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와의 만남 | 이벤트'에 해당되는 글 291건

  1. 09:24:29 2019 출판도시 인문학당_사찰, 아는 만큼 보인다
  2. 2019.04.10 [저자와의 만남] 『소비에트 러시아의 신체문화와 스포츠』저자, 박원용 교수님과의 만남 (3)
  3. 2019.04.01 [2019 출판도시 인문학당]『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의 저자 정상천 작가님과의 만남
  4. 2019.04.01 [행사알림] 95회 산지니 저자와의 만남 『소비에트 러시아의 신체문화와 스포츠』박원용 저자
  5. 2019.03.27 [행사알림] 2019 출판도시 인문학당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정상천 저자 강연 (1)
  6. 2019.03.27 <마르크스의 마지막 투쟁> 마르셀로 무스토 교수와의 만남
  7. 2019.03.27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정상천 작가, 서울도서관 강연
  8. 2019.02.28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하며-<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저자와의 만남
  9. 2019.02.28 홍콩의 정체성을 말하다! <홍콩 산책> 류영하 교수와의 만남
  10. 2019.02.27 화랑의 기원이 된 신라 여성, 원화를 주목하다! 역사 소설『랑』김문주 작가와의 만남
  11. 2019.02.19 [94회 산지니 저자와의 만남: 정상천 작가]
  12. 2019.02.07 [행사알림] 93회 산지니 저자와의 만남 :: 김문주 작가 <랑>
  13. 2019.01.15 겨울과 잘 어울리는 소설집,『볼리비아 우표』강이라 작가와의 만남 (5)
  14. 2019.01.10 [행사알림] 91회 산지니 저자와의 만남 :: 강이라 작가 편 『볼리비아 우표』
  15. 2019.01.08 "바다는 쓰레기통이 아니야!" 환경 동화『해오리 바다의 비밀』조미형 & 박경효 작가와의 만남 (2)
  16. 2019.01.03 [행사 알림]90회 산지니 저자와의 만남(조미형/박경효 작가)
  17. 2018.12.24 89회 산지니 저자와의 만남_최시은 작가 『방마다 문이 열리고』 (2)
  18. 2018.12.20 [행사알림] 89회 산지니 저자와의 만남 『방마다 문이 열리고』최시은 저자
  19. 2018.12.05 행동하는 도시사회학자, 故 윤일성 교수님을 추억하다 (4)
  20. 2018.12.04 [출판도시 인문학당]『부산 탐식 프로젝트』의 최원준 작가님과의 만남
  21. 2018.11.30 [행사알림]2018 출판도시 인문학당 『부산탐식프로젝트』최원준 저자 강연
  22. 2018.11.23 [저자와의 만남]『국가폭력과 유해발굴의 사회문화사』의 저자, 노용석 교수님과의 만남
  23. 2018.11.13 [행사알림]『국가폭력과 유해발굴의 사회문화사』의 저자, 노용석 작가와의 만남
  24. 2018.11.12 모다 읽기 마지막 시간 - <폴리아모리>를 읽고 (2)
  25. 2018.11.02 [시상식 후기]<생각하는 사람들> 정영선 소설가, 요산김정한문학상 수상! (2)

 

2019 출판도시 인문학당


『재미있는 사찰 이야기』한정갑 저자


 

 


 

사찰에 들어서면 꼭 만나게 되는 4대 천왕. 왜 그들은 무기를 들고 사찰을 지키고 있는 걸까, 대웅전의 부처님상의 손 모양은 무엇을 뜻할까, 절은 항상 산에 있어야 하는 걸까. 사찰에 가게 되면 이런저런 의문이 들지만 속 시원하게 해소해 주는 안내가 없습니다. 사찰은 사람이 인위적으로 조성한 것이 아니라 불교 사상에 바탕을 두고 조성되었고, 그것을 조성한 목적이 무엇인지에 대한 문화와 역사를 종합적으로 이해하지 않으면 그 본래의 뜻과 목적을 알 수 없습니다. 


『재미있는 사찰 이야기』는 전통 사찰과 사찰의 각종 조형물에 대한 안내서로서, 불교 사상을 기반으로 전통 사찰과 조형물을 알기 쉽게 설명한 책입니다. 저자는 전국의 전통 사찰을 답사하면서 사찰에 상징적 의미를 분석하고, 조형물에 깃든 불교의 교리를 심도 깊게 풀어갑니다.


저자의 강연으로 사찰을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일시: 4월 18일 (목) 저녁 6시

 

장소: 산지니 X 공간


 

* 별도의 신청 없이 참석 가능합니다

 

* 현장에서 도서 구입 가능합니다



재미있는 사찰 이야기 - 10점
한정갑 지음/산지니



Posted by 동글동글봄

 

 

 

 

 

 

 

 

95회 산지니 저자와의 만남은『소비에트 러시아의 신체문화와 스포츠』

박원용 저자님과 함께했습니다.

스포츠를 통해 러시아 현대사를 알기 쉽고 재미있게 설명해주셨습니다.

 

 

 

 

 

 

 

 

 

강연은 북한과 소련의 문화적 유사성을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했습니다. 북한의 퍼레이드 장면을 통해 현재 북한 사회의 문화의 생성 방식, 지금 현재 북한의 정신적인 가치 기준을 알 수 있습니다. 소련의 신체문화 퍼레이드와 비슷한 이 모습은 북한이 소련의 문화적인 영향력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요?

 

 

 

 

 

 

 

 

소련은 혁명 후 인민 전체의 평등과 사회주의 의식을 일상에서 구현하기 위해 지도 원리로서 신체문화를 만들어 냅니다. 사회주의 권력 수호하기 위해서는 정신뿐 아니라 육체단련도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사회주의 체제에 봉사하고 발전할 수 있는 새로운 이념체제 신체문화가 만들어진 것입니다. 소련의 만들어진 신체문화는 체제의 가치 이념 수호가 목표일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소련은 스포츠에서 경쟁문화를 배척하였습니다. 체제 전체의 가치와 단결을 중시하는 신체문화 이념과 경쟁을 강조하는 스포츠 문화는 맞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1920년대 초반에는 스포츠는 자본주의 체제의 타락한 문화라는 인식을 퍼뜨렸고, 스포츠가 아닌 다른 형태의 여가 생활을 만들어냈습니다. 작업장의 도구를 이용하는 노동 체조, 매스게임, 정치적 색채가 가미된 놀이가 개발되었습니다. 이런 놀이에서는 당연히 재미를 느낄 수 없었습니다. 스포츠가 여가 활동이라기보다 하나의 이념 교육화 된 것입니다.

 

 

 

 

 

 

 

 

 

 

 

소련의 통치권을 가지게 된 스탈린은 당시 사회주의 체제의 소련을 자본주의 국가와의 경쟁에서 뒤지지 않는 강력한 사회주의 체제의 국가로 만들어야 한다는 청사진을 구상합니다. 그런 청사진을 실현하기 위하여 스탈린이 강조한 것은 러시아는 소련은 더는 과거와 같이 농민을 위주 정책으로는 강력한 국가로 나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빠른 시일 내에 산업화 공업화를 시도하여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뛰어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노동자들의 적극적인 생산의욕을 고취하기 위해 노동자들의 생산력에 따라 차등의 임금을 지급하고 사회적인 혜택 또한 차등화하는 차별적인 정책을 시도합니다. 소련의 평등주의적 이념이 스탈린 시대에 와서 후퇴한 것입니다. 그러한 정책 기조가 확산되면서 스포츠 분야에서도 경쟁적인 요소가 용인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스포츠 영역에서 경쟁은 전국적 축구대회인 스탈린 컵대회, 레닌 컵대회 등이 만들어지며 본격화 되었습니다. 당시 축구가 일반 대중들에게 인기 있는 경쟁 스포츠 중 하나였기 때문에 경쟁적인 스포츠 문화가 소련 문화 전반에서 나타나기 시작하였습니다. 대표적인 축구팀이 지나모 스파르탁입니다. 이 두 팀이 가장 경쟁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축구팀이었습니다. 지나모는 스탈린 공포정치의 중추 기관이었던 비밀경찰의 후원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스파르탁은 상공 협동조합, 강압적인 국가권력과 영향을 받지 않는 단체들의 지원을 받아 만들어졌습니다. 대부분의 관중은 공포의 대상인 비밀경찰의 후원을 받는 지나모보다 스파르탁을 응원했고, 스파르탁에 우수한 자질의 선수들 많이 들어갔습니다. 컵대회 결승전의 승자는 스파르탁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스파르탁의 지속적인 우승을 보다못한 비밀경찰의 수장 배리아는 경기 결과를 인정하지 않고 재경기를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재경기에서도 스파르탁이 승리하자 배리아는 경기 도중 자리를 떴습니다. 지도자의 심기를 거스른 승리의 주역들은 시베리아로 유배를 가기도 하였습니다. 국가권력에 의해 운동선수들이 자신들의 기량을 마음대로 펼치지 못하는 우스운 상황이 종종 나타났습니다.

 

 

 

 

 

 

 

 

1930년대에 스포츠 경쟁문화가 두드러지기는 했지만 이념적인 신체문화가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사회주의 존속체제와 인민 단결을 위해서는 신체문화가 굉장히 중요한 이념적 동기였기 때문에 공식적인 차원에서는 계속 재개되었습니다. 육체의 단련을 통해 강인한 체력을 지니는 것이 사회주의 국가 체제 속 삶의 지침으로 제시되었습니다.

 

 

 

 

 

 

 

 

소련 정부는 인민들에게 종교단체의 불규칙적인 행사 모습과 사회주의 체제 행사의 정돈된 이미지를 대비해 보여줌으로써 사회주의 이념과 체제의 우월함을 강조했습니다.

 

 

 

 

 

 

 

 

스탈린에 대한 숭배도 소련의 빼놓을 수 없는 문화적 모습입니다. 이것은 스탈린 집권 통치 기간에 빠질 수 없는 통치의 한 기술이었습니다. 거의 똑같은 형태의 구도를 가지고 있는 신체문화 행사 장면입니다. 원래의 모습은 레닌이었지만 스탈린 개인숭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스탈린으로 대체되었습니다. 스탈린을 레닌을 능가하는 위대한 지도자로 격상시킨 것입니다. 실제로 스탈린이 정말 레닌보다 통치력이 뛰어나서 그렇게 한 것일까요? 혁명을 완성한 레닌보다 당 지도자 스탈린을 높이는 것은 체제의 절대적인 단결을 나타내기 위함이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군만큼 소련의 영향력도 지대했습니다. 소련이 동부전선에서 막대한 희생을 하면서 히틀러의 진격을 저지하지 않았다면 2차 세계대전의 결과가 바뀌었을지도 모릅니다. 스탈린과 소련 공산당 지도자들은 승전국으로서의 자신감을 스포츠를 통해서 다시 한 번 표시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모든 기록들은 소비에트의 것이 되어야 한다.‘는 포스터의 문구는 세계적인 강국으로서의 지위를 널리 알리자는 소련의 생각을 가장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소련은 이전까지 자국의 선수들이 자본주의 국가의 선수들과 어울리면 이념적으로 타락한다고 생각하여 올림픽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였습니다. 하지만 세계 스포츠 무대에 진출하면서 자신감을 얻게 되었고 안드리아노프가 서방의 IOC 의원들에게 호감을 주며 소련 올림픽 위원회가 승인되었습니다. 마침내 1950년 헬싱키 올림픽부터 소련이 참가하게 된 것입니다.

 

 

 

 

 

 

 

 

 

물론 반대 세력도 존재했습니다. 정치에 의해 올림픽위원회가 좌지우지되는 상황을 막기 위해 각 국가의 올림픽 위원회는 정부와 독립된 기관이어야 했습니다. 소련 올림픽 위원회는 정부에 꼭두각시에 불과하기 때문에 소련의 올림픽 참가는 절대로 허용되어서는 안된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당시 IOC 4,5대 의장은 사회주의 이념을 반대했기 때문에 소련의 올림픽 참가를 부정적으로 생각하였습니다.

 

하지만 소련은 우호적인 국가 이미지를 형성하기 위해 올림픽 관련자들에게 자신들의 신체문화 퍼레이드를 적절하게 보여 주었습니다. 그러면서 영국의 버글 리는 자신을 환대한 소련 정부에 대해 우호적인 입장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또한 IOC 4대 의장 에즈트롬은 자신의 임기가 끝나기 전에 헬싱키 올림픽을 사회주의 국가도 참가하는 진정한 올림픽으로 만들고자 하였습니다.

 

국제 정세로는 소련의 원자폭탄 실험, 중국 사회주의 체제 출범, 동유럽 사회주의 블록, 한국전쟁 등 평화를 위협하는 사건들이 일어나면서 소련이 52년 올림픽에 참가한다면 평화적인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다는 생각이 널리 퍼졌고, 마침내 이런 조건을 통해 소련이 올림픽에 참가하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올림픽에서의 냉전이 시작된 것입니다.

 

 

 

 

 

 

 

 

 

 

 

소련 선수들의 기량이 뛰어나자 미국은 대표적인 스포츠 일간지에 소련 선수들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 양성할 수 있는 기사를 집중적으로 게시하였습니다. 소련 선수들은 우승을 위해서 스포츠의 즐거움을 전혀 모르고, 다른 나라 선수들과 우호적인 교류를 하지 않으며 올림픽을 전투와 같이 임한다고 비판하였습니다.

 

소련은 그에 대항하여 소련의 선수들은 개인의 영광이 아닌 조국의 영광을 위해 경쟁한다는 이미지를 생성하였습니다. 소련 선수들은 선수이자 학생이기 때문에 물질적 혜택만을 중시하지 않으며 국가를 위한 선수로서 사명과 학생으로서 배움의 자세를 충실하게 지켜나가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소련은 세계의 선수들을 불러들여 소련 체제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자는 생각으로 모스크바 올림픽을 개최하고자 하였습니다. 미국은 모스크바 올림픽을 부정적으로 생각했고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이유로 모스크바 올림픽은 세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선전을 했습니다. 결국 모스크바 올림픽은 반쪽의 대회로 끝나게 되었고, 84LA올림픽 또한 같은 상황이었습니다. 그다음 열린 88년 서울 올림픽은 냉전 시대의 분열을 해소한 성공적인 올림픽으로 이야기됩니다.

 

 

 

 

 

 

 

 

 

 

소련의 스포츠 정책의 전개는 국가권력의 방향, 당시 냉전시대 미국 세력과의 역학관계와 긴밀하게 연결될 수 있습니다. 또한 스포츠를 통한 소련의 현대사는 단순히 스포츠라는 문화 현상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당시의 국제 상황, 소련의 당시 정책과 밀접하게 관련되는 하나의 문화 요소였습니다.

 

 

 

 

 

 

 

 

 

 

 

 

 

스포츠가 단지 문화 영역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한 나라의 역사, 정치 체제와 밀접하게 관계 맺고 있다는 것을 새롭게 알게 되었고, 스포츠와 신체문화를 바라보는 넓은 시각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좋은 강연 들려주신 박원용 교수님과

직접 오셔서 들어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스포츠라는 거울을 통해

격동의 러시아 현대사를 들여다보다!

소비에트 러시아의 신체문화와 스포츠

 

 

박원용 지음 | 판 |  25,000원 | 

978-89-6545-581-3 93920

 

혁명 이후 러시아 사회의 변화를 이미지, 일상의 경험과 관련지어 연구해온 박원용 교수가 소비에트 러시아의 신체문화와 스포츠를 출간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스포츠라는 소재를 활용해 1920년대 이후 소련 사회의 변화 과정을 설명하고, 동시에 올림픽 무대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던 소련과 미국의 열전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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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은해

 

 

 

 

 

 

 

 

 

지난주 목요일, 산지니X공간에서 2019 출판도시 인문학당이 열렸습니다.

『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의 저자이신 정상천 작가님이 직접 오셔서

독립운동가 서영해의 삶에 대해 강연해주셨습니다.

 

 

 

 출처 바로가기

 

 

 

 

 

 

 

 

 

산지니X공간에는 작은 부스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이곳에서 강연자 분이 쓰신 책이나 산지니 출판사 신간을 구입할 수 있습니다.

산지니 출판사 도서 목록과 팜플렛은 자유롭게 열람하고 가져가실 수 있습니다.

 

 

 


 

 

 

 

 

 

 

 

( 산지니X공간에서 강연하는 정상천 작가님 )

 

오랫동안 외교부 공직에 있으셨던 정상천 작가님은 주말마다 역사 공부를 했습니다.

'일요일의 역사가'라는 명칭은 정상천 작가님의 롤모델이자 실제로 프랑스에서 활동하고 있는 학자 '필리프 아리에스'에게서 따 온 것입니다.

 

 

 

 

 

 

 

 

 

( 부산 초량동에 위치한 서영해 선생의 생가 자리, 현재 락천각이라는 중국요리점이 들어와 있음)

 

( 산지니X공간에서 정상천 작가님의 강연을 듣고 있는 청중들 )

 

부산에서 가장 큰 한약방 중 하나를 운영하는 집의 넷째 아들로 태어난 서영해 선생은 부친의 재력 덕에 17세의 어린 나이에도 프랑스로 유학을 갈 수 있었습니다.

부산 초량동에 있는 서영해 선생의 생가 자리에는 현재 락천각이라는 중국요리점이 들어와 있습니다. 서영해 선생은 어려서 화교 학교를 다니기도 했고 봉래초등학교를 졸업했다고 합니다.

 

 

 

 

 

 

 

 

 

 

 

서영해 선생은 27년간 파리에 살면서 20년 동안 외교활동을 하였습니다. 임시정부에 프랑스어를 잘하는 인재가 없었기 때문에 서영해 선생이 불어를 활용한 외교 업무를 도맡았습니다. 프랑스로 유학을 가 초등, 중등, 고등 수준의 학업과정을 6년 만에 마칠 정도로 서영해 선생은 매우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그의 불어 실력은 매우 유창했고, 다양한 국적의 유학생들과 어울릴 만큼 인간관계도 좋았다고 합니다.

 

 

 

 

 

 

 

 

 

 

( 서영해 선생이 머물렀던 파리의 호텔 드 상리의 객실 )

 

( 열정적인 강연을 하고 있는 정상천 작가님 )

 

서영해 선생은 프랑스 파리의 호텔 드 상리에서 '고려통신사'를 설립하여 국제 언론에 대응하였습니다. 조선 독립의 당위성과 일제의 부당함을 세계에 널리 알렸습니다. 아주 작은 객실 한 칸에서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을 홀로 해낸 것입니다.

 

 

 

 

 

 

 

 

 

( 서영해 선생의 임시정부 시절 명함, 서영해 선생이 받은 독립 유공 훈장)

 

 

( 서영해 선생과 이승만의 모습 )

 

정상천 작가님은 프랑스 외교부 문서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프랑스 대표'라는 서영해의 명함을 우연히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정상천 작가님이 서영해에 관해 연구하기 시작한 계기이자, 서영해가 임시정부의 외교관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미국에 이승만이 있다면, 유럽에는 서영해가 있다고 할 만큼 서영해는 임시정부 외교의 주축이었습니다. 같은 외교 업무를 하며 친밀하게 지내던 이승만과는 후에 정치적 의견 차이로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 이집트 여인』에 소개된 서영해의 소설

 

 

 

임시정부에서 따로 지원이 없었기 때문에 서영해 선생은 스스로 돈을 벌어 독립운동자금으로 사용해야 했습니다. 그는 주로 언론에 글을 기고하고 원고료를 받아 고려통신사를 꾸려 나갔습니다. 그가 쓴 어느 한국인의 삶의 주변은 대공황 시기에도 5판 인쇄가 될 만큼 인기가 많았습니다. 그의 소설을 통해 프랑스 사람들은 우리나라에 대해 알 수 있었습니다. 그전까지는 일본을 통해 우리나라의 소식이 대부분 전해졌다면, 서영해는 세계의 언론에 직접적으로 우리나라를 알린 것입니다.

