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목요일 역사소설 <랑>의 저자 김문주 작가님과 함께 93회 산지니 저자와의 만남이 있었습니다. 이번 행사에 예상보다 많은 분이 참석해주셔서 공간이 북적북적했답니다.
산지니X공간에서 예쁜 떡도 정성스럽게 준비했어요.
행사 시작 전 창원민예총 대표 박영훈 선생님의 축하 공연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단소와 비슷한 악기인 께나(Quena)로 연주하신 곡은 영화 <라스트모히칸>의 OST로 널리 알려진 외로운 양치기(The Lonely Shepherd)인데요. 정말 슬프고도 아름다운 연주를 들려주셨어요. 소설 속 준정과 원화의 모습이 떠오르기도 했고요.
축하공연이 끝난 후 본격적으로 <랑>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편집자(이하 편): 작가님께서 아동문학 책은 많이 내셨지만 장편소설로써는 <부여 의자>에 이은 두 번째 책을 내셨는데요, 두 번째 장편소설, <랑>을 내신 소회는 어떠셨나요?
김문주 작가(이하 김): 반갑습니다! <랑>의 작가 김문주입니다. 멀리서 버스 타고 지하철 타고 오시고 귀한 시간 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저는 그냥 글을 쓰는 사람이지 한 사람으로서는 별로 보잘것없는 사람인데 그래도 작품을 써서 이렇게 여러분과 같이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게 돼서 영광입니다.
말씀하신 데로 처음에는 장편 동화를 썼습니다. 첫 작품이 <할머니 사랑해요>라는 작품인데 제가 시댁이 남해거든요. 그래서 아이를 남해에 맡겨놓고 키우면서 있었던 일을 썼어요. 사실은 제가 동화를 공부한 건 아니고 소설을 썼었는데 제가 좋아하는 작품 중에 외국 성장소설이 많아요. 예를 들어서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 <빨간 머리 앤> 이런 작품들이요. 그래서 '나도 성장소설을 써야 되겠다.' 해서 썼는데 장르 상 굳이 구분을 하다 보니 장편 동화가 됐습니다. 처음에는 동화 작가로서 정체성의 혼란도 느꼈어요. 왜냐하면 우리가 흔히 유아 동화를 읽으면 그 문체부터가 많이 다르거든요. 제가 쓴 작품들은 말은 동화지만 성장소설적인 소년소설 같은 그런 작품들이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동화작가로서 글을 계속 쓸 수 있을까' 했는데. 그래도 운 좋게 계속 쓸 수 있었어요. 그래서 동화 한 10권 정도 나오고 나면 '나도 소설을 꼭 써야지' 라고 결심했죠. 다행히 하루종일 소설 쓴다고 앉아있는 기회가 있었고, <랑>을 쓰게 되었습니다. 사실 작년에 <부여 의자>가 출간되었고 두 번째 책으로 <랑>이 나왔지만 <랑>을 먼저 썼습니다. <랑>을 쓰면서는 1년 동안 정말 일을 그만두고 글을 쓸 수 있는 기회가 처음으로 주어져서 너무너무 행복하게 집필을 했던 것 같아요. <랑>은 제 모든 정신을 다 바쳐서 오직 여기에 빠져서 정말 딴짓은 아무것도 안 하고 썼어요.제가 동화를 냈을 때는 아이들과 간혹가다가 작가와의 만남 같은 데서 눈을 맞추며 이야기했지만, 어른들과 함께하는 저자와의 만남 자리는 '문학이라는 게 결국 인생을 이야기하는 건데 뭐 잘났다고 이야기를 하겠나'라는 생각을 해서 반려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랑>은 정말 제 첫사랑과 같은 작품이라서 오늘은 글을 읽으신 분이 두세 분만 계셔도 '같이 눈을 맞추고 이야기를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그런 마음으로 아주 저도 설레게 참석했습니다.
편: 주변 분들의 책에 대한 반응은 어떠셨나요?
