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일, 풀무질에서는 <뒤틀린 한국 의료>의 저자 김연희, 대담자 임승관 안성병원장, 사회를 맡은 <시사인> 장일호 기자와 함께 한국 의료 시스템의 현주소와 문제점을 심도 깊게 논의하는 자리를 가졌습니다. 2시간 30여 분 동안 책 안팎의 얘기를 나누었는데요, 한국 의료에 관심 있는 분들이 북토크를 찾아주셔서 진지한 대화의 장이 되었답니다.
의료 구조에 관심이 있는 분들을 위해 기자의 시각에 의료진의 현장 감각이 더해진 북토크! 지금부터 전해드리겠습니다.
장일호 기자: 주간지 기사는 그 주에 딱 적합한 어떤 이야기를 다루기 마련이죠. 그래서 이렇게 책으로 묶어 놓으니까 하나의 흐름이 있어서 하나하나 기사로 읽을 때랑 책으로 읽을 때랑 다르더라고요. 기존 기사를 묶으면서 가장 염두에 두었던 점은 무엇인가요?
김연희 기자: 사실은 단행본 스타일로 좀 유기적으로 연결이 되도록 개고를 하고 또 비어 있는 내용 채워 놓은 것들이 있거든요. 「그 노인을 위한 의료는 없다」라는 챕터라든지 임승만 선생님 인터뷰했던 「공공병원이 미래가 되려면」이랑 박건희 평창군 보건의료원장님 「WHO를 마다하고 시골로 간 의사」 인터뷰들은 추가를 하긴 했어요.
저도 사실은 책을 낼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거라 묶어보니까 한국 의료의 이렇게 뒤틀린, 복잡다단한 지형을 조망할 수 있어서 신기했어요. 사실 이건 주간지의 힘이기도 한 것 같아요. 우리는 어떤 현안들을 그때그때 휘발성 있게 쓰지 않으니까요. <시사인>은 항상 깊이 있는 모습을 지향하잖아요. 그래서 이 문제가 어디에서 시발됐는지 그리고 구조적으로 어렵게 만드는 난맥상은 무엇인지 이런 것들을 고도화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좀 시의성과는 조금 무관하게 한국 의료의 문제들을 전반적으로 다루는 책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 같고요. 또 타이밍상 지금 의정 갈등을 겪으면서 시민들이 궁금한 것들이 있잖아요. 의사들은 왜 저래 이런 것들. 뭔가 의료계에 문제가 있는 것 같은데, 이 시스템이 그대로는 유지가 안 될 것 같은데 이런 막연한 그런 궁금증들이 있는데 그런 걸 좀 설명해 줄 수 있는 책이 된 것 같아요.
장일호 기자: 임승관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것들은 흔히 의료계에서 나오는 이야기와는 늘 다른 목소리였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곤란한 이야기들을 좀 담당하셨다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어떻게 그런 역할을 기꺼이 맡으셨을까라는 궁금증도 들어요.
김연희 기자: 진짜 곤란한 게 제가 「공공병원이 미래가 되려면」이라는 인터뷰에서도 공공병원이 왜 필요한지를 계속 물어보는 게 아니라 왜 안 되는지를 집요하게 물어봤어요. 그다음에 「나는 건강한 의대 지원이 바라는 의사입니다」라는 좌담을 했었는데 그게 올해 2월에, 의대 증원이 2월 6일에 발표되고 한 10일 정도 뒤였어요. 그때 의료계에서는 의사 증원을 찬성한다나, 지지한다 이런 얘기를 하면 정말 돌 맞는 그런 분위기였거든요.
임승관 원장: 제가 갖고 있는 생각의 지점, 이데올로기에 기반해서 주장하는 분들은 사실 굉장히 많잖아요. 특히 운동가들, 정치인들, 활동가들이 엄청 많이 있잖아요. 주장은 그게 맞는데, 가치관은 그게 맞는데 실제 현실에서는 그렇게 뒤틀려버리고 오작동하고 자꾸 오류가 나고 있어요. 그리고 우리가 원하는 선언 효과는 얻지 못한 채 이상한 부가 효과만 쌓여가고, 이게 누적되고 고착화되어 가는 현상들. <시사인>이 갖고 있는 특성이 어떤 진영의 주장만을 가지고 거기에 근거를 찾는 방식이 아니라 실제 현장에서의 문제점을 다루는 것이다 보니 그런 매체와 얘기를 하면 좀 더 현실에 기반한 얘기들을 하게 됩니다.
