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문예비평'에 해당되는 글 26건

  1. 2015.10.30 "신경숙 작가 표절 논란과 문학권력" - 한겨레신문 최재봉 문학기자 강연 (2)
  2. 2015.10.21 우리 시대의 중견 비평가론 -『비평의 비평』(책소개) (1)
  3. 2015.09.04 오늘의 문예비평 '신경숙 표절' 특집…"신경숙 진솔하지 못해 실망" (뉴시스)
  4. 2015.05.13 30년 전 그날 기념만 잘해도 부산 예술문화 돌파구 열린다 (국제신문)
  5. 2015.02.05 짐승남의 저녁 ─전성욱 산문집 『현재는 이상한 짐승이다』(책소개) (2)
  6. 2014.06.18 산지니 6월 저자와의 만남─『부산화교의 역사』, 조세현
  7. 2014.06.02 60회 산지니 6월 저자와의 만남─조세현, 『부산화교의 역사』
  8. 2014.03.24 [감성터치] 물건의 옹호 / 국제신문
  9. 2014.03.20 봄날의 미대힘을 좋아하세요?─산지니 3월 저자와의 만남 (1)
  10. 2014.01.29 산지니 2월 저자와의 만남─ 정미숙 평론집 『집요한 자유』 (1)
  11. 2013.12.06 주간 산지니-12월 첫째 주 (2)
  12. 2013.10.09 손전등을 끄고 달을 좇아─9월 저자와의 만남『중용, 어울림의 길』 (1)
  13. 2013.09.02 내 인생의 책을 선물합니다 :: 2013 가을독서문화축제 안내
  14. 2013.04.04 『장미 화분』의 김현 소설가와 함께하는 4월 저자와의 만남 (1)
  15. 2013.01.31 산지니는 지금 ON AIR (1)
  16. 2012.09.18 39회 저자와의 만남, 오늘의 문예비평 <후쿠시마와 재난의 사상> 구모룡 교수 (4)
  17. 2012.08.31 주간 산지니-8월 다섯째 주 (4)
  18. 2012.07.08 상하이 기행 (8)
  19. 2012.05.29 제 35회 저자와의 만남, 윤여일 선생님 (5)
  20. 2012.01.05 『오늘의 문예비평』 "우수문예지발간지원"에 선정
  21. 2011.12.23 김수우 백년어서원 대표
  22. 2011.12.05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의 삶
  23. 2011.11.09 축하해주세요! 2011 문광부 우수교양도서에 선정되었어요. (4)
  24. 2011.06.29 김경연의 첫 평론집 '세이렌들의 귀환' (2)
  25. 2011.03.23 <오늘의문예비평> 20주년 기념 단행본 『불가능한 대화들』 출간

 

 

어제였죠? 10월 29일(목) 한겨레신문 최재봉 기자님의 강연을 다녀왔습니다.

퇴근 후라 꽤 날이 차가웠는데도 신문 광고를 보고 많은 분들이 참석을 하셨더라고요.  

 

강연의 주제는 '신경숙 작가 표절과 문학 권력'이었습니다. 

지난 6월 신경숙 작가의 표절 이후

현재는 문학의 권력에 대한 쟁점으로 옮겨갔는데요. 

 

이에 대한 최재봉 기자님의 날카로운 강연이 이어졌습니다.  

강연은 크게

1. 요산 김정한 선생의 작품세계 - 참여적 사실주의 문학

2. 신경숙 작가의 표절 그 이후 - 문학 권력

의 내용으로 진행됐습니다.

 


 

1. 요산 김정한 선생의 작품세계  

 

   최 기자님께서는 오랜만에 부산에 오면서 요산 김정한 선생의 작품을 다시 읽으셨다고 합니다. 역시 우리 문학의 참여적, 비판적 사실주의, 진보 문학에 중요한 역할을 한 작가라는 것을 느꼈다며 강연의 운을 띄우셨습니다.

 

   특히 <사하촌>과 절필 이후 문단 복귀작인 <모래톱 이야기>를 거론하셨는데요, 먼저 <사하촌>에서는 소작농이 된 사람들의 핍박받는 현실과 말미에 이러한 현실을 이겨내기 위한 사람들의 움직임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모래톱 이야기>에서는 담임 선생님이 주인공 소년 건우에게 하는 말, 건우 할아버지의가 자신의 땅을 유력자들, 권력자들에게 뺏기고 시달리는 자신의 처지를 이야기하는 대목 등에서 민중의 처지와 삶을 보여주는 요산 선생의 문학 정신을 볼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대부분의 글을 읽어보면 가난한 사람들이 핍박받는 현실에 분개하는, 바로 잡으려고 애쓰는, 저항적인 문학을 볼 수 있다고 설명하며 소설 속의 사실적인 부분에 대해 강조 하셨습니다.  

 

   "1966년, 요산 김정한 선생의 문단 복귀와 창작과 비평의 창간"

 

   요산 선생은 36년 등단 후, 40년 이후 절필. 66년에 다시 복귀를 하셨습니다. 1966년 그 해, 창작과 비평(이하 창비)가 창간 되는데요, 요산 선생께서 참여적 사실주의 문학을 일궈가는 시점과 창비의 참여 진보적 문학과의 시점이 동일하다는 사실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요산 선생이 문단에 복귀하며 쓴 작품들은 가라앉은 참여 문학을 다시 끌어올리는 역할을 했고 이후 70년대부터 가난하고 핍박받는 사람들의 삶을 이야기하는 작가들, 작품들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진보적이고 참여적인 문학이 든든하게 참여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창비가 있었고, 창비는 그런 문학들을 적극적으로 개제, 출판, 착가 후원을 왔습니다.

  

2. 신경숙 작가의 표절 그 이후-문학 권력 

 

  내년이죠? 2016년은 창비가 5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50주년을 맞이해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겠다던 창비. 그러던 와중에 최근에 여러가지 상황들이 벌어진 셈이죠. 최 기자님께서는 신경숙 작가의 표절 그 이후, 지금 현재 상황이 어떻게 와 있는지 설명하시며 메이저 출판사(문학동네, 문학과 지성, 창작과 비평)의 문학 권력을 비판하셨습니다. 그중 특히 창비에 대해 날 선 비판을 이어가셨는데요, 특히 창비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진보적이고 참여적인 문학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로, 창비 내부의 아군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서 신랄하게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신경숙 표절 행위가 창비의 문학 권력으로 이동한 데는  창비의 책임이 크다고 설명하셨는데요, 그 이유는 크게 3가지로 정리하셨습니다.

 

- 백낙청 선생의 1인지배체제의 지속화가 낳은 권위주의

- 작가 신경숙에 대한 집착에 가까운 두둔

- 창비의 진보적, 비판적 문학관의 포기

 

   신경숙 사태 이후 문학동네(이하 문동) 가을호에서 작가 토론회(좌담)를 열었습니다. 사회는 신영철 평론가가 봤는데, 그의 발언 중 "출판사들 사이의 교집합이 점점 넓어지고 있다"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최 기자님께서는 이 부분을 해석하자면 출판사들 사이의 차이점이 크게 없어졌다는 것인데 그것은 문동이나 문학과 지성사(이하 문지)가 창비 쪽으로 다가온 것이 아니라 그 반대라고 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어 문제는 창비는 문학주의, 문학지상주의, 문학을 위한 문학과 같은 태도가 아닌 문학에 담기는 내용. 그 고유성을 가지고 있는데 그 색깔을 잃어버렸다는 점에 있다고 설명하셨습니다.

 

"미학과 메시지, 문학은 양쪽을 같이 가져가야 한다."

 

    현재 문학은 너무 한 쪽으로 치우쳐져 있습니다. 창비는 조금 더 현실에 참여적이고 전투적으로 다가와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을 거론하며, 미학적 완성도 치우쳐서 커다란 것(사회, 인류)들을 놓쳐버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든다고 전했습니다. 이어 최 기자님께서는 이런 점에서 올해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의미가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작가는 논픽션을 쓰는 작가로 전쟁, 체르노빌 발전소 사고 등 인류사의 큰 사건들을 소재로 작품 활동을 했습니다. 접근하는 방식은 목소리의 소설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관련자들을 적극적으로 인터뷰를 하고 그 중에서 그 목소리들을 꺼내서 자기 식으로 표현을 합니다.  만약 이런 작품이 노벨상을 받기 전에, 한국 평론가들이 봤다면 뭐라고 이야기했을까? 미안하지만 '그건 문학이 아니다. 언론이다'라고 이야기 했을 것 같다고 답하셨는데요. 이 작가의 작업이 단순한 소재주의가 아니라 그것을 대단히 문학적인 터치와 소화를 했다는 점이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작가가 상상력으로 꾸려내는 것보다 더 절박하고 아픈 목소리들을 끄집어 냈고 작가가 자기 스타일을 내서 소화를 합니다. 스타일, 소재, 현실 등 이런 것들이 문학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는 글쓰기를 하고 있는 셈이죠.

 

   우리는 '문학적이다'라는 것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최 기자님께서는 직접 현실 속에 들어가 마주보는 르포와 같은 글쓰기의 필요성을 언급하셨습니다. 현재, 르포가 없는 것이 아니라 작가들이 꽤 많지만 문제는 우리 문화에서는 이것을 문학으로 평가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신경숙 표절 이후, 지금 한국 문단은 어디에 와 있는가?

그리고 창비는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가?

 

   앞으로 창비가 살 길은 창비에 비판적인 사람들을 수용해서 편집위원들이 다시 짜는 것이라고 말하며 창비 이외의 좋은 문학 잡지들을 소개하셨습니다. 먼저 <실천문학>은 80년대 초부터 시작하여 현재까지도 자신의 출발에서 지켜나가야 하는 것들을 놓치고 있지 않다고 하셨고, 이어 부산에서 나오는 계간지인 <오늘의 문예비평>을 거론하셨습니다. 이 두 권의 잡지를 이야기 하시며 창비나 문학동네만큼 유명하고 큰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지만 계속해서 좋은 잡지들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 엿보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잡지들을 응원하고 구독해주며 호응해주는 것이 창비와 같은 메이저들을 자극하고 본연의 길로 돌아오게 하는 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2015년 현재, 우리 사회는 80년대 못지않은 위기와 절망의 시기라 생각한다. 문학이 그것에 비하면 너무 태평스럽고 한가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아쉬운 점이 있다. 그런 점에서 창비가 정신을 차리고, 제자리로 돌아와서 진보적이고 참여적인 작품의 큰형 역할을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오늘의 문예비평 2015.가을 - 10점
산지니 편집부 엮음/산지니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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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아니카 2015.11.02 11:4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직접 가서 듣는 것처럼 생생하네요. 잘 읽었어요~

  2. 선언한다 2015.11.11 23: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1. 창비와 백낙청은 표절 작가 신경숙을 옹호했다. 진보의 가치에 똥칠했다. "나는 창비와 백낙청을 버렸다." 이곳에 선언한다.

    2. 한겨레는 '국정 교과서' 광고를 지면에 실었다. 진보 가치에 똥칠했다. "나는 한겨레를 버렸다." 이곳에 선언한다.


퇴락한 문학의 자리에서

여전히 타협하지 않는 중견 비평가들에게 주목한다

근대 문학의 종언이 선언된 시대에, 비평은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1991년 발간되어 25년간 결호 없이 독자들과 만나온 국내 유일의 비평전문 계간지 『오늘의문예비평』이 국내 중견 비평가들에 주목하는 책을 펴냈다. 위기를 맞았다면 비평의 미래가 될 신인 평론가들에 주목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왜 하필 ‘중견’ 비평가인가? 이러한 의문에 필자들은 명료하게 답한다.

“패기 넘치는 젊은 비평가들의 열의도 인정해주어야 하지만, 여전히 도저한 비평가의 자의식으로 활력 넘치는 중견 비평가들의 존재론은, 그 자체로 어떤 강력한 반시대적 전언이다. 우리가 주목하고 귀 기울이고자 한 것이 바로 그 전언이었다.” 

_머리말 중에서

여성문학에 천착해온 비평가들에서부터 진보적·자유주의적 성향의 평론가들까지, 『비평의 비평』은 여전히 문학의 장에서 활약 중인 진중하면서도 타협 없는 ‘불한당’들의 궤적을 포착한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한국 비평의 지형도를 그리며, 새로운 상상력을 싹틔워낼 우리 비평의 탄탄한 기반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여성에서 젠더로 이행한 페미니스트 평론가 김미현

변화할 수 있는 세계 보여주며 대중과 소통하는 김용희

도입부에서는 여성문학과 신세대문학을 깊이 연구해온 두 비평가, 김미현과 김용희 평론가를 다룬다. 김경연의 「변온과 항온, 혹은 유동하는 ‘사이’의 비평」은 여성문학에 ‘올인’해온 김미현 평론가의 궤적에 주목한다. 2008년작『젠더 프리즘』에서 김미현은 페미니즘 ‘다시-보기’를 시도하면서 스스로의 비평행위를 심문한다. 여성에서 젠더로, 페미니즘에서 페미니즘 ‘이후’의 페미니즘으로 이행하며 김미현은 “현실을 민감하게 감각하면서 그 변화에 스스럼없이 몸을 내맡기”고 있다.

김필남은 김용희 평론가의 글을 「환(幻)의 글쓰기」라 정의한다. 현실·이성과 대립하는 ‘환’의 글쓰기는 독자를 “환상적인 세계, 꿈의 세계, 유혹에 빠지게” 한다. 대중과의 소통을 중요시하는 김용희는 문학 평론은 물론 영화 평론, 소설 집필까지 나아갔다. 낡은 틀을 넘어서려는 소통의 노력을 통해 발견한 ‘환의 글쓰기’로 그녀는 완성된 형태가 아닌, 언제든지 변화할 수 있는 세계를 보여준다.


체제의 바깥을 꿈꾸며 문학의 전위에서 활동해온 

조정환, 김명인, 권성우

전성욱의 「유죄로서의 욕구, 이론과 신념」은 평론은 물론 노동해방문학 운동, 출판, 정치철학까지 다양한 활동을 해온 조정환에게 주목한다. “지금도 나를 가장 강하게 사로잡는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끔찍한 현실에서 벗어날 길을 알고자 하는 욕구”라는 조정환의 글을 인용하며 전성욱은 조정환에게 욕구란 “절대적으로 긍정적인 활력”이라 파악하고 있다. 따라서 조정환의 비평이란 어떤 ‘론’이 아니라 이론과 신념 사이, 그 “생성의 틈”에서 분출해 나오는 것이다.

「혁명의 좌절, 비평의 악몽」에서 박대현은 80~90년대를 거쳐 오면서 줄곧 비평적 주체의 긴장을 풀지 않고 있는 김명인을 살피고 있다. 그 작업이 “한국 민중문학의 한 상처를 들여다보는 일”이기도 한 것은, 비평이 민중으로부터 멀어졌거나 처음부터 변혁의 주체와 떨어져 ‘악몽’을 꾸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명인의 평론을 통해 박대현은 오히려 비평이 “악몽의 순간을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가장 절망적이고 비참한 순간에야말로 비평은 (…) 단단한 정신적 좌표가 될 수” 있다는 결론을 도출해낸다.

「미혹과 비판, 성찰과 망명」에서는 전성욱이 권성우 평론가에 대해 썼다. 전성욱이 말하길 “비평의 아름다움은 문장의 유려함이나 해석의 치밀함보다는 ‘비평가의 자의식’이라는 내면의 섬세한 무늬”로 드러난다. 권성우의 경우 그 자의식은 건조하고 상투적인 논문 투의 비평문체로부터 ‘나’를 전면에 드러내는 개성적 비평으로, 주류화된 문학의 장르 구분을 넘어 변두리 양식의 가치를 발굴하는 ‘외부’의 비평으로, 문단제도의 불합리한 권력 행사를 거부하는 자유로운 탈주의 비평을 통해 ‘망명의 비평가’라는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문화적 좀비’상태를 ‘비판적 사유’로 돌파하는 도정일

당대 문학의 맥을 짚는 모더니스트 황종연, 이광호

서정이라는 ‘정공법’ 통해 시의 미래를 구상하는 유성호

박형준의 글 「르네상스 정신의 비평적 발현」은 이미 고전이 된 『시인은 숲으로 가지 못한다』의 저자 도정일을 “우리 시대의 르네상스인”으로 명명한다. 문화적 좀비가 된 시민사회의 사유 정지 상태를 인문적 가치, 특히 ‘비판적 사유’를 통해 돌파하고자 하는 도정일은 “탈이성에 마취되어 있던 90년대를 ‘차가운 정신’으로 묵묵히” 관통한 예외적인 비평가이다. 박형준은 인간 개개인의 가치와 무한한 잠재성을 신뢰하는 그의 비평에서 계급 모순에 대한 사유가 부재하다고 지적하지만, 이를 근거로 그의 인문주의를 간단히 무시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근대 문학 이후를 탐색하는 모더니스트」와 「‘무중력 공간’에 갇혀버린 ‘미적 근대성’」에서 손남훈은 모더니즘 문학에 집중해온 두 평론가 황종연과 이광호를 다룬다. 이 두 평론가에 대한 손남훈의 공통된 비판은 모더니즘-리얼리즘 이분법을 따르고 있다는 점인데, 황종연은 리얼리즘에 대한 비판을 통해 모더니즘 진영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으며, 이광호는 이 이분법을 부정하면서도 한국 문학사를 도식화하여 이 대립을 재생산한다는 것이다. 하지만「근대 문학 이후…」에서 손남훈은 황종연의 “정치한 문학적 방법론과 거시적인 인식이 근대 이후를 지향하는 또 다른 문학의 지형도를 창출”할 가능성을 발견한다. 「‘무중력 공간’…」에서는 이광호 평론의 장점은 “성실한 텍스트 해석과 더불어 이를 당대의 맥락과 관련시켜 의미화하는” 데 있다고 짚으며, 이 두 평론가들이 꾸준히 만들어갈 비평의 길에 기대를 걸고 있다.

마지막으로 허정의 유성호론 「서정과 현실의 역동적인 교섭」은 시가 근대문학 종언론의 축에 끼지도 못하고 이미 퇴물로 취급받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에서 시작한다. 미래파와 전통 서정 간의 대립구도도 시들해진 지금, 유성호에 주목하는 이유는 그가 서정 개념의 갱신을 통해 이 시대 시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지속적으로 고민해왔기 때문이다. 서정이라는 ‘정공법’의 의미를 확대하여 시의 미래를 구상하는 유성호를 허정은 “철저한 현실 대면의식과 대안 세계에 대한 고갈되지 않는 희망을 중시해온 비평가”로 정의한다.


적극적 독해를 통해 이루어지는 창조적 행위, 

‘비평’의 확장을 꿈꾸며

머리말에서 지은이들은 비평을 “적극적 독해를 통해 이루어지는 창조적 행위”라 정의한다. 그 ‘적극적 독해’가 문학 작품이 아니라, 비평의 길을 앞서 걸어온 선배 평론가들의 궤적을 읽어낼 때, 그 행위는 “신화도 전설도 아닌, 한 사람의 중견 비평가”를 비추어낸다. 물론 ‘비평에 대한 비평’은 자칫 문학장 내부로만 국한된 ‘찻잔 안의 태풍’으로 읽힐 수 있다. 그러나 『비평의 비평』은 새삼 ‘읽고 쓴다’는 행위에 요구되는 용기와 섬세함, 그리고 타자와의 열린 대화가 이루어질 때의 짜릿함을 전하는, 우리 ‘읽고 쓰는 사람’ 모두에게 화두를 던지는 책이다.

『비평의 비평』을 엮은 『오늘의문예비평』은 내년 봄 100호를 발간한다. 지난 25년간 국내 유일의 비평전문 계간지로서 꿋꿋이 문학의 마중물 역할을 해온 만큼, 이 잡지 또한 ‘중견’이라 불릴 만한 깊이를 갖추게 되었다. 한국 문학 비평의 지형도인 『비평의 비평』을 통해, 『오늘의문예비평』또한 동료들을 여전히 긴장하게 만드는 ‘중견’의 모습으로 근대문학을 넘어서는 문학, 그리고 더 넓은 비평의 장으로 나아갈 원동력을 나누고 있다.


엮은이: 오늘의문예비평



지은이:



비평의 비평: 우리 시대의 중견 비평가론

오늘의문예비평 엮음 | 김경연 외 지음 

| 국판 292쪽 | 15,000원

2015년 10월 15일 | 978-89-98079-10-9 03810 

국내 유일의 비평전문 계간지 『오늘의문예비평』이 국내 중견 비평가들에 주목하는 책을 펴냈다. 여전히 문학의 장에서 활약 중인 타협 없는 ‘불한당’들의 궤적을 포착하여 우리나라 비평의 지형도를 그린다. 



차례


비평의 비평 - 10점
김경연 외 지음, 오늘의문예비평 엮음/해피북미디어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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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온수 2015.10.22 10: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디어 나왔네요^^!


소설가 김곰치·평론가 구모룡 "표절은 확실"
전성욱 편집주간 "사랑 결합하는 서사구도 유사"


부산 지역 문인들이 소설가 신경숙(52) 표절 사태와 관련해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냈다.

