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49년 최계락과 동시 입상
- 오랜 사유·체험 '노년의 진경'

예술작품의 힘은 '돌아보게 하는 힘'에서 출발한다.

손경하 시인이 자택에서 두 번째 시집 '그대 홀가분한 길손으로'를 펴낸 소감과 시에 관한 생각을 들려주고 있다. 국제신문 김성효 기자


작품 앞에서 자기를 돌아보게 된 감상자의 마음이 크게 움직이는 것이 감동이다. 이렇게 예술가와 향유자가 작품을 매개로 만나 영향을 주고받는 과정이 소통이고 그 열매가 공감이다.

최근 두 번째 시집 '그대 홀가분한 길손으로'(산지니 펴냄)를 내놓은 손경하(86) 시인의 부산 수영구 망미배산로 자택을 지난 20일 찾아갔다. 정갈하고 마당이 예쁜 집이다. 손 시인이 마당 감나무에서 직접 따준 붉은 감은 꼭 인상 깊은 예술작품 같았다.

1929년 경남 창원 출생인 손 시인은 마산상고를 졸업한 뒤로 줄곧 부산에 살았다. 

"고등학교 다니던 1949년 영남예술제에 나가 시를 냈는데 입상자가 세 명이었어요. 이형기 최계락 그리고 저였지요." 그렇게 문학에 들어왔다.

부산대 상대에 진학했는데 상업 관련 과목은 이미 명문 마산상고에서 배워온 터였다. 그때 젊은 사자처럼 치열하고 쟁쟁했던 고석규 문학평론가(1958년 26세로 요절) 등을 만나 '신작품' '시연구' 등에서 동인으로 활동했다.

손 시인은 대학을 채 졸업하기 전부터 교편을 잡게 되면서 교육자의 길을 걸었다. "1950년대 당시 젊고 쟁쟁했던 '신작품' 동인들은 자신감이 있었고, 동인지 '신작품'에 글을 쓰면 됐지 기성의 등단 절차를 밟을 필요가 있겠느냐고 생각들 했죠. 저 또한 별다른 등단 절차 없이 현대시학 등에 글을 쓰면서 시의 길에 섰지요." 지금 돌이켜 보면, 지역 문단 청년들의 기개가 당당했다.

1985년 첫 시집 '인동의 꿈'을 낸 뒤로는 '시인 손경하'보다는 '교장 손경하'로 더 널리 알려진 삶을 살았다. 첫 시집 뒤 30년, 21년 전인 1994년 교직에서 은퇴하고 꽤 긴 시간이 지나고서야 그는 두 번째 시집으로 돌아왔다.

시집 '그대 홀가분한 길손으로'에 실린 시는 노년의 진경을 보여준다. 시어는 명징하다. 작품들은 오랜 묵힌 사유와 삶의 체험을 다 갖췄다. 그러므로 노년에 이르러서야만 할 수 있을 대범한 시상 전개와 함께 진실함이 살아있다. 이 시를 노년층 독자가 읽는다면, '나도 시를 써서 내 인생을 돌아봐야겠군' 하고 마음먹게 되리란 생각이 들 만큼 수록 작품은 묵직한 호소력이 있다.

치매를 그린 '미아'는 인상 깊다. 삶의 체험과 오랜 생각에서 나왔다. '컴퓨터 바이러스가 / 입력된 기억을 망가뜨리듯 / 불명의 촉수로 / 인간은 하루에도 / 재생 불능의 뇌신경세포가 / 10만 개나 / 미세한 거품 꺼지듯 / 죽어간다고- / 그러니 / 평생을 / 꿀벌처럼 축적한 우리들의 기억도 / 황폐화할 수밖에…입력 불능의 생소한 현재의 / 그 단절된 회로 사이를 / 뒷걸음치며 / 홀로 배회하는 / 늙은 미아-'(부분)