김: <랑>이 1월 말에 나오고 제가 잘 아는 시인께서 한 달 전에 책이 나오셔서 그 시집이랑 제 책 출판기념회를 간단하게 했습니다. 북 콘서트 형식으로요. 그래서 책이 나오자마자 해놓으니깐 그때 책을 안 읽은 상태에서 문인분들이 오셔서 책을 받아가셨고 이제 막 전화를 해주고 계신데요. 그냥 저한테 재미없다고 말씀하시긴 뭣하니깐 다 재미있게 읽었다고 말씀하셨어요. 어느 작가분은 어제 전화를 하셔서 '그래도 남모와 백아를 살려두지 어떻게 그렇게 죽일 수가 있냐'고 마치 드라마 보고 열 내듯이 저한테 전화를 해서 그래도 살려줄 수 있지 않았냐고 재판을 찍을 때 다시 고민해볼 수 없냐고 말씀하신 분도 계셨구요. 또 제가 장편 동화를 계속 냈던 예림당에서도 책을 한 권 보내드렸더니 산지니 출판사를 잘 알고 계신다면서 책이 예쁘게 재밌게 잘 나왔다고 칭찬해주셨습니다.
편: 선생님의 이력을 살펴보면 처음에 아동문학으로 문단에 발을 디디셨는데요. 어떻게 전혀 다른 장르인 역사소설을 쓰시게 되셨는지요?
김: 책으로 나오지 않았지만 제가 역사 동화도 습작을 했거든요. 한 권은 잘하면 나올 것도 같은데... 최초로 제가 동화로 시작하게 된 계기는 파락호 김용환이라는 사람을 알게 된 것이었습니다. 여러분께서도 알고 계신 지는 모르겠는데 파락호처럼 겉으로는 노름과 술로 재산을 탕진했지만, 사실은 그분이 위장해서 겉으로는 그렇게 욕을 들어가면서 사실은 독립운동을 하셨던 거죠. 돌아가실 때까지 해방이 되어서도 말하지 말라고 해서 알리지 못했던 그분에 대해서 제가 알게 되어서 그분을 소재로 동화를 한번 썼었거든요. 그러면서 동화를 제가 쓰면서 보면 모든 것이 직접, 간접체험입니다. 모든 작가가 마찬가지겠지만 자신의 체험에서 다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역사를 배경으로 소설을 쓰니깐 일단 제가 공부를 해야 되는 것도 많고 또 아는 것만 가지고 글을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역사를 보는 관점이라든지 자기 철학이 만만치 않으면 감당을 할 수 없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역사소설을 쓰면 나름대로 "사명감을 가지고 써야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했고요. 그리고 있는 그 시대를 그대로 재현을 한다는 것이 어렵거든요. 동화는 아이들의 심리를 아이들이 요즘 뭐가 문제인가 또 아이들의 심리가 또 어떤 갈등을 가지고 있는가 그런 것을 위주로 했다면 역사소설은 기본적으로 시대에 대해서 꿰뚫고 있어야 되니깐 <랑>을 쓸 때는 법흥왕 시대 공부를 많이 했죠. 그런 차이점이 있었는데 그래도 그렇게 공부를 하는 게 굉장히 재밌었습니다. 역사소설을 공부를 한다고 해서 힘든 게 아니고 오히려 굉장히 재밌고 자료가 없는 부분을 제가 상상력으로 메꾸어 갈 수 있다는 게 굉장히 뿌듯했죠.
편: 동화와 역사소설 두 분야를 집필하실 때, 선생님께서 어떤 차이점을 느끼시나요?
김: 여기 시인분들이 없다고 가정을 한다면 간혹가다가 긴 글 쓰는 사람들은 농담처럼 그렇게 이야기하죠. 시인들은 할 거 다 하고 다니다가 잠시 앉아서 영감이 떠오른다고 그렇게 하지 않느냐고. 조금 나쁜 표현으로 "그렇게 시 나부랭이 쓰는 사람하고 우리처럼 종일 엉덩이 붙이고 앉아 있어도 이게 돈이 될지 안 될지 모르는 걸 써야 하는 이런 사람하고 달라." 이런 식으로 감히 이야기하는데요. 동화는 아이들은 상대로 했을 때 제가 소설을 잡아서 써보면 길이가 있거든요. 저는 길게 쓰고 싶어도 출판사에서는 길이가 너무 길면 안 팔린다고 제안하기 떄문에 자연히 짧게 끝났죠. <랑> 같은 경우에도 제가 1800매를 썼습니다. 1년 동안 1800매를 다 쓰고 줄이고 줄여서 출판사에 넘길 때는 1200매로 줄여서 넘겼거든요. 그걸 한번 해보고 나서는 <부여 의자>를 쓸 때는 "이 짓을 할 게 아니구나"해서 1000매 안쪽으로 900매로 딱 잡아서 초고를 900매 쓰고 별로 고치지 않았어요. 그래서 원고를 출판사에 넘기고 출간되는 시간이 <랑>은 1년 걸리고 <부여 의자>는 6개월이 걸렸어요. 말이 길어졌는데, 일단 역사소설이 동화보다는 많은 공부를 해야 한다는 노력이 있고, 그에 따라 투자하는 시간도 자연히 길어질 수밖에 없긴 해요. 하지만 문학적 성과는 그걸 가지고 판단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편: 역사소설 중에서도 특별히 신라 화랑의 기원 원화를 다룬 작품을 집필하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요? 집필 과정과 관련 조사는 어디에서 어떻게 하셨는지요?