 

 

 

 

 

 

 

 

 

( 서영해 선생과 엘리자 사이에서 태어난 스테판, 한국에 돌아온 서영해 선생과 그의 가족들 )

 

( 류영남 선생님이 서영해 선생을 널리 알려 달라는 황순조 여사의 부탁을 회고하는 장면)

 

서영해 선생은 프랑스에서 엘리자와, 우리나라에 돌아와서는 황순조 여사와 결혼하였습니다. 서영해 선생과 엘리자 사이에서 태어난 스테판은 아버지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습니다. 죽기 전 서영해 선생을 찾았지만 투병 끝에 돌아가셨고, 정상천 작가님의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를 통해 서영해 선생의 삶이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관심을 가지고 찾아와주신 분들과 사진으로 기록을 남겼습니다.

 

 

 

 

 

 

 

 

 

 

 

 

 

 

 

 

 

 

 

 

 

다음 출판도시 인문학당은 4월 18일 오후 6시 산지니X공간에서 열립니다!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 10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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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은해

 

95회 산지니 저자와의 만남은

 

『소비에트 러시아의 신체문화와 스포츠』의 저자

 

박원용 교수님과 함께합니다.

 

 

 

 

 

러시아 현대사의 굴곡이 스포츠에서는 어떻게 나타났을까요?

박원용 저자는 '스포츠'라는 소재를 통해

혁명 이후 러시아 사회의 변화를 흥미롭게 풀어냈습니다.

이번 만남에 꼭 참석하셔서 함께 격동의 러시아 현대사로 들어가 보아요!

 

 

 

 

 

 

 

 

 

 

 


 

 

『소비에트 러시아의 신체문화와 스포츠


저자는 기존의 접근법에서 벗어나 조금은 '부드러운' 스포츠라는 소재를 통해 러시아 현대사를 소개한다.

 

 그렇다고 소련 현대사의 전체적 조망을 포기하고 스포츠와 같은 미시적 영역만을 강조하는 것은 아니다.

 

 소련사회 구조의 특성상 스포츠와 같은 문화영역은 전반적인 통치 이념이나 정책의 방향과 분리하여 존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스포츠를 통해 러시아의 정치사회적 변화를 살피며, 1920년대와 스탈린 시대, 냉전 시대로 이어지는 러시아사를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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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은해

 

 

 

2019 출판도시 인문학당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정상천 저자 강연

 

 

 

 

 

독립운동가 '서영해'의 삶은 최근에 들어서야 정상천 작가의『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를 통해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국내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들보다 상대적으로 남아 있는 기록이 적었기 때문입니다. 

유럽에서 외교로 항일 투쟁에 앞장섰던 서영해의 뜨거운 삶을 '일요일의 역사가'로 불리는 정상천 작가님과 함께 짚어가는 시간을 준비했습니다.

 

 

 

 

 

 

 

 

 

일시: 3월 28일 (목) 저녁 6시 30분

 

장소: 산지니 X 공간

 

* 현장에서 도서 구입 가능합니다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정상천 지음ㅣ316쪽ㅣ16000원ㅣ2019년 2월 28일

 

총과 폭탄을 든 독립운동가도 있지만 여기 펜을 들고 조선 독립에 앞장선 독립운동가도 있다. 이 책은 그동안 숨겨진 서영해의 삶과 사상을 발굴해 정리했다. 서영해는 당시 유럽사회에 외교 중심지였던 프랑스 언론에 끊임없이 조선을 알렸고 여러 국제회의에 참가해 유창한 불어실력으로 조선이 직면한 어려움을 알리는 활약상을 펼쳤다.
저자는 국내에 부족한 서영해의 자료를 직접 발굴했고 책에는 서영해가 쓴 유고 글과 프랑스 현지 언론에 기고한 글, 인터뷰 등을 모아 번역해 실었다.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 10점
정상천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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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은해

산지니는 지난 3월 13일~18일 한국을 방문한

<마르크스의 마지막 투쟁>의 저자 무스토 교수의 강연에 함께했습니다.

 

3월 13일 (수) 진주: 경상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및 SSK연구팀(정성진 교수)

3월 14일 (목) 부산: 오후 3시, 동아대학교 맑스엥겔스연구소(강신준 교수)

3월 18일 (월) 서울: 정치경제연구소 대안(곽노완 교수)

 

위와 같은 일정으로 진주, 부산, 서울에서 강연이 있었는데요,

이 포스팅에서는 진주와 부산에서 있었던 강연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마르셀로 무스토(Marcello Musto) 교수 / 산지니 DB

 

마르셀로 무스토(Marcello Musto) 교수는

이탈리아 나폴리 출신의 신세대 맑스주의 연구자로서 현재 캐나다 요크대학 부교수입니다. 칼 맑스의 사상, 맑스주의, 사회사상사, 소외 이론, 공황 등에 관한 그의 관심은 100권을 넘는 분량의 저서, 기사 등으로 표현되어, 전 세계에 20개국 언어로 번역되어 출판되었습니다. 특히 그의 저서 <맑스의 Grundrisse-정치경제학비판의 기초, 이후 150년>은 학계의 비상한 주목을 받았습니다. 산지니에서는 마르크스 탄생 200주년을 기념해 <마르크스의 마지막 투쟁 1881-1883년의 지적 여정>(2018, 산지니)을 번역 출간했습니다.

 

진주 경상대에서는 정성진 교수의 사회로 강연이 진행되었습니다.

 

 

마르셀로 무스토 교수(좌)와 정성진 교수(우)

 

정성진 교수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경제학과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경상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현재 한국사회경제학회장, 계간 <마르크스주의 연구> 편집위원장, 국제학술지 Research in Political Economy의 편집위원을 맡고 있고, 맑스코뮤날레 집행위원장, 경상대학교 사회과학연구원장과 대학원 정치경제학과 초대 학과장을 역임했다. 저서로 <마르크스와 한국 경제>(2005), <마르크스와 트로츠키>(2006) 등이 있다.

 

이날은 경상대학교에서 마르크스를 연구하시는 대학원생 분들, 대학생 분들이 많이 와주셔서 인지 무스토 교수가 '새로운 마르크스 연구 세대'를 위한 강연을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교수님이 밝힌 주제는 ‘Marxs for Today’였는데요,

마르크스에 대한 관심과 정치 상황은 항상 이어져 있어서, 나라마다 그 관심과 공부에 대한 상황이 달랐다고 합니다.

1960~1970년에는 유럽에서 마르크스 공부가 매우 중요했고, 최근 브라질에서는 교수님이 강연을 하러 가면 몇백 명이 기다릴 정도로 마르크스 연구에 대한 관심이 높다고 합니다.

 

 

강연 중인 마르셀로 무스토 교수

 

유럽 경제 위기는 전 세계의 경제 위기로 확산되었는데요, 이 위기는 다만 경제적 위기(political crisis) 만을 넘어서 사회적 위기(social crisis)를 불러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최근 몇 년간 새로운 사회 건설을 위한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는데요.

유럽, 특히 마르셀로 교수의 나라 이탈리아에서는 ‘나라 속 나라’로 불릴 만큼

공산주의, 마르크스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마르셀로 교수는 지금이 유럽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마르크스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할 때라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책을 통해 많이 배울 수 있다고 했는데요.

마르크스 책은 크게 두 분류로 나누어지는데,

1. 전기(biography) 이고 2. 드물게 마르크스 이론(rarely marxs theory)이라고 합니다.

전기는 아주 많이 나와 있지만, 마르크스의 이론에 관한 책은 드뭅니다.

그러나 우리는 마르크스의 이론에서 우리 자본주의의 미래를 엿볼 수 있고, 마르크스가 제기한 후기 자본주의(post-capitalsim)와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criticism of capitalism)에 대한 문제에 대해 고려해볼 수 있다고 합니다.

 

 

마르셀로 무스토 교수와 청중들

 

또한 무스토 교수는 마르크스를 연구하는 젊은 세대(young generation)에 대한 애정을 보였는데요, 학생들에게 한 가지 조언도 해주면서 강의를 마무리했습니다.

마르크스는 학창시절 매우 비판적인(critical) 학생이었다고 하면서요.

결코 순종적인 학생이 아니었고, 그 점이 그를 세계 최고의 학자로 만들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무스토 교수는 학생들이 무엇을 공부하다가 자기 생각과 다른 결과를 본다 하더라도 “I was wrong”이라고 말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공부하는 학생에게 그 말은 필요 없는 말이라고요.

 

마지막으로 학생들이 이미 많이 연구된 마르크스에 대해 배우는 것도 좋지만

‘Unfinished Marx’, 후기 마르크스의 삶으로부터 배울 수 있는 점도 많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참석해주신 분들 모두 감사합니다 :)

 

마르크스의 마지막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요?

마르크스의 생애뿐 아니라 생각을 통해,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알 수 있진 않을까요?

무스토 교수는 마르크스의 마지막을 통해 우리가 ‘자본주의 비판에서 그치지 않고, 자본주의가 나아갈 발전방향’까지 고려할 수 있는 시사점을 던진다고 말했습니다.

 


 

바로 다음 날, 부산 동아대 부민캠퍼스에서도 강연이 열렸습니다.

강신준 교수의 진행으로 강연을 시작했는데요.

 

무스토 교수의 동아대 강연 현장. 맨 왼쪽이 강신준 교수

 

강신준 교수는

고려대학교 독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 대학원에서 노동운동과 관련된 주제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우리나라에서 처음 마르크스의 <자본>을 번역하는 데 관여하게 되었고, 그 인연으로 동아대학교에서 마르크스를 강의하는 교수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이후 영남지역의 노동운동가들과 교류하면서 노동운동의 실천과 관련된 일에 종사하였고, 최근에는 <자본>을 대중적으로 소개하는 일과 마르크스 엥겔스 정본 전집(MEGA, 총 114권)의 한국어판을 최초로 출판하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맑스를 읽다><마르크스의 <자본> 탄생의 역사> 등이 있다.

 

Another Marx after MEGA(마르크스 엥겔스 전집(Marx Engels Gesamtausgabe))"를 주제로 개최된 이번 행사는 소규모 토론 형식의 강연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활발한 질의응답이 있었답니다.

 

 

마르셀로 무스토 교수와 청중들

 

청중 질문

메가 이후 일어난 마르크스 붐이 이탈리아만의 현상인가? 선생님이 연구하고 있는 캐나다, 미국에도 그런 붐이 일어나고 있는지 궁금하다.

 

- 이탈리아에서 시위라고 하면 다 같이 텐트를 치고 고생하고, 파스타를 만들어서 나누어 먹고 그런 문화가 있다.

미국의 경우를 보고 놀랐던 것이 오바마 케어 등 그런 시위가 일어났지만 그들은 인도에 한 줄로 서서 시위를 한다. 이탈리아인 입장에서 ‘그건 시위가 아니다’

북미권은 확실히 그런 공동체 정신이 세계의 다른 지역보다 유럽, 아시아와 비교했을 때 낮은 것 같다. 연대(solidarity)가 부족하다는 생각도 한다.

미국인들에게 너 이런 사회적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라고 물으면 질색하며 ‘난 노동조합형 인간이 아니야.(I'm not unionized guy)' 라고 말한다.

그래서 트럼프가 당선됐는지도 모르겠다. (웃음)

 

청중 질문

교수님이 한국의 마르크스 연구자(특히 이 자리에 모인 MEGA 연구자)들에게 앞으로의 과제를 제시해준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

 

- 좋은 질문이다. 한국의 마르크스 연구를 영어로 읽을 수 있는 자료가 없다. 한국에 강연을 오기 전에 찾아봤는데, 정말 하나도 없었다. 번역해서 세계로 그 연구를 알리는 일을 하면 좋을 것 같다.

또한 마르크스 연구를 이어나갈 수 있는 젊은 피(fresh blood) 양성이 필요하다. 활발한 컨퍼런스 개최 등을 통해 젊은 세대를 유입하길 기대한다.

 

 

참석해주신 분들 모두 감사합니다 :)

 

이번에는 무스토 교수가 질문했습니다.

 

무스토 교수 질문

마르크스 연구자들이 생각하는 현재 한국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는 무엇이 있나?

 

- 청년 교육, 취업 문제라고 생각한다. 1980년대 활발한 논의, 미래, 나라의 미래에 대한 생각이 있었다면, 1998년 IMF 이후로 그런 문제에 대해 고민하는 경향이 낮아졌다.

그에 따라 마르크스 연구도 점차 축소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이번 기회를 통해 청년들이 마르크스, 새로운 사상에 대한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

 


 

이번 초청 강연회는 무스토 교수와 직접 대화하며 마크르스를 새롭게 만나볼 수 있는 자리였습니다.

또한 국내 마르크스 연구 권위자들의 진행과 함께해 더욱 풍성한 시간이었습니다.

뒤풀이 식사자리에서까지 국내 마르크스 연구자들과 무스토 교수의 열렬한 대화가 오갔는데요.

앞으로 진행될 연구도 기대됩니다.

 

무스토 교수의 이야기를 통해 마르크스에 관심이 생기셨다면,

<마르크스의 마지막 투쟁>을 읽어보시는 건 어떨까요? :)  ->  책 소개 바로가기

불러오는 중입니다...

 

+) 동아대 강연 다음날 이루어진 국제신문 조봉권 기자와 무스토 교수의 인터뷰를 소개합니다.

 

 

조봉권의 문화현장 <49> 마르셀로 무스토 교수 인터뷰

마르크스 재조명 세계적 열풍 … 우리는 ‘진짜 마르크스’를 모르고 있다

 

 

++) 진주, 부산에서 뵀던 사흘 내내 에너지가 넘치고 소탈했던 마르셀로 무스토 교수님.

서울로 올라가는 기차 타는 시간까지 부산을 더 보고 싶다며 식사를 마다하고 국제시장, 자갈치시장, 보수동 책방골목을 거닐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비하인드 컷을 공개합니다. :)

 

 

Posted by 실버_


이번에는 서울도서관에서 시민들을 만났습니다.


서울도서관에서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하여 <책으로 보는 31운동: 그 시간의 기억과 흔적을 읽다> 기획전시와  자료실별 테마도서전시를 열고 있습니다.

전시 연계 강연으로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의 삶을 조명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책으로 보는 31운동:  : 그 시간의 기억과 흔적을 읽다]


독립운동사를 책으로 한눈에 볼 수 있는 전시였습니다.  전시실 중앙에 놓인 나무 원형에는 시민들이 3.1운동을 기억하는 갖가지 키워드가 적혀 있었습니다.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의 독립운동과 삶-강연]


강연 전 서울도서관 사이트에서 미리 사전 신청을 받아 진행했습니다. 신청을 아무도 하지 않으면 어쩌나 하고 걱정했는데 다행히 시민들이 신청해주셨구요. 색다른 장소에서 순수하게 독자와 만난다는 생각에 기대가 많이 되었습니다. 오신 분들 모두 "서영해"라는 이름만 듣고 궁금해서 강연에 왔다고 하시더라구요.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는 그는 대체 누구일까? 지금껏 왜 알려지지 않았을까? 이런 의문을 가지고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서영해는 부산출신으로 아버지가 한약방을 운영하셨습니다. 당시 콜레라가 유행했는데 서영해의 아버지인 서석주는 콜레라를 치료할 수 있는 약을 잘 처방했다고 합니다. 서영해가 17세의 어린 나이에 부모의 품을 떠나 상해로 독립운동을 하러 갈 수 있었던 건 아버지의 재력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이죠.


당시 독립운동가들은 미국으로 많이 갔는데 서영해는 왜 프랑스로 갔을까요?

파리는 1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정세의 중심지였습니다. 1차 세계대전 이후 파리강화회의가 개최되고 1919년 3월 임정의 외무총장 김구식이 파리에 도착하고 뒤를 이어 조소앙 등이 합류했습니다. 이들은 한국의 독립의 당위성을 국제사회에 알리기 위해 파리강화회의에 참석하려고 했지만 우리가 잘 알다시피, 파리에서의 뚜렷한 성과를 얻지 못했지요.


김규식도 영어를 거의 원어민 수준으로 유창하게 했고 다국어를 할 수 있었지만, 임정 내 불어를 유창하게 하는 인재가 없었습니다. 파리강화회의 이후 임정 내에 불어를 잘하는 인재가 절실히 필요했습니다.


서영해는 임정의 불어 인력 양성으로 프랑스로 유학을 가게 됩니다. 파리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 고등학교 과정을 단 6년 만에 졸업했습니다. 보통은 완전히 졸업하기까지 11년이 걸린다고 하니 얼마나 치열하게 공부를 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후 고려통신사를 설립해서 국제언론에 한국 독립의 당위성과 일제의 부당함을 알렸습니다. 서영해가 고려통신사로 사용한 호텔 드 상리는 여전히 운영 중이라고 합니다. 저자가 직접 호텔을 방문해서 찍은 사진입니다.




몸만 겨우 누울 수 있는 침대와 작은 책상이 보입니다. 이 방은 정식 방이 아니고 옥탑방이라고 하네요. 겨울에는 춥고 여름에는 더웠을 이 작은 방에서 임정의 어떠한 지원도 없이 홀로 조선의 독립을 알렸다고 하네요. 

저도 호텔 외부만 봤을 때는 느끼지 못했는데요. 좁고 어두운 방을 보니 뭉클해졌습니다. 조선 독립에 대한 강한 신념이 없다면 절대로 할 수 없는 일이었겠죠.

서영해가 머물렀던 숙소와 활동들은 *MBC 다큐멘터리 4월 1일 오후 8시 55분에 볼 수 있습니다.


이 사진 혹시 보셨나요? 언론에 크게 조명받은 사진입니다. 정상천 작가가 서영해 앨범을 보다가 발견한 사진으로 김구 재단에도 없는 사진이라고 합니다. 정말 대단하죠!



이 사진은 1938년 중국 창사에서 조선혁명단원 이운학이 권총을 난사한 '남목청 사건' 당시 생긴 것으로, 총알을 맞고도 의연한 김구 선생을 볼 수 있습니다. 역사의 중요한 사료이며, 서영해와 김구 선생이 친밀한 사이임을 알 수 있는 사진이기도 합니다. 

이 사진은 *4월 11일 부산시립박물관에서 개최하는 "임시정부 100주년 특별전-서영해" 전시에서 직접 보실 수 있습니다. 


서영해는 정치적 승자였던 이승만과 한때는 친했지만 정치노선 차이로 멀어졌고 해방 이후 국내에 설 자리가 없었습니다. 이후 연희전문학교와 경성여자의학전문학과 이화여전 등에 강사로 활동했는데요. 서영해는 국내에 머무는 동안 황순조 여사와 결혼했는데요 그때 제자들이 서영해 선생에게 준 결혼축하 패도 볼 수 있었습니다. 


작가는 출간 이후에도 서영해의 자료 발굴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날 책에 담지 못한 서영해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해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외 서영해의 언론가로서 문필가로서의 활약상, 오스트리아 여인과의 결혼과 이별, 귀국 후 1년 6개월이라는 짧은 한국 생활, 이후 상해로 건너가 행방불명되기까지 저자가 직접 발굴하고 자료를 모아 발견한 서영해의 삶에 대해 들을 수 있었습니다.

