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용 트럭은 창원군 마산리를 지나 일동리로 가고 있었다. 8월1일 자정을 넘어가는 시간이었다. 달빛에 반짝이는 물결이 보였다. 낙동강이었다. 학살자들은 수산교 밑 나루터에 차를 댔다. 카빈총을 멘 군경에 등을 떠밀려 모래밭에 섰다. 음력 열여드레, 붉게 충혈된 달빛에 군인과 경찰의 얼굴이 보였다. 총구가 그를 겨누고 있었다.

‘나는 목사이니 기도할 수 있는 시간을 달라.’ 담담하게 부탁했다. 인솔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주여, 이 죄인들을 용서하시옵소서. 이 겨레, 이 나라를 가난과 재앙에서 건져주시옵고, ‘한얼’을 축복해주시옵소서. 이제 이 죄인은 주의 뜻을 받들어 주의 품에 육신과 혼을 기탁하오니…, 주여 남기고 가는 저들을 보호하옵소서.” ‘아멘’ 소리와 함께 총구에서 일제히 불이 튀었다.(출처 <한겨레신문>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715750.html

 

며칠 전 한겨레신문을 보다가 곽병찬 대기자의 향원익청(香遠益淸)을 읽는데, 뭔가 기시감이 들었다. 「학살자를 향한 기도 “저들을 용서하소서”」라는 글이었는데, ‘한국의 페스탈로치’로까지 칭송받았던 고 경남 김해 진양읍 한얼중학교 교장 강성갑 목사의 이야기였다.

아, 그렇구나. 조갑상 소설가께서 이분의 이야기를 남목사로 형상화하셨구나. 지지난해 출간해서 만해문학상까지 받았던 소설 『밤의 눈』에 이분의 이야기가 나온다. 소설에서는 남 목사로 등장하는 이분은 전쟁 후 대진이라는 공간에서 학교를 세우고 운영하다가 바른 말 잘하고 타협하지 않는 성격 때문에 지역유지인 4인방에게 죽임을 당한다.

 

 이주호가 나섰다. 경찰 둘이 남 목사를 일으켜 세우고 대열에 합류하자 주임이 어깨에 메고 있던 카빈총을 내렸다.
 “어디루 가나?”
 “강이 바로 옆이니까.”
 대위가 묻자 이주호가 망설이지도 않고 대답했다. 트럭이 멈춘 곳은 M군으로 건너가는 다리가 보이는 강둑 바로 아래였다. 흙으로 쌓은 허술한 강둑 옆으로 민가가 몇 채 있어 그들은 두 사람을 끌고 좀 더 걸어가야 했다.
  “빨리 해 치우구 가! 겨우 두 놈 갖구 장소 가릴 게 뭐가 있어.”
 아무렇게나 자란 잡초를 밟을 때마다 모기와 날벌레들이 날아오르는 어두운 둑길을 걷는데 짜증이 난 대위가 말했다. 밭이 끝나는 지점에 작은 내가 흐르고 멀리 어둠에 묻힌 숲이 보였다. 그들은 강을 끼고 주머니처럼 뻗은 모래톱이 둑 높이로 솟은 곳에 이르렀다.   
 남 목사와 성시천은 강을 등에 두고 모래톱 위에 세워졌다.

(중략)

 “내가 죽어야 한다면 그것은 당신들이 정한 게 아니라 하나님이 정한 거요. 나는 목사니 기도는 해야겠소. 당신들에겐 짧지만 내게는 극히 긴 시간이요.”
 “그래, 좋아.”
 대위는 선선히 승낙했다.
 “우리에게는 길고 당신에게는 짧겠지.”
 뒷말까지 보탠 대위가 뒤로 물러나고 남 목사는 모래밭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눈을 들어 하늘을 잠시 쳐다보다 고개를 숙였다. 
 “주여! 먼저 이 죄인들을 용서하시옵소서.... 이 겨레, 이 나라를 전란의 재앙에서 구하시고 가난에서 건져 주시옵고, 작은 밀알 하나가 썩어 많은 열매가 맺기 시작하는 저희 재단을 축복해 주시옵소서. 이제 이 죄인은 주의 뜻을 받들어 주의 품에 육신과 혼을 기탁하오니, 주여 남기고 가는 자들을 살펴주시옵소서.....아멘!”
 그는 새끼줄에 묶인 두 손을 가끔 힘주어 흔들면서 기도했다.
 “일으켜 세워!”
 이주호가 나섰다. 경찰 둘이 남 목사를 일으켜 세우고 대열에 합류하자 주임이 어깨에 메고 있던 카빈총을 내렸다._『밤의 눈』 184쪽

 

 

소설 『밤의 눈』은 해방 후 혼돈의 시간, 경남 지역의 가상공간 대진읍에서 일어나는 학살에 관한 이야기로, 한국전쟁 이후 보도연맹사건을 소설로 형상화해서 2013년 만해문학상을 수상했으며, 2013년 우수문학도서로 선정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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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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