장일호 기자: 익산 아주 시골 마을에 여러 규제를 벗어난 공장이 불법적으로 운영되고 있었어요. 그 마을에 80명 정도가 살았는데 3분의 1 정도가 암에 걸려서 이제 '집단 암 마을'이라고 하는, 그런 마을로 낙인이 찍힌 곳이 있어요. 어떤 마을을 이야기할 때 '집단 암 마을' 이렇게가 아니라 거기에 평생을 살았던 사람들에게 이름을 돌려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한 달 정도 들어가서 살면서 취재를 했던 적이 있어요. 다행히 익산에 원광대 의대가 있었어요. 시골 마을에서 벌어진 어떤 일들을 조력할 전문가 집단이 있었던 거죠. 그 덕에 이슈가 될 수 있었던 거고 그리고 환경 문제라고 하는 것들이 역학조사로 인정되기가 되게 어려워요. 여태까지 한 번도 된 적이 없는데 이 마을에서 처음으로 인과관계가 인정되었어요.
그때 제가 너무 인상적이었던 게 그런 전문가의 역할이었어요. 한국 사회에서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들이 제대로 역할을 하면 사실은 이런 역할도 할 수 있구나. 의대도 사회적 역할을 가지고 사회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거죠. 이게 지역 문제에 접근하는 좋은 해결책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근데 책에서 보면 한국의 의사 공급 규모가 30년 전에 머물러 있다고 하거든요. 왜 이렇게 이게 어렵지, 왜 이렇게 안 되지 하는 궁금증이 들어요.
김연희 저자: 다른 사례랑 비교해도 되게 비견하기 어려운 갈등 국면이 파괴적인 방식으로 지속되고 있잖아요. 사실 2020년에 의대 증원을 하려는 시도가 있었어요. 그때는 450명 정도였지만. 근데 그때랑 되게 다르다고 느끼는 거는 그때는 언론이 '의대 증원 필요한가'에 대해서 찬반 양쪽 의견을 5 대 5 정도로 다루고 질문을 많이 던졌어요. 근데 지금은 그런 질문을 던지지는 않은 것 같아요. 사회적으로 공고한 의사 집단 이외에는 한국 사회에 의사가 부족하고 의사를 늘려야 한다 이런 공감대는 분명하게 형성이 되는 것 같아요.
인구 천명당 의사 수는 OECD 평균이 3.5명인데 한국은 2.6명이고 한의사까지 빼면은 2.1명입니다. 이 수치는 OECD 국가 중에서 최악의 수준이죠. 그것도 나름의 강력한 하나의 근거가 될 수는 있지만 저는 그것보다는 조금 더 상식적인 수준에서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여겼던 게 이거는 임승관 선생님 취재하면서 들었던 얘기예요. 우리가 적극적으로 의사를 조정하는 의사 공급 정책의 마지막 시도는 사실 1990년대에 의대가 41개로 늘어나면서 2900명 규모 의사 수가 3300명 정도로 늘어난 거예요. 지금은 조금 줄어서 3058명이고요. 30년 전에 마지막으로 의사 인력을 늘리는 시도가 이루어졌는데 1994년과 2024년 한국 의료 규모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커졌다고 임승관 선생님이 얘기해 주시는 거예요. 수치로 보면 경상의료비(한 해에 나라가 쓰는 의료비 총액)가 1994년에는 13조였는데 2024년에는 209조 원이 됐어요. 16배 늘어난 거죠.
임승관 원장: 1990년대에 의대는 선거 때마다 생겼어요. 한국이 이제 그런 시절은 지나갔다고 봐요. 대선 한다고 의대를 만드는. 지금까지 한국에서 의료 공급에 대한 체계적 논의가 있었냐고 하면 제가 알기로는 전혀 없어요. 이런 인력이 필요하고, 의료 규모 증가 대비 전문의를 얼마나 양성해야 할지 같은 계획이요. 보건의료기본법에 따라 5년마다 보건의료기본계획이라는 걸 세워야 해요. 근데 20년 동안 한 번도 세운 적이 없어요. 계속 미뤄온 거죠. 달리 얘기하면 의사, 실제 의대 정원 같은 부분도 문제가 드러나야 논의가 시작되는 것 같아요. 미리 10년 전에 충분히 생각할 수 있었던 일들도 막상 기사가 나오고, 죽겠다는 사람이 나오고, 농성이 이뤄지고 나서야 정치권이 결합해서 어떤 정책들이 갑자기 양산되는 게 의대 증원 논의에서도 일어난 거죠.
