이 절제보다는 ‘파토스’에 기대고 있는데요. 그 글이 바로「애도, 슬픔을 기록하는 슬픔」입니다. 책을 출간하기 위해 흩어진 제 글을 정리하는 시기에 17년을 가족으로 함께한 반려동물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반려동물을 보내고, 그에 관해 글을 쓸 것인지 고민했습니다. 그러다 책에 썼듯이, 저는 자식 같은 반려동물을 애도하고 싶었습니다. 글쓰기로 애도하는 것은 그리움을 기록하는 것이었고, 그 존재를 기억하고 보존하려는 행위야말로 진정한 애도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그 글을 쓰면서 저는 반려동물과 함께했던 모든 순간이 떠올라 내내 울었습니다. 애도의 마음으로 글을 쓰려는데 아무리 절제해도 경험적 자아와 서술적 자아 사이에 거리를 둘 수 없었습니다. 저는 평소 글쓰기 수업에서 서술적 자아와 경험적 자아 사이에 거리가 있어야 좋은 글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이 글은 그 거리 두기에 실패한 글입니다. 파토스가 과잉된 글이라 망설였지만, 사랑하는 반려동물을 그리워하며 기록으로 남기고자, 부끄럽지만 책에 실었습니다.

 

Q. 이번 작품에 학생들, 청년들에게 힘이 되고 위안이 되어주는 글이 많이 담겨 있어요. 때문에 이 책은 졸업을 앞두고 취업의 두려움 앞에 서 있는 저에게 큰 위로가 돼주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책이 학생과 청년들을 위로하기 위해 쓴 일종의 편지라고 생각했는데요. 혹시 졸업을 앞둔 혹은 학업에 치여 고단한 오늘날의 학생들과 청년들에게 짧게나마 좋은 말씀 나눠주실 수 있으실까요?

 

 A. 책을 정확히 잘 이해한 질문인 것 같네요. 이 책은 저의 고민을 담은 글이기도 하지만, 제가 지도하는 제자들과 고민을 나누고 싶은 생각을 정리한 글이기도 합니다. 저는 섣부른 위로보다 인생의 깊은 의미에 관해 이야기하며, 이 책을 읽는 독자인 학생과 청년들이 스스로 위로하고, 이 책의 부제처럼 ‘삶을 버티게 하는 가치’를 떠올리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청년들과 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거창한 목표를 세워 너무 자신을 몰아가지 않았으면 합니다. 먼 저곳을 꿈꾸지 말고, 자신이 발 딛고 사는 이곳에 충실한 것이 어떨까, 말하고 싶습니다. 저는 자신이 가고자 하는 ‘저곳’으로 가는 가장 빠른 방법이 사실은 바로 ‘이곳’에 충실한 삶을 사는 것이라 생각하거든요.

저는 가르치는 일로 생계를 이어왔는데요. 오랫동안 시간강사로 살았습니다. 평생을 교단에 서도 스승일 수 없는 사람이 있고, 한 학기를 학생들과 함께해도 학생들에게 평생 스승으로 기억되는 사람이 있다 믿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학교에서 어떤 강의를 맡아도 온 힘을 다해 애정을 담아 학생들과 수업했습니다. 저는 뛰어난 교수나 위대한 학자가 되겠다는 거창한 목표로 살아간 것이 아니라, 그저 매 학기 제 강의를 수강하는 학생들에게 오롯이 충실했습니다. ‘우보행(牛步行), 소의 걸음으로 멈추지 않고 나아가는 것. 인생은 먼 길입니다. 그렇기에 조급하게 종종걸음으로 나아가기보다, 소의 걸음으로 천천히 그러나 멈추지 말고,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여깁니다.

저는 목적이 이끄는 삶을 경계하며 살았습니다. ‘무엇이 되어야겠다.’라는 생각은 삶을 이끄는 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우리 삶을 붙드는 족쇄가 되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목표에 너무 연연하기보다, 이 순간 내게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충실히 살아가고자 했습니다. 물론 제가 그렇게 살았단 것이지, 이러한 가치관이 꼭 정답은 아니겠지요. 저는 선생, 즉 먼저 태어난 사람이지만, 청년들은 제때 태어난 존재이기도 하잖아요. 오히려 저보다 더 현명할 수 있다 생각합니다. 책이나 어른의 조언도 중요하지만, 그 어떤 것에도 메이지 말고, 자신의 가치관과 소신을 분명히 하고 살아갔으면 합니다.

 

▲ 많은 책들 사이에 놓인 기타에서 음악과 예술을 사랑하는 교수님의 모습이 드러난다.

 

 Q. 저는 『오전을 사는 이에게 오후도 미래다』를 하나의 키워드로 부르자면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작품은 ‘책’과 ‘글’에 대한 사랑,  ‘가족’에 대한 사랑, ‘학생’들을 향한 사랑, 삶에 대한 ‘사랑’ 등 교수님이 사랑하는 것들에 대한 글이라고 생각했어요. 저희 집이 삭막해서 그런지 그 가운데서도 가족에 대한 사랑이 인상 깊었는데요. 교수님만의 특별한 ‘가족애’를 나누는 방법 혹은 방식이 있나요?

 

A.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가족이 함께 여행을 많이 다녔습니다. 그땐 형편이 어려웠지만, 여행지의 작은 방에서 부대끼며 지냈던 것이 ‘가족애’를 형성하는 데에 도움이 되었어요. 그리고 함께 독서를 하거나 영화를 보는 시간을 많이 가졌고, 그렇게 감상한 책과 영화를 매개로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둘러앉아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것이 가족 간에 애착 관계를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된 듯합니다. 저는 내성적인 사람이라, 사실 생활 자체가 가족 중심이에요. 평소에 집과 학교만 오가는 생활을 하고요. 따로 모임 같은 것이 없습니다. 저는 가족 중심, 그중에서도 아내 중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내를 사랑하고, 그런 아내와의 사이에 태어난 아이들을 사랑합니다.

 

Q. 계속해서 교수님이 ‘사랑’하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요. 이번에는 교수님이 사랑하는 ‘책’에 대해 질문 드리고자 하는데요. 교수님은 이번 책뿐만 아니라, 여러 저서를 통해서 책에 대한 사랑을 끊임없이 드러내셨죠. 때문에 2019년 통계청 조사 결과 독서 인구가 50%에 불과하다는 소식이 매우 안타까우실 것 같은데요. 이러한 전 국민적인 독서량 감소에 대한 교수님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A. 문자는 기호입니다. 예를 들어, 한글이란 문자를 익히기 전 단계인 유아의 눈으로 보면, 우리가 읽는 책이란 해독할 수 없는 기호의 나열일 뿐입니다. 따라서 어떤 책도 재미있을 수 없고, 단지 사각형의 물체에 불과하지요. 책의 저자들은 자신의 지식과 경험, 상상과 사유를 기호화(encoding)하여 정리하였고, 독자는 그 기호를 풀어 해독하고 이해하여 수용하게 됩니다. 책 한 권을 읽으려면, 독자는 글자나 글자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단어를 수천 번, 많게는 수만 번 해독해야 하니, 어떻게 한 권의 책을 독해하는 것이 어렵지 않겠습니까. 독서는 어려운 일입니다. 독서의 즐거움과 유익함은 고도의 독해 능력을 요구하며, 독해를 잘하려면 언어 능력, 배경지식, 글 구조에 대한 지식 등 다양한 요인을 갖추어야 합니다.

독서의 즐거움은 해독에서 해석을 거쳐 독해 단계로 나아간 자가 얻을 수 있는 선물 같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누구나 독서의 즐거움을 경험하지 못하는 이유는, 이러한 훈련 과정을 스스로 혹은 누군가의 지도를 받아 어릴 때부터 거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책을 읽지 않는 어른들은 독서가 습관이 되지 않음을 핑계로 들지만, 독서의 즐거움을 맛볼 만큼의 독해 능력이 없다는 것이 더 정확한 이유가 아닐까요. 이솝우화의 ‘여우와 신포도’ 이야기처럼, 위대한 책을 만나도 독해가 되지 않으니, 시대가 바뀌어 더는 책 읽을 필요가 없는 것처럼 자신을 합리화하는 어른들을 가끔 봅니다.