더 궁금한 내용은 28일 부산에서 진행하는 정상천 작가의 강연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를 아시나요?"에서 들으실 수 있습니다. 많이 와주세요! 저녁 6시 30분, 산지니X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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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 10점
정상천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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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동글동글봄

역사의 덤불 속에 가려진 서영해를 발굴하며

94회 산지니 저자와의 만남,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정상천 작가



28일 저녁 7교보문고광화문점 배움에서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정상천 작가와 94회 산지니 저자와의 만남이 있었습니다교보문고광화문점에서 저자와의 만남을 진행하는 건 처음이었는데요긴장도 됐지만 많은 분이 자리를 꽉 채워주셔서 뜨거운 열기로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저자의 알찬 설명으로 서영해 선생에 대해 조금 더 깊이 알아가는 시간이었습니다.

서영해 선생은 상해 임시정부의 공식적인 주불특파위원이었음에도 오랫동안 역사에 묻혀 있었습니다서영해 선생의 삶을 책으로 출간하기 위한 시도가 몇 번 있었지만 다들 언어의 장벽에 부딪혔습니다서영해 선생의 활동 무대가 프랑스였기 때문에 불어를 능통하게 할 수 있는 분이 필요했지요.

운명처럼필연처럼 평소 역사를 공부하시고 불어에도 능통한 정상천 작가가 프랑스 외무부 고문서실에서 우연히 서영해 선생의 명함을 발견하고 이것이 인연의 끈이 되어 책으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일요일의 역사가정상천
     

일요일의 역사가라는 말을 사용하신 분은 파리에 실제로 계시고 저의 모델입니다프랑스의 고위공직자이시면서 역사학계에 많이 알려지신 분입니다파리에 공부하면서 이 분을 알게 되었고 저도 벤치마킹하게 되었습니다

 

서영해, 그는 누구인가?

서영해 선생은 27년간 파리에 사셨고 그중 7년 동안은 파리에서 공부를 했고, 20년은 외교활동을 펼쳤습니다. 서영해 선생은 완전히 역사 속에 잊혀진 분입니다. 미국에 이승만이 있다면, 유럽에는 서영해가 있다고 할 정도로 임정의 양대 외교 축이었지만 철저히 잊혔고 제가 그분을 되살리게 되었습니다.

 

서영해, 독립운동을 하기까지

[서영해 출생지로 현재는 락천각이라는 중국요리점이 들어서 있다]

1920년에 프랑스에 갈 여력이 없었을 텐데요. 부친이 한약방을 하셔서 재력이 있어서 서영해의 유학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부친은) 부산 초량동에 서약국을 하셨습니다. 제가 주소만 가지고 생가를 찾아가보았습니다. 워낙 부자셨고 당시에 이 일대가 서석주 옹의 땅이었습니다.

서영해 선생은 이 근처에 태어나셨고 화교 학교도 다녔습니다. 일부 언론에서는 화교 중학교를 다녔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당시 화교에 중학교 과정이 전 세계에 없었습니다. 잘못된 내용입니다. 선생은 부산 봉래초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위대한 독립운동가 서영해와의 만남

그렇다면 서영해 선생은 왜 상해를 가게 되었을까요. 16살 때 3.1만세운동을 참여했습니다. 당시 기록에는 밤참 먹는 재미로 했다고 하셨습니다. 이후 일제 탄압의 부당함으로 민족의 현실에 눈을 뜨게 됩니다.

제가 휴직하고 프랑스에서 공부할 때 프랑스 외교부 문서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프랑스 대표라는 명함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우연히 명함을 보고 이 분의 독립운동 관련 자료가 엄청 많은 걸 알게 되었고 일부 자료를 복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2013년에 나폴레옹도 모르는 한·프랑스 이야기잊혀진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라는 제목으로 서영해 선생을 5페이지 정도로 간략히 조명하게 되었습니다.

 

임정의 유럽 외교를 담당한 외교관

서영해 선생은 1929년도에 호텔 드 상리에 고려통신사를 설립했고 호텔은 지금도 운영되고 있습니다. 가격은 5~7만 원 정도 하구요. 호텔에 찾아가면 서영해 선생이 머물렀던 방을 안내받을 수 있습니다.

서영해 선생은 이승만 대통령과 가까운 사이였습니다. 결정적으로 노선 차이로 갈라지게 됩니다. 이승만 대통령과 프란체스카 여사와 연애할 때 편지를 전달하기도 했고 서영해 선생의 부인도 오스트리아 여인이었습니다. 제네바에 국제연맹 활동으로 6개월 동안 동거동낙한 후 19335월 말 파리에 와서 찍은 사진 같습니다. 그러나 둘은 정치적인 노선으로 멀어지게 됩니다.


[자세한 내용은 서영해, 조명되지 않은 이야기_<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실려 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남한만의 단독 정부를 수립하게 되었고 김구 선생은 어떻게 우리가 독립하게 되었는데 3.8선을 베고 누울지언정 분단된 나라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김구 선생과 서영해 선생은 친밀한 사이였는데요. 김구 선생이 서영해에게 백범일지를 주면서, 뜻을 같이 하는 동생에게 라고 적어 주었습니다. 서영해는 조소앙 선생 다음으로 백범 선생에게 편지를 주고받았다고 하니 두 분은 아주 가까운 사이였던 걸 알 수 있습니다.

 

독립운동가, 문필가, 언론가, 서영해

 

임시정부가 고려통신사에 재정적 지원이 없었기 때문에 현지 언론에 원고를 기고하고 원고료 받아서 고려통신사를 이끌어갔습니다정말 대단한 일이지요.

서영해 선생은『거, 불행의 원인을 집필했고 어느 한국인의 삶의 주변도 집필했습니다. 당시에는 주변이라는 말이 유행이었던 것 같습니다. 어느 한국인의 삶의 주변은 대공황 시기에도 5판 인쇄가 될 만큼 인기가 많았습니다.  그동안 일본을 통해 한국을 보다가 서영해의 역사소설을 통해 한국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모든 게 조선 독립운동을 위한 선전, 외교활동이었습니다. 현재 국내에는 주변이라는 말을 빼고어느 한국인의 삶이란 제목으로 번역되어 출간되었습니다.

이집트 여성 운동가가 만든 잡지인 이집트 여인에도 서영해 선생이 소개되었습니다. 이집트, 에티오피아, 체코, 프라하까지 활동 범위가 넓었습니다. “한국은 일본 제국주의의 첫 번째 희생자였다” <스 수아> 특집 기사에 실렸고 이렇게 언론에 기고하면서 돈을 벌었습니다.

 

서영해가 남긴 사랑, 사람

서영해 선생은 파리에 미술 공부하러 온 엘리자를 만나 빈 시청에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엘리자는 타오라는 갤러리를 빈과 이탈리아에 운영했습니다두 분의 유일한 혈육은 스테판입니다.

스테판은 아버지를 한 번도 본 적 없고 죽기 전에 아버지를 찾았습니다. 언론인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프랑스에 있는 오스트리아 대사관과 파리에 있는 출판사에 '서링하이(서영해의 중국식 이름)'를 아는지 찾아봤다고 합니다. 스테판은 2013년에 투병 후 돌아가셨습니다. 제가 수지에게 책을 써서 꼭 혼을 풀어드리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정상천 작가가 사무실에 스테판 사진을 걸어놓고 책 집필에 열정을 다하셨다고 하시네요)

수지왕은 2017년에 3주 정도 한국에 서혜숙(서영해 6촌 후손) 선생 댁에 머물면서 국립중앙도서관 영해문고에 방문하고 부산에도 찾아갔습니다. 스테판의 딸 수지 왕과 스테파니가 47일 한국에 옵니다. 한 가지 말씀드리면 스테판이 성이 왕 씨가 된 이유는 엘리자베스가 식닝 왕이라는 중국인과 두 번째 결혼을 하게 되어 성이 바뀌게 됩니다.


 서영해 선생의 마지막 생애는 미스테리입니다. 국사편찬위원회 김광재 사료실장이 1948년도에 상해 한인들 연구하면서 서영해 선생의 사진을 발굴하게 되었습니다. 상해 인성학교에 있는 서영해 선생의 졸업사진이 마지막 추정 기록입니다. 마지막을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겨야 할지 계속해서 발굴해야 할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통일이 되어야 완전한 독립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역사에 묻힌 서영해 선생이 지금이라도 후손들에게 알려지길 바라고 이외 많은 독립운동가가 세상에 알려지길 바랍니다.

***

이날 많은 분들이 자리를 채워주셨습니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이해 서영해 선생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 일과 

정상천 작가가 책 출간하기까지 쏟아부은 열정에 박수를 보내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3월은 부산 독자를 만나러 갑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 10점
정상천 지음/산지니





Posted by 동글동글봄

산지니는 꾸준히 저자와의 만남을 가지고 있는데요,
<홍콩 산책>의 저자와의 만남은 특별하게도, 홍콩학서점 서언서실에서 열렸습니다.

콩에서 있었던 뜨거웠던 대담 현장, 함께 만나보시죠 :)


 

▲ 홍콩학 서점 서언서실

 

강수걸(이하 강): 오늘 산지니 저자와의 만남은 <홍콩 산책> 류영하 선생님을 모시고 이야기를 나눠보겠습니다. <홍콩 산책> 속에도 나오지만 선생님은 중국본토로 유학을 갈 수 없던 시절, 홍콩으로 유학을 가셨는데요. 시절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중국 대신 대만으로 유학을 갔지 않습니까? 그런데 선생님은 홍콩의 어떤 점에 끌려서 유학을 가게 되셨나요?

 

류영하(이하 류): 이은주 편집자님이 <홍콩 산책> 책 뒤표지에 이런 표현을 했더라고요. “이 책은 뾰족하고 유쾌하다.” 실제로 저를 ‘뾰족하다. 심지어 투덜이다.’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고등학교를 다닐 때도 굉장히 힘들게 다녔고 ‘우리나라를 떠나야 되겠다.’라는 생각도 하기도 했어요. 홍콩이 아니라도 밖으로 나가서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20대 때 이 생각을 한 게 제 인생에서 제일 잘한 순간이라고 생각해요.

당연히 그 당시에는 대만이 대세였고 선배님들도 대만을 많이 가던 시기였죠. 그런데 저는 대만은 재미없고 답답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살벌한 분위기 속에서 대륙의 책도 제대로 볼 수 없고 현대사 연구도 잘 안 되는 것 같았고 금기가 많았죠. 직접 체험하며 알게 된 게 대학교 3학년 때 대만 학생들이 왔었어요. 홈스테이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아침에 일어나니깐 홍콩이나 대륙의 책들을 빼 봤더라고요. 그때 느꼈죠.

반면에 그 당시 홍콩은 굉장히 우리한테 이미지가 좋았잖아요. 뭐든지 자유로울 것이라는 이미지들이 있었고 가면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 제가 고전문학이 아닌 현대문학을 하기 때문에 대만이 아닌 홍콩을 선택한 이유도 있죠. 그리고 또 한 가지 이유를 더 들자면, 80년대 대학생들이 시대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굉장히 진보적이고 생각이 과격했어요. 저도 물론 그 대학생들 중 하나였죠. 그 당시에 대학생들은 도올 선생님의 <동양은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특강을 보고 감탄을 했어요. ‘이분처럼 돼야 되겠다.’라는 생각을 했는데 그분의 학력을 보니깐 일본 갔다가 미국 갔다가 대만 갔다가 온 데 다 갔더라고요. 그걸 보고 저도 독특한 곳을 가고 싶어 홍콩에 가게 되었죠.

 

▲ 류영하 교수(좌) 와 산지니 강수걸 대표(우)

 

강: 그럼 그곳에서 문학을 쭉 공부하신 건가요?

 

류: 그런데 그게 인연이고 운명이고 그런 것 같아요. 지금 돌아서 보면 저는 요즘 그런 이야기를 자주 하거든요. 현재 그 자리는 그 사람이 원했던 자리라고요. 자신이 부정하고 싶어도 그 선택을 했기에 그 자리에 와있는 거거든요.

그 당시 홍콩은 매우 살벌했어요. 가끔 유학생 간첩 사건이 터질 때에요. 그래서 스스로 ‘정치색이 있는 작가를 피하자’ 생각하고 소설을 연구했죠. 하지만 한쪽으로는 항상 ‘이게 주류가 아닌데. 메인이 아닌데’ 라는 생각을 하긴 했어요. 그래서 후배들이나 제자들이나 소설연구를 한다고 하면 심리적으로 복잡해져요. 소설이 만만한 게 아닌데, 특히 외국인들에게요. 한국소설은 누워서 보기도 하고 지하철에서 보기도 하잖아요. 중국소설은 쉽게 못 봐요. 단어 하나조차도 이해하기가 굉장히 힘들고 장면은 이해되지만 완벽히 체득하기에는 힘들어요. 대체적으로는 아는데 단어의 의미, 사투리, 욕까지 완전한 이해는 힘들죠. 노신의 소설 같은 경우도 중국 사람들도 두세 번 읽어야 이해될 정도라고 하니까요. 소설을 하기에는 쫓아가기에 급급할 것 같아서 이론을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사회주의 문학 이론을 전공하게 됐어요.

 

강: 그럼 박사 때는 석사 때와 조금은 다른 마음가짐으로 공부하게 되신 거네요?

 

류: 네, 시대도 부드러워졌고 학교 때부터 제가 사회과학서적을 많이 읽어왔으니깐 ‘사회주의를 제대로 한번 보자.’라고 생각하게 됐어요. 그걸 선택을 잘한 것 같아요. 이론적으로 탄탄하게 기초가 되어 있었고, 박사 과정에서 공부하는 방법을 제대로 배웠다고 할 수 있죠. 중국권의 학자들은 대부분 창작도 하고 연구도 같이해요. 기본적으로 산문 수필은 다 쓰죠. 선생님이 홍콩연구를 해보라 하셨는데 당시 홍콩연구는 우리나라에 없었기 때문에 ‘중국학 지평을 넓혀봐야겠다. 또 홍콩에 7년 동안 산 내가 남들보다 조금은 유리하지 않을까?’는 생각을 하고 처음에는 홍콩 문학의 정체성을 연구하다가 점점 문화 쪽으로 방향을 틀어서 담론 쪽으로 오게 되고 여기까지 왔네요.

 

강: 교수님의 스펙트럼이 굉장히 넓으신데요. 홍콩역사박물관에 관한 학술도서도 쓰셨고 또 이번에는 대중적인 홍콩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한 책도 쓰셨어요.

 

류: 계속 학술서를 쓰다 보니깐 모든 학자들이 그럴 것 같아요. '이게 누구를 위한 책인가 어디까지 알려질 수 있을까? 다른 사람들이 들어줘야 하는데 안 들어주면 어떡하지?’ 많은 사람이 인문학의 위기라고 말하잖아요. 논문을 적으면 과연 몇 사람이나 읽어주실까요? 저는 논문은 꼭 필요하다고 보거든요. 세 사람이 읽든 다섯 사람이 읽든 상관없이 말이죠. 자기와의 싸움이기 때문에 학자로서는 절대 포기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한쪽에서는 ‘내 생각을 누가 알 건데?’라는 딜레마도 빠지죠. 영원한 갈증 같아요.

지난번에 EBS 테마기행 대만 편을 찍고, 어떻게 보면 대중적으로 처음 알려진 거죠. 그렇게 열심히 연구한다고 책도 내고 논문도 많이 썼는데 전화 한 번도 안 하던 친구들 친척들이 연락을 하는 그런 괴리감, 간극과 편차가 너무 컷어요. 제가 뾰족하다는 건 그런 거에 대한 반발 같아요. 뭔가 도전적이고 도발적이고 삐딱하고 뾰족한 생각을 하는 게 학자 같아요. 나는 그렇게 살았는데 한 번도 몰라주다가 TV에 한 번 나왔다고 해서 이런 반응이 나온다니깐 그러면 대중과 친해지는 방법이 뭘까 고민하고 쉬운 책을 한번 내보자 해서 탄생한 게 이 책입니다. (웃음)

처음에는 가족조차도 안 팔린다고 내주는 출판사도 없겠다고 말하고,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아무도 없었어요. 저는 재밌다고 생각해서 1, 2년 쓰기 시작했는데 다른 사람들 보면 진짜 재밌게 쓰잖아요. 그래서 생각한 게 문장을 최대한 짧게 끊어서 쉽게 가자. 처음엔 주제를 몇 개로 할 건지도 답도 안 나왔고 많이 갈아엎었죠. 그런 과정을 거쳐 마지막까지 고민 끝에 류영하식으로 20가지 주제를 정해 만들었어요.

서언서실에서 만난 <중국 민족주의와 홍콩 본토주의> 홍콩 번역판

 

강: <홍콩 산책> 이전에 쓰신 홍콩 역사박물관에 대한 책(<중국 민족주의와 홍콩 본토주의>)도 굉장히 흥미로워 보이는데요. 홍콩 역사박물관에 대한 선생님의 생각을 짧게 말해주실 수 있을까요?

 

류: 어느 나라든 역사박물관이 굉장히 중요하잖아요. 보통 사람들도 그곳의 역사를 알려면 그곳의 박물관에 가보라고 이야기를 많이 하기도 하고요. 저는 홍콩에 있으면서 역사박물관을 많이 가봤어요. 그런데 6년 정도 연구하면서 ‘이게 사실일까?’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박물관의 소개 내용을 꼼꼼하게 읽어봤는데 반발이 생기더라고요. 소개에는 ‘중원문화’라는 말이 계속 나와요. 항상 비교하면서 중원문화는 우수하고 남방문화는 열등하다는 말도 나오고요. 중원문화라는 말은 독재적이고 파시즘적이잖아요. 그래서 ‘이거를 한번 조명해서 책을 써보자’라는 생각이 들었죠.

책을 쓰는 과정이 쉽지는 않았어요. 홍콩의 특징 중 하나인데, 홍콩 공무원들이 굉장히 신중해요. ‘홍콩 박물관에 대해 알고 싶다.’라고 말하면 알고 싶은 것을 메일로 보내라고 하고는 답이 없죠. 주권이 중국으로 넘어간 상황에서 그 사람들은 말을 잘못하면 어떻게 될지 두려웠던 것 같아요. 결론적으로 박물관에 있는 사람들은 못 만났어요. 그러다 제일 중요한 한 분을 만났어요. 박물관 기획을 한 은퇴한 관장님을 만났는데요. ‘홍콩역사박물관’인데 너무 중원문화를 강조한 것이 아니냐고 물어보니 자기변명하고 충분히 논의를 거쳤다고 이야기를 하죠. 또 조금이라도 민감한 질문을 하면 대답을 안 했어요.

그러다가 책이 나오고 난 후 <중국 민족주의와 홍콩 본토주의>가 홍콩에서 출판이 되었어요. 그 책으로 홍콩역사박물관 내에서 강의도 하게 되었고요. 세미나에 그분도 오셨는데, 제 말을 경청을 하시더라고요. 끝나고 어땠냐고 물어보니 “모든 사람의 생각은 다르다. 그건 너의 생각일 수 있다”라고 하시더라고요. 역사라는 것은 승자의 기록이고 공평하지 않잖아요. 그 사실을 저는 알리고 싶은 거예요.

 

강: 현장에 가서 조사하시고 인터뷰 요청도 하고 좌절도 하시면서 선생님의 관점과 노력한 과정이 자세히 나와 있는 학술서가 탄생한 거네요. 이게 어쨌든 홍콩에서 책으로 나왔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홍콩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개방성과 홍콩의 놓인 이중적인 상황을 보여주는 것 같아요. 만약 중국이었으면 책이 안 나왔겠죠. 출판하는 과정이 엄청 어려웠을 것 같아요.

