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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의 상처를 있는 그대로 끌어안는…‘남다른 부부’가 사는 법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8. 9. 28.

<붉은 등, 닫힌 문, 출구 없음>의 저자 김비 작가님의 이야기가 9월 20일 경향신문에 실렸습니다!

 


 

서로의 상처를 있는 그대로 끌어안는…‘남다른 부부’가 사는 법

‘별것도 아닌데 예뻐서’ 펴낸 박조건형·김비

▲ 일상을 드로잉하는 박조건형과 소설가 김비 부부가 함께 <별것도 아닌데 예뻐서>를 펴냈다. 우울증 환자와 성소수자인 부부는 서로의 아픔을 누구보다 잘 알고 끌어안는다.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만나기 전에는 두 사람이 함께 있는 모습이 잘 그려지지 않았다. 드로잉 작가와 소설가 부부, 페미니스트와 성소수자 부부, 만성 우울증 환자와 트랜스젠더 부부. 두 사람에겐 다양한 수식이 가능하다. 실제 만난 두 사람은 이 모든 것을 넘어서, 그저 ‘박조건형’과 ‘김비’ 부부였다. 세상이 어떻든, 누가 뭐라든 서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존중하고 사랑해서, 함께 있을 때 더 빛날 수 있는 사람. ‘상대방의 있는 모습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란 사랑의 교과서적 정의를 이들에게서 봤다.

 
박조건형(41)과 김비(47) 부부가 그리고 쓴 책 <별것도 아닌데 예뻐서 #일상, 그리고 쓰다>(김영사)를 펴냈다. 25년간 앓은 우울증, 성소수자의 삶, 열악한 노동의 현장, 알콩달콩한 사랑 이야기와 소소한 일상을 글과 그림으로 엮은 책이다. 슬플 수도, 비장할 수도 있는 이야기를 담백하고 유쾌하게 털어놓는 두 사람이 궁금해졌다. 부부를 지난 17일 서울 중구 정동의 한 커피숍에서 만났다.


■ 예술과 인생의 조력자 


시작은 박조건형의 책이었다. 박조건형이 그린 그림을 책으로 낼 예정이었다. 하지만 중요한 순간마다 그의 발목을 잡았던 우울증은 이번에도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책을 준비하면서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던 그는 책을 포기하려 했다. 그를 일으켜 세운 것은 김비였다. 박조건형의 그림에 김비가 글을 보탰다. 그렇게 두 사람이 함께 만든 첫 책이 출간됐다.


맞잡은 두 사람의 왼손 약지엔 각자 건(建)과 비(飛)가 한자로 새겨져 있었다. 결혼반지 대신 새긴 서로의 이름 글자다.


“짝지가 공저로 참여한 책 <다르게 사는 사람들>을 보고 관심이 생겼어요. 소설가란 걸 알게 됐고, 홈페이지에 글을 남기곤 했죠. 김비 작가의 팬으로 시작된 관계죠. 그러다가 서울에 올라와 처음 만난 뒤 호감을 갖고 사귀게 됐어요.” 김비는 “처음엔 이 사람도 다른 사람들처럼 호기심에 만나다가 또 헤어지겠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이 사람은 나를 숨기지 않았다. 처음 느껴보는 귀한 마음이었다”고 말했다.


서로의 상처는 두 사람을 이어주는 강한 끈이다. 박조건형은 “우울증 때문에 삶에 대한 자신감이 없었다. 미래에 대해서도 불안정할 수밖에 없는데, 옆에서 지켜봐주는 최고의 사람”이라고 말했다. 김비는 “있는 그대로 나를 사랑하고 귀하게 여겨준 유일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림과 소설을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일으켜 준 것도 서로였다. 박조건형은 대학 만화예술학과에 진학했지만 우울증 때문에 학업을 포기했다. 어머니가 있는 경상남도 양산으로 내려가 정유공장에 생산직 노동자로 취직하면서 그림을 손에서 놓았다. 하지만 데이트 도중 그려준 그림을 보고 김비가 너무 좋아했다. “만나면 자꾸 그림을 그려달라고 하니 억지로 그림을 그렸다. 그러다보니 계속 그려볼까라는 마음이 들었다”고 말했다.


김비는 2007년 <플라스틱 여인>으로 여성동아 장편소설상을 탔지만, 그 이후에 잘 풀리지 않았다. 함부로 보관해 깨져버린 상패를 집 구석에서 찾아 정성껏 붙인 건 박조건형이었다. 박조건형은 ‘영업이사’를 자처하며 출판사에 투고를 했고, 그 결과 <빠스정류장>이 출간됐다. 김비는 “신랑이 없었다면 지금도 소설을 안 쓰고 잊혀졌을 것 같아요. 이 사람이 저를 끄집어내줬어요. 서로가 서로를 끄집어내고 일으키는 과정들이 쌓여 신뢰가 만들어지는 것 같아요.”

 

 

■ 우울증을 끌어안고 사는 법


두 사람에겐 우기와 건기가 있다. 박조건형이 우울증에 빠져 무기력한 시기가 우기, 우울에서 빠져나와 활기차게 보내는 때는 건기다. 김비는 “우기일 땐 힘들어 하지만 건기일 땐 누구보다 경쾌한 삶을 산다. 보이지 않는 밧줄에 옥죄어 있다가 풀려난 사람 같다”고 말했다.


사춘기 시절 정서적 돌봄을 받지 못했던 박조건형은 오랫동안 우울증으로 고생했다. 박조건형은 “우울증에 시달리다 빠져나오고를 반복하다보면 절망감도 크고 지친다. 하지만 나처럼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힘들게 사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있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게 다른 사람에게도 위로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비는 성소수자로서의 정체성이 자신의 일부인 것처럼, 우울증 또한 박조건형의 일부로 받아들이면 된다고 말한다. 김비는 “제 정체성과도 똑같다. 나도 그걸 바꿀 수 없다. 그래서 신랑을 더 잘 이해하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비가 박조건형에게 말했다. “승리하지 않아도 돼, 극복하지 않아도 돼. 버티고 있는 스스로를 칭찬하고 쓰다듬으면서 살아가는 것도 멋진 삶이야.”


■ 성소수자로서 “내 꿈은 자연사”


박조건형은 스스로 ‘페미니스트’라고 말한다. 박조건형은 “페미니즘은 약자들의 존재를 긍정하는 철학인 것 같다. 내게도 우울증이 있으니 약자로서의 정체성이 있다. 양성 쓰기를 하면 차별적 행동이나 발언을 조심할 것 같았다”고 말했다.


김비는 성소수자로서 누구보다 삶과 치열하게 싸워온 사람이다. 김비는 “차별이나 편견을 많이 겪었지만 애써 기억하고 살진 않는다. 제 삶에 소중한 사람들만 생각하고 살아도 정말 바쁘다”며 “성소수자로서 일상을 지켜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제가 할 수 있는 역할 같다. 농담으로 내 꿈은 자연사라고 말한다”고 말했다.

 

이번 책을 시작으로 두 사람은 앞으로 공동작업을 계속해 나갈 계획이다. 지난해 42일간 다녀온 유럽 여행기도 함께 책으로 엮어낼 계획이다. “우울증을 겪으며 비를 맞았다가 해가 쨍쨍 났다는 기록을 남기고, 성소수자로서 삶의 기록을 함께 남긴다면 귀한 기록이 되지 않을까요.” 김비가 말했다.

 

경향신문 이영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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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등, 닫힌 문, 출구 없음 - 10점
김비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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