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의 윤리성은 지식과 지적 주체의 관계에서 빚어진다. 물론 지식은 지적 주체가 생산하지만, 지식의 윤리성이란 그 지식을 매개 삼아 지적 주체 자신이 변화할 수 있는가의 여부와 관련된다." (본문 17쪽)




▶ 지식 생산에 앞서 지식 생산의 절차를 되묻다

이 책의 화두는 ‘지식의 윤리성’이다. 저자가 말하는 ‘지식의 윤리성’이란 지식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지적 주체가 자기 변화의 계기를 구한다는 의미다. 즉 지식이 논리적으로 완결되어 있는지, 옳은지 그른지만이 아니라 지식과 대면하며 주체가 갱신할 수 있는지를 묻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저자는 먼저 이론, 비평, 사상을 구분하여 사상을 이론이라는 영위에서 끄집어낸 다음 현실감각, 정치감각, 번역감각, 언어감각이라는 감각의 층위로 내려가 현실, 정치, 번역, 언어의 문제를 사상의 관점에서 해명한다. 이 책은 ‘지식의 심층’을 해부하려는 시도인 것이다.



▶ 지식의 세 가지 속성: 정합성, 기능성, 윤리성

저자는 ‘지식의 윤리성’이라는 조어를 만들어 제창한다. 만약 지식을 지적 주체와 지적 대상, 그리고 지적 환경 사이의 산물이라고 생각해본다면, 적어도 세 가지 다른 지식의 속성을 구분해낼 수 있는데, 바로 정합성, 기능성 그리고 윤리성이 그것이다.

우선 지식과 지적 대상 사이에서는 정합성이 관건으로 놓이다. 정합성이란 그 지식이 분석과 증명을 통해 해당 대상을 얼마나 정확히 설명해내느냐의 문제다. 학술 영역에서 지식의 질은 대개 정합성에서 판가름 난다. 하지만 그 밖에도 지식은 기능성과 윤리성을 지닌다. 기능성이란 그 지식이 지적 환경에 어떻게 작용하는지의 문제다. 즉 얼마나 널리 유통되고 현실을 움직이는지, 또한 다양하게 사유를 촉발시키는지와 관련된다. 따라서 지식의 가치는 무엇을 기준으로 재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그러나 정합성 애호증이랄까, 학술계에서는 정합성을 선호하는 경향이 짙다는 것이 저자의 판단이다. 사실 정합성과 기능성은 따르는 논리가 다른데도 기능성은 정합성에 따르는 부수적 효과로 간주되곤 한다. 한편 정합성과 기능성이 내적 긴장관계를 상실하면 정합성을 추구하는 지식은 점차 아카데미화되고, 기능성을 좇는 지식은 저널리즘화되는 편향을 띤다. 그것이 오늘날 학술지는 무료해지고 일반 잡지는 선정적이 되어가는 이유다.



▶ 지식의 윤리성을 주목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저자는 지식의 윤리성을 주목한다. 지식의 윤리성은 지식과 지적 주체의 관계에서 빚어진다. 물론 지식은 지적 주체가 생산하지만, 지식의 윤리성이란 그 지식을 매개 삼아 지적 주체 자신이 변화할 수 있는가의 여부와 관련된다. 그리하여 저자는 이 책에서 다음과 같은 물음을 내놓는다.

지적 주체가 다루려는 대상 안에 지적 주체는 내재하는가. 지적 주체가 생산하는 지식은 주체 자신을 향하고 있는가. 지적 주체가 대상의 일부로 포함되어 있을 때 혹은 대상에 지적 주체가 비치고 있을 때 지적 주체는 통상 지식이라는 말에 담기지 않는 관계성에서 불거지는 문제들과 어떻게 대면할 것인가. 그 경우 어떤 요소를 고려해야 지식은 지식으로서 성립하며 지적 주체는 자신을 쇄신할 수 있는가. 그때 지식의 의미는 전과 어떻게 달라지며, 지적 주체는 어떠한 상황에 내몰릴 것인가.