3일 출판계에 따르면 지난달 21일 부산광역시 거제동에 위치한 산지니 출판사 회의실에서 전성욱 편집주간의 사회 아래 소설가인 조갑상 경성대 교수와 소설가 김곰치, 시인 최영철, 평론가인 구모룡 한국해양대 교수(이하 직함 생략)가 참석해 좌담이 진행됐다.

이들은 표절 논란에 휩싸인 후 신 씨가 보인 태도, 그를 옹호하고 나선 계간 '창작과비평' 가을호에 게재된 윤지관(61) 평론가의 글, 백낙청(77) 창비 편집인의 글에 대해 비평적인 대화를 이어갔다. 

관련 내용을 정리해 '오늘의 문예비평'은 통권 98호째를 맞은 가을호에 특집좌담 '신경숙이 한국문학에 던진 물음들'을 실었다. 

김곰치는 "한국문학에 신경숙과 함께 소속돼 있다는 생각을 평소 별로 하지 않아선지, 동료애랄 게 없어 솔직히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다"며 "몇 평론가들이 십몇 년 전부터 이 소설가의 표절 문제를 지적해 왔지만 그것이 널리 알려지지 못했는데, 이번에 제대로 공론화되어 다행이다"고 말했다.

이어 "신경숙의 표절행위로 그의 작품들에 대한 냉정한 재평가가 이루어진다면 빈자리를 다른 새로운 작가들이 채울 기회를 얻게 되니까 좋은 일이다"며 "왜곡된 것을 바로잡는 것은 언제나 필요한 일이고, 드디어 그런 기회가 왔다는 것이 기쁘다"고 덧붙였다.

김곰치는 "표절은 확실하다"며 "같은 작가 입장에서, '기억이 나지 않는다'든지 '표절 의혹을 제기하는 것이 맞겠다'라는 식의 신경숙 답변은 말이 안된다"며 "대중 앞에 나서서 작가가 거의 죽을 정도의 서러운 결단으로 고백을 하든지 신상발언을 해야 하는데, 신경숙의 대응은 참 실망스러웠다"고 밝혔다.

구모룡은 "표절이냐 아니냐하는 논란은 이미 다 결판났다고 생각한다"며 "당사자조차 기억이 안 난다. '아몰랑' 이런 식으로 하니까 정치판이나 문학판이나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문학은 기억과 진실을 이야기하는 것인 만큼, 신경숙의 태도가 진솔하지 못해 아쉬웠다. 이 기회에 신경숙 문제만이 아니라, '읽고 쓴다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비평 전문 계간지 '오늘의 문예비평'은 통권 98호째를 맞은 가을호에 

특집좌담 '신경숙이 한국문학에 던진 물음들'을 실었다. 2015-09-03

이어 "신경숙의 글은 신경숙의 읽고 쓰는 방식에서 나오는 것이다"며 "백낙청 선생을 비롯해 많은 사람이 신경숙 문학의 강점으로 신경숙만의 고유한 경험과 기억을 꼽았다. 문제는 신경숙이 가진 기억과 경험이 소진됐다는 것이다. 자신의 명망이나 자본과의 관련성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애쓰다보니 이 사람의 글쓰기가 왜곡되기 시작했다. 이런 문제에 대해 성찰해야 될 때가 아닌가 싶다. 작가가 자신이 얻은 허명의 노예가 되거나 자본에 종속될 때 어떻게 귀결되는가, 이런 반성을 신경숙을 통해 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전성욱은 "어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조정래 선생께서는 '왜 하필이면 이 작품이냐'라는 말씀을 하시기도 했는데,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은 1936년의 2.26사건, 즉 청년 장교들이 천황의 친정을 주장하며 일으킨 우익 쿠데타를 다룬 작품이다. 국가에 대한 사랑과 남녀 사이의 사랑, 삶과 죽음의 문제를 결합시켜 아주 농밀한 에로티시즘으로 천황에 대한 우국의 지성(至省)을 전하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이어 "'전설'도 한국전쟁이라는 역사적 상황 속에서 남녀의 사랑을 다루고 있다"며 "두 작품에서 공통된 구도는 남자가 나라를 위해 떠나야 한다는 설정이다. 특정 문단의 일치 여부와는 별도로, 국가주의와 남녀의 사랑을 결합하는 서사적 구도가 유사하다"고 덧붙였다.

구모룡은 "'전설'이 수록된 소설집의 원래 제목은 '감자 먹는 사람들'이 아니라 '오래 전 집을 떠날 때'(창비, 1996)이다"며 "정문순 씨의 평론에서 두 작품의 문장을 나란히 비교해 놓은 것을 보면 명백한 표절이라고 생각된다"고 말했다.

최영철은 "신경숙 작가는 기억이 없다고 말한다"며 "이는 작가가 이 문제에 대해서 아무런 도덕적 의식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국내의 대표작가가 그런 정도라면, 오늘날 작가들의 문학적 도덕성 또한 우려해야 할 수준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김곰치는 "과거 '문예중앙'에 실린 정문순 평론가의 표절 지적을 알고 있었을 것이고, 작가 본인은 정문순의 평론을 묵살하면서도 속으로는 엄청 찔렸을 텐데, 왜 개정판을 내면서 해당 단편을 빼는 조치를 취하지 않았을까 싶다. 같은 출판사에서 제목만 바꾸고 수록작은 똑같다. 왜 그랬을까 싶다"고 말했다.

백낙청 창비 편집인은 지난달 27일 페이스북을 통해 "의도적인 베껴 쓰기, 곧 작가의 파렴치한 범죄행위로 단정하는 데는 동의할 수 없다"며 신경숙을 두둔하는 발언을 했다. 이어 지난달 31일에는 "잡담 제하고 신경숙의 해당대목이 의식적인 베껴쓰기가 아니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이 질문에 답할 정확한 진실은 저도 모른다"고 말해 누리꾼들의 공분을 샀다.

이와 관련한 토론도 이어졌다. 구모룡은 "'백낙청 선생은 왜 오판했는가'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백낙청 선생은 신경숙의 출신, 즉 신경숙이 가지고 있는 공장 여성노동자로서의 경험을 과도하게 평가했다. 이런 평가에는 백 선생의 태생적 한계가 작동하고 있다. 백 선생은 부유한 집안에서 나고 자랐지만, 진보적인 리얼리즘을 주장한 분이다. 이 분의 맹점은 가난함 속에 자란 경험을 모르는 것이다"고 말했다.

이어 "이 같은 일종의 무지로 한 몫 접어두고 신경숙을 보게 되니, '창비'는 문학주의가 아닌데도 신경숙을 두고는 '문학동네'와 뜻을 같이 해버리는 묘한 상황이 일어난 것이다. 이는 안타깝게도 백낙청 선생을 지지하는 사람들까지 곤경에 처하게 만들었다"고 덧붙였다.

표절 의혹이 제기된 신경숙의 소설 '전설'이 수록된 단편집 '감자 먹는 사람들'(사진=뉴시스 DB) 2015-09-03

최영철은 "지금 출판 자본과 작가의 관계만 주목하는데, 사실 중요한 것은 독자"라며 "제삼자인 독자에게도 책임이 있다. 지금 독자들의 수준과 성향이 표절을 부추긴 한 요인일 수 있다. 10만부 넘게 팔리는 책이 있으면 1만부나 5000부가 팔리는 책도 있어서 나란히 가야 한다. 하지만 지금의 출판시장은 좋은 책을 1000부 팔기도 힘든 게 현실이다. 갈수록 독자층이 잘 팔리는 작가와 작품 쪽으로만 몰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런 측면에서 따지고 보면 독자에게도 책임이 있을 수 있다"며 "독자가 잘 감시했다면 인기작가 신경숙이 아닌 좋은 작가 신경숙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나라 독자층의 특질이 그런 작가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곰치는 "충격적인 것은 창비가 표절사건이 벌어진 후 이를 '신경숙의 작품이 더 뛰어나다'면서 무마하려 했다는 점이다"며 "하지만 제가 읽은 '전설'은 '우국'과 비교조차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우국'은 미시마가 처음부터 끝까지, 철저히 완벽한 문장을 쓰겠다고 작정하고 쓴 단편임이 느껴진다"며 "미시마는 작품 발표 뒤 약 10년 뒤 '우국'의 자살 장면을 자신의 자살로 재현했고, 이는 자신의 목숨을 바쳐 이 작품을 완성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단편소설 하나에 목숨을 건 이런 집중력을 저는 거의 본 적이 없다. 그에 비해 '전설'은 참 허접하다. 표절 문제를 떠나 억지로 쓴 가짜 작품이다"고 말했다.

김곰치는 "윤지관 평론가는 '전설'이 더 뛰어나다고 이야기했는데, 믿을 수 없는 비평적 언사였다"며 "부산문단도 무차별화 등 문제가 많지만, 이 표절 사건을 보고 알 수 있듯이 창비도 무섭게 타락했다"고 말했다.

전성욱은 "그동안 애써 살피지 못했던 어떤 진실들이, 이번 사건을 계기로 충격적으로 드러났다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고 본다"며 "특히 이른바 주류 문예지와 출판사, 그리고 언론에서 만들어낸 신화화된 작가와 작품의 이데올로기적 성격이 탄로나버렸다"고 말했다.

이어 "실은 다들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문학장의 정치적 역할 때문에 억압되고 말았던 진실"이라며 "이렇게라도 드러나게 된 진실을 어떻게 보존하느냐가 관건이고, 그 진실을 보존함으로써 지금까지 부당하게 이익을 얻어온 사람들을 견책하고, 또 결국에는 그들이 책임을 질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할 것이다"고 덧붙였다.


신효령 | 뉴시스 | 2015-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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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문예비평 2015.가을 - 10점
산지니 편집부 엮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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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봉권의 문화현장] 

30년 전 그날 기념만 잘해도 부산 예술문화 돌파구 열린다


화국반점 거사 재연



지난 7일(5월 7일) 부산 중구 동광동 화국반점에서 '화국반점 거사'를 30년 만에 기념하고 재연하는 뜻깊은 행사(사진)가 조촐하게 열렸다. 30년 전 화국반점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1985년 5월 7일 화국반점 2층에 '열 명이 조금 넘는' 부산의 문학인이 모였다. 저항과 참여의 상징 요산 김정한 선생이 좌장이었다. 윤정규 이상개 조갑상 오정환 김문홍 류명선 강영환 구모룡 최영철…. 군사독재의 서슬이 시퍼렇던 그 시절, 이들은 경찰과 기관원의 감시를 피해 그날 이 자리에서 '5·7문학협의회' 결성을 선포했다.


5·7문학협의회(이하 5·7)는 쟁쟁하거나 패기 넘치는 부산의 문학인들이 뜻을 모아 폭력과 압제투성이의 전두환 군부독재정권에 맞서 저항활동을 펼친 단체다. 돌이켜 보면, 독재에 저항한 예술인 모임 5·7문학협의회가 없었다면 부산 문화는 부끄러워 어쩔 뻔했나 하는 생각이 든다.


반독재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던 전국 단위 문인 모임인 자유실천문인협의회(1974년)가 1987년 9월 민족문학작가회의로 확대 개편한다. 그해 11월 5·7도 '부산민족문학인협의회'로 확대 개편한다. 이 단체가 결국 지금의 부산작가회의로 이어지면서 부산 예술의 중요한 축을 이룬다.


지난 7일 화국반점에서 열린 '5·7문학협의회 30주년 기념모임'은 최영철 시인과 구모룡 문학평론가가 주도했다. 30년 전 이 자리에서 5·7의 출범식에 직접 참가했던 문인들이 함께 자리했고, '오늘의 문예비평' 편집진과 소설가 시인 등 후배 문인도 왔다. 참가자는 모두 20명이었다. 구모룡 평론가는 '진보적 문학 전통의 복원과 계승-1980년대 문학운동과 57문학협의회'라는 뜻깊은 글을 발표했다.


이 행사가 무척이나 반갑고 뜻깊었다. 제대로 기념만 잘해도 예술문화의 돌파구는 열 수 있다. 한국 예술가들이 입만 열면 했던 말이 "파리에 갔더니 사르트르가 앉았던 카페의 테이블을 그대로 보존해놨더라. 한국은 아직 멀었다" "대영박물관과 루브르박물관 갔더니 대단하더라. 한국은 아직 멀었다"였다. '사르트르 카페'든 대영박물관이든 결국 출발은 기념과 보존이고, 이것만 잘 해도 예술문화의 돌파구는 연다.


현대 부산 예술사와 사회운동사에서 의미가 큰 5·7은 30년 전 결성 장소인 화국반점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범죄와의 전쟁' '신세계' 같은 영화를 찍을 만큼 옛 모습을 잘 간직했다. 그때를 생생히 기억하는 문학인들도 있다. 후배들은 부산작가회의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렇게 모든 게 갖춰져 있는데도, 그간 화국반점에서 요산문학제 뒤풀이는커녕 5·7을 기념하고 재조명하려는 시도 자체가 없었다는 점은 서글프고 아프다. 


   

구 평론가가 이날 발표한 글에 따르면, 5·7과 관련해 바로잡아야 할 기록과 사실관계도 적지 않다. 문단 선후배들이 모여 자신들의 소중한 전통을 더욱 잘 가꾸고 나누는 모습을 기다린다.


조봉권ㅣ국제신문ㅣ2015-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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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학도 자만도 밀려가는 저녁에 써내려간 젊은 평론가의 수기

비평전문계간지 『오늘의문예비평』을 이끌며 비평활동을 활발히 전개하는 평론가 전성욱이 두 번째 저서이자 첫 번째 산문집 『현재는 이상한 짐승이다』를 펴냈습니다. “자학도 자만도 밀려가는” 어느 저녁, 주관의 늪과 냉소의 권위로 고뇌하던 젊은 평론가가 그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쓴 일종의 망명 기록입니다. 책머리에서 그는 어둠 속으로 빛이 저물자 적막 속에서 비로소 떠오르기 시작하는 자신을 고백했습니다. 그가 “나는 무너진다”라고 했을 때 그 말은 파도와 같습니다. 영화를 보고, 연극을 보고, 사진을 보고, 책을 읽고, 여행을 떠나고, 대화를 나눌 때 흐르는 사유의 조석(潮汐)은 여러분의 마음 어디까지 흘러올 수 있을지 한번 지켜보세요.

 

보편에 이르는 멀고 아득한 길들의 길목에서

영화를 보며 쓴 글이 책의 1부를 구성합니다. “나에게 영화의 재미, (중략) 그 놀라운 향락의 희열에 눈뜨게 해준 것은 고다르였다.”라는 고백과 “<변호인>은 세간의 뜨거운 호응과는 달리 그리 매력적인 영화라고 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라는 안타까움 등 국내영화와 해외영화, 상업영화와 독립영화를 망라한 다양한 감상으로 가득합니다.
 
2부는 문학평론가로서의 정체성이 가장 잘 드러나는 독서기록입니다. 『실크로드 문명기행』(정수일), 『나치즘과 동성애』(김학이), 『해석에 반대한다』(수전 손택) 등 인문, 사회과학서적을 비롯해 문학에만 치우치지 않는 고른 선택이 돋보이되, 이상섭, 강동수, 허택, 배길남 등 그의 생활 터전이자 비평 무대를 함께하는 지역의 작가들 역시 눈여겨봄으로써 잊혔던 비평가의 또 다른 역할을 상기합니다.

전성욱이 스스로를 ‘나’라고 가장 많이 호명하는 3부는 <라이프 사진전>과 <퓰리처상 사진전>, <랄프 깁슨 사진전>, 베이징과 상해 기행 등 사진전과 연극, 세미나를 접하고 여행을 떠나면서 느낀 글을 모았습니다. 사진이라는 순간적 이미지에서 여행이라는 일상의 변주에 이르는 평론가의 일상이 지적이면서도 경쾌한 매력을 발산합니다.

마지막 ‘바깥에서 바깥으로’는 「비평가의 사무」, 「읽히지 않는 잡지를 만든다는 것」, 「속된 비평의 무안함에 대하여」 세 편의 글로 이루어진 첨언입니다. 구성은 단순하지만 하나같이 평론가로서의 정체성, 나아가 비평가란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상상한 흔적으로 가득합니다.

지금 문학은 몰락의 소문으로 시끄럽고 구원의 열망으로 간절하다. 그 소문들의 진상을 살피고 더 나은 세계로의 변혁에 이르려는 상상력의 여러 차원들을 해석하고 사유하는 것, 그것이 지금 우리 평론가들에게 주어진 소명이 아닐까. 그러므로 이제라도 비평은 글쓰기의 차원으로 맴돌 것이 아니라, 저 책의 운명들 속으로 들어가 그 활자들의 물질성과 더불어 구체화되어야 할 것이다. —「비평가의 사무」 중

 


현재는 이상한 짐승이다. 기르는 개인가, 해치는 늑대인가?

산문집 특유의 매력 속에서도 평론가로서의 전성욱의 자의식을 찾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비평은 작가의 외로운 작업에 말을 걸고 대화를 이끌어내는 글쓰기다. 비평은 작가가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을 일깨우고, 의도하지 않은 위대함을 발견하며, 다른 누군가를 그 대화 속으로 끌어들여 작가와 작품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한다. 결코 비평은 군림하기 위해 존재하는 글쓰기가 아니다. —「속된 비평의 무안함에 대하여」 중

 

‘현재는 이상한 짐승이다’라는 제목에 영감을 준 이는 전성욱이 아끼는 영화감독 장 뤽 고다르지만, ‘아무도 읽지 않는’ 글을 쓰는 저자의 모순적 상황과 거기서 오는 절망 혹은 고독이 이 이상한 짐승의 세포일지도 모를 일입니다. 현재가 이상한 짐승이라면 또한 개와 늑대의 시간이기도 한바, 인자할 수도 경계할 수도 없는 이 모호함 속에서 전성욱은 홀로 치열합니다.

 

 

 


전성욱
문학평론가, 계간 《오늘의 문예비평》 편집주간. 동아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일하고 있으며 평론집으로 『바로 그 시간』(2010)이 있다.

 


차례

 

책머리에-나는 무너진다


1부
장르 클리셰의 형이상학―세르지오 레오네 걸작선
장 뤽 고다르의 시간―<영화사(들)>
영화로 개시되는 사유의 운동―<필름 소셜리즘>
현재는 이상한 짐승이다―<언어와의 작별>
속죄와 구원―다르덴 형제의 영화들
두 대의 리무진―<홀리 모터스>, <코스모폴리스>
말년의 고독―<아무르>
남자가 남자를 사랑할 때―<해피 투게더>, <열대병>, <브로크백 마운틴>
감독의 길―구로사와 아키라 탄생 100주년 특별전
오즈의 맛―오즈 야스지로 50주기 특별전
르상티망과 노예도덕―<아리랑>
영화, 그리고 소설―<러시안 소설>
가족이라는 아포리아―<고령화 가족>, <불륜의 시대>, <댄스 타운>
제주의 비경―<지슬>, <비념>
진짜 폭력―<한공주>
좌절을 대하는 방식―<변호인>
청춘의 시간―<은교>
기억이 부르는 날에―<건축학 개론>

2부
전위의 감각―수전 손택, 『해석에 반대한다』
가라타니 고진의 마르크스―「마르크스 그 가능성의 중심」에서 『세계사의 구조』에 이르기까지
시시포스와 길손의 발걸음―왕후이, 『절망에 반항하라』
어긋남에서 어긋냄으로―김학이, 『나치즘과 동성애』
어느 민족주의자의 문명교류 답사기―정수일, 『실크로드 문명기행』
학문의 길―윤여일, 『지식의 윤리성에 관한 다섯 편의 에세이』
공생의 조건―최재천, 『통섭의 식탁』
답습 않는 기이함―황정은, 『百의 그림자』
막막함, 먹먹함―정태언, 『무엇을 할… 것인가』
적의로 가득한 우정―공지영,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환상과 해학―이상섭, 『챔피언』
척도에 대하여―강동수, 『금발의 제니』
화해하지 말고 증오하라!―배길남, 『자살관리사』
결핍의 정치학으로―허택, 몸의 소리들

3부
그 너머에 있는 것은 무엇인가―마리오 테스티노 사진전
대상의 이면―랄프 깁슨 사진전
한 순간의 영원한 울림―라이프 사진전과 퓰리처상 사진전
질서를 향한 내재적 충동―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사진전
경솔한 망각―연극 <리어를 연기하는 배우, 미네티>
늦은 저녁의 어떤 위로―연극 <황금용>
보편에 이르는 길―연극 <바보각시>
독서를 권장함―가을 독서문화 축제
급진적인 것의 비루함에 울리는 경종―강신준 교수의 『자본』 강의
낯선 만남의 파동―상하이 기행
사상의 실감을 공감한다는 것―동아시아 혁명사상 포럼
중국의 마르크스주의―난징대의 장이빈 교수 
대중의 취향―‘조정래 『정글만리』의 중국읽기’ 좌담회
익숙해질 수 없었던 이방인의 슬픔―베이징 기행
기억함으로써 가능한 기적의 순간―광주기행
열등감으로부터 시작하다―이윤택
탐미적 비평의 몸살―허문영
진지함의 이면―진동선
모더니즘이라는 파르마콘―김민수
비어 있기에 가득 찬 곳―공간 초록


첨언 : 바깥에서, 바깥으로
비평가의 사무
읽히지 않는 잡지를 만든다는 것
속된 비평의 무안함에 대하여

 

 

 

『현재는 이상한 짐승이다
전성욱 산문집


전성욱 지음 | 문학 | 신국판 | 352쪽 | 18,000원
2014년 12월 31일 출간 | ISBN :978-89-6545-279-9 03810

 비평전문계간지 『오늘의문예비평』을 이끌며 비평활동을 활발히 전개하는 평론가 전성욱이 펴낸 산문집. 영화를 보고, 연극을 보고, 사진을 보고, 책을 읽고, 여행을 떠나고, 대화를 나누며 얻은 사유를 담았다.