류: 저도 계속 생각한 게 ‘이게 홍콩에서 출판이 될까?’였어요. 그게 제일 걱정되더라고요. 보통 홍콩에서 책을 낸다고 하면 사람들 추천사가 몇 개 들어가거든요? 홍콩에 있는 교수 친구들도 다 발을 빼는 거죠. 전부 다 눈치를 보고 그나마 지도교수만 해줬어요. (웃음) 마지막까지도 안심을 못 했습니다.

제가 말을 과격하게 하지만 글은 과격하게 안 쓰니깐 중국 민족주의도 비판하고 홍콩 본토 주의도 비판하는 양쪽 다 비판하는 중도적 책이기 때문에 홍콩에서 출판될 수 있었지 않나 싶어요. 저는 정체성이 너무 강한 것에 대해 안 좋게 생각하거든요. 너무 강해도 안 되고 약해도 안 된다고 생각해요.

 

 

강: 다시 <홍콩 산책>으로 돌아오면, 책 속에 한 꼭지인 ‘걸어 다니는 홍콩 정신 이천명(李天命)’ 거의 끝부분에 이런 이야기를 하셨어요.

“‘작은 병은 복이다.’ 그 말을 듣는 순간 크게 공감이 되면서 이것이 홍콩 나름의 다름이구나 고개를 끄덕였다. 홍콩의 친구들로부터 인생의 핵심이랄까, 정수랄까, 철리랄까, 그런 말을 자주 듣게 된다. 나는 그것이 홍콩문화의 정신이라고 보는데, 중국 전통에 서구의 사상이 합쳐서 만들어낸 삶의 지혜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 말을 편집자가 상당히 인상 깊게 느꼈다고 하는데, 선생님께서 보시는 홍콩문화의 정신이나, 홍콩 정신 중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류: 이 질문을 받으면서 왜 나를 고민하게 만들지? 라는 생각을 했어요. (웃음)
지금 새로 쓰고 있는 책도 그런 책이거든요. 제가 집에서는 많이 이야기해요. ‘중국 사람은 이렇고 홍콩 사람은 이렇다.’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요. 제가 중국 연구자여서 그렇게 느낄 수도 있지만 중국 사람들은 인생을 바라보는 눈이 굉장히 탄탄하게 만들어져 있고 대화를 해보면 대화를 하면서 계속 배울 수 있어요. 중국문화의 저력인 것 같아요. 중국 문화의 저력이 어디서 나오나? 제 생각에는 사서삼경에 바탕을 둔 것 같아요. 어릴 때 홍콩 사람들은 사서삼경을 학교에서 배우지만 일상에서도 배웁니다. 할아버지, 어머니, 아버지의 말로 어릴 때부터 듣는 거고 당시 300수는 웬만한 사람 다 외워요. 당시 300수를 외운다는 것은 이미 인문학이 어릴 때부터 끝난다는 이야기라는 거예요. 거기다 중국 사람들의 두뇌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주역입니다. 주역의 핵심적인 이치를 꿰뚫고 있어요. 교육의 정도를 떠나서 그런 것 같아요.

항룡유회(亢龍有悔)라는 말이 있어요. ‘잘나가는 용이 내려갈 길밖에 없음에 후회한다’는 말이죠. 그게 인생의 핵심이거든요. 인생에 계속 가는 건 없잖아요. 반드시 꺾일 때가 있듯이 또 잠룡물용(潛龍勿用) ‘아직 때가 되지 않았다면 성급하게 행동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죠. 이 두 가지가 주역의 기본적인 핵심이에요. 잘나갈 때도 못 나갈 때도 사이클을 유지하고 공부하는 자세로 살아야 해요. 자기가 일이 안 풀린다고 생각되면 방문 닫고 조용히 책보고 있어야 해요. 이런 것들이 동양의 핵심사상인 순환론이고 ‘적선지가 필유여경, 적불선지가 필유여앙(積善之家 必有餘慶, 積不善之家 必有餘殃)’이라는 구절이 있는데. ‘착한 일을 많이 하여 선을 쌓은 집에는 반드시 경사가 있고, 나쁜 일을 하여 선을 쌓지 못한 집에는 반드시 재앙이 있다’고 이것도 인생의 핵심이에요. 제가 두뇌 과학에도 관심이 많은데 삼대가 덕을 쌓아야 복을 받는다. 하는 것도 다 두뇌 과학이에요. 사서삼경에는 당시 300수의 내공들이 계속 전수되어 와서 사람들에게 전달이 되고 유산이 되죠. 또 공자, 맹자 같은 제자백가들을 자신들의 조상으로 생각해서 직접적인 연대감도 매우 커요.

서양의 영국식 합리주의도 홍콩 사람들의 정신에 같이 힘을 발휘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요. 홍콩사람들이 합리적이고 근대적이라면 서양의 합리주의가 굉장히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생각해요. 제가 우리 문화에 부족하다고 보는 것은 근대화거든요. 왜 근대화나 합리주의나 아직 곳곳에서 허점이 너무 많잖아요. ‘그걸 어떻게 해석을 해야 하고 그걸 위해서 어떤 자료를 어떻게 풀어낼 것인가?’ 그것을 중국문화 그들의 지성의 힘을 빌려서 풀어내는 게 향후 몇 년간의 작업이 될 것 같아요.

 

강: 책 속에 나오는 ‘정체성 없는 홍콩의 정체성’이란 말에 공감했어요. 홍콩에 직접 생활을 하셨고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은 다 보신 선생님이 ‘이것이 홍콩의 열린 정체성이다. 이런 면은 홍콩의 새로운 정체성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있으신가요?

 

류: 저는 모든 걸 정체성의 충돌이라 보거든요. 지역 간의 세대 간의 그리고 정치적인 정체성의 충돌... 요즘 자꾸 정체성의 충돌이 심해지는 것 같아요. 이건 전 세계적인 조류에요. 이게 누구의 책임인지 범인을 신자유주의로 둘 것인가 하는 것이 학자들이 할 일인데. 중국의 정체성이 너무 강하고 홍콩은 정체성이 너무 강해서 서로 충돌해요. 정체성은 전근대적이고 비합리적이에요. 이것은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도구로 쓰이곤 하죠. ‘정체성이 어느 정도까지 가야 되는가. 나를 나답게 하는 것이 어디까지 가야 되는가’ 하는 것은 생각해봐야 할 문제이고, 저는 합리주의와 정체성이 같이 잘 맞물려서 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강: 홍콩은 아시아의 금융, 물류의 중심이고 부산도 금융, 물류에 새 성장 동력을 키우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또 두 도시 다 영화의 도시이기도 하잖아요? 이처럼 두 도시는 유사점이 많은 것 같은데 ‘하나의 도시로서 바라볼 때 부산과 홍콩을 비교하면 고민해야 될 부분들이 있지 않을까? 홍콩을 통해서 배울 수 있는 점들이 있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는데요.

 

류: 토론문화가 약한 것이 저는 한국문화의 취약점이라고 생각해요. 많은 학생이 ‘홍콩에 다녀왔다. 중국에 연수를 갔다 왔다’라고 이야기하면 제가 질문을 해요. ‘중국에서 뭘 배웠냐고, 중국의 가장 좋은 점과 나쁜 점이 뭐였냐고.’ 물어보면 대답을 참 힘들어해요. 어른들도 마찬가지죠. 우리나라도 한참 홍콩 여행을 많이 갈 때는 해외여행 방문 수가 1위였고 지금도 5위 안에 들어가고 수백만이 넘게 오는데 그러면 우리는 홍콩에 대해 얼마나 안다고 할 수 있을까? 한국 사람들의 머릿속에 ‘홍콩’ 하면 ‘쇼핑의 도시’ 같은 것밖에 없는데, 홍콩은 사실 우리의 미래를 미리 보여주거든요. 홍콩에 대해 배워야 할 건 배우고 버려야 될 건 버려야 되는데 홍콩은 미리 보여준다는 측면에서 자본주의의 발전 과정을 미리 보여주는 거니깐 어떤 문제가 발생하는지 알 수 있다고 봐요. 그래서 홍콩을 연구해야 한다고 봅니다. 이러한 것들이 작지만 이 책 <홍콩 산책>에 다 있다고 자부를 합니다.

 

강: 탈 자본화 탈 분단화 같은 탈해야 될 우리에게 놓인 과제들이 있는데 예를 들면 고도의 자본주의가 된 홍콩에서 어떻게 탈 자본화할 것인가 같은 문제들이죠. 홍콩은 밝음도 있지만 어두운 부분도 많잖아요. 홍콩을 거닐면서 고민을 해봐야 할 문제 같은데요?

 

류: 저는 홍콩식 자본주의를 무작정 비판하자는 주의는 절대 아니에요. 홍콩식 자본주의의 장점도 굉장히 많습니다. 그런데 자본주의의 장점조차도 한국문화가 알고 있는가? 라는 의심을 많이 하거든요. 인간의 근본적인 능력이나 성정까지 연결돼있는 문제인데, 그럼 어디까지 자본주의를 운용해야 되고 사회주의적 방식을 운용해야 되는 문제 이런 문제들이 홍콩에서 답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런 점에서 저는 홍콩이 중요하다고 생각이 돼요.

 

 

홍콩 사회와, 홍콩의 정체성에 대해

류영하 교수님의 깊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던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홍콩 산책 도시 인문 여행

 

류영하 지음 │ 224쪽 │ 2019년 1월 15일 출간 

 

홍콩의 정체성에 대해 꾸준히 연구해온 류영하 교수의 인문 여행 에세이집. 30년간 홍콩을 연구하며, 살며, 여행하며 쓴 글들을 담았다. 홍콩에 대한 전문 지식을 집대성했지만 쉽게 풀어 썼다. 슬렁슬렁 비치는 홍콩의 불빛 사이를 느긋한 걸음으로 걸으며 관찰한 저자의 글에는, 홍콩에 대한 내공 깊은 시선이 뾰족하게 드러난다. 그의 시선을 따라, 함께 홍콩 인문 여행을 떠나보자. 홍콩을 꿈꾸는, 홍콩을 여행하는, 홍콩을 추억하는 당신과 함께 홍콩 산책.


 

 

홍콩 산책 - 10점
류영하 지음 / 산지니

Posted by 실버_

 

지난주 목요일 역사소설 <랑>의 저자 김문주 작가님과 함께 93회 산지니 저자와의 만남이 있었습니다. 이번 행사에 예상보다 많은 분이 참석해주셔서 공간이 북적북적했답니다.

 

 산지니X공간에서 예쁜 떡도 정성스럽게 준비했어요.

 

 

행사 시작 전 창원민예총 대표 박영훈 선생님 축하 공연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단소와 비슷한 악기인 께나(Quena)로 연주하신 곡은 영화 <라스트모히칸>의 OST로 널리 알려진 외로운 양치기(The Lonely Shepherd)인데요. 정말 슬프고도 아름다운 연주를 들려주셨어요. 소설 속 준정과 원화의 모습이 떠오르기도 했고요.

축하공연이 끝난 후 본격적으로 <랑>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편집자(이하 편): 작가님께서 아동문학 책은 많이 내셨지만 장편소설로써는 <부여 의자>에 이은 두 번째 책을 내셨는데요, 두 번째 장편소설, <>을 내신 소회는 어떠셨나요?

김문주 작가(이하 김): 반갑습니다! <랑>의 작가 김문주입니다. 멀리서 버스 타고 지하철 타고 오시고 귀한 시간 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저는 그냥 글을 쓰는 사람이지 한 사람으로서는 별로 보잘것없는 사람인데 그래도 작품을 써서 이렇게 여러분과 같이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게 돼서 영광입니다. 말씀하신 데로 처음에는 장편 동화를 썼습니다. 첫 작품이 <할머니 사랑해요>라는 작품인데 제가 시댁이 남해거든요. 그래서 아이를 남해에 맡겨놓고 키우면서 있었던 일을 썼어요. 사실은 제가 동화를 공부한 건 아니고 소설을 썼었는데 제가 좋아하는 작품 중에 외국 성장소설이 많아요. 예를 들어서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 <빨간 머리 앤> 이런 작품들이요. 그래서 '나도 성장소설을 써야 되겠다.' 해서 썼는데 장르 상 굳이 구분을 하다 보니 장편 동화가 됐습니다. 처음에는 동화 작가로서 정체성의 혼란도 느꼈어요. 왜냐하면 우리가 흔히 유아 동화를 읽으면 그 문체부터가 많이 다르거든요. 제가 쓴 작품들은 말은 동화지만 성장소설적인 소년소설 같은 그런 작품들이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동화작가로서 글을 계속 쓸 수 있을까' 했는데. 그래도 운 좋게 계속 쓸 수 있었어요. 그래서 동화 한 10권 정도 나오고 나면 '나도 소설을 꼭 써야지' 라고 결심했죠. 다행히 하루종일 소설 쓴다고 앉아있는 기회가 있었고, <랑>을 쓰게 되었습니다. 사실 작년에 <부여 의자>가 출간되었고 두 번째 책으로 <랑>이 나왔지만 <랑>을 먼저 썼습니다. <랑>을 쓰면서는 1년 동안 정말 일을 그만두고 글을 쓸 수 있는 기회가 처음으로 주어져서 너무너무 행복하게 집필을 했던 것 같아요. <랑>은 제 모든 정신을 다 바쳐서 오직 여기에 빠져서 정말 딴짓은 아무것도 안 하고 썼어요.

제가 동화를 냈을 때는 아이들과 간혹가다가 작가와의 만남 같은 데서 눈을 맞추며 이야기했지만, 어른들과 함께하는 저자와의 만남 자리는 '문학이라는 게 결국 인생을 이야기하는 건데 뭐 잘났다고 이야기를 하겠나'라는 생각을 해서 반려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랑>은 정말 제 첫사랑과 같은 작품이라서 오늘은 글을 읽으신 분이 두세 분만 계셔도 '같이 눈을 맞추고 이야기를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그런 마음으로 아주 저도 설레게 참석했습니다.

 

편: 주변 분들의 책에 대한 반응은 어떠셨나요?

: <랑>이 1월 말에 나오고 제가 잘 아는 시인께서 한 달 전에 책이 나오셔서 그 시집이랑 제 책 출판기념회를 간단하게 했습니다. 북 콘서트 형식으로요. 그래서 책이 나오자마자 해놓으니깐 그때 책을 안 읽은 상태에서 문인분들이 오셔서 책을 받아가셨고 이제 막 전화를 해주고 계신데요. 그냥 저한테 재미없다고 말씀하시긴 뭣하니깐 다 재미있게 읽었다고 말씀하셨어요. 어느 작가분은 어제 전화를 하셔서 '그래도 남모와 백아를 살려두지 어떻게 그렇게 죽일 수가 있냐'고 마치 드라마 보고 열 내듯이 저한테 전화를 해서 그래도 살려줄 수 있지 않았냐고 재판을 찍을 때 다시 고민해볼 수 없냐고 말씀하신 분도 계셨구요. 또 제가 장편 동화를 계속 냈던 예림당에서도 책을 한 권 보내드렸더니 산지니 출판사를 잘 알고 계신다면서 책이 예쁘게 재밌게 잘 나왔다고 칭찬해주셨습니다.

 

 

편: 선생님의 이력을 살펴보면 처음에 아동문학으로 문단에 발을 디디셨는데요. 어떻게 전혀 다른 장르인 역사소설을 쓰시게 되셨는지요?

: 책으로 나오지 않았지만 제가 역사 동화도 습작을 했거든요. 한 권은 잘하면 나올 것도 같은데... 최초로 제가 동화로 시작하게 된 계기는 파락호 김용환이라는 사람을 알게 된 것이었습니다. 여러분께서도 알고 계신 지는 모르겠는데 파락호처럼 겉으로는 노름과 술로 재산을 탕진했지만, 사실은 그분이 위장해서 겉으로는 그렇게 욕을 들어가면서 사실은 독립운동을 하셨던 거죠. 돌아가실 때까지 해방이 되어서도 말하지 말라고 해서 알리지 못했던 그분에 대해서 제가 알게 되어서 그분을 소재로 동화를 한번 썼었거든요. 그러면서 동화를 제가 쓰면서 보면 모든 것이 직접, 간접체험입니다. 모든 작가가 마찬가지겠지만 자신의 체험에서 다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역사를 배경으로 소설을 쓰니깐 일단 제가 공부를 해야 되는 것도 많고 또 아는 것만 가지고 글을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역사를 보는 관점이라든지 자기 철학이 만만치 않으면 감당을 할 수 없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역사소설을 쓰면 나름대로 "사명감을 가지고 써야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했고요. 그리고 있는 그 시대를 그대로 재현을 한다는 것이 어렵거든요. 동화는 아이들의 심리를 아이들이 요즘 뭐가 문제인가 또 아이들의 심리가 또 어떤 갈등을 가지고 있는가 그런 것을 위주로 했다면 역사소설은 기본적으로 시대에 대해서 꿰뚫고 있어야 되니깐 <랑>을 쓸 때는 법흥왕 시대 공부를 많이 했죠. 그런 차이점이 있었는데 그래도 그렇게 공부를 하는 게 굉장히 재밌었습니다. 역사소설을 공부를 한다고 해서 힘든 게 아니고 오히려 굉장히 재밌고 자료가 없는 부분을 제가 상상력으로 메꾸어 갈 수 있다는 게 굉장히 뿌듯했죠.

 

편: 동화와 역사소설 두 분야를 집필하실 때, 선생님께서 어떤 차이점을 느끼시나요?

: 여기 시인분들이 없다고 가정을 한다면 간혹가다가 긴 글 쓰는 사람들은 농담처럼 그렇게 이야기하죠. 시인들은 할 거 다 하고 다니다가 잠시 앉아서 영감이 떠오른다고 그렇게 하지 않느냐고. 조금 나쁜 표현으로 "그렇게 시 나부랭이 쓰는 사람하고 우리처럼 종일 엉덩이 붙이고 앉아 있어도 이게 돈이 될지 안 될지 모르는 걸 써야 하는 이런 사람하고 달라." 이런 식으로 감히 이야기하는데요. 동화는 아이들은 상대로 했을 때 제가 소설을 잡아서 써보면 길이가 있거든요. 저는 길게 쓰고 싶어도 출판사에서는 길이가 너무 길면 안 팔린다고 제안하기 떄문에 자연히 짧게 끝났죠. <랑> 같은 경우에도 제가 1800매를 썼습니다. 1년 동안 1800매를 다 쓰고 줄이고 줄여서 출판사에 넘길 때는 1200매로 줄여서 넘겼거든요. 그걸 한번 해보고 나서는 <부여 의자>를 쓸 때는 "이 짓을 할 게 아니구나"해서 1000매 안쪽으로 900매로 딱 잡아서 초고를 900매 쓰고 별로 고치지 않았어요. 그래서 원고를 출판사에 넘기고 출간되는 시간이 <랑>은 1년 걸리고 <부여 의자>는 6개월이 걸렸어요. 말이 길어졌는데, 일단 역사소설이 동화보다는 많은 공부를 해야 한다는 노력이 있고, 그에 따라 투자하는 시간도 자연히 길어질 수밖에 없긴 해요. 하지만 문학적 성과는 그걸 가지고 판단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편: 역사소설 중에서도 특별히 신라 화랑의 기원 원화를 다룬 작품을 집필하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요? 집필 과정과 관련 조사는 어디에서 어떻게 하셨는지요?