김연희 저자: 독일 같은 경우는 의사들이 병원 봉직의, 공공병원에 종사하고 있어서 공무원 같은 신분이에요. 그래서 의사 수 늘리는 것을 찬성하거든요. 거기는 임금 협상을 통해서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받는 거라 의사 수가 늘어나면 내가 하는 일이 줄어드는 거죠. 그런데 한국은 굉장히 개원이 중심이고 개원이라고 하는 거는 자영업자인 거잖아요. 이게 한국 의사들이 의사를 늘리는 것에 반대를 할 수밖에 없는 요인 같아요. 밥그릇 중요하잖아요.
두 번째는 그러니까 내 밥그릇보다도 진짜 한국 의료를 걱정하는 의사들 중에는 진료실에 안 와도 되는 환자가 너무 많이 오는 거예요. 이건 지표로도 드러나는데 OECD 평균이 연간 7회 정도 의사를 방문을 해요. 우리는 17건이에요. 2위가 일본인데 일본이 12회를 가요. 2위랑도 격차가 대단한 거죠. 환자를 진료하는 임상의사로서, 매일매일 진료실에서 환자를 마주하는 사람으로서는 이렇게 안 와도 될 환자들이 많은데 의료 이용량을 줄이지 않고 여기에 맞춰서 의사를 늘린다고하는 것에 되게 즉각적인 반감이 드는 거죠. 예방 의학자들은 전반적으로, 그 수의 차이는 있지만 의사 수 늘리는 것 자체가 필요하지 않다고 보는 사람들은 없어요.
임승관 원장: 개인적으로 의료 이용이 늘어나는 것에 의료 과잉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할 거라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서 지금 우리나라의 병원에 가서 "나 대장 내시경을 한번 해보고 싶은데요."라든지 "제가 며칠 전부터 배가 조금 아파요. 복부 CT를 받으면 좋겠는데요."하면 그 처방을 안 하는 의사는 거의 없을 겁니다. 진료비를 위해서든 아니면 내 진료실에서의 이 이용자를 만족시켜 주기 위해서든 그걸 안 하는 의사는 거의 없을 거예요. 그런 처방에 "이건 내가 알고 있는 적정한 급여 기준에서 벗어났으니 비급여를 하세요."라고 하는 의사도 거의 없을 겁니다. 지속되는 고통이 어쩌고 저쩌고 쓰면 실제로 보험 급여가 되니까. 심사평가원이라는 제도 안에서 이렇게 커진 스케일이 된 의료를 하나하나 확인할 수 없죠.
예전에는 대학병원에 가면 환자가 교수님 얼굴 한 번을 못 봤어요. 그런데 지금은 입원, 수술에 써야 하는 동의서가 수십 장입니다. 환자 한 명에게 투입되는 의료 서비스 총시간량은 점점 증대되고 있습니다. 법적, 제도적으로요. 그러면서 의사들은 초과 노동하지 않을 노동 권리를 확보해가고 있고요. 이 두 개가 동시에 일어나니까 여기는 의사가 없다, 저기는 진료가 안 된다는 얘기가 터져 나오는 거죠.
