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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취재후기]<왜성, 재발견>후일담8

EP.2 간절곶엔 포켓몬만 있는 게 아니에요! [취재후기] 후일담 EP.2 간절곶엔 포켓몬만 있는 게 아니에요! 요즘 포켓몬 모바일 게임 때문에 더 유명해진 울산 울주군 서생면 간절곶에서 멀지 않은 곳에 진하해수욕장이 있다. 부산 해운대나 광안리와는 비교할 수 없는 작은 규모의 해수욕장이지만 회야강 하구와 연결된 주변 경관이 참 ‘이쁜’ 곳이다. 이 해수욕장을 끼고 있는 마을 서쪽 야산으로 조금만 오르면 서생포 왜성을 만날 수 있다. 임진왜란 때 왜군 선봉장 고니시 유키나가에 이어 두 번째로 조선에 쳐들어왔던 왜장 가토 기요마사가 쌓은 성이다. ▲ 서생포 왜성, 『역사의 블랙박스, 왜성 재발견』의 표지 사진이기도 하지요. 1990년대 초에 기사 취재 때문에 처음 이 서생포 왜성을 찾아보고 받았던 강렬한 인상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성벽의 보존 상태.. 2016. 9. 2.
EP.1 왜성이 뭐예요? 뭐 뭐예요? [취재후기] 후일담 EP.1 왜성이 뭐예요? 뭐 뭐예요? “왜성이요?” “예. 왜성이요.” “근데, 왜성이 뭔데요?” 왜성을 취재하며 취재원들에게 가장 많이 들은 말은 “왜성이 뭔데요?”라는 질문이다. 왜성을 취재하며 왜성이 무엇인지부터 설명해야만 하는 답답함이란…. 심지어 왜성 관리를 책임지는 지방자치단체 담당 공무원으로부터 “왜성이 뭔데요?”라는 질문을 받을 때는 황당함을 넘어 버럭 화가 치밀기도 했다.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용마산에 있는 마산왜성을 취재할 때다. 현재 마산왜성은 산호공원으로 바뀌어 있다. 기본현황을 파악하기 위해 마산합포구청 누리집(masanhp.changwon.go.kr)에 들어갔더니 ‘산호공원은 일명 용마산성이라 불리며 선조 25년(1572년)에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착공하.. 2016. 8. 4.
5화-왜군, 진해에 수군기지를 건설하다-진해 웅천, 안골, 명동, 자마 왜성 역사의 블랙박스, 왜성 재발견 5화 :: 왜군, 진해에 수군기지를 건설하다 -진해 웅천, 안골, 명동, 자마 왜성 진해는 한·일 교류사에 있어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임진왜란 때는 전쟁 기간 내내 조선 수군과 일본 수군의 격전지였다. 서해로 진출하려는 왜군이나, 왜군 본거지인 부산을 되찾으려는 조선 수군이나 진해 앞바다를 피해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1592년 5월7일 거제 옥포에서 벌인 첫 전투(옥포해전)에서 대승리를 거둔 조선 수군은 달아나는 왜군을 진해 앞바다까지 쫓아가 왜선 5척을 격침(합포해전)시키고 회군했다. 같은 해 7월9일 한산도해전에서 또다시 대승리를 거뒀을 때도 조선 수군은 진해 안골포까지 왜군을 쫓아가 왜선 30척을 불사르고 철수(안골포해전)했다. 조선 수군은 다음해.. 2016. 5. 27.
4화-왜장 가토, 우물 없는 ‘철옹성’에 갇히다-울산왜성 역사의 블랙박스, 왜성 재발견 4화 :: 왜장 가토, 우물 없는 ‘철옹성’에 갇히다 -울산왜성 ■ ‘독 안의 쥐’를 놓치다 “여러 적 중에 청정(淸正·가토 기요마사)이 가장 강하니 청정을 격파한다면 나머지 적은 셀 것도 못 되오이다.” 임진왜란 6년째 정유재란이 터지던 해인 1597년 음력 섣달 그믐날, 조선 국왕 선조는 조선에 파견된 명군 최고지휘관인 군문 형개(邢玠)를 만나 조·명 연합군의 울산전투 승전 상황을 축하하면서 “곧 가토를 사로잡게 됐다”는 형개의 말에 고무돼 이렇게 답했다고 에 기록돼 있다. 하지만 설 쇠고 9일째 되는 날 선조는 이미 닷새 전 조·명 연합군이 왜군에 대한 포위를 풀고 경주로 후퇴했다는 ‘허무한’ 보고를 받아야 했다. 이 울산전투는 조·명 연합군이 왜란 끝무렵인 1598년.. 2016. 5. 20.
3화-왜구 막아냈던 ‘신라 의성’ 에 왜성이 들어서다 - 부산 구포·양산·호포 왜성 역사의 블랙박스, 왜성 재발견 3화 :: 왜구를 막았던 '신라의성'에 왜성이 들어서다 -부산 구포·양산·호포 왜성 시인 김용호(1912~1973)는 그의 대표 장시 에서 “칠백리 굽이굽이 흐르는 네 품속에서/우리들의 살림살이는 시작되었다”고 했다. 유구한 세월을 도도히 흘러 남하하면서 반변천·내성천·영강·위천·감천·금호강·황강·남강·밀양강·양산천 등 여러 지천을 품어안고 멀리는 가야와 신라 천년의 영욕에서부터 가까이는 6·25전쟁의 참상과 4대강 사업에 따른 몸살까지 겪으면서 영남인들에게 삶의 젖줄이 돼왔다. 1592년 일본이 조선을 침략한 임진왜란 때도 낙동강 수로는 왜군에게 진격, 후퇴, 방어의 중요한 통로가 됐다. 특히 이순신의 조선 수군에 의해 바닷길을 통한 서쪽 진격로가 봉쇄되자 왜군은 낙동강 .. 2016. 5. 13.
2화-임진왜란은 도자기 전쟁이었다?!-부산 기장 죽성리·임랑포 왜성 역사의 블랙박스, 왜성 재발견 2화 :: 임진왜란은 도자기 전쟁이었다?! -부산 기장 죽성리·임랑포 왜성 “멀리 기차소리를 바람결에 들으며, 어쩌다 동해 파도가 돌각담 밑을 찰싹대는 갯마을.” 난계 오영수(1909~1979)의 단편소설 첫머리에서 이렇게 묘사한, 소설의 실제 배경이 된 마을은 부산 기장군 일광면 학리 또는 이을포로 알려져 있는데요, 이 마을들과 동해안을 따라 남북으로 이웃한 곳에 각각 기장군 기장읍 죽성리와 장안읍 임랑포 마을이 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도시문명과는 거리를 둔 한적하고 외진, 그래서 더욱 평화로운 해안 포구죠. 420여년 이런 마을에도 임진왜란의 광풍은 그냥 비켜가지 않았습니다. 1592년 음력 4월 보름 부산 동래읍성을 함락한 왜군은 세 길로 나눠 북상하면서 이.. 2016. 4.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