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을 온전히 바라봄으로써

우리와 세계를 이해할 수 있다"


방법으로서의 중국



선구적 사상가 미조구치 유조가 제시하는 중국학의 미래

“중국을 방법으로, 세계를 목적으로”

평생 중국 연구에 천착하며 근대성에 대한 독특한 사유를 전개한 사상가 미조구치 유조(溝口雄三)는 국내에서도 중국 철학에 대한 여러 저서와 중국 근대에 대한 오리엔탈리즘적 평가를 비판하는 『중국의 충격』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2010년에 타계하기 전까지 그는 동아시아 지식인의 교류를 선도하며 중국의 왕후이, 쑨거에게도 큰 영향을 끼쳤다. 그런 미조구치 유조의 첫 저서이자 중국학에 대한 그의 신념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방법으로서의 중국』이 드디어 국내 독자들을 만나게 되었다.

『방법으로서의 중국』은 서구 중심주의를 극복하고 근대성에 대한 해명을 통해 동아시아적 탈근대론을 구축하고자 한 선구적 중국연구자의 선언이다. 문화혁명을 비롯하여 20세기 후반 중국의 급격한 변화를 관찰하면서, 저자는 유럽을 기준으로 해서는 중국의 근대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미조구치는 선진-후진이라는 틀 대신 중국을 방법으로 삼아 세계를 볼 것을 제안한다.

1989년에 일본에서 처음 발행된 이 책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국내에 중국학 연구소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는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중국학의 방향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때이다. 중국의 근대성에 대한 미조구치의 총체적인 시각을 오롯이 전해주는 이 책을 통해 그의 중국학과 사상에 입문하려는 연구자들, 그리고 중국을 대상으로 세계의 문제를 고민하는 지식인과 청년들은 21세기 중국학의 방향을 정립하고 중국 연구가 지닌 세계성을 되새길 수 있을 것이다.



국내 중국학에도 일침이 되는

서구 기준 단계론과 일본의 ‘중국 없는 중국학’ 비판

『방법으로서의 중국』은 중국의 근대를 보는 종래의 시각에 대한 비판적 검토에서 시작된다. 미조구치가 비판한 중국 연구의 시각은 서구 근대의 기준에 의해 중국의 근대를 단계론적으로 파악하는 시각, 그리고 전후 일본의 이상화된 중국상이다.

서구를 기준으로 하는 단계론적 시각은 진보-보수, 사회주의-자본주의, 선진-후진이라는 단순이원론적 구도에 의지해, 중국의 근대가 지닌 독특함을 정확히 투시하지 못한다. 저자는 종래의 양무운동-변법유신-신해혁명이란 단계론적 구도에 따른 중국의 근대사에 대한 이해가 얼마나 많은 오해와 병폐를 낳았는지 이 책에서 조목조목 지적하고 있다. 아울러 이런 시각으로는 1949년 이후 중국의 근대사 역시 제대로 해명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중국의 사회주의와 1980년대 이후의 자본주의 수용을 설명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또한, 미조구치는 일본의 ‘중국 없는 중국학’을 비판한다. 일본의 중국학은 일본과 중국이 공유하는 문화에 매몰되어 정작 중국과 일본의 차이는 세심하게 분석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플라톤이나 단테를 읽는 사람이 유럽 근대에 대한 지식과 관심이 없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중국의 고전인 『사기(史記)』나 『당시(唐詩)』를 읽는 것은 순전히 문학 또는 철학계의 일이지, 당대(唐代)와 송대(宋代) 중국을 알기 위해서가 아닌 경우가 많다. 중국의 경제적 성장과 더불어 유교가 재평가되면서 일어난 유교 관련 연구들도 마찬가지의 문제점을 지닌다.