장일호 기자: 한국 사회에서 의사라는 직업이 사회 취약계층의 전문적인 옹호자의 모습인가를 생각해 보면 그렇지 않다고 생각될 때가 너무 많아요. 책에서도 김연희 기자가 말하지만 "문턱을 넘는 순간 약속되는 보상이 너무나 독보적이다. 재능 노력 그 무엇에 따른 분배로 정당화될 수 있는 수준을 뛰어넘어서 한 사회 자원 시스템까지 왜곡시키고 있다." 이렇게 지적을 하고 있거든요. 이 뒷부분을 더 이어서 얘기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김연희 기자: 자원 배분 시스템까지 왜곡되고 있다는 것은 의대 쏠림 현상을 통해서 알 수 있어요. 과학고 졸업하면 의대는 못 갈 거예요. 그래서 2년까지 하다가 자퇴하고서는 (의대로) 진학한다고 알고 있어요. 그런데 이게 근데 정말 너무 서로 불행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게 그렇게 돼서 의사가 되면은 행복한 일인가. 근데 그렇지 않다는 얘기들을 제가 의대에 계신 교수님들을 만나면 자꾸 접하게 되거든요. 그러니까 이 책에도 한 의대생이 "사실은 프로그래머가 되고 싶은데 어떻게 할까요" 이래서 교수님이 "어렵게 들어왔으니 졸업하고 그다음에 네가 원하는 쪽으로 유학을 가든지 그러는 게 어떠냐" 이렇게 권유를 해줬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그 친구가 경진대회에 나가서 상 받고, 어마어마한 재능이 있었던 거죠. 그래서 다시 불러가지고 "내가 되게 미안하다 네가 그렇게까지 진지하고 재능이 있는지 몰랐다 컴퓨터 공학과를 지원해 보는 것도 좋겠다" 이랬는데 못 했어요. 왜냐하면 집안의 기대도 너무 크고 자기도 이 의대에 들어오기 위해서 희생했던 시간이 긴 거잖아요. 정말 의대라고 모두가 선망하는 이 자리를 이 친구는 어마어마한 경쟁을 통해 획득했고 그래서 승자가 됐는데 사실은 만족스럽지 못하고 불행한 그런 구조. 그런 거는 사실 임승관 선생님도 많이 보셨을 것 같아요.
임승관 원장: 대학에 올 때까지 이 엄청난 경쟁 체제의 최상단의 열매를 따낸 젊은이들의 의식 세계가 어떤 것인가를 생각하면 굉장히 놀랍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 굉장히 우려, 심하면 절망스럽기도 한 거죠. 제가 다음 드릴 말씀은 동의하지 않으실 거라고 생각하는데 대체로는 이런 논의들이 이 책에도 있고 다른 곳에서 많이 나오는데, 다양한 학생들을 선발하면, 지역 인재 전형 등을 통해 다양한 가치관을 갖고 있는 젊은이들이 의료인으로 들어가면서 더 좋은 역할들을 할 것이다. 굉장히 아름답고 선량한 얘기인데 솔직히 실제로도 그럴까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저는. 지금의 의대생은 성공의 열매를 딴 상위 0.6%의 승리자죠. 그런데 그럼 나머지 수험생들은 이 경쟁 체제에서 벗어난 다른 가치관이나 신념 속에서 성장하고 공부했는가 하면 그렇지 않죠. 그렇지 않다면 열매를 딴 자 열매를 못 딴 자일 텐데. 그 범위 변형으로 과연 다른 답이 나올까? 즉 "지금의 의과대학생, 지금의 젊은 의료인들 너희들이 정말 왜 그러는지 이해가 잘 안 되네"라는 관점으로 끝내기에는 그리고 그것만 없으면 어떻게 될 것 같다고 생각하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장일호 기자: 시스템을 바꾸는 건 어렵지만 어쨌든 선발된 이 인재들에게 가능한 많은 것들을 보여줘야 하는 게 우리 공동체를 이롭게 하기 때문이잖아요. 그런 부분에 대해서 취재하면서 느꼈던 이야기가 있을 것 같아요.
김연희 저자: 「사람 살리는 의사를 늘리려면」의 원용이 되는 기사에 악플이 어마어마하게 달렸어요. 왜냐하면은 의사 되는데 공부 잘하는 게 꼭 중요한 자질인가 그거에 대해서 아니라는 좀 반론들을 계속 얘기를 했거든요. 그렇게 마음을 먹었던 거는 두 가지 동기가 있는데 첫 번째는 앞서서 제가 작년에 소위 바이탈과, 내과 외과 소아과 산부인과 그다음에 흉부외과 이렇게 사람 생명 살리는 과에 지금 의사들이 부족해서 의료 공백이 발생하는 거니까 여기 의사를 늘리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지 한 전공의 선생님을 인터뷰했어요. 저는 대우를 좋게 해주는 그런 대책들을 말할 줄 알았거든요. 근데 그 선생님이 "지금처럼 경제적인 보상이나 부의 대물림을 얻기 위해서 의대를 택하는 흐름이 계속된다면 우리 과에 오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이렇게 얘기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자기 과의 대우가 좋아져야 된다는 걸 부정하는 게 아니라 거긴 정말 살인적으로 근무하고 계시거든요. 사람 늘어야 되고, 보호도 받아야 되고, 그리고 급여 수준도 좀 높아져야 되죠. 다른 과처럼. 그거 다 맞는데 아무리 우리 과를 그렇게 개선을 시킨다고 해도 소위 의사들은 워라벨, 정재영(정신과, 재활의학과, 영상의학과) 거기 전공의들은 밤 안 새도 돼요. 지금 같은 니즈를 가지고 의대에 들어오는 사람들이 계속된다면 우리 과는 진짜 소위 말하는 낙수과처럼 되거나 아니면 정말 특별한 어떤 취향을 가진 사람들만 올 거다 이렇게 얘기를 하는 거예요.