▶ 이론의 물신화에 맞서 치열한 자기비평에 나서다

1장 「이론, 비평, 사상」은 서론 격인 글이다. 저자는 지식의 윤리성에 관한 성찰을 심화하기 위해 이론, 비평, 사상이라는 세 가지 지적 영위의 차이를 밝히며 이론에 악역을 맡긴다. 즉 이론은 현실을 걸러내 앙상한 논리를 추출한 것으로서, 이론이 물신화되면 반체제 정신도 고급 이론으로 유통된다. 특히 비서구 지식계에서는 이론의 물신화 경향이 짙다.

아울러 저자는 ‘비평’을 좁은 의미의 비평으로부터 해방시킨다. 즉 복수의 주관이 맞붙는 장에서 가격을 매기거나 한쪽의 손을 들어주는 비평과 그런 비평들이 성립하는 지평 자체를 되묻는 비평을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비평은 담론지형의 근저를 추궁하는 실천으로 의미가 확장된다.

그렇다면 ‘사상’이란 자기 사유의 원점을 응시하며 자신을 사고의 위기로 내모는 실천, 바로 자기비평인 것이다. 그리하여 저자는 사상이야말로 바로 지식의 윤리성이라는 심급에 닿는 정신의 영위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 현실감각에 관하여

현대인의 신경은 현대문화가 뿌려대는 복잡한 자극에 시달려 마모된 상태다. 저자는 텔레비전을 비롯한 수많은 매체를 통해 주입받은 과도한 자극으로 말미암아 무뎌진 현실감각을 회복하기 위해 ‘자신의 현실’을 거머쥐기 위한 성찰에 나선다. ‘자신의 현실’을 거머쥐려면 현대인은 예리한 눈을 가져야 하고 민감한 귀를 가져야 하는데, 이런 예민함은 사고의 힘으로 배양되어야 한다. 드러난 것에서 은폐된 이면을 사고하고, 투명함 속에서 불투명함을 발견하고, 우리의 현실이 어떤 담론적 공간에서 주조되었는지를 드러내는 비평의 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 정치감각에 관하여

3장 「정치감각에 대하여」는 정치에 대한 무력감, 피로감, 무관심으로 무뎌진 현대인의 정치감각을 고찰한다. 저자는 성숙된 정치적 사고를 갖추려면 정치=권력 혹은 정치=도덕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거기서 나아가 저자는 ‘정치사고의 구도’를 분석한다. 만약 정치사고의 구도를 피라미드형으로 분포시킨다면, 상층부에는 정권 투쟁, 계급 투쟁 등에 사용되는 이념, 이데올로기, 이론 등의 관념이 자리 잡고 있다. 그 관념들은 정치 투쟁에 활용되어야 하는 만큼 비교적 체계화되어 있으며 가시화되어 있다. 그러나 아래로 내려가면 정치 현상에 대한 대중의 견해, 더 아래에는 그런 견해들 배후에 버티고 있는 생활감각이 자리한다. 저변으로 내려갈수록 이론화 정도는 약하며 가시성이 낮아진다. 또한 정신 구조의 상층부에는 복수이되 제한된 수의 이념과 이데올로기가 경합하고 있지만, 대중의 견해와 감각은 보다 파편화되어 있다. 바로 ‘정치감각’은 이러한 양극을 오가는 정치적 사고를 길러내기 위해 필요한 감수성인 것이다.


▶ 번역감각에 관하여

모든 독서는 오독이고 모든 번역은 오역이라 주장하는 논자도 있지만 저자는 번역의 불가능성을 사상의 관점에서 접근하여 번역은 번역가능한 것이 아니라 번역불가능한 것으로 인해 자유의 경험이 될 수 있으며, 진정한 번역의 자유는 ‘재현’에서 해방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원작의 언어를 번역자 자신의 언어로 해방시키는 과정이 오히려 원문을 향한 충실성이라는 것이다. 아울러 저자는 번역의 사상성, 번역의 정치성, 번역의 위계성을 논하면서 번역의 문제를 언어의 기술적 전환의 문제가 아니라 근대성과 보편성의 문제로 확장시키고 있다.