인류의 지적 자산은 위대한 자들의 지식과 지혜와 상상력을 기호화하여 모아둔 책으로 전승되었고,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문자의 발명이 인류 문명을 일구었듯, 이미지와 영상으로 지적인 작업을 담아내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평소 책은 인류의 기억이라고 말합니다. 그 속에 인류의 역사와 축적된 지식과 경험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지요. 개인의 필요에 따라 이러한 지적 자산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자와 그럴 능력이 없는 자의 차이는 클 수밖에 없습니다.

세계경제기구는 연구와 조사를 통해, 독서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일자리를 구하기 쉽고, 높은 액수의 급여를 받는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물론 취업과 관련하여 학력이 높을수록 유리하지만, 비슷한 학력 수준일 경우에는 독서 능력 차이에 따라 급여 차이가 났다고 하지요. 독서의 중요성을 말하다 보니, 말이 길어지고 너무 진지해지는 것 같습니다. 제 책에서도 밝혔듯, 어른이 된다는 건 놀이의 시간을 잃고 노동의 시간을 얻는 과정인 것 같아요. 어른에게 좋은 책은 거울 같은 책입니다. 거울처럼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좋은 책을 만나 아집과 편견에 물든 자신의 민낯을 보고 부끄러움을 느낄 때 성찰은 이루어지죠. 그래야 젊은이들이 비판하는 ‘꼰대’가 되지 않을 수 있겠지요.

 

▲인터뷰에 진지하게 임하여 주시는 이국환 교수님

 

Q. 이제 마지막 질문입니다. 2020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지난해인 2019년은 교수님께 어떤 해였고, 시작될 2020년은 어떻게 보내실 건지 짧게라도 듣고 싶습니다.

 

A. 작년 한 해는 두 권의 책을 출간하고 몇 편의 논문을 쓰며 공부에 열정을 바친 시간이었습니다. 가르치는 자로서 저는 항상 지금 제가 바닥이 나버린 우물을 퍼내고 있는 건 아닌지, 채우지 않은 상태에서 예전에 익힌 지식으로 빈약한 저의 우물 바닥을 긁고 있는 건 아닌지 고민합니다. 저는 좋은 선생이란 선생이기 전에 늘 학생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학생으로서의 배움이 내 안에서 체화되어야, 그것이 물이 흐르듯 제자들에게 흘러간다고 여깁니다. 올해 2020년은 그동안 치열하게 공부했던 내용을 학생들에게 전하고, 또 기회가 된다면, 학교 밖에서도 이러한 활동을 해보고 싶습니다.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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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동글동글봄 2020.01.20 15:3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인터뷰 감사합니다. 벽면을 가득 채운 책들이 감동적으로 다가오네요. 목표보다는 하루하루 충실히 하라는 말도 마음에 와닿고요.

  2. BlogIcon Peace21 2020.01.20 16:2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꼼꼼히 책 읽고, 촘촘히 인터뷰한 수고가 느껴집니다.
    출간 후 계속해서 사랑 받고 있는데, 경희 씨 덕분에 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보는 책이 되었으면 해요~ ^^

  3. 날개 2020.01.21 09: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거창한 목표를 세워 너무 자신을 몰아가지 않았으면 합니다.'라는 청년들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기억에 남네요. 어쩌면 지금의 청년들은 스스로를 너무 몰아가는 시대에 살아가고 있지 않나 싶어요. 학생들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교수님이 하시는 말씀이라 더욱 와닿네요.


안녕하세요:) 산지니 인턴 구경민입니다. 지난번에 올렸던 실금 하나』 서평에 이어 저자와의 인터뷰를 진행하게 되었는데요. 원래라면 직접 찾아뵙게 질문을 드려야했지만, 작가님이 계신 곳과 거리가 너무 멀어 이렇게 서면 인터뷰로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책을 읽고 나서 궁금했던 것들에 대해 작가님이 상세하게 답변을 해주셨는데 다같이 한번 보러 가실까요?





Q. 2017년이 출간된 고양이가 사는 집이후로 두 번째 소설집을 출간하시게 된 소감과 첫 번째 소설집과 비교해 두 번째 소설집 실금 하나에 더욱 신경을 쓰신 부분은 어떤 것들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A. 두 번째 소설집 실금 하나를 낸 소감은 설렌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초기에 두 번째 소설집을 낸다고 생각했을 때는 이런 기분이 들지 않았습니다. 첫 소설집을 내봤기에 기대감이 덜했던 것 같습니다. 소설집에 실을 작품을 고르고, 작품 순서와 표제작을 정하고, 교정을 보면서 작품을 다시 들여다보게 되었습니다. 표제작을 쓸 때는 몰랐는데, 교정을 보면서 읽을 때는 스스로 울컥하기도 했습니다. 작가의 말을 쓰고 출판사에서 보내온 표지 도안 중 표지로 쓸 도안을 정하고 의견을 냈습니다. 그런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소설집에 대해 애정이 더해져 갔습니다. 책이 인쇄돼서 처음 책이 도착한 날 기쁨과 함께 낯선 느낌이었습니다. 무채색의 바탕 위에 실금 하나와 노란 초승달 하나. 따뜻한 글을 쓰고 싶은 제 소망과 조금은 다른 느낌의 표지여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하룻밤 자고 일어나니 쏙 들어오는 작은 책이 사랑스럽게 느껴지고 그때부터 설레기 시작했어요. 초승달을 보며 작은 희망을 품고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제야 책을 출간했다는 실감이 나면서 둘째 아이를 낳은 엄마처럼 기뻤습니다.

제가 실금 하나에 더 신경을 쓴 부분이 있다면, 헌사와 노인 이야기 두 편을 넣은 점이 아닐까 싶네요. 거동을 못하시는 어머니를 형제들이 돌아가면서 케어하고 있는데요. 가족을 위해 희생만 하다 늙고 병든 어머니께 이 책을 선물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두 편의 노인 이야기를 통해 고령화 시대에 노인들의 삶의 질이 조금 더 나아지기를, 약자일 수밖에 없는 노인들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컸던 것 같습니다.




Q. 실금 하나에는 총 8편의 단편소설이 실려있는데요, 그중에서 작가님이 가장 애착을 가지고 있는 작품과 그 이유가 궁금합니다.


A. 제가 낳은 자식들(작품들)이라 여덟 편 모두 애착이 갑니다.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이 없다는 부모의 심정과 비슷하다 하겠네요. 굳이 하나만 꼽으라면 돌탑 쌓는 남자예요. 그 속에는 경력 단절 여성이 나오는데요. 저를 비롯한 이 시대의 많은 여성이 출산과 육아의 과정에서 주인공과 비슷한 아픔을 겪습니다. 삶에 있어서 시간이라는 거스를 수 없는 도도한 흐름 속에 놓인 여성의 삶은 정체성, 자아성취, 책무 등이 서로 상충되면서 방황하게 됩니다. 그 속에서 굴하지 않고 살아나가는 삶을 그렸기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소설을 통해 출산과 육아는 한 여성의 몫이 아니라 다 함께 고민해야 하는 일임을 널리 인식하는 계기가 되면 좋겠습니다.




Q. 실금 하나에 실려있는 8편의 소설이 대체로 선악의 구분이 명료하고, 세상 물정을 잘 모르고 순수한 주인공과 속악하고 세상과 영합한 인물들의 갈등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이러한 소설적 구조를 취하신 것에 대한 특별한 의도가 있으셨는지 궁금합니다.


