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re, 셸리 』
희망과 절망 사이, 끝없는 오르막을 오르는 사람
연극 속 셸리처럼 다시 날개를 펼 수 있을까
책소개
불공정한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선택
제 10회 수림문학상을 수상한 이정연 소설가의 장편소설 『re, 셸리』가 출간됐다.
인생의 무게는 모두 다르다. 어떤 이는 장애물 하나 없는 평탄한 길을 걷지만, 어떤 이는 가파르고 끝없는 오르막길을 오른다. 심지어 정상에 닿기도 전에 추락하기도 한다. 이정연 소설가는 자신의 삶을 위로 올리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지만 번번이 추락하는 ‘지홍’을 통해 개인이 마주하는 냉혹한 현실을 정면으로 바라본다.
소설가는 촘촘한 서사와 속도감 있는 전개로 현대판 시시포스의 신화를 재해석하며, 가진 것 없는 개인이 차가운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는지를 묻는다. ‘지홍’은 부당한 현실을 견디며 스스로를 정당화하고, 때로는 윤리적 한계를 넘어서는 선택도 한다. 그러나 그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의 삶은 끊임없이 흔들린다. 결국, 지홍은 자신이 살아온 길을 돌아보고, 자신을 이용했던 자에게 정면으로 맞서기로 결심한다. 이 소설은 굴레를 벗어나 무너진 자아와 삶을 다시 세우려는 한 사람의 의지를 담고 있다.
이용하는 사람, 이용당하는 사람
가해자와 피해자의 경계
‘지홍’은 가까스로 대기업에 입사하지만 9년째 대리 직급에 머물러 있다. 지방대 출신이라는 꼬리표 때문인지 몇 년째 중요한 업무는 맡지 못한 채, 팀장 ‘재욱’의 잡다한 일을 처리한다. 그러던 어느 날, 건강검진을 위해 찾은 병원에서 대학교 동기인 ‘승훈’을 우연히 만난다. 십여 년 만에 ‘승훈’과 마주한 순간 기억 저편으로 묻어 까마득하게 잊고 지냈던 그날의 기억이 수면 위로 떠오르려 한다.
‘지홍’은 누군가를 이용해 자신의 삶을 지키려 하지만 결국 이용만 당한다. 그가 ‘재욱’을 믿었던 이유는 자신을 더 높은 자리로 올려주리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하지만 ‘재욱’은 그를 이용만 할 뿐이다. ‘승훈’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지홍’은 단순한 피해자가 아니다. 그는 피해자이면서도 살아남기 위해 누군가를 버리고 짓밟았다. 떠올리고 싶지 않은 그날에도 그는 피해자이자 가해자의 위치에 있었다. 이처럼 소설은 개인이 불합리한 현대 시스템 속에서 얼마나 쉽게 가해자와 피해자의 경계를 넘나들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럼에도 다시 날개를 펴기 위해서
이정연 소설가는 이 소설을 통해 개인의 선택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지홍’은 처음에는 자신이 선택한 길이 최선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이 점점 더 소모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대학 시절 연기했던 ‘셸리’, 해맑고 자신의 꿈을 위해 노력하는 ‘셸리’로 되돌아가고자 한다.
『re, 셸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려는 한 여성의 이야기다. 그는 더 이상 타인의 도구로 남아 있기를 거부하며, 자신의 길을 개척하고자 한다. 결국 이 소설은 생존을 넘어, ‘나’를 지키기 위한 싸움에 대한 이야기이다. 부조리한 사회에서 지홍은 자신을 이용하려는 자들에 의해 끝없이 흔들리지만, 결국에는 그 모든 굴레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일으켜 세운다. ‘지홍’이 과거와 마주하고, 자신을 이용하려 했던 자들에게 맞서며 내리는 선택은 현대 사회에서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닿을 수 있는 이야기다.
퍼즐처럼 맞춰지는 진실
『re, 셸리』는 속도감 있는 전개와 촘촘한 서사의 사건들로 독자를 몰입하게 만든다. 현재와 과거가 교차하며 진행되는 이야기 속에서, ‘지홍’의 선택이 어떻게 그를 궁지로 몰아넣었는지를 한 겹씩 벗겨낸다. 소설은 ‘지홍’에게 닥친 두려움과 그녀가 과거에 저질렀거나 외면했던 일들이 맞물리며 서서히 진실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독자는 그녀가 누구에게 이용당하고 누구를 이용했는지, 사건의 실체가 무엇인지 퍼즐을 맞추듯 따라가게 된다.
이정연 소설가는 군더더기 없는 문장과 감정이 절제된 묘사로 인물들의 내면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이야기 속 인물들은 모두 자신의 목적을 위해 움직이며, 누구도 완전히 선하거나 악하지 않다. 이러한 캐릭터 구성은 인간의 욕망과 생존 본능이 만들어내는 복잡한 윤리적 딜레마를 강조한다.