김: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중학교 때 저도 배운 것 같거든요. '남모와 준정이라는 두 원화가 있었는데 폐하게 되었다' 이런 내용 말이죠. 잊고 있었던 그 문장을 어느 날 아는 지인 댁에 가서 밥을 먹다가 듣게 되고, 제가 거기에 꽂혀 집에 가서 자료를 찾아봤죠. 면밀히 자료를 찾아보니깐 책 별로 시기는 좀 다르더라고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는 진흥왕 시기로 되어있는데 <화랑세기>에 보면 그전에 법흥왕 시기부터 시작되었고요. 그래서 <화랑세기>에 맞춰서 쓰기 시작했고 기본적으로 법흥왕 시기에 대한 공부를 많이 했습니다. 근데 진흥왕 시기와 관련된 기록은 굉장히 많이 남아 있는데 법흥왕 시기는 별로 기록이 없더라고요. 기록이 없는 만큼 힘들었지만 알아가는 과정이 재미있었어요. 사소하게는 예를 들어 나무 한 그루를 쓰더라도 '이게 옛날에 우리나라에 있었다' 하면 쓸 수 있었고 그런 눈에 보이지 않는 많은 것들을 알아가는 시간이 많았고요. 고증하기 위해서 기본적으로 역사를 상상하더라도 왜곡하면 안 되니깐요. <랑>을 쓰기 위해서는 하루에 10시간씩 앉아있었는데 절반은 이런 자료를 찾고 어떤 때는 하나도 건지지 못할 적도 있었죠. 자료 찾고 진도 나가고 이런 식으로 굉장히 재밌게 작업을 했습니다.
편: 전작 <부여의자>를 읽어보았을 때 망국의 왕으로서 덧씌워진 프레임이 있었고, 역사적 명, 훼손에 대해 새로운 조명을 하셨는데요. 이번 작품 <랑>에서도 그런 조명을 해주신 것 같아요. 선생님이 책 후기에서 말씀해주신 역사 속 기록을 잠깐 짧게 읽어보겠습니다.
아름다운 두 여자를 원화로 뽑아서 무리들을 맡게 하였다. 두 여인이 아름다움을 다투어 서로 질투했는데, 준정이 남모를 자기 집에 유인해 억지로 술을 권해 취하게 되자 끌고 가서 강물에 던져 죽였다. 준정이 사형에 처해지자 무리들은 화목을 잃고 흩어지고 말았다.
- <삼국사기>
이렇게 <삼국사기> 속에 짧게 전해진 ‘두 여인이 아름다움을 다투어 서로 질투해 원화가 폐지되었다’라는 기록을 비튼 작가님의 행보가 눈에 띄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불교신문> 등 언론에서는 <랑>을 '대체역사소설’이라고 말씀해주시기도 했는데요. 이런 역사 재조명이나, 역사를 재조명한 작품에 대해 작가님께서 해주실 말씀이 있으실까요?