A. 저는,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하면서 사람들이 소중하게 여겨야 할 가치가 훼손되고 심지어는 가치가 상실되는 현상들을 많이 봐왔습니다. 도덕성도 돈, 권력 앞에서는 무력화되는 일들을 보면서 우리 사회가 점점 물질의 노예가 되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갑질이 공공연히 자행되는 것을 뉴스를 통해 접하곤 합니다. 각자의 욕망이 중요하다고 하는 21세기를 살면서 정작 우리는 행복하게 살고 있는지 생각해 볼 문제라고 여겼습니다. 우리가 회복해야 할 인간성, 가치, 연민 등에 대해 늘 염두에 둬서 그런 설정이 많은 것 같습니다. 어리석은 인물도 보호받고 함께 행복할 수 있는 따뜻한 사회, 인간 본연의 순수성 회복, 가치 회복 등에 대해 글을 쓰기 시작할 때부터 많이 생각했습니다. 첫 소설집 고양이가 사는 집에서는 김필립, 불맛, 언어가 감정을 지배하는 방식등 오히려 선명한 대립 구조가 아닌 작품이 다수 포함돼 있습니다. 질문하신 대립 구조를 취한 건 기본적으로 위에 말씀드린 작가의식에 기인하겠지만, 꼭 그렇게 대립적으로만 보지 않았다는 건, 예로 든 첫 소설집의 다른 작품을 살펴보면 알 수 있겠네요.




Q. 실금 하나를 읽으면서 느낀 점은 이 소설집에서 많은 부분 악인으로 설정되어있는 캐릭터들이 여성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억하고 싶은 이야기의 주영이나, 가면의 가희, , 괜찮니?의 엄 선생, 크로스 드레서의 염 선생, 빈 집의 미영처럼 특히 여성을 구조에 영합한 인물들로 많이 그려내셨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러한 것들이 의도된 부분인지 궁금합니다.


A. 질문이 예리하신데요. 우리 사회의 구성원은 남녀로 구성돼 있습니다. 그 속에서 폭력적인 구조에 영합하는 인물이라면 남녀 불문하고 악인으로 설정했습니다. 여성의 적은 여성이라는 말처럼 가부장적 사회를 재생산하는 주체의 절반가량은 여성일 가능성이 큽니다. 사회 구조에서 상대적으로 취약한 여성은 살아남기 위해 더 약한 여성에게 가해자가 되기도 합니다. 어떤 여성은 스스로 관습에 얽매이기도 하지요. 의도된 작품이라 볼 수 있는 건, 가면의 가희, , 괜찮니?의 엄 선생 정도라고 할 수 있겠네요.




Q. , 괜찮니?크로스 드레서에서는 기간제 교사에 대한 묘사가 자세하게 나오는데, 혹시 작가님께서 혹시 직접 교사 생활을 한 경험이 있으신지, 아니면 기간제 교사에 대해 취재를 하신 건지에 대해서 궁금합니다.


A. 저는 육아를 하면서 학교에서 시간강사와 방과 후 강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느낀 학교 분위기가 글을 쓰는 데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저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에 대해서 비판적 시각을 갖고 있었고, 그 부분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근무하면서 그 부분을 눈여겨보았고, 필요한 부분은 아는 선생님께 물어 보고 직접 취재도 했습니다. 특히, 이 두 작품은 방황하는 젊은이에 대한 헌사라고 할 정도로 청춘들이 비정규직을 전전하며 제대로 자리를 못 잡는 현상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보며 썼습니다.




Q.  소설을 퇴고하는 과정에서 특히 힘들었거나 공을 들인 부분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A. 힘든 점이라 말하긴 어렵고, 주안점을 두었다고 하면 좋을 것 같은데요. 고양이가 사는 집에 이어 구성과 표현에 신경을 썼습니다. 또한 신선한 느낌을 주기 위해 애를 썼습니다. 스토리 라인이 잡히면 흥미로운 구성을 통해 독자들이 좀 더 소설을 쉽고 재밌게 읽을 수 있도록 표현하는 데에 노력을 했습니다. 저는 소설을 읽는 즐거움을 주기 위해 쉬우면서도 저만의 감각으로 리듬감을 살려서 썼습니다. 소설을 읽고 인상적으로 남을 수 있는 장면을 어떻게 그릴까 하는 점도 많이 염두에 두었습니다. 신선함을 위해 구성을 다변화시킨다든가, 화자를 사물로 설정하는 등 변화를 주었고, 초점화를 통한 변화 등을 시도했습니다.




Q. 작가님의 소설은 모두 사회의 부조리에 대해 꼬집고, 그것으로 인해 피해를 보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번 소설이 현재 대한민국 사회에 던지고 싶은 메시지가 분명히 있다는 생각도 들었는데요. 작가님이 이번 소설에 대해서 전달하고 싶었던 메시지가 있으셨는지, 있으시다면 어떤 건지 궁금합니다.


A. 3번 질문과 유사한 답변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물질의 노예가 되어 사는 건 아닌지 되짚어보고 참다운 가치 회복, 순수성 회복을 통해 진정한 행복을 추구할 순 없을까 하는 게 제가 전하고 싶은 이야기고요.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취약한 환경 속에서 어려운 처지에 놓일 수 있고, 어쩌면 순수한 사람이 살아내기엔 힘든 구조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젊은이들의 취업 문제, 여성들의 출산 육아 문제, 남녀평등 문제, 노인 문제 등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현실입니다. 사회 구조가 안고 있는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제도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취업문의 확대와 다양한 복지 정책으로 개인이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훼손된 가치가 회복되는 사회 분위기가 조성됐으면 하는 바람 갖고 있습니다.




Q. 마지막으로 작가님의 향후 작품 활동 계획이 궁금합니다.


A. 저는 최근에 두 번째 소설집을 냈는데요. 세 번째 소설집을 위해 단편소설을 계속 쓸 것이고요. 작가의 말에서 밝혔듯이 글을 쓸 때 제 눈은 더 작은 것을 볼 수 있고, 제 귀는 더 작은 목소리를 들을 수 있으면 좋겠네요. 이제까지의 기조를 유지하면서도 인생의 아이러니를 드러내거나 예술성이 제대로 구현된 소설도 쓰고 싶고, 생태소설에도 관심이 많습니다. 장편은 현대 역사의 토대 위에 펼쳐지는 인간의 삶을 다룬 소설을 쓸까 하고 있습니다. 첫 소설집 이후 줄곧 생각해오던 장편소설은 어머니 케어를 하다 보니 아직 시작을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지금부터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시도를 할 계획입니다. 감사합니다.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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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Peace21 2020.01.20 12:0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작가 선생님이 직접, '질문이 예리하다'라고 표현하실 만큼 글을 꼼꼼하게 읽고 살펴, 질문할 내용을 잘 뽑았다 싶습니다. 서면 인터뷰로 끝난 점은 조금 아쉽지만, 답변해주신 작가님께도 분명 좋은 시간이 되었으리라 생각해요~ :)

  2. 날개 2020.01.21 09: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실금 하나' 표지의 노란 초승달은 작가님의 아이디어였지요!
    많은 분들이 달을 넣은 게 화룡점정이라 말해주셨어요.
    작가님 덕분에 예쁜 표지가 탄생했네요~

 

 

안녕하세요 산지니 인턴 허성일입니다. 지난번에 골목상인 분투기를 읽고 쓴 서평에 이어서 저자님의 인터뷰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갑작스럽게 저자님께 연락을 드렸지만 바쁘신 와중에도 흔쾌히 인터뷰 요청을 수락해주셔서, 저자님이 계신 중소상공인 살리기 협회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저자님께 인터뷰를 하면서도 인생의 선배로서 많은 이야기도 해주셨는데요. 인터뷰를 하러 갔다가 오히려 더 많이 배우고 왔다고 느꼈습니다. 저자님과 어떤 이야기를 주고받았는지 함께 보실까요? : )

 

    

 

Q. 반갑습니다 ! 간단하게 저자님의 소개를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A. 나이로는 만 55, 우리나라로는 56세인 자영업을 약 22년 하다가 지금은 중소상공인 살리기 협회의 상근회장을 맡고 있는 이정식입니다. 중소상공인 살리기 협회는 부산에 있는 전통시장이라든지, 소매업체, 슈퍼나 카페뿐만 아니라 납품하시는 분들, 제조업체에 운영하거나 근무를 하시는 분들 등 다양한 사람들이 회원들이 들어와 있는 단체입니다. 협회는 대기업으로부터 골목상권을 지키고 관련된 입법안을 마련하고 중소상공인을 위한 정책을 발굴하고 만들기 위해서 계속 노력하는 단체입니다.

