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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와의 만남 | 이벤트

부산시민도서관 릴레이북토크에 다녀왔어요! _ 연극 무대로 되살아난 부산의 역사, 정경환 희곡집 『 부산을 연극하다 』

by nineteen26 2025. 5. 23.

부산시민도서관 릴레이북토크가 진행되는 강의실 앞

5월 21일, 부산시민도서관에서 열리는 릴레이북토크에 다녀왔습니다. 5월부터 8월까지, 매달 마지막 주 수요일에 열리는 릴레이북토크의 첫 순서는 부산에서 활동하고 계신 정경환 극작가의 북토크였는데요. 도서관이 엄청 넓고 깨끗해서 처음 들어가자마자 우와~ 하며 감탄했습니다. 챙긴 책과 함께 사진도 한 장 찍고 북토크가 진행되는 강의실로 들어갔습니다. 

미리 책을 넘겨보고 계신 관객분들도 계셨고, 도서관 담당자분과 편집자님께 이것저것 여쭤보며 이야기 나누고 계신 있는 분도 계셨는데요. 저녁에 책 한 권씩을 옆구리에 끼고 모인 사람들이 소탈하게 책과 문화, 관심사에 대해 수다를 떠는 광경을 보고 있으니 참 기분이 몽글몽글해졌습니다. 부산이 지금보다 더 자신의 관심사를 넓힐 수 있는 기회나 커넥션이 풍부한 지역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잠시 했습니다.

7시 정각에 북토크가 시작되었습니다. 작가님이 말씀도 엄청 재미있게 하시고 또 오해은 편집자께서 책의 중요한 부분들을 잘 짚어주신 덕분에 관객 호응도 좋았습니다. 이런 북토크라면 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 만큼요. 즐거웠던 현장의 기록, 함께 살펴보러 가시죠!!

 


 

북토크에 들어가기에 앞서 간단히 책 소개를 하고 있는 오해은 편집자

 

오해은 편집자   오늘 북토크에 참석해 주신 여러분, 반갑습니다. 저는 오늘의 주제 도서인 『부산을 연극하다』 편집을 맡았던 오해은 편집자라고 합니다. 매년 열리는 시민도서관의 릴레이북토크 시작을 맡게 되었네요. 오늘은 연극 무대로 되살아난 부산의 역사를 주제로 희곡집 부산을 연극하다』 의 정경환 작가님을 모시고 이야기를 나눠보려고 합니다. 부산을 연극하다』 는 작년 12월에 발간된, 정경환 작가님의 세 번째 희곡집입니다. 간단히 작가님을 소개해 드리고, 본격적으로 이야기 나누어보겠습니다.

정경환 작가님은 극작가이자 연출가로, 극단 자유바다의 예술감독과 기장군 장안읍에 위치한 안데르센 극장의 예술감독으로 활동하고 계십니다. 1993년에 극단을 창단한 이후로 70여 편의 작품을 창작하고 연출했으며, 2011년에는 돌고 돌아 가는 길로 올해의 한국희곡상, 2016년에는 옷이 웃다로 올해의 베스트작품상을 수상하셨습니다. 희곡집으로는 나 테러리스트, 춤추는 소나무와 오늘 이야기를 나눌 부산을 연극하다까지 총 세 권의 저서를 출간하였습니다.

오해은 편집자 안녕하세요, 정경환 작가님. 시민도서관에서 개최하는 릴레이북토크로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먼저, 이 자리에 참석해 주신 청중분들에게 인사 말씀과 간단한 책 소개 부탁드립니다.

정경환 극작가 극작가 정경환입니다. 저는 93년도부터 극단을 만들어서 희곡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전엔 원래 소설가 지망생이었는데요. 어느 날 제가 소설가로서 재능이 없구나, 깨달았습니다. 또 이문열, 황석영 이런 작가들을 보니까 도저히 자신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좌절하고 있었는데 희곡을 발견하고 나서 나의 길은 희곡 쪽이구나, 생각하고 희곡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후 희곡을 70편 정도 썼는데, 저는 그중 공연에 올렸던 작품들만 책으로 출간했습니다. 『부산을 연극하다』이 책은 공연을 올린 작품 중에서도 부산을 배경으로 한 작품 네 편을 모아서 출간한 책입니다. 인물, 지역성, 전설, 신화, 설화, 지역의 역사 등을 다룬 네 편입니다. 

오해은 편집자 그렇다면, 작가님한테 부산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궁금합니다. 

