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 연구로 다시 읽어낸 베트남, 베트남전(한겨례)


베트남 전쟁의 유령들
권헌익 지음, 박충환·이창호·홍석준 옮김
산지니·2만5000원

적군과 아군, 군인과 민간인을 가리지 않고 수많은 희생자를 낳아 현대사에서 최악의 전쟁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베트남 전쟁(1964~1975)이 벌어진 뒤, 베트남에서는 ‘유령’들이 넘쳐났다. 죽은 사람은 흔히 친족 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의례 행위에 따라 기억되고 그들에게 ‘조상’(베트남 말로는 ‘옹 바’)으로 자리잡는다. 그러나 오랫동안 계속된 대규모 전쟁은 단선적인 친족 체계에 기대어 죽은 자를 기억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었다. 집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고통스럽게 ‘객사’한 사람들이 너무나 많았고, 이들의 친족적 연고를 구분하기도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베트남 사람들은 수많은 전쟁 사망자의 개별 무덤, 마을 주민들의 집단 묘지와 함께 그 못지않게 많은 무명 유해의 무덤도 유지해왔다.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떠도는 유령은 이들에게 문화적이고 상징적인 차원이 아닌, 자연적이고 실질적인 “당대의 경험”이었다.

<학살 그 이후>(2012, 아카이브)를 비롯해 전쟁이 끝난 뒤 베트남에서 전쟁의 경험이 어떻게 기억되고 있는지를 꾸준히 탐구해온 권헌익 영국 케임브리지대 석좌교수(사회인류학)는 이번 책 <베트남 전쟁의 유령들>에서 유령이라는 존재에 초점을 맞췄다. 그는 “대규모 죽음의 역사와 망자를 기념하는 행위에 담긴 도덕성은 외교사와 경제사만큼이나 중요한 연구 주제”라며, 베트남 사람들이 전쟁 유령을 위해 수행하는 의례 행위에 “역사의 상처와 고통을 넘어 인류의 연대라는 윤리적 지평을 지향하는 창조적인 문화적 실천”이라는 의미를 부여한다.

지은이는 껌레라는 마을을 비롯해 다양한 지역을 다니며 유령 이야기를 수집했는데, 민간 공동체 차원에서는 이쪽 편과 저쪽 편, 영웅적 죽음과 비극적 죽음, 외국 유령과 베트남 유령 등에 차별을 두지 않는다는 점을 포착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베트남 사람들이 집과 조상을 중심으로 한 과거의 친족 체계에서 벗어났기 때문이 아니라, 유령을 대상으로 삼은 새로운 친족 관계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어딘가에서 이곳으로 와 이름 없이 죽은 유령은, 조상은 아니지만 ‘아저씨·아주머니’(베트남 말로 ‘꼬 박’)가 되어 조상과 비슷한 의례의 대상이 됐다. 권 교수는 이처럼 베트남 사람들이 수직적이고 배제적인 계보를 앞세우는 친족 관계에 얽매이지 않고, 인류 보편적인 윤리를 동력으로 삼아 동심원을 그리듯 친족 관계 자체를 더 넓은 차원의 ‘개방적 관계망’으로 만들어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지은이의 연구는 냉전에 대한 유럽 중심적인 인식과 연구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담고 있다. 유럽에서 냉전은 양극단의 세력이 전지구적 차원에서 지정학적 경쟁을 펼쳤던 “상상의 전쟁”이라고 봤지만, 비서구 탈식민 지역에서 냉전은 대규모 학살의 경험이었다. 비참하고 폭력적인 경험 속에서도 공감과 신뢰를 바탕으로 한 인간적 네트워크가 싹텄다는 것을 포착한 지은이의 연구는, 냉전 연구의 본질 역시 인간 존재에 대한 성찰에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최원형ㅣ한겨레ㅣ2016-06-03


베트남 전쟁의 유령들 - 10점
권헌익 지음, 홍석준 외 옮김/산지니


Posted by 동글동글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