중국이 일본과 유럽과는 매우 다른 역사의 길을 걸어왔다는 그 상대적 독자성이, 이때 유럽형 사고에 익숙한 우리 일본인의 역사관에 많은 자극을 줄 것이라는 한에서 그 독자성—단지 어디까지나 상대적이지만—이 문제가 될 것이다. (112쪽)

미조구치 자신은 중국의 근대를 “대동(大同)적 근대”라고 정의하고, 근대 중국의 혁명 전체를 장기적으로 부감하는 시각을 갖지 않고서는 중국의 근대를 규명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중국의 ‘이(異)’적인 전(前)근대와 근대의 총 프로세스를 역사적으로 투시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학문의 목적이 중국을 넘어서는 “자유로운 중국학”

『방법으로서의 중국』에서 미조구치는 “자유로운 중국학”을 주창한다. 여기서 ‘자유’는 진화론적 역사관에서 벗어난 방법론상의 자유의 확대를 가리키는 동시에, 사회주의 중국이 지향하는 바를 자신의 학(學)의 목적의식으로 삼는 중국 밀착적인 목적으로부터의 자유 또한 의미한다. 이러한 자유는 이제까지의 중국을 객관적으로 대상화하는 보증이 되며, 이 객관·대상화의 철저함이야말로 일본의 한학이나 지나학과 같은 “중국 없는 중국학”에 대한 충분한 비판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중국을 단순히 아는 것을 목적으로 하거나 중국에 대한 몰입을 자신의 목적으로 삼는 것은 또 하나의 중국 밀착적 중국학이 되거나, 시종 자신의 개인적 목적의 소비에 이용하는 점에서 결코 자유로운 중국학이 아니다.

미조구치는 진정 “자유로운 중국학”은 어떤 양태이든 목적을 중국과 자기 내부에 두지 않고, 결국 목적이 중국과 자기 내에 해소되지 않는, 역으로 목적이 중국을 넘는 중국학이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것은 다른 말로 하면 “중국을 방법으로 하는 중국학”이다. 미조구치는 중국 연구를 세계를 새롭게 해석하는 데 중요한 자원으로 삼았고, 그래서 “중국을 방법으로, 세계를 목적으로”라고 하는 자신의 중국 연구의 목표를 제시했다.

지금은 우리가 원한다면 중국이라는 이 좋든 싫든 독자적인 세계를 통해 이른바 중국 렌즈로 유럽을 볼 수 있고, 그에 따라 종래의 ‘세계’에 대한 비판도 가능하게 되었다. 예를 들어, ‘자유’란 무엇인가, ‘국가’란 무엇인가, ‘법’, ‘계약’이란 무엇인가 등 지금까지 보편적 원리로 간주되어온 것을 일단은 개별화하고 상대화할 수 있게 되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어디까지나 상대화이지, 소위 일본주의적인 일본 재발견, 동양 재발견이 아니라는 것이다. 상대화는 세계의 상대화이므로 당연히 자기의 세계에 미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중국학이 중국을 방법으로 한다고 하는 것은 이처럼 일본도 상대화하는 눈에 의해 중국을 상대화하고, 그 중국에 의해 다른 세계에 대한 다원적 인식을 충실하게 한다는 것이다. 또 세계를 목적으로 한다고 하는 것은 상대화된 다원적 원리 위에서 한층 고차원적인 세계상을 창출하려고 하는 것이다. (128쪽)




중국을 온전히 바라봄으로써 우리와 세계를 온전히 이해하기

과연 우리의 중국학은 우리를 바라보는 데 있어 어떤 역할을 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 우리는 중국 연구를 통해 다른 세계에 대한 다원적인 인식을 어떻게 확보하고 있을까. 미조구치 유조는 중국의 근대를 바라보는 기존의 원리들을 재검토하는 것은 새로운 원리의 모색과 창조에 연결되는 것이어야 한다고 강조하며, “중국을 방법으로 한다는 것은 세계의 창조 그것 자체이기도 한 바인 원리의 창조를 말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중국의 독자적인 맥락을 파악하고 중국을 상대화하여 바라보는 작업은 우리 스스로를, 그리고 세계를 오롯이 이해하는 일이기도 하다.

중국이 G2로 부상한 21세기에도 서구의 사상은 여전히 지식 체계에서의 지배력을 과시하고 있다. 또한, ‘유교문화권’, ‘한자문화권’으로 중국과 뭉뚱그려지는 우리나라의 중국학도 미조구치가 지적한 ‘중국 없는 중국학’에 빠질 위험이 있다. 미조구치 유조의 중국 연구가 여전히 유효한 이유이다. 『방법으로서의 중국』을 길잡이 삼아 우리의 중국학이 세계를 이해하는 데 한 걸음 더 나아가길 기원한다.