정경환 극작가  이거는 조금 길게 얘기해도 될까요? 저는 8살 때 초등학교 입학하면서 부산에 온 사람입니다. 고향은 태어난 곳은 강원도 태백이었습니다. 거기서 제가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8살 무렵에 아버지가 부산으로 직장을 옮기면서 부산 사람이 됐습니다. 아침에 기차를 타서 밤에 도착했는데, 그때 처음으로 부산항을 봤습니다. 아버지가 그때 수정동 산복도로 그 밑에 방에 사시고 있었는데 제가 도착했을 때는 밤이었고 새벽에 아침에 일어 나니 제가 태어나서 바다라는 것을 처음 봤어요. 세상에 이런 이상한 곳이 다 있나! 근데 그때까지 제가 바다라는 말을 들어본 건 형이나 누나가 불렀던 <어머니의 은혜>라는 노래에 나오는 바다가 다였습니다. 그래서 바다라는 것은 우물처럼 굉장히 깊은 무언가라고 생각했습니다. 저 밑에 모래가 있는 좀 큰 호수 같다라는 정도로 생각하고 왔거든요. 근데 아침에 창문을 열었는데 제가 태어나서 그렇게 놀라본 적이 없습니다. 바다 색깔이 너무나 강렬했고요. 그때 이후로 이 바다는 저한테는 그냥 평생에 화두가 됐습니다. 그래서 제 극단도 '자유바다'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오해은 편집자  부산을 배경으로 희곡을 써야겠다고 결심하신 결정적 이유는 무엇인지요? 

정경환 극작가  먼저, 제가 1999년도부터 2010년까지 한 10년에서 11년간 대략 광안리 바닷가에서 소극장을 했습니다. 또 영도다리, 점바치골목, 자갈치, 충무동 등등 산책하면서 한국의 도시 중 제가 정서를 가장 잘 아는 도시가 부산이라 생각했기도 했고요. 결정적인 건, 대학로 아리랑 소극장이라고 거기에서 한 달간 공연을 했는데 그때 월남전을 다룬 「태몽」이라는 작품을 올렸습니다. 그런데 서울의 평론가들이 제가 부산 작가니까 "부산 사람이면 부산 사투리를 쓴 연극을 하지"라고 말하는 겁니다. 젊었을 때는 좀 삐졌는데, 어느 순간에는 그 이야기가 맴돌더라고요. 그래서 부산 이야기를 쓰게 되었습니다. 

오해은 편집자  그렇군요.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이 희곡집에 수록된 작품들 이야기를 나눠볼까 해요. 첫 번째로 수록된 영도다리 점바치」에 대해서 얘기를 해볼게요. 이 책의 표지 그림도 다들 어딘지 아실 것 같은데 제가 여기도 찾아보려고 가보기도 했고요. 이 그림이 저희 출판사의 디자이너분께 '이렇게 좀 그려주세요'라고 제안을 해서 나온 그림입니다. 그분의 그림체가 느껴지는 그림인데요. 먼저 「영도다리 점바치」 에 대해서 소개 부탁드릴게요.

표지에 삽입된 일러스트

정경환 극작가   영도다리에 대해 먼저 설명을 하자면, 영도다리는 원래 피난민들이 모여 살던 곳이었습니다. 유명하니까, 피난 갈 때 만약에 우리가 헤어지면 영도다리에서 만나자, 그렇게 약속했던 거죠. 그러다 보니까 거기 뭐가 성행했습니까? 우리 아버지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그런 게 궁금한 사람들이 모여들다 보니 점바치(사주, 명리학 전문가)가 많았던 겁니다. 그 당시에 부산에 1960~70년대 최고의 박도사라는 분이 있었습니다. 박도사의 유명한 일화 중에, '납치된 자식의 행방과 생사를 물었던 이야기', '국회의원 선거 당락을 물었던 이야기' 그리고 아까 했던 '부산 피난민 이야기'. 이 세 가지 주제를 섞어서 만든 이야기가 「영도다리 점바치」 입니다. 

오해은 편집자  들어보니 제가 편집을 하며 궁금했던 부분들이 하나둘 이해가 되네요. 여러분! 이래서 북토크에 오셔야 합니다! (웃음) 다음 작품으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두 번째로 수록된 작품은 황금 음악다방」인데요. 해외로 떠난 예술인들이 광복 직후 부산으로 돌아와 광복동에 자리하며 만든 다방문화를 다루고 있는데요. 소개 부탁드립니다. 