: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중학교 때 저도 배운 것 같거든요. '남모와 준정이라는 두 원화가 있었는데 폐하게 되었다' 이런 내용 말이죠. 잊고 있었던 그 문장을 어느 날 아는 지인 댁에 가서 밥을 먹다가 듣게 되고, 제가 거기에 꽂혀 집에 가서 자료를 찾아봤죠. 면밀히 자료를 찾아보니깐 책 별로 시기는 좀 다르더라고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는 진흥왕 시기로 되어있는데 <화랑세기>에 보면 그전에 법흥왕 시기부터 시작되었고요. 그래서 <화랑세기>에 맞춰서 쓰기 시작했고 기본적으로 법흥왕 시기에 대한 공부를 많이 했습니다. 근데 진흥왕 시기와 관련된 기록은 굉장히 많이 남아 있는데 법흥왕 시기는 별로 기록이 없더라고요. 기록이 없는 만큼 힘들었지만 알아가는 과정이 재미있었어요. 사소하게는 예를 들어 나무 한 그루를 쓰더라도 '이게 옛날에 우리나라에 있었다' 하면 쓸 수 있었고 그런 눈에 보이지 않는 많은 것들을 알아가는 시간이 많았고요. 고증하기 위해서 기본적으로 역사를 상상하더라도 왜곡하면 안 되니깐요. <랑>을 쓰기 위해서는 하루에 10시간씩 앉아있었는데 절반은 이런 자료를 찾고 어떤 때는 하나도 건지지 못할 적도 있었죠. 자료 찾고 진도 나가고 이런 식으로 굉장히 재밌게 작업을 했습니다.

 

편: 전작 <부여의자>를 읽어보았을 때 망국의 왕으로서 덧씌워진 프레임이 있었고, 역사적 명, 훼손에 대해 새로운 조명을 하셨는데요. 이번 작품 <>에서도 그런 조명을 해주신 것 같아요. 선생님이 책 후기에서 말씀해주신 역사 속 기록을 잠깐 짧게 읽어보겠습니다.

아름다운 두 여자를 원화로 뽑아서 무리들을 맡게 하였다. 두 여인이 아름다움을 다투어 서로 질투했는데, 준정이 남모를 자기 집에 유인해 억지로 술을 권해 취하게 되자 끌고 가서 강물에 던져 죽였다. 준정이 사형에 처해지자 무리들은 화목을 잃고 흩어지고 말았다.

- <삼국사기>

이렇게 <삼국사기> 속에 짧게 전해진 두 여인이 아름다움을 다투어 서로 질투해 원화가 폐지되었다라는 기록을 비튼 작가님의 행보가 눈에 띄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불교신문> 등 언론에서는 <랑>을 '대체역사소설이라고 말씀해주시기도 했는데요. 이런 역사 재조명이나, 역사를 재조명한 작품에 대해 작가님께서 해주실 말씀이 있으실까요?

: 읽으신 내용대로 기록에는 '준정이 남모를 시기해서 술을 먹여 돌로 쳐 죽여서 묻었는데 나중에 들켜 그래서 원화를 폐지하였다'고 되어있는 거에요. 남모는 정확하게 기록이 나와 있습니다. 법흥왕이 태자 시절에 백제에 사신으로 갔는데 백제 공주와 첫눈에 반해서 낳은 것이 남모였습니다. 법흥왕의 딸이고 백제 공주의 딸이며 또한 남모의 남편이 미진부였는데요. 미진부는 위화랑 다음 두 번째 풍월주로 남모는 당시의 최고의 권력을 가진 사람으로 볼 수 있는 거죠. 그에 비해 준정은 아무 기록이 없었습니다. 굳이 찾아보면 왕족의 친척의 딸이라고만 되어있었어요. 여기서 의문이 생겼어요. '낭도들을 거느릴 정도의 원화인데 그런 원화가 오직 질투 때문에 사람을 죽였을까? 그것도 신분상으로도 남모와 비할 수 없는데 준정이 남모를 죽일 수 있었을까? 어쩌면 원화를 폐하고 화랑을 세우기 위해서 화랑의 정당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생긴 이야기는 아닐까?'론 아름다운 두 여성을 세웠기 때문에 여러 가지 염문설은 났을 수도 있는데 그런 기록들을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한 거죠. 그래서 이걸 다르게 써봐야겠다고 생각했고요. 준정은 기록이 없기 때문에 마음껏 상상을 할 수 있었던 거죠. 기록과는 다르게 '준정을 가장 고귀한 인물로 이차돈의 연인으로 만들어야 되겠다.'해서 이차돈이 순거하던 그 시기부터 본 이야기가 전개되는 거로 했고요. 역사의 기록이라는 게 승자 위주로 쓴 기록이어서 게다가 <삼국사기>는 삼국 시기에 써지지도 않았고 고려 시대에 김부식에 의해 쓰였기 때문에 모든 기록들이 한 번쯤은 의문을 가질 수 있는 그런 기록들이 아닌가 생각이 되죠. 모든 기록이 다 중요하지만 어쩌면 믿을 수 없다고 되짚어 봐야 된다고 생각하고 소설가는 결코 역사가가 아니니깐 사실을 밝혀내는지 집중하지는 않지만, 역사소설을 쓰기 위해서 사실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왜 이걸 뒤집어야 하는가' 자기 철학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또 역사소설이 문학계에서는 약간 소외된 장르이기는 하지만 예술의 대중성이라던지 공공성 이런 걸 볼 때는 제대로 된 역사소설이 계속 나오면 좋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편: 요즘 현대소설 분야에서는 여성 인물 중심의 작품 출간이 열풍적으로 일어나고 있는데요. 역사소설은 대부분 전쟁 서사나 유명 인물, 혹은 왕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 많아, 여성 인물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은 거의 드문 것 같습니다. 그에 비해 <>은 소설 전반에 준정, 남모, 지소, 요 등 여성 인물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이렇게 성 인물을 축으로 하는 작품을 쓰신 소감이나 이유가 있을까요?

: 이 작품이 결과적으로 여인 천하처럼 되었는데 남모와 준정을 최고의 원화로 만들다 보니 지소를 알게 되고 왕권이 안정된 이후라면 선덕여왕, 진성여왕도 있듯이 지소가 왕이 될 수도 있었지 않았을까? 생각해서 법흥왕에게 자기가 왕위를 잇겠다고 하는 부분도 넣고 했는데요. 일부로 여성을 강조한 건 아니지만 두 여성을 주인공으로 삼다 보니 그 시대를 공부해보면 오히려 신라 시대나 고려 시대 때 여성들이 자유롭고 어머니의 지위가 세습되는 그런 체계였습니다. 물론 계급상의 차이는 있었지만, 여성이 원화도 되고 왕도 되는 여성들이 모든 것을 좌우할 수 있는 권력들도 가질 수 있었겠다 했고요. 요는 신라 시대에 설요라는 비구니가 있었어요. 시에도 능하고 무술에도 능한 준정의 스승 역할로 하면 되겠다 하고 넣었죠. 당시 여성의 지위를 생각하면 가능하다는 생각이 있었고 또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를 특별히 좋아하긴 했습니다. 여성이 주인공이라서 좋다기보다는 그런 영화들이 대체로 소수자를 위한 억압을 고발하는 영화라던지 애정을 표현하는 영화였기 때문에 관심을 가졌죠.

 

편: 다양한 인물이 눈에 띄었는데요. 백제에서 온 사신 백아를 사랑하지만, 신분의 다름으로 갈등하는 신라의 공주 남모’, 여자는 왜 왕이 될 수 없냐며 아버지인 왕에게 항의하는 지소’, 신분이 없는 평등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거사를 도모하는 비구니 스님 ’, 나라의 중흥을 위해 분투하는 '법흥왕', 불교를 조국에 전파하기 위해 순교를 자청한 '이차돈', 백제의 왕자라는 신분을 속이고 신라에 잠입한 '백아', 남모의 호위무사이지만 남모를 연모하는 '유수' 등 소설 전체적으로 여러 계층의 인물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선생님께서 개인적으로 가장 애착이 가거나 공들여서 창조한 인물은 어떤 인물이 있을까요?

: 사실 모든 인물이 다 애착이 가는데요. 제가 <랑> 이전에 썼던 동화부터 말씀드리면 주제가 소외당하는 아이들에 대한 사랑 그런 거였습니다. <학폭위 열리는 날>도 왕따를 당한 아이들을 직접 취재를 해서 썼었고 <천사를 주셔서 감사해요> 같은 책도 장애아이들에 대한 이야기인데 이런 취재를 해보면서 굉장히 아픔을 같이 느끼고 그랬거든요. 물론 어떤 작가들을 막론하고 작가는 휴머니즘에 기초를 두고 있을 텐데 저 역시 소외되는 아이들에 대한 따뜻한 시각을 주목한 것 같아요. <랑>을 쓸 때도 모든 인물이 중요했지만 '잠개'라는 인물의 역할을 살리고 싶었어요. 잠개는 노비지만 부처님을 알게 되고 나중에는 준정의 상을 돌벽에 새기는 그런 역할을 하는데요. 잠개라는 인물의 이름이 하루가 걸렸어요. 잠개라는 게 쟁기의 옛말이거든요. 잠개를 통해서 비록 계급적인 신분의 어려움을 다 극복하지는 못하더라도 자신의 정체성의 한계는 극복하는 그런 인물로 그리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준정의 마지막을 지키는 역할을 부여했어요. 이차돈의 경우에는 실제로 있었던 역사적 인물이기 때문에 이차돈이 가지고 있는 신성함을 왜곡하지 않도록 가능하면 이차돈이 있는 기록을 찾아보고 있는 그대로 쓰도록 노력했습니다. 백아는 제가 지은 이름 중에 제일 멋진 거 같아요. 유수는 처음부터 제가 남모를 대신해서 죽는 역할로 해야 되겠다고 생각해서 지은 인물인데 부는 "바람처럼 허무하지만, 왠지 아름다운 얼굴이 떠오르는 그런 이름이 있을까?" 하며 흐르는 물 유수로 정했고 유수를 죽이고 정말 많이 울었습니다. 다음날까지 너무너무 마음이 아파서 많은 인물을 죽였지만, 처음에 특히 유수를 죽이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래도 가장 제가 신경을 많이 쓴 인물은 준정이겠죠. 가장 아름다웠고 고귀한 인물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편: 준정과 이차돈의 사랑, 백아와 남모의 사랑 등 로맨스 요소도 존재하는데 개인적으로 백제의 사신 백아와 신라의 공주 남모의 사랑이 강하게 다가왔습니다. 혹로맨스를 부분 중 마음에 드시는 부분이 있는지, 혹은 로맨스를 강조한 소설을 써보실 생각은 없으신가요?

: 아마 모든 소설가의 최종적인 꿈은 역사에 길이 남을 비극적인 로맨스 소설을 쓰는 것으로 생각하는데요. 저도 이 글을 쓰면서 로맨스를 못 쓰겠다고 생각을 많이 했어요. 예전에는 제가 최고로 뽑는 작품이 중학교 1학년 때 읽은 <폭풍의 언덕>이었습니다. 어른이 되어서는 영화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이런 소설을 쓰고 싶다. 조금 파격적으로 <데미지> 같은 연애소설도 써봐야 되겠다고 막연하게 생각했는데요. 애정씬을 쓰기가 굉장히 힘들었어요. 그래도 지소와 이사부의 장면은 그나마 좀 담백했고 남모와 백아가 사랑을 나누는 장면을 바라보는 유수의 장면은 애틋하게 썼고요. 사실 고백하자면 옥진과 법흥왕의 장면은 제 스타일이 아니었어요. 그 장면이 지금도 제일 마음에 들지 않는 장면이고요. 조금 더 능숙하게 시간이 많이 지나게 되면 꼭 한 번 로맨스를 한번 써볼 생각이 있습니다.

 

편: 이때까지 <랑>과 선생님의 작품세계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어봤는데 선생님이 책을 집필할 때 영향을 미쳤던 존경하는 작가분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 제가 동화를 쓰면서부터 가장 존경했던 분이 권정생 선생님이십니다. <강아지 똥>과 <몽실언니>를 쓰셨던 분인데요. 작가가 작품을 잘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저는 그 사람이 일생이 어떠했는가 작가의 일생이 어땠는가를 보게 돼요. 겨울에 안동에 있는 권정생 선생님 생가에 갔었습니다. 창호지 구멍 틈으로 보이는 그곳을 보는 순간 언제나 글 쓸 시간이 없다 해서 게으르고, 만족하지 못하면서 남 탓을 하고 살았는가를 깨달았어요. 그분은 일생 아무런 욕심 없이 오직 글만 쓰면서 모든 책의 인세를 남북한과 분단지역 어린이들을 위해 기금으로 다 남기고 그렇게 돌아가셨죠. 그 후로 가장 존경하는 분이 권정생 선생님이 되었고 저도 오직 글만 쓰고 죽을 때 아무것도 없이 가야 되겠다고 다짐했죠. 여러분도 안동에 가게 된다면 권정생 선생님 생가에 꼭 한번 가보셨으면 좋겠습니다.

 

 

독자들의 질문을 들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독자1:

아동동화를 집필하기도 하셨는데, 아이들을 키울 때의 교육방식은 어떠신지 알고 싶어요.

: 교육방식에 대해서는 제가 사실 엄마로서는 점수가 첫애한테는 거의 40점밖에 안 되고요 둘째는 첫째를 키우면서 '모든 걸 내려놓아야 되겠다'라는 것을 깨달아서 지금은 한 70점 정도에요. 첫애한테는 너무 못했고 동화를 쓰면서 이론적으로 아는 것하고 아이를 키울 때 하고 마음대로 다 못한 것 같아요. 가장 좋은 것은 아이들이 행복할 수 있도록 사랑을 많이주면서 그리고 다른 아이들도 사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죠. 엄마로서 아이를 어떻게 교육해야 좋은지 답을 드릴 수 없을 만큼 좋은 엄마가 못됩니다. 다만 아이들과의 작가와의 만남에 갔을 때 '내가 우주의 중심이듯이 모든 사람이 우주의 중심이다. 똑같이 공경할 줄 알아야 한다' 그렇게 가르치는데요. 자신을 사랑하고 남도 사랑할 줄 아는 그런 마음을 길러주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독자2:

설을 보면 마지막에 해피엔딩과 새드엔딩이 있는데 독자들은 그런 것들을 중요하게 생각하기도 하는데요. 글을 쓰는 입장에서는 어떻게 결정을 내리시는지 궁금합니다.

: 대체로 처음 구성을 잡을 때 주인공 운명은 대체로 정해놓고 가거든요. 준정을 '가장 고귀하게 죽게 하는 방법이 없을까?' 생각을 했고요. 살릴지 죽일지는 글의 구성에서 가장 재미있는 방향으로 가야겠죠. 독자들의 입장에선 주인공이 가장 잘됐으면 생각하지만, 글을 쓰는 입장에서는 비극이 가장 오래 남는다고 생각을 할거에요. 셰익스피어 4대 비극을 비롯해서 세계적인 연애소설들도 거의 비극으로 끝나죠. 아마 많은 작가는 비극을 선호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편: 끝으로, 향후 작가님의 집필 계획이나, 오늘 찾아주신 독자분들께 해주실 말씀이 있으면 들어보면 좋을 것 같아요.

: 긴 시간 동안 말주변도 없는 사람과 이렇게 마주 앉아서 들어주신다고 감사합니다. 작품은 제가 역사에 잠시 꽂혀서 작년에도 역사 동화를 하나 썼고요. 지금도 하나 쓰고 있고요. 아까 말씀드린 파락호 김용환을 올해 다시 소설로 써볼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역사로 한 두어 작품 더 쓸 계획이고요. 다음에 무슨 작품이 나왔는지 관심 있게 찾아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점점 더 독자들이 문학작품을 멀리하는 경향이 있지 않나 싶교요. 주변에서 보면 많이 보이는 책들이 자기계발서더라고요. 자기계발도 물론 중요하지만 자기 자신을 위로할 수 있는 문학작품을 많이 읽어주시면 하는 바람입니다.

 

흥미로운 소설 속 신라 시대 실제 인물들에 김문주 작가님의 상상력을 더한 <랑>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 봤는데요. 역사소설 <랑>을 읽어보신 분들께는, 비하인드 스토리를 알게 되었던, 아직 못 읽어보신 분들께는, 소설을 전체적으로 알 수 있었던 맛보기 같은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참석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 10점
김문주 지음/산지니

                                           

책 주문하기 >> https://goo.gl/cUJW3o


*산지니 출판사에서 직접 구매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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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비회원



이번 달 가장 많이 쓴 단어가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가 아닐까 싶어요. 

하루에도 몇 번씩 쓰고 또 확인하고 듣고 읽으니까요.


제가 열심히 쓴 만큼 독자분들에게도 많이 닿기를 바랍니다.

이번에 준비한 저자와의 만남 장소는 교보문고광화문점입니다.


이날 서영해 선생의 삶과 책 집필 과정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 속으로 

여러분들을 초대합니다.





[94회 산지니 저자와의 만남: 정상천 작가]

일시: 2019년 2월 27일(수) 저녁 7시

장소: 교보문고 광화문점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 10점
정상천 지음/산지니



Posted by 동글동글봄

최근 여성 캐릭터가 두드러지는 책이 출판계 전면에 떠오르고 있는데요.

현대소설에 <82년생 김지영>의 '김지영'이 있다면, 역사소설에는 어떤 여성이 있을까요?

 

잊혀지고 비틀어진 역사 속 인물,  신라 화랑의 기원이 된 원화를 재조명한 역사소설

<랑> 김문주 작가님과 저자와의 만남을 가지려 합니다.

 

재미있는 역사 소설의 진수를 맛보고 싶으신 여러분을

우리가 몰랐던 이야기가 숨어있는 트렌디 역사소설 <랑>의 세계 초대합니다.



 

일시: 2019년 2월 21일 목요일 늦은 6시

장소: 산지니x공간 

*현장에서 도서 구매 가능합니다. 

많은 참석 부탁드립니다!

 

 

- 10점
김문주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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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비회원

지난 목요일, 1월 10일에 91회 산지니 저자와의 만남이 있었습니다.

 

 

『볼리비아 우표』를 쓰신 강이라 작가님과 함께 했는데요, 행사가 시작되기도 전에 많은 분이 참석해 주셔서 공간이 꽉 찰 만큼 북적거렸습니다.

 

김대성 문학평론가님과 함께했던

그 만남을 지금부터 들려드리겠습니다.

 

 

김대성 문학 평론가(이하 김): 첫 책 볼리비아 우표를 내신 소회가 궁금합니다.

 

 

강이라 작가(이하 강): 반갑습니다. 먼 길 와주신 여러 지인분들께 감사드려요. 날도 춥고 제가 울산에서 산 사람이라 부산까지 와주세요하기가 너무 송구스러웠지만 일생에 한 번이고, 좋은 분들과 이 자리를 함께 기억하고 싶어서 감히 말씀드렸습니다. 거기에 이렇게 뜨겁게 반응해 주셔서 정말(눈물) 촌스럽게 울지 않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살면서 두고두고 갚도록 하고, 오늘은 일단 와주셨으니까 제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진솔하게 말씀드릴게요.

 

 

첫 소설집입니다. 소설 좋아한다고 고2 때부터 써놓고 왔다갔다 하면서 이 길을 떠나지 못해서 결국은 이렇게 돌아와서 다시 쓰게 됐어요. 운이 좋아서 상도 두 번 정도 큰 거 받고, 끊기지 않게 쓴 덕분에 오늘날 좀 부족하지만 볼리비아 우표라는 소설집을 낼 수 있게 됐어요. 20대 때 제 소원이 '나중에 신춘문예가 되고, 책을 한 권 내면 그땐 죽어버려야지' 생각했어요. 이루어지지 못할 거로 생각했으니까 그런 막말을 하고 다녔겠죠. 그래서 어느 날 출판사에서 저에게 먼저 책을 보내 주셨는데, 그 책 포장을 감히 뜯어보지 못했어요. '혹시나 사진이 예쁘지 않지 않을까', '오타가 있진 않을까', '행갈이는 제대로 됐는지', '독자들이 읽으셨을 때 마음에 쏙 드실지'. 정말 여러 걱정이 많아서 주말 내내 저만 갖고 있다가, 월요일부터 가까운 지인들께 책으로 인사드렸어요.

