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낮기온이 점점 오르고 있는걸 보면 이제곧 저녁에도 산책하기 좋은 계절이 올것같네요.

여름에 밤공기 마시면서 자전거타고 공원에가서 밤하늘을 바라보는 그느낌을 참 좋아했었는데... 지금은 그렇게까지는 못하지만^^; 저녁에 운동 끝나고 하늘을 멍하게 쳐다보다 귀가하곤 합니다.
지금은 밤에 하늘을 쳐다보면 별이 잘 보이지 않지만 대학시절 도심에서 조금 떨어진곳에 살아서인지 별이 정말 많이 보였어요. 난생 처음으로 유성도 봤답니다ㅎㅎ 너무놀라서 소원은 못빌었지만 아직도 그 소름돋는 기분이 잊혀지지 않아요.

 

 

갑자기 별이야기를 시작한 이유는...제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시를 소개하고 싶어서 입니다.

2006년 태양계 행성에서 퇴출된 명왕성을 주제로한 장이지 시인의 <명왕성에서 온 이메일>이라는 시인데요 저는 이시를 몇번이고 반복해서 읽었어요. 매번 읽을때마다 눈물이 나요...ㅋ

 

명왕성은 얼어 붙은 진흙이 갈라진 '스투트푸니 평원'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것과 명왕성 지표면 1600km 상공에서 대기를 발견까지 여러차례 명왕성 관찰이 이루어 졌었는데요.

이렇게 명왕성에 대한 관찰이 많음에도 명왕성은 우리 태양계에서 쫒겨날수 밖에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크기가 달의 3/2 정도로 작으며 궤도가 8개의 행성과 다른 긴 타원형의 형태를 띄기 때문이였죠.

처음 명왕성이 퇴출되었다는 기사를 접했을때 왜 갑자기?? 라는 생각에 명왕성에 대한 측은한 마음이였는데 지금보니 그럴만한 이유가 명확한것 같네요. 애초에 명왕성은 행성이 아니야 라고하는 친구들도 여럿봤고요ㅋ 

 

<명왕성에서 온 이메일> -장이지

안녕, 여기는 잊혀진 별 명왕성이야

여기 하늘엔 네가 어릴 때 바닷가에서 주웠던
소라 껍데기가 떠 있어

거기선 네가 좋아하는 슬픈 노래가
먹치마처럼 밤 푸른빛으로 너울대

그리고 여기 하늘에선 누군가의 목소리가
날마다 너를 찾아와 안부를 물어

있잖아, 잘 있어?

너를 기다린다고, 네가 그립다고,

누군가는 너를 다정하다고 하고
누군가는 네가 매정하다고 해

날마다 하늘 해안 저편엔 콜라병에 담긴
너를 향한 음성 메일들이 밀려와

여기 하늘엔 스크랩된 네 사진도 있는걸
너는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웃고 있어
그런데 누가 넌지 모르겠어. 누가 너니?

있잖아, 잘 있어?

네가 쓰려다 지운 메일들이
오로라를 타고 이곳 하늘을 지나가
누군가 열없이 너에게 고백하던 날이 지나가
너의 포옹이 지나가

겁이 난다는 너의 말이 지나가
너의 사진이 지나가

너는 파티용 동물 모자를 쓰고 눈물을 씻고 있더라
눈 밑이 검어져서는 야윈 그늘로 웃고 있더라

네 웃음에 나는 부레를 잃은 인어처럼 숨 막혀
이제 네가 누군지 알겠어

있잖아, 잘있어?

네가 쓰다 지운 울음 자국들이 오로라로 빛나는,

바보야, 여기는 잊혀진 별 명왕성이야

 

<명왕성에서 온 이메일>은 과거의 자신이 현재의 자신에게 하는 이야기 같습니다.
'있잖아, 잘 있어?' 라고 물으면서 잃어버렸던 어린 그 시절‘나’기 현재 ‘나'에게 안부를 묻고 '있잖아, 잘 있어?' 다시 되물으며 예전의'나'가 현재의'나'에게 용기를 주고 "너 잘하고 있지"라고 확인시켜주는 듯한 느낌입니다.
내안의 영원한 친구가 있었다는 걸 깨닫게 해주는 시인것 같습니다.

 

가끔 기분이 우울할 때 이시를 읽고 울고 다시 힘내고 그랬었어요^^;

시가주는 힘이라는게 이런걸까요. 우연히 알게된 시였는데... 우울할 때 내게 힘이 되어주는 시들을 더 찾아두고 싶어지네요.