 

Q. 중소상공인 살리기 협회에서는 대기업에 맞서 싸우는 상인들의 입장들을 위한 단체라고 할 수 있는데요. 그런데 소비자 입장에서는 오히려 마트나 기업형 슈퍼마켓이 들어오는 것이 더 편리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A. 신도시라든지 신흥 상가에 점포가 들어올 때 편리하고 다양한 구색을 갖춰 소비자에게 유익한 부분을 가져다주는 부분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이 상황을 지역 상인들의 이야기로 보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편리한데 왜 들어오면 안 될까?’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흔히 기업형 슈퍼마켓이라고 불리는 SSM이 운영을 하면 직원은 5명만 있어도 됩니다, 하지만 개인 슈퍼마켓을 운영하려면 30명은 필요합니다. 기업은 효율의 극대화를 하기 위해 적은 인원만 고용합니다. 마트 운영에서 가장 많이 드는 부분이 인건비이고 이를 아끼기 위해서 개인 슈퍼는 사람을 줄일 수밖에 없다. 결국 자기 일자리를 걷어차는 꼴입니다. 이는 멀리 보면 결국 부산 인구가 빠져나가는 부분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기업형 슈퍼마켓에서는 부산에서 만들어진 제품은 성장하지 못하고 다른 도시에서 만들어진 제품이 판매됨. 나 편하게 하자고 했다가 내일 자리 내 지역을 죽이는 꼴이 됩니다.

 

Q. 서울의 망리단길을 시작으로 부산 수영구 망미동의 망미단길, 해운대의 해리단길, 범어사의 범리단길 같은 곳이나 서면의 전포카페거리, 혹은 보수동 책방 골목, 초량 이바구길뿐만 아니라 서동의 미로 시장, 부평의 깡통시장처럼 골목의 상권에 이름을 붙이고 다 같이 힘을 합쳐 테마를 조성하여 사람들의 발길을 끌어들이는 홍보 방법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A.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해서 많은 생각들을 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도시의 미래는 상인은 물론 행정가들도 준비를 많이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상인들끼리만 해서 구역을 형성하면 결국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인해 대기업이 다 가져갑니다. 기존 점포로 형성되어있는 전통 상점가나 전통시장은 한계가 있습니다. 개성이 있는 시장으로 발전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전통시장 안에 상인 대학이라든지 상인들의 의식교육을 하지만 그분들에게만 맡기면 너무 어렵습니다. 해리단길 같은 곳 또한 행정으로 만들어진 곳입니다. 결국 행정적인 부분과 합쳐 어느 정도 계획을 통해야만 더욱 성공적인 발전이 있을 것 같습니다.

 

Q. 그렇다면 제가 학교에서 2018년에 부산경제진흥원에서 추진했던 '우리 동네 골목 활력 증진 지원사업'으로 부산 중구 대청로 99번 길을 알리는 활동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이처럼 아무래도 연령대가 좀 있는 지역 상권 자영업자들과 젊고 신선한 아이디어를 많이 가지고 있는 대학생들과 같이하는 활동 하여 상권을 알릴 수 있는 새로운 채널을 추가하는 것과 같은 일은 혹시 해보신 적이 있으신지, 없으시다면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A. 해본 적이 있습니다. 협동 조합을할 때 부경대 학생들과 함께 두리누리라는 이름으로 개인적으로는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켰다고 생각합니다. 학생들과 같이 만든 고양이가 훔쳐 간 생생어묵이라는 제품도 만들어서 여러 가지 이벤트도 해봤고 생각지도 못한 문화를 공유할 수 있었던 기회였습니다. 개인적으로 산학협력을 상당히 좋아합니다. 젊은 친구들의 반짝이는 아이디어는 상당히 바람직하고, 학생들의 입장에서도 자영업자의 입장에서 체험해보는 것도 좋은 경험일 것 같다. 협회에서도 동의대학교, 부경대학교와 관련된 내용은 계속 얘기 중입니다. 직접 경험을 해보고도 고민을 못 했던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Q. 책에서는 우리나라 자영업자 수는 OECD 주요 회원국 중 매우 높은 편이다. 전체 취업자 중에서 자영업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20188월 기준, 25.5%OECD 평균인 15.9%에 비해 월등히 높다고 되어있었고, 이처럼 많은 회사원이 퇴직 이후 진입장벽이 낮아 보이는 자영업에 많이 뛰어듭니다. 이처럼 새로 시작하는 자영업자들에게 해주실 수 있는 조언 한마디가 있을까요?

A. 책에서 보면 홈플러스의 이사이자 본부장이었던 분이 회사를 나오고 카페를 차렸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지금 그분께 카페를 차리려고 했던 시점으로 돌아가면 다시 카페를 할 것이냐고 물었더니, 안 한다고 했답니다. 그만큼 창업은 어떻게 보면 회사를 운영하는 전문가라고도 할 수 있는 사람이 해도 힘든 것이 창업입니다. 진입장벽이 낮아 쉽게 창업을 할 수 있지만, 창업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생각은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이자 기본적으로 자영업에 뛰어들려는 사람은 빚을 내서 창업을 하면 절대 안됩니다. 돈을 가지고도 자영업이 쉽지 않은데 빚을 내서 하면 그 부담감을 이기기 힘들 겁니다. 

 

Q. 책 안에서 보면 저자님의 아드님이 여자친구분과 창업을 계획했었던 부분이 나오는데, 그렇다면 창업을 꿈꾸는 대학생들에게도 한마디만 해주신다면 어떤 말씀을 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A. 요즘 정부에서나 학교에서 창업을 지원을 많이 해주는 것 같습니다. 그런 부분은 좋다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무턱대고 창업을 권하는 사회가 제대로 된 사회인가 생각이 듭니다. 창업하지 않아도 내 능력을 발전시키고 개발하게끔 만들어야 하는데 무조건 창업만 생각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제가 생각하기에는 창업하려면 창업을 할 만한 나만의 기술이나 적성에 맞는 역량을 가지고 있거나, 창업 아이템이 보인다면 그 업종에서 일정한 일을 부분의 배우고 나서 가늠을 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책을 보고 무턱대고 하면 안 되겠다고 생각하는 것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대기업과 관련된 업종은 더욱 하지 말아야 합니다. 대기업이 쉽게 뛰어들기 어려운 곳으로 창업 아이템을 생각해야 합니다.

 

Q. 가끔씩 골목시장이나 전통시장의 대표가 대기업으로부터 기금을 받고 권리를 내어주는 소식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런 부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A. 처음에는 왜 상인들이 대기업에 맞서 싸우다가 음성적인 돈을 받고 해결하려고 할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생각한 결과는 상인들이 한계점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주민들은 마트나 SSM이 편리한데 왜 막냐고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에 상인들은 위축이 됩니다. 그리고 상인들이 법적으로 보호를 받을 수 없다는 걸 알아서 돈이라도 받는 것이 차선책이라 생각합니다. ‘이러다가 아무것도 못 받는 것보다는 돈이라도 받자라는 생각으로 돈을 받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아쉽습니다.