지은이 : 미조구치 유조 (溝口雄三)

1932년 일본 나고야에서 태어났고, 중국 사상사를 전공하였다. 도쿄대학 중국문학과를 졸업했고, 나고야대학 대학원을 거쳐 규슈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도쿄대학 문학부 중국철학과 교수와 다이토분카대학 교수를 지냈다. 도쿄대학 명예교수를 역임하고 2010년 78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지은 책으로 『중국 전근대 사상의 굴절과 전개』, 『방법으로서의 중국』, 『중국의 공과 사』, 『중국의 사상』, 『중국사상문화사전』(공저) 등 다수의 책이 있다.



옮긴이 :

서광덕

연세대학교 중어중문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석사, 박사)

현 건국대 강사

역서: 『루쉰』, 『일본과 아시아』, 『중국의 충격』, 『루쉰전집』 등


최정섭

연세대학교 중어중문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석사, 박사)

현 성결대학교 산학협력단 연구원. 성공회대 강사.

역서: 『텍스트의 제국』, 『고대 중국의 글과 권위』


차례




방법으로서의 중국아시아총서 18

미조구치 유조(溝口雄三) 지음 | 서광덕 · 최정섭 옮김 | 학술 |

신국판 296쪽 | 25,000원 | 2016년 1월 29일 출간 | 978-89-6545-331-4 94910


평생 중국 연구에 천착하며 근대성에 대한 독특한 사유를 전개한 사상가 미조구치 유조의 첫 저서로, 중국학에 대한 그의 신념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책. 『방법으로서의 중국』은 서구 중심주의를 극복하고 근대성에 대한 해명을 통해 동아시아적 탈근대론을 구축하고자 한 선구적 중국연구자의 선언이다. 선진-후진이라는 틀이나 유럽이라는 기준이 아니라 중국을 방법으로 삼아 세계를 볼 것을 제안한다.


방법으로서의 중국 - 10점
미조구치 유조 지음, 서광덕.최정섭 옮김/산지니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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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시룽 글·뤄시셴 그림, 이보경 옮김 | 그린비 | 416쪽 | 2만원



‘전기’를 읽어본 것이 얼마만인지 모르겠습니다. 유소년기에는 할머니께서 위인전집을 선물해(떠안겨) 주신 덕분에 한 사람의 일생을 다루는 전기라는 장르가 친근했는데, 언젠가부터는 인물보다는 사건이나 시대, 한 사람의 삶을 다룬다면 특정 시기에 집중하는 글을 더 자주 접하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그림전기라니. 어릴 적 저에게 ‘어른’의 징표 중 하나는 ‘그림이 없는 책을 읽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기에 <루쉰 그림전기>는 저에게 ‘그림책’이라 빨리, 쉽게 읽히겠다는 기대를 불러일으키기도 했지만, 동시에 절 긴장시키기도 했습니다. 막연하게 ‘중국 근대문학의 거장’ 정도로만 알고 있어 접근하기가 쉽지 않은 루쉰에 대한 책이기도 하고, 글‘만’ 읽는데 익숙해진 제가 어떻게 ‘그림’을 읽을 수 있을지 의문스러웠기 때문입니다.


<루쉰 그림전기>는 ‘연환화(連環画)’ 입니다. ‘이어지는 그림’이라 풀이할 수 있는 단어인데, 이 장르에서는 그림이 페이지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그림 위, 아래 또는 오른편에 간략한 해설문이 들어갑니다. 간혹 그림 안에 말풍선이 들어간 연환화도 있다고 하지만, 이 ‘그림과 해설문’ 형식이 연환화를 만화와 구분하는 주요한 특징 중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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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 그림전기> 이야기의 시작.