 

 

나이지리아의 모자 - 10점
신정민 지음/산지니
소금 성자 - 10점
정일근 지음/산지니
금정산을 보냈다 (양장) - 10점
최영철 지음/산지니
은근히 즐거운 - 10점
표성배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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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잠홍 2016.03.21 13:3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목이 특이해서 읽게 되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하는 것 같은 시네요.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부산을 쓴다』에 실린 김미혜 소설가의 「별을 향해 쏘다!!-온천천」 계속 이어집니다.

앞부분

녀석의 말이 장황하다 싶었는데 택시에 오르니 집에서 몇 분 걸리지도 않았고 설명이 소상해서 찾기도 쉬웠다. 조금 있으려니 녀석이 남자와 아이 하나, 그렇게 셋이서 긴 장대에 녹십자기를 매달아 든 모습으로 나타났다. 뜬금없이 웬 깃발씩이나? 하도 웃기는 장면이라 숨기지도 않고 웃고 있는데, 녀석이 정자로 올라오더니 다짜고짜 말했다.

온천천



“일주일에 1시간씩만 온천천에서 의료봉사 한번 해 볼라꼬. 오늘은 헌팅 삼아 나왔네요.”

개업의로 돈도 제법 번 녀석이 간소하나마 의료봉사를 하겠다는 것, 기특하기 짝이 없었다. 해서 반가운 마음에 일부러 억지소리를 했다.
“요새 환자 없는갑네? 그래서 외롭나?”
“참내, 생각이 그렇게 짧으니 결혼도 몬 했지. 내가 아무리 돌팔이라도 명색 의사 아인교. 국민건강을 위하야! 얌마, 인사해라. 우리 사촌 누나다.”

함께 의료봉사를 할 거라는, 옆에 섰던 덩치 큰 남자가 꾸벅 인사를 했다. 나도 인사를 했고, 달리 할 말도 없어 나무 난간에 앉아 하늘이나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런데 푸른색으로 빛나는 큰 별 하나가!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어머! 영수야. 저기, 별 좀 봐라. 진짜 크네. 저 별은 색깔도 초록이다야. 저 별 내 꺼.”

녀석은 내가 손가락질하는 곳을 올려다보더니 으흐흐흐, 희한한 소리로 웃었다. 그리고 친구 되는 사람도 도무지 웃음을 참지 못하겠다는 표정이었다. 흥, 내가 유치하다 그 말씀이지? 이 나이에 별이나 찾는다고? 니들 생각은 참으로 가상하다만, 역시나 속물이로구먼. 사람이 별도 찾고 바람도 느끼고, 그런 게 인지상정 아닌가? 기분이 상한 나는 속으로 속물들을 실컷 비웃었다. 한데 속물 아비와는 달리 아이는 볼수록 귀여워서 볼도 만져 보고 이름도 물어보고. 잠깐이지만 친한 척을 했다.

녀석과 친구는 나는 안중에도 없는지 푸른 별이 어쩌고 야광이 어쩌고 하며 지들끼리 뭐가 그리 즐거운지 키득대다가 10시가 되자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긴 장대는 그냥 장대가 아니라 못 쓰게 된 낚싯대라 깃발을 떼어 내고 착착 밀어 넣으니 막대로 변했다. 어떤 속물의 생각인지는 몰라도 기발하긴 했다.

온천천



조금 전, 영수가 전화를 해 왔다. 오늘 밤 온천천 벚나무 밑의 정자에서 정식으로 야간진료소를 개소할 예정이니 부디, 자랑스러운 첫 번째 무료환자 자격으로 참석해 달라고. 막상 나가 보니 별도 볼 수 있고 큰 무리도 아니어서 그러겠다고 했다. 한데 이어지는 녀석의 말이 참으로 가당찮았다. 지 친구 의사가 나랑 사귀고 싶어한단다. 하이고, 사람을 뭘로 보고.

“야야, 니도 잘 알다시피 나는 유부남 진짜 싫어하거덩? 멀쩡히 아들까지 있는 사람이 남의 처녀와 사귀고 싶다니, 지 정신 아이제?”
그렇게 사람 보는 눈이 없으니 아직 싱글로 산다며, 녀석이 버르장머리 없이 손위인 나를 한껏 비웃었다. 친구는 미혼이고 아이는 아들이 아닌 조카라고. 오잉? 그리고 연거푸 이어지는 녀석의 말. 내가 반색을 했던 온천천 하늘의 주먹만 하던 별은 별이 아니라 낚싯대 위에 달아 논 야광구슬이었다는 것. 허걱! 게다가 나이도 드실 만큼 드신 노친네가 멍청하게도 야광구슬을 별로 보는 그 순진함이 하도 귀여워 친구가 나랑 사귀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 같더라나? 기가 차서. 그래서 둘이 허리가 부러지게 웃었구나.