김: 읽으신 내용대로 기록에는 '준정이 남모를 시기해서 술을 먹여 돌로 쳐 죽여서 묻었는데 나중에 들켜 그래서 원화를 폐지하였다'고 되어있는 거에요. 남모는 정확하게 기록이 나와 있습니다. 법흥왕이 태자 시절에 백제에 사신으로 갔는데 백제 공주와 첫눈에 반해서 낳은 것이 남모였습니다. 법흥왕의 딸이고 백제 공주의 딸이며 또한 남모의 남편이 미진부였는데요. 미진부는 위화랑 다음 두 번째 풍월주로 남모는 당시의 최고의 권력을 가진 사람으로 볼 수 있는 거죠. 그에 비해 준정은 아무 기록이 없었습니다. 굳이 찾아보면 왕족의 친척의 딸이라고만 되어있었어요. 여기서 의문이 생겼어요. '낭도들을 거느릴 정도의 원화인데 그런 원화가 오직 질투 때문에 사람을 죽였을까? 그것도 신분상으로도 남모와 비할 수 없는데 준정이 남모를 죽일 수 있었을까? 어쩌면 원화를 폐하고 화랑을 세우기 위해서 화랑의 정당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생긴 이야기는 아닐까?' 물론 아름다운 두 여성을 세웠기 때문에 여러 가지 염문설은 났을 수도 있는데 그런 기록들을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한 거죠. 그래서 이걸 다르게 써봐야겠다고 생각했고요. 준정은 기록이 없기 때문에 마음껏 상상을 할 수 있었던 거죠. 기록과는 다르게 '준정을 가장 고귀한 인물로 이차돈의 연인으로 만들어야 되겠다.'해서 이차돈이 순거하던 그 시기부터 본 이야기가 전개되는 거로 했고요. 역사의 기록이라는 게 승자 위주로 쓴 기록이어서 게다가 <삼국사기>는 삼국 시기에 써지지도 않았고 고려 시대에 김부식에 의해 쓰였기 때문에 모든 기록들이 한 번쯤은 의문을 가질 수 있는 그런 기록들이 아닌가 생각이 되죠. 모든 기록이 다 중요하지만 어쩌면 믿을 수 없다고 되짚어 봐야 된다고 생각하고 소설가는 결코 역사가가 아니니깐 사실을 밝혀내는지 집중하지는 않지만, 역사소설을 쓰기 위해서 사실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왜 이걸 뒤집어야 하는가' 자기 철학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또 역사소설이 문학계에서는 약간 소외된 장르이기는 하지만 예술의 대중성이라던지 공공성 이런 걸 볼 때는 제대로 된 역사소설이 계속 나오면 좋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편: 요즘 현대소설 분야에서는 여성 인물 중심의 작품 출간이 열풍적으로 일어나고 있는데요. 역사소설은 대부분 전쟁 서사나 유명 인물, 혹은 왕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 많아, 여성 인물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은 거의 드문 것 같습니다. 그에 비해 <랑>은 소설 전반에 준정, 남모, 지소, 요 등 여성 인물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이렇게 여성 인물을 축으로 하는 작품을 쓰신 소감이나 이유가 있을까요?
김: 이 작품이 결과적으로 여인 천하처럼 되었는데 남모와 준정을 최고의 원화로 만들다 보니 지소를 알게 되고 왕권이 안정된 이후라면 선덕여왕, 진성여왕도 있듯이 지소가 왕이 될 수도 있었지 않았을까? 생각해서 법흥왕에게 자기가 왕위를 잇겠다고 하는 부분도 넣고 했는데요. 일부로 여성을 강조한 건 아니지만 두 여성을 주인공으로 삼다 보니 그 시대를 공부해보면 오히려 신라 시대나 고려 시대 때 여성들이 자유롭고 어머니의 지위가 세습되는 그런 체계였습니다. 물론 계급상의 차이는 있었지만, 여성이 원화도 되고 왕도 되는 여성들이 모든 것을 좌우할 수 있는 권력들도 가질 수 있었겠다 했고요. 요는 신라 시대에 설요라는 비구니가 있었어요. 시에도 능하고 무술에도 능한 준정의 스승 역할로 하면 되겠다 하고 넣었죠. 당시 여성의 지위를 생각하면 가능하다는 생각이 있었고 또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를 특별히 좋아하긴 했습니다. 여성이 주인공이라서 좋다기보다는 그런 영화들이 대체로 소수자를 위한 억압을 고발하는 영화라던지 애정을 표현하는 영화였기 때문에 관심을 가졌죠.
편: 다양한 인물이 눈에 띄었는데요. 백제에서 온 사신 백아를 사랑하지만, 신분의 다름으로 갈등하는 신라의 공주 ‘남모’, 여자는 왜 왕이 될 수 없냐며 아버지인 왕에게 항의하는 ‘지소’, 신분이 없는 평등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거사를 도모하는 비구니 스님 ‘요’, 나라의 중흥을 위해 분투하는 '법흥왕', 불교를 조국에 전파하기 위해 순교를 자청한 '이차돈', 백제의 왕자라는 신분을 속이고 신라에 잠입한 '백아', 남모의 호위무사이지만 남모를 연모하는 '유수' 등 소설 전체적으로 여러 계층의 인물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선생님께서 개인적으로 가장 애착이 가거나 공들여서 창조한 인물은 어떤 인물이 있을까요?
