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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2.18 [작가돋보기 정태규, 야수를 향한 소리없는 아우성

 

<정태규, 야수를 향한 소리없는 아우성>

 

 

정태규. 처음 그의 이름을 접한 건 역시나 「문학을 탐하다」에서입니다. 산지니 인턴으로서 작가 돋보기를 연재하고 있는 지금, 2명의 작가에 대해서 썼고 마지막인 정태규 작가에 대해서 쓰고자 합니다. 이번에는 서두가 길어지고 있는데요.^^ 흔히들 책을 읽으면 작가의 세계를 머릿속에서 그려보곤 합니다. 특히 여러 편의 단편집과 산문집은 작가의 세계관을 여러 측면에서 볼 수 있어서 더욱 그러합니다. 정태규 작가의 경우 자신의 내면화를 통해 늑대, 표범과 같은 것들로 형상화하여 자신을 구축해나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누구나 속안에 야수 한 마리쯤은 품고 있겠지만 공공연하게 드러내진 않는데요. 그건 자기 안의 야수지만 그것의 눈을 똑바로 쳐다볼만한 용기가 없거나 아직 외연으로 발현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그는 자신의 야수인 늑대를 발견했으며 이 늑대를 구체화시켜 자신=야수(늑대)가 되고자 합니다.

두 권의 책을 소개하고자 하는데요. 「길위에서」, 「꿈을 굽다」입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작가의 작품이라는게 보통 작가의 세계를 담고 있지만 은은하게 드러나 가공의 소설로서 느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책들의 경우는 말하고자 하는 바가 동일성을 가지고 있어 각 단편의 캐릭터가 풍기는 느낌이 저자를 생각나게 합니다. 그게 무엇인지는 지금부터 살펴보겠습니다~

 

  

 

 

1. 『길위에서』

정태규 작가의 두 번째 작품입니다. 작가의 말에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늘상 자유롭고 싶었습니다만 현실은 내게 너무 무거운 갑옷이 되어 있군요. 갑옷처럼 경직된 사고를 두려워하면서도 나는 그 속으로 자꾸만 움츠러들고 있습니다. 삶이 갈수록 피폐해지고 허무해지는 느낌입니다. 때로는 모든 것을 향해 문을 닫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그의 말이 슬프게 느껴집니다. 무엇 때문에 자꾸만 움츠러들었을까요? 자유롭고자 하나 그러지 못한 그의 모습이 소설 속에서 그대로 드러남을 알 수 있습니다. 「솔베이지의 노래」에서 강진우는 자신이 사랑했던 여자를 끝내 자신의 것으로 만들지 못합니다. 떠나보내지도 못하며 그녀의 굴레 안에서 살고 있는 그는 영국으로 떠나는 그녀에게 부러워하며 자신도 떠날 데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자신과 있어달라고 외치고 그 외침이 메아리가 되어버릴 진정 붙잡았다면, 혹은 그녀와 함께 같이 떠났다면 어땠을까요. 그의 외침은 무언의 노래일 뿐이었습니다.

「솔베이지의 노래」에서는 작가 안의 존재하는 창살을 엿볼 수 있다면 「정글 게임」에서 나오는 인물은 작가 자체일 것입니다. 「문학을 탐하다」에서 최학림 기자는 정태규 작가에게 야수가 되어보자고 말합니다. 야수란 도대체 무엇이며 왜 야수여야만하는 걸까요. 정글 게임에서 나오는 퓨마와 「구글 어스」의 퓨마를 집중해보고자 합니다. 「정글게임」에서 그는 컴퓨터 바탕화면에는 온 몸이 검은 퓨마 한 마리가 있습니다. 퓨마는 그를 매료시키고 포르노를 보는 일상을 계속 합니다. 자극적인 성행위 장면이 넘쳐나지만 정작 아내 앞에서면 할 수 없게 됩니다. 아내 얼굴을 보면 순간 힘이 빠져버리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그는 사이버 채팅, 게임 속으로 도망쳐버립니다. 그 안에서는 자신을 드러낼 필요 없으며 진지함이란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런 일상의 반복 중 그는 퓨마의 꿈을 꾸고 자신이 무언가에 의해 갇혀 있음을 깨닫습니다. 추락하는 비행기의 조정석에 갇혀 있음을 느끼면서 꿈 속의 어둠이 자신을 물들어 퓨마가 자신을 죽일 때마저 무기력한 자신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조정석, 갑옷, 퓨마에게 죽임은 야수가 되지 못하게 방해하는 무언가겠죠. 현실에서 작가에게 그 무언가는 어떤 것일까요?