[연환화 - 동서양의 만남이 만들어낸 서민의 책]


연환화의 기원은 정확하지 않으나, 중국 학계에서는 대체로 송나라 시절의 고전문학서나 청과 명 시대의 연애소설처럼 삽화가 포함되었던 책들, 그리고 새해를 기념하는 연화(年画)등의 전통을 계승하는 장르라고 평가된다 합니다. 중국의 근대기에 등장한 이 새로운 출판물은 분명 기존의 그림(책)들을 재현하는 면모가 있었기에 탄생하고 인기를 얻을 수 있었을 겁니다. 그렇지만 연환화의 등장의 시대적 배경이나 내용을 보면, 서구의 영향 또한 중요한 요소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연환화는 1920년대 상해에서 만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1910년대에 석판 인쇄술이 상해를 통해 중국 전역에 소개되면서 이야기와 그림이 함께 인쇄된 잡지들이 발행되기 시작했고, 이들 중 가장 인기가 많았던 것들이 손바닥 크기의 책으로 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머지않아 저렴한 가격에 연환화를 대여하는 노점들이 생겨났습니다.




1947년 홍콩의 연환화 대여 노점. 딱 만화방 풍경입니다! 

출처: Hong Wrong. Via: The Comic Journal


초기의 연환화는 중국의 전설이나 고전문학을 담기도 했지만, ‘킹콩’(!) 처럼 당시 개봉한 최신 영화의 각색물들도 큰 인기를 누렸습니다. 문맹률이 높고 여가에 지출하는 금액이 많지 않은 중국의 서민층에게 연환화는 중국의 고전들은 물론이고 최신 (서구) 문물을 접할 수 있는 창이었습니다.


사진만 봐서는 연환화의 인기가 잘 실감나지 않으시지요?

1951년에서 1956년 사이만 해도 10,000종 이상, 총 10억 부가 넘는 연환화가 제작되었습니다. 정부의 검열이 조금 느슨해진 1980년대의 경우 1쇄에 100만부를 제작하는 경우도 있었고, 연환화가 중국 내 전체 출판량의 ¼을 차지했다고 합니다. 당시에는 연환화를 만드는 종이가 워낙 질이 나빠 반투명한 정도였다고 합니다.



[싸구려 놀잇감, 그리고 대중교육 매체]


이러한 배경 때문에 연환화의 황금기 중에는 ‘연환화 = 싸구려 그림책’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았으나, 루쉰은 이렇게 서민들이 좋아하는 읽을거리를 얕잡아 보는 시각을 비판했습니다. 그는 연환화를 ‘새로운 형태의 예술작품’으로 보고 1930년대에 벨기에 작가 Frans Masereel의 무언소설을 연환화로 출판하는 데 참여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때 결성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중국 공산당에서도 연환화에 관심을 가졌는데, 연환화를 통해 대중들에게 공산주의 사상을 전하고 문맹자들을 글월의 세계로 끌어들일 수 있다고 생각해서였습니다. 1949년에 중국인민공화국이 설립되고 난 뒤에는 정부 정책이나 규정에 대해 알리는 연환화가 대거 등장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연환화는 교육과 놀이, 두 분야에서 모두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인민 항공지식>, 1978년 출판. 

출처: The Comic Journal


‘아… 아빠?’ 스타워즈를 각색한 연환화. 1982년 출판. 

출처: The Comic Journal



[루쉰을 연환화로 만날 때]


이렇게 연환화의 배경을 조금 파악하고 나면, 이 형식이 루쉰의 일생 이야기를 담기에 딱 알맞은 틀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중국인들, 특히 서민들에게 그들이 체내화하였고 그들을 짓누르고 있는 사회적 병폐들에 대해 알려주려고 노력했던 루쉰. 그의 남다른 안목으로 관찰한 연환화는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증명하는 예술장르였고, 서민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방식 중 하나였습니다. 


또한, 연환화는 루쉰과 같이 파란만장한 중국 근대의 산물입니다. 그 역사를 살펴 보면 지극히 중국적이면서도, 외세의 영향 없이는 탄생할 수 없었던 매체란 걸 알 수 있습니다. 루쉰은 중국 사오싱의 명문대가의 장손으로 태어나 평탄한 유년기를 보냈지만, 가문의 몰락을 경험하고 농민, 광부들을 만나며 중국 사회에서 '신분'이란 것이 얼마나 인간의 삶의 반경에 영향을 끼치는지를 체험했습니다. 이후 일본에 유학하며 중국과 중국인들에 대한 차별을 뼈저리게 경험하고, 문예활동을 통해 중국인들의 사고를 바꾸겠다는 결심을 했지요. 또, 진화론과 같은 과학 분야의 지식과 여러 외국 문학 작품들, 중년에 접한 마르크스주의를 비롯한 외국에서 들어온 사상들은 그의 사유와 행동에 깊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여기서 잠시 퀴즈. 