 

 

소설집 한 권이 저에게는 큰 터닝 포인트가 될 것 같습니다. 철도 좀 든 거 같고, 세상 어려운 것도 좀 알게 됐고. 그걸 글로 쓸 때는 더 신중해야 한다는 더 큰 경험도 됐어요. 앞으로 제가 더 소설을 쓸 텐데 그 글에 제 마음과 진실과 세상에 모든 아름다운 시선, 생각들을 골고루 나눠 담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 부산 작가가 해도 많이 오기가 어려운데, 멀리서 많은 분들이 와 주셨습니다. 이렇게 멀리서 많은 분이 축하하고 이야기 나누기 위해서 왔다는 자체가 작가님의 덕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인 거 같고, 따로 참석자들을 위해서 작은 선물 같은 것도 준비하신 것도 좋은 마음이 보입니다. 

 

(작가님이 준비해 주신 정성이 가득한 선물)

 

(작가님이 한분 한분씩 참석자분들을 소개해주셨습니다)

 

: 소설집은 잘 나왔죠? 표지도 예쁘고. 지인들이 받았을 때 소설집에 대한 물성적 반응 같은 것은 어땠나요?

 

: 네 감사하게도 너무 잘 나왔습니다. 일단은 덕담을 해주세요. '애썼다', '고생했다', '볼게', '책 참 예쁘네', '많이 팔리기 바란다'. 그래서 제가 빈말로 대박 나면 소고기 사겠다고, (웃음) 많이 팔려서 우리 출판사도 살아야 하고, 저도 살아야 하고, 우리 한국 출판사, 출판업계가 승승장구했으면 좋겠어요. (웃음)

 

: 프로필에 보면 특이하게 온다 리쿠 전작 주의자라는 이야기를 굳이 밝혀 쓰고 계시는데, 왜 그런지 거기에 대해서도 한번 말씀해주세요.

 

: 제가 나중에 소설집을 내면은 프로필에 소설 외에 이야기는 쓰지 않겠다고 결심한 게 있습니다. 제가 사랑하는 온다 리쿠는 소설을 쓰시는 분이기 때문에 프로필에 올렸습니다.  책을 많이 쓰시고 내용이 보통 SF, 추리, 호러, 미스터리, 판타지, 동화, 정말 다양해요. 그런데 그 모든 분야를 해내고 계세요. 결론이 똑 부러지는 건 몇 권밖에 안 되고 끝이 보통 열린 결말이라 호불호가 굉장히 강한 작가입니다. 그래서 제가 읽으라고 감히 추천 못 해요. 그래서 결말보다는 서사보다는, 소설 전체를 지배하는 분위기에 관심이 많으신 분들이라면 일독하기를 권해드려요.

 

저는 제가 읽은 책을 다 모으고 있고 가끔 힘이 들 땐 어느 페이지를 읽어도 좋아요. 이유 없이 그냥 좋아요온다 리쿠 책은 제가 읽으면 너무 행복하고, 책장에 꽂혀있는 것만 봐도 좋아요. 이분처럼 자기가 쓰는 분야, 소설 분야에서 지치지 않고 현역에서 오래가면서 독자와 함께 늙지 않고, 독자 가까이 다가가고 싶습니다. 아직은 제가 많이 멀었지만요. 그런 뜻에서 제가 좋아합니다.

 

 

: 첫 번째 소설집이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자전적인 이야기나 고백적인 이야기가 있기 마련인데, 이 소설집은 그런 내용이 가늠이 잘 안 됐어요. 왜냐하면 소재나 주제가 너무 다양하고, 작가가 감정적으로 고취되고 고양될 만한 부분을 잘 멈춰서더라고요. 

소설 작업하실 때 소재도 되게 다양하고, 또 소재가 단순히 소설 쓰기 위해서 불러들인 설정이 아니라 소재에 대해 이해가 바탕이 되어있고, 자료조사도 꽤 하시는 거 같은 느낌이 많이 드는데, 소설 작업할 때 영감을 받는 대이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

 

: 책을(다방면의 책을) 좋아하는 편이에요. 팟캐스트는 과학이나 시사 쪽을 듣고, 책도 요가학이라던가 요가 철학, 불교 철학 등에 관심이 많아요. 여러 가지에 호기심이 많다 보니까 깊진 않지만 주워듣는 게 상대적으로 많아요. 그런 거를 바로 쓰지는 못하고 계속 굴리고, 또 다른 소재가 생각나면 붙여보고, 아니면 좀 떼보고 하는 식으로 해요.

 

그러면서 소설 쓰기보다는 쓰기 전에 뜸이 좀 많이 걸리는 편인데, 한 달, 두 달 정도 묵혔다가 시놉시스를 써요. 그렇게 해서 틀이 잡히면, 그것도 며칠 들여다봐요. 빨리 쓰려 애쓰지는 않고 한 달 정도 걸리는데, 쓰면서 고치는 스타일에요. 늘 걱정하는 게 '소설이 처음만 좋고 막판에 가서 너무 약해지지 않을까' 염려가 돼기도 해요. 주변에 책이나 뉴스나 사람 사는 거, 주워들은 이야기, 이런 것들이 한군데 모여서, 먼지가 모이면 덩어리가 되듯이 결국엔 하나의 소설이 되는 것 같습니다.

 

: 소설을 쓰는 이유가 저마다 다양하겠지만, 그런 목적을 어떻게 수행하는가에 따라 작업하는 시간등이 달라질텐데, 나이가 조금씩 차고 책임져야 할 것들이 많이 생기면 마냥 소설만 쓰고 있을 순 없잖아요. 그런데 말씀을 들어보니, 늘 쓰고 계시네요. 거의 늘 소설 생각하시고, 계속 거기에 대해서 고민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 제가 고치고 싶은데, 소설도 약간 강박이 있어서, 그 시간에 거기 앉아있지 않으면 너무 불안해요. 아침저녁에는 요가 수업이 있으니까 오후에는 카페에 가서 쓰고, 주말에는 도서관이나 카페를 이용해요. 그렇게 습관이 되어있지 않으면 너무 불안해요. 고치고 싶은데 잘 안 돼요. 가서 놀더라도 거기 가서 앉아있어야지 하루를 날려버리지 않는 느낌이에요. 그래서 이게 즐거워서 하는 게 아니라 어떨 때는 강박으로 가는 게 느껴지기도 해요. 앞으로는 고치고 싶은데 써야 할 소설이 너무 많기 때문에 규칙적인 생활을 하려고 노력합니다.

 

: 소설가가 어떻게 작업하는가도 작가, 작품과 일치는 안 되겠지만 창작에 비밀이 있는 영역인 거 같기도 해요. 이 소설에는 타국에 대한 소재가 많이 들어와 있습니다. 한국이라는 영역에 국한하지 않고 다른 이질적인 공간들을 아주 많이 다루고 있는데, 여행이라는 것이 작가에게 중요한 소설적인 영감의 원천일까?

 

: 방랑벽이 굉장히 심합니다. 역마살이죠. 여행을 너무 좋아해요. 가까운 곳이든, 먼 곳이든 떠나서 저를 조금 분리해서 볼 수 있는 거 같아요. 어떤 극한에 상황에 놓였을 때 내가 어떻게 행동하는지. 저를 개괄적으로 볼 기회가 많아져서 여행을 좋아해요. 여기 있는 곳은 내 생활이고 현실인데, 외국이나 여행 갔을 때 그 도시는 왠지 나를 돌아보게 만들고, 상상의 여지를 확장해주는 곳인 거 같습니다. 저도 나중에는 기회가 된다면은 제 여행 다녀왔던 배경들을 모아서 지명소설집을 내는 게 제 작음 바람입니다. 그래서 좀 더 부지런히 다니려고 합니다.

 

: 앞서 떠난다는 게 자기를 좀 객관화해보는 시간이라고 말씀해 주셨는데, 여러 소설을 읽다 보면 '작가가 이 작품을 씀으로써 해방되려고 하구나', 이를테면 자기치유나 트라우마로부터 극복하기 위해서 이 작품을 써내고 있다고 느낌이 드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 강이라 작가님의 『볼리비아 우표』그런 느낌이 들지 않았어요. 그래서 소설이 전반적으로 쓸쓸하고 고즈넉한데 이상하게 청량한 느낌을 저는 좀 받았어요. 그게 자기 고백으로부터 거리를 두려고 하는 부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한편으로서는 소설을 쓴다는 것 또한 자신을 객관화시켜보는 작업과 맞닿아 있는 부분들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저는 늘 제가 소설 속에 감정이 과잉되어있다고 생각을 해요. 제가 20대 때 시나리오를 쓰던 버릇이 남아서 지금도 가끔 비약이 있어요. 제가 어느 순간 이걸 끊어버리거나, 문장은 잘 연결되는 거 같은데 제가 중간에 띄운다거나. 저도 막 놀라서 소설을 쓰면서 그거를 많이 고치려고 하는데 아직도 먼저 머릿속에 영상을 떠올린다던가, 계속 쪼개려고 합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제가 행갈이 없이 계속 한 번 가보려고 애쓴 게 어둠에 묻힌 밤이라는 작품이고, 오히려 호불호는 확실히 있는 거 같아요. 좋든 나쁘든 반응은 제일 뜨거웠던 작품입니다.

 

: 이 소설은 감정은 되게 섬세하고 찬찬하게 그려내고 있는 반면에 인물의 삶을 작가가 특별하게 개입해서 좌지우지하지 않는 게 좀 인상이었습니다.

 

: 지금 제 인생도 흘러가는 대로 두고 있는데, 제가 어떻게 소설 속 주인공들을 좌지우지하겠습니까. 그냥 그분들이 가는 대로 지켜보고 주변의 풍경과 그 사람들의 마음을 제가 본만큼만 표현할 수 있는 거 같아요.

 

소설 속 인물들과 공통점이 있다면, 상처가 있는 건 맞는 거 같아요. 그 상처가 강한지 약한지의 문제보다는 제가 그걸 받아들이는 마음가짐인 거 같은데, 저는 개인적으로 제가 좀 트라우마도 있는 거 같고 상처도 가진 거 같아요. 내색을 잘 안 하는 성격이라 그런 게 내적으로 얹혀 있다가 그게 소설 쓸 때마다 하나씩 내놓는 거 같아요. 그게 아마 선생님 말씀대로 자기치유이지 않을까 싶어요. 그래서 요가와 더불어 소설은 자기치유의 한 방법입니다.

 

: 있던 자리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다른 자리를 찾아가는게 회복인거 같아요. 모두가 상처를 가지고 있는데, 회복은 자기 상처를 계속해서 대면해야 하기 때문에 덧날 수 있어 위험하고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작가님이 말씀하신 자기치유가 회복하는 과정에 맞닿아 있지 않을까 싶어요.

 

조금 다른 이야기이긴 하지만, 요가라는 게 소설과 연결 지어 어떤 가치가 있는지 궁금하네요.

 

: 소설하고 요가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끝이 없어요. 완성이 없습니다. 요가는 몸과 마음의 일치입니다. 마음이 부드러워야지 몸에서 유연함이 생기고, 몸이 부드러워야지 마음과 정신이 맑아져요. 요가에서는 아사나’. 동작보다는 마음 수련을 더 높게, 크게 멀리 봅니다. 요가는 운동이 아니에요. 소설하고 똑같습니다. 수련이에요. 그 끝이 어딘지 모르고 달려가야 하지만 그 과정에 있어서 느끼는 희열은 매번 산 하나 올랐다가 내려오는 그 과정하고 똑같습니다.

 

소설을 쓰면서 또 요가를 하면서 그런 공통점을 많이 발견한 거 같습니다. 나중에 요가인 으로 성숙해서 소설에도 그런 좋은 에너지를 담아, 제 부족한 소설 받으시는 분들이 위로를 받으실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소설가가 이렇게 썼구나', '나도 이렇게 힘들 때가 있었는데', '다들 비슷하게 살고 있어. 참 다행이야'. 그런 식으로 느끼면서 조금이라도 위로가 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소설을 쓰고 요가도 계속합니다. 또 제 개인적으로 좋은 인간, 훌륭한 사람이 되는-명예나 학벌이 아닌 좀 더 나은 사람, 된 사람이 되는- 의미에서 하고 있습니다.

 

 

: 말씀하셨던 요가의 의미, 가치가 전면으로 드러나는 소설도 읽을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몸에 힘을 빼라고들 하는데 힘을 빼는 게 제일 어려운 거 같아요. 몸을 쓰는 일들이 '몸에 힘을 빼고 어떻게 잘하는가'를 배우기에, 어떤 분야에서든 쟁점인 것 같아요. 또 너무 힘 빼면 느슨한 글이 되어버리고, 너무 힘을 주어 버리면 경직된 메시지가 강한 게 되버리니 이 경지는 끝이 없는가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 소설도 기본적인 토대가 잘 잡혀야지 완성이 되는 것처럼 요가가 그래요. 항상 바닥에 닿는 내 손, 내 발, 내 눈, 내 이마, 토대가 바닥을 안정적으로 지탱하지 않으면 동작이 완성될 수 없어요. 소설도 똑같은 거 같습니다. 내 바탕에 이 지면에 붙이고 있는 신체 일부분이 안정되지 않으면 그 위에서 그것들을 믿고 서 있는 모든 것들이 흔들릴 수밖에 없죠. 그런 에너지들을 잘 활용하려면 소설도 요가처럼 토대를 잘 마련해보는 것도 중요한 거 같습니다. 아직도 저는 흔들리고 있지만요.

 

: 소설 「명상의 시간에서는 라파엘과 라파엘라라는 이란성 쌍둥이가 나오고, 「ch41에 는 두 명의 엄마가 나오고(엄마와 음마), 볼리비아 우표에는 수현과 지현이, 「스위치에는 크로스 드레서, 그리고 「오키나와 데이트에는 오키나와라는 섬과 제주도라는 역사적인 아픔을 짊어지고 있는 두 개의 섬이 교차하고 있는 점이 있어서 모든 소설이 적용되는 건 아니지만, 어긋나 있지만 계속 서로를 들여다봐야 하는 관계성 들이 소설에 흐르고 있는 거 같은데 그 부분이 제일 흥미롭고 관심이 갔습니다.

 

: 근데 저는 문학평론가님께서 말씀해 주시는 게 너무 흥미롭고, 제 소설에 대해 이렇게 1:1로 대화를 나누는 것도 저는 인지하지 못했는데 지금 들어보니까 그렇네요. 정말 감사합니다.

 

: 시가 두 편 인용된 거로 알고 있는데 상투적인 표현이긴 합니다만, 시적인 문장이 많고 정서적으로 집중해서 말 하나하나를 선별하고 벼리는 문장들을 많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에 작가의 말을 보니 시심에 대한 이야기가 있는데 이런 시적인 것들이 소설에 주는 영향 같은 것도 있지 않을까 궁금합니다.

 

: , 저는 시를 너무 사랑합니다. 시가 함축되어있던 의미, 생에 대한 반주하는 시선들의 시선도 너무 좋아요. 오늘 아침에도 이게 평생에 한 번, 가장 중요한 순간인데 오기 전에 마음을 다스려야겠다 하면서 읽은 시가 백석의 시입니다. ‘흰 바람벽이 있어라는 시인데, 높고 외롭고 쓸쓸하다’처럼 그런 시적인 표현을 굉장히 좋아해서 백석의 마음으로 항상 오래도록 소설도 시적인 느낌이 들고 쓰고자해요. 근데 저는 시와 소설이 분리될 필요 없고, 소설도 시처럼 쓸 수 있다 생각합니다. 볼리비아처럼 읽을 때 독자 입안에서 굴러다닐 수 있는 문장, 내 입안에서, 내 혀끝에서 살아나는 단어 하나하나가 가지는 리듬감을 저는 굉장히 좋아합니다

 

시를 인용하여 소설 읽는 분에게 이런 시도 있구나.‘ ‘이 소설하고 비슷한 이런 시가 있네. 이 시 한번 찾아 읽고 싶다.’라는 마음이 들게 하는, 아주 소소한 영향력, 전파가 될 수 있는 소설을 쓰고 싶습니다.

 

: 보통 시적이라고 하면 감성적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문장이 섬세하면서 정교해요. 문장들이 단단한 부분들이 있어서 감성적인 부분만 가지고 온 게 아니고 언어에 대한 이해와 관심의 과정들이 밑받침된게 아닌가 싶어요. 시는 조사 하나에도 감정을 싣는 매체이기 때문에 그걸 천천히 읽다 보면 언어에 대한 감수성이 훨씬 풍부해지거든요.

 

그리고 김대성 문학평론가님께서 인용된 시 한 단락 낭독해주셨습니다.

 

나는 예배당에 맨 뒤쪽에 앉아 오르간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음은 단순하고 느렸다. 하지만 연주가 계속될수록 포개진 음들이 페이스트리 반죽처럼 층을 이루며 서서히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첫 음이 사라질 때쯤 다른 음이 겹치며 소리는 더욱 깊어졌다. 마치 오래된 우물 안으로 허리를 반쯤 접어 넣고 받침에 이응이 들어간 말들, 이를테면 멍멍, 붕붕 같은 단어들을 외치면 금세 듣기 좋게부풀어 올라오던 소리와 닮아있었다.

p.67_「명상의 시간중에서

 

 

 

독자 질문

 

 

독자1: 처음 책을 받았을 때 표지와 자기 소설이 매치가 잘 된 거 같나요? 그리고 구체적으로 어떤 감정이 맨 처음 드셨나요?

 

: 저는 볼리비아 우표 쓸 때부터 책을 내면 항상 이 제목으로 갈 거라고 결심했었어요. 때문에 표지도 볼리비아 우유니 사진을 편집자님께 보내드렸고, 그중에 하나 골라서 예쁘게 만들어진 거 같아요. 블루톤을 좋아하고 먼 배경이 되는 풍경을 좋아합니다. 표지는 만족합니다.

 

'내가 감히 이 소설을 이렇게 한 권으로 묶을 자격이 있었을까'. '이 소설을 이 소설집안에 들어갈 만큼 충분히 무르익은 작품이었을까', '괜히 내 이 부족한 소설로 인해서 귀한 시간 내서 읽어주는 독자들에게 하나라도 건네주지 못한다면 어쩔까'. 이런 고민이 되게 많이 들었어요. 책을 바라보며 이 작품이 나에게 결국 어떻게 남을 것인지. 독자들에게 어떻게 가 닿을 것인지. 그들에게 위로가 될지 또 다른 상처가 될지 무의미가 될지 그런 걱정이 태산이었죠.

 

독자2: 앞으로 나올 소설은 어떤 소설이고, 독자들에게 어떤 작가로 인식되고 싶으신가요?

 

-강: 이제 8편을 쓰고 나니까 다른 작품들도 막 쓰고 싶어요. 그래서 지금 단편소설은 2개 정도 쓰는 중이고 올해에는 장편소설을 쓰고 싶습니다. 지금은 또 다른 소재를 가지고 시대성이 있는 작품이라서 요새는 도서관에서 그 시대적인 배경 찾느라고 책만 읽고 있는 거 같아요. 근대를 배경으로 하고 그게 일제강점기도 걸쳐있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조망도 잘해야 할 거 같고, 감히 함부로 덤벼서는 중간에 엎어지겠더라고요. 전체적인 분위기를 좀 익히려고 애쓰는 중입니다.

