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전성욱 평론가의 문화 읽기17 [감성터치] 물건의 옹호 / 국제신문 [감성터치] 물건의 옹호 전성욱'오늘의 문예비평' 편집주간·문학평론가 무소유가 번뇌로부터 벗어나는 자유의 길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세속의 삶이란 늘 이런저런 것들의 소유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분쟁들로 시끄럽다. 실은 그 소유의 욕망이야말로 이 거대한 소비의 체제가 지탱될 수 있는 바탕인 것이니까. 버려야 채울 수 있다는 위대한 역설에도 불구하고, 갖고 싶다는 그 채움의 물욕은 결코 만족을 모른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만, 버림과 비움을 통해 자제를 실천하는 빈자(貧者)의 행복이란 것이 어디 말처럼 쉬운 경지인가. 그렇다면 차라리 무소유라는 궁극의 가르침보다, 제대로 소유하는 것의 방법을 궁리하는 것이 비천한 우리들의 일상에서는 더 절실한 문제가 아닐까 싶다. 나는 왠지 '물건'이라는 말이 참 좋다. .. 2014. 3. 24. 중국몽에 이르는 길-이종민의 <<흩어진 모래>> ** 이 글은 한국중국현대문학학회에서 발간하는 학술지 의 제67호(2013. 12.)에 수록된 글입니다. 중국몽에 이르는 길: 이종민, (산지니, 2013) 1 주체는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자기를 발견한다. 동아시아는 서구와의 교섭과 충돌을 거치며 그 나름의 모더니티를 모색하고 형성해나갔다. 그것은 이른바 외재적인 이식근대화론이나 내재적인 자생근대화론의 이념적 서술들로 단순화될 수 없는 복잡한 계기들의 난조건 속에서 전개되었다. 그러니까 동아시아의 근대화는 중세에서 근대로의 순조로운 이행이나, 서세가 동점하는 매끄러운 동일화의 과정이 아니라 전통의 계승과 단절, 서구문물의 이입과 퇴거가 교착하는 가운데 이루어진 혼란스런 이질화의 과정이었다. 자기 안에 들어온 낯선 타자는 굴절된 형상으로 주체의 내면에 맺.. 2014. 2. 21. 독서권장의 정치-‘2013 가을 독서문화 축제’ 참관기 가을을 독서의 계절이라고 우길 수밖에 없게 된 데에는, 책 읽는 것이 그렇게 계몽의 대상이 될 만큼 비범한 일처럼 되었기 때문이리라. 국민이 근대적 지식을 다함께 나누어 갖는 무리라고 할 때, 독서국민의 탄생 이래로 국어의 습득과 함께 국어로 된 출판물의 독해는 근대화의 중한 과제여야만 했다. 그런 의미에서 ‘국민학교’는 독서 인구를 창출하는 근대화의 유력한 기구였다. 그러나 식자층의 확대가 그대로 독서 인구의 양적 확대로 이어질 순 없었고, ‘책’을 읽는 ‘독서’는 단순한 동사적 행위를 넘어 근대국가의 장구한 기획 안에서 중대한 계몽의 대상으로 재편되었다. 물론 독서를 근대적 기획의 전부인 것처럼 말해서는 안 된다. 오래 전부터 글을 읽는 것은 식자층이라 불렸던 엘리트들의 가장 몰두한 일이었다. 조선의.. 2013. 10. 5. 베이징 기행 세 번째 중국행이었지만 베이징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나는 여행 전날에 있었던 학술대회에서 사회를 맡았다. 여느 때처럼 선후배들과 어울려 늦게까지 술자리를 하고 싶었지만, 다음 날의 여행을 생각하며 아쉬운 마음을 접고 일찍 집으로 돌아왔다. 특히 한국전쟁 직후에 활동한 이른바 전후 작가들 중에서도 장용학을 이중 언어적 관점에서 분석한 한 후배의 발표에 대해서는 토론할 거리가 많았다. 식민지기에 일본어 교육을 받고 해방 이후에 한글로 소설을 창작했던 이른바 전후 세대 작가들의 언어적 심층에 대한 해명은 문학사의 긴요한 과제다. 그러나 언어적 감각의 심층에 접근하는 일은 당시의 교육과 언론 매체들과 같은 언어의 물적 토대에 대한 탐구에서부터 이중 언어적 상황의 역사적 맥락에 대한 정치한 분석에 이르기까지 상당.. 2013. 9. 5. 모더니즘이라는 파르마콘 늦둥이로 태어나 생각이 또렷해질 무렵 내 부모는 마치 조부모처럼 느껴졌다. 나고 자란 곳마저 워낙 벽촌이었던 터라 어린 시절 나는 내 또래의 감수성과는 좀 다른 느낌으로 이 세계를 살고 있었던 것 같다. 돌이켜보면 흔히들 ‘근대’라고 부르는 그런 세계 이전의 시간적 감각 속에서 나는 홀로 외로웠다. 그래서일까? 나는 방학이 되면 한 번쯤 방문하게 되는 인근 도시의 그 화려함에 매혹되어 내가 살고 있는 세계에 대한 저주의 마음을 품기까지 하였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도 그 매혹이란 문명의 감각이라고 할 수 있는 어떤 것이 아니었을까. 더 노골적으로 말한다면 그것은 분명 근대를 향한 동경이었으리라. 나를 낳고 자라게 한 그 세계는 자연에 가까웠고 인정의 세태 또한 지금과는 많이 다른 원시성의 연대로 .. 2013. 8. 26. 제주의 비경 - <지슬>과 <비념> 현기영의 「순이 삼촌」(1978)을 읽지 않은 대개의 사람들은 아마도 제목의 그 ‘삼촌’이라는 말을 쉽게 오해하고 될 것이다. 남녀 구분 없이 가까운 이웃을 일컫는 이 말에 대한 뭇 사람들의 오해만큼이나 제주에 대한 나의 이해는 일천하다. 제주에 대한 내 인식의 기초는 국민국가의 논리로 학습된 네이션의 감각에 깊이 연루되어 있을 것이 분명하다. 다시 말해 제주란 나에게 경험을 초월한 저 아득한 관념의 지평 어딘가에 있다. 화산의 섬 제주가 대한민국의 국토가 아니었다면 나는 아마 제주에 대해 지금과는 많이 다른 심상들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제주는 역시 세상의 다른 모든 것이 그러한 것처럼 가 닿기 힘든 심원한 기표다. 이런 저런 독서와 공부로 얼룩진 내 심상의 지리 속에서 제주는 무엇보다 4・3의 장소다.. 2013. 6. 26. 이전 1 2 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