 

 

 

 

 

현재는 이상한 짐승이다 - 10점
전성욱/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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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김무엽 2015.02.05 18: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우 드디어 나왔군요

  2. 2016.11.13 01: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왼쪽부터) 저자 조세현 교수, 김필남 평론가.

산지니 6월 저자와의 만남
『부산화교의 역사』, 조세현

 

6월 11일 수요일 서면 러닝스퀘어에서 산지니와 『오늘의문예비평』이 함께하는 저자와의 만남이 열렸습니다. 이번으로 벌써 60회를 맞는 6월 저자와의 만남 주인공은 『부산화교의 역사』를 쓴 조세현 부경대학교 사학과 교수입니다. 계간 『오늘의문예비평』 편집위원인 김필남 평론가가 즐거운 대담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로컬문화총서 04
『부산화교의 역사』
조세현 지음
역사 | 국판 양장 | 208쪽 | 16,000원
2013년 12월 30일 출간 | ISBN : 978-89-6545-236-2 94300

인천화교가 중심이었던 기존 한국화교 연구의 폭을 확장한 저서로서, 부산화교 초기부터 현재까지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시대에 따라 청국조계지, 시나마치(支那町), 청관(淸館)거리, 상해(上海)거리로 불리던 부산화교의 역사와 함께 한국 근현대사의 굴곡까지 되짚을 수 있다.

 

 

가장 먼저, 한국에서는 인천화교가 가장 유명한데 부산화교를 대상으로 책을 쓴 계기를 묻자 “사투리는 쓰지 않지만 초중고 모두 부산에서 나온 부산 사람”이라며 시민 인증(?)부터 한 저자는 전공인 중국 근현대사상과, 성장했고 또 몸담고 있는 도시인 부산을 연결할 수 있는 주제를 찾다 부산화교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또한 저자는 “앞으로의 연구에 돌 하나 얹는 마음”으로 쓴 책이라며 대담 내내 겸허한 모습이었지만 부산화교에 대해서는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라는 분명한 입장이었습니다. 물론 가장 크고 중요한 것들만 연구할 가치가 있는 건 아니겠죠?

이야기는 한국, 그중에서도 부산 화교의 특징으로 이어졌습니다. 전 세계 화교는 대다수가 중국 복건성이나 광동성 출신의 남방화교입니다. 하지만 한국의 화교들은 특이하게도 지리적으로 가까운 산동 화교가 많습니다. 인천에 들어온 화교들이 주로 노동자임에 반해 부산의 화교는 소수이긴 하지만 일본 차이나타운의 지원을 받은 복건성 출신의 화교 상인들이 들어옵니다.

 

경청하는 독자 여러분.



초창기 부산화교는 청나라 조정의 지원을 받은 지배자로서 등장합니다. 저자는 여기서 ‘상해네트워크’(19세기 후반 상해를 중심으로 영국제 면직물을 수입하여, 다시 상해에서 화북지역, 조선, 일본 등으로 재수출하는 유통구조-『부산화교의 역사』에서 인용)를 언급하셨는데요. 이러한 흐름에 영향을 받는 것이 초기 한국화교, 인천화교와는 다른 점이라고 합니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서 부산에도 산동화교들이 많아지기 시작합니다.

초반에는 화교가 청조의 지원을 받은 지배자로 등장하지만 청일전쟁을 겪으며 바뀝니다. 특히 한국전쟁 시기 ‘중공군 때문에 통일이 되지 못했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화교를 백안시하고, 한국 화교들의 국적도 대만으로 바뀝니다. 하지만 1992년 한중수교가 성사되자 한국과 대만의 관계는 끊어지고 화교의 정체정에도 혼란이 옵니다. 이외에도 박정희 정권의 화교억압정책 등 한국의 화교들은 역사적 사건에 따라 다사다난한 삶을 살아야만 했습니다.

부산을 배경으로 한 주제이니만큼 참가하신 분들도 유달리 많은 관심을 보여주셨는데요. 현재 부산에 거주하는 화교의 수와, 부산화교의 상징적 건물 봉래각, 차이나타운 축제와 발전, 화교억압정책, 짜장면(!) 등 다양한 제제의 문답이 오갔습니다.

 

 

원래 이번 행사는 초량 차이나타운 축제 때 한중우호관에서 개최하려고 했는데, 세월호 참사로 축제가 무기한 연기되자 불가피하게 장소를 서면으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유익한 시간이라 모두가 즐거웠지만 단 한 명, 대관을 담당한 편집자 Y의 마음은 빠듯한 시간 때문에 원래 콩만 했던 것이 아예 좁쌀이 되었다나 어쨌다나.

재미난 이야기 들려주신 선생님과 대담자 김필남 선생님, 와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합니다.
다음 저자와의 만남도 많이 기대해주세요.

 

 

 

 

청국조계지에서 상해거리까지─『부산화교의 역사』(책소개)

 

 

부산화교의 역사 - 10점
조세현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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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家好!
여러분
안녕하세요, 산지니입니다.

계간 『오늘의 문예비평』과 함께하는 제 60회 산지니 저자와의 만남 주인공은 『부산화교의 역사』 저자 조세현 교수님입니다.

혹시 부산 초량 차이나타운과 금강산의 공통점이 뭔지 아시나요? 바로 다른 이름을 넷이나 가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금강산은 계절마다 이름이 달라지지만, 차이나타운은 시대에 따라 이름을 달리했지요. 청국조계지, 시나마치(支那町), 청관(淸館)거리, 상해(上海)거리로 말입니다. 각각의 이름에 따른 차이나타운의 역사, 그리고 부산의 역사를 함께 짚어보게 될 이번 저자와의 만남에 독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행사는 1시간가량 진행하며 참가비는 없습니다. 행사 중 토스트와 음료를 무료로 드실 수 있고 추첨을 통해 산지니 책을 선물합니다. 많은 참여 바랍니다.

 

일시: 2014년 6월 11일 수요일 저녁 7시
장소: 러닝스퀘어 서면점 (동보플라자 맞은편 모닝글로리 3층)
대담: 김필남(『오늘의문예비평』 편집위원)
주최: 산지니, 오늘의문예비평

 

청국조계지에서 상해거리까지─『부산화교의 역사』(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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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터치] 물건의 옹호 


전성욱

'오늘의 문예비평' 편집주간·문학평론가





무소유가 번뇌로부터 벗어나는 자유의 길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세속의 삶이란 늘 이런저런 것들의 소유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분쟁들로 시끄럽다. 실은 그 소유의 욕망이야말로 이 거대한 소비의 체제가 지탱될 수 있는 바탕인 것이니까. 버려야 채울 수 있다는 위대한 역설에도 불구하고, 갖고 싶다는 그 채움의 물욕은 결코 만족을 모른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만, 버림과 비움을 통해 자제를 실천하는 빈자(貧者)의 행복이란 것이 어디 말처럼 쉬운 경지인가. 그렇다면 차라리 무소유라는 궁극의 가르침보다, 제대로 소유하는 것의 방법을 궁리하는 것이 비천한 우리들의 일상에서는 더 절실한 문제가 아닐까 싶다.

나는 왠지 '물건'이라는 말이 참 좋다. 그렇다고 내가 물신주의를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갑작스레 비가 쏟아지던 어느 날 낭패를 맞은 얼굴로 어쩔 줄 모르고 있을 때, 곁에 있던 친구가 편의점으로 뛰어가 사다 준 그 싸구려 우산이 나에겐 아직도 무척이나 아끼는 물건이다. 스승의 날에 강의실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학생 하나가 내게 건넸던 황기찬의 시집 '구관조 씻기기'가 또한 그렇게 나를 흐뭇하게 하는 물건이다. 그 시집의 속표지에는 "앞으로도 이처럼 이따금씩 시집을 선물할 수 있는 제자가 될 수 있기를 바라며"라고 적혀 있었다. 내가 사랑하는 물건들에는 이처럼 모두 어떤 아련한 사연과 추억이 깃들어 있다. 어떤 시인은 우리 시대의 병폐를 '생명에서 물건으로'라는 짧은 시구에 압축하기도 했지만, 사실 물건의 소비주의를 탓하고 나무라는 것은 너무도 진부하고 식상한 일이다.




어떤 기자가 성공한 기업가의 인터뷰 기사에서, 오직 사업밖에는 생각하지 못하는 그에게 '몰스킨 다이어리의 질감과 몽블랑 만년필의 필기감에서 작은 행복을 느껴보는 것도 좋겠다'고 쓴 문장을 보고 짜릿한 통쾌함 같은 것을 느낀 적이 있다. 좋은 물건을 소유하고 그것에서 삶의 풍요로움을 느낄 수 있는 여유는, 단지 값비싼 물건들을 잔뜩 갖고 있으며 그것을 마음껏 처분할 수 있는 권리를 누리는 것과는 전혀 다른 성질의 것이다. 그것은 잘 들고 다니지도 않는 명품 가방을 잔뜩 사 모으는 누군가들의 호사스런 취미와도 물론 다르다. 그러니까 물건에서 오는 삶의 행복이란, 그것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이용'하는 데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시대를 살고 있지만, 사람들은 나날이 더 각박해지고 그 속내는 모두 외로움으로 곤궁하다. 그것은 아마도 사람이 물건을 누리지 못하고 물건이 사람을 부리는, 사람과 물건의 그 전도된 관계 때문이리라.


소설가 김훈이야말로 우리 시대의 진정한 물건애호자가 아닐까 싶은데, 널리 알려진 것처럼 그는 천만 원이 넘는 고가의 자전거를 타고, 독일제 스테들러 연필로 원고지에다 글을 쓴다.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김훈의 그런 사치가 좋아 보인다. 억대의 자동차 대신에 그는 명품 자전거를 타고, 값비싼 노트북을 두드리는 대신에 그는 품질 좋은 외제 연필로 또박또박 글을 쓴다. 그리고 그렇게 그가 자전거로 누비고 다닌 사연들이 그 연필로 쓴 문장으로 만날 때, 나는 그 명품의 글쓰기를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감동한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 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나는 물건에 대한 집착이 없어요. 다만 귀하다는 것은 알아. 명품은요, 내 몸에 딱 맞는 게 명품이에요." 좋은 물건이 좋은 임자를 만나면, 그렇게 그 물건은 우리 모두를 이롭게 한다.  더 자세히 읽기



이 글은 국제신문에 3월 23일자 본지 26면에 실린 글을 일부 발췌한 글입니다. 

전문은 읽고 싶으신 분은 더 자세히 읽기를 눌러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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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자 손남훈 평론가님(좌)과 저자 목학수 교수님(우)

 

3월 18일 화요일 저녁, 부산대학교 근처 <금정예술공연지원센터>에서 3월 저자와의 만남이 열렸습니다.

주인공은 바로 『미국 대학의 힘』의 저자 목학수 교수님! 사회자는 비평 전문 계간지 『오늘의문예비평』편집위원인 손남훈 평론가님입니다. 미국 대학을 탐방할 오늘의 ‘일일 신입생’들을 위해 친절하고도 지적인 안내자가 되어주셨습니다.

 

부산대학교 산업공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시는 교수님을 위해 장소 섭외에 신경을 좀 썼습니다. 다행히 대학생 여러분들도 많이 와주셨습니다.

 

첫 번째 질문은 역시 책을 쓰게 된 구체적 계기였습니다. 아시다시피 『미국 대학의 힘』은 저자가 미국 오하이오 대학교에서 연구년을 보내며 쓴 미국 대학 견문록입니다. 목학수 교수님은 “처음부터 책을 쓰겠다고 생각했으면 책을 쓰지 못했을 것”이라며 겸손을 보이셨지만, 선생님이 보내신 초고에는 미국 대학에서 보고 들은 것을 한국의 상황과 비교하며,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고 참고하여 개선할 필요가 있다면 또한 그렇게 해야 한다는 의지가 가득했습니다.


2014년 지금 이 시점에서 미국의 시스템을 받아들이는 것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라는 질문의 답 중에는 “대학에서 교수란, 학생이란 무엇인지 의미를 생각해야 한다”는 말이 나왔습니다. 한국 대학은 서비스에 대한 인식이 아직 부족한데, 이 부분은 선생님이 『미국 대학의 힘』에서 여러 번 강조하신 부분이기도 하죠. 대학에서 교수란, 학생이란, 교직원이란, 학부모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충분히 생각하고 또 그에 필요한 여러 가지 제도나 서비스를 연구한다면 대학이 발전하고, 더불어 그것이 소속된 우리 사회도 더욱 나아질 것 같습니다.


손남훈 사회자는 “책이 시스템을 이야기하는 것 같지만 사실 서비스, 사람이 먼저”가 아니냐는 날카로운 분석을 해주셨는데요. 지방거점국립대학이나 상대평가 같은 거시적 담론부터 미국 대학 화장실에선 찾아볼 수 없는 스티커(“남자가 흘리지 말아야 할 것은 눈물만이 아닙니다” 등)처럼 작고 사소한 내용까지 두루 담긴 『미국 대학의 힘』의 특성을 정확하게 파악해주신 것 같죠?

산지니도 그렇지만, 저자와의 만남이 열리고 교수님이 교편을 잡고 계신 부산대학교 역시 지역 대학입니다. 미국은 주 자치가 발달된 나라인 만큼 지역과 대학이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데요. 교수님이 미국의 한 대학 부총장에게 대학의 목표가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크게 놀라셨다고 합니다.

 

클락 박사는 “웨스트버지니아 대학교는 2020년까지 국가적인 연구에 두각을 나타내어, 이를 통해 대학 교육의 국제화를 강화하고 웨스트버지니아 주의 시민들에게 생활의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대학이 되고자 하는 비전을 가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또 “웨스트버지니아 대학교는 좋은 학생들을 길러 내고, 주립대학으로서 주에 기여할 수 있는 역할이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찾으며, 다음 세대를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하였다.

『미국 대학의 힘』,「웨스트버지니아 대학교에서 본 PRT」 중

 

대학이 독립적 기관으로 기능할 것이 아니라 그가 위치한 기관과 끊임없이 관계를 맺고 함께 성장해야 하며, 지역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를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4월 저자와의 만남은 매력 넘치는 어중씨와 함께합니다. 기대 많이 해주세요. 4월은 어중씨만 믿고 따~라~와~

 

『미국 대학의 힘』책 소개>> http://sanzinibook.tistory.com/1036

 

미국 대학의 힘 - 10점
목학수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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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온수입니까 2014.03.21 09: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학을 다니지 않아도 행복하게 살 수 있게 하는 것 또한 대학의 역할이라는 사실에 깊이 공감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산지니입니다.

계간 『오늘의문예비평』과 함께하는 산지니 56회 저자와의 만남 주인공은 신간 평론집 『집요한 자유』의 저자 정미숙 평론가입니다.

저자의 첫 번째 평론집인 『집요한 자유』에서는 페미니즘과 젠더, 이성애와 동성애, 여성소설과 남성소설을 아우르며 다양한 젠더의 문제를 탐문합니다. 그중 어떤 물음은 성적 소수자와 관련되었기도 합니다. 존재를 주장할 수 없는 삶이 예술을 통해 목소리를 얻게 되는 과정에 귀 기울여 보시기를 바랍니다.

정미숙 평론가가 취한 ‘자유’는 작가와 텍스트에 대한 정확한 독해와 온전한 해석을 실현하는 길, ‘문학평론가’로 사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자유'는 어떻게 '집요'해지는 걸까요? 『오늘의문예비평』 편집위원인 김필남 선생님의 사회와 함께 살펴봐요.

 

일시: 2014년 2월 27일 목요일 저녁 7시
장소: 서면 러닝스퀘어(동보플라자 맞은편 모닝글로리 3층)
사회: 김필남(『오늘의문예비평』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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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권 디자이너 2014.02.04 14: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제 인쇄물이 제본으로 넘어갔으니 곧 책이 나오겠네요.

안녕하세요, 전복라면 편집자입니다.

요즘 감기몸살에 시달리고 있는데요. 참다 참다 집 근처 소아과로 출발했습니다.   "아이 진료 받으시려구요?" 라는 말에는 조금 당황했지만 접수 이후에는 한 번도 전복라면 어린이~로 불러주지 않은 간호사님의 센스에 감사하며 주사 한 방 맞고 엉덩이에 알록달록한 뽀로로 밴드를 붙이고 돌아왔습니다.

앓고 있으니 웬일로 식욕이 없어서 이참에 다이어트가 좀 되려나 했는데 주사 맞고 약 먹고 좀 살 만하니까 제일 먼저 돌아오는 게 또 식욕이더라구요? 덕분에 잠깐 사라졌던 볼살은 다시 컴백볼. 하지만 사라진 주간 산지니의 재미는....아직 약을 좀 더 먹어야...

 

 

현대 중국인의 고뇌와 꿈 『흩어진 모래』 저자와의 만남에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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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김종신 2013.12.07 08: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빨리 완쾌하셔서 재미 넘치고, 정겨운 주간 산지니 부탁합니다~. 응원하는 의미에서 오늘 점심은 라면으로 먹을까요?

    • 전복라면 2013.12.09 09: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마음만 감사하게 받을게요 식사는 꼭 밥으로 드세요ㅎㅎ 따뜻한 댓글 감사합니다. 솔님도 감기 조심하세요!

 

 

 

 

 

손전등을
끄고
달을 좇아

산지니 51회 저자와의 만남
9월의 저자 정천구

 

안녕하세요, 전복라면 편집자입니다. 9월 25일에 열린 산지니 51회 저자와의 만남은 특별히 부산외국어대학교 도서관과 함께했습니다. 이날의 초대 저자는 『중용, 어울림의 길』의 저자 정천구 선생님입니다.  대담에는 계간 오늘의 문예비평 편집위원이자 문학평론가인 손남훈 선생님이 함께해주셨습니다.

 

중용불가능-『중용, 어울림의 길』(책소개)

 

 

반갑습니다, 정천구 선생님의 『중용, 어울림의 길』이라는 책을 가지고 선생님과 직접 대담할 수 있어서 영광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중용, 어울림의 길』 이전에도 『논어, 그 일상의 정치』라든지 『맹자독설』 같은 책들을 통해 유가의 필독서들을 번역하고 재해석해서 다시 현실에 적용하려는 노력을 꾸준히 해오셨습니다. 그 연장선상에서 『중용, 어울림의 길』이란 책도 단순히 중국어를 번역했다, 지금 우리말에 맞게 맛깔스럽게 바꿨다고만 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이 책을 내셨을 때 야심이라고 해야 할까요, 의도라고 해야 할까요, 그런 것들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

 

아마도 모든 저자들이 똑같은 생각일 것인데, 일단은 가장 남다른 책을 쓰자는 생각이었습니다. 사실은 제 전공이 중국 고전이 아닙니다. 그래서 제가 굳이 이걸 할 이유가 없었는데 작은 계기로 논어부터 작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원래 국문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일단 우리말 번역을 잘하는 걸 우선으로 삼았습니다.
 
우리가 흔히 고전에 대해 정의를 내리라고 한다면, 조금 우스갯소리 같지만 “누구나 말하지만 아무도 안 읽는 책.”입니다. 그 이유가 뭐냐, 사실 재미없습니다. 첫 번째는 지금 현재 한문을 모르는 사람들이 읽기에 적절한 서적이 아니기 때문이고 또 하나는 그에 대한 해설이 적절하지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냥 좀 고리타분하게 생각하다가 읽어보면 여전히 고리타분한 걸 보여줍니다. 그래서 고전이 현대적 가치를 얼마든지 가지고 있다는 것, 그래서 논어부터 시작해서 우리가 일상적으로 경험하고 또 사고하는 것들이 1500년 전과 꾸준히 서로 통하고, 또 거기에 가치 있는 것들이 많다는 걸 보여주려 했습니다. 그건 현대적 관점에서 또 현재 일어나는 사건과 관련해서 풀어내는 것이 가장 적절하리라 생각했고요.

