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성공원1 4화-왜장 가토, 우물 없는 ‘철옹성’에 갇히다-울산왜성 역사의 블랙박스, 왜성 재발견 4화 :: 왜장 가토, 우물 없는 ‘철옹성’에 갇히다 -울산왜성 ■ ‘독 안의 쥐’를 놓치다 “여러 적 중에 청정(淸正·가토 기요마사)이 가장 강하니 청정을 격파한다면 나머지 적은 셀 것도 못 되오이다.” 임진왜란 6년째 정유재란이 터지던 해인 1597년 음력 섣달 그믐날, 조선 국왕 선조는 조선에 파견된 명군 최고지휘관인 군문 형개(邢玠)를 만나 조·명 연합군의 울산전투 승전 상황을 축하하면서 “곧 가토를 사로잡게 됐다”는 형개의 말에 고무돼 이렇게 답했다고 에 기록돼 있다. 하지만 설 쇠고 9일째 되는 날 선조는 이미 닷새 전 조·명 연합군이 왜군에 대한 포위를 풀고 경주로 후퇴했다는 ‘허무한’ 보고를 받아야 했다. 이 울산전투는 조·명 연합군이 왜란 끝무렵인 1598년.. 2016. 5. 20.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