▶ 언어감각에 대하여

5장 「언어감각에 대하여」는 쓴다는 행위에 대한 이야기다. 모든 사유는 언어를 매개로 하지만 언어에 머루를 수는 없다. ‘쓰기’라는 행위를 통해 텍스트를 만들어내는 것은 자신의 내면세계를 언어로 비추고 잠재된 사고의 편린들이 모습을 갖춰가는 체험이지만, 관성화된 언어감각으로 인한 상투적인 표현은 쓰기의 체험과 사유를 좀먹을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언어감각을 연마하여 자신의 문체를 가다듬고 벼리는 일은 자신을 의심으로 고통과 고독으로 내모는 영위이며, 저자는 여기서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아 나서고 있다.





글쓴이 : 윤여일

수유너머R 연구원이다. 고려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2년간 동경외국어 대학에서 외국인 연구자로 수학했다.

「다케우치 요시미 사상의 원점-루쉰을 단서로」, 「내재하는 중국-다케우치 요시미에게 중국연구란 무엇이었나」, 「사상이 살아가는 법-쑨거의 동아시아론 연구」, 「비평의 장소-가라타니 고진을 매개로 삼아」, 「동아시아라는 물음」, 「방법으로서의 동아시아」, 「동아시아라는 번역공간」, 「틀렸다. 하지만 어디가 얼마나? 그래서?―역사주체논쟁에서 논쟁되지 않은 것들」을 발표하고, 『후쿠시마에서 부는 바람』, 『세계의 사회주의자들』, 『촛불이 민주주의다』의 집필 작업에 참여했다.

『다케우치 요시미 선집1-고뇌하는 일본』, 『다케우치 요시미 선집2-내재하는 아시아』, 『다케우치 요시미라는 물음』, 『사상으로서의 3․11』을 번역하고, 『리저널리즘』, 『현대사상지도』, 『반일과 동아시아』, 『교차하는 텍스트, 동아시아』, 『동아시아, 인식지평과 실천공간』의 번역작업에 참여했다. 『지식의 윤리성에 관한 다섯 편의 에세이』에 수록된 글은 『오늘의 문예비평』에 연재한 「지식의 윤리성」에 미발표 글을 더한 것이며, 『인물과사상』에 「여행의 사고」를, 프레시안에 「동아시아를 묻다」를 연재했다.



▶차례

1장 이론, 비평, 사상

2장 현실감각에 관하여

3장 정치감각에 관하여

4장 번역감각에 관하여

5장 언어감각에 관하여

후기



"「현실 감각에 관하여」를 제외한다면 이 글들은 『오늘의 문예비평』에 1년간 연재한 것들이다. 연재를 마무리한 직후 책으로 묶자는 제안이 왔고 망설인 끝에 한 편을 보태 이런 모습으로 내놓게 되었다. 망설인 이유는 당연히도 애초 구상에 못 미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런 형태로 내보내는 것은 「정치감각에 관하여」는 지금 정권을 겪으며 쌓인 감정들로 써낸 것이라서 이 정권이 끝나기 전에 꺼내놓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긴 정권이 바뀌더라도 이 감정들을 게워낼 수 없을지 모른다."(후기)


『지식의 윤리성에 관한 다섯 편의 에세이』

   ㅣ 크로스크리틱 01


  지은이 : 윤여일

  쪽수 : 196쪽

  판형 : 신국판

  ISBN : 978-89-6545-175-4 04080

  값 : 16,000원

  발행일 : 2012년 4월 23일

  십진분류 : 041-KDC5

                 089.957-DDC21



Posted by 비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