 

Q. 책을 쓰면서 느낀 점 같은 것이 있을까요?

A. 이 책을 쓰면서 그리고 상인운동을 하면서 세가지 느낀 점이 있습니다. 미안함, 고마움, 깨달음입니다. 첫 번째 미안한 마음은 가족들에게 아빠로서, 남편으로서 못한 미안함을 담아내고 싶었고, 그리고 제가 권력이나 자본을 가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중소상공인 살리기 협회의 회원들에게 무언가 해줄 수 없는 미안함이 있습니다. 그래서 초창기의 회원들은 희생을 많이 당했습니다. 그 분들에게 무언가 해드릴 수 없는 미안함. 그 어려움들을 드러내어 이 책을 쓸 수 있게 도와준 것에 대한 것이 두번째인 고마움입니다. 그리고 가족에게 고마운 것도 있고, 책에 있지만 지역 언론이 제대로 역할을 해준 것에 고마운 것이 있습니다. 전국적으로 퍼지는 언론에 저희 이야기가 다루어지기 어렵습니다. 조금이라도 정치적인 내용이 들어가야 쉽게 다루어 집니다. 그래서 지역의 언론에서 도와주는 것에 고마움을 느낍니다. 마지막으로 깨달음을 얻은 것이 있습니다. 얼마나 내 가족이 소중하고, 지역을 지키기 위한 연대의식을 가져야한다는 것, 그리고 상도정신을 갖고 나의 생존권을 넘어서 넓은 마음을 가지고 나보다 어려운 사람도 껴안고,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다같이 만들어 봐야한다는 깨달음을 느꼈습니다.

 

Q. 노동 운동은 많이 들어봤지만, 상인 운동은 저한테 좀 생소합니다. 이 책이 상인 운동의 기록이라고 하는데 어떤 의미입니까?

A. 일반적으로 노동자의 투쟁은 다 아는데 상인의 투쟁은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노동자는 내 일자리 지키기 위해 노조랑 싸움하는데, 다 어떻게든 해결이 됩니다. 상인 운동은 나의 주변이 어떻게 보면 주변 경쟁업체이기 때문에 모두 적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단합하기도 어렵고 마음이 맞는 사람끼리 조직도 너무 많아 정치적으로 흔들리기도 쉽습니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 상인들의 리더들이 많은 변화를 가져와야 한다고 생각하고, 상인 스스로가 상인계층임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상인은 규모가 커도 대기업성을 가지긴 어렵다고 느끼고 어떤 사람이 대표하여 기록을 남기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제가 상인끼리 투쟁하는 과정을 적어놓기 위해 책을 썼습니다. 부끄러운 내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는데 상인들의 특성이 폐쇄적이고 자신들의 부끄러움을 안 보여주고 싶어 합니다. 왜냐하면 내가 힘들어하면 어떤 누가 돈이라도 꾸어주겠습니까? 돈이라도 꾸려면 사람들이 내 매출도 많고, 내가 잘 갚고, 돈이 많은 줄 알아야 돈을 꿀 수라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비교가 되기 싫기 때문에 보수적이다. 하지만 자신의 힘든 부분들이든, 못난 역사든, 잘못된 과오든, 또 어떤 음성 적을 받는 그런 투쟁이라도 이런 책들이 계속 나와야 노동 계층 정도의 투쟁 동력을 통해 정책화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아직 상인운동은 아직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내 호주머니밖에 못 챙기지만 좀 더 넓게 바라봐야 합니다. 겪고 있는 희생을 발판삼아 좀 더 키워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만 나의 터전 나의 일자리를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상인들도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Q. 책 안에는 전국의 많은 자영업자들의 아픈 사연들이 있었는데, 어떤 사연이 가장 힘들었습니까? 

A. 모두 힘들지 않은 부분이 없지만, 가장 힘들었던 사연은 스크린 골프존 사연입니다. 스크린 골프가 어디 가서 대리점 사장, 슈퍼 사장 이런 식으로 하면 괜찮게 봅니다. 그런데 스크린 골프장 연습장 사장이라 하면 사회적으로 보면 좀 여유 있어 보이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어디를 가도 이야기를 진정성 있게 들어주지 않습니다. 당신 먹고살 만하지 않냐는 식으로 생각을 합니다. 이런 부분은 너무 힘들고 법적인 부분도 너무 복잡하고 도와줄 수 있는 부분이 너무 없는 사연이라 너무 힘들었습니다

 

Q. 추가로 새로 계획하시고 계신 책 같은 걸 낼 계획이 있으십니까? 있으시다면 어떤 책을 내실 계획이십니까?

A. 생각은 하고 있습니다. 실패를 해도 좋은 디딤돌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는 책을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책을 쓴다면 현재 부경대 경영 컨설팅 박사과정을 수료했고, 논문을 적고 난 후 연구와 관련하여 책을 써보고 싶습니다. 우리들의 조그만 힘을 결속력을 통해 크게 만들어 대기업과 제대로 협상을 할 수 있는 기술을 만들기 위해 책을 많이 안 팔리는 부분들은 조심스럽지만, 사업조정제도 같은 기술적인 부분을 책으로 만드는 걸 생각 중이긴 합니다. 협상의 기술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협상에서 어떤 걸 갖추고 어떤 걸 준비해야 하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대기업은 상대하는 상인의 상권, 특성, 집단의 구성원까지 다 알고 오는데 상인들은 상대를 아무것도 모르고 오기 때문에 협상을 잘해나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런 부분을 체계화된 제도로 운영 할 수 있게끔 하는 게 꿈이긴 한데 너무 전문 분야라 많은 사람이 읽지 않을까 부담이 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Q. 인터뷰를 마무리하려고 하는 데 추가적으로,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으실까요?

A. 책에 나온 구절 중에 고슴도치 딜레마라는 게 있습니다. 서로 너무 가까이 다가가면 상대의 가시에 찔리고, 찔려서 멀어지면 다시 온기를 나누기 위해 다시 가까이 다가가려 합니다. 고슴도치 딜레마가 지금 상인들과 같다. 참 어려운 환경에 자영업자들이 놓여있다. 사람과 어떤 온전한 관계가 형성되면 도와야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돕는다는 것은 비가 올 때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고, 함께 맞아주면서 고민하는 것이라는 글을 신영복 시인의 함께 맞는 비를 가져와서 써봤습니다.

   

 

 마지막으로 저자님은 인생 선배로서 인터뷰하면서도 보고 싶었던 것을 자신만의 관점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서로 공감할 수 있고, 서로 고개 끄덕이며 생각할 수 있다는 게 좋다고 생각하고, 공감하지 않는 정책은 실패할 확률이 높다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아니라도 언제든지 궁금한 게 있으면 ‘나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 찾아와도 좋다는 말씀까지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직접 그 자리에서 친필 사인까지 해주시며 『골목상인 분투기』 책을 선물해 주셨습니다. 이정식 저자님과 인터뷰를 하면서 선물도 받고, 오히려 더 많이 배우는 것 같은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골목상인 분투기 - 10점
이정식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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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Peace21 2020.01.17 13:2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같이'의 '가치'가 중요한 시대에, 상생과 공감 등을 이야기하는 이정식 선생님과 허성일 인턴의 인터뷰 내용 잘 읽었습니다. 지역 사회에서 함께하는 우리의 내일이 조금은 더 나은 삶이 되길 바라봅니다~ ^^

  2. 날개 2020.01.21 09: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자의 진심이 느껴지는 인터뷰네요.
    진심이 없었다면 지금까지 상인운동을 이어올 수 없었을 것 같아요.
    결국 그 마음이 닫혀있던 상인들의 마음도 열 수 있지 않았나 싶네요 :)

거대자본에 맞서 지역 상권을 지킨

중소상공인살리기 운동, 13년의 기록

 

 2006, 중소기업을 보호하던 고유업종제도가 폐지되면서 대기업들이 무차별적으로 중소기업 분야에 진출했고,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 중소기업을 대기업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유일한 제도인 사업조정제도에서 빠져나가려고 했고, 결국 그해 말부터 기업형 슈퍼마켓(SSM:Super SuperMarket)이 점차 늘어나기 시작했다. 개인 슈퍼마켓이 거대 자본과 조직을 가진 대기업 슈퍼마켓에 혼자 맞설 수 없기에, 지역 상인들은 다 같이 힘을 모아 자신들의 상권을 지키기 위해 생업까지 뒤로하고 맞섰다.

