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부마민주항쟁과 부산 민주화운동의 밑거름이 되었던 양서협동조합이 다시 문을 연다고 합니다. 1979년 11월 19일 강제해산된 지 36년 만의 일입니다.

 

아래는 부산 민주화운동의 구심점이었던 부산 중부교회 고 최성묵 목사(1930∼1992)의 삶을 기술한 『최성묵 평전평전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중부교회를 중심으로 한 민주화운동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양서협동조합(약칭 양협) 운동이다. 양협은 중부교회를 중심으로 모인 청년그룹이 중심이 되어 설립한, 양서를 매개로 한 소비자협동조합운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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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협은 누구나 조합원이 될 수 있고(문호 개방의 원칙), 출자액에 관계없이 1인 1표의 권리를 가지며(경제적 민주주의의 원칙), 일체의 정치적, 종교적 중립을 지키고(중립의 원칙), 민주적 관리를 통하여 민주적 관리능력을 배양하며(민주적 운영 관리의 원칙), 조합원의 재교육을 통하여 조합의 발전을 이룩하고 지역사회에 공헌한다(교육의 원칙). 그 밖에도 품질 본위의 원칙, 시가판매의 원칙, 구매고 비례 배당의 원칙, 자본의 이자 제한의 원칙, 현금 거래의 원칙 등이 있었다.


부산 양협은 조합원 가입에 대해 문호개방의 원칙을 유지하면서도 초기에는 확실히 신뢰할 수 있는 사람 2인 이상의 추천을 받아야 가입할 수 있었고, 창립 이후에는 조합원 2인 이상의 추천을 받아서 가입할 수 있었다. 조합원은 의무적으로 매달 1천 원 이상 출자를 해야 했는데 1인이 출자 총액의 1/10 이상 출자를 하지 못하게 했다. 그래서 재정 지원을 위한 다액 출자가 있어도 그 비율을 넘지 않도록 고심했다.


부산 양협의 조합원이 되면 매달 책 2권 이상을 구입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또 조합원이 소장한 책 가운데 양서 2권 이상을 구입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또 조합원이 소장한 책 가운데 양서 2권 이상을 조합에 기증하게 하여 이 책을 정가의 1/10 또는 1/5의 대본료를 받고 1주일간 대여하기도 했다. 참고로 당시 부산 양협의 조합원들이 가장 많이 읽었던 서적들은 다음과 같다.

 

『어느 돌멩이의 외침』(유동우), 『전환시대의 논리』(리영희), 『저 낮은 곳을 향하여』(한완상), 『뜻으로 본 한국역사』(함석헌), 『백범일지』(김구), 『노동의 새벽』(광민사), 『미국노동운동비사』(백범사상연구소), 『소외란 무엇인가』(에리히 프롬), 『피억압자를 위한 교육학』(파울로 프레이리), 『씨알의 소리』(월간지), 『대화』(월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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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서협동조합이란?

 

1. 좋은 책을 벗삼아 살고자 하는 시민들이 신뢰와 협동의 인간관계를 기초로 모여서 좋은 책을 판매・보금・출판하려는 새로운 형태의 소비자협동조합이다.

 

2. 좋은 책을 매개로 지역사회의 인적・물적・문화적 자원을 조직적으로 동원하여 지역사회를 개발하고 시민문화운동을 전개함으로써 민주시민으로서의 자질과 역량을 키우면서 문자 공해를 추방하고 새로운 지적 풍토를 조성하려는 문화운동체이다.

 

3. 끊임없는 성인교육・사회교육을 통하여 타성과 무기력・무관심을 타파하고 작은 힘을 모아 우리 경제의 잘못된 유통구조를 개선하고 새로운 형태의 생산조직을 만들어가는 구조개혁운동체이다.