정경환 극작가   제가 부산에 나름 작가, 연출가로 살면서 서울에 공연만 갔다 오면 항상 속이 상합니다. 어릴 때부터 부산은 문화의 불모지라는 말을 무진장 들었거든요. 서울과 지방을 쉽게 이야기하면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입니다. 문화나 행정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항상 그 말이 마음속에 맺혀 있었는데, 실제로 부산은 문화의 불모지가 아니었다는 거죠. 인터넷, 비행기가 활성화되기 전 외국 잡지, 방송, 음악, 문화가 가장 먼저 들어오는 곳은 항구가 있는 부산이었습니다. 방송하던 친구들이 일본 방송을 보려고 부산에 내려오기도 했고, 유명한 배우, 가수도 다 부산사람입니다. 그래서 음악 다방을 배경으로, 유명 배우의 매니저를 사칭하는 사기꾼이 등장하는 그런 이야기를 썼습니다. 

정경환 극작가가 책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오해은 편집자  그럼요. 부산에서 유명한 연예인 많지요. 지금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가수나 아이돌분들 중에도 부산 출신이 많죠. 그럼 세 번째 작품, 철마 장군을 불러라!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정경환 극작가   제가 지명 연구를 좀 했습니다. 한국 지명은 그냥 만들어진 게 아닙니다. 예를 들면 청주공항이 있죠. 청주공항이 있는 마을 이름이 '비리'입니다. 비리 날 비자. 공항이 생길 거라는 걸 어떻게 알고 그렇게 지었을까요. 더 재미있는 것은 비행기가 뜨는 곳은 '비상리'입니다. 그리고 내리는 곳은 비하리. 그런 지명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여하튼, 기장에 갔을 때 공연 의뢰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기장의 이름을 살펴봤는데, 기장의 옛날 지역명이 '철마'였습니다. 철의 중심지였던 거지요. 그래서 그 지역 신화를 가지고 만들어야겠다, 생각했습니다. 무대는 야외무대라 음악극으로 만드는 것이 좋을 것이라 판단해 음악극으로 만들었습니다. 또 거기에 나오는 주인공들 이름은 전부 다 기장에 있는 지명으로 만들었고요. 

하나 웃겼던 건, 이 작품에 동해의 용하고 싸우는 내용이 있는데 하필 그날 기장에 태풍이 왔습니다. 저랑 스태프들은 뒤에서 무대를 잡고 있었습니다. 근데 관객들이 전혀 움직이지 않는 거예요. 알고 보니 우리 뒤에 유명 가수가 초대공연을 왔더라고요. 그래서 덕분에 아주 집중력 있게 아주 공연을 잘 진행했습니다. 날씨까지 도와줘가지고 음향 효과나 무대장치가 전혀 필요 없을 정도였던, 그런 에피소드가 있는 작품입니다. 

오해은 편집자  마지막 작품인 명정의숙은 <명정의 불꽃>이라는 제목으로 공연되었습니다. 일가친척 하나 없는 외할머니의 장례식을 치르는 손자에게 낯선 이들이 몰려오며 외할머니의 과거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되는데요. 이 이야기에는 어떤 비하인드가 있나요? 

정경환 극작가  제가 기장에 극장이 있기도 하고, 또 기장에 고마운 부분도 있어서 기장 취재를 계속했습니다. 기장에 다섯 부잣집이 있어요. 집안에 권 씨 박 씨, 김 씨, 오 씨, 최 씨. 이렇게 다섯 집 안이 굉장히 부잣집이었는데 지금 전부 기장에 안 살아요. 다 기장을 떠났습니다. 이 다섯 집안이 모두 독립운동 집안이었거든요.

명정의숙은 조선시대 때 관청의 한 일부분 건물이었는데 식민지 시대니까 비어져 있었던 거예요. 그걸 학교로 만든 게 명정의숙이에요. 근데 명정의숙이 왜 대단한 학교냐 하면 사립학교인데 아까 언급했던 다섯 집안 중 몇 집안이 돈을 내어 만든 학교입니다. 그 학생들은 누구냐면 다 자기 부인, 딸, 이런 사람들이에요. 우리 우리가 독립할 수 있는 것은 독립군들 덕분인데, '독립군을 키우는 건 그 누구도 아닌 엄마다. 그래서 여자도 교육을 받아야 한다' 그런 생각으로 만들어진 학교가 명정의숙이라는 겁니다. 그 권 씨 집안에서 학교를 지었던 분 성함이 권상준이라는 분인데, 그분의 딸 권은해 독립운동가가 이 학교 1회 졸업생이에요. 