이미 관련 저술들이 많이 있지만 제가 그것과 확실히 다르게 쓸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이 『중용, 어울림의 길』을 썼습니다. 실제로 『중용』은 아주 양이 적습니다. 그래서 책 한권으로 다뤄내기가 굉장히 애매합니다. 『대학』과 함께 묶어서 내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도 저는 『중용』이 정말로 가치 있는 책이라면 원문이 적더라도 거기서 오늘날 우리가 새겨볼만한 것들을 풀어내면 양이 많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이 책을 쓸 때 40여일에 걸쳐서 아주 빨리 썼는데, 그래야 제 색깔이 나온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아무래도 오래 걸리면 남의 글을 흉내 내거나 참고해서 온전히 제 것이 아니게 되겠다 생각했습니다.

『논어, 그 일상의 정치』를 내고 난 뒤에도 질문을 많이 받았습니다. 오늘 질문하신 것처럼 어떤 야심이 있었느냐. 사실 숨은 야심은 이 책이 대박 나는 겁니다. 제 책을 읽고 감동을 받는 게 역시 가장 큰 야심이죠. 그리고 저는 제 책을 읽어주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사주시길 바랍니다. (일동 폭소) 그리고 독서보다는, 지금이 가을이 독서의 계절이라는데 저는 독서를 중시하지 않습니다. 그보다 장서를 중시합니다. 독서로는 그 사람을 잘 알 수 없지만 장서를 보면 단박에 그 사람을 알 수 있습니다. 장서가 곧 그 사람의 인격과 삶을 보여준다는 게 제 지론입니다. 여기 오신 분들이 『중용, 어울림의 길』을 읽고 장서로 마련하고 싶다는 꿈을 꾸셨으면 좋겠습니다.

 

 

네, 말씀 감사드립니다. 중간에 제가 끼어들어서 같이 이야기하고 싶은 부분이 참 많았습니다. 저도 남의 집에 가면 맨 먼저 그 집에 책이 뭐가 꽂혀 있는지를 살펴봅니다. 보면 “아, 이 사람 관심사가 이쪽이구나, 저쪽이구나.” 파악이 되고 그에 맞춰서 화제를 꺼내 이야기할 수 있거든요. 공감되는 부분이 있어 이야기해봤습니다. 앞과 비슷한 맥락에서 단도직입적으로 질문을 드리자면, 왜 『중용』입니까?

 

사실 참 단순합니다. 『논어, 그 일상의 정치』를 썼기 때문이죠. 그다음 자연스럽게 “일단 사서(四書) 주석서를 써야 되겠다”라는, 어떻게 보면 기존의 통념 때문에 작업을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가장 비중을 둔 것 중에 하나가 책 앞부분의 이 해제입니다. 대체로 『중용』을 자사(子思)의 작품이라 합니다. 공자의 손자인. 성리학 학자들, 특히 주희가 주장하면서부터 그 뿌리가 확고해졌는데 실제로 그 근거가 거의 없습니다. 사마천의 『사기』에 자사가 『중용』을 썼다는 언급이 아주 간략하게 나옵니다. 그런데 자사가 죽고 사마천이 『사기』를 쓴 기간이 거의 300여 년 차이가 납니다.

자사라는 인물도 불명확하고, 그가 쓴 책이 지금 현재 전하는 『중용』인지도 불분명한데 우리는 이미 자사의 작품이라고 받아들입니다. 우리 사회가 이미 성리학적 사고에 익숙하다는 거죠. 성리학자들이 묶은 사서(四書)가 유가를 대표할 수 있는 고전이 될 수 있느냐? 이 사서를 중시했던 성리학자들의 해석이 과연 절대적일 수 있느냐? 800여 년 전 해석도 수없이 많은 해설서 중 하난데 우리는 아무 이견도 없이 그것을 받아들이고 있지 않는가? 제가 『맹자』와 『대학』 작업도 하고 있는데, 이렇듯 사서를 다루는 이유는 주희와는 다른 해석을 할 필요가 있고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도 있다는 인식을 좀 더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는 것이 우리 동아시아의 고전을 되살리는 데 필요하다고 생각해서입니다.

 

 

말씀하신 내용이 다음에 드릴 질문의 답과 상당히 겹쳐서 당황스럽습니다. (웃음) 고전이라는 텍스트를 과거의 것으로 가만히 내버려두어서는 안 되는 거고, 계속해서 재발견하고 재해석해서 현실에 맞도록 의미를 찾아가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말씀이죠?

 

그렇죠. 고전이라는 것은 처음 형태대로만 남는 게 아닙니다. 시대마다 또 공간을 달리하면서 그것이 가치 있다고 했던 수많은 인식들이 모여서 고전으로 자리를 잡는 거죠. 그렇게 보면 고전이라는 것은 항상 어떤 시대든 그 시대 사람들이 가치를 발견할 때 고전이 됩니다. 고전이 가치 있으려면 현재의 내가 되살릴 수 있어야 하고 유용하게 쓸 수 있어야 합니다. 쓸모없는 것은 고문이지 고전은 아닙니다. 그리고 그걸 고전으로 만드는 것은 항상 그 시대 사람이지 과거의 사람이 아니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내용 측면에서 조금 더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아까도 잠깐 이야기했듯이, “『중용』이 자사의 작품이다.”라는 통념을 이 책에서 논리적으로 반박했습니다. 그리고 『순자』, 『맹자』와 『중용』의 관련성에 대해서도 언급을 하셨습니다.

 

책 뒤표지에 이런 문구가 있습니다. “『논어』 『맹자』 『순자』 『예기』와 어우러진 새로운 『중용』을 읽다.” 출판사에서 저자보다 더 잘 붙여놨습니다. (웃음) 당연히 『중용』은 유가에서 가장 중시하는 텍스트이기 때문에 유가의 다른 고전들과 긴밀한 연관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자사의 작품이라고 하면 대부분 전국시대 이전 작품이라 합니다. 그런데 시절이, 내용을 굉장히 자세히 읽고 꼼꼼하게 따져보면 오히려 전국시대의 텍스트, 『순자』에 아주 가깝습니다. 저는 『맹자』와 『순자』 사이에 나온 것이 『중용』이라고 봅니다.

 

 

선생님께서 ‘중용(中庸)’ 가운데 ‘중(中)’을 많이 강조하시고 ‘어울림’이라고 자주 환용하셨는데, 일어나는 감정을 알맞게 처리하는 것, 상황에 맞게 처리하는 것. 그것이 바로 어울림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중간에 ‘중용’이 사실 불가능한 것은 아니냐는 말도 있고요.
한편 든 생각이 이겁니다. 공자님도 불가능한 ‘중용’을 훨씬 후세대인, 그리고 그런 것과 상관없이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현대인들에게 전하기 쉽지 않을 것 같은데요.

 

‘중(中)’은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알맞다’라는 거죠. 일종의 상황에 알맞게 하는 것. 이것은 개인적인 차원에서 풀이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매일 똑같은 일상을 살긴 하지만 상황이 늘 다릅니다. 그게 또 확 다르지 않고 미묘하게 다르기 때문에 더 처신하기가 어렵습니다. 아주 다르면 참으로 편한데, 너무 미묘하게 달라지기 때문에 다른 상황 자체를 파악하기가 어렵고, 알맞게 하는 게 뭔지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쨌든 상황에 알맞게 하는 것이 첫 번째 ‘중’이고 그다음엔 그런 상황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이냐는 문제에 이 ‘중’이 어울려 있다, 이렇게 풀 수가 있습니다. 알맞게 할 수 있어야만 어울릴 수 있습니다.

‘중용불가능(中庸不可能)’을 제가 조금 다르게 이야기하자면 중용은 불가능하다 즉, 할 수 없다는 게 아니고 제대로 하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어쩌다 한 번 잘할 수는 있습니다. 그런데 계속 잘 하기는 어려운 거죠. 그래서 지혜도 필요하고, 지혜로워지려면 어질어야 합니다. 그래서 『중용』이 중요시하는 종목이 ‘지(智)’와 ‘인(仁)’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게 어려우면 공자도 불가능하다 했고, 저도 이렇게 주석을 달면서도 그런 느낌을 가졌지만 그러면서도 끊임없이 지향하는 게 인간적인 행위가 아닐까요. 그래서 유교 역사는 세상이 더 이상 나아질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나아지게 만들려고 했던 사람들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산업화가 이룩된 오늘날 욕구, 욕망은 당연하게 여겨집니다. 그건 좋지만 문제는 그것을 무한히 긍정할 순 없다는 거죠. 왜냐하면 사람들이 바라는 대상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서로 피를 말리는―요즘 공무원 시험이 그렇듯이― 그런 고단한 삶밖에는 남지 않을 수 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 같은 경우는 지나치게 빠른 속도로 성장을 해왔기 때문에 그 폐단이 지극히 큽니다.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벗어난 욕심을 갖게 되는 것이 오히려 당연한 것처럼 되어 버렸는데 그때 우리가 중시해야 될 게 과유불급이라는 거죠. 지나치게 모자란 것도 똑같은 건데, 모자라서도 안 되지만 지나쳐서도 안 된다. 그것을 조율할 때 필요한 것이 『중용』이 아닐까요.

‘중용’ 할 때 ‘용(庸)’이 바로 그 일상의 의미입니다. 일상의 자그마한 일에서 내가 편안하고 또 주위 사람들을 편안하게 대해주려고 생각한다면 그렇게 중용이 불가능하거나 어렵진 않을 것입니다. 이 시대의 『중용』이 그런 의미에서 더 필요하지 않을까요.

『중용』의 시대적 배경이 춘추전국시대입니다. 딱 20세기, 21세기 지금 우리 시대와 거의 유사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가장 급변하는 시대, 그리고 가장 혼란이 극심했지만 동시에 인간의 능력도 무한 긍정된, 그와 동시에 탐욕조차도, 욕심조차도 어느 정도 인정을 받았던 시대입니다. 그때 그런 과속을 늦추기 위해서 나온 게 유가의 사상이고, 그중에 『중용』은, 이 시대 『중용』은 어떻게 생각하면 개개인마다 달라질 수 있지만 가장 필요한 화두가 될 거다. 이런 생각을 합니다.

 

 

『중용』을 비롯해서 고전 텍스트들이라 하면 먼 이야기, 초월적인 이야기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그렇죠. 잘산다, 행복이라는 말을 흔히 쓰지만 이게 제일 불확실한 거고 불명확해요. 제가 아까 야간산행 이야기를 해드렸는데, 제가 야간산행을 할 때 당연히 손전등을 들고 갑니다. 제가 손전등을 들고 산꼭대기에 딱 왔을 때 나무가 듬성듬성 있고 등 뒤로 보름달이 비췄어요. 그래서 아 손전등이 필요가 없구나 해서 껐어요.

보름달을 받으면서 걷는데 문득 제 손에 들려있는 손전등과 달빛의 관계에 대한 생각이 들었어요. 손전등은 내가 필요한 부분을 명확하게 비춰주고 아주 밝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범위가 한정적이에요. 사방 3미터를 못 넘습니다. 그리고 건전지를 세 개 넣으면 열 시간 이상 쓸 수 있는 게 전부죠. 이게 지식이고 근대 과학기술의 한계일 것입니다.

반면에 달빛은 그 자체로 자유롭습니다. 달빛을 밝기로 따지면 굉장히 희미합니다. 그러나 온 세상을 비추죠. 잘산다고 하는 것, 행복이라고 하는 것, 지혜라고 하는 것, 그것은 달빛에 가깝지 않을까요. 명료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잘 느끼지 못하고 대충 넘어가죠. 덜 중요하고 덜 가치 있는 걸 쫓다가 저 멀리 있지만 귀한 것들을 놓치는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원래는 제가 지식과 통찰의 관계 때문에 손전등과 달빛을 떠올렸는데, 질문을 하시니 (그렇게도 대답할 수가 있네요).

삶의 지혜라고 하는 걸 사실은 얻기 어렵습니다. 왜 수많은 고전들이 있느냐? 뭐라 딱 떨어지게 말할 수 없기 때문에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방식대로 이야기를 하는 거죠. 스스로 체득하고 그렇게 경험을 통해서 자기만 명확하게 인지하는 게 잘사는 길로 가는 게 아닌가.

잘사는 것이 공부의 핵심이라고 했는데, 저는 스무 살이 된 이후로 제 인생을 단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습니다. 돈을 벌려고 한 것도 아니고 오로지 공부를,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해보겠다 해서 이렇게 왔는데 여러분 보시기에 제가 별로 잘사는 것 같지 않고 행복해보이지 않으면 (공부를 하겠다는 마음을) 바꾸셔도 됩니다.(웃음) 그렇지만 저만큼 즐겁고 신나게 사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그 부분은 제가 자신합니다.(웃음)

 

부럽습니다. (웃음) 저도 좀 그렇게 살고 싶은데 갈림길 앞에서 갈팡질팡하면서 살고 있는 것 같거든요.

 


누구나 똑같은 조건이죠. 결국 우리는 선택을 해야 하고, 결단을 내려야 하고, 그다음에 실행을 해야 합니다. 선택의 문제가 우리가 공부하는 첫 번째 이유입니다. 이왕이면 선택을 잘하는 것.

그런데 어떤 책을 읽어도 선택을 잘하는 법을 명확하게 가르쳐 줄 수 없어요. 내가 부딪치는 문제가 다 다르거든요. 백 퍼센트 다 알고 선택을 하는 건 어렵습니다. 불확실한 상태에서 저지르죠. 공자도 만 일흔이 되어서야 비로소 득도의 경지에 이르렀습니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지혜를 쌓고 그렇게 변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대부분 공부하다 보면 저지르는 과오가, 빨리 좋은 길을 찾아서 성과를 내고 싶어 하거든요. 바로 그런 면에서 고전이 중요하지 않을까. 천천히 가고, 더디게 가고, 게으르지 않은. 게으른 것과는 달라요.

요즘 왜 우리가 고전을 안 읽느냐. 고전을 안 읽는 것은 20세기 이후의 현상이라 생각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이건 서둘러서 그렇습니다. 급하게 해서. 고전은 급하면 못 읽습니다. 우리가 라면을 잘 만들어서 팔긴 하지만, 서두름이 오히려 삶의 빈곤을 느끼게 되지 않을까요. 천천히 음미하면서 가는 삶, 그게 바로 고전의 힘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중용』의 성(誠) 자를 선생님께서 ‘성스럽다’라고 하셨거든요. 보통 ‘성스럽다’ 하면 거룩할 성(聖) 자를 써서 표기를 하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말씀 언 변(言)에 이룰 성(成) 자, 자기가 한 말을 이루다라는 이야기지 않습니까. 그런 면에서 시적이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하나의 글자이지만 그 속에서 다양한 의미가 포함되어 있고.


 

그렇죠. 요즘 ‘번역’ 하면, 번역기도 나오고 있지만, 사실은 번역에 전제가 되는 게 있습니다. 해석입니다. 그러니까 이 텍스트를 나는 어떻게 해석하느냐, 그 해석하는 것을 옮겨 쓴 게 번역이죠. 말로 옮기니 번역이지 단순히 글자만 바꾸는 것은 진정한 번역이라고 할 수가 없다는 거죠. 제가 사서를 배울 때 그게 제일 답답하고 분통이 터지는 일이었어요.

여러분이 갖고 있는 노트는 공책입니다. 빌 공(空) 자에 책 책(冊) 자입니다. 그러면 그 공은 아무것도 없느냐, 아닙니다. 무(無)가 아니고 무한(無限)히 넣을 수 있죠. 하지만 그냥 공, 하면 그 차이가 잘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고전을 번역하는 사람들은 지금 사람들이 갖고 있는 언어와 관계에 맞게 텍스트를 풀어주는 것이 첫 번째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것을 심사숙고했고, 그 의미가 저에게 와닿지 않으면 번역을 할 수 없습니다.

 

 

성리학이 이 책에서는 많이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선생님 말씀처럼 우리사회의 의식구조를 지배하고 있는 하나의 사상, 이데올로기라고 할 수 있는데요.


특히 병자호란, 임진왜란 이후를 기점으로 우리나라는 중국에서조차도 고집하지 않는 성리학을 말 그대로 신주 받들듯이 합니다. 그게 (주희)에 벗어나서 이야기하는 것을 어렵게 만듭니다. 그게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이데올로기, 관념화죠. 관념화의 제일 문제는 다른 것을 인정하지 않고 수용하지 못하게 하는 겁니다. 그것을 깨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책을 읽고 다른 책을 읽어보면 성격이 다르다는 걸 느끼실 겁니다. 기존에 나은 표방을 했든 안했든 (주희)를 바탕으로 번역을 하고 주희의 해석을 따릅니다. 저는 저의 해석을 사족(蛇足)이라고 달았지만, ‘주희도 한 학자고 나도 한 학자다. 그 사람이 주석을 달았다면 나도 해석을 달 수 있다. 왜 주희를 내가 따라야 하는가.’ 라는 생각이었습니다. 만약에 주희를 따르려 한다면 제가 굳이 이 작업을 할 이유가 없지요.

성리학의 폐단은 말하기가 굉장히 복잡하고 많습니다. 그리고 제가 여기서 주희라든지 성리학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우리 사회에 그 폐단이 팽배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책을 쓸 때 꼭 그 말을 씁니다. 제가 쓴 책을 읽되 다른 책을 같이 읽으라고. 제 책 역시 저의 해석일 뿐입니다.

식당에서 음식을 먹을 때 어떤 요리사가 어떤 재료로 만들었는지 다 외우지 않죠. 맛있게 먹고 나옵니다. 모든 고전이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해석도 주석도 절대화해서는 안 됩니다. 『논어, 일상의 정치』도 그렇고 『중용, 어울림의 길』을 쓸 때도 그 의도를 담았습니다. 절대화를 되도록 배제하고 이 텍스트가 나왔을 때 그 시점에서 들여다보는 것이 일차적으로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팔백여 년 전 성리학자의 해석을 굳이 번역하지 않았습니다.

 

 

 

정천구

1967년생. 부산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삼국유사를 연구의 축으로 삼아 동아시아 여러 나라의 문학과 사상을 비교 연구하고 있으며, 현재는 대학 밖에서 ‘바까데미아(바깥+아카데미아)’라는 이름으로 인문학 강좌를 열고 있다. 저서로는 『논어, 그 일상의 정치』, 『맹자독설』, 『삼국유사, 바다를 만나다』, 『중용, 어울림의 길』이 있고, 역서로는 오카쿠라 텐신의 『차의 책』과 『동양의 이상』, 명심보감 완본을 번역한 『밝은 마음을 비추는 보배로운 거울』, 『삼교지귀』 등이 있다.

 

 

 

자료 제공/ 부산외국어대학신문 김덕현 기자
정리 도움/ 용달달, 별난오리

*위 내용은 분량 조절과 입말의 특성을 고려한 편집을 거쳤습니다.

 

 

52회 10월 역자와의 만남 :: 서신으로 읽는 두 지성의 세기적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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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권 디자이너 2013.10.10 17: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일하느라 못가서 아쉬웠는데
    어맇게 정리해놓은 글을 읽으니 너무 재밌네요.
    다들 수고하셨네요.

 

 

 

몇 주간 내리지 않던 비가 시원하게 내리고,

선선한 바람이 부는 완연한 가을에 접어들었습니다.

아직 햇살은 뜨겁지만 책내음 맡으러 잠깐 마실 나가는 것은 어떠한가요?

 

 

가을을 맞이하여  "2013가을독서문화축제"가 열립니다. 2010년부터 시작해 올해로 벌써 4회째를 맞이한 행사입니다.

9월 7일 토요일과 8일 일요일, 이틀에 걸쳐 광복동 패션거리, 보수동 책방골목 등 중구 곳곳에서 행사를 진행합니다.

전시뿐만 아니라 직접 참여도 할 수 있는 체험부스, 저자와의 만남 등 볼거리가 풍성합니다.^^

그럼 이 중 저희 산지니를 만날 수 있는 행사를 밑줄 쫙 쳐서 알려드립니다.

9월 7일 토요일 오후 여섯 시 광복로 패션거리에서 개최되는 김진명 북콘서트(개막행사)에는 『오늘의문예비평』편집위원 전성욱 평론가 사회자로 참여합니다. 

9월 8일 일요일 오전 열한 시 ESS어학원에서는 『밤의 눈』조갑상 소설가, 오후 다섯 시 우리글방에서는 『문학을 탐하다』최학림 저자를 만나실 수 있습니다.

 

참가 신청, 더 자세한 행사 소개는 공식 블로그에서(눌러주세요)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밤의 눈』 2013 만해문학상 수상!

문학기자 최학림이 만난 작가들─『문학을 탐하다』(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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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산지니 출판그룹입니다.
활짝 핀 벚꽃은 금세 져버리니 이제 슬슬 다른 꽃을 완상해야겠죠? 산지니에서는 독자 여러분들을 위해 향기로운 『장미화분』을 준비했습니다.

산지니의 46회 저자와의 만남에서는 소설집 『장미화분』을 출간한 김현 소설가를 초대합니다.  한결같이 어두운 현실 속에서도 그들만의 ‘장미’를 피우려는 사람들의 일곱 가지 이야기를 통해, 슬픔과 고통 속에서 스스로를 좀 더 단단하고 강하게 만드는 힘을 발견하게 하는 김현 소설의 매력을 만끽하시기 바랍니다.

