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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지니 책/문학

소금처럼 스며드는 시어들이 빛을 발하다-『소금 성자』(책소개)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5. 9. 23.

산지니시인선 002


소금 성자

정일근 시집





구체적인 삶을 통한 희망가,

궁극의 서정을 말하다



히말라야 설산 높은 곳에서 흘러내리는 물을 받아// 물속에 숨어 있는 소금을 받아내는 평생 노역이 있다// 소금이 무한량으로 넘치는 세상// 소금을 신이 내려주신 생명의 선물로 받아// 소금을 순금보다 소중하게 모시며// 자신의 당나귀와 평등하게 나눠 먹는 사람이 있다. _「소금 성자」, 전문.


정일근의 열두 번째 시집 『소금 성자』가 산지니에서 출간되었다. 서정시인 정일근은 198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등단 이후 『바다가 보이는 교실』(1987), 『기다린다는 것에 대하여』(2009) 등 30여 년간 꾸준히 시집을 발표해온 중진시인이다. 특히 구체적인 삶을 통하여 희망을 노래하는 시인으로서 주목받고 있는 그의 시세계는, 일상의 경험이 빚어낸 아름다운 모습으로 묘사되고 있다. 이번 시집 『소금 성자』에는 “소금을 받아내는 평생 노역”인 히말라야의 한 노인과 그가 받아내는 소금 이야기가 담겨졌다. 구모룡 문학평론가는 시의 주인공과 소금의 관계를 시인과 시의 관계로 읽어내며, 시인이 “삶의 미궁에서 궁극의 시를 말한다"고 읽는다. 무감각해지는 현대사회 속 궁극의 서정을 담아내는 정일근 시인이 그리는 세계는 이번 시집 『소금 성자』에서 소금처럼 빛을 발할 것이다.


기다림과 그리움의 미학



첨성대 앞 나무의자에 앉아 있다 비단벌레차를 기다린다 온다는 시간 지났다 나는 매표원에게 항의하지 않는다 이렇게 기다려본 지 오래다 기다리는 동안 계림의 황금 가을이 나에게 온다 아름다운 호사다 비단벌레차가 천년 전에 출발했든 천년 후에 도착하든 조급하지 마라 신라가 나에게 오는 데 천년이 걸렸다 오늘 내게 중요한 것은 너를 기다리는 일 내 손에 탑승권이 있으니 만족한다 비단벌레차가 오고 있나 보다 황남동 쪽 어디에서 푸른 사랑의 섬광 번쩍하며 눈부처로 내려앉는다. _「비단벌레차를 기다리며-경주 남산」, 전문.


이번 시집은 ‘기억’과 ‘그리움’이 감각의 근원을 이룬다. 정일근 시인은 1980년대 ‘새로운 서정’의 지역문학운동을 개진한 바 있는데, 이 ‘새로운 서정’에는 세상을 바꾸자는 시인의 꿈과 희망이 담겨 있었다. 구모룡 평론가는 1990년대 이후 정일근 시인은 삶의 거처가 옮겨지고 그의 시세계에도 변화를 보이고 있다고 말하였다. 구체적인 장소가 매개가 되어 시인의 ‘움직이는 시’세계 또한 순례의 과정을 보이는 것이다. 「비단벌레차를 기다리며-경주 남산」에서 드러나듯 기억은 기다림과 다가오는 것들, 그리고 저 너머 세계에 대한 근원적 그리움을 안고 화자에게 돌아온다. 「고래, 52」 또한 한국의 대표적인 고래보호운동가인 그가 ‘고래’를 유토피아의 표상으로 생각하여 숭고한 아름다움을 그려낸 시다.


삶과 죽음을 껴안는 생명의 긍정성



우수서 경칩까지 같이 걸어와 보니, 아니다/ 응달에 쑥 수북하다, 산수유꽃 터진다// 저건 어느 땅 한줌이든 버리지 않는/ 은현리의 가르침, 부지런히 볕 찾아/ 청솔당 문 앞 시멘트 바닥 갈라진 틈새마다// 봄까치꽃, 별꽃 스스로 지천이다. _「우수서 경칩까지」, 부분.