 

  이 책은 그 상인들이 자신들의 상권을 지키기 위해 싸워왔던 내용과 결과뿐만 아니라, 전국 주요 도시들의 자영업자들이 겪고 있는 사연, 이들이 법과 공무원을 어떤 식으로 바라보는지, 정치와의 관계 등을 담은 책이다.

 

 이 책의 저자는 대자본에 중소 상인과 자영업자의 삶이 난도질당하는 걸 보고만 있을 수는 없어 식품대리점을 운영하다 중소상공인 살리기 협회를 만들어 회장을 맡았다. 또한 부산시 중소기업 사업 사전조정협의회와 부산시 유통업상생발전협의회 위원을 맡아 골목 상인의 입장을 반영하고자 노력했다. 전국유통상인 연합회 공동회장을 맡아 골목상권 보호 입법 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현재 부산도소매 유통 생활 사업협동조합 이사장직을 맡아 협동조합 사업과 사업조정제도를 활용한 상권 보호에 힘쓰고 있다.

 

 『골목상인 분투기의 내용은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라고 만은 할 수 없다. 회사에 다니다가 퇴직을 한 후에 부족했던 노후를 준비하기 위해 도전할 수 있는 가장 진입 장벽이 낮은 게 자영업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책에서는 우리나라 자영업자 수는 OECD 주요 회원국 중 매우 높은 편이다. 전체 취업자 중에서 자영업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20188월 기준, 25.5%OECD 평균인 15.9%에 비해 월등히 높다고 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번듯하면서도 리스크가 낮다는 판단에 대기업이 하는 가맹사업에 불나방처럼 뛰어들었고, 오로지 가맹점만 늘리려고 혈안이 된 가맹 본사 탓에 한국은 편의점과 치킨집이 포함된 가맹점 수가 전국에 22만 개가 넘는 가맹점 대국이 되어버렸다고 한다.

 

  물론 자영업을 해서 많은 수입을 얻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대기업의 가맹점으로 가게를 차렸지만 무분별한 가맹사업으로 적자를 보거나, 비싸게 기계를 샀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업그레이드된 새 기계가 출시되는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대기업이 아니라도 자본이 없는 개인이 하는 사업자는 사업이 잘돼도 문제였다. 장사가 잘되니 입점해 있던 마트에서 쫓겨나기도 하고, 재건축으로 인해 몇 년간 노력했던 게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되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당할 수밖에 없었던 자영업자들의 모습을 이 책에서는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었다.

 

"많은 자영업자들이 늘어나는 적자를 뻔히 알면서도 왜 문을 닫지 못하는지 아십니까?”  많은 자영업자들이 신용보증재단의 보증서를 받은 뒤 은행 대출금으로 모자라는 사업자금을 보태거나 긴급자금을 수혈합니다. 그런데 폐업을 하면 사업자등록증이 말소되니 은행 대출금을 일시에 상환해야 합니다. 그러나 대출금 상환은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합니다. 사업을 유지하기 위해 동원할 수 있는 주변의 자금을 모두 끌어다 썼기 때문입니다.” (p.100)

 

  이처럼 자영업을 여윳돈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면 한번 자영업을 시작한 이상 어쩔 수 없이 맞이하게 되는 현실을 적어놓았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지레 겁먹고 절대 자영업을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SNS나 유튜브, 다른 서적을 보면 실패나 어려움을 극복하고 성공한 사례들과 사업에 대해 밝은 점도 충분히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자영업을 가벼운 마음으로 쉽게 여기고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준비하고 치열하게 준비를 한다면 성공하지 말라는 법도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성공을 하기 위해 상대에 대한 배려와 존중을 하지 않고 이익만 챙기려고 하고, 사람보다 돈을 더 중요하게 여기면서 성공을 한다면 그 또한 대기업과 다름없는 것이다. 결국 서로서로 '상도(常道)의 정신'을 가지고 잘 살기 위한 행복한 사회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골목상인 분투기 - 10점
이정식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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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에디터날개 2020.01.10 13: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목상인 분투기』의 내용은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라고 만은 할 수 없다.' 이 문구에 공감이 가네요. 맞아요. 이 책에 담긴 이야기가 당장에 나와는 상관 없는 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지만, 언젠가 내 이야기가 될 수도 있고(흔히 '카페나 차려볼까? 하고 말하기도 하고 ㅎㅎ), 내 가족이나 친척, 지인 중에 자영업자는 분명 있을테니까요.


  2. BlogIcon 실버_ 2020.01.10 15:2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처음에 대형마트가 등장했을 때 여러 이야기가 많았었지요... 지금은 너무나 당연시되어버렸네요. <골목상인 분투기>는 그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의 어두운 면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는 책인 것 같습니다.

김민주 작가의 에세이 나는 개성공단으로 출근합니다를 읽고

김민주 저산지니2019.12.20222



[저자소개]


 90년대 수많은 아사자를 낳은 북한의 식량난은 그녀에게 체제와 이념을 넘은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이 책의 저자인 김민주 작가는 통일부 사회문화교류 과와 유엔세계식량계획(UNWFP) 민간협력 분야의 경험을 바탕으로 고난의 행군시절 성장기를 보낸 북한 주민들의 영양결핍에 대한 논문을 썼고, 개성공단 영양사 구인공고를 본 그녀는 석사를 졸업한 그달 휴전선을 넘어 개성 땅으로 향한다.

개성공단의 누리미 공장동 외에 공단 내 버스사업소 등 북한 노동자 3,000여 명을 위한 급식 식자재 반·출입 및 북한 직원 관리 총괄 업무 등을 하며 그들의 점장 선생으로 사계절을 함께 보냈다. 개성공단의 급작스러운 폐쇄 이후에도, 그녀는 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에서 정착지원 업무를 하며 다양한 지역에서 온 각계각층의 북한 이탈 주민을 만나 북한에 대한 시야를 넓혔다.



[책 소개]


 『나는 개성공단으로 출근합니다에는 2016년 개성공단이 폐쇄되기 전, 저자가 1년간 개성공단 공장동에서 영양사로 일을 하며 만난 북한과 그곳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저자는 봉사활동을 위해 찾아간 파키스탄에서 무너진 건물들 사이로 밥을 얻으러 다니는 아이들을 만난 기억이 있다. 그 모습에서 분단된 조국과 그 땅에서 일어났던 한국전쟁을 떠올리고는 북한과 통일에 대해 진지한 관심을 가지게 된다. 한국으로 돌아와서 기아 문제로 고통받는 북한의 어린이들을 위해 일하기로 하고, 영양전문가가 되기 위한 공부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사실 대부분의 경우 북한 사람 혼자 있으면 순박하게 웃으며 함께 고개를 꾸벅하고 인사를 하고, 북한 사람 둘 이상이 있으면 눈을 내리깔고 무표정으로 지나친다. 북한 여자들도 마찬가지였다. 혼자일 때는 입을 손으로 가리며 수줍게 웃으며 부끄러워했지만, 여럿이 있을 때는 무표정으로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이들 체제에서 공화국에서 정해둔 규정을 어기게 되면 남한에서 상상할 수 있는 징계와는 차원이 다른 처벌이 뒤따를 테니까. 누가 곁에 있든 마음껏 반가워하고 웃을 수도 있는 자유가 빨리 오기를 바란다. " (91)

  개성공단에서 북측사람들과 4계절을 함께 지내면서 글쓴이가 느꼈던 감정과 생각들을 이 책에 녹여 놓았다.



 "그러던 어느 날 오후, 1층 여자 화장실에 가니 그 도도한 면세점 직원이 남한 사람들이 쓰고 버린 페트병에 면세점에서 팔던 샴푸, 린스, 트리트먼트를 담아 와서 세면대에서 머리를 감고 있었다. 고개를 들던 그녀와 눈이 딱 마주쳤다." (178)

  이처럼 북한인들이 남한사람들에게 겉으로는 도도하고 북한의 상품이 우수하다고 광고하지만, 본인들은 우수한 품질의 남한 물건들을 사용하며 서로 곤란했던 에피소드도 담겨 있다.