계간 『오늘의문예비평』의 편집주간인 김경연 평론가가 진행을 맡은 이번 저자와의 만남에 독자님들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일시: 4월 18일 목요일 오후 7시
장소: 러닝스퀘어 서면점(서면 동보프라자 맞은편 모닝글로리 3층)
문의: 051-504-7070/tosanzini@naver.com

 

만남 장소인 러닝스퀘어 약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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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해찬솔 2013.04.04 15: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장미화분, 이름덕분에 장미향이 모니터 너머로 전해져 오는군요...



최근 산지니를 방문하는 손님들이 많아 일정 확인이 중요해졌습니다. 

대부분 작가 선생님들이지만 

오늘은 특별히 방송국에서 산지니를 찾았습니다.


사실 텔레비전에 나온다고 해서 어제 저녁 저희는 은근히 청소를 했습니다. 최근 북트레일러까지 제작하면서 홍보에 집중하고 있는 『밤의 눈』을 책상에 살며시 올려놓는 것도 잊지 않았습니다. 저는 곧 나올 88호를 의식하며 『오늘의 문예비평』도 슬며시 올려놓았습니다. 여하튼 은근히, 살며시, 슬며시 올려놓은 책이 얼마나 나올지 숨은그림찾기처럼 기대해봐야겠어요.


방송국에서 출판사를 찾는 이유는 어김없이 지역에서 출판하는 산지니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 입니다. 현대HCN 부산방송은 종합유선 방송국으로 케이블 텔레비전, 인터넷, 전화 등 채널을 공급하고 있습니다. 물론 지역방송이기 때문에 우리 주변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카메라 불이 켜져 있을 땐 우리 모두 긴장했지만 카메라 불이 꺼지자 화기애애



지역케이블도 다른 큰 통신사들의 케이블망 확장과 전투적인 고객유치로 가입자들이 급격히 줄고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저희 집은 지역의 이야기를 듣고자 제가 앞장서서 현대HCN 방송채널로 인터넷과 유선방송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가격도 예전에 사용한 일반 통신사에 비해 약 3만 원 정도 더 저렴해졌습니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가까이 있었지만 서로 왕래가 없었는데 이번에 경남도민일보 김주완 편집국장의 『SNS시대 지역신문 기자로 살아남기』를 읽고 취재를 결정했다고 합니다.


자주 찾아주셔서 지역 주민에게 산지니의 생생한 소식 전해주세요.

곧 방영될 산지니 관련 뉴스는 여기서 보실 수 있습니다.






>> 클릭, 현대HCN 부산방송


이런 장면 너주 자주 봐서 지겨우실까 봐 이 사진은 작게 오립니다.

Posted by 동글동글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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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권 디자이너 2013.02.04 21: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홋. 제가 부산에 없던 동안 출판사에 많은 일이 었었군요.^^

  지난 9월 14일 저자와의 만남이 금정구 예술공연지원센터에서 열렸습니다. 이번년도 가을의 첫 저자와의 만남을 구모룡 교수님과 함께 하였습니다. 선선한 가을바람과 오랜만에 산지니 식구들을 만난다는 설렘이 발걸음을 가볍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예술공연지원센터의 입구입니다.내부 모습입니다. 조명이 매력적이죠?


  최근에는 저자와의 만남이 공간초록에서 열렸었는데 이번에 장소가 바뀌어서 다소 어리둥절 하긴 했지만 깔끔하고 넓은 공간이 좋았습니다. 그동안 이 근처를 수없이 지나다녔었는데 이 곳을 왜 진작 알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 였습니다. 바뀐 장소가 다소 멀게 느껴졌는지 한 시간 앞당겨진 시간 때문인지 청중들이 평소보다 늦게 모여서 6시 30분에 시작하였습니다. 덕분에 기다리면서 산지니 편집자님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


강연을 하고 계시는 구모룡 교수님.


  이번 저자와의 만남은 오늘의 문예비평 가을호에 ‘후쿠시마와 재난의 사상’이라는 글을 쓰신 구모룡 교수님입니다. 우선 구모룡 교수님에 대한 간단한 소개부터 하자면 구모룡 교수님은 1991년 ‘오늘의 문예비평’의 창간의 주역이며 2000년대 들어서는 시 전문 계간지 ‘신생’의 창간의 주도적인 역할을 하셨으며 현재는 한국해양대학교의 동아시아학과 교수로 재직중이신 분입니다. 

  어려운 주제라서 준비가 제대로 안 되었다는 엄살에도 불구하고 후쿠시마 사건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력과 유머러스한 언변으로 좌중들을 즐겁게 해주셨습니다. 



박형준 평론가님.


 사회를 맡으신 박형준 평론가님입니다. 예상치 못한 질문으로 구모룡 교수님을 당황하게 만들기도 하였지만 선후배의 찰떡 호흡을 과시하며 매끄러운 진행을 보여주셨습니다. 박형준 평론가님도 '오늘의 문예비평'의 필진으로서 활발한 비평 활동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저자와의 만남 시간은 사회자인 박형준 평론가와 구모룡 교수님의 질의응답 형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구모룡 교수님은 <후쿠시마와 재난의 사상> 이라는 원고를 바탕으로 후쿠시마 원전 폭발 사고가 어떤 의의를 지니며 이 사건 이후의 새로운 사상의 출현에 대해 말씀해주셨는데요. 후쿠시마 사건을 9/11과 비슷한 세계사적으로 매우 중요성을 지닌 사건이라고 하였습니다. 더불어 원전 기술의 위험성을 지적하면서 우리 사회에서 탈핵화가 시급히 이루어져야 할 과제라고 진단하였습니다. 또한 전쟁이나 재난 이후에 자본주의가 급속히 발전하는 '재난 자본주의'의 범주에 후쿠시마 사건은 포함되지 않으며 동아시아 현 정세에서 국가주의가 대두되는 것에 대해 우려를 나타내며 '소국주의'라는 개념을 제안하였습니다. 

  이번 저자와의 만남을 통해 관심이 없었던 탈핵화와 같은 부분에 많은 공부가 된 느낌이었습니다. 이어진 질의 응답시간을 통해서도 깊이 있고 다양한 의견들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한 시간 반 남짓의 시간이었지만 저뿐만 아니라 저자와의 만남에 참석한 분들 모두에게 의미 있는 시간이 되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뒷풀이는 부산대 인근의 한정식 집에서 맛있는 식사를 하며 가졌습니다. 가을밤 저자와의 만남 시간에 하지 못했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다음 저자와의 만남이 벌써 기다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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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박형준 2012.09.18 16: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찰떡호흡, 영광스러운 말입니다.^^ 그날 수고 많으셨습니다.

  2. 전복라면 2012.09.19 08: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왔다가 다시 학교로 가서 노트북까지 들고 오는 열혈 기록자ㅋㅋㅋ 수고하셨어요!

  3. BlogIcon 밀감양 2012.09.20 12:1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문비 9월호를 읽고도 저자와의 만남에 참석하지 못해 무척 아쉬웠던 산지니안입니다 ㅜ(그날 일이 늦게 마쳐서 ㅠ)노퓌어님이 누구신지 궁금하군요ㅎㅎ 저도 서평에 '후쿠시마와 재난의 사상'에 대한 이야기로 운을 뗐었는데 ^^ 블로그로나마 당시 상황을 엿볼 수 있어 감사하네요 ~

안녕하세요, 전복라면입니다.

8월엔 금요일이 다섯 개라 다섯째주 소식이라는 희귀한 부제가 달렸네요. 윤달 같아서 재미있어요. 그럼 전 따끈따끈한 오문비 가을호 발송을 하러 슝! 주간산지니에 들어간 오문비 책 사진은 오늘 아침에 찍은 거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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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박형준 2012.08.31 12: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 가을호 나왔네요. "새로운 계절"을 <오문비>와 함께 한다는 말이 참 좋습니다.^^ 이번호에도 편집/교정하신다고 수고 많으셨습니다. 애써주시는 여러 선생님들 덕에 이렇게 좋은 잡지를 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 전복라면 2012.08.31 17:59  댓글주소  수정/삭제

      감사합니다 오늘은 책이 두꺼워서 서민권 편집장님이 가져가시는데 고생을 특히 더 하셨어요ㅋㅋ 저희는 문학콘서트서 뵈어요!

  2. BlogIcon 밀감양 2012.09.11 23: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문학콘서트 이번달에도 하는군요 댓글을 통해서 정보를 얻는 일은 처음 ㅎㅎ 가야겠네요~~~ 박형준 선생님의 글은 여름호와 가을호에 모두 실렸더라구요 ^^ 저도 다작하는 사람이 되고싶습니다만 ㅠ

    • 전복라면 2012.09.12 09: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문학콘서트도 곧 정식 포스팅을 해야겠네요ㅋㅋ부산작가회의 홈페이지에서 정보 얻을 수 있어요ㅎㅎ 시간 되면 꼭 놀러오세요~

 

세상의 모든 여행은 위험하다. 떠남과 만남, 그 구체적 사건들로부터 멀리 떨어져 상념과 관념으로 존재하던 여행은, 바로 그 떠남의 순간부터 무수한 만남들의 지평을 연다. 그러므로 여행은 전혀 가늠할 수 없는 미지의 경험 속으로 자기를 내던지는 기투이며, 이 때문에 모든 여행은 그 알 수 없음의 암흑 가운데서 두려운 마음으로 떠도는 방황인 것이다. 그러니 예정된 ‘일정’이란 언제나 배반될 수밖에 없으며, 우발적인 사건들의 터무니없는 전개로 여행의 시간이란 극히 혼돈스러운 것이다.

6월의 끝자락은 무더웠고, 학기말의 일정들로 마음은 몹시 빠듯했다. 작은 여행 가방에 억지로 쑤셔 넣은 물건들처럼, 분주한 일상을 미처 다 정리하지 못한 내 마음은 영 거북하기만 했다. 그것은 공항에서 만난 K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출판사의 여러 형편들이 떠나는 그의 마음을 부담스럽게 붙들어놓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도 우리는, 어차피 이렇게 떠나게 되었으니 잘 다녀오자고 서로를 위안하며 비행기에 올랐다. 그만큼 우리들의 여행은 갑작스럽게 이루어진 것이었다. 이륙과 함께, 기체 밖의 작아진 영토만큼이나 마음의 거북함은 점점 멀어졌고, 어느 순간부터는 약간의 설렘마저 느껴졌다. 그렇게 우리들의 여행은 난삽한 관념으로부터 구체성의 경험으로 서서히 이륙하고 있었다.

상하이의 푸동공항에는 이틀 전에 이미 도착해 있던 이종민 교수가 마중을 나와 있었다. 물론 그 마중은 K의 간곡한 요구를 따른 것이니 환대라고는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먼 이국땅에서, 아무 것도 모르는 불안한 처지의 우리들로서는, 그 마중이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요금이 좀 비싼편이었지만, 공항에서 숙소로 가는 길에 우리는 자기부상 열차를 탔다. 그것도 상하이에서 해 볼 수 있는 여러 경험 중의 하나라고 생각했다. 열차 안에서 이종민 교수는 이틀 동안의 음주기담을 펼쳤고, 그것은 곧 앞으로 우리가 보내게 될 상하이의 밤들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이윽고 숙소에 도착, 호텔은 의외로 훌륭했다. 짐을 풀고 간편한 차림으로 갈아입은 우리는, 일행과 함께 와이탄 거리로 향했다. 신혼여행의 첫 여행지가 바로 이곳이었던 나에게 와이탄 거리와의 재회는 남다른 감상을 불러일으켰다. 20세기 초 유럽풍의 건축물들이 풍기는 고풍스런 분위기에 흠뻑 빠져들 무렵, 어느새 화평반점 앞에 도착한 우리는 길을 건너 황푸공원으로 갔다. 몇 컷의 어색한 사진을 찍고, 이종민 교수의 또 다른 지인들을 기다렸다가 합류한 후, 우리들은 번화한 난징로를 걷고 또 걸었다. 거리를 가득 매운 정말로 많은 인파, 그리고 당연한 소란스러움과 이방인에게는 익숙지 않은 독특한 냄새들. 난징로를 걷는다는 것은, 그 모든 낯선 감각들과의 갑작스런 조우였다.

여행은 무엇보다 낯선 풍경들과 만남이라고 할 만큼 시각적인 것의 우위로 점철되는 사건이다. 하지만 나에게 이번 여행은 풍경보다는 사람을 만나는 일, 그것이 여행의 묘미라는 것을 일깨운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4박 5일의 짧은 시간 동안, 우리는 매일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고 또 그들과 어울렸다. 물론 길거리에서 만난 그 익명의 사람들과의 종적 없는 부딪힘이란 또 얼마나 귀한 것이었던가.

첫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우리들에게 호의를 베풀었던 구성철 형과의 만남은 특별하게 기억해 두고 싶다. 특히 형과 함께 했던 비오는 밤, 푸단대 유학생 거리의 노천에서 먹고 마셨던 양꼬치 구이와 칭다오 맥주의 맛은 미각이 아니라 온몸에 아로새겨질 추억의 한 조각임에 틀림없다. 처음엔 역했던 그 양고기의 맛처럼, 현지의 음식들은 대단히 괴로운 것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적응이 되어갔다. 이렇게 되풀이되는 경험 속에서 단련되고 익숙해지는 것, 적응이란 수동적으로 길들여지는 것이면서, 동시에 그 반복되는 경험의 교류 속에서 대상을 치열하게 이해하게 되는 능동적인 받아들임의 과정이 아닐까.

  

대전 지역의 한 국립대에서 이종민 교수와 사제의 인연을 맺었다는 구성철 형은, 푸단대에서 국제관계학으로 박사논문을 준비하고 있었다.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아서 그런지 나이에 특히 민감했지만, 고달픈 유학생활을 잘 견뎌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견뎌낸다니, 하지만 어쨌든 저 기약 없는 유학생활이란 나에게 분명 견뎌내야 하는 시간이라고 여겨졌다. 이런 마음은 아마도, 장춘에서 이제 막 유학을 끝내고 돌아오는 아내에 대한 감상 탓이리라. 끝이란 것이 있을 수 없는 공부의 시간이란, 그렇게 우리들을 한 없이 기다리게 만드는, 가혹하게 지루한 바로 그런 것이니까.

상하이에서의 첫날 저녁, 그 낯선 시공간에서 만난 이들은 모두 활달한 청년들이었다. 이종민 교수의 학부 제자들은 그들의 외모만큼이나 밝고 환한 선남선녀들이었고, 구성철 형의 친구들(그 중에 한 사람은 한국에 유학했던 중국인이었다.)은 유머와 위트로 시종 즐거웠다. 그런 분위기 탓이었을까, 나는 과음했고 안 해도 좋을 가벼운 말들을 쏟아내고 있었다. 다음 날은 역시 고통스런 숙취의 시간이 기다리고 있었다.

세상에 대가 없는 즐거움이란 없는 것일까? 주흥이 다하자 고통이 찾아왔다. 아침 날이 밝았는지도 모르게 누워있는데, K는 벌써 일어나 씻고는 TV를 켜 놓고 내가 일어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에겐 이른 시간이었지만, 늘 규칙적인 생활에 익숙한 K에겐 늦은 시간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가벼운 차림으로 호텔을 빠져나와 골목길을 정처 없이 돌아다녔다. 상하이 사람들의 생활을 엿보고 싶은 마음으로 그렇게 떠돌다보니, 눈앞에 지하철 입구가 나타났다. 매표기 앞에서 잠시 머뭇거리다가 한 여학생의 도움을 받아 표를 끊고 지하철을 탔다. 상하이의 지하철 풍경은 부산의 지하철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전날 거닐었던 난징로에 이르러 아침 식사를 할 만한 곳을 찾았다. 과음으로 속이 거북했던 나는 한국식 해장국이 너무나 그리웠지만, 도저히 중국음식을 먹을 수는 없었다. 그나마 햄버거나 콜라가 보편적인 음식이니 괜찮을 것 같았다. 그러나 아나니 다를까 그 맛은 한국의 그것과는 완전히 다르게 현지화된 것이었다. 맥도널드 따위의 패스트푸드를 보편적인 맛으로 여기고 있는 나의 입맛이란 정말 한심한 것이 아니고 무엇일까. 서구적인 것을 보편적인 것으로 감각하는 내 천박한 감수성이란 어디 음식뿐이겠는가. 맥도널드와 함께 시내 곳곳에는 KFC가 자주 눈에 띠었는데, 그곳의 메뉴에는 한국에 없는 죽들이 아침 식사로 팔리고 있었다. 그 역시 중국 인민의 생활에 맞게 변용된 것이리라. 숙취로 고달픈 중에도 문화의 유통이란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처지라니.

30위안이면 하루 종일 탈 수 있는 이층짜리 시티 투어 버스는, 이번 상하이 여행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 중의 하나였다. 우리는 그것을 타고 무려 두 바퀴 반을 돌았는데, 처음엔 노선을 따라 상하이 시내를 유람하였고, 두 번째는 내리고 타기를 반복하면서 예원과 상하이 박물관, 미술관 등 몇몇 장소를 관람했다. 체력이 바닥나 박물관에서 무척 지쳐보였던 K는, 미술관에서는 활력을 되찾은 듯 그림들 앞에서 휴대폰 카메라의 셔트를 마구 눌러댔다. 역시 너무 먼 과거의 유물들보다는 화폭에 그려진 동시대의 삶이 우리에겐 더 매혹적이었던 것 같다.

상하이의 도심은 큰 길 주변으로, 격조가 있어 제법 그럴듯한 건물들이 즐비하다. 그러나 그런 건물들로 외곽을 이루고 있는 도심 내부의 생활공간은 완전히 다른 풍경을 보여준다. 세월의 때가 그대로 느껴지는 낡은 가옥들, 꾀죄죄한 느낌이 들 정도의 독특한 냄새들, 그 집의 살림살이를 짐작하게 만드는 늘어놓은 빨래들, 후텁지근한 날씨에 웃통을 벗고 있는 남자들, 한담을 나누며 시간을 보내는 늙은이들, 재잘거리며 뛰노는 아이들... 이방인의 눈에 그것들은 그저 지저분하고 남루한 것으로 여겨질 수도 있겠지만, 우리들의 가난한 삶이란 원래 그렇게 난삽하게 펼쳐진 가재도구들 같은 것이 아니겠는가. 상하이를 무대로 펼쳐지는 이인화의 소설 <<하비로>>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그 모든 풍경에 대한 인상을 적확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 같다. “사람과 사물 모두가 퀴퀴하고 구질구질하고 편안해 보였다.”

미술관 관람을 끝으로 상하이 투어를 끝낸 우리는, 미술관 주변 거리를 거닐다 지하철을 타고 호텔 근처로 되돌아 왔다. 이종민 교수와 구성철 형이 호텔 로비로 찾아왔다. 중국음식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나를 위해 그날 저녁은 한국 음식점으로 데려가 주었다. 소주에 고기를 구워먹으며 김치찌개에 밥을 먹으니 참 좋았다. 나의 이문화적 감수성이란 이렇게도 많이 편파적이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자리는 이차로 이어졌고, 구성철 형의 기숙사 로비에 하얀 물보라가 뿜어져 나오는 성능 나쁜 에어컨 앞에서, 우리는 배달시킨 양꼬치에 칭다오 맥주를 마셨다. 물론 나는 양꼬치의 역한 냄새 때문에 전혀 먹지를 못했고, 구성철 형이 공들여 끓여준 계란까지 곁들인 라면에 얼큰하게 소주를 마셨다.

 

 

여행이 끝날 때까지 그랬던 것처럼, K는 역시 3일 째 날에도 일찍 일어나 있었다. 창문 밖으로는 비가 촉촉하게 내리고 있었다. 편의점에 들러, 나는 컵라면을 K는 샌드위치를 먹으며 대충 아침을 때웠다. 버스를 타고 우리는 루쉰 공원으로 갔다. 여행 첫날 프랑스인들이 조성했다는 어느 공원에 들렀을 때, 이종민 교수는 중국의 공원은 모두 노인공원이라 농담을 했었다. 역시 루쉰 공원엔 노인들로 가득했고, 음악에 맞추어 집단으로 춤을 추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넓은 공원을 거닐며 담소를 하다 보니 어느새 루쉰 묘지에 이르렀다. 소박했지만 역사의 무게감이 느껴지는 곳이었다. 묘소 참배 후 드디어 루쉰 기념관으로 갔다. 한국에도 많은 작가들의 기념관이 있지만, 작가의 삶과 문학적 일대기를 이렇게 잘 정리해 놓은 곳을 보기란 참으로 드물다. 나중에 이종민 교수에게 들으니, 기념관의 배치를 새롭게 해 루쉰의 혁명적 성격이 많이 약화되었다고 했다. 그 전의 모습을 알 수 없으니 뭐라 할 수 없지만, 듣고 보니 일대기 위주의 전시물 배치가 조금은 단조롭게 여겨졌다.