그리고 두 번째는 저번 정권에서도 의대 정원을 늘린다 그 얘기를 했었는데 그게 나온 맥락이 사실은 오래된 의료 공백 때문인 거잖아요. 지역에 의사가 없다, 필수 의료에 의사가 없다. 그러면 지역과 필수 의료, 고령화 시대에 맞춘 돌봄과 공공성을 강화하기 위한 의사를 뽑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지? 의사를 양성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지? 이거에 대한 질문은 전혀 없이 그냥 의사를 늘릴지 말지에 대해서만 다 얘기하고 있고 그 질문을 던진 공간이 공정이라는 거에 사로잡혀서 완전히 갇혀버린 거죠. 그래서 저는 그게 너무 답답했어요. 그래서 이제 이거를 쓰게 된 거죠.
장일호 기자: 민주주의 사회에서 의사들이 굉장히 편협함에 빠져 있다고 하는 부분에 대한 지적은 조금 더 얘기를 해봤으면 좋겠는데, 이를테면 "공익의 담지자 역할을 왜 의사가 해야 돼?"라고 질문해 볼 수 있도 있고요.
김연희 저자: 저는 의사한테는 사회적인 책무를 수행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왜냐하면 의사라는 집단은 면허로 보호가 되기 때문이에요. 면허라는 건 사실 사회적 계약의 산물이고 우리가 면허로 의료 의술을 펼칠 수 있는 독점권을 의사한테 준 거 거든요. 사실은 PA 간호사분들 중에 전공의보다 더 실력 좋은 분들도 많다고 알고 있어요. 근데 그분들한테 진료할 자격을 안 주잖아요. 어떻게 보면은 진료의 정점에서 오더를 내릴 수 있는 그 권리는 의사한테만 주고 그걸 면허라는 제도로 보장을 하고, 그걸 또 국가가 관리하고 있기 때문에 자기들의 신분이 보장되는 거에 대해서 공익적으로 조우할 필요가 있죠.
근데 제가 되게 깜짝 놀랐던 게 뭐냐면 의학 교육 얘기를 하셔서 생각이 난 건데 제가 몇 달 전에 어떤 의대 노 교수님이랑 얘기를 할 일이 있었어요. 그 노 교수님이 일본의 의료 법학자인가 그 사람 책을 읽고 있는데 이걸 너무 한국어로 번역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게 무슨 얘기인데요? 그랬더니 제가 방금 한 그 얘기였어요. 그러니까 의사는 라이선스를 갖기 때문에 어떤 사회적인 역할을 해야 된다 그 얘기요. 그런데 "이걸 한국어로 번역을 해가지고 의사들에게 알려야겠다." 이런 얘기를 하시는 거예요. 제가 진짜 깜짝 놀란 게 "그걸 한국 의대에서는 안 가르친단 말이에요?" 사실 의료인문학 교실이 의대에 없지 않거든요. 거기서 저는 제1번으로 배워야 되는 개념이라고 생각하는데 안 가르친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사실은 한국의 의사들이 2020년에 정부 인사가 한번 의사를 공공재라고 얘기해서 되게 논란이 됐었거든요. 거기에 의사들이 엄청 발끈할 수밖에 없는 게 자기가 의사로 양성되고 전문의로 양성되는 10년 동안 어떤 공적인 터치도 받아본 적이 없는데 그리고 의사한테 이런 사회적 책무가 있다는 교육도 받아본 적이 없는데. 내가 의사가 된 건 우리 부모님이 사교육비 엄청 많이 써가지고 애정을 갈아 넣어서 내가 획득한 지위인데 왜 나한테 사회적 역할을 하라고 해? 나는 내가 투자한 거를 돌려받는 건데 이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거죠.