김: 사실 모든 인물이 다 애착이 가는데요. 제가 <랑> 이전에 썼던 동화부터 말씀드리면 주제가 소외당하는 아이들에 대한 사랑 그런 거였습니다. <학폭위 열리는 날>도 왕따를 당한 아이들을 직접 취재를 해서 썼었고 <천사를 주셔서 감사해요> 같은 책도 장애아이들에 대한 이야기인데 이런 취재를 해보면서 굉장히 아픔을 같이 느끼고 그랬거든요. 물론 어떤 작가들을 막론하고 작가는 휴머니즘에 기초를 두고 있을 텐데 저 역시 소외되는 아이들에 대한 따뜻한 시각을 주목한 것 같아요. <랑>을 쓸 때도 모든 인물이 중요했지만 '잠개'라는 인물의 역할을 살리고 싶었어요. 잠개는 노비지만 부처님을 알게 되고 나중에는 준정의 상을 돌벽에 새기는 그런 역할을 하는데요. 잠개라는 인물의 이름이 하루가 걸렸어요. 잠개라는 게 쟁기의 옛말이거든요. 잠개를 통해서 비록 계급적인 신분의 어려움을 다 극복하지는 못하더라도 자신의 정체성의 한계는 극복하는 그런 인물로 그리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준정의 마지막을 지키는 역할을 부여했어요. 이차돈의 경우에는 실제로 있었던 역사적 인물이기 때문에 이차돈이 가지고 있는 신성함을 왜곡하지 않도록 가능하면 이차돈이 있는 기록을 찾아보고 있는 그대로 쓰도록 노력했습니다. 백아는 제가 지은 이름 중에 제일 멋진 거 같아요. 유수는 처음부터 제가 남모를 대신해서 죽는 역할로 해야 되겠다고 생각해서 지은 인물인데 부는 "바람처럼 허무하지만, 왠지 아름다운 얼굴이 떠오르는 그런 이름이 있을까?" 하며 흐르는 물 유수로 정했고 유수를 죽이고 정말 많이 울었습니다. 다음날까지 너무너무 마음이 아파서 많은 인물을 죽였지만, 처음에 특히 유수를 죽이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래도 가장 제가 신경을 많이 쓴 인물은 준정이겠죠. 가장 아름다웠고 고귀한 인물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편: 준정과 이차돈의 사랑, 백아와 남모의 사랑 등 로맨스 요소도 존재하는데 개인적으로 백제의 사신 백아와 신라의 공주 남모의 사랑이 강하게 다가왔습니다. 혹시 로맨스를 부분 중 마음에 드시는 부분이 있는지, 혹은 로맨스를 강조한 소설을 써보실 생각은 없으신가요?
김: 아마 모든 소설가의 최종적인 꿈은 역사에 길이 남을 비극적인 로맨스 소설을 쓰는 것으로 생각하는데요. 저도 이 글을 쓰면서 로맨스를 못 쓰겠다고 생각을 많이 했어요. 예전에는 제가 최고로 뽑는 작품이 중학교 1학년 때 읽은 <폭풍의 언덕>이었습니다. 어른이 되어서는 영화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이런 소설을 쓰고 싶다. 조금 파격적으로 <데미지> 같은 연애소설도 써봐야 되겠다고 막연하게 생각했는데요. 애정씬을 쓰기가 굉장히 힘들었어요. 그래도 지소와 이사부의 장면은 그나마 좀 담백했고 남모와 백아가 사랑을 나누는 장면을 바라보는 유수의 장면은 애틋하게 썼고요. 사실 고백하자면 옥진과 법흥왕의 장면은 제 스타일이 아니었어요. 그 장면이 지금도 제일 마음에 들지 않는 장면이고요. 조금 더 능숙하게 시간이 많이 지나게 되면 꼭 한 번 로맨스를 한번 써볼 생각이 있습니다.