“오늘은 쫌 이뿌게 하고 나오소. 참참, 안경알 도수 높이는 것도 잊지 마시고. 크큭.”
민망하기도 하고 할 말도 없어 유구무언으로 있는데, 녀석은 제 할 말만 하고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뉘앙스가 묘한 웃음과 안경 도수 좀 높이라는 말에 다시 존심에 왕금이 갔다. 하지만 내가 누군가. 끊어진 전화기에 대고 나도 내 할 말은 다 했다. 온천천 정자에서의 야간진료? 내가 첫 환자 아니라도 고맙고 말고다. 그리고 꿈에도 그리던 연하남이 내 무식에 뻑이 갔다고? 그거야말로 좋고 말고다. 하나 아직은 때가 아인 기라. 알았나, 이 사람아! 아무튼, 온천천 기다려! 공짜 진료라니 양잿물이라도 마셔줄 테다. 아니, 너 때문에 넋 나간 남자까지 생겼으니 독약인들 마다하리. 온천천! 넌, 영원한 내 사랑이야.

그랬다, 인생은 내게 하기 싫어한 일도 득으로 돌아오게 하고 몸으로 느낀 고통으로 소중한 인연을 쌓게도 하고. 그러니, 하늘에 뜬 진짜 별아 받아라. 너를 향해 쏜다. 마음속 내 소망을!
내일은 그동안 무심히 지냈던 분들께 전화라도 한 통 드려야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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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김미혜 소설가의 갑작스러운 별세가 주위 사람들을 안타깝게 했습니다.
오랜 투병생활 끝에 지난 16일 향년 52세로 짧은 생애를 마감했다는 소식을 신문 지면을 통해서 봤는데요. 재작년 저희 출판사에서 나온 『부산을 쓴다』라는 책에도 선생님 작품이 실려 있는 인연이 있어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쉽게 믿기지 않았습니다.

김미혜 소설가의 생전의 모습


책에 넣을 저자 사진이 환하게 웃는 모습이라 ‘참 예쁘시게 웃으시는 분이구나’ 했었는데 이런 아픔이 있는 줄은 몰랐네요.

명랑한 성격의 고인은 오로지 소설밖에 모르는 타고난 예인이었다고 합니다. ‘현상은 마음의 그림자이므로 현상을 바꾸려면 마음을 바꾸면 된다’라는 각성을 늘 마음에 품고 다녔다고 하는데요. 그래서인지 아프시면서도 그렇게 환하게 웃으실 수 있었는가 봅니다.

고인은 부산 출생으로 1994년 문화일보를 통해 등단했고, 작품집으로 콩트집 『웃어주기』(1990), 창작집 『몇 가지 증상의 일상적 소묘』(2001) 등을 남겼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부산을 쓴다』에 실린 단편 「별을 향해 쏘다!!-온천천」을 싣습니다. 내용이 길어 두 번에 나눠 싣습니다.

 

별을 향해 쏘다!!
-온천천-

 진부하고 재미없는 표현이지만, 어떤 고통이나 기쁨도 고통만이 전부거나 기쁨 자체만 다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이즈음, 삶에 대해 안도한다. 귀찮고 힘든 일 속에 숨은 예측불허한 삶의 비의와 모순처럼 보이는 것에 숨은 정연한 질서. 눈에 보이지 않는 그런 기운들은 ‘이루지 못한 일’에 대해 초조해하거나 안달나지 않게 해서 좋다.

본가에서 살다 이곳 아파트로 가출(?)한 이듬해. 단지 내의 중앙집중식 난방방식을 개별 난방으로 바꾸자는 입주자대표회의의 대주민발표가 있었다. 물론 나는 반대했다. 주면 주는 대로 살면 편할 걸, 숨쉬기도 힘든 세월을 사는 내게 이사한 지 일 년 만에 멀쩡한 집을 파뒤집는다는 사실도 그렇고. 좁디좁은 베란다에 보일러를 설치한다는 것도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기에. 다행스럽게도 반대의견이 많아 개별 난방공사는 없던 일이 되었다.