기념관을 나오니 비는 억수같이 쏟아지고 있었다. 스타벅스에 가서 커피를 한 잔씩 마시면서 휴식을 취했다. K는 책을 읽고 나는 잠시 눈을 붙였다. 달콤한 휴식 뒤에 우리는 비오는 거리를 걸어 일본 조계지를 찾아갔다. 한국의 인사동에 비견할 수 있는 그곳에는 일본식 적산가옥과 고풍스런 건물들이 즐비했다. 몇 컷의 사진을 찍고 다시 서둘러 길을 나섰다. 택시를 타기 전 서점에 들러 오후에 만날 작가 왕안이의 소설 <<장한가>>를 한 권 샀다.

 

호텔로 가서 젓은 옷을 갈아입고 푸단대로 향했다. 왕안이는 상하이를 배경으로 소설을 쓰고 있는 작가로 장아이링의 뒤를 잇는 것으로 평가받곤 한다. 곡절 많은 인생을 살았던 장아이링과는 달리 지금 왕안이는 푸단대 문예창작과의 교수로 자리를 잡았다. 이번 만남은 상하이 대학에 방문 교수로 와 있는 목포대학교 임춘성 교수와의 대담에 참석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종민 교수와 임춘성 교수, 그리고 대담의 정리와 한국어 번역을 맡은 유학생이 동석했다. 이번 대담은 내가 편집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잡지에 실릴 것이었다. 우리는 인사를 나누었고, 잡지에 실을 사진을 몇 컷 찍고는 자리를 떠났다. 대담이 끝날 때까지 우리는 라운지에서 차를 마시며 한담을 나누었다. 대담이 끝나고 다시 임춘성 교수와 합류한 우리는 학교 근처의 음식점에서 이번 대담을 연결해준 상하이 대학교의 왕광동 교수를 접대해 저녁 만찬을 가졌다. 향이 센 시앙차이도 먹어보고 냄새가 지독한 취두부도 먹었다. 편견을 버리고 마음을 열고 받아들이니 모든 음식들이 다 먹을 만했다. 결국 사람을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다른 무엇보다 세상을 편협하게 받아들이는 자기 안의 옹졸함이 아닐까. 이차는 유학생촌 앞의 노천에서 양꼬치에 맥주를 마셨다. 이 자리에서 나는 비로소 양꼬치 맛의 매력에 눈떴다. 양꼬치의 매콤함과 구운 마늘줄기의 담백함은 천상의 조합이었다. 깊은 밤 보슬보슬 비가 내리는데, 좋은 사람들과 시끄럽게 떠들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생활의 여러 시름들은 잠깐 잊고 오직 즐거움으로 충만했다.

벌서 4일 째 날. 상하이 대학 현대문화연구소에서 이종민 교수의 발표가 예정되어 있었다. 점심시간에 맞추어 상하이 대학에 도착한 우리는, 전날 만났던 왕광동 교수의 환대로 맛있는 점심식사를 대접받았다. 이제는 음식에 어느 정도 적응이 돼 황소개구리 요리 마저도 무리 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날 자리에는 <<문화/과학>>의 편집인인 중앙대학교 영문과의 강내희 교수가 함께 했다. 그곳에 체류한 지 4개월째라고 한다. 그날 하루 짧은 시간 동안 나는 그에게서 좌파 지식인의 결기 같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연구소에 젊은 연구원들이 속속 모여들자 이종민 교수의 발표가 시작되었다. 발제문은  <<오늘의 문예비평>> 지난 여름호에 실렸던 「왕후이의 중국 개혁개방 서사에 대한 질의」였다. 이 글은 중국의 비판적 지식인 왕후이의 사상적 변화의 의미를 되짚어 보면서, 그 변화의 바른 방향에 대한 조언을 담고 있다. 왕후이가 중국 굴기의 성공 요인으로 꼽은 두 가지, 즉 개혁개방 이전의 사회주의 시기의 경험과 국가의 적극적 역할에 대한 언급은 격렬한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는데, 이종민 교수는 그것이 왕후이의 사상적 전회가 아니라 일관된 논리라고 이해한다. 바로 그 지속되는 부분(개혁개방 서사)에 대한 근본적 사유를 통해, 이종민 교수는 몇 가지 의문을 제시하면서 최종적으로 왕후이가 구상하고 있는 인민민주주의 정치의 실현을 위해 필요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그 대안이란 ‘사회적 통합을 정치적 수단으로 재창조’하는 셰리 버먼 식의 사회민주주의의 길이다. 쉽게 말해 이종민 교수는 북유럽 식의 사회민주주적 복지국가 모델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종민 교수의 발제에 대해 토론을 맡은 연구원은 발표시간보다 긴 토론으로 모두를 깜짝 놀라게 했는데, 그 무례한 열정은 중국어를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나에게도 아주 뜨겁게 전해졌다. 칭화대에서 왕후이의 지도로 석사학위를 받았다는 그 토론자는 이종민 교수가 왕후이의 논지를 오독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강내희 교수는 토론자에게 사회주와 공산주의의 관계에 대한 기본적인 질문을 던졌고, 토론자는 역시 교과서적인 답변을 했다.

그 날 행사에 참석했던 젊은 연구원들과의 뒤풀이는 대단히 유쾌했다. 특히 낮에 왕광동 교수가 선물한 수정방을 꺼냈을 때의 열기는 뜨겁다 못해 활활 불타올랐다. 강내희 교수는 탁월한 술꾼이었고 이종민 교수는 엄청난 술꾼이었다. 지레 겁먹은 나는, 자작을 자제하며 젊은 연구원들의 건배 제의에 답례하는 술잔만 기울였다. 그날의 술자리는 말이 통하지 않아도 충분히 흥겹고 신명이 나는 자리였다. 열정적인 토론을 보여주었던 친구와는 연락처를 주고받으며 차후를 기약할 만큼 정다운 교감을 나누었다.

자리를 옮겨 우리는 이차로 상하이대학 개천가의 노천 술집에서 양꼬치에 술을 마셨다. 강내희 교수는 흥에 겨워 가곡을 불렀고 모두들 즐거워했다. 분위기가 차분해지자 진지한 이야기들도 오갔는데, 강내희 교수는 이종민 교수의 발표에서 사민주의를 대안으로 제시한 부분에 대하여 강력하게 비판했다. 선생은 격앙된 어조로 “사민주의는 가능한 것이 아니야!”라고 단정적으로 말하는 것이었다. 사실 발제에서 이종민 교수는 왕후이에게 중국 사회주의에 대한 원리주의적 접근을 지양할 것을 제언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종민 교수의 입장에서 보자면 강내희 교수의 비판은 사민주의를 수정주의로 보는 지극히 원리주의적 입장에 다름없는 것이었을 것이다. 어쨌든 그런 토론은 한국의 좌파 지식인 내부의 논쟁과 갈등을 재연하고 있는 것 같아 무척 인상 깊었다.

흥이 깊었는지 그날은 이차에 만족하지 못하고 술자리는 삼차로 이어졌다. 드디어 나는 지쳤고, 자리를 피해 혼자 바람을 쐐며 개천 거리를 거닐었다. 다시 자리로 돌아왔을 땐 강내희 교수가 민요를 부르고 있었는데, 특유의 소리 꺾임이 구성지게 들렸다. 모두들 웬만하게 지쳐 술자리가 파하고 우리는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양꼬치에 맥주를 외치는 이종민 교수를 뒤로 하고 우리는 호텔로 갔다. 상하이에서의 마지막 밤, K는 “마지막인데 맥주 한 잔 해야지요?”라고 했고, 편의점에서 맥주 두 캔을 사들고 숙소로 올라갔다. 그리고 이런 저런 이야기들.

여행 내내 K는 출판사에 대한 생각들로 쉴 틈이 없었다. 젊은 연구자들과 함께 했던 마지막 날 밤은 지난 시절을 더듬어 젊은 날의 자기를 추억하는 듯 했다. 늘 같은 패턴으로 되풀이되던 지겨운 일상을 벗어나 새로운 풍물과 사람을 만날 수 있었던 짧은 여행의 시간들, 그것은 말 그대로 짧은 시간이었지만 모처럼 만의 해방감 속에서 유유자적한 날들이었다. 그러나 이 여행이 끝나더라도 K의 고뇌는 계속될 것이고, 나도 역시 세속의 어떤 어려움들로 자주 외로울 것이다. 대사동 백탑 주변에 모여 살았던 이덕무와 박제가, 아홉 살의 나이 차이에도 그들은 깊은 우정을 나눈 벗이었으며, 함께 연경을 다녀오기도 했던 그들은 이따금 운종가의 시끌벅적한 시정을 유람할 만큼 세속의 인정에 관심이 많았다. 나보다 열 살이 많은 K는 책을 만드는 사람이고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다. 우리는 책을 좋아하고, 그렇게 공통의 밑변 위에서 만나다보니, 어느새 이처럼 나이 따위는 무관한 벗이 되었다. 우리의 짧은 여행을 고난이라고 말할만한 그들의 여정에 빗대는 것이 무리인 줄 알지만, 이덕무와 박제가의 연경행은 과연 어떠했을까? 그들의 삶은 그 고단한 여정 이후 어떻게 달라졌을까? K와 나에게 이 여행은 무엇이었을까? 귀국과 함께 다시 돌아온 일상은, 이런 질문들을 무색하게 할 만큼 변한 것이 하나 없었다. 하지만 이 가혹한 시간들 속에서 이따금 상하이의 밤을 떠올릴 때, 나는 기꺼이 미소 지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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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전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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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전복라면 2012.07.09 09: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생님 여행기에 멋진 문장이 많아서 감탄하며 읽었는데 머릿속에 가장 오래 남는 건 왜 '양꼬치에 맥주를 마셨다' 인지ㅋㅋㅋㅋ선생님 양꼬치 왜 이렇게 많이 드셨어요?ㅋㅋㅋㅋㅋ 상해는 저도 언젠가 꼭 한번 가 보고 싶은 도시라 부럽네요!

  2. 전성욱 2012.07.09 11: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적응하지 못했던 양꼬치의 맛이 점점 좋아지는 것, 그것이 이번 여행의 포인트였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여행을 다녀왔으니 뭐라도 남겨야 할 것 같아 글을 썼는데, 글에서 언급된 분들에게 누를 끼치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네요^^;;

  3. 목련 2012.07.10 10: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시 여행은 새로운 만남이죠. 좋아보이내요. 여행지의 표정들이 ... 잘보구갑니다^^

  4. 박형준 2012.07.10 23: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정의 기록이 아닌가 합니다. 너무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저도 시간이 되면 칭따오에서의 시간들을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5. BlogIcon 비디아 2012.07.12 04:3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구성철입니다. 술기운에 이런 사진이 찍힌 줄도 몰랐네요. :) 기숙사 1층에서 에어컨 바람쐬며 서핑하다가 제 이름을 검색하다 블로그 발견! 주간 산지니를 비롯, 몇몇 재미있는 카테고리들이 있네요. 종종 놀러올게요! 부산으로 돌아가신 다음, 매일매일 무더위에 사우나하면서 지내고 있답니다. 근데 제가 다니는 학교가 푸동대학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나 봅니다. ㅋㅋ 생각해 보니 푸동대학이란 명문도 하나 생기면 근사하겠어요. 그리고 제가 나이에 민감했던 건, 두 분 교수님이 각각 한 분은 40대로, 한 분은 30대에 묻어가려는 경향이 엿보여 반박의 차원이었답니다. ;)

  6. 전성욱 2012.07.12 12: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이고, 너무너무 반갑습니다^^ 평생 잊지못할 추억의 시간이었고 좋은 인연이었습니다. 학교이름은 상하이에서도 헷갈리더니^^; 바로잡겠습니다. 내가 볼 때 형은 아주 젊어보였고 옷도 아주 캐주얼하게 잘 입으셨습니다^^ 한국에 오시면 꼬~옥 연락주시고, 내내 평안하십시오~

  7. BlogIcon 가로수길서점 2012.07.16 08: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책을 만드는 사람과 글을 쓰는 사람의 여행기?라는 말이 참 좋네요.
    여름휴가를 중국으로 가야할 것 같아요. 저희서점 페이스북에도 소개해드리고 싶네요. ^^

  8. 온수입니까 2012.07.17 09: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감사합니다^^ 페이스북에 글을 공유해주셨더라구요. 멀리 있지만 이렇게라도 자주 왕래해요.

 

 

제 35회 윤여일 저자와의 만남

『지식의 윤리성에 관한 다섯 편의 에세이』

 윤여일 선생님

 

 5월 24일 목요일 저녁 7시, 산지니 출판사, 오늘의 문예비평이 공동주관하는 저자와의 만남 시간은 저자분의 강연을 주로 했던 종전과는 달리 계간지『오늘의 문예비평』의 편집위원분들께서 한분한분 돌아가시면서 토론을 나누는 토론방식으로 진행이 됩니다. 그 첫 토론회의 주인공은 『오늘의 문예비평』의 연재물을 모아 책을 내셨던 수유너머R(http://www.transs.pe.kr/) 연구원, 윤여일 선생님이십니다. 이날의 토론회는 윤여일 선생님과 더불어 『오늘의 문예비평』편집위원이신 전성욱 문학평론가와 함께 진행되었습니다.

 

 

전성욱 문학평론가 : 수유너머R 연구원으로 계신 윤여일 선생님의 저서 『지식의 윤리성에 관한 다섯 편의 에세이』(이하 지식의 윤리성)는 오늘의 문예비평에 연재했던 글을 바탕으로 취합하여 책으로 낸 결과물이다. 오늘 토론회를 갖기 전, 윤여일 선생님과의 저녁 식사로 충분히 함께 교감을 나누었는데 부산에는 10년 만에 다시 와보셨다고 하셨다. 부산방문에 관한 간단한 소회를 말해 달라.

윤여일 저자 : 연구원 활동 외에도, 논술강사로도 활동 중이다. 예전에 방문했던 부산은 서울에서 강의를 마치고 순천에서 강의를 하고 이동하는 바람에 구경을 못해, 제대로 된 부산 방문은 처음이나 다름없다 . 사실 『지식의 윤리성』 책을 쓸 때 기분이 우울한 상태였다. 반면, 오늘은 부산에 와서 마을도 보고 저녁식사도 맛있게 하고 와서 우울한 기분이 들지 않아 집필 당시와의는 감정 상태에 있어 간극이 있다.

 

 

신체와 정신에 남는 기록을 쓰고파

전성욱 문학평론가 : 책에 보면 후기에 자신의 작업을 정리하셨다. 번역 활동, 논문을 쓰고 있으며, 여행기를 쓰기도 하고, 에세이 작업을 하시는 등 여러 가지 작업을 하시고 있는데 자신의 작업 활동에 관해 간단한 소개 바란다.

윤여일 저자 : 네 가지를 썼는데, 어떻게 보면 번역도 창작이나 다름없다. 나는 번역자의 기능적인 역할이 아니라, 사상가로서의 역할에 주목하였다. 『지식의 윤리성』은 나의 첫 저서인데 이러한 나의 네 가지 작업 중 마지막에 해당한다.

석사논문을 쓸 때, 개념어의 관계성을 제대로 유지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에는 그 말의 부재로 인해 논문에서의 논의하려는 문제를 성립시키기가 어려웠고 사회현상의 징후들을 발견하기 어려웠다. 논문이 끝난 이후에는 개념화에 비판적인 거리감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우연찮은 만남을 통해 동아시아에 대한 문제의식이 점차적으로 생기게 되었다.

한 번은 멕시코로 여행갈 일이 생겨 컴퓨터의 하드디스크 용량 부족으로 백업을 시켰는데 분실당했다. 도둑맞은 것 같다. 집에 돌아와 보니 백업을 시킨게 아니라 포맷을 시켜놨더라. 파일이 모두 사라진 것에 대해 분통이 나기도 했고, 내가 무슨 글을 썼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 더 화가 났다.

물질적인 결과물인 파일이 사라지고 나니, 신체나 정신에 내가 쓴 언어들의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 언어감각에 대한 생각들을 하게 된 것 같다. 일본에 2008년 겨울까지 있었는데 일본어를 잘 모르는 상태로 말이 와전되는 경우에 생긴, 말하고자 하는 의지 사이의 불일치 경험이 언어감각에 대한 생각을 더욱 촉발시켰다. 한국어에 대한 감각 또한 이와 다르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생각들이 결국 쌓이고 쌓여서 『지식의 윤리성』을 쓰게 되었다.

 

추상적인 언어로 구체화된 형식을 전할 수 있는지에 대한 물음에 도전하고 싶었다.

전성욱 문학평론가

전성욱 문학평론가 : 오랫동안 이야기를 하지 못해 저자와의 만남 시간에 말을 잘할 수 있을까 두렵다고 하시더니 말을 너무 잘하신다. 이 책은 정신적 체험에 관한 자서전의 성격을 띠고 있다. 즉, 자신을 대상화 하는 작업이다. 글을 쓰고, 글을 읽고, 지식에 관여하는 사람이라면 지식의 관계 속에서 그 관계를 성찰해야 한다. 곧 이 책은 저자 자신의 작업을 반성적으로 되돌아보는 글이 아닐까 생각하는데, 책에 등장하는 ‘지식의 윤리성’에 대한 개념 설명을 부탁한다.

윤여일 저자 : 아까 얘기와 연결시키겠다. 일본에 가서 동아시아 관련 논문을 썼는데 그때 당시, 밤이 되면 고민이 있어서라기보다 낮에 하고자 했지만 결국 못했던 말들이 생각나서 결국 잠을 이루지 못했다. 때문에 그전에 없었던 언어로 무언가를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가 강하게 생겼다.

어떤 수업을 들었을 당시, 한 일본 학생이 어눌한 일본어로 질문을 했는데 스승이 태도가 좋은 질문이라며 칭찬하셨다. 그 스승의 태도는 학생에 대한 립 서비스가 아니라, 상대의 동기에 대해서 이해하고 있을 때만 가능한 것이다. 어눌했던 학생의 질문을 수준 높은 질문으로 승화시켰다. 질문 내용을 자신의 체험에 대입시켜 질문자 스스로의 신변의 체험으로 끌어당기는 방식이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내 개인의 체험을 다른 사람과 공유할 수 있는 형태로 가공할 수 있도록 쓸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에서 언어감각의 문제가 촉발된 것이다.

『지식의 윤리성』은 말하자면 여행기였다. 몸으로 다니면서 체험하고 여행하는 것이 아니라, 추상적인 언어로 구체화된 형식을 전할 수 있는지에 대한 물음에 도전하고 싶었다. 그것이 작년이었고 이 책은 나에게 있어서 그 도전의 결과물이다. 전성욱 선생님께서 말한 정신적 체험의 결과물이 그런 의미다.

 

시대에 답을 제시하는 사람은 되고 싶지 않아

전성욱 문학평론가 : 결국 윤여일 저자분의 말씀은 지식의 주체와 지식의 대상이 맺는 관계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 것 같다. 지식의 주체가 객관적인 인식에만 매달려서만 안 되고, 자신의 변화를 추구해야만 지식 주체와 지식의 대상이 만나서 변화하는 과정에서 지식의 윤리성이라는 문제가 다시금 제기되는 것이다. 그 지식의 윤리성을 이론, 비평, 사상이라는 지식의 세 가지 속성에 대해서도 말씀하셨는데, 세 가지 맥락에 관해서 설명해 주셨으면 한다.

윤여일 저자 : 이론, 비평, 사상에 대해 다시 또 설명할 필요는 없다. 이 세 가지의 맥락은 자의적인 것이다. 책 속에서 전달하는 나의 메시지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논문을 쓰는 것은 세계를 질문과 답의 형식으로 재창출해 내는 것이다. 물음이 있어서 답을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설정한 물음에 답을 찾아가는 방식이 사회학에서 추구하는 방식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적인 발견이라는 것이 이루어지는 것이고, 연구자에게 있어서 연구를 사는 행위를 통해 이론이 탄생한다.

글쓰기에 있어 이런 방식의 문답관계가 궁극적으로 재질문이 아니라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는데, 시대에 대해 물음을 제기하는 사람은 사상가이지, 답을 제시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억압의 기제로 이론을 설정해 보고 싶었다. 사상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끄집어내고 싶어서 이러한 이론, 비평, 사상이라는 주제로 1장을 시작하게 되었다.

 

지적 스승으로서의 루쉰과 다케우치 요시미.

 

루쉰

전성욱 문학평론가 : 상투적이고 진부한 질문이기도 한데, 윤여일 저자분의 글 속에서 중요한 것은 이론이 아니라 사상적인 것으로 나타난다.. 선생님의 작업이 이론가가 아니라 사상가였는지 그 맥락을 집어주시길 바란다.

윤여일 저자 : 사상적 인격이 나에게 있었기 때문에 그 말을 쓸 수 있었다. 루쉰에 대해 간단히 얘기하자면 루쉰의 글 속에는 불투명한 말이 종종 있다. 루쉰의 원문에서 이미 번역이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불행에 따라 글이 전달되지 않고 번역가를 거쳐 전달되는 것이다. 다케우치 요시미는 이렇게 하여 루쉰을 발견했는데, 역사와 시대, 장소 속에 맞물려있는 어떤 사람의 사유가 번역가에 의해 옮겨질 때 사상은 이론과도 같은 다른 형식으로도 옮겨질 수 있다.