책속으로
첫 문장 남자가 나를 돌아봤다. 그는 헐거운 검진복 때문에 건강검진을 받으러 온 사람이 아니라 병실 앞에서 대기하는 환자로 보였다.
p.15 뜨거운 숨을 누르며 마음을 추슬렀다. 이 촌구석에서, 발목만 붙잡는 집에서 벗어나려면 대범해져야 했다. 설사 그것이 살해를 공모하는 범죄거나 내가 나서서 사람을 죽여야 한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현재를 바꾸려면 피하고 싶은 일도 어떻게든 참고 해내야 한다. 이깟 일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래, 이 모든 광경은 사실이 아니다. 그저 잠깐 꾸는 꿈이다. 나는 자주 하던 대로 속으로 가만히 되뇌며 버텼다.
p.27 나를 도운 타인은 줄곧 없었다. 나를 보호할 울타리가 없었고, 부모가 사라진 뒤로도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었다. 어떤 길도 처음 길을 낸 사람이 있으며 각자 갈 길은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는 사실을. 앞으로도 운명을 만드는 건 오롯이 나일 터였다. 엄마가 흘렸던 피를 마음에 아로새기며 내가 행운을 만들고, 불운은 걷어내겠다고 다짐했다. 불행은, 더군다나 내가 만들지 않은 사건은 그저 운이 없어 생긴 것일 따름이다.
p.34 그러나 한편으로 세상 무서운 게 없이 천진하게 행동하는 샐리가 지홍과는 많이 달라 위로받기도 했다. 웃기지 않아도 웃고, 어울리고 싶지 않아도 사람들과 같이했다. 이상하게 내키지 않은 것을 하는데 지홍은 어느새 밝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덕분에 동기들은 그녀를 환하게 웃는 사람으로 기억했다. 그때부터 지홍은 샐리가 되었다. 처음에는 농담처럼 샐리로 불리다가 나중에는 극 중 이름이 본명보다 유명해져 이름으로 대체되었다.
p.74 내가 정의한 우리는 주고받은 게 분명한 공생의 관계였다. 나는 그가 회사에서 잘 느끼지 못하는 동료애를 나누어주고, 그가 하기에는 껄끄러운 잡무를 대신 처리했다. 반면 재욱은 제 능력을 내게 빌려주는, 짧게 말하면 ‘기브 앤 테이크’가 명확한 사이였다. 아쉬우나마 우리의 관계는 그런 식으로 굴러갔는데, 몇 가지 문제로 고민에 빠질 때가 있었다.
p.105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짐승의 눈알과 이빨은 기이하리만치 날카로운 빛을 발한다. 이빨(사람이니까 치아가 맞겠으나 여기에 모인 사람들을 인간으로 보는 게 맞을지)의 인 성분 때문에 지독한 어둠이 내려앉아도 누군가 입을 벌리면 그 안에서 밝은 빛이 났고, 제아무리 합을 맞춰도 하는 일이 결국에 범죄라서 사람들의 눈은 사방을 경계하느라 윤이 나는 왕구슬 몇 개가 허공에 떠다니는 것처럼 보였다.
pp.207-208 나는 대학 때 했던 연극의 샐리가 되어, 방금 해제된 기억 속에서 승훈과 그 무리가 함께했던 범행과 죽어가던 엄마의 기억까지 끄집어내며 그에 비하면 지금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마음을 돌리고는 하찮은 연극을 시작했다. 죽은 듯 묻어두고 지냈던 시간을 끌어내야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올 것이었다. 돌릴 수 있는 시간이 엄마의 죽음을 모른 척한 것과 승훈의 무리와 같이 저지른 살인은 아니지만, 인생이 꼬인 건 그 두 가지 사건부터가 분명했다. 너무 늦었으나 지금이라도 바로잡아야 앞으로 더 무너지는 걸 막을 것이다.
저자소개
이정연
2017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미러볼이 있는 집』, 장편소설 『천장이 높은 식당』 『속도의 안내자』, 앤솔러지 『인성에 비해 잘 풀린 사람』이 있다. 제10회 수림문학상을 수상했다.
차례
2024, 조우
2013, 목격
2013과 2006, 신세계로
2006과 2013, 계급의 사다리
2024, Sleeping Lotus
2024, 도망자
2024, 깊은 꿈
현실과 공상, 진실의 무대
유약한 사냥꾼과 영리한 토끼
2024, 아주 얇게 타오르는 가느다란 불꽃
2013, 이를테면 엇갈린 기억
2013, 진실게임
2024, 깊은 잠
2024, 당신의 자리
나쁘지 않던 시절에 그린 한 편의 우화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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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 이정연 쪽 수 : 256쪽 판 형 : 125*205 ISBN : 979-11-6861-450-5 03810 가 격 : 18,000 원 발행일 : 2025년 3월 18일 분 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re, 셸리』 구매하기
re, 셸리 : 알라딘
인생의 무게는 모두 다르다. 어떤 이는 장애물 하나 없는 평탄한 길을 걷지만, 어떤 이는 가파르고 끝없는 오르막길을 오른다. 심지어 정상에 닿기도 전에 추락하기도 한다. 이정연 소설가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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