 

독자3: 요즘 책도 넘쳐나고, 작가도 넘쳐나는 세상인데, 강이라 작가가 다음 작품에서는 수많은 작가와 비교해서 이 분야에서 나만이 가지는 차별성이 있을까요?, 그리고 큰 문학상을 받고 싶은지, 아니면 하루키처럼 큰 문학상은 못 받아도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독자를 가지고 있는 그런 작가가 되고 싶으신가요?

 

-강: 선생님 말씀 맞습니다. 저 여성이고 작가예요. 앞으로 잘 나가려고 또 꾸준히 살아남으려면 차별성을 반드시 줘야 하는 지점이 있어요. '이제는 새로운 지점을 찾아야겠다' 결심을 하고 문제점도 제가 파악을 했는데, 어떻게 해야 잘할 수 있는지 잘 모르겠어요.

 

저는 아직 미혼입니다. 출산도 하지 않았어요그래서 제가 가진 현실, 미혼이고, 또 요가를 하는 것을 접목해서 요즘은 비혼도 많기 때문에 같은 또래, 같은 상황에 부닥친 여자들의 이야기를 공감할 수있게 만들고 싶습니다. 소설로서 이렇게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어라는 식으로 접근을 하고 싶습니다. 제가 지금 처한 상황을 잘 이용하고 싶어요.

 

제가 지금 여기 있는데 큰 문학상을 바라면 되겠습니까. 굳이 말한다면 상보다는 많은 독자를 가진 작가가 되고 싶어요. 만난다면 저의 작품을 아는 척해주는, 강이라를 아는 척하는 게 아니라 그 작가를 기억하고, 기억한다는 건 그만큼 소설이 그 사람에게 영향을 끼쳤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소설로서 저를 많이 알아봐 주신다면 그게 더 큰 기쁨이라고 생각합니다.

 

 

: 다음 소설 나올 때까지 강이라라는 사람은 어떤 삶을 살아내고 있는지를 작품을 통해서 만날 수 있는 그런 시간이 길게 주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 제가 이제 책 한 권을 냈고, 어쨌든지 간에 어디 가서 소설 쓰는 사람이라고 말하게 됐고, 그렇다면 이 말에 무게를 감당하게 될 거 같습니다. 저 사람 소설 쓰지’, ‘지금도 쓰고 있구나’‘내일도 쓰겠구나.’ 하는 항상 소설 쓰는 사람에 대한 믿음이 있는 작가로 남고 싶습니다.

 

 

 

 

참석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볼리비아 우표 - 10점
강이라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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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지니 출판사에서 직접 구매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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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비회원

 

최강 한파에 모두 옷 따뜻하게 입으셨나요?

저도 핫팩을 쉐킷쉐킷! 흔들며 온기를 유지하고 있답니다.

 

산지니의 2018년 마지막을 장식한 소설 『볼리비아 우표』와 함께

2019년 새해, 저자와의 만남을 가지려 합니다.

 

표지가 너무 예뻐서 자꾸만 눈길이 가는『볼리비아 우표』인데요.

마냥 아름답게만 보이는 표지 속 볼리비아의 우유니 사막이지만,

강이라 작가님의 소설을 읽고 나면 그 속에 담긴 쓸쓸함이 와 닿을 거에요.

 

 

실물이 더 예쁜 『볼리비아 우표』. 볼리비아 여행책 아니고요, 소설집입니다 :)

 

 

강이라 작가님께서 독자분들과의 만남을 위해 울산에서 오십니다 :)

김대성 문학평론가의 진행으로 열리는 91회 산지니 저자와의 만남에

많은 분들의 참여 기다릴게요!

 

_일시: 2019년 1월 10일 목요일 늦은 6시

_장소: 산지니x공간

*현장에서 도서 구매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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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에디터날개

 

 

 

지난 목요일, 2019년의 첫 번째 '산지니 저자와의 만남'이 있었습니다.

 판타지 동화로 2019년의 시작을 알리게 되었습니다. 

 

 

2019년 처음을 장식해주실 작가님은 바로,

『해오리 바다의 비밀의 조미형. 박경효 작가님입니다.

 

많은 분이 작가님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자리를 채워주셨습니다.

아쉽게 참석하지 못한 여러분들을 위해 그날의 흥미진진했던 이야기를 지금, 공개합니다!

 

 

 

오늘 행사의 진행을 맡아주실 분은 임미화 선생님이십니다. 20년 넘게 어린이 책 읽기 모임을 해오신 분으로, 어린이 책 문화 환경을 가꾸는 일을 열심히 하고 계십니다. 임미화 선생님은 날카로운 질문들로 청중들의 궁금증을 해소해주셨습니다.

 

 

 

 



1. 임미화 | 『해오리 바다의 비밀』조미형 작가님은 동화와 소설 두 가지 장르를 함께 하시는 데 겪는 어려움 같은 건 없나요?

 

조미형 | 아이들과 하는 독서지도사 수업도 하고 도서관 강연을 하면서 동화를 버릴 수 없더라구요. 또 애착이 가는 작품이라 매년 수정도 하고 또 양쪽을 한다는 게 쉽지는 않습니다. 제가 미련한 면이 있어서 계속 하다 보니깐, 또 좋은 출판사와 좋은 그림을 만나서 이런 책이 나온 것 같습니다.(웃음) 앞으로도 계속 양쪽으로 할 생각입니다. 

 

 

2. 임미화 | 『해오리 바다의 비밀』 에 고래가 나오잖아요. 작가님이 사시는 울산이라는 지역을 고려해서 고래를 작품에 넣으신 건지 고래가 작품에서 차지하는 의미는 무엇인지 묻고 싶습니다.

 

 

조미형 | 해양생물 중에 대표적이고 제가 좋아하는 만화인 <원피스>에도 고래가 나와요. 바다를 생각하면 바다는 고래라는 이미지가 있어요. 배를 타고 돌고래를 구경하기도 하고 뉴스를 보면 개체 수가 줄어든다던가 환경 오염으로 그물에 걸린 고래가 고통을 받기도 해요. 제가 밤 낚시를 한 적이 있어요. 낚시꾼들이 버려놓은 밑밥들 코펠로 끓여 먹고 버린 갯바위에 붙은 쓰레기들을 보면서 '저러면 안 될 것 같은데...'라고 했던 생각들이 작품에 들어간 것 같습니다.

 

 

3. 임미화 | 『해오리 바다의 비밀』 에는 고래 말고도 어떤 생물은 괴물이 되고 유령이 되기도 하잖아요? 그런 것들이 충격적이더라고요. 어떤것들이 괴물이 되고 유령이 되는지 작가님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조미형 | 처음부터 괴물은 없다고 생각해요. 인간들의 행동들의 결과로 괴물로 만들어지는 거죠. 유령이라는 생물은 작품을 구성하면서 과학잡지에 발표가 되었던 고대부터 있던 생물이에요. 덩치가 줄어들었다가 늘어난다고 학자들이 이름을 붙었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그 캐릭터를 오염물질들로 인해 바다가 위험해지면 거대하게 변해서 바다를 지키는 캐릭터로 만든 거죠.

 

 

4. 임미화 | 『해오리 바다의 비밀』 "의심을 버리면 진실이 보인단다"라고 말씀을 하셨는데 전체적인 책의 맥락과 어우러지는 의미가 있나요?

 

 

조미형 | 큰 의미는 없고요. 이게 인간의 이야기랑 연결되는데 현대사회에서는 본질을 잘 못 보고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으로 상대방을 파악하고 사람들이 자기의 기준으로 판단해서 한쪽을 괴물로 만들기도 합니다. 저는 사실 왕따를 많이 당했어요. 곰곰이 생각해보니 다른 사람과 생각이 달라서 그랬던 것 같아요. 본질을 보는 눈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이 문장을 넣었습니다.

 

 

 

 -박경효 작가님이 직접 원화를 들고 오셔서 감상 시간을 가졌습니다.

 

 

5. 임미화 | 『해오리 바다의 비밀』을 삽화 작업은 어떤 작업이고 어떤 게 힘들고 좋았던 점은 무엇인가요?

 

 

박경효 | 삽화를 그리게 되면 아무래도 텍스트를 많이 보게 되요. 이번에도 텍스트를 서너 번 정도 읽었는데 읽으니깐 씹는 맛이 있어요. 음식도 씹으면 맛있잖아요. 씹고 읽으니깐 맛있네? 그런 기회였습니다. 화가는 자기중심적인 부분이 큰 것 같아요. 근데 소설가분들은 굉장한 감정이입을 해요. 그런 것들도 깊이 있게 배울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아요. 조미형 작가님이 캐릭터를 분명하게 설명해 놓으셔서 작업이 쉬웠습니다. (웃음)

 

 

6. 임미화 | 『해오리 바다의 비밀』 책에서 의성어 의태어 같은 소리가 많아서 듣는책 같은 느낌도 받았어요. 귀로 듣는 듯한 생생한 원래 이런 의성어 의태어를 자주 쓰시는 편인지 궁금합니다.

 

 

조미형 | 캐릭터마다 전투장면이 많아요. 사실은 각각의 고유의 소리가 있으면 조금 더 재미있지 않을까 생각을 해서 각각 다른 색깔과 소리도 하나씩 넣었어요. 그래야만 바다라는 공간을 표현하는데 읽는 사람이 덜 힘들지 않을까 하면서 넣었어요.

 

 

7. 임미화 | 『해오리 바다의 비밀』에서 상상의 세계에서 돌아왔을 때 아이들이 '또 뭐 신나는 일 없을까?' 라고 말하면서 마무리를 하시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조미형 | 제가 허클베리 핀의 모험이라는 작품을 참 좋아해요. 그 속에 있는 아이들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모험심 무거운 이야기들도 가볍게 풀어가는 스토리를 좋아해요. 아이들의 세계가 있고 어른들의 세계가 있는데 너무 빨리 어른이 되는 건 안 좋은 것 같아요. 쓰레기를 버리고 재활용을 안 해서 바다가 아프다는 걸 알려주는 선에서 환경오염은 모두가 같이 해결해야 할 문제라는 것을 알려주면서 마무리했어요.

 

 

8. 임미화 | 『해오리 바다의 비밀』과 달리 소설 『씽푸춘, 새벽 4시』에서는 냉혹한 세계 속에서 폭력, 착취로 얼룩진 개인의 고통을 보여줬는데요. 되게 특성이 다른 두 작품이잖아요. 평소에 어떤 장르를 선호하시나요?

 

 

조미형 | 제가 만화 <원피스> <도라에몽>의 마니아이기도 하지만 추리소설도 엄청나게 좋아해요. 또 사회문제에도 무척 관심이 많아요. 사실은 분노하는 감정도 많이 가지고 있어요. 문학이 없었으면 무슨 짓을 하지 않을까 하는 정도로 다음에도 장르 구분 없이 계속 이렇게 다양한 장르를 하지 않을까... 같은 사람이에요. (웃음)

 

 

9. 임미화 | 『해오리 바다의 비밀』 그림 작업을 하면서 어떤 점이 좋았고 인상 깊으셨나요?

 

 

박경효 | 제가 인상 깊었던 것은 '왜 이렇게 많이 싸우지?' 하는 생각이었어요.(일동 웃음) 작가 선생님이 이름이 여성스러운데... 전투장면이 많아서 저는 남자분인 줄 알았습니다.

 

 

10. 임미화 | 『해오리 바다의 비밀』 에서 섬세하게 캐릭터를 표현해주셔서 쉽게 그림 작업을 하셨다고 말씀하셨는데, 캐릭터들이 바다생물들이다 보니깐 실제로 보고 그리신 것인지?

 

 

박경효 | 제가 검색을 하면서 찾아봐요. 사진이 없는 몇 군데는 실제로 찾아보기도 하고 캐릭터 잡고 하는 것은 단순한 조형화에 속하거든요. 특징을 뽑아내고 그림을 그리면 조금 달라질 수 있는데 세밀화가 아니면 직접 가서 볼 필요는 없죠. 의외로 산갈치를 검색해봤는데 바다의 귀족 같은 느낌이랄까 모양이 참 고상하더라고요.

 

 

청중들이 질문을 해주셨습니다.

 

 

11. 『해오리 바다의 비밀』에 나오는 신지와 니오 그리고 귀신할매의 캐릭터가 생생한데 실제로 모델이 있어서 이렇게 구체적으로 그려내셨나요? 

 

 

조미형 | 니오와 신지는 사실 제 두 아들의 캐릭터를 그대로 가져왔어요. 큰아들은 화장지를 뭉쳐서 화장실 천장에 던지는가 하면 작은아들은 7살도 안 된 아이가 밤에 내셔널 지오그래픽을 본다던가 전혀 다른 기질이 행동과 함께 나타나는 거예요. 그래서 소재로 글을 써봐야겠다. 아니면 참다가 폭발해서 때리지 않을까 해서 작품 속에 던져서 "고생 한 번 해봐라" 하면서 써봤어요. 귀신할매는 우리 시골에 마을마다 지팡이 들고 온갖 잔소리를 다 하시는 할머니분들이 있으시잖아요. 거기서 가져와 봤어요.

 

 

12. 소설하고 동화하고 둘 다 써보니깐 어느 것이 더 체질에 맞는 것 같으세요? 어린이소설과 소설은 같이 쓰는 것이 드물고 문체가 달라서 힘들 것 같은데요.

 

 

조미형 | 오른손으로 쓰고 왼손으로 쓰면 돼요.(웃음) 저는 사실은 체질에 맞고 안 맞고를 정하지를 않습니다. 그냥 주어지고 쓸 수 있는 거면 구분 안 하고 써야 된다고 생각해요. 앞으로도 다양한 장르를 할 것 같아요. 저는 양쪽의 마음을 가지고 있어요. 미운 사람들은 소설로 죽이고요. 자라나는 새싹들은 귀여운 동화로 또 살려내고 편견과 고정관념은 위험하다고 생각해요. 원하는 건 먼저 시작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박경효 작가님이 제일 마음에 드셨다는 은갈치(알라차)와 대왕 가자미의 전투장면

 

 



-조미형 작가님이 제일 좋아하는 그림인 아름다운 물고기 떼가 헤엄치는 모습

 

 

  

 

 

해오리 바다의 비밀 - 10점
조미형 지음, 박경효 그림/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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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고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산지니 저자와의 만남이 2019년의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2019년의 두 번째 저자와의 만남은 강이라 작가님의 『볼리비아 우표

김대성 문학평론가의 진행으로 열리는 91회 산지니 저자와의 만남에

많은 분의 참여 기다릴게요!



 

.

[행사 알림] 91회 산지니 저자와의 만남

 

 

Posted by 비회원

한 해가 어느덧 저물어갑니다.

이미 넘겨버린 11장의 지난 달력을 다시 뒤적여보며

2018년을 어떻게 보냈는지 되새김질해 봅니다.

모두들 한 해를 마무리하느라 분주하게 보내고 있겠지요?

그러면서도 다가올 2019년의 계획을 세우며

조금은 설레는 마음으로 새해를 기다리고 있을지도요.

 

이 글을 읽고 계신 산지니 애독자 여러분들께,

산지니의 2019년 첫 번째 새해 계획을 특별히 공개합니다! :)

바로바로바로바로바로바로바로...

90회 산지니 저자와의 만남

창작동화 『해오리 바다의 비밀』 편 입니다!

(2019년과 90회 저자와의 만남! 뭔가 느낌이 좋습니다!)

 

『해오리 바다의 비밀』의 글을 쓰신 조미형 작가님과 그림을 그려주신 박경효 작가님

두 분을 모시고, 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눠보려고 합니다.

 

『해오리 바다의 비밀』은 2018년 이슈 중 하나인 해양 쓰레기 문제를 다루고 있답니다.

저 역시 이 문제에 관심이 많아서 이 책을 굉장히 관심있게 읽어보았는데요.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쓰레기 버리지마!", "일회용품 쓰지마!" 라고 잔소리를 하는 것보다

재미난 이야기를 통해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경각심을 가지도록 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2019년 새해를 시작하며 해오리 바다의 비밀을 함께 읽으며

 

환경보호를 위한 실천 계획 함께 세워보시는 것 어떠세요?

 

새해 떡국 맛있게 드시고, 1월 3일 목요일에 산지니x공간에서 만나요~~ 

 

 

창작동화 『해오리 바다의 비밀』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바다 생명들이 힘들어하는 비명이야. 바다를 구해야 해.”

니오와 신지, 쓰레기로 뒤덮인 바다 속으로 들어가다!

 

육지에서 버려지는 수많은 쓰레기는 모두 어디로 갈까요? 보라매 시리즈 열한 번째 작품 해오리 바다의 비밀은 바다 환경 문제를 다룬 창작동화로, 니오와 신지가 바다 속으로 들어가 겪게 되는 모험을 그리고 있습니다. 자연과 평화를 사랑하는 소년 니오와 호기심 많은 장난꾸러기 신지를 비롯해 바다를 지키는 산갈치 알라차’, 사람들이 버린 쓰레기를 먹고 괴물이 된 가오리와 바다유령 등 다양하고 입체적인 캐릭터를 통해 더러워진 바다 속 모습을 생생하게 전달합니다. 이 작품은 조미형 작가가 부산의 파란 바다를 보며 집필했고, 황금도깨비상을 수상한 박경효 작가의 생동감 넘치는 그림을 더해 완성했습니다.

 

 

글쓴이 조미형

 

 

2006년 국제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했습니다. 지은 책으로 소설집 씽푸춘 새벽 4가 있습니다. 발표한 작품으로 고릴라 1 고릴라 2 그리고 사람이 있고요. 바다를 좋아하고 걷는 것을 좋아합니다. 옛길을 걸으며 기이하고 재밌는 동화를 쓰는 데 많은 시간은 보내고 있습니다.

 

 

 

 

그린이 박경효

입이 똥꼬에게구렁덩덩 새신랑을 출간한 지도 10년이 다 되어갑니다. 그림책이나 동화 삽화 그리기는 미술활동을 하면서도 끊임없이 즐겁게 꿈꾸는 또 다른 상상의 세계입니다.

Posted by 에디터날개

 

지난 금요일, 2018년의 마지막 '산지니 저자와의 만남'이 있었습니다.

『우리들,킴』의 저자 황은덕 작가와의 만남으로 시작한 2018년 저자와의 만남이

한 해동안 부지런히 달려 어느새 89회가 되었습니다.

소설로 열었던 2018년을 소설로 마무리하게 되었네요.

 

 

2018년 저자와의 만남 대미를 장식해주신 저자는 바로,

『방마다 문이 열리고』의 최시은 작가님입니다.

성탄절과 연말을 앞두고 모두가 분주했던 가운데,

많은 분이 작가님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자리를 채워주셨습니다.

아쉽게 참석하지 못한 여러분들을 위해 그날의 후끈후끈했던 이야기를 지금, 공개합니다!

 

 

 

 

행사가 시작되기 전, 진행에 관해 이야기 나누시는 최시은 작가님과 김대성 문학 평론가님.

 

-김대성 문학 평론가(이하 김)

첫 책 『방마다 문이 열리고』를 내신 소회가 궁금합니다.

 

-최시은 작가(이하 최)

저는 사실 작가라는 말이 아직 익숙하지 않아요. 최시은은 필명인데, 아직 동료들이 필명을 부르면 생소합니다.

집에 도착한 책을 쌓아놓고 한참을 바라보고 있었습니. 마치 늦둥이를 낳은 기분이랄까요? 애비 없는 늦둥이 같은 기분이었습니. 저게 어디서 왔을까, 하는 생각이 들고요. 교정 과정에서 글을 계속 보다 보니까 늦둥이인데 보기 싫은 늦둥이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하지만 지인들에게 어떤 반응을 얻을까, 하고 설레는 마음이 들었습니.

작가라는 말이 아직 익숙하지 않고 아직은 붕 떠 있는 기분입니다.