다섯 집안들이 다 기장을 떠났다는 게 너무나 가슴이 아파서 이 권은해라는 인물이 평생을 침묵 속에 말을 한마디 안 하고 있다가 돌아가시는 날 그 텅 빈 장례식장에 이 다섯 집안의 후손들이 찾아오는 것부터 이 작품을 썼습니다. 지금 기장 근대역사관에서 전시를 하고 있습니다. 후손들 모임에서 우리 작품을 보고 이 작품을 보고 고맙다고 밥을 사겠다 하시면서 우리 대표랑 초대를 했는데, 되려 제가 샀습니다. 기분 아닙니까? 정말 뿌듯했던 기억입니다

정경환 극작가 프로필

오해은 편집자  책에 있는 작가님의 프로필을 보면, 극단 자유바다 예술감독이자 안데르센 극장 예술감독으로 소개되어 있습니다. 30여 년간 연극계에 몸담으면서 많은 변화를 겪으셨을 것 같아요. 1993년 창단 당시의 연극계와 지금의 연극계의 달라진 점이 있다면요?

정경환 극작가   제가 93년도에 극단을 창단할 때 아마 부산에 연극하는 분들한테 조금은 밉상스러운 사람으로 보였을 겁니다. 그때 부산의 극단들은 번역작 아니면 서울의 유명한 작가들이 성공한 작품을 그대로 가져와서 하는 형식의 작품을 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작가가 없지는 않았습니다. 간혹 창작을 하는 분들이 있었지만 주 연극은 그렇게 하는 거였어요. 그렇게 해야 돈을 벌 수 있으니까요.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 같은 작품을 하면 불문과 학생들이 우르르 옵니다. 하지만 저는 창작극만 하고 싶었습니다.  

그렇지만 과연 내가 돈이 안 되는 창작극을 계속할 수 있을까? 고민이 많이 됐었죠. 근데 내 성품을 보니까 의지가 약한 사람이에요. 그래서 배수의 진을 치자. 아예 선언을 해버리자. 난 창작극만 하겠다! 그래서 한 7~8년가량을 너무나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뮤지컬 창작극을 만들었다 다 망해먹고. 당시 방송국들이 많이 생기니까 방송국에 다니는 선배들이 고생하지 말고 이쪽으로 와라, 그렇게 이야기를 많이 해줬습니다. 그래서 저녁에 이력서를 써서 안주머니에 넣고 다녔습니다. 자고 일어나면 우체통 가는 길에 이력서를 넣으려다가, '그래도 창작극 한다고 말한 놈이 이리 비겁하면 되나' 싶어서 찢었습니다. 또 저녁에 아이들을 쳐다보면 내가 이래 가지고 애들 먹여 살리겠나 싶어서 또 이력서 쓰고, 다음 날 깨면 또 찢고. 근데 벼랑 끝에 몰리면 어쩔 수 없이 하는 그런 게 또 저한테 있더라고요. 그렇게 35년간 버텼습니다

지금 부산 연극계에서는 젊은 친구들이 창작을 많이 합니다. 제가 창작극을 많이 하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희곡 작품 심사를 많이 하게 되었는데요. 제가 항상 제가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하는 말이 있습니다. 글은 발로 쓰는 거다. 취재를 굉장히 강조합니다. 그런 우연의 법칙에 의해서 많은 것들을 만나는 겁니다. 경남에 해인사에서 글을 제안을 받았을 때, 행사 가는 길에 온갖 이야기들을 다 들었습니다. 가게에서 사람들하고 이야기하며 얻는 그런 정보들이 있다는 말입니다. 발로 뛰었을 때 우연히 마주치는 정보들이 많은 것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말이죠. 근데 요즘 심사를 해 보면 젊은 친구들이 인터넷에 정보가 너무 많으니까 발이 아닌 엉덩이로 쓴 글들이 보이는 거예요. 인터넷에 정보를 끄집어내 가지고 쓴 그런 작품들이 어떤 공통점이 무엇이냐, 독창성이 없습니다. 자기 이야기 같은 느낌이 안 듭니다. 냉정하게 얘기하자면 연출가는 자기 문법이 분명하게 있어야 됩니다. 젊은 친구들이 창작을 하고 있지만 그게 솔직하게 조금 아쉽습니다. 부산 역시 부산만의 독창성이 있는 그런 작가들을 발굴하고 그 사람들을 키워줘야 됩니다.

북토크에 참여한 관객들이 강연에 집중하고 있다.

북토크 관객 극작가이자 연출가, 교육자로 지금 바쁘고 즐겁게 사시는 것 같은데요. 그렇게 바쁘고 즐겁게 살 수 있는 어떤 삶의 원동력이 무엇인가요? 