임승관 원장: 그 표현은 의료는 공공재라고 얘기했다면 훨씬 더 부드러웠을 텐데. 의사는 공공재라는 표현에 좀 리스크가 있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의과대학에서 여러 가지 이렇게 인문학적인 소외 교육이라든지 이런 것들이 커리큘럼에 들어가 있지 않다는 것은 오해가 같아요. 제가 의과대학 다닐 때는 당연히 그런 게 없었지만 지금은 의료 인문학 수업이 다 필수로 지정되어 있어요. 그리고 이제 의과대학부터 여러 가지 평가를 받습니다. 여기에 인문학적 교육도 들어가 있어서 그런 게 없지는 않다고 생각해요. 제가 얘기했지만 학교가 그런 거 아닐까요? 교과서에 아주 바른말이 있지만 내가 실제로 살아가면서 경험한 것, 집단적인 경험과 체험이 있다 보니 교과서에 있는 말은 그냥 교과서에 있는 말인 거죠. '예습 복습 철저해서 서울대 나왔어요' 같은 말처럼 들리는 거겠죠. 실제로는 나와 내 부모가 투입한 것들을 생각할 거고 내가 경쟁을 통해서 쏟아부었던 것들을 기억할 테니까요. 그래서 그런 불일치가 좀 있는 것 같고요.
그리고 아까 전공의의 인터뷰에서 '보상이나 이런 것만으로는 필수과를 선택하게 할 수 없다.' 그거는 정말로 좀 다시 새겨들을 만한 얘기인 것 같아요. 왜냐하면 10년 전, 20년 전에 저보다 먼저 대학을 선택한 선생님들의 얘기를 들으면 그 무렵에는 신경외과 의사, 중환자실 치료하는 의사, 일반 외과, 어느 과든 지금보다 혹은 제가 전공했을 때보다 훨씬 더 어려운 어떤 노동 조건에서 일하셨을 때잖아요. 그럼 그건 수가가 좋아서 한 것도 아니고 그땐 사회적으로 대우가 좋아서 한 것도 아니었거든요. 그 결정은 대체로 자부심, 자긍심. 예전엔 내가 어떻게 1등을 했는데 내가 안 할 수가 있어. 그런 문화들이 없었다는 거죠. 지금은 필수과를 선택하려는 마음이 있어도 '나보다 공부 못 한 애가 정재영 가니까 필수과 억울해서 못 가겠다' 이런 생각을 하기도 해요.
저는 그래서 더 비관적인 느낌이 드는 거죠. 과연 의사들이 주장하는 대로 봉급의 형평성만 맞춰주면 필수과로 올까. 그러면 갑자기 어려운 영역에 들어가는 것 같아요. 당직하고 여러 조건이 맞으면 서울이나 강남 3구에서 출퇴근할 수 있는 거리가 아닌 지역의 직장을 잡으려고 할까? 우리가 갖고 있는 시대적 가치가 있고 거기에 개인도 소속되어 비슷할 것인데. 이쪽 수가가 높아진다고 과연 영향력이 있을까요. 지금 한국의 의사 인력 시장은 수요 공급의 불일치가 너무나 심해서 아까 우리가 얘기했듯 의사들의 경제적 보상이 더 이상 높아지기 어려울 수준으로 높아져 있단 말이죠. 예를 들어서 연봉이 1억 원인 어떤 직장인이 5천만 원이 더 소득이 생길 때 선택할 수 있는 선택과 연봉이 4억인 어떤 직장인이 4억 5천만 원이 될 때 하는 선택은 전혀 다르죠. 그래서 경제적 보상은 이 선택을 또 추동하기도 어려운 것 같아요. 그래서 정말로 어려운 숙제인데 저는 이 숙제가 의료 안에만 있는 것 같지는 않아요. 그 한국 사회의 여러 가지 지금 모순들이 이 최정점에 있는 의료에서 도드라지는 거죠.
