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라 어둠이 빨리 내린다 했더니, 어느새 해가 꽤 많이 길어졌습니다.
그러고 보니 어제가 대한(大寒)이었고, 이로써 이번 겨울의 여섯 절기는 모두 지나갔네요.
퇴근 무렵, 바깥 풍경을 보면 여름에는 해가 한참 떠 있는데, 겨울에는 벌써 어둑해지고 있어 계절만큼이나 스산한 생각이 들곤 하는데요.
아직은 봄을 얘기하기 이르지만, 낮이 길어지고 있어서 좋긴 합니다.
오후 다섯 시, 해의 길이를 가늠하기 좋은 시간입니다.
추운 계절의 오후 다섯 시는 해 질 때 가깝지만, 날이 풀리고 해가 높이 오랫동안 떠 있는 시기의 오후 다섯 시의 풍경은 아직 한창 밝습니다.
몇 해 전 봄에 오랫동안 개인시집을 출간하지 못했던 시인 다섯 명이 모였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쓰고 고친 시들을 모았습니다. 그리하여 지난해 말부터 해가 넘어가는 겨울 동안 준비한 끝에 공동시집을 내게 되었습니다.
시집의 제목은 『오후 다섯 시詩의 풍경』
시간을 의미하는 시時가 아니라 작품 운율로 이루어진 언어를 의미하는 시詩입니다. 역시 시인의 감수성을 닮은 제목이지요.
산비탈 끝자락 외진 밭두렁
한 생을 안팎으로 부대껴 온
늙은 호박 한 덩이
초겨울 여윈 햇살에게
문드러져 가는 몸뚱이
통째 맡긴 채
파랗게 고왔던 젊은날의 애호박에게
사죄한다
미안타 미안타
그 시절이 그렇게 소중한 줄을
그때는 정말 몰랐다
- 이몽희 「참회」 전문
누구보다 열심히 책이 만들어지는 진행 과정을 들여다보고, 누구보다 열심히 서로의 작품에 의견을 보탠 사람들. 늦은 오후 언저리를 느긋한 듯 치열하게 보내고 있는 시인들에 비친 풍경은 여전히 아름답습니다.
여러분의 생각하는 마음속, 그리고 눈에 보이는 풍경은 어떤가요?
길어지고 있는 해만큼이나 희망적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오후 다섯 시時의 풍경입니다.
오후 다섯 시의 풍경 - 이몽희 외 지음/산지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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