정경환 극작가  제가 이렇게 편안하게 얘기할 수 있게 된 게 불과 한 6, 7년밖에 안 됩니다. 눈은 날카롭고 얼굴은 시커멓고 맨날 울분에 차 있고 그런 삶을 살았습니다. 연극을 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세상을 변혁시키고 싶어 하는 그런 마음이 강합니다. 연극이 그런 속성이 있단 말이죠. 그래서 그런 작품들을 많이 하다 보니까 사람이 참 못나지더라고요. 배우들한테 소리치고 연극이 잘 안 되면 화도 나고 그다음에 경제적으로 좀 부족하니까 사람이 비굴해지기 시작하고. 그러는 사이에 '나 이러려고 연극 시작한 게 아닌데' 하는 반성이 오더라고요

그때 제의가 들어왔습니다. 기장의 안드레센 극장이라는 곳이 있는데, 아동 청소년 전용 극장입니다. 제가 아동극은 한 편도 안 해놓은 사람입니다. 우리 애 어릴 때 우리 단원들이 아까 극장이 너무 수익이 없으니까 '우리 굶어 죽겠다. 아동 유치원들이라도 오게 할 테니까 아동극 한번 써달라' 해가지고 제가 아동극을 한 편 써준 게 있습니다. 그 한 편이 다입니다. 

그러고 나서 코로나와 갱년기 때문에 병도 앓고 그러다 보니까 참 힘들었습니다. 근데 그 아픈 와중에 제가 이 직업을 택한 것에 대한 보람을 오히려 연극을 보러 온 어린이들한테서 받았습니다. 저는 아이들을 보면서 제가 연극을 하고 극작가가 되고 연출을 한 선택에 대해서 너무 만족하고 행복합니다. 그래서 막 공연 끝나면 그 아이들이 어떤 표정을 지을까 그 구경하는 게 설레고 너무 신나요. 

오해은 편집자 하하. 이제 시간이 다 되어가서 북토크를 마무리할 시간인데요. 마지막으로 부산 연극과 문화에 대해 말씀 부탁드립니다. 

정경환 극작가 제가 20년 전에 유럽에 공연할 일이 있어서 갔는데, 그 나라에 붙어있는 선진국 지표라는 걸 봤습니다. 도시 평가 기준 1번, 2번이 뭔 줄 압니까? 소극장 몇 개 갤러리 몇 개, 문화적인 시설이 몇 개, 맛집이 몇 개 있느냐. 이게 그 도시를 평가하는 기준이었어요. 난 단순히 GDP가 높고 잘 사는 것만이 기준인 줄 알았어요. 정말 멋있지 않습니까? 제가 이 얘기를 하는 이유는 70~80년대 이런 얘기하면 저 미친 사람입니다. 그 시대만 하더라도 우리 어릴 때 길거리에 사탕 떨어지면 엄마가 주워서 털어서 입에 다시 넣어줬습니다. 그다음에 이 아이스크림이라도 하나 사면 친구들 못 사 먹은 애들이 한 입씩 넣어줬습니다. 먹고살 것도 없고 위생 개념도 없어서 불량품이든 뭐든 입에 들어가고 배부르면 괜찮은 시대였지요. 그건 가난하던 시절이고 그러다가 한국이 2만 불 시대가 되니까 웰빙이 유행하더라고요. 좋고 건강한 음식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자리 잡힌 거죠. 3만 불 넘어가니까 그때부터 인문학 카페가 막 생기기 시작하고 서점들이 많아지기 시작하는 거예요. 사람들이 어떻게 변했는가를 잘 봐야 된다는 겁니다.

문화예술의 지원을 왜 하느냐 이런 소리들이 있는데, 문화예술은 배설입니다. 사람이 건강하려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잘 먹고 잘 싸야 됩니다. 사람들이 쌀 줄 알아야 돼요. 자기를 토로할 줄 알아야 되는 거죠. 회사에서 일만 하면 어떻게 합니까? 저녁에 포장 마셔서 술도 한 잔씩 해야 되죠. 저도 그거 한 지 얼마 안 됐습니다. 그 배설이 문화와 예술입니다.

오해은 편집자 네. 잘 들었습니다. 이제 정말 북토크를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정경환 작가님과 더불어 오늘 북토크에 참여해주신 관객 여러분들 감사드립니다. 오늘 북토크가 즐거우셨기를 바라며, 또 앞으로 정경환 작가님의 희곡집과 책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북토크 관객들과의 단체사진
책에 사인을 하고 있는 정경환 극작가.


 

8월 27일, 이기숙 작가님의 <웰다잉을 배우다> 릴레이 북토크에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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