그런데 3년 만에 다시 일이 터졌다. 각 동별로 찬반투표가 시작되었고 결국 우리 동도 대세에 밀려 공사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으로 내닫게 된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애초 계획된 베란다 쪽이 아니라 뒷방을 뜯어내고 복도에다 보일러를 단다는 것. 내심 걱정한 소음의 피해와 공사 규모는 줄어들게 되었지만 뒷방에 가득 찬 짐들은 또 어쩔 것인가!

공사비 마련과 짐 옮길 걱정으로 잠이 오지 않은 나날을 보내고 있을 즈음, 희한한 일이 생겼다. 20년도 더 전에 상 하나를 같이 받은 사람이 작은 출판사를 열었다며 자신의 작품을 A4용지에 인쇄해 내게 보내준 것이 있었는데, 무심하게 봐 왔던 그 책이 갑자기 눈에 확 들어온 것이었다. 순간 한 생각이 떠올라 전화를 걸었다. 혹시 복사나 제본도 가능한가 하고. 그의 답이 시원했다. 복사도 제본도 가능하고, 전화도 반갑다고. 아마도 나를 박대하지 않던 그의 친절함 때문에 내 고민을 털어놓았을 것이다.

“하이고, 그기 먼 고민이라꼬. 내가 가서 당장 옮기 주께요. 10분이면 될 걸 갖고.”
공사하기 일주일 전, 그는 이십 몇 년 만에 나타나 정말 순식간에 뒷방을 깨끗이 비워 주었고, 그 방에서 나온 술 한 병을 손에 들려주자 실은 바빠 죽을 판이라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라졌다. 내 힘으론 결단코 불가능한 일이 예정에 없던 전화 한 통으로 해결이 되었던 것이다.

한데, 일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빈 방의 장판을 들춰 보니 목욕탕 쪽 방바닥이 시커멓게 곰팡이에 절어 있었다. 위층의 목욕탕 배수관이 터졌을 때, 우리 집으로 새어 내려온 물이 바닥에서 썩는 중이었던 것이다. 워낙 잡동사니들로 가득 찬 방이라 나는 방바닥이 썩는 줄도 모르고 있었고.

사연을 들은 사직동 영혜 씨가 고무장갑까지 챙겨서 달려왔고, 함께 락스를 풀어 씻고 닦고 말리고 하느라 온몸이 녹초가 되어 버린 오후. 영혜 씨가 가자마자 K 선생께서 한 보따리나 되는 밑반찬을 싸들고 오셨다. 내 생각인지 모르지만 나를 보는 K 선생의 눈빛이 아련했다. 찬물 한 잔 마시지 않은 그분은 금방 일어나셨고, 떠난 자리엔 두툼한 봉투 하나가 놓여 있었다. 통화 때마다 공사비 걱정을 하시더니. 머릿속이 하얘지며 가슴이 저려 왔다.

파쇄기의 소음으로 온 세상이 떠나갈 것 같던 공사 당일. 시멘트 먼지의 폭탄 속에서도 어쨌거나 무사히 하루해는 저물었다. 방을 파뒤집는 공사도 끝났고 이제 한숨 돌리나 했더니 웬걸. 이번엔 온수관 해체공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아, 자화수기(磁化水機)! 이사올 무렵, 자화수기는 꼭 있어야겠기에 아는 여사님께 부탁을 했는데 굳이 대금을 마다하셔서 더 귀히 여기고 있던 물건. 그러니 공사 전에 그놈부터 미리 챙겨 놔야.

온수관 해체작업이 끝난 후 자화수기를 부착했다. 그런데 601호 전직 선생님이 오셔서 내 집 아닌, 옆집 603호에 자화수기가 달렸다는 거였다. 그럴 리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이 선생이 부러지게 말씀하셨다. 계량기 잠궈 놓고 들어가서 물 틀어 보면 된다고. 이 선생과 함께 두 집의 계량기를 잠궈 가며 확인한 결과. 자화수기는 4년이 넘도록 내 집이 아닌, 남의 집에 달려 있었던 것이 확실했다. 이 선생이 나를 비웃었다. 바보 쪼다라고. 욕먹어도 쌌다. 허나 욕을 먹으면서도 웃음이 나왔다. 공사 아니었으면 아니, 이 선생 아니었다면 그런 사실을 꿈에도 몰랐을 것 아닌가. 궁금해서 물어보았다, 어떻게 아셨냐고. 공사하기 전 각 계량기마다 호수 적는 걸 보셨는데 내가 자화수기를 들고 왔다 갔다 하기에 제대로 달았는지 확인해 봤단다. 그랬구나. 인생은 이처럼 복선으로 넘치고, 처처의 귀인들은 알아서 맹활약 해 주시고.

