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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턴일기

『기차가 걸린 풍경』: 기차역에 관한 이야기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4. 1. 23.

 

“기차 타고 싶다.”

학창 시절 종종 하던 말입니다. 집과 가까워 자주 지나치는 해운대역을 볼 때마다 어디론가 훌쩍 떠나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기차 타고 싶다’고 말했던 것 같아요. 스무 살이 되고서야 처음 타본 기차는 생각보다 별거 아니었지만, 그래도 창밖을 보며 설레던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직까지도 어디론가 떠나고 싶을 때면 달리는 기차 안에 있는 저를 상상하곤 합니다. 떠나는 기차를 타기 위해서는 꼭 거쳐야할 곳이 있습니다. 바로 ‘기차역’입니다. 새로운 곳으로 떠나는 사람들의 기대와 떠나온 사람들의 설렘으로 역 안은 언제나 조금 들뜬 분위기입니다. 그 분위기를 느끼기 위해 일부러 기차를 찾는 것 같기도 해요. 사람들이 잠시 머물기 위해 또 떠나기 위해 역을 찾는 반면, 역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습니다. 떠나는 사람이 남겨진 사람의 마음을 모르듯 우리도 남겨진 역의 마음을 모릅니다. 기대와 설렘이 떠난 자리는 과연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요?

 

 

『기차가 걸린 풍경』은 나여경 소설가가 기차역의 모습과 이야기, 주변 볼거리의 소개와 함께 자신의 느낌을 풀어낸 에세이집입니다. 26개의 역<1부-그대에게 띄우는 연서>, <2부-삶이 버거운 그대에게>, <3부-역, 풍경과 시간> 총 세 개의 부로 나누었습니다. 각 부의 테마를 생각하며 책을 읽으면 내용이 한층 더 와 닿습니다. 저자는 부산역, 경주역, 구포역 같이 지금까지도 사람들의 왕래가 끊이지 않는 역뿐만 아니라 일광역, 다솔사역, 죽동역 등과 같이 이제는 사람이 찾지 않게 된 폐역도 소개하고 있습니다.

소중한 무언가를 손에서 놓친 듯 허망한 나는 성 안을 서성이는데 푸른 하늘 아래 은색과 갈색의 커다란 나무가 천지를 이을 것처럼 허공에 무수한 가지를 펼쳐놓았다. 영혼의 쉼터인 양 그 아래 놓인 나무 의자 위로 성 밖의 세상 소식을 알리듯 클랙슨 소리 담장을 넘어와 앉는다.

아직 못다한 사랑, 진주역 중 p.28

 

 

 

이 책을 읽으면서 제일 먼저 느낀 것은 책이 마치 한 편의 커다란 시 같다는 것이었습니다. 수필답지 않은 시적 표현이 많이 나와 한 문장 한 문장을 음미하며 글을 읽으면 눈앞에 역의 풍경이 펼쳐져 있는듯했어요.

 

 

 

이 책이 가진 또 하나의 강점은 글과 함께 실어놓은 사진에 있습니다. 모두 저자가 직접 찍은 사진들로, 글 내용에 맞게 역의 모습뿐만 아니라 주변 풍경까지도 빠짐없이 실어놓아 글의 이해에 힘을 더합니다. 책을 읽는 동안 사진 보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제일 관심 있게 봤던 역은 아무래도 제가 자주 이용했던 해운대역입니다. 책 속의 내용처럼 얼마 전 신역사로 이동해 원래 있던 해운대역은 현재 아무도 찾지 않는 곳이 되었습니다. 팔각정자 모양의 해운대역 특유의 운치를 좋아하던 저로서는 너무 아쉬웠어요. 그동안 해운대를 찾는 많은 관광객들을 맞이해왔던 해운대역은 이제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저자는 해운대역 주변 볼거리로 동백섬을 소개합니다. 동백섬 또한 제가 좋아해 자주 찾는 곳이라 반가웠어요. 저자의 감상을 읽고 있으니 동백섬의 아름다운 야경이 머릿속에 떠올랐습니다.

 

 

 

진영역이 기억에 남는 이유는 아무래도 천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변호인> 덕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故 노무현 대통령의 마을인 봉하마을을 찾는 사람들로 발길이 끊이지 않는 진영역. 저자는 구진영역과 신진영역을 소개하며 봉하마을로 향합니다. 노란 바람개비가 끊임없이 돌아가는 곳, 봉하마을은 노무현 대통령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의 마음으로 가득합니다. “여전히 거대한 꿈을 꾸고 있을 당신, 우리를 음우하소서!”라는 저자의 마음이 저에게도 전해집니다.

 

 

며칠 전 꽤 오래 계획해왔던 여행을 떠났습니다. 그때 한창 『기차가 걸린 풍경』을 읽던 중이라 머무는 기차역에 시선이 더 오래 갔습니다. 역 안의 풍경, 사람들의 표정, 역사의 모습을 더 유심히 살피며 저자와 같은 시선으로 역을 바라보려고 노력하기도 했어요. 『기차가 걸린 풍경』이라는 제목을 처음 봤을 때는 의아했습니다. 기차 안에서 보는 풍경이 아니라 기차가 걸린 풍경이라니? 책을 읽고 그 의미를 깨달았어요. 기차 안이 아닌 기차 밖에서, 저자가 바라보는 풍경에 걸려있는 기차를 본다는 의미였습니다. 우리가 놓치기 쉬운 풍경을 저자는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기차를 타고 여행을 떠나고 싶은 당신에게, 기차역의 들뜬 분위기를 사랑하는 당신에게 이 책을 추천합니다.

기차가 걸려 있는 풍경, 함께 보러 가실래요?

 

 

 

기차가 걸린 풍경 - 10점
나여경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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