1929년, 쉬광핑과의 아들 하이잉이 태어나자 루쉰은 쉬광핑에게 아스파라거스를 선물합니다 (p.326)이것은 어떤 사상에 기초한 행동이었을까요? 


1. 마르크스주의 2. 남녀평등주의 3. 채식주의 4. 녹색경제론 5. 위 보기 모두


(10/31 오전 9:40 수정: 

이 퀴즈에는 답이 없습니다 ㅠㅠㅠㅠ 

웃길려고 만든건데 선배님들께서 모두 답이 뭐냐 물으시더니....웃길려고 한 것인줄 몰랐다며.... 망했네요 ^_^!)




1928년 징윈리에서의 루쉰.


'중국의 대문호' 정도로만 알고 있었던 루쉰. 그는 '작가'를 생각하면 쉽게 떠올리게 되는, '골방에 틀어박혀 창작활동에 매진하며 세상과 어느 정도 분리된 삶을 사는 이'가 아니라,

"민족을 구원하기 위한 첫번째 방법은 사람들의 정신을 바꾸는 것"이며 "사람의 정신을 바꾸는 데 제일 좋은 것은 당연히 문예"라는 신념 하에

변화를 만들어내기 위해 세상 속에서 끊임없이 행동한 '활동가'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가 일생동안 출간했던 수많은 소설과 에세이, 번역문, 혁명지는 그의 근면함이 없었다면 세상에 나올 수 없었을 겁니다. 또한 "생활이 지나치게 편안해지면, 일이 방해받게 된다"며 생활공간을 아주 단촐하게만 꾸리고, 노벨문학상 후보로 추천하겠다는 제안이 들어오자 "이 일이 성사되면...볼 만한 게 아무것도 없는 글쟁이의 글로 변하겠지요. 아무래도 지금처럼 명예 없이 가난하게 지내는 게 좋겠습니다"라고 답했다는 것을 읽으며, 저는 우리나라의 청빈한 선비상과 그가 닮았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루쉰이 세상을 바꾸어 나갔던 방법 중 하나는 '청년들과의 협력, 그리고 아낌없는 지원'이었다고 생각됩니다. 교사로 활동하며 교내외의 문예활동을 장려했고, 형편이 어려운 제자를 몇 달간 자신의 집에 기거하게 하기도 했으며, 18살 어린 벗 취추바이와 열띤 토론을 하며 그를 존경하는 마음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미국인 기자 에드거 스노가 그의 작품을 번역해 소개하고 싶다는 제의를 했을 때 그는 "자신의 작품보다 청년작가의 작품을 많이 소개하라고" 말했습니다.



[전기의 정치]


이 책을 읽으며 저는 한 사람의 일생을 회고하는 것의 정치성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342개의 그림과 해설문, 100여개의 사진자료가 들어있는 책이지만, 저자가 후문에서 썼듯이 책에 포함되지 못한 내용이 너무도 많을 것입니다. 언제나 다차원적이며 복잡한 인간의 삶에서 주요 장면들을 간추려 매끄럽고 '읽기 쉬운' 이야기로, 그리고 역사 속의 인물을 오늘날의 독자에게도 매력적인 사람으로 만드는 것은 결코 객관적일 수 없는 작업입니다. <루쉰 그림전기>의 강점은 그렇다면 '연환화'라는 형식 뿐만이 아니라, 루쉰이 일생 동안 마주한 여러 어려움들과 그의 대응방식들, 그리고 역사 속 신념을 정치적, 문화적 맥락에서 분리하지 않은 것이라 생각됩니다.