자화수기를 내 집에 달자 물때가 끼지 않아 청소를 자주 하지 않아도 타일 바닥이 뽀송뽀송한 것이 여간 행복하지 않았다. 한데 깨끗하니까 오히려 재미가 나서 온종일 청소하느라 고단한 몸이 더 고단해졌다. 무리했다 싶었는데, 결국 대형사건 하나를 저지르고 말았다. 뻑뻑한 현관문을 있는 힘껏 열다가 육중한 철문에 왼발 엄지발톱을 통째로 날려 먹은 것이다. 생발톱이 날아가 버린 발가락은 처참하고도 무서웠다. 몇 달 고생을 했고, 죄 없는 일이어서인지 발은 덧나지 않고 잘 나아 주었다. 방심한 나는 발톱이 덜 난 발에 붕대를 감은 채 센텀시티로 이사 온 동창 순애의 차를 타고 쑥 캐러도 가고 가까운 외출도 하고 그랬다. 그런데 약해진 피부가 신발 속에서 서로 맞닿아 다친 발이 성이 나 버린 것이다.

덧난 발은 처음의 통증과는 강도 자체가 달랐다. 진통제는커녕 항생제 한 알 먹지 않고 동인당고약과 에너지워터만 바르며 생으로 통증을 이겨 냈다. 그러다가 엊그제 비뇨기과 개업의인 사촌동생 영수에게 전화를 했다. 통증이 뒤늦게 녀석을 생각나게 한 것이다. 내 목소리를 듣자 평소와 다르게 녀석이 엄청 반가워했다.

“아이고, 그렇잖아도 내가 전화 한 번 때릴까 했는데.”
발을 다쳐서 어쩌고저쩌고 덧나서 어쩌고저쩌고. 그러나 녀석은 내 말은 들은 척도 않고 제 말만 했다.
“아, 잘 됐네. 오늘 밤에 쫌 봅시다.”
발이 아파서 못 나간다 해도 막무가내였다.
“아, 마, 나오소. 내가 의산데 뭔 걱정이라요.”

망미동에서 택시 타고 오다가 토곡사거리에서 국민은행 쪽으로 좌회전하라, 좌회전해서 한 150미터쯤 오면 오른편에 주유소가 하나 있다, 그 주유소를 축으로 유나삼계탕 골목으로 우회전, 우회전해서 직진하면 한양아파트 6동과 21동을 양쪽에 두고 관통하게 된다, 그 길을 계속 직진하다 보면 온천천 길과 딱 마주치게 되는데 왼쪽으로 붉은 벽돌 건물이 보일 것이다, 그곳에서 택시를 버리고 횡단보도를 건너라, 길을 건너면 바로 온천천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보인다, 허나, 계단으로 내려가지 말고 연안교 쪽으로 10미터만 올라오면 누님이 좋아하는 화장실도 있고 작은 정자가 하나 있다, 그곳으로 저녁 먹고 9시까지 나와라, 집에 갈 때는 모셔다 준다.

녀석의 설명이 그랬다. 웃기는 녀석이었다. 명색이 의사라는 사람이 아픈 발을 배려하기는커녕, 그 발을 끌고 밤 9시에 만나자니. 한데 사람 마음이 참 간사했다. 녀석이 그렇게 나오니 통증이야 어떻든 불안감이 가시면서 마음이 편해지고 나가 볼 생각도 생겼다. 저녁식사 전 잠깐 아고라 게시판을 보고 있는데 해운대 진숙 씨가 재활용품과 음식물쓰레기를 치워 주겠다며 전화도 없이 찾아왔다. 고마움 섞어 저녁상을 차렸고, 그래봤자 찬 없는 시시한 저녁을 먹었고, 시간이 되어 진숙 씨와 함께 집을 나섰다.(다음 주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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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풀소리 2010.01.26 13: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타까운 소식이네요.

  2. 바람 2010.01.26 16: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투병생활을 하시다 돌아가셨다니 더 안타깝네요.

    작년까지 제가 살던 동네가 소설 속 배경으로 나오니 참 신기합니다.
    온천천, 한양아파트 등등. 소설 뒷부분이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