나는 어릴 때부터 북한에 대해 호기심을 가져왔다.


 6·25전쟁, 도끼만행사건, 핵 도발과 같은 우리에게 많은 상처를 주었지만 100년도 안 된 시간일 뿐, 오랫동안 우리말을 같이 사용하고 역사를 같이 써 내려왔다. 이념을 달리한 채 반세기 조금 넘게 분단되어 사는 상황이다.

냉전 시대의 특수성과 김일성 일가를 필두로 한 독재, 그리고 공산당원 간부들의 체제적 모순이 남한과 북한의 사이를 갈라놓았다고 생각할 뿐, 그 안에서 사는 일반 시민들은 이 책에 나와 있는 바와 같이 자식들을 사랑하고, 남을 위하려고 하며, 같이 기뻐해 주는. 남한 사람들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고 궁금해하는 매우 순수한 사람들이다. 다만 체제의 감시 속에 있어 표현의 자유가 없을 뿐이다.


비슷하지만 너무나 다른 그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우리와 다른 점은 무엇인지, 어떻게 지내왔는지 그들과 대화하고 싶은 나에게 조금이나마 그런 갈증들을 해소해 주는 단비 같은 책이다. 

 


나는 개성공단으로 출근합니다 - 10점
김민주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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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에디터날개 2020.01.10 13:3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이 책을 읽으며 통일이 정치적인 측면에서야 복잡한 문제라 저도 잘 모르겠긴 하지만, 경제적으로라도 서로 자유롭게 오가고 교류한다면 답답한 현실을 살고 있는 청년들에게도 새로운 기회가 많이 열리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었어요.

  2. BlogIcon 실버_ 2020.01.10 15:2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요즘 점점 드라마, 영화 분야에서도 북한 관련 콘텐츠가 많이 나오고 있는 것 같아요. 우철 씨 말대로 <나는 개성공단으로 출근합니다>는 비슷하지만 너무 다른 그들의 이야기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책이 아닌가 싶네요^^

 

『팔팔 끓고 나서 4분간』은 정우련 작가의 두 번째 소설집이다. 『빈집』 이후 16년 만에 나온 소설집으로, 정우련 작가의 발자취가 차곡차곡 담겨있다. 총 7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으며, 끓는점으로부터 서있는 지점이 다른 인물들의 이야기를 다채롭게 그려냈다.

 

「통증」은 베트남전 참전의 후유증을 앓고 있는 조각가 그와, 무명 소설가 그녀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두 사람은 새집 지어 사는 것보다 헌집 고쳐 사는 게 몇 배나 골치 아프다는 소리를 듣는 재혼 부부이다. 중년 부부인 이들은 통증을 앓으며 뒤틀려 어긋나기도, 공감하며 다시 맞춰지기도 한다.

그녀는 난생처음, 가슴을 찌르는 듯한 극심한 통증을 느꼈다. 몸속에 전쟁의 기억을 새겨놓은 사람의 40년 삶이란 도대체 어떤 것이었을까. 죽음이 아니면 잊을 수 없는 상처란 바로 이런 거구나. 그녀는 비로소 그가 건너야 할 망각의 강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33p

 

「까마귀 길들이기」는 친구라고는 길들인 까마귀 하나뿐인 왕따 ‘나’가 별아를 친구로 사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나’는 한때 자신이 질투했던 수정을 우연히 만나게 되고, 별아의 이야기가 나오자 ‘나’는 도망친다. 그러면서 까마귀 까미처럼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별아를 좋아하게 된 과거의 사춘기 때를 회상한다. ‘나’는 회상 끝에 더 이상 도망가지 않으려 별아 엄마를 찾아가려 하는 것으로 작품은 끝을 맺는다.

“…죽이나 인생이나 다 끓었다고 방심하면 클난다.” 할머니가 혀를 끌끌 찼다. 놓친 주걱을 건지고 불을 조금 줄였다. 그러고는 다시 젓기 시작했다. 죽은 여전히 분화구를 만들면서 한동안 뜨겁게 끓었다. 마치 사춘기 적의 펄펄 끓던 우리들 마음 같았다. 죽에 덴 팔목 부분이 쓰리고 아파왔다. 53p

 

「우리들」은 시인 ‘나’의 출신학교, B여상 3-1반의 반창회가 열리는 이야기다. ‘나’의 동창 중에서는 B여상을 상반되게 바라보는 친구들이 있다. 사과농장을 운영하는 미경은 모교를 자랑스러워하는 반면에, 보험영업을 하는 둘이는 첫사랑에게조차 출신학교를 밝히지 못하고 부끄럽게 여긴다. 이렇듯 생각도, 직업도, 살아온 시간도 다른 인물들은 B여상 3-1반이라는 공통점 하에 ‘우리들’로 묶인다. ‘우리들’은 부재의 시간이 무색하게도 졸업 37주년 반창회에 모여 마치 3-1반으로 돌아간 듯, 학교 쉬는 시간인양 수다를 떨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그걸 당당히 밝히면 자존심이 안 상하지. 여상 나온 게 무슨 죄가. 너는 네 엄마가 문둥이면 꽁꽁 숨길 년이네. 진짜 자존심은 문둥이 엄마지만 내 엄마라고 당당히 내보이는 용기 아이가. 86P

 

「말례 언니」어린아이인 ‘나’가 이웃집 문맹 말례 언니의 연애편지를 대필해주며 일어나는 이야기이다. ‘나’는 말례 언니에게 대필을 해줄 뿐만 아니라, 한글을 가르쳐주는 스승이 되기도 하고, 쪽지를 전달하는 심부름꾼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불행의 씨앗이라는 역할조차 하게 된다. 말례 언니는 비극을 겪고, 그토록 가고 싶어 했던 고향으로 쫓겨나듯 떠나며 ‘나’에게 쪽지를 건넨다.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강이 흐르고 우리의 사랑도 흘러가네요.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강이 흐르고 우리의 사랑도 흘러가네요…….”
똑같은 구절이 쪽지 한바닥에 빼곡이 적혀 있었다. 참았던 울음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144P

 

표제작인 「팔팔 끓고 나서 4분간」은 새내기였던 ‘나’가 대학 교양 작문 수업의 담당 강사인 그를 만나 뜨겁게 끓어올랐다가, 식어가는 사랑의 과정을 담은 이야기이다. 불가항력에 이끌려 팽팽하게 조이던 뜨거운 줄은 끓고 나서 4분 후면 끊어지고 만다. 영화 <엘비라 마디간>에 나오는 장면처럼, 그들은 팔팔 끓고 나서 4분간이었다.

물이 끓기 시작해서 4분 후면 계란이 알맞게 익는 것처럼 우리 인생도 끓고 나서 4분 후면 끝이라는 거. 그다음은 잡지의 부록처럼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아무 의미 없는 시간이란 생각이 들더라. 그저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또 내일과 같은 그런 반복이거나 연명에 지나지 않는 삶이잖아. 176p

 

「처음이라는 매혹」젊었을 적에는 청상과부로, 나이가 든 지금은 독거노인으로 살아가는 엄마와 요양보호사 ‘나’의 이야기이다. ‘나’는 엄마를 엄마라고 부르지만, 친엄마는 아니다. 새엄마라든가 출생의 비밀 같은 것도 아니다. 엄마는 요양보호사가 돌보는 여성 노인을 부르는 호칭이다. 엄마는 채 1년도 함께하지 못한 남편을 그리워하고 죽음을 ‘생전 처음’ 겪는 매혹적인 순간으로 여기며 죽음을 준비한다. 평소 ‘생전 처음’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엄마를 의아해하던 ‘나’는 엄마의 덤덤한 모습에 눈물을 삼킨다.

