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 시대,

우리 안의 타자를 들여다보다

 

『글로컬리즘과 독일문화논쟁』저자 장희권

 

글로컬리즘과 독일문화논쟁의 저자 장희권 저자를 만났습니다. 벌써 49회를 맞이한 산지니 저자와의 만남. 그리고 이런 기록들이 모여 하나의 역사가 되는 것이겠지요. 이번 산지니 저자와의 만남에서 내건 슬로건은 전 지구화의 거센 파고에 직면한 지역을 살펴보다입니다. 다소 생소한 단어가 먼저 눈에 띕니다. 바로 글로컬리즘이라는 단어입니다. 글쓴이는 학기 중에 문화학에 대해서 공부를 한 적이 있는데 그때 스쳐갔던 개념이라 조금은 반가웠습니다. 

하지만 장희권 저자와 문재원 사회자의 말씀을 듣고 있으니 제가 알던 개념은 아주 작은 범주였다는 것을 새로 느꼈습니다. 저는 글로컬리즘이란 용어가 단순히 지역이 글로벌화된 것으로만 생각했습니다. 물론 수업에서 가볍게 다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지만 지역이 글로벌화된다는 것이 자본주의적 시장경제에 이용당하는 이면일 수도 있다고 말씀하셨을 때아…… 그럴 수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과연 모든 일에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부분이 있을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동전의 양면을 제대로 분석하기 위해서는 저자분과 같은 연구자가 필요한 것이 아닐까요.

 

문재원 부산대 한국민족문화연구소 HK 교수(한국현대문학, 로컬리티 연구)

 

  49회 산지니 저자와의 만남은 부산대 한국 민족문화연구소에 계신 문재원 사회자 진행을 맡아주셨습니다. 문재원 사회자는 로컬리즘에 대해서 연구를 하셔서 그런지 책 내용에 대해 보다 쉽고 편하게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그러면서 '글로컬리즘'과 '독일문화논쟁'이라는 주제가 어떻게 보면 상이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이렇게 묶어서 책으로 나오니 그 교차점이 생기는 부분이 있을 것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끌고 나가주셨습니다.

 

독일에 거주하셨던 장희권 저자분께서는 한국에 온 이후 이주노동자에 대한 문제의식이 새롭게 와 닿았다고 하셨습니다. 유럽에서 실제로 생활한 이주민으로서 현재 한국의 이주노동자의 모습은 잘못되어있다는 것입니다장희권 저자분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가라타니 고진의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가라타니 고진은 『일본 근대문학의 기원』이라는 책을 써내려갔을 당시 미국에 있었는데, 일본문학을 외국인에게 가르친다는 건 그들과 공유하고 있는 문화적 지반이 없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가라타니 고진은 외국인의 눈으로 자국의 문학을 사유할 필요가 있었겠지요.

 

고진은 일본에서는 사유할 수 없었던 지점을 외국인이 된 입장에서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장희권 저자분의 경우에는 반대의 경우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서처럼 서울에서 전학 온 주인공이 엄석대 왕국에 의문을 품은 것처럼 말입니다.

 


 

 

 

글로컬리즘에 대한 하나의 정의를 내리기는 아주 어려웠습니다. 이러한 부분은 수많은 다양성을 두기 때문에 하나로 딱히 정의하기란 어려운 부분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로컬리즘 연구단에서도 장희권 저자분의 학문적 기초가 유럽문화학이어서 그런지 조금 다른 지점이 있었다고 하셨습니다.

 

장희권        로컬이 나타내는 이중적 잣대는 아주 조심하고 위험하게 생각해야 한다. 글로컬리즘을 내세우는 기업들이 현지화를 긍정적으로 보고 있지만 로컬을 자유자재로 주무르기 위한 방편의 하나가 될 수도 있다. 이러한 이중적 전략을 잘 알아야 한다. 글로벌, 이 단어가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지만 '글로컬리즘'에 내포된 이면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서 장희권 저자분께서 퍼즐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장희권        퍼즐을 예로 든다면 각각의 요소들이 수행을 잘하고 있을 때 전체적인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퍼즐의 각 요소요소가 제자리에서 제대로 기능할 수 있을 때, 바로 그때 퍼즐은 완성되고 하나의 집약체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우리나라도 이주노동자가 많은 시기가 있었다. 지금까지 계속되는 외국인 이주여성의 문제들, 외국 교민들의 삶을 떠올려볼 필요가 있다. 언젠가 김해 지역의 이주노동자를 만난 적이 있다. 그때 그 이주노동자는 "내 이름 있어요! 나도 이름이 있어요. 사람들이 저 보고 새끼라고만 불러요." 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나는 분노를 금치 못했다. 우리 사회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보고 느낀 점이 많았다. 이즈음부터 이주노동자 이야기에 많은 관심을 가졌다.

 

그러면서 장희권 저자분은 '지역과 중심'이라는 주제와도 연관하여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지난번 열렸던 <여름 비평학교>에서 강의를 들었던 부분이라 저도 귀를 세우고 들었습니다.

 

 

 

 

장희권        언젠가 제게 독일어 번역을 해달라는 제의가 들어온 적이 있었다. 그때 내게 제시된 금액은 3만원정도였는데, 지역에 거주하는 번역자라서 그랬던 것 같다. 그때 내가 알기로 서울에 있는 지역에서는 5만원을 받는다고 들었다. 그렇다는 건 3만원의 퀼리티와 5만원의 퀼리티가 있다는 것인가. 나는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중앙과 지역의 차이기 때문에 오는 차별이었다.