 

 

작가는 현실의 시간에서 벗어나 환상의 세계로 들어가고자 합니다. 사이버세계, 설산, 포장마차. 하지만 이런 것들은 현실에서 벗어나게 해주지도 현실을 극복하게 해주지도 않습니다. 단지 도망하는 것일 뿐이며 눈을 감는 행위에 불가하죠. 현실의 세계는 야수가 도사리고 있으나 야수가 되지 못하는 이들의 도피처입니다. 소설에서는 도피처를 환상의 세계로 그리면서 휴식할 수 있는 공간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또한 착각에 불과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상의 세계를 희망하는 것은 절망의 뒷면은 다를 꺼라고 착각하는 인간의 한계가 아닐까 싶습니다.

 

 

2. 『꿈을 굽다』

「꿈을 굽다」는 단문을 모아 낸 산문집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태규 작가의 과거모습, 일상생활, 글 쓰는 모습·방식을 엿볼 수 있습니다.

-초발심

작가는 데모, 실연을 동시에 하면서 인생의 쓴맛을 깨닫습니다.

결국 나는 절망감과 외로움에 쫓겨 휴학계를 내고 자취방의 짐을 챙겨 시골집으로 올라왔다. 그러곤 시골집의 뒤채 골방에 틀어박혔다. 그 어두운 골방에서 겨울 내내 내가 붙잡고 매달린 화두가 바로 소설쓰기였다.

앞에 「거리에서」 언급한 도피의 세계가 작가에게는 소설쓰기였나 봅니다. 작가는 일종의 미친 상태에 빠져 써내려 갔고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고프지 않고, 온밤을 세워도 잠이 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러한 열정은 작가가 안고 있던 절망감과 외로움의 순수한 마음이 온전한 열정을 자아냈다고 말합니다.

그 열정은 나를 향해 닫혀 버린 세상의 문을 열고 싶어 한 열망의 다른 표현이었으리라.

작가는 다시금 열정이 자신에게 찾아오길 바라며 다시 찾아오지 않을 것 같은 예감에 두려워 합니다.

-갈천리에서

작가는 소설을 쓰겠다고 산골 오지로 혼자서 들어갑니다. 산골 오지가 주는 적막함과 외로움이 소설을 쓰는데 도움이 될거라고 판단하면서요. ‘외로움은 자신을 돌아보게 해주며 글을 쓴다는 것은 곧 자신을 되돌아보는 일이다’ 이렇게 말하는 작가는 외로움이 쌓여 작품을 쓸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봅니다. 그런데 그는 ‘내가 느끼는 외로움은 가짜다’ 라고 표현합니다. 요지는 이 외로움은 내가 스스로 만들어 낸 인조적인 외로움일 뿐이다는 것이지요. 이러한 외로움은 떠나기만 하면 언제든지 사라질 외로움이라면서요. 공감이 됩니다. 우리는 현실에서 살아가면서 이리저리 치이길 마련이고 자신을 돌아보는 행위를 못하기 때문에 나를 잃는 듯한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때문에 갑작스럽게 여행을 떠나고 여행 중에서도 혼자서 떠나는 여행이 더욱 가치있게 느껴집니다. 나를 모르는 곳에서 나를 바라보는 행위는 자신을 감성적이게 만들고 온전한 시간을 투자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 또한 억지로 하는 행위이겠으며 찰나의 순간일 뿐입니다. 여행지에서 나와 다시 현실에 돌아온 나는 현저히 다른 인간입니다. 이 둘이 하나가 되면 오죽 좋겠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인도여행’, ‘올렛길’, ‘순례의 길’ 등이 유행을 합니다. 소설과 여행. 아니 다른 것일지라도 이들은 나의 또 다른 세상의 문을 여는 열망의 표현입니다.

정태규 작가의 책을 압축하면 자신의 야수를 찾는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허나 그의 열망이 실패로 돌아가든지 성공하든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현재 루게릭병을 진단받아 절망적이고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말하면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겠다고 말하는 그 모습이 야수가 아닐까 싶습니다. 정태규 작가의 책을 읽으면서 자신이 잃어버렸던 혹은 찾지 못한 야수가 무엇일지 생각해 보는 건 어떠할까요^^

 


 

꿈을 굽다 - 10점
정태규 지음/산지니

길 위에서 - 10점
정태규 지음/산지니

 

 

 

 

『문학을 탐하다』는 2014 '원북원부산운동' 후보 도서입니다.
책 읽는 부산을 만드는 소중한 한 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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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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