그러데 마음이 좀 노출의 기회를 주는 건 좋은 것 같아요. 왜냐하면 입시 경쟁 체계 안에 10대를 엄청난 속도로 달려왔잖아요. 입시 경쟁이 끝난 상황에서 새로운 것들을 접하면 새로운 시각이 생길 수 있지 않을까요. 예를 들어서 한 학생이 지방에 있는 의료원에 가서 학생 교육도 몇 달 받아보고 레지던트 수료도 1~2년 받아봤어요. 그랬더니 거기서의 장점들을 느끼게 돼요. 그 장점은 경제적인 것일 수도 있고, 일의 보람일 수도 있고, 또 QOL(Quality Of Life, 삶의 질)일 수도 있고요. 또 지방 생활해 보니까 내가 그 서울에서 빡빡한데 왜 살아야지 이런 마음이 들 수도 있는 거잖아요. 그래서 의료인이 되는 과정에서 다양한 노출을 시켜주는 거 이런 것들은 우리가 지금부터라도 좀 고민도 해봐야 되는 것 같아요. 그렇다면 의대 증원도 단지 2천 명의 증원 숫자에 딱 끝나는 게 아니라 이제 전공의를 배정할 때 어떻게 배정할지, 이 전공의들은 어떤 과정을 거쳐야지만 면허를 줄 거고 이런 일련의 논의가 이루어져야 하고 다양한 환경의 노출이 어느 정도 강제되는, 그러면서 자유권을 훼손하지 않는 그런 방식이 도입되어야죠.
뒤이어 김연희 기자는 지금 의대 증원 논의에서 관심을 가질 만한 것으로 지역 의대에서 지역 학생을 뽑도록 하는 것을 꼽았습니다. 지역 의대에서 공부한 수도권 학생은 대다수가 떠나는데 지역 학생은 지역에 남는 경우가 많다고 하면서요. 지역의료는 빠르게 무너지고 있습니다. 코로나 이후 공공병원이 무너지면서 자기가 사는 곳에서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는 사례가 더 늘어나고 있고요. 지방 의료는 시급한 문제입니다.
북토크를 마무리하며 김연희 저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김연희 저자: 제가 보건 분야 취재를 하면서 되게 신선한 충격을 받았던 적이 몇 번 있는데 그중 하나가 3주체라는 개념을 알았을 때예요. 보통 우리가 보건의료라고 하면 의사, 간호사 이렇게 두 축을 선정하잖아요. 근데 이 개념은 보건의료 시스템을 유지하는 데 또 하나의 중요한 주체로 의료 이용자, 그러니까 시민을 포함해요. 그래서 이 셋이 2인 3각을 하듯이 운영되는 게 의료 보건 시스템이라는 거죠. 의료에서 환자는 진료실 안에서 수동적으로 있어요. 그렇지만 보건의료 시스템이라는 건 우리 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사회 안전망이고 공정 구조인 건강보험으로 운영되고 있어요. 그건 우리가 공공으로 마련한 돈이거든요. 그래서 의료 체제에 시민의 자리는 분명히 있다는 거죠.
의료 문제가 의사가 단순히 오더를 내리고 끝나는 게 아니라 시민들이 알아야 되는 영역이라면, 이 복잡한 문제들의 진짜 원인이 뭔지를 잘 풀어서 설명하고, 우리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를 공유하는 게 제 역할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 생각을 이 책에 담았고요. 그리고 하나 제가 조금 걱정스러운 건 제가 굉장히 많은 전문가들을 만났는데 하나같이 우리 시스템이 한계에 달했다, 임계점에 달했다고 말해요. 당분간, 수년간은 우리가 이 시스템을 어떻게 재설계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의 장이 펼쳐져야만 해요. 거기에는 반드시 시민들의 목소리가 들어가야 하고. 그때 이 책이 참고도서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이번 북토크는 의료 현장을 취재하고 의료 문제에 대해 골몰한 기자, 의료 현장을 마주한 의사의 시각을 함께 들을 수 있어 더욱 뜻깊었습니다. 임계점에 다다른 의료 시스템. 방관하거나 갈등 소재로 다뤄지기보다는 진지한 성찰과 고민이 필요한 때입니다. 북토크에서는 의사가 사회적 책임을 느끼고 실천하기 위해서는 사회 전체가 의료인의 책무를 이해하고 지원하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도 했습니다.
특히 우리는 의료 이용자이자 시민으로서 어떻게 이 시스템에 참여하고 있는지, 그 책임과 권리를 정확히 이해해야 합니다. 시민이 주체로서 의료 정책에 참여하고, 의료 개혁에 힘을 실어주는 것이 더 건강하고 공정한 의료 체제를 만들어가는 길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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