 

-김 │제가 빚을 내서 아파트를 사고 입주해서 밤에 거실을 가만히 보고 있으니까, 어리벙벙하더라고요. 하지만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아요. 책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그런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 있는 것 같아요그 감정이 글 쓰는 이가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감정이자 특권적인 감정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최 특권적인 건 아닌데? (웃음)

특별하고 낯선 감정이 맞는 것 같아요.

든 못 됐든 오랜 시간에 걸쳐서 책을 냈다는 게 뿌듯한 느낌도 있어요.

 

 

-김 │ 특권적이라는 말은 실언은 아니었고요. 왜냐하면, 글을 쓰는 사람들은 보상받을 길이 많이 없거든요. 주위에서는 뭐길래 그렇게 열심히 하느냐... 라고 말하기도 하고.

그런 조건 속에서 글을 쓰고 결국 책으로까지 엮어냈을 때, 외부에서 보상받지 못하지만 그 감정이 특권적이라고 생각했어요.

 

-최 작가로서 책을 내고 느끼는 뿌듯한 감정을 특권이라고 표현하셨다면, . 특권적인 감정 맞습니다.

 

-김 │8년 전, 5년 전에 써두신 소설을 다시 엮으며 문장을 고치고 덧붙이고 빼는 과정에서 느꼈던 감정이 궁금합니다. 책을 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공부의 시간이었을 것 같은데요.

 

-최 │소설 잔지바르의 아이들」이 그 경우에 해당할 것 같아요. 써 놓고 한참을 넣어둔 작품이에요. 출판사에 원고를 넘기며 다시 소설을 보았을 때, 너무 가슴이 아팠습니. 일주일을 교정을 보며 헤맸어요. 경향신문의 짧은 기사를 가지고 소설을 만든 것인데, 기사 속 여자를 볼 때 마음이 참 안되었어요.

죗값을 치른다는 것이 어떤 것일까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해봤어요. 소설 속 남자에게 감옥에 있는 것은 죗값을 치르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내가 생각했을 때 죗값을 치르는 것은 감옥에서 나와서 가족을 제대로 부양하는 것이었죠.

소설은 질문의 형식이라고 생각합니. 답을 주는 소설은 재미가 없죠. 잔지바르의 아이들」이 소설적으로 썩 훌륭하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그 안에 질문이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

 

 

-김 │소설집 중에서 마음에 들고 뿌듯함을 느낀 작품은 어떤 작품인가요?

 

-최 │일곱 편 중 두세 편이 마음에 들어요. 소설적 완성도 면에서는「누에」가 마음에 들어요3인칭 관찰자 시점이라 모든 것을 다 설명해줘야 했기 때문에 집필할 때 힘들었어요. 전자발찌를 찬 30대 남성의 심리를 표현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사실 경찰서를 통해서 실제 성폭행범을 만나 보려고 하기도 했는데 쉽지는 않더라고요.

 

-김 │소설집 제목이 '방마다 문이 열리고'인데요. 이 구절이 수록 작품「누에」에서 따 오신 거로 압니. 이 표제에 대해 설명 부탁드립니다.

 

-최 │소설적 상황을 보자면 '문이 열리기 전'에는 엄마가 아파서 집에 누워 있죠. 엄마에게 필요한 건 아버지이고, 아버지에게 필요한 건 그 여자입니다. 아버지가 그 여자를 데리고 집에 왔습니다. 아버지로 인해 엄마는 생기를 얻고, 집에도 생기가 돕니.

아버지가 옴으로 방에 문이 열리고, 봄이 와서 산벚꽃이 피듯 집에 봄이 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자가 수동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그 시대에는 그런 엄마들도 분명 있었다고 생각합니.

 

 

-김 │이 소설의 남성들이 굉장히 전형화되어 있습니. 성적인 본능에 충실한 모습으로 말이죠.

젠더의 위계가 전형화되어 있는데, 이는 작가가 의도하고 쓰신 것이라고 보입니.

이 문제는 앞으로 이 소설을 이야기할 때 계속 언급이 되고 쟁점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

 

-최 │ 그러게요. 왜 그럴까요. 왜 남자를 그렇게 그렸을까요... (웃음)

 

-김 │ 왜 인물들을 이렇게 그렸어야 했는가를 이야기해보자면, 인물들이 대부분 도시 빈민이에요. 생존이 최우선인 삶의 조건에서 가치 있는 행위를 기대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요즘 통념에 맞지 않는 부분이 있을 수 있지만, 이들이 처한 삶의 조건을 이해하면서 인물의 행동을 봐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최 │페미니즘이 많이 언급되는 이 시대에 제 소설 속 캐릭터는 낡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알고는 있지만 어쩔 수 없이 밥 때문에, 먹고 사는 문제 때문에,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 여성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 상황을 직접 목격도 했고, 그런 상황을 보며 눈물이 날 때도 많았어요.

 

-김 │ 소설 속 아버지, 남편, 아들, 애인 등 남성들은 성적대상으로 여성을 욕망하는 데 집중하고 있고, 여성들은 존중받지 못하는 돌봄 노동 속에서 학대당하고 폭력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여성들은 그런 남성들에게 사랑을 갈구하고 있지요. 젠더적 위계성이 굉장히 도식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최 │글이라는 것은 내 의식의 반영입니다. 두 번째, 세 번째 소설에서는 조금 다른 여성을 그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독자 질문제가 「환불」을 읽었는데, 작가가 독자들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애매모호했습니다. 작가의 의도를 듣고 싶습니.

 

-최 │ 이것은 밥 이야기입니다. 밥 먹는 이야기이자, 밥 먹기 위한 사람들의 이야기입니. 제 의도는 그렇습니다.

 

 

-김 │ 소설 속 '수진'이라는 인물을 묘사할 때 헤픈 육체라 표현을 쓰셨는, 전체 소설집 중 수진이라는 등장인물이 가장 자유로운 인물이라고 생각해요.

 

-최 │ 그 말을 듣고 보니 그렇네요. 수진에게 다시 찾아가 봐야겠습니다. (웃음)

 

-김 │작가도 계속 공부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소설을 쓰고 책을 내는 것은 작가 자신을 성숙하게 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고요. 이후에 작가님 소설 속 남성과 여성이 어떻게 관계 맺게 되는지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최 │ 소설 쓰면서 인간 됐다는 말 많이 해요. 작가일 때와 독자일 때가 참 다르더라고요. 소설을 쓰면서 자유로워졌어요. 내가 인간이 되었다는 것에 보람을 느낍니다.

어떻게 하면 좀 잘 쓰고 제대로 된 작품을 쓸까 고민하고 있고요. 쓰고 있는 장편이 잘 되면 좋겠습니다.

 

-김 │소설 속 인물들도 인간이 되어가면 좋겠습니다. 소설 속 인물들이 너무 고착되어 있어서 좀 안타까웠습니. 작가님이 자유로워졌듯이, 작품 속 인물들도 자유로워지면 좋겠습니.

 

-최 │그 사람들이 인간이 되면 소설이 될까요? (웃음)

 

-김 │ 인물들을 잘 보내주는 것도 작가의 몫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독자 질문 │요리가 작품마다 중요하게 나오는데요. 작가가 일상생활에서 요리로 치유를 받은 적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최 │요리를 먹으면서 위로가 많이 받습니다. 저는 술을 좋아해요. 혼술도 좋아하고요.

머릿속에 떠오르는 메뉴를 만들어서 먹으면 내가 치유가 돼요.

작품 속에 고등어탕이 나옵니다. 엄마가 해준 고등어탕을 먹으면 모든 근심이 사라질 것 같아요.  요리가 인간의 상처를 치유하는 능력이 굉장히 크다고 생각합니.

실제로 제가 요리를 잘하기도 합니다. (웃음)

 

-김 │첫 번째 소설을 내시는 것이 제목과도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

작가가 닫힌 문을 열고 나오는 거라면, 방을 나온 작가와 인물이 어디로 가는지 지켜봐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최 │네, 늘 잘 쓰려고 머릿속에서 소설이 떠나지 않죠.

그런데, 앞으로 어떤 소설을 쓰고 싶은지는 안 물어보시나요? (웃음)

어느 행사에 가니까 마지막에 물어보시길래 준비해왔는데... 

저는 쥐스킨트의 『향수』를 너무 좋아해. 제가 지향하는 것은 장르와 정통문학을 결부시켜 잔인하면서 슬프고도 아름다운 작품을 쓰는 거예요. 

그렇게 신들린 것처럼 쓰는 것은 힘들겠지만 그게 제 목표입니.

 

 

 

  한 해 동안 열심히 달려왔던 산지니 저자와의 만남이 이렇게 마무리되었습니다.

2019년의 첫 번째 저자와의 만남은 창작동화 『해오리 바다의 비밀』과 함께 시작합니다.

[행사 알림] 90회 산지니 저자와의 만남

 

(더 자세한 내용은 여기로 →) http://sanzinibook.tistory.com/2663

조미형, 박경효 작가님과의 만남에 많은 분들 참석 기다리겠습니다. :)

 

모두 따듯한 성탄절 보내세요!

 

MERRY CHRISTMAS, HAPPY NEW YEAR!!

 

 

방마다 문이 열리고 - 10점
최시은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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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에디터날개

제 89회 산지니 저자와의 만남은 <방마다 문이 열리고>의 저자,

최시은 작가님과 함께합니다.

 

 

최시은 작가의 첫 번째 소설집

<방마다 문이 열리고>

 


 

연일 계속되던 비가 그치니 이제야 차가운 겨울 공기가 느껴집니다.

깊어가는 겨울밤, 여러분을 최시은 작가가 펼쳐놓는 이야기 세계로 초대합니다.

방마다 문이 열리면……

열린 문 너머에는 어떤 이야기가 감춰져 있을까요?

궁금하신 분들은 12월 20일 목요일 저녁 7시에 '산지니X공간'으로 오시면 됩니다. 

행사의 진행과 대담은 김대성 문학평론가가 맡아주셨습니다.  

 

 

 

 

 

일시 : 2018년 12월 20일 목요일 늦은 7시
장소 : 산지니X공간
         (부산 해운대구 센텀중앙로 97, 센텀 스카이비즈 A동 710호)

 

 

 

방마다 문이 열리고

최시은 작가의 첫 소설집. 행복해 보이기만 하는 세상의 문들이 열린다. 이번 소설집 방마다 문이 열리서는 폭력, 상처, 가난, 아픔 등 저마다의 삶 속에 녹아 있는 말 못할 고통의 시간들을 들여다본다. 냉동창고, 토막살인, 강간범, 개장수, 탈북 여성, 누에, 복어 등 날것의 소재들이 현장감 있게 소설 속에서 그려지는데, 그만큼 작품 세계가 단조롭지 않다. 딸을 강간한 두 번째 남편을 고소하지만, 막상 생계를 위해 그의 항소를 도울 수밖에 없는 여자나 토막 살인범일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안고 그의 앞에 스스로 걸어들어 가는 여자와 같이 복잡하게 얽힌 삶의 비릿한 냄새를 쫓아간다. 섬세한 묘사로 완성한 최시은 소설집 방마다 문이 열리고는 삶의 거친 숨결을 느끼며 긴장감을 놓을 수 없는 작품들로 가득하다.

 

 

 

최시은 1970년 경상북도 울진에서 태어났다. 그곳 어촌들 대부분이 그렇듯 내가 태어난 곳도 농업과 어업을 함께했다. 그랬으므로 바다와 산은 자연스레 나의 성장 배경이 되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부산으로 이주, 영도 산동네에서 지독히 가난한 학창 시절을 보냈다. 중학교 때 어렴풋 작가를 꿈꾸었으나 포기. 대학에서 문학을 본격적으로 공부, 잡다하게 책을 읽었다. 마흔에 소설 공부를 다시 시작. 2010년 진주가을문예로 등단. 그러나 여전히 소설은 어렵다. 부산작가회의, 부산소설가협회 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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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에디터날개

지난 12월 1일 토요일, 유난히 춥던 날.

故 윤일성 교수님의 1주기를 기념한 추모 학술행사 및 추모식이 있었습니다.


어쩐지 무거운 발걸음을 이끌고 부산대 상남국제회관으로 향했는데,
선생님을 기리기 위해 많은 분들이 와계신 것을 보고 금세 마음이 훈훈해졌습니다.

 

 


▲ 참석자들을 환하게 반겨주시는 교수님

 

 

방명록에 쓰여진 “윤일성 교수님, 보고 싶습니다.”라는 문구가 따뜻했습니다.

 

 

추모식장 한쪽에는 교수님의 사진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참석하신 분들께는 산지니에서 출간된 유고문집 <도시는 정치다>
추모문집 <시인의 마음으로 새로운 부산을 꿈꾸다>를 나누어드렸습니다.

 

 

 

故 윤일성 교수님


부산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부산참여연대 도시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셨습니다. 2012년 부산 북항라운드테이블을 꾸려 방향을 제시했고, '포럼지식공감' 회원으로 활동하며 도시발전을 위해 활동하셨습니다. 또한 2012년 <해운대 관광리조트의 도시정치학>이라는 논문으로 부산 토목사업의 민낯을 속속들이 밝히며 '부산 엘시티 사태'를 예견했습니다. 이후로도 계속해 바람직한 도시 발전을 위한 활동을 하시다 2017년 12월 1일 타계하셨습니다.

 

 

 

 

▲ 학술행사 모습

(왼쪽부터 상지대 문화콘텐츠학과 홍성태 교수, 정현일 부산대 사회학과 박사과정, 장세훈 동아대 사회학과 교수, 민은주 부산경남생태도시연구소 기획실장, 신원철 부산대 사회학과 교수)

 

 

추모행사는 크게 1부 학술행사와 2부 추모식으로 나누어졌습니다.

 

신원철 부산대 사회학과 교수님의 사회로 시작된 학술행사에서는

선생님의 제자인 정현일 부산대 사회학과 박사과정 학생의 시티 검찰수사의 성과와 한계: 어떻게 할 것인가? , 장세훈 동아대 사회학과 교수님의 의리(義理)의 사회학’을 통해 본 도시정치, 민은주 사)부산경남생태도시연구소 기획실장의 부산의 도시개발과 시민사회의 대응까지 여러 발표가 있었습니다.

 

교수님이 남기고 가신 미완성 논문을 함께 읽으며 살펴보기도 하고, 함께 공부했던 동료 교수로서 말씀해주시는 교수님의 업적을 나누고, 행동했던 도시연구소의 회원으로서 선생님과의 추억을 듣기도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 해운대 해안가를 바라보며 도시 경관에 대해 설명하고 계신 윤일성 교수님

 

 

잠깐의 휴식 시간을 가진 후 2부에는 교수님을 기리는 추모식이 있었는데요.

 

추모 사업회에서 준비하신 영상에서는 생전에 도시를 위해 활발히 연구하고 활동하셨던 교수님의 모습을 생생하게 볼 수 있었습니다. 수영만 요트 경기장, 엘시티, 부전도서관 등 부산 곳곳에 교수님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부산에 난개발 광풍이 몰아치던 지난 10여 년 동안, 온몸으로 맞서 개발 카르텔 세력과 전쟁을 벌여온 윤일성 교수님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서 선생님에게 왜 ‘행동하는 도시사회학자’라는 이름이 붙었는지 알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또한 생전에 그렇게 지키고 싶으셨던 아름다운 해운대 해안가,(지금은 고층빌딩 엘시티의 공사 중인 곳) 근처 미포에 뿌려지는 선생님의 유골을 보며 모두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이후에는 추모사를 들었는데요.

윤일성 교수님의 동료셨던 부산대 사회학과 김문겸 교수님은 윤일성 교수님이 생전에 휴대폰을 가지고 다니지 않으셨다는 말씀을 하시면서, "아날로그적 소통을 좋아하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저 하늘나라에서는 연락이 닿게 휴대폰을 꼭 하나 만들어달라."는 말씀을 해서 울고 있던 모두에게 웃음을 주시기도 했지요.

 

한 사회학과 재학생은 선생님의 빈소에 손편지를 놔두고 갔다고 했는데요. 그 손편지를 직접 읽어주셨습니다. 평소에 시를 사랑하셨던 교수님께서 수업마다 시를 소개하는 시간을 가진 것이 아직 기억에 남는다고 말하셨습니다. 그래서 교수님께 바치는 시를 읊어주셨습니다.

 


 

      네가 가고 나서부터 비가 내렸다.

내리는 비는 점점 장대비로 변해가고 그 빗속을 뚫고 달리는
버스 차창에 앉아 심란한 표정을 하고 있을 너를 떠올리면서
조금씩 마음이 짓무르는 듯했다
사람에게는,
때로 어떠한 말로도 위안이 되지 못하는 시간들이 있다
넋을 두고 앉아 하염없이 창밖을 내다본다거나
졸린 듯 눈을 감고 누웠어도 더욱 또렷해지는 의식의 어느 한 부분처럼

네가 가고 나서부터
비가 내렸다
너를
보내는 길목마다.

 

- <네가 가고 나서부터 비가 내렸다>, 여림

 


 

추모사가 끝나고는 사회학과 제자분들의 추모공연도 있었고요. 해양수산부 김영춘 장관과 정관용 시사평론가는 먼 곳에서나마 추모 메시지를 영상으로 보내주셨습니다. 김석준 부산광역시 교육감과 박영미 부산인재평생교육원 원장은 직접 추모사를 낭독하셨습니다.

 

유가족 인사에서 아드님은 교수님의 유언을 언급하시며, 많은 분들이 교수님을 기리기 위해 참석하신 것을 보면 교수님은 참 행복한 사람이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유언

 

자유롭게 흘러 다니고 싶으니
유해는 화장해서 바다에 뿌려달라.
나는 행복하게 하고 싶은 일 하다 간 사람이니
슬퍼하지 말라.
길고 짧게 사는 건 중요하지 않다.
슬퍼하기보다는
윤 교수 잘살다 갔다고 말해주기 바란다.

 

 

 

 ▲ 추모식 참석자 단체사진

 

 

사람들이 더불어 살 수 있는 도시 공간을 꿈꾸던 故 윤일성 교수님.
교수님을 이제 볼 수는 없지만, 더 이상 슬퍼하지는 않기로 했습니다.
교수님을 기리는 많은 분들이 모여 교수님이 도시를 위해서 애쓰신 못다 이룬 일들을 계속해나가기로 다짐했기 때문입니다. 교수님을 추모하며, 교수님이 염원했던 토건 중심이 아닌 사람 중심의 부산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윤일성 지음420쪽 30,000원 2018년 12월 1일 출간

 

 

한국의 대표 도시사회학자 故 윤일성 교수의 도시 연구와 활동들을 정리한 유고 문집. 부산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도시의 난개발을 막고 공공성을 추구하는 다양한 활동을 펼쳤던 그의 논문(미발표 논문 포함)들을 엮었다. 이 책은 도시 정치의 관점에서 도시의 성장, 재생과 문화를 살펴본다. 토건주의 세력의 이익을 위한 부산시 난개발의 사회정치적 구조와 동학을 밝히고 해운대 엘시티 사업 비리라는 구체적 사례를 모아 고발한다. 끝으로 도시 성장과 재생의 밑거름이 되는 도시 문화의 단상들을 모아 도시에 대한 공간의 사회학으로 나아가는 발판을 마련한다.
도시는 공익과 사익, 집단적이고 개인적인 권익과 이권 등이 서로 맞서고 다투는 무대인 동시에 불의와 비리에 저항하며 보다 바람직한 방향으로 도시를 바로 세우려는 신산스러운 노력의 결정체이다. 그런 점에서 도시는 정치다.

 

 

 

도시는 정치다 - 10점
윤일성 지음/산지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