루쉰이란 작가에 대해 말하자면, 그 사람의 글이 번역서로 가득 차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글을 쓰면서 허구의 이야기와 같이 불투명한 사람 속으로 진입하고자 하면 자기 자신을 송두리째 거는 행위가 뒤따르게 되고, 그 행위로 인해 글의 진의에 가닿고 거기서 무언가의 의미를 건져내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다케우치 요시미는 일본의 아카데미적으로 지적인 후계자를 만들지 못한 사람이었다. 전후 일본사상계에 있어서 극과 극으로 평이 갈린 사람이기도 하다. 이른바 체계를 갖지 못한 것이다. 다케우치 요시미는 현실사상에 대해 가설을 만들어내고 그에 따른 기대나 성과를 만들어 낸다. 그러나 전에 만들어냈던 가설을 다시 사용하지는 않는다. 그때마다의 상황 속에서 살아보려 한 사람이고, 그래서 많은 오류를 범했던 사람이기도 하다.

 

우리의 시간을 좀먹고 사유능력을 뺏는 TV라는 존재

 

윤여일 선생님.

전성욱 문학평론가 : 이번에는 번역과 현실 감각에 대해 묻고자 한다. 번역이라는 것은 원문에 대한 충실성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지만, 이 책에서 중요시하고 있는 점은 조금 다르다. 원문과 번역과의 어긋남을 중요하게 보고 있는 것 같다. 또한, 현실감각 부분에 관하여서는 책을 출간하면서 첨가한 부분으로 알고 있다. 격정적인 어조에 텔레비전을 끊는다던지 하는 분노에 찬 결단을 내리는 부분이 나오는데 「현실감각에 관하여」편을 쓰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

윤여일 저자 : 이명박 정권 들어서 감정적으로 많은 피해를 받게 되었다. 이명박에게 바로 갚을 방법이 없어, 유의미하고 생산적인 방법으로 바꾸고 싶었다. 이는 텔레비전과도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텔레비전으로 뺏긴 시간들을 텔레비전으로 갚아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텔레비전으로 인한 분노를 생각해보라. 요즘 텔레비전에 나오는 내용을 보면 너무 분노스럽지 않은가. 요즘 보게 되는 내용이 뉴스나 토론프로그램 등 우울한 내용이 많았기 때문에 내 작업이 힘들겠구나 하는 자연스런 생각을 하게끔 되었다. 생각의 호흡을 압축시키고 있다는 느낌과 함께, 이렇게 텔레비전을 보며 느낀 나의 피해가 만만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성욱 문학평론가 : 결국 저자 분 말마따나 텔레비전은 우리의 시간을 소모시키고 사유능력을 좀먹고 현실감각을 둔화시킨다. 더 중요한 것은 반복적으로 습관화되는 현실에 더 이상 고통스럽지 않게 되는 것이다. 즉, 현실에 대한 예민한 감정을 놓치게 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책을 읽으며 이러한 감각이 축적되어 곧 비평이 되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현실을 예민하게 바라보는 현실 감각을 연마하기 위해서 비사유를 사용하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

윤여일 저자 : 현실감각에 대한 부분에서 비사유의 사유에 대한 얘기를 언급했다. 비사유의 사유와 관련된 대목이기도 한데, 곧 있으면 대선이다. 결과는 내가 생각한대로 잘 안 나올 것 같기도 한데, 만약에 박근혜 씨가 되면 니체를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커다란 변수가 없으면 사실은 루쉰을 읽고 싶다.

이명박은 한국사회의 속물근성이 집약된 상징과도 같은 존재다. 그동안 인터넷이 얼마나 개인의 감정과 정신을 집약시키는 미디어인지를 알 수 있었다. 촛불시위 따위를 지켜보며 내 자신이 얼마나 피폐해지는지를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촛불운동이 사상적으로 성과를 낼 수 있다고 보았다면, 첫째로 그 안에서 이명박이 아니라 우리 안의 이명박적인 것과 어떻게 싸울 것인가가 논의되어야 했다. 하지만 이명박적인 것이란 외과수술처럼 선명하게 도려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생각된다. 앞으로 제2,3의 이명박이 등장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다.

또 하나는 촛불운동 실패 이후의 것이 충분히 논의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결국 촛불운동은 사상사적인 측면에서 촛불의 성과를 남기지 못했다는 말이 된다. 요즘들어 다시금 광우병이나 막장정권이 나타나고 있는데 예전처럼 촛불운동이 기능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

박근혜가 대선에서 승리하면 루쉰을 읽고 싶기는 하나 니체를 읽고 싶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니체의 저작을 담론으로 삼아 이를 문제시하는 사회가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나 또한 니체의 저작을 통한 작업을 하게 될테니 말이다. 책에서는 충분하게 담지 못했다.

 

 

역동적인 결과물인 정치 속, 민주주의에 대한 사유의 여지를 남긴 노무현 정권

전성욱 문학평론가 : 나 또한 「비사유에 관한 사유」 부분에 관해 충분치 않게 읽혔다. 이 책은 뭐랄까, 답을 내야하는 조바심을 갖지 말고, 물음을 촉발하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질문을 자기 자신에게 던지는 형식으로 말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책에서 기대하고 있는 답은 없으니 나같은 못된 독자들은 책을 읽으며 답답했을 것이다. 정치감각에 관한 부분을 보면 텔레비전이나 언론을 보면서 국민들이 정치에 대한 무력, 피로감을 느끼게 된다. 결국 그것에서 우리가 적극적으로 벗어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비평정신과 정치감각으로 나온다. 선생님께서는 정치감각을 회복하기 위해서 권력과 정치의 구분, 정치사고의 구도를 이야기하셨다. 상층부 중층부, 하층부를 나누게 되는 정치사회의 구도에 대해 설명해 달라.

윤여일 저자 : 정치와 권력에 대해서 얘기하겠다. 노무현의 새만금 간척사업, 대추리, 한미FTA, 모두 나와 내 동료들이 개입하려고 했던 사건이다. 노무현 정권과 이명박 정권을 비교해 봤을 때, 둘 다 못마땅하지만 생각해보니 민주주의라는 문제에 있어 두 정권은 다른 면을 보인다. 이명박 정권은 민주주의를 사유하지 못하고 요구하게 만들었으나, 노무현은 민주주의에 사유의 여지를 주었다. 검찰과의 대화와 같은 행보가 어떻게 보면 민주주의에 대해 한국사회가 어디까지 생각해볼 수 있는가를 만들었던 계기를 마련하였던 것 같다.

민주주의가 요구되는 것이 자명시 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명박 사회는 민주주의가 자명시되지 못하고 퇴행되는 단계에 이르렀다. 정치라는 것은 역동적인 과정이며, 권력은 역동적인 과정에 대해 만들어지는 결과물일 따름이다. 그 운동성을 정치가 상실하면 권력을 가진 층에서 정치개입 요소를 제공하게 된다. 권력이 정치가 되어버린 사회에서는 권력이 정치적 세계인 것처럼 마치 우리가 보게 되는 스포츠 뉴스를 다루는 방식과 가까워진다. 즉, 정치가 운동 경기를 설명하는 용어와 흡사해지는 것이다. 그런 용어에만 깊이 빠질 것을 경계하고, 권력을 누가 쟁취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깊이 고민해봐야 한다.

정치적 사고에 대해서는 이처럼 현실정치에 대해서, 정치인들의 정치뿐 아니라 이념과 이념,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 인권과 인권, 중층, 생활세계의 하층의 다양한 정치가 있다. 현실정치라는 상층부에 있는 정치를 생활정치라는 하층부로 끌고 와야 한다.

 

토론회에 참여해주신 독자분들.

 

독자와의 대담

전성욱 문학평론가 : 책에는 구체적 사례가 많이 없다. 사례를 들어 설명을 해주니 좋다. 이번에는 독자여러분들의 질문을 받아보겠다.

 

독자1 : 책을 읽으면서 생각을 마구 쏟아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숨이 막힌다고나 할까. 읽으면서 생각이나 여유가 없다는 생각을 받았다. 너무나 빠르고 숨막히게 글이 전개되어 미처 의문을 제기할 수가 없었는데, 이 책을 쓰시면서 독자를 위해 좀 더 친숙하고 편하게 쓰실 수는 없었는지 궁금하다.

윤여일 저자 : 어떤 글을 쓸 때 결정하게 되는 것은 글의 주제와 소재뿐만이 아니라, 감정상태도 중요한 요소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우울한 책이다. 여행기를 연재할 때는 일주일 동안 다녔던 여행을 상상하며 글을 쓰니 즐거운 감정상태였는데, 『오늘의 문예비평』에 글을 쓸 때는 어떤 다른 감정이 필요했다. 그것이 바로 우울한 정서였다. 글에 여백을 두고 싶지 않아 의식적으로 글을 썼다. 니체의 글쓰기 방식 중에 접속어와 함께 연결되는 세계와, 형상을 만들어내는 글쓰기 방식이 있는데 니체를 흉내내고 싶었다기 보다, 무언가 한 문장의 옆의 문장 하나하나를 다 살리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다. 힘들었다. 문장을 써내면서 여백에 해당하는 상투적으로 느껴지는 표현을 없애며 써보고 싶었다.

 

독자2 : 이 책은 난해하다. 글을 쓰는 작가는 아니지만 글을 쓰는 데 있어 관심이 많은 사람이다. 글쓰기를 시작할 때 첫문장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한문장, 한문장에 있어서 어떤 단어를 선택할까 고민을 많이 하는데 몇줄씩 고민하게 된다. 길을 가다가도 떠올리며 메모하고는 하는데, 추상적 언어로 구체적 메시지를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가 관건이다. 이 글은 솔직히 이해가 잘 안되었다.

윤여일 저자 : A란 주제에서 글로 풀어내고자 하는 B지점이 있을 때, 나는 아주 좁은 걸음으로 가고자 한다. 그 좁은 지점을 열 문장으로 써보고 싶었다, 라는 의미에 가까웠다. 사고의 절차와 표현의 절차를 어디까지 표현해 볼 수 있는가를 말하고 싶었다. A와 B사이가 먼 거리여야 했다. 둘 사이가 연관성이 없는데 논리적 비약이 될 것을 앎에도 불구하고 최대한 다리를 놓아보는 것이다. B로 가지 못하고 A'나 A''라는 방식으로 관성화되는 부분이 많기에 그런 부분을 충분히 경계하고 싶었다. 그래서 돌들을 까는 방식으로 문장을 배치해보려 한 것이다. 문장을 촘촘하게 하여 이론적인 증거를 들거나 사례를 들지 않고 이론적인 표현만으로 글을 구성한 것이다. 이는 첫 번째 독자분의 질문의 답이기도 하다.

사례로 들지 않고 글을 쓴 이유는 이 책을 쓰기 전의 글이 사실 모두 사례였다. 공감대를 형성하기에는 사례만큼 좋은 것이 없지만, 번역불가능성을 전제로 하고 구체적 사례를 들지 않았다. 원전인 내 자신의 표현만으로 글을 써보고 싶었다.

 

독자 3 : 신체에 남는 연구가 무엇인지 답변해 달라.

윤여일 저자 : 다케우치 요시미는 루쉰이 말한 ‘挣扎(쟁찰)’[zhēngzhá]이라는 용어에 대해 투입하다, 끄집어내다 정도로 표현해냈는데, 이는 글을 쓰고자 하는 대상에 자신을 투입해서 자신을 던지는 행위라고 볼 수 있다. 신체에 남는 연구라고 하는 것은 이처럼 글을 쓰는 대상과 자신의 거리를 어떻게 두는가에 있다. 글쓰기마다 문체가 달라질 수 있는데, 나는 줄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글쓰기 방식을 선호한다. 이와 다른 종류의 글쓰기와 관련해서 끄집어내고 싶은 충동을 갖고 있다.

 

독자4 : 「이론, 비평, 사상」부분에 있어 이론과 비평사상에 관한 총괄적인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비평이라는 지점과 자기비평이라는 사상에 대해서 맥락을 풀어서 얘기해 주시면 좋겠다.

윤여일 저자 : 다케우치 요시미 선생은 1500편의 글을 발표했다. 매달 한편씩 발표를 했다치면 1400편 정도 쓰는 셈이 되는데, 선생은 생애 모든 시간을 글쓰는 데 바친 사람이다. 그 글을 읽는 나라는 사람이 존재하는 것이고, 이런 사람의 모든 시간은 글을 쓰거나 읽거나 하는 등의 글과 관련되어 있다.

열아홉 편의 글을 써낼 때 자신에게 이정표가 되는 글이 있는 반면, 자신에게서 버려지는 글이 있다. 내 고민에서 그 물음을 가장 구체화되는 형태로 만들어내는 글이 있으면 그것을 이어보면서 확인시킨다. 그 이외의 글은 몸에 남는 글이 아니다. 기능적인 글이랄까. 이정표가 남는 글이 생기면 사유의 지도를 완성할 수 있다. 이론적인 공부방식을 거부하는 이유는 좌표를 찾아가는 방식은 아니기 때문이다. 글쓰는 사람에게 글쓰기란 거처를 만들어 나가는 과정이다. 잠시 머물러 비로소 발견되는 내 한계에 대해 노력했기 때문에 그 과정속에서 내 한계를 배우게 된다. 글쓰는 행위를 나는 ‘사상한다’라는 동사로 만들고 싶다. 글쓰기는 자기자신을 분열상태로 내모는 행위이다.

 

독자5 : 루쉰과 다케우치 요시미, 쑨거를 사상가로 꼽으셨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누구를 들 수 있을까?

윤여일 저자 : 잘 모르겠다. 그 세 명은 텍스트로 접했기 때문만이 아니라 삶의 전체상황과 시대상황을 파악했기 때문에 사상가로 꼽을 수 있었지만, 어떤 분에 대해서 그 세 분 외에 그런 종류의 전체상을 그려본 적이 없고 연구해 본적이 없다. 다, 나의 노력이 부족한 탓이다.

 

자기고백과도 같은 솔직한 글

전성욱 문학평론가 : 그런 분들을 만나기가 어렵고, 나도 윤선생님께 물어봤었는데 같은 대답을 하시더라. 사상을 하려는 자에게는 자신이야말로 진정 중요한 사람이 아닌가 하는 대목이 있었다. 자기고백과 같은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굉장히 솔직한 글이다. 마지막으로 짧게 인사말 부탁한다.

윤여일 저자 : 솔직한 글은 아니다. 전성욱 선생님과 대화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대화를 하면서도 의식하는 사람은 앉아계신 여러분이다. 글쓰는 행위 또한 읽어주는 사람을 향해있다. 실제 글을 쓸 때도 솔직하게 글을 썼지만, 읽힐 것을 염두했기에 솔직하게 쓰지 못했다. 타인의 시선은 당연한 것이었으나 내가 애초에 했던 계산에 대해서는 조금 충분하지 못했다. 책의 아쉬움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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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전복라면 2012.05.29 13: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내용은 어렵지만(선생님이 워낙에 입말을 글처럼 하시는 바람에ㅋㅋ) 텍스트나 사진 배치가 오밀조밀해서 예쁘네요 첫 사진에 포샵한 문구까지 넣으시고! 역시 엘뤼에르님의 혈관에는 드~자이너의 피가 흐르고 있어요ㅋㅋㅋㅋ

  2. BlogIcon 박변덕 2012.05.29 13:2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우 이렇게 자세한 후기라니!) 저자는 자신의 경험담을 일부러 책에 쓰지 않았다고 했지만, 이 행사를 통해 저자의 경험담을 듣지 못했다면 이 책을 이해하는 건 힘들었을 겁니다. 유익한 시간이었어요.

    • BlogIcon 엘뤼에르 2012.05.29 13: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도 좋았어요. 솔직히 책만으로는 알기 힘들었던, 내용을 다양한 사례를 제시해서 설명해주시니까 무슨말이지 알겠더라구요^^. 사실, 책이 저에게는 좀 낯설고 어려웠어요.ㅎ

  3. 윤여일 2014.07.19 16: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랑 동명이인인 분 중에 사상학 쪽으로 유명하신 분이 계시네요.
    저는 공학 쪽 일을 하고 있고 "윤여일 박사"라고 검색하면 제가 더 많이 검색이 되는 것 같습니다. 동명이인을 보는 건 참 신기합니다.

    계속 건투를 빕니다.






기쁜 소식입니다.


산지니에서 발간하고 있는 비평전문계간지 『오늘의 문예비평』이 

"우수문예지발간지원"에 선정되었습니다.

올해에도 별탈없이 『오늘의 문예비평』을 출간할 수 있겠네요.

좋은 기획과 글로 찾아가겠습니다.



 선정결과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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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지니 출판사는 비평전문계간지 『오늘의문예비평』을 발간하고 있습니다.

지난 달 겨울호가 출간되었고, 김수우 시인이 이번 겨울호에 
「저항하라, 상상하라, 그리고 사랑하라」는 글을 쓰셨습니다.
김수우 시인은 중앙동에서 '백년어서원'을 운영하고 계시기도 합니다.

백년어서원은 부산에서 중요한 인문학 공간으로,
매주 '바까데미아'를 운영하고 그 외에 다양한 강연과 행사를 마련하고 있습니다.  
특히 11월에 부산에서 개최된 제1회 세계인문학포럼을 기념해
인문학 릴레이 한마당을 마련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활동들과 함께, 이번 『오늘의문예비평』에 실린 글에 대한 기사를
부산일보에서 냈습니다.

기사를 스크랩해서 올립니다.


백년어서원 http://blog.naver.com/100_fish/  

제1회 세계인문학포럼 
 http://www.worldhumanitiesforum.org/2011/kor/main/main.htm 

원문보기
http://news20.busan.com/news/newsController.jsp?sectionId=1010090000&subSectionId=1010090000&newsId=20111222000046 




 "인문학이 환대와 배려를 실천하는 일이라고 볼 때 민간이 앞장서서 움직이는 것은 마땅해 보인다. 어떤 예술적 감성도, 어떤 비판적 지성도 윤리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은 길 위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입시의 틈바구니나 쇠락한 원도심에서 시작한 부산의 인문학은 민간 주도의 그 실천적 영역을 관통하고 있다고 보아도 좋을 듯하다."

김수우 백년어서원 대표는 최근 부산의 민간 주도 인문학 현장들을 답사했다. 그는 민간 주도 인문학 현장을 '바까데미아'라고 부른다. 바까데미아는 아카데미아(대학) 바깥에서의 인문학이다. 여기서의 인문학 목표는 이론과 개념이 아니라 삶의 변화를 끌어내는 것이다.

김수우 백년어서원 대표 
'오늘의문예비평' 기고 
"속도·성과주의 탈피해야"

김 대표는 비평전문계간지 '오늘의문예비평' 겨울호(통권 83호)에 '저항하라, 상상하라, 그리고 사랑하라'라는 글을 기고했다.

이 글에는 바까데미아의 현실과 지향점이 촘촘하게 정리돼 있다. 세계적으로 알려진 청소년 인문학 커뮤니티 '인디고서원', 열린공간으로 생태·환경의 가치를 지향하는 '공간초록-연구모임비상', 인문예술의 융합을 꿈꾸는 '문화공간 빈빈', 부산대 앞의 젊은 층 문화를 이끄는 '카페 헤세이티'와 '생활기획공간 통', 문화독해운동/지식나눔공동체 '이마고', 원도심 운동을 하는 '백년어서원', '신생인문학연구소', '수이재' 등이 나온다.

김 대표는 바까데미아의 공간들이 연대의식을 갖고 공동관심사의 원천을 찾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개성적인 장소성을 확보한 이들 공간이 다양한 만남을 통해 공존의 기술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인문학이란 '연대를 향한 길 찾기'이기 때문이다.

그는 부산의 인문학 네트워크가 아직은 밀도가 낮다는 현실을 인정한다. 이런 한계에도 민간주도의 인문학 커뮤니티는 부산에서 실질적인 인문 지도를 선명하게 그리고 있다고 평가한다.

인문학을 한낱 유행으로 보는 현상은 가장 경계할 일. 일 년에 책 몇 권 읽지도 않으면서 인문학 강의에 몰려다니는 것이 그 예다. 다문화, 통섭, 공감이란 말이 여기저기서 튀면서 인문학이란 말도 덩달아 액세서리처럼 딸랑거리고 있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이런 현상은 자본에 의해 길든 인문학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우려한다. 이를 극복하려면 우선 일상을 지배하고 있는 속도주의, 편리주의, 성과주의를 벗어나는 것이 필요하다. 삶의 의미를 묻는 문제, 실존의 방식을 묻는 문제는 편리와 성과로는 접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이 대학에서 인문학이 죽어버린 이유라는 것이다. 인문을 지향한다는 것은 요구되는 성과와 싸우는 일이다.

김 대표는 로댕의 말을 인용해 '진보는 느리고 불확실한 것'이라며 인문학도 더 불편하게, 더 천천히 가야 한다고 역설한다. 섬세하게 사물을 들여다볼 수 있을 때 실존의 문제와 타자에 접근할 수 있음이다.

