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서 활발하게 출판문화운동을 벌이고 있는 산지니(대표 강수걸)는 2005년 출판사 문을 열면서 ‘부산지역’을 문화콘텐츠에 담는 일에 주력해왔다. 최근 ‘부산 출판사 산지니의 10년 지역출판 생존기’라는 부제를 단 『지역에서 행복하게 출판하기』(강수걸 외 지음)를 내놨다. 출판사 대표에서 막내 편집자까지 책이라는 문화의 대명사를 만들어내면서 겪은 다양한 속내를 담아낸 책이다. 무엇보다 ‘지역에서 출판하기’를 가치화하고 있는 이들의 목소리가 독특하다. 강수걸 대표의 에필로그에서 발췌했다.



  
 ▲ 강수걸 산지니 대표 
 

부산지역에서 10년 차 출판사를 경영하면서 지역(local)의 대학현실을 목격하노라면 절망과 희망이 교차된다. 산지는 한국해양대와 산학협력가족회사로 활동하고 있고 동아대 인문대학 학생들의 인턴활동을 정기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살인적인 등록금에 비해 취업률은 너무 저조해 20대는 상당한 시간을 투입해야만 소화할 수 있는 책과는 점점 거리가 멀어지고 있는 형편이다.

출판사는 문화상품의 특성을 가진 책을 통해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이다. 동시에 당대독자와 소통하며 후대독자까지도 고려하는 양질의 책을 발행할 책임 또한 갖고 있다. 지역의 교수들과 출판을 협의하는 중에 발생하는 가장 큰 생각 차이는 바로 책을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다. 대학교수는 1년간 집필한 논문과 저서로 평가를 받는다. 1년 동안 열심히 연구한 교수에게 더 격려를 한다는 취지는 좋지만, 쉽게 결과물이 발생하기 힘든 인문학 전공 교수로서는 난감한 대목이다. 질로 평가하기보다 양으로 평가하는 부분이 문제를 발생시킨다. 집필에도 시간의 축적이 필요하지만, 출판에도 시간축적은 매우 중요하다.

좋은 책을 통해 좋은 평가를 받고자 하는 출판사의 욕망을 존중하는 대학교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런 부분을 무시하고 그저 시간 내에 빨리 결과물이 나오기만을 바랄 뿐이다.

출판에서 대표보다 더 중요한 사람은 편집자다. 대부분의 저자는 대표와 이야기하려 하지만 출판사는 편집자들이 운영하는 조직이다. 출판사의 편집자는 작가와 독자(미래독자를 포함)의 가교 역할을 하는 중요한 사람으로, 신간 기획과 진행, 교정·교열, 홍보 등 출간의 전 과정에 관여한다. 대체로 책을 내는 과정은 개인이 아닌 팀의 협업 아래서 진행되기 때문에 편집자는 무엇보다도 타인과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는 능력과 원고를 읽을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다. 원고를 검토하고 분석한 다음, 출간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출판사의 장래와 방향을 좌우하는 아주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대학의 교수들이 이 부분을 존중해 좋은 원고가 좋은 책으로 발전해 독자에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해주면 좋겠다.

특정 분야의 책만을 전문적으로 출판하는 출판사도 있지만, 산지니를 비롯한 지역 출판사는 종합출판을 추구한다. 무릇 출판의 역사는 늘 도시를 중심에 놓고 발전했다. 대학이 도시를 중심에 놓고 발전한 것과 마찬가지다. 양심과 표현의 자유가 출판의 기본 정신이라고 하면 대학의 자율성에 의해 학문의 발전이 가능하게 하는 부분이 대학의 기본정신이다.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대학을 지키는 것은 지역민의 협력이 있어야 가능하다. 도시를 중심으로 발달된 출판의 모습이 한국사회에서는 매우 왜곡됐지만, 이런 부분을 정상화시키는 것도 대학 구성원의 적극적 의지가 지역출판에 관심을 가질 때 가능하다

출판사를 학교 앞 복사집처럼 인식하는 구성원이 많은 현재의 대학은 대학의 위기 극복에 출판의 역할을 이해할 수 없다.

산지니가 부산에 있기 때문에 불리한 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국내외를 아우르는 종합적인 성격의 기획출판을 하는 데 결정적인 장애는 아니라고 본다. 기획에서 출력 데이터 검수까지를 부산에서 완결하고 인쇄와 제작은 파주출판단지를 이용하면서, 전국의 큰 서점들과는 직거래를 하고 서울의 유통총판을 통해 전국적으로 책을 배급하기 때문에 전국에 책을 유통시미는 데는 큰 문제점이 없다. 관건은 기획 능력과 다품종 소량 출판을 통해 좋은 책을 꾸준히 시장에 내놓는 데 있다.

산지니의 경영 전략은 서울의 대형 출판사들이 손대지 않는 틈새시장을 공략해 지역 출판사로서 정체성을 찾아가는 것이다. 지역 출판사로서 지역의 특성을 살린 책을 낼 수 있고 서울의 출판사들이 미처 다루지 못한 보석들을 발굴해 책으로 만들어 틈새시장을 찾아낼 수도 있다.

그러나 아직도 지역의 독자들은 베스트셀러 위주로 책을 고르기 때문에 지역색이 짙은 책은 잘 팔리지 않는 경우가 많다. 부산 출신 유명 작가의 책이 부산에서는 몇 권 안 팔리고 오히려 서울 지역에 더 많이 팔리는 경험을 하기도 했다. 지역의 콘텐츠는 수준이 낮다는 인식을불식시키고 지역에서 더 많이 소비하고 향유하게 만드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일 것이다. 이는 지역 출판사인 산지닌의 과제일 뿐만 아니라 지역문화 활성화라는 차원에서 지방정부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는 지역출판을 지원하는 제도가 거의 없다. 지역 출판사들이 늘어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다. 거창하게 국토의 균형발전이라는 측면에서뿐만이 아니라 사람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그 자리, 즉 지역(local)을 기반으로 할 때 건강한 삶을 유지할 수 있다.

문화건 예술이건 출판이건 내가 살고 있는 이 자리에서 즐기고 누리는 것이 중요한데, 그러기 위해서는 지역에 대한 지원과 투자가 절실하다. 2012년부터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는 부산문화재단의 지역출판문화 및 작은 도서관 지원사업은 다른 지역에서도 참조할만한 사례다. 예산은 적어도 지역의 출판 활동을 고취하고 지역출판산업을 육성·지원한 첫 사례라는 점이 중요하다.


강수걸 | 교수신문 | 2015-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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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에서 행복하게 출판하기 - 10점
강수걸 외 지음/산지니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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