'반딧불이'는 오래된 날들과 오늘과 미래가 함께 숨쉰다. '산골짜기서 내려온 어둠이 / 마을에 그득 실린다 / 무자치가 지나간 무논에 / 별들이 눈을 비비는 동안 / 개구리 울음이 잠시 / 아득해진다…그들은 지금 / 다 어디 갔을까'(부분)

조봉권 | 국제신문 | 2015-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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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홀가분한 길손으로 - 10점
손경하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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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홀가분한 길손으로

손경하 시집




인생의 ‘갓길’에 밀려난 노년의 현재를

문명비판적 시선과 자의식의 프리즘으로 바라보다

1950년대 초반 전후 한국문단의 선도적 동인지였던 『신작품』의 동인, 손경하 시인이 신작 시집 『그대 홀가분한 길손으로』로 돌아왔다. 이 책은 1985년 출간된 시인의 첫 시집 『인동의 꿈』 이후 삼십 년 만에 발간된 두 번째 시집으로 그 의미가 남다르다. 해방 이후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시대적 상황을 배경으로, 자연과 현대문명과 신에 대한 물음 및 현실비판적 주제를 드러냈다. 동시에 이번 시집에서는 시인이 갖고 있는 노년에 대한 상실감과 현대 문명에 대한 비판의식을 그리고 있다. 표제작 「그대 홀가분한 길손에서」는 작별을 고하며 반추하는 생애를 삶과 죽음의 상징으로 풍경 속에 교차하여 그려냈다. 그러나 허무감과 쓸쓸함의 정서로 일관하기보다 지나온 생을 초연하고 아름답게 되돌아봄으로써 아름다운 노년의 작별을 마무리 짓고자 하는 정서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노년의 지금에서 과거로 떠나는 기억여행

일렁이는 황홀한 과거/ ――폐쇄된 미래/ 입력불능의 생소한 현재의/ 그 단절된 회로 사이를/ 뒷걸음치며/ 홀로 배회하는/ 늙은 미아――.

-「미아」 부분


『그대 홀가분한 길손에서』의 많은 시들은 노년에 접어들며 인생의 갓길로 밀려난 시인의 옛 기억을 다양하게 변주하고 있다. 치매 노인에 대한 묘사이자 기억 장애를 겪는 노년의 모습을 그린 「미아」는 노년의 두뇌 작용을 컴퓨터 하드디스크에 빗대고 있는데, 기억이 소멸되는 현재를 마치 컴퓨터 바이러스에 의해 정보가 지워져버리는 것처럼 묘사한 점이 특징이다. 이 시의 “뒷걸음치며” 떠나는 기억여행에 관한 모티브는 다른 시편들에서도 볼 수 있는 중요한 시적 자의식이며, 기억과 망각을 주된 소재로 하는 이 시집의 중요한 테마로 볼 수 있다. 이러한 기억 여행에서 시인은 때로는 어린 시절에 살았던 시골 마을의 풍경이나, 하나둘 장성하여 품을 떠난 자녀들의 빈자리를 발견하고 죽은 친구를 재회하기도 하는 등 상실과 부재의 이미지 속에서 다양한 기억의 불씨를 피운다.


한국 현대사의 다양한 국면을 담아

근 사십여 년 넘어/ 찾아온 광주/ 낯선 충장로를 걷는다/ 낯익은 다방도 주점도 책방도/ 보이질 않네/ 독재에 항거하는 함성도/ 낭자하던 핏자국도 사라지고/ 서울의 명동, 부산의 광복동 같은/ 화려한 금남로를 걷는다/ 아름다운 청춘들이 출렁이는/ 빛나는 물결 속을/ 성성한 백발이 둥둥/ 억새꽃처럼 떠밀려 간다/ 박봉우, 박성룡, 주명영, 이수복/ 백시걸이 그리고/ 김현승 선생, 박용철 시인의 미망인……/ 다들 저승으로 이승으로/ 민들레꽃처럼 흩어져 찾을 길 없네/ 낯익은 먼 무등산이 물끄러미/ 흐린 내 눈앞을 가리네.