김 대표는 자본에 주눅이 들지 않는 인문학을 살리는 방법은 바까데미아의 고유한 영역과 지속적 활용의 길을 열어주는 것으로 본다. 인문학의 대중화를 위해 바까데미아의 지속과 재생산을 위한 시스템 마련이 필요하다고 제시한다.

김상훈 기자 neat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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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문예비평> 겨울호가 발간되었습니다.
83번째 책인 이번 겨울호 <특집1>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의 삶’을 다루었습니다. 새로운 정치적 삶에 대한 시민들의 열망과는 전혀 반대로 치달아온 사회의 시스템이란, 결국 파국에 이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후쿠시마 원전 사고’라는 재앙을 통해 성찰하는 기획입니다.

<특집 II> ‘자기로부터의 망명’은, 익숙하기에 평온함을 가져다주는 안정적인 체제에 안주하지 않고, 기꺼이 기득권과 같은 자기의 안정을 스스로 포기하는 그 혁명적 결단에 관한 사유들을 담고 있습니다.




일본 도호쿠(東北) 지역의 대지진과 쓰나미의 여파로 발생한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의 사고는 체르노빌 사고 이후 최악의 원전사고로 기록될 것이다. 후쿠시마 원전의 원자로 폭발과 이로 인한 방사능 유출은 원자력이라는 에너지에 대한 인간의 통제 불가능성을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인간의 삶에 기여한다는 명분으로 장려된 과학기술의 발전은 이처럼 인간의 생존 자체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가공할 잠재력을 내포하고 있다. 원자력 에너지에 의존하는 현대의 삶은 거대한 에너지의 소모를 필요로 하는 사회적 구조와 산업적 시스템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따라서 저 통제 불가능하고 그리하여 치명적으로 위험한 원자력에 대한 반대는, 소비적 욕망을 탕진하는 자본주의의 탐욕과 지금 우리들의 삶에 만연한 비윤리성에 대한 발본적인 반성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이번 사고 이후 미야자키 하야오나 무라카미 하루키와 같은 일본의 예술계 인사들은 원전 반대를 공개적으로 천명하였다. 이것은 기술의 비윤리성에 대한 예술계의 비판이라는 맥락으로 이해될 수 있다. 원자력의 위험성에 대한 비판은 예전부터 있어왔지만, 이번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계기로 다시 한 번 핵연료의 문제와 더불어 환경과 생태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이끌어내야 할 것이다.

이제는 환경문제에 대한 고려 없이 자본주의의 지속가능한 이윤축적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벌써 독일, 스위스, 이탈리아 등 몇몇 선진국들은 원자력 발전소를 폐쇄하거나 폐쇄결정을 내리는 조치를 취하고 있다. 그만큼 재앙에 가까운 이번의 원전사고는 인류사의 패러다임에 새로운 전환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거대한 전환의 시기에 문학은 무엇인가? 기존의 생태문학론이 가진 의미와 한계를 딛고 인류의 생존가능성이라는 측면에서 윤리적인 반성을 앞으로의 문학은 어떻게 예감하고 또 촉발할 수 있을 것인가?

- <오늘의문예비평> 겨울호 특집1 서문



차례

겨울호를 내면서

특집Ⅰ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의 삶
생명위기와 원자력문명의 종말  신승철
대전환의 예감, 보이지 않는 윤곽—3.11 이후의 일본 사회  안천
대병겁 시대의 시학을 위하여  이성희

특집Ⅱ 자기로부터의 망명
타자성의 정초, 미래파의 미래로 나아가기  손남훈
작가적 명성과 문학적 성과-조정래와 황석영의 2000년대 이후 작품을 읽으며  고인환
비밀과 결여-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와 공지영의 『도가니』  이경

아시아를 보는 눈
K-POP의 초국적 조건들-이중의 미미크리와 문화자본의 논리  이동연
번역연재-『일본의 각성』(제3회)  오카쿠라 텐신

지역을주목하라
저항하라, 상상하라, 그리고 사랑하라  김수우

한국문학의 새로운 시선
작가산문 | 딱 한번 당신의 正面  이안
E-mail 대담 | 서정의 주머니 이안·박형준

해석과 판단
들려진 삶과 살아 내려오는 운동-희망버스와 연대의 가능성  하승우

포커스
사실의 지층과 진실의 심상지리-정유정, 『7년의 밤』(은행나무, 2011)  이희원
조영일과 세계문학의 구조-조영일, 『세계문학의 구조』(도서출판b, 2011)  박가분
계급론의 부활과 노동운동의 새로운 지평-조돈문, 『노동계급 형성과 민주노조운동의 사회학』(후마니타스, 2011) 강신준

장편연재비평
지식의 윤리성(제4회)-언어감각에 관하여  윤여일

<오늘의문예비평> 2011 겨울호 책소개 더보기


Posted by 산지니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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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문광부 우수교양도서 발표가 지난 주에 있었는데요, 
선정된 410종의 책 중 산지니 책도 1권 들어 있답니다.

그 주인공은 바로 <불가능한 대화들>

문학 부문 당선작 중 1권이랍니다.


<불가능한 대화들>은 한국문학의 현장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젊은 시인 소설가 12인의 '작가산문'과 '대담'을 엮은 책입니다. 작가들의 생생한 육성을 통해 문학에 대한 열정과 생각을 들여다 볼 수 있답니다.

소설가 : 김숨, 김이설, 김재영, 김사과, 염승숙
시인 : 김언, 안현미, 최금진, 김이듬, 박진성, 이영광

책은 비평전문계간지 <오늘의문예비평> 20주년을 기념하며 세상에 나오게 되었는데요, 대담을 맡은 허정, 김경연, 박대현, 전성욱, 손남훈, 김필남, 권유리야 등 7인의 비평가들은 <오늘의문예비평> 현(전) 편집위원들이기도 합니다.

12명의 작가와 7인의 비평가 등 자그마치 19명 필자의 노고가 책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답니다. 우수도서로 선정될만하지요?^^ 그리고 보니 그동안 나왔던 산지니 책 중 필자가 가장 많은 책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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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가능한 대화들 - 10점
    염승숙 외 지음/산지니

    Posted by 산지니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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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해찬솔 2011.11.09 16: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최근 집근처에 있는 진주문고 탑마트점이 사라져서 가슴이 아팠는데 이런 반가운 소식에 다소 위안이 되는군요.
      요즘 오프라인 서점들이 힘겨운데 지역 출판사도 더욱 어렵지 않을까 싶네요.
      아무쪼록 좋은 책 많이 내주시길 바랍니다.

    2. BlogIcon 옥가실 2011.11.10 13:2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축하합니다.
      고난의 연속이었을 터이니, 더 축하할 일입니다.

    3. 짝짝짝 2011.11.10 16: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축하드립니다. 뿌듯해 하시는 마음이 제게도 느껴지네요. :) 힘내세요!

     

    김경연 평론집 '세이렌들의 귀환'


    ▶ 문학에 대한 믿음을 놓지 않고 있는 김경연의 평론집

    1990년대와 2000년대 한국문학 작품을 대상으로 변화하는 한국문학의 주요 징후들을 포착하고 해석한 김경연의 첫 평론집 『세이렌들의 귀환』이 출간되었다.
    현재 『오늘의문예비평』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부산대 인문학연구소 HK연구교수로 재직 중인 김경연은 비평에 대한 특유의 섬세함과 열정으로 앞으로의 활동이 더 기대되는 젊은 평론가이다.
    문학종언론 이후에도 여전히 문학에 대한 믿음을 놓지 않고 있는 김경연은 변방의 위치로 내몰린 모든 남루한 자들과 더불어 변방을 결핍이 아니라 신생(新生)의 거점으로 사유하는 일관된 비평의식을 보여주고 있다.
     『세이렌들의 귀환』은 여성, 타자/지역, 그리고 역사/현실에 초점을 맞추어 우리 사회의 마이너리티들을 조명한 작품들의 의미를 변방(주변부)에 위치한 비평가의 감각으로 해석하고 평가한 책이다.

    ▶ 페미니즘의 시각을 견지하며 여성/여성문학에 초점을 맞추다

    무엇보다 이 책은 여성/여성문학을 초점화했다는 점에서 최근 출간된 일련의 평론집과 차별성을 갖는다.
    페미니즘과 젠더의 문제는 김경연의 비평의 근거이자 세상을 바라보는 해석 틀이기도 한데, 이 책의 총론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는 1부 ‘여성을 횡단하는 여성’은 이러한 여성과 여성문학에 관련한 글을 묶은 것이다.
     「혁명 이후 여성문학의 행로-87년체제와 90년대 여성문학의 변화」는 87년체제의 분위기 속에서 발아한 90년대 여성문학의 특이성을 김인숙, 공지영, 공선옥의 소설을 통해 해석한 글이다.
    이어 실린 「아버지 혹은 가족을 사유하는 세 가지 방식-2000년대 여성문학의 모험」은 90년대 여성문학의 정체(停滯)를 심문하면서 등장한 2000년대 여성작가들의 모험에 주목한 글이다.
    「황진이의 재발견, 그 탈마법화의 시도들」은 2000년대 팩션의 유행 속에서 ‘황진이’를 소재로 쓴 남북한 작가의 소설을 비교하였다. 1부에 수록한 글들은 단수인 ‘여성’이 아닌 복수인 여성‘들’을 긍정하며, 여성이라는 집합적 정의를 횡단하는 새로운 여성문학의 징후를 읽어내려는 문제의식을 내보인다.


    능력주의 신화에 들려 있는 한, 페미니즘은 불가능한 꿈에 지나지 않는다. 만사는 제 할 탓이기에 자신 말고는 아무도 탓할 수가 없다. 머더-되기를 불사하는 전능한 마더, 투명인간으로 비가시화되는 아버지, 점점 교묘하게 계급을 재생산하는 교육신화는 가부장제와 세습사회의 실질을 은폐하고 있기에 ‘뒤로 가는 문학’이 대세일 수밖에 없는 현실을 김경연은 아프게 지적한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우리 소설들의 뒤를 잡아당기는 스티키 플로어(sticky floor)의 지층을 더할 수 없이 날카롭고 묵직하게 짚어낸다는 점이다. 진단이 정확한 만큼 처방 또한 분명하다. 고통을 기입하고 정치화하는 이와 같은 비평의 지향에서 페미니즘과 혁명은 행복하게 조우할 수 있는 것이다. _임옥희(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객원교수)

    ▶ 외(外)로 들어가서 외(外)로 보기


    2부 ‘타자/지역이라는 접경’은 우리시대의 각종 타자들과 접속하는 시와 소설, 그리고 변방의 위치에 있는 지역문학이나 대중문학의 의미를 조명해보는 글들이다.
    「경계를 횡단하는 탈국의 서사를 위하여」에서 김경연은 국경을 넘어 한국으로 유입된 제3세계 디아스포라, 특히 겹겹의 폭력에 유린당하는 이주노동자 여성과 아이들을 재현한 최근 한국 소설의 가능성과 한계를 짚어낸다.
    「지역을 통과하는 소설」이나 「불경한 텍스트를 재독하다-조선작 소설 다시 읽기」에서는 지역문학이나 대중문학의 결을 새롭게 읽어내고 그 의미를 적극적으로 해석한다. 이런 글들을 통해 저자는 중심을 되받아 쓰려는 구호로서의 지역문학을 넘어 중심의 폭력을 증거하는 흔적이자 중심의 허(虛)를 겨냥하는 역능으로서의 지역문학을 상상한다. 아울러 1970년대 조선작의 소설을 재독하며 일체의 진지함을 훼절하는 불경한 방식으로 엄혹한 시대의 폭력을 감당해온 대중문학의 의미에 주목한다.


    외(外)로 들어가서 외(外)로 보기. 김경연의 비평에서 빼놓을 수 없는 시선이자 목록이다. 유령들, 백수들, 여성들, 철거민들, 이주노동자들, 성적 소수자들, 지역으로 탈색된 지방들, 무엇보다 ‘그것’들의 목소리와 문학들. 일부는 더 이상 문학의 주변이나 외부라고 이름 붙이기 곤란한 위치로 격하되고 격상되었지만, 여전히 허방을 품고 있는 지점을 다시 외(外)의 시선으로 들어가서 외(外)의 자리로 되돌려놓고 들여다보는 것. 그것이 김경연 비평의 미덕이자 공력이며 또한 매력이다. _김언(시인)

    ▶ 신자유주의의 현실을 감각하는 문학의 대응 논리에 주목


    3부 ‘역사와 현실의 감각’은 문학 종언론 이후 문학의 이행이나 신자유주의의 현실을 감각하는 문학의 대응 논리에 주목한 글들로 묶여 있다.
    특히 「기원을 향수하는 노스탤지어의 열정-최근의 팩션 읽기」는 문학 장을 구성하고 있는 작가, 독자, 비평가의 정체와 위상이 총체적으로 변화하고 있는 지금, 팩션 혹은 뉴에이지 역사소설의 부상이 함의하는 바가 무엇인지 살펴보는 글이다.
    더불어 「유령의 생(生)을 사는 ‘짧은 이야기들’의 운명」은 포기할 수 없는 문학의 윤리에 대해, 문학의 죽음을 생성의 문학으로 재전유할 수 있는지에 대해 사유하는 글이다.
    「불안을 감각하는 서사들」에서 저자는 우리 시대가 질병처럼 앓는 불안을 화두로 삼은 소설들을 통해 불안을 불행으로 살지 않고 새로운 공동체를 상상할 수 있는 능동적 힘으로 바꾸어낼 수 있는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타진해보고 있다.

    ▶ 변방의 비평가 되기를 흔쾌히 선언하다


    1990년대 이후 정치·사회·문화적으로 나타나는 급격한 변화는 문학의 영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공적·거시적 이념이 약화된 자리에 사적·미시적인 차원의 개인·내면·일상 등이 문학의 새로운 화두로 등장했고, 아울러 근대(성)에 대한 총체적 반성이 제기되면서 여성·지역·외국인 등 기왕의 주변부 타자들, 즉 우리 사회의 마이너리티들에 대한 문학적 관심 역시 촉발되었다.
    이 책에 실린 김경연의 평론들은 일관되게 이러한 변화에 주목한 것이다. 이 책을 통해 김경연은 무엇보다 여성·이방인·지역 등 우리 사회에서 주변부의 위치로 내몰린 마이너리티들에 대한 관심을 견지하고, 아울러 이들 소수자들을 문학의 육체로 삼은 최근 한국문학의 면면을 읽어내며 그 의미를 평가하고 있다.

    지역(변방)에 위치한 비평가로서 이러한 주변부를 조명하는 일은 반드시 필요하고, 또한 여기에는 저의 실존적 고민이 담겨 있기에 더욱 강렬한 문제의식으로 마이너리티와 이들을 초점화한 문학에 접근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_저자의 말

    비판이 자신의 입장으로부터 다른 것을 공격하는 것이라면, 비평은 오히려 자신의 근거 자체를 되묻는 일이라는 가라타니 고진의 말처럼, 지역에 위치한 여성 비평가 김경연은 마이너리티들을 조명하는 일이 자신의 실존적 근거에 비추어볼 때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세이렌들의 귀환』을 통해 변방의 비평가 되기를 흔쾌히 선언하고 있다.


    저자: 김경연
    1970년 부산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부산에서 살고 있다. 부산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고 같은 대학에서 「1920~30년대 여성잡지와 근대 여성문학의 형성」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5년 『오늘의문예비평』에 「황진이의 재발견, 그 탈마법화 시도들」을 쓰면서 본격적으로 비평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 『오늘의문예비평』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부산대 인문학연구소 HK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공저로 『살아있는 신화, 황진이』, 『2000년대 한국문학의 징후들』, 『문학과 문화, 디지털을 만나다』, 『혁명 이후의 문학』이 있으며, 편저로 『불가능한 대화들』이 있다.

    『세이렌들의 귀환』 산지니평론선 7

    | 문학 | 평론

    
    김경연 지음
    출간일 : 2011년 6월 7일
    ISBN : 9788965451556
    신국판 | 356쪽 

    1990년대와 2000년대 한국문학 작품을 대상으로 변화하는 한국문학의 주요 징후를 포착하고 해석한 김경연의 첫 평론집. 모든 남루한 자들과 더불어 변방을 결핍이 아니라 신생(新生)의 거점으로 사유하는 비평의식을 보여준다.


    차례

    서문 변방의 감각과 역설의 비평

    1부 여성을 횡단하는 여성
    혁명 이후 여성문학의 행로-87년체제와 90년대 여성문학의 변화
    아버지 혹은 가족을 사유하는 세 가지 방식-2000년대 여성문학의 모험
    황진이의 재발견, 그 탈마법화의 시도들
    항온과 변온, 그 유동하는 ‘사이’의 비평-김미현론
    21세기 신(新) 계몽소설의 출현-공지영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비체들의 사(史), 혹은 고통과 공포의 기록-천운영의 『명랑』

    2부 타자/지역이라는 접경

    경계를 횡단하는 탈국(脫國)의 서사를 위하여
    “오(O)·세계”를 횡단하는 유령의 시학
    지역을 통과하는 소설의 시선
    동물이 되거나 혹은 인간이 되거나
    불경한 텍스트를 재독하다-조선작 소설 다시 읽기
    망각을 가르는 기억의 정치-윤이상과 소설 『나비의 꿈』

    3부 역사와 현실의 감각

    기원을 향수하는 노스탤지어의 열정-최근의 팩션 읽기
    유령의 생(生)을 사는 ‘짧은 이야기들’의 운명
    불안을 감각하는 서사들
    전통과 현대의 접속, 딸의 서사에서 어머니의 서사로-황석영의 『심청』
    스펙터클 사회를 사유하는 소설의 힘-정미경, 『나의 피투성이 연인』
    편만(遍蔓)한 거짓과 소설적 진실-이명행, 『사이보그 나이트클럽』

    Posted by 산지니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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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여강여호 2011.06.29 12:2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태 평론이라는 걸 한번도 읽어보질 못했습니다.
      최근에는 유독 관심이 가곤 합니다.

      • BlogIcon 산지니북 2011.06.29 14: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도 출판사에 들어와서 처음 평론을 접했는데,
        그동안 너무 쉬운 책만 읽어서인지 처음 읽었을 때는
        머리게 쥐가 나는 줄 알았어요. -권 디자이너

    『오늘의문예비평』이란 잡지를 아세요.
    새로운 시각과 논리로 비평정신을 올곧게 세우고자 하는 기치 아래 1991년 봄 전국 최초의 비평전문지로 창간된 이래 2011년 봄호(통권 80호)로 어느덧 창간 20주년을 맞이하게 된 비평전문지인데요.


    그동안 도전적인 기획으로 한국문학현장에 비판적으로 개입하면서, 한국문학을 견인하고 받쳐주는 담론들을 꾸준히 생산해내고 있습니다. 그 시간이 어느덧 강산이 두 번 바뀐다는 20년이 되었답니다. 그러다 보니 ‘오늘의문예비평(오문비)’은 ‘전국 유일의 비평전문 계간지’ ‘최장수 비평전문지’ ‘부산을 비평의 메카로 만든 잡지’ 등 한국문학에서 갖가지 이정표를 세워놓은 잡지가 되었답니다.

    서울 중심의 한국 문단 구조에서 지역에 자리를 잡고 그것도 대중성이 약한 비평전문지를 표방하며 20여 년간 생명력을 이어왔다는 것은 나름 평가받을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대단한 전국 유일의 비평전문 계간지가 이번 봄호(통권 80호)부터 저희 출판사에서 발행하게 되었답니다. 종이책으로뿐만 아니라 전자책(인터파크, 리디북스에서 구입 가능)으로도 출간될 예정이라 독자분들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아질 것 같습니다.

    『오늘의문예비평』 2011년 봄호(통권80호) 책소개 보기

    올해로 20주년을 맞이한 오문비는 지나온 20여 년의 시간을 기념하고 되새기기 위해 몇 가지 일을 준비하고 있는데요. 먼저 얼마 전 20주년 기념 단행본 『불가능한 대화들』을 출간하였습니다.

    이 책은 한국문학의 현장에서 활발하게 창작활동을 하고 있는 젊은 시인과 소설가 12명의 창작에 대한 열의와 문학에 대한 신념을 담은 책인데요. 염승숙, 김숨, 김이설, 김재영, 정한아, 김사과, 김언, 안현미, 최금진, 김이듬, 박진성, 이영광 작가가 그 주인공이랍니다. 우리문학계에 새로운 이슈와 담론을 생성해온 젊은 작가들의 창작 과정에 대한 고민도 엿볼 수 있고 젊은 작가들의 문학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통해 한국문학의 미래를 가늠해볼 수도 있을 겁니다.

    『불가능한 대화들』 책소개 보기

    이번 다가오는 토요일(3월 26일, 2시~6시)에는 영광도서 사랑방에서 20주년 기념행사와 세미나도 준비되어 있는데요. 20주년 슬라이드 상영도 예정되어 있고 청중들과의 토론도 예정되어 있으니 관심 있으신 분들은 한번 참석하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아! 그리고 추첨을 통해 책 선물도 있습니다.^^

    불가능한 대화들 - 10점
    염승숙 외 지음/산지니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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