“나는 인자 죽음이 기대가 된대이. 간혹 가다 어찌된 판인지 하나하나가 낯설고 생전 처음인 거 같을 때가 있거든. 그러다가 금방 내 아이가 인자 여든여덟이지, 하고는 깜짝 놀래. 인자 내가 처음 겪을 일이 죽음밖에 더 있겠나 싶은 생각이 들거든. 죽음이야말로 내가 세상에 나서 생전 처음 겪는 진짜로 매혹적인 순간이 아이겠나 싶어서 은근히 기대가 된다니까.” 203p

 

「만선」은 영광 87호 선장이 공산화된 베트남을 탈출한 보트피플 96명을 해상에서 구조하는 이야기이다. 선장은 표류하던 배에서 구출한 생명들을 참치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만선’이라며 희열을 느끼지만, 회사에서는 해고를 들먹이며 난민들을 들여오지 말라는 명령을 내린다. 선장은 수많은 고뇌 끝에 회사의 지시를 거부하고 선원의 의무를 지킨다. 이 작품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다. 1985년 베트남 난민을 구출한 전재용 선장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정우련 작가가 이를 장편으로 쓰던 중에 단편 청탁이 와서 주제 부분만 떼 단편으로만 썼다고 한다. 그 장편 소설이 나온다면 바로 읽어보고 싶을 정도로 전후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정우련 작가의 다음 작품이 기대된다.

그날 밤, 보름달이 밤바다를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바람 한 점 물결 한 점 없었다. 그런 바다를 선원들은 장판선 바다라고 불렀다. 자칫 땅으로 착각하고 무심코 발을 내디뎠다가는 빠져버릴 수도 있는, 세이렌의 노래처럼 아름답고도 위험한 바다였다. 232p

 

 정우련 작가는 7편의 이야기 곳곳에 통증을 느끼는 인물들을 배치했다. 사소한 갈등에서부터, 속을 긁는 큰 다툼까지 끓는점으로부터 서있는 지점이 다른 인물들인 만큼 통증을 주고받는 대상도 다양하다. 마땅히 미워했던 친구에게, 사랑이 영원할 것만 같았던 연인에게, 생각지도 못한 뜻밖의 사람에게, 심지어 타인이 아닌 자신에게도 통증을 선사한다. 홧김에 혹은 의도적으로 생채기를 낸 이들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통증은 고통만을 주니 피하며 살자와 같은 의미는 전혀 아닐 것이다. 우리는 통증을 느끼고 살아가야 한다. 통증이 없다면 고통을 느끼지 못해 위험을 알아채지 못하고, 인간으로서 성장할 수 없으며, 살아갈 수 없다. 하나의 크고 작은 통증을 유발하는 『팔팔 끓고 나서 4분간』은 독자에게 질문한다. 통증이 필요한 삶 속 당신은 지금, 끓는점으로부터 어디에 있나요?


 

팔팔 끓고 나서 4분간 - 10점
정우련 지음/산지니

-산지니 인턴 김다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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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실버_ 2020.01.09 17:2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각 수록작마다 대표하는 구절들을 센스 있게 뽑아주셨네요.
    다연 씨가 정우련 작가님이 7편 이야기 곳곳에 통증을 느끼는 인물들을 배치했다고 하셨는데, 실제로 그래서 통증도 제목 후보에 있었답니다.
    작가님이 보시면 의도를 알아챘다고 좋아하실 것 같네요! 서평 잘 읽었습니다. : )

  2. 날개 2020.01.10 08: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양한 소재의 이야기가 담겨 있네요. 정우련 작가님이 앞으로 풀어놓을 이야기가 더욱 기대됩니다! 서평 잘 읽었어요 :)

 

 

위선의 세계에서 만난 사람들

정정화의 실금 하나를 읽고


정정화 작가의 소설집 실금 하나에는 총 8편의 단편 소설이 수록되어 있다. 하나의 제목으로 묶인 단편 소설집이라고 하더라도 소설 하나하나에서 일관된 공통점을 찾기 어려운 경우가 많은데 정정화 작가의 실금 하나는 어렵지 않게 8편의 소설 모두를 관통하는 주제를 찾을 수 있었다. 그건 곧 부조리한 세상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기억하고 싶은 이야기201호 병실은 가족관계의 불화, 돌탑 쌓는 남자실금 하나는 부부 관계의 불화, 가면, , 괜찮니?,크로스 드레서학교와 회사에서의 불화, 빈집은 친구 관계의 불화를 내세운다. 불화와 갈등은 소설에서 반드시 필요한 요소이기도 하다. 주인공이 세상과 불화하여 만들어 내는 것이 갈등이며 그러한 갈등 속에서 사건이 발생하기 때문에 불화하지 않는 세계에서는 소설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불화나 갈등은 소설에서 전제조건에 해당한다. 그러나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런 갈등을 어떻게 풀어나가느냐, 어떤 시선으로 보고 있느냐 하는 문제이다. 정정화 작가의 소설에서 인물은 대부분 순수하고 정직한 주인공과 그와 대립하여 위선적인 세계와 영합한 이들의 대립구조로 볼 수 있다. 이는 너무나 선명한 선악의 대립이라고 볼 수 있지만 이러한 갈등이 현실 세계에 너무나 밀접하게 다가와 있다는 점에서 이 소설을 쉽게 읽고 넘어갈 수 없도록 만든다.

기억하고 싶은 이야기에서는 요양병원에 입원한 어머니와 그의 재산을 둘러싸고 가족이 무너져가는 모습을 생생하게 담고 있다. 이와 유사한 이야기인 201호 병실에서 역시 아픈 노인들이 가득한 201호 병실의 침대를 의인화해 서술하고 있다. 그는 병실에 입원한 노인들의 이야기와 욕망, 그리고 한때 자신의 위에서 입원 생활을 했던 설아 씨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돌탑 쌓는 남자실금 하나는 모두 부부 관계를 이야기하는 소설이었는데 이 두 편의 소설에서는 모두 가부장적인 남편이 등장한다는데서 인상적이었다. 특히 실금 하나는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떠오를 만큼 강렬한 부분이 있었다. 가면은 보험사에 취직한 정민 씨의 이야기이다. 그런 정민 씨의 팀장인 가희는 자신이 지점에서 가장 실적이 높은 명인이 되면 같은 조인 정민에게도 보상이 있을 것.”이라며 정민의 실적을 가로채지만 정작 정민은 실적이 가장 낮아 회사에서 무시를 당하기 일쑤이다. 반대로 가희는 지점장과 불륜관계를 유지하고 고객들과 성적인 관계를 맺으며 지점에서 가장 높은 위치를 잡게 된다. 그런 가희를 축하하기 위해 연 가면무도회에서 정민과 가희에게 피해를 입은 동료들은 가면을 벗으며 진실을 폭로하기에 이른다. 이렇듯 가면은 부당한 권력에 맞서 싸우는, 이 소설집에서는 흔치 않은 소설이다. 이와 비슷한 유의 소설인 , 괜찮니?크로스 드레서는 마찬가지로 학교’라고 하는 직장에서 기간제 교사로 근무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 괜찮니?는 학부모들에게 부당한 선물을 받고 미술 대회 성적을 조작하려는 염 선생과 그에 동조하는 선생님들에 대해 반기를 들고 상장을 찢어버리지만 결국 물의를 일으켰다는 죄목으로 해고를 당한다. 크로스 드레서에 등장하는 기간제 교사 역시 기간제 교사로 학교 업무에 쉬이 적응하지 못하던 찰나 그녀를 살갑게 도와주는 사회 선생과 점점 친해져, 육체적인 관계를 맺게 된다. 그는 그녀에게 사랑한다.”라고 말하지만, 그녀가 기간제 교사의 업무를 끝내자마자 연락이 소원해지더니 결국에는 같은 학교의 염 선생과 결혼을 한다고 한다. 그에게 배신감을 느낀 그녀는 그들이 자주 가던 카페의 바리스타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