-「다시 광주에」 전문

손경하 시인의 이번 시집에서는 시인이 목도한 한국 현대사의 장면들이 여과 없이 표출되고 있다. 일본 제국주의 식민 지배로부터 해방을 맞이하던 무렵의 장면이나, 6·25 전쟁 직후의 삶에 대한 기억, 혹은 군부독재와 싸우는 민주화 운동에 대한 회상이 등장하기도 하며, 1980년대 이후 도시의 인구 집중으로 달라진 삶의 풍경이 포착되기도 한다. 이는 격변의 20세기를 살아온 시인이 우리 현대사에 대한 개인적·시대적 애증을 담아 여러 시편에 녹여낸 것으로, 한국 현대사의 비극과 함께 흘러가는 사회적 변화를 시인의 다양한 시각을 통해 드러내고 있다.


추락한 현대문명 안에서 외치는 인간성 회복에 대한 의지

우리 사회는 해방 이후 자본주의를 맞이하면서 크나큰 풍요를 경험했다. 그러나 동전의 양면처럼, 물질적 풍요 뒤에 인간적인 면모를 상실하면서 얻은 부정적인 측면이 적지 않다. 이처럼 시인은 지나온 세월에 대한 기억여행을 단지 노년의 향수에만 머무르지 않고 문명비판적 시각을 담아 「고발」, 「곤돌라」, 「아파트」, 「캐나다 이민」, 「경고」 등의 시편에 묘사하고 있다. 시인은 삶의 인간다운 영역이 효용의 잣대로 폐기되어 밀려나는 물질문명의 디스토피아적인 측면에 주목하여, 과거의 시간 속 버려진 가치들을 되짚는 작업을 진행했다. 그리하여 물신숭배의 기계문명에 저항하는 가냘픈 저항을 꾀하며 ‘인간다움’을 회복하고자 하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시인은 우리 사회의 미래를 그저 암울하게만 바라보기보다는 자연과 인생과 자라나는 새 세대에 대한 희망을 동시에 품어내고자 하였다. ‘인간성’이 증발한 사회 속에서도 “사랑하는 어머니”를 담은 “한” 많은 “한의 바다”(「한의 바다」)를 꿈꾸며 인간 정신의 아름다움과 깊이를 믿고자 한 시인의 의지가 두드러진다.


그대 홀가분한 길손으로 | 손경하 시집

손경하 지음 | 문학 | 국판 변형 | 224쪽 | 12,000원

2015년 8월 24일 출간 | ISBN : 978-89-6545-311-6 03810

1950년대 초반 전후 한국문단의 선도적 동인지였던 「신작품」의 동인, 손경하 시인의 시집. 1985년 출간된 시인의 첫 시집 <인동의 꿈> 이후 삼십 년 만에 발간된 두 번째 시집으로 그 의미가 남다르다. 해방 이후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시대적 상황을 배경으로, 자연과 현대문명과 신에 대한 물음 및 현실비판적 주제를 드러냈다. 동시에 이번 시집에서는 시인이 갖고 있는 노년에 대한 상실감과 현대 문명에 대한 비판의식을 그리고 있다. 



글쓴이 : 손경하(孫景河)

1929년 경남 창원시 진북면에서 태어났다. 마산상고(1950), 부산대학교 졸업(1955). 『신작품(新作品)』·『시조(詩潮)』 동인(1953). 『시연구(詩硏究)』(1956), 『현대시학』에 작품 발표(1972). 부산시인협회 기관지 『남부(南部)의 시(詩)』 창간 동인. 청마 시비 건립 대표, 고석규비평문학상 운영위원 역임, 현재 최계락문학상 운영위원으로 활동. 시집으로 『인동(忍冬)의 꿈』(1985)이 있다.


차례



그대 홀가분한 길손으로 - 10점
손경하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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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단디SJ 2015.09.09 10: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예쁜 책 사진을 보니 안녕바다의 '별 빛이 내린다' 그 노래가 생각나요!
    '별빛이 내린다~ 샤라랄라라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