 

말씀하시는 도중 느껴지는 저자분의 대화로, 지역이 차별받는 현실이 한국사회에 팽배하다고 느꼈습니다. 서울이 아니면, 중앙이 아니면 그 질도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그런 생각들. 어쩌면 이러한 부분은 뿌리 깊게 박혀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장희권        심에서 오는 밑도 끝도 없는 거만함과 그곳에서 촉발되는 위축감. 이런 현실 속에서 로컬의 주체가 가지는 의식이 필요하다.

 

그러면서 문재원 사회자께서는 재빠르게 말씀하셨습니다.

 

문재원        지역과 국가, 중심과 비중심이라는 이러한 이분법적인 나눔이 가장 위험한 해석이 될 수 있다. 모든 현상에는 다양한 관점이 있다. 이분법적으로만 나눈다는 것은 잘못된 해석이 될 수 있다.

 

자꾸만 어두운 이야기만 나온 것 같다는 문재원 사회자의 말씀에 구체화된 타자들의 연대에서 기대할만 한 것들, 낙관적이라고 하기는 그렇지만 보다 긍정적인 전망 또한 보는 것이 있을 것이라 질문을 하셨고 이에 장희권 저자분께서 천천히 답하셨습니다.

 

장희권        제대로 모르는 부분이라 핀트가 맞지 않을 수 있다. 나는 교회를 다닌다. 교회 안에는 다문화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가끔은 들여다보지만 봉사에 참여하고 있지는 않다. 그래서 그런지 실제 현장의 이야기를 하기에는 조금 조심스럽다.

 

 


 

 

 

이어지는 질문들 

Q. 독일문화논쟁에 대해서는 우경화, 보수 또한 진보에 대한 생각을 하게하려는 전략으로써 담은 것인가 하는 점과 독일의 보수 진보 논쟁이 우리나라에 어떤 시사점을 줄 수 있는가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해주시면 좋겠다.

 

장희권       '진보', '보수' 색채도 없는 것이 우리나라의 진보며 보수다. 정통보수라면 비난받을 일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보전하고자 하는 것을 보전하려는 것으로 본다면, 진보도 자신이 하고자 하는 지반을 지키려는 면에서 보수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다시 각설하고, 일본의 보수논쟁을 보아도 이론적으로 탄탄한 기반이 있다.

보수니, 진보니 어느 한 편을 들려고 책을 쓴 것은 아니다. 사회적으로 역사적으로 타당하게 수용할 수 있다면, 전체적인 맥락에서 독일에서 발생한 뉴라이트, 보수, 진보 논쟁을 바라볼 때 우리 나라에도 하나의 시사점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마르틴 발저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서 해주신 장희권 선생님은 마르틴 발저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마르틴 발저는 현재 독일에서 권터 그라스와 더불어 대중적 지명도가 가장 높은 작가입니다. 그의 일련의 글들을 통해 최근 독일사에 대한 모호한 역사인식과 함께 반유대주의적 경향을 내비치고 있습니다. 60년대 후반과 70년대 전반기를 통틀어 독일의 좌파 지식인들 중에 가장 적극적으로 활동한 마르틴 발저는 이후 보수적 색채를 분명하게 드러냈습니다. 진보적인 성향을 가졌던 그가 지금은 가장 독일적인 것을 강조하는 우파로 불리고 있습니다.

 

장희권        마르틴 발저의 경우 확실하게 갈린 평은 없다. 2006년부터 마르틴 발저에 관해서 연구했고 이에 많은 논의가 이뤄졌다. 마르틴 발저의 경우에는 독일의 프라이드를 가지라는 일종의 완벽한 독일상에 대해서 주장했다. 다만 발저가 한 행동 중에서 아쉬운 것은 정적의 치부를 건드리거나, 논란거리를 비아냥거렸던 것이다. 이런 해서는 안 될 일들을 발저가 저지른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다만 여기서 독일의 특수성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독일 사람들은 자국의 국가를 유쾌하게 부르지 못하고 힘들어 한다. 왜냐하면 국가 1절이 히틀러 시기에 전쟁의 진군가였기 때문이다.

이어서 보르하르트의 보수혁명에 관한 이야기를 보겠다. 보르하르트는창조적 복고를 주장한 굉장한 이론적 대부였다. 자신이 생각하는 보수는 이데올로기적인 보수를 주장했고 이러한 이론적 대부는 히틀러의 로 단결되는 보수와 맞물려 안타까운 시기를 겪는다. 앞으로도 계속적으로 다뤄보고 싶은 인물이다.

 

1920~30년대 당시 보수혁명을 주장하였던 보르하르트는 나치즘의 길을 터주는 데 일조하였고 이와 함께 90년대 슈트라우스의 문학/문화 논쟁들을 함께 엮어냄으로써 독일 지식인들이 과거의 전통과 복고로 나아가려는 조짐을 동시에 언급했습니다.

 

 

 

책에 대한 설명과 더불어 질문을 받아 답변을 하는 동안 시간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독일문화논쟁과 글로컬리즘의 그 미묘한 접점을 발견하기 위해서 섬세한 시선으로 연구하신 것을 생각하니 하나의 현상이라고 하더라도 어떻게 보는가에 따라 이렇게 달라질 수 있구나 싶었습니다.

 

 

(녹취한 이야기와 메모한 것들을 바탕으로 재구성했습니다잘 들리지 않는 녹취로 꽤나 헤맸습니다. 풍성한 토론을 모두 담아내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글로컬리즘과 독일문화논쟁 - 10점
장희권 지음/산지니

 

Posted by 비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