‘움직이는 시’로서 정일근 시인의 시세계가 압축적으로 드러난 부분이 시인이 현재 거주하는 장소인 ‘은현리’이다. 그는 “은현리 유월, 꽃 한 송이 피운 뒤에 또 한 송이 피우며 접시꽃이 걸어”(「접시꽃이 걸어간다」)가는 모습을 묘사하기도 하며, “어느 땅 한줌이든 버리지 않는/ 은현리의 가르침”(「우수서 경칩까지」)을 들며 생명과 자연에 대한 경외를 표현한다. 이처럼 끊임없이 생동하는 자연사물의 움직임을 오로지 시인의 경험에 의존하여 서술함으로써 시적 공감을 획득할 뿐 아니라, 시적 화자와 다양한 의미망으로 연결되어 있는 자연사물의 인과관계를 특유의 서정성으로 아름답게 그리고 있다.


삶의 미궁에 놓인 궁극의 시



시인이 제 피 찍어 시 한 편 쓰지만/ 마침표는 죄의식처럼 찍어야 한다/ 이 시가 끝났다는 시의 마침표는 되겠지만/ 그건 시인의 마침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 시는 시인과 함께 살아 있는 생물이어서/ 시인의 눈물로 고쳐지고 또 고쳐지며 시는 살아 있어야 한다 _「마침표」, 부분.


이 시집은 정일근 시인이 198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 이후 등단 30주년을 기념하여 출판되었다. 따라서 정 시인이 갖고 있는 시에 대한 생각과 철학이 보다 압축적으로 묘사되기도 했는데, 이는 “자갈밭에 제 몸 굴려가며 시의 뼈를 깎아야 한다”(「별이름 루婁에 대하여」), “미궁의 시”(「미궁의 시詩」), “미궁에서 찾아온 시”(「미궁에서 찾아온 시詩」)와 같은 시어들에서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특히나 시인은 시인의 수행성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데 시집의 표제이기도 한 『소금 성자』처럼 한 편의 시를 쓰는 일이 “소금”처럼 읽는 이에게 스며들 수 있으리라 믿는다. 삶의 미궁에서 궁극의 시를 찾는 과정이 빚는 그의 ‘새로운 서정’은 80년대 이래 여전히 역사성을 가지고 전진할 것이며, 등단 30주년을 맞이한 현재에도 끊임없는 운동성을 갖고 지속될 것이다.

특히 이 시집은 시인이 인세 전액을 대한적십자사를 통해 네팔 지진 구호성금으로 내놓아 ‘착한 시집’으로도 의미를 가지며, 정일근 시인은 내년 1월 네팔 신두팔촉 지역에서 있을 대한적십자사의 구호활동에 직접 참가한다.





글쓴이 : 정일근

경남 진해에서 태어났다. 경남대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재학 중인 1984년 무크 『실천문학』과 198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바다가 보이는 교실』(1987), 『유배지에서 보내는 정약용의 편지』(1991), 『그리운 곳으로 돌아보라』(1994), 『처용의 도시』(1995), 『경주 남산』(1998), 『누구도 마침표를 찍지 못한다』(2001), 『마당으로 출근하는 시인』(2003), 『오른손잡이의 슬픔』(2005), 『착하게 낡은 것의 영혼』(2006), 『기다린다는 것에 대하여』(2009), 『방!』(2013) 등이 있으며 『소금 성자』(2015)는 시인의 열두 번째 시집이다. 현재 경남대학교 문과대학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로 일하고 있다. 그동안 시와시학젊은시인상, 소월시문학상, 영랑시문학상, 지훈문학상(시), 이육사시문학상, 김달진문학상(시), 한국예술상(시) 등을 수상했다.



소금 성자 | 산지니시인선002

정일근 지음 | 문학 | 46판형 양장 | 102쪽 | 10,000원

2015년 9월 22일 출간 | ISBN : 978-89-6545-316-1 03810

정일근의 열두 번째 시집. 구체적인 삶을 통하여 희망을 노래하는 시인으로서 주목받고 있는 그의 시세계는, 일상의 경험이 빚어낸 아름다운 모습으로 묘사되고 있다. 이번 시집 <소금 성자>에는 '소금을 받아내는 평생 노역'인 히말라야의 한 노인과 그가 받아내는 소금 이야기가 담겨졌다. 구모룡 문학평론가는 시의 주인공과 소금의 관계를 시인과 시의 관계로 읽어내며, 시인이 '삶의 미궁에서 궁극의 시를 말'한다고 바라본다.


차례



소금 성자 - 10점
정일근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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