편: 이때까지 <랑>과 선생님의 작품세계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어봤는데 선생님이 책을 집필할 때 영향을 미쳤던 존경하는 작가분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김: 제가 동화를 쓰면서부터 가장 존경했던 분이 권정생 선생님이십니다. <강아지 똥>과 <몽실언니>를 쓰셨던 분인데요. 작가가 작품을 잘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저는 그 사람이 일생이 어떠했는가 작가의 일생이 어땠는가를 보게 돼요. 겨울에 안동에 있는 권정생 선생님 생가에 갔었습니다. 창호지 구멍 틈으로 보이는 그곳을 보는 순간 언제나 글 쓸 시간이 없다 해서 게으르고, 만족하지 못하면서 남 탓을 하고 살았는가를 깨달았어요. 그분은 일생 아무런 욕심 없이 오직 글만 쓰면서 모든 책의 인세를 남북한과 분단지역 어린이들을 위해 기금으로 다 남기고 그렇게 돌아가셨죠. 그 후로 가장 존경하는 분이 권정생 선생님이 되었고 저도 오직 글만 쓰고 죽을 때 아무것도 없이 가야 되겠다고 다짐했죠. 여러분도 안동에 가게 된다면 권정생 선생님 생가에 꼭 한번 가보셨으면 좋겠습니다.
독자들의 질문을 들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독자1:
아동동화를 집필하기도 하셨는데, 아이들을 키울 때의 교육방식은 어떠신지 알고 싶어요.
김: 교육방식에 대해서는 제가 사실 엄마로서는 점수가 첫애한테는 거의 40점밖에 안 되고요 둘째는 첫째를 키우면서 '모든 걸 내려놓아야 되겠다'라는 것을 깨달아서 지금은 한 70점 정도에요. 첫애한테는 너무 못했고 동화를 쓰면서 이론적으로 아는 것하고 아이를 키울 때 하고 마음대로 다 못한 것 같아요. 가장 좋은 것은 아이들이 행복할 수 있도록 사랑을 많이주면서 그리고 다른 아이들도 사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죠. 엄마로서 아이를 어떻게 교육해야 좋은지 답을 드릴 수 없을 만큼 좋은 엄마가 못됩니다. 다만 아이들과의 작가와의 만남에 갔을 때 '내가 우주의 중심이듯이 모든 사람이 우주의 중심이다. 똑같이 공경할 줄 알아야 한다' 그렇게 가르치는데요. 자신을 사랑하고 남도 사랑할 줄 아는 그런 마음을 길러주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독자2:
소설을 보면 마지막에 해피엔딩과 새드엔딩이 있는데 독자들은 그런 것들을 중요하게 생각하기도 하는데요. 글을 쓰는 입장에서는 어떻게 결정을 내리시는지 궁금합니다.
김: 대체로 처음 구성을 잡을 때 주인공 운명은 대체로 정해놓고 가거든요. 준정을 '가장 고귀하게 죽게 하는 방법이 없을까?' 생각을 했고요. 살릴지 죽일지는 글의 구성에서 가장 재미있는 방향으로 가야겠죠. 독자들의 입장에선 주인공이 가장 잘됐으면 생각하지만, 글을 쓰는 입장에서는 비극이 가장 오래 남는다고 생각을 할거에요. 셰익스피어 4대 비극을 비롯해서 세계적인 연애소설들도 거의 비극으로 끝나죠. 아마 많은 작가는 비극을 선호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편: 끝으로, 향후 작가님의 집필 계획이나, 오늘 찾아주신 독자분들께 해주실 말씀이 있으면 들어보면 좋을 것 같아요.
김: 긴 시간 동안 말주변도 없는 사람과 이렇게 마주 앉아서 들어주신다고 감사합니다. 작품은 제가 역사에 잠시 꽂혀서 작년에도 역사 동화를 하나 썼고요. 지금도 하나 쓰고 있고요. 아까 말씀드린 파락호 김용환을 올해 다시 소설로 써볼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역사로 한 두어 작품 더 쓸 계획이고요. 다음에 무슨 작품이 나왔는지 관심 있게 찾아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점점 더 독자들이 문학작품을 멀리하는 경향이 있지 않나 싶교요. 주변에서 보면 많이 보이는 책들이 자기계발서더라고요. 자기계발도 물론 중요하지만 자기 자신을 위로할 수 있는 문학작품을 많이 읽어주시면 하는 바람입니다.
흥미로운 소설 속 신라 시대 실제 인물들에 김문주 작가님의 상상력을 더한 <랑>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 봤는데요. 역사소설 <랑>을 읽어보신 분들께는, 비하인드 스토리를 알게 되었던, 아직 못 읽어보신 분들께는, 소설을 전체적으로 알 수 있었던 맛보기 같은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참석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랑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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