 

4. 물질・기능・권력의 위력이 인간성을 앗아가는 비정한 오늘의 세태에 도전하여 신뢰와 협동의 힘으로 이를 극복하고 진정으로 인간이 역사와 삶의 주인이 되는 사회를 건설해가려는 인간회복운동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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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양협은 출범과 함께 조합원이 매달 크게 늘어나면서 규모가 커져 갔다. 1978년 4월 창립 당시 107명이던 조합원이 1978년 5월 5일 현재로 152명으로 늘어났고 출자금은 1,543,000원, 도서판매액 543,255원을 기록하고 있다. 1978년 말에 가면 조합원 수는 298명으로 거의 3배나 증가했다. 이렇게 조합원이 늘어나면서 부산 양협은 세미나와 강연회, 학습모임 등 다양한 활동을 조직했다. 1978년 6월 2일부터는 조합원이 같이 참여하는 금요 세미나를 실시하여 매주 지속했다. 1978년 9월 26일에는 독서 주간을 맞이하여 ‘한국인의 지적 풍토와 독서 경향’을 주제로 문학평론가 임헌영 씨의 초청 강연회를 열기도 했다. 1978년 하반기부터는 조합원 소모임으로 도시문제 연구모임, 농촌문제 연구모임, 시사문제 연구모임 등 사회문제 학습모임과 사진반, 연극반, 꽃꽂이반 등 취미 모임도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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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양협이 성공을 거두면서 양서협동조합은 다른 지역으로 전파되었다. 마산(1978. 8), 대구(1978. 9), 서울(1978. 11), 울산(1979. 1), 광주(1979. 3), 수원(1979. 5)에 양서협동조합이 결성되었고 전주, 인천 등에서도 결성을 준비하고 있었다.

 

1979년 3월 5일에는 협동서점이 중구 대청동 1가 38번지로 확장 이전하게 된다. 그해 6월 23일에는 부산양협 주최로 농촌 현장 활동을 위한 ‘강변의 축제’를 개최하여 농촌활동을 위한 모금을 하고, 7월 16일부터 25일 사이에 농촌 현장활동 봉사단을 경남 울주군 두동면 만화리 율림부락에 파견하기도 했다.

 

1979년에도 조합원은 꾸준히 증가하여 1979년 9월 30일 현재의 자료에 의하면 조합원 수 501명, 출자금 5,002,000원, 도서 판매액 12,766,289원이었다. 운영 상황도 1979년 1월 1일부터 7월 31일 사이의 손익계산서에 의하면 1,301,894원의 매출이익을 올리고 있었다. 김희욱에 의하면 1979년 11월경 회원 수는 최소한 600명 이상이었으며 회원 구성을 보면 대학생, 일반 시민, 가정주부, 그리고 고등학교 학생까지 회원으로 가입했다. 전체의 거의 50%는 대학생 층이었고, 일반시민들은 주로 회사원으로서 전문직종 종사자들이 많았다. 직업으로는 판사, 변호사, 목사 등이 있었고 그 밖에는 교사가 가장 많았다. 성별로는 남성이 75%, 여성이 25% 정도 되었고, 나이는 20대 후반에서 30대의 젊은 층이 주류(80% 이상)를 이루었다.

 

당시 부산 양협의 실무를 맡아보았던 박철수는 양협이 빠르게 성장했던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부산양협의 회원 확대는) 기독교 교회의 전도 방식과 비슷했다고 생각됩니다. 조합원이 조합원 신입교육을 받고 취지에 흔쾌히 찬동하고 자기가 제일 친한 친구들을 데려와 소개해주고, 순수한 마음을 지닌 사람들과 사귈 수 있다는 매력, 뭐 이런 것들이 주원인이 되겠지요. 또 전혀 위법이지 않다는 점도 있었고, 나중에 부산미문화원 방화사건을 주도한 문부식, 김은숙도 내가 소개해서 협동서점의 멤버가 되었고요. 당시 서울 등지에서 양협을 통해 비밀스럽게 배포되곤 했던 유인물도 많이 나눠 보기도 했고요.

 

-『최성묵 평전』본문 164~170p

 

 

 

 


 


『최성묵 평전


차성환 
지음

인문 | 신국판 | 384쪽 | 20,000원
2014년 3월 21일 출간 | ISBN : 
978-89-6545-243-0 03990


부산 민주화운동의 구심점이었던 부산 중부교회 고 최성묵 목사(1930∼1992)의 평전이다. 종교인의 자세를 잃지 않으면서도 사회 참여의 길도 외면하지 않은 참 종교인의 삶을 그렸다. 
평범한 전도사이자 교사였던 최성묵이 사회현실에 눈을 뜬 계기는 4·19 혁명이었다. 이승만 정권의 품에 안겨 있던 개신교가 4월 혁명 이후 사회정의 문제를 고민하기 시작했고 최성묵도 현실참여의 길에 들어서게 됐다. 


 

최성묵 평전 - 10점
차성환 지음/산지니



 

Posted by 산지니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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