책에서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루쉰과 삶을 함께했던 여성들을 지극히 표면적으로 그리고 있다는 것이겠습니다. "선량하고 강인한" 어머니 루루이는 그의 삶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고 나오지만 그 영향이 어떻게 나타났는지는 짐작하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어머니의 바람 때문에 결혼한 것이지만 어쨌든 아내였던 주안에 대해서는, 그녀와 "공유하는 언어가 없다" 는 것 외에는 생각한 바가 없었을까요? 또한, 저는 루쉰이 사랑하고 조력자로 삼았던 쉬광핑과의 관계에서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쉬광핑은 그에게 어떤 깨달음과 도움을 주었는지 궁금합니다. 루쉰과 그의 남성 친구들이나 제자들의 관계에 대해서는 간략하면서도 핵심적인 묘사가 나오기에 더 아쉽다고 느끼는 바입니다.



[오늘날의 루쉰]



자신의 눈으로 세상이라는 살아 있는 책을 읽으십시오.

-1927년 강연 '독서잡담' 중에서

'혼수상태에 있어 죽음의 비애를 느끼지 못하는 이들'에 대한 애정과 더불어 '깨어날 사람들이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역동적인 중국의 근대기를 살아 낸 루쉰. 그의 말은 오늘날에도 전혀 바래지 않았습니다.




참고문헌:


하와이 대학교의 연환화 모음집

The Comic Journal 
Chien, Minjie. Chinese Lianhuanhua and Literacy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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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엘뤼에르 2014.10.31 09:4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퀴즈가 제일 어려웠어요...ㅎㅎ 채식주의가 아니었을까? 생각했네요.ㅎㅎ 그래도 글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책이란 게 아무래도 모든 이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매체여야 하는 게 분명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이 만화나 영화 게임문화에 비해 고급문화로 인식되고 있는 것 같아 아쉬운 요즈음입니다. 루쉰이 예찬한 연환화에 대한 호기심도 들고 저도 다음에 이 책을 한번 읽어봐야겠어요^^

    • BlogIcon 잠홍 2014.10.31 09:4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퀴즈...하.......ㅋㅋㅋㅋㅋ저 혼자 책에 빠져서 쓰다 보니 이런 참담한 결과가 나온 것 같네요ㅋㅋㅋㅋㅋ 저도 이 책을 읽으면서 루쉰이 살아있었다면 자신의 전기가 2만원짜리 연환화로 나온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궁금해졌습니다. 그래도 우리에겐 도서관이 있으니까요 (정신승리)

  2. BlogIcon 너굴양 2015.10.26 22: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리뷰입니다. 근자에 읽고 참 좋았던 책이기도 합니다. 저는 삽화를 항상 좋아했는데 책에서 중요한 부분을 강조해주기도 하고 상상에 도움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었지요. 그래서 삽화나 연화, 동화 그림을 꼬옥 그리겠다...고 항상 생각합니다. (저는 일러스트를 하고 있습니다) 암튼 가장 좋아하는 작가의 전기를 재밌게 보셨다니 기쁩니다. 저도 리뷰를 쓰려고 이미지를 찾다가 흘러들어왔습니다만...아무튼 괜히 반가워 몇자 적고 갑니다

    덧 : 퀴즈는...열심히 생각했는데 낚였네요 ㅠ

    • BlogIcon 잠홍 2015.11.03 12:0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읽어주셔서 감사하고, 저도 반갑습니다 :) 삽화가 있는 책을 읽는 게 오랜만이었는데, 이 책에서는 그림이 글에 대한 부연설명을 하는 게 아니라 글에는 나오지 않은 장면을 나타내기도 해서 유심히 보게 되더라구요. 뤄시셴의 다른 작품들도 찾아보고 싶네요. 너굴양 님은 어떤 그림을 그리시는지도 궁금합니다^^

    • 너굴양 2017.03.05 17: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 너무 빨리 남기네요 ㅎㅎ 검색하다가 댓글 남기신 것 이제야 봤습니다.
      저는 소소한 만화와 일러스트를 그립니다. 동화 같기도 하고 만화 같은 그림들을 주로 그려요 ^^

    • 산지니 2017.03.06 17:16  댓글주소  수정/삭제

      ㅋ 이해합니다. 저희도 종종 그러거든요. 출판사 셀프검색하다 저희 책 서평이나 관련 글 발견하면 반